어떤 배우는 감사한 지인의 이름을 줄줄이 호명하느라 제법 긴 시간을 써버렸고, 어떤 배우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게 부담스러워 '감사하다. 열심히 하겠다'는 짧은 인사를 건네고 무대를 내려왔다. 어떤 수상 소감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틀'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선택이고,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다만, 무게 있는 자리에 오른 소중한 시간의 가치를 좀더 의미 있게 쓰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것이다. 배우 김의성이 전달한 메시지의 '힘'은 그래서 강렬했고, 진지했고, 아름다웠다. 



"당연히 받을 것이라고 100% 확신했던 베스트 커플상을 놓친 아쉬움을 이 상으로 달래도록 하겠습니다"


미니시리즈 부문 황금연기상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배우 김의성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수상의 기쁨을 즐기는 따뜻한 미소와 수상자로서의 진지함이 함께 공존했다. '설렘'도 '긴장'도 없었고, 당연히 '감동'도 없었던 지루한 시상식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얼굴을 잃어버리기도 했던 그였기에 그 다채로운 표정들이 한결 반가웠다. 현실과 웹툰을 '맥락 있게' 넘나드는 드라마 <W>에서 오성무 역할을 맡아 '맥락을 초월하는' 열연을 펼쳤던 김의성에게 '황금연기상'이라 이름붙여진 상은 너무 작게 느껴졌다. 


'나눠먹기'의 전형이라 할 만 했다. '황금연기상', '우수연기상', 최우수연기상'으로 쪼개진 상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황금' 연기와 '최우수' 연기 가운데 더 '괜찮은' 연기란 무엇일까. '우수' 연기와 '최우수' 연기의 차이를 '수상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가. 거기에 '연속극부문', '미니시리즈', '특별기획'으로 쪼개고 성별로 나눠진 상에는 '챙겨주기' 이상의 의미를 찾아내기 어려웠다. 자화자찬으로 가득찬 그들만의 잔치를 지켜보는 건 씁쓸하기만 했다. 


게다가 100% 시청자 투표로 '대상'을 결정하다니! 만약 '인기'가 대상을 결정하지 않고, '연기'가 대상을 결정했다면, 어쩌면 김의성의 이름이 호명됐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종석의 연기를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인기 투표'로 전락한 시상식의 권위는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의 포스를 자랑하며, <W>라는 드라마를 성립 가능케 했던 이종석의 '연기'마저 빛이 바래지도록 만들지 않았던가. 답답한 마음은 이쯤에서 갈음하고, 계속해서 김의성의 수상소감을 들어보자. 



"제가 마지막으로 MBC 드라마에 출연했던 것이 1997년이었습니다. 근 20년 만에 다시 MBC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것도 영광인데, 이렇게 상까지 주신 것도 정말 감사하고요. 마치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집에,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직장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해가 바뀌어 가고 있는데, 저는 이렇게 집과 직장에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부당한 이유로 집을 떠난 사람들, 일자리를 떠난 사람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모두 자신의 집, 자신의 직장, 자신의 일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새해가 되기를 여러분과 함께 빌고 싶습니다."


MBC와의 오랜 인연을 언급하는 부분은 일반적인 수상 소감과 다를 바 없었다. 보통 거기에서 끝난다. '영광이다. 감사하다'. 그런데 김의성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마치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집에,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직장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라는 감회를 밝히며, '부당 해고'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까지 보폭을 넓혔다. 메시지 자체는 '보편적인 내용'을 띠고 있었지만, 그가 발언한 자리가 MBC라는 데서 '의미'는 더욱 또렷해졌다. 우리는 자연스레 강지웅, 박성제, 박성호, 이용마, 정영하, 최승호 6명의 이름을 떠올리게 됐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진행된 '방송 장악'을 저지하고,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를 바로잡기 위해 2012년 170일 동안 파업을 벌이며 저항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언론인 6명의 이름 말이다. 현재 이들은 해고무효소송 1심과 2심에서 "공정방송을 위한 언론사 파업은 정당하다"는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MBC가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며 복직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타는 기다림이 1년 8개월이나 계속됐고, 지난 9월 이용마 기자는 복막염 진단을 받고 암투병을 하고 있다. 



무릇 김의성의 메시지는 MBC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언론을 장악해 자신들의 '나팔수'로 활용하려 했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언론'은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붕괴됐고, 이를 묵과하지 않고 저항했던 언론인들은 죄다 쫒겨나야 했다. MBC를 비롯해 KBS, YTN 등에서도 여러 언론인들이 여전히 해직 상태에 놓여 있다. '그들'이 사라진 언론이 얼마나 한심한 수준으로 몰락했는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JTBC의 괄목한 성장과 활약이 반갑긴 하지만, 기존의 언론들이 제 역할을 했다면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처럼 김의성의 한마디가 주는 '울림'은 생각보다 컸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의 공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 사회 속으로 파고들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과 시간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훌륭한 배우이자 멋진 인간이었다.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소신을 밝히는 데 거리낌 없는 용기, 김의성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반갑고 고마웠던 2016년이었다. 물론 영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했던 배우 김의성의 존재감도 더할나위 없이 빛났던 2016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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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연예대상 김종민

SBS 연예대상 신동엽

MBC 연예대상 유재석


지난 29일 'MBC 연예대상'에서 유재석이 대상을 수상하면서 2016년 지상파 방송 3사의 연예 대상이 마무리됐다. KBS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무려 9년이나 '외길'을 걸어온 <1박 2일>의 김종민이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한결 같았던 그의 공헌을 인정한 '전향적인' 결정이었다. 메인 MC도 아니고, 코미디언 출신도 아닌 '보통 사람' 김종민의 대상 수상 소식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SBS는 공채 1기 출신인 '개국 곡신' 신동엽에게 26년 만의 첫 대상이라는 기쁨을 선물했다. 뒤늦은 친정의 환대에 신동엽은 감개무량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MBC는 <무한도전>에 '버라이어티 부문 최우수상(정준하)',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뿐만 아니라 대상(유재석)까지 떠안겼다. <나 혼자 산다>, <라디오스타>, <복면가왕>, <진짜사나이> 등이 나름 선전하긴 했지만, 역시 <무한도전>의 존재감과 화제성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무한도전>은 'MBC 예능'이라는 한 부문을 넘어 '공영방송 MBC'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할 만큼 전방위적으로 활약했다. 또 다른 '보통 사람' 정준하의 대상이라는 드라마가 쓰여지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결과적으로 '해피 엔딩'이었다.


이처럼 지상파 방송 3사의 연예 대상은 '받을 만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만큼 무난했고, 또한 적절했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엔딩'은 아름다웠지만, '과정'에선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6년 지상파 예능의 날씨는 '흐림'이었고, 2017년 기상도(氣象圖)에도 '맑음'을 언급하기 어렵다. KBS의 경우에는 <1박 2일>을 빼면 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이고, MBC는 <무한도전>만이 꿋꿋이 제자리를 지켰다. <미운 우리 새끼>의 대박으로 한숨 돌린 SBS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2015년 MBC는 <복면가왕>,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참신한 프로그램들을 선보이며 예능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올해는 <라디오스타>, <무한도전> 등 장수 프로그램에 기댄 채 심폐소생술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경규와 김성주가 투입됐던 <능력자들>은 2%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소리소문 없이 종영했고, 재미와 감동을 모두 갖췄다고 평가받던 <미래일기>도 정규 편성 후 콘셉트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한 채 마지막 회 시청률 1.2%로 초라하게 퇴장해야 했다. 


KBS 예능은 '잔혹사'라고 불릴 만큼 어두운 한 해를 보냈다.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인 <출발 드림팀2>가 7년 만에 폐지됐고, <우리동네 예체능>도 3년 6개월 만에 시청자들의 곁을 떠났다. <나를 돌아봐>는 출연진들의 논란이 반복된 끝에 폐지됐고, 이서진과 노홍철이 합심했던 <어서옵show>도 어영부영 종영됐다. 그 외에도 이름도 기억하기 힘들 만큼 많은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소개됐지만, 어설픈 기획과 조잡한 내용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다. 


SBS는 <판타스틱 듀오>와 <미운 우리 새끼>가 두각을 드러냈지만, <런닝맨> 멤버 교체를 둘러싼 소통 문제가 불거지면서 모든 신망을 잃어버렸다.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스타킹>을 비롯해서 <한밤의 TV연예>, <동상이몽> 등이 폐지 수순을 밟았고, 육아 예능의 끝물을 탔던 <오 마이 베이비>도 비판적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야 했다. 연예 대상에서의 '훈훈한 마무리'와는 달리 2016년 지상파의 예능판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또,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지상파 3사 연예대상에 '여자' 후보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최근의 예능이 '남자'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사실 과거에도 그러했다.) 여자 연예인(혹은 예능인)의 모습은 여타 방송들의 '게스트'나 '패널' 등에서 제한적으로 찾아볼 수 있고, SBS <불타는 청춘>, MBC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여자의 존재가 필수적(?)인 콘셉트에서나 가능하다. 그나마 여자들이 주축이 된 방송은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유일하다.


그렇다고 해서 '후보'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가장 아쉬운 후보는 역시 <자기야-백년손님>의 김원희다. 김종민이 <1박 2일>을 9년동안 지켜왔다면, 김원희도 <자기야>에서 7년을 활약했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김원희의 재치 있는 진행에 감탄하고 있고, 그의 성실함과 꾸준함을 칭찬한다. 29일 방송분이 6.6%로 하락하긴 했지만, 평균 7~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SBS 예능국의 든든한 효자 역할을 하고 있는 <자기야> 대한 홀대, 더 나아가 김원희에 대한 홀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양성'이 상실된 2016년 지상파 예능을 돌아보면, 근본적으로는 신뢰감이 추락한 지상파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지만, 남자 위주의 예능이라는 한 축으로만 달려왔던 불균형 만든 균열이 엿보인다. 쉬운 선택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니 비슷한 방송 포맷이 반복될 수밖에 없고, 시청자들은 그 변화 없음에 질려가는 게 당연하다. 여성 예능인들의 노력도 뒷받침 돼야 할 테지만, 그에 앞서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성취에 대한 균등한 분배(2015년 KBS 연예대상에서 이영자는 충분히 자격이 있었지만 외면받았다)가 이뤄지는 게 우선이다. 


2017년에는 예능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절치부심하고 있는 여자 예능인들의 도약이 가능할까. 지상파 방송사들은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2017년에는 김미화(1990년, '코미디대상'에서 대상 수상), 박경림(2001년,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 수상), 이효리(2009년, SBS 연예대상에서 유재석과 함께 대상 수상) 이후 끊어진 여자 예능인의 '꿈'이 재현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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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라, 김성주, 유재석, 정준하. 2016년 MBC 연예대상, 호명된 대상 후보 4명의 면면은 모두 쟁쟁했다. 예측이 쉽지 않았다. <1박 2일>을 9년 동안 지켜왔던 '보통 사람' 김종민의 수상이 확실시 됐던 KBS 연예대상이나 <미운 우리 새끼>로 존재감을 증명한 '26년 만의 첫 수상' 신동엽의 우세가 두드러졌던 SBS 연예대상과는 달리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만큼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 후보들이었고, 대상을 줘도 무방할 만큼의 활약을 펼쳤던 4명이었기 때문이다. 


뮤직 · 토크쇼 부문 최우수상으로 김성주가 결정되고, 버라이어티 부문 최우수상에 정준하의 이름이 불리자, 그제야 '대상'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김구라는 '속마음 Talk'에서 "우주의 기운이 유재석 씨한테 가고 있다. 유재석 씨가 받아야 온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며 유재석의 수상을 점췄다. 이에 유재석은 "제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면서 '파블로프의 개'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작년에 대상을 수상했던 김구라의 2연패는 현실적으로 어려워보였다. 이미 PD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대상은 <무한도전>을 이끌었던 유재석에게로 돌아갔다.



"<무한도전>을 통해 많은 걸 느끼고 배웁니다. 요즘 특히 역사를 통해서 나라가 힘들 때,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구하는 것은 국민이고,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요즘 꽃길 걷는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소수의 몇몇 사람이 꽃길을 걷는 게 아니고, 내년에는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껴서 모든 국민 여러분들이 꽃길을 걷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많이 놀라웠다. 우선, 유재석이 공식 석상에서 시국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무한도전>에서 산타 복장에도 '노란 리본'을 다는 등 그의 진심을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은 많았지만, '직접적'으로 그의 '언어'를 통해 그의 '생각'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혹자는 그를 향해 '비겁하다', '소신이 없다', '국민 MC의 자격이 없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유재석은 자신의 말이 빛날, 그리고 제대로 전달될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앞서 열렸던 KBS와 SBS 두 번의 연예대상에서 시국 관련 발언들은 생각보다 자제됐던 측면이 있다. 대상 수상자들은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무난한 시상식으로 전개됐다. PD가 선정한 올해의 스타상의 박진영의 "새해엔 'K팝스타' 시청률이 떨어져도 좋으니 법조계가 공정하다는 평 듣고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일침과 올해의 프로그램상 교양-다큐 부문을 수상한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의 "어제가 성탄절이었으니 박근혜 대통령님께 한 말씀 드리겠다. 산타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는 위트 있는 발언이 전부였다.



그래서 유재석의 수상 소감은 더욱 반가웠다. 수상 소감에 '개인적인 감사'를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 올라서는 기회가 생겼다면 대중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게 훨씬 더 의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재석의 수상 소감은 묵직했고, 따뜻했다. '역사'를 언급하며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 외치는 그의 생각은 헌법 제1조 2항과 맞닿아 있었다.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한 해동안 각종 사건 · 사고들로 지쳐버린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다.


누군가는 지상파 연예대상에서 이미 12번이나 대상을 수상한 유재석에게 또 하나의 트로피를 안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유재석에게 돌아간 13번째 대상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무너져버린 공영방송 MBC의 가치를 그나마 지켜온 건 <무한도전>이었고, 그 중심에 유재석이 있었음을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유재석이라는 단단한 구심점이 없었다면, <무한도전>은 지금의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지 모른다. 


십수 년을 '최고'의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유재석은 믿기지 않게도 여전히 '겸손'하고, 최우선으로 '시청자'를 생각하는 참된 '방송인'이자 '희극 배우'이고 '리더'이다. 유재석의 수상 소감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부분이었다. 정형돈과 노홍철, 길을 언급하며 "시청자 여러분들에 허락하시면 그때 다 같이 방송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나,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허락해주시는 그 날까지 열심히 하겠다"며 낮은 자세로 다짐하는 내용은 듣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그렇다. 출발점은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허락하시면"에 있다. 부디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정부의 불한당(不汗黨)들이, 정치권에 있는 저 불량한 자들이 유재석의 자세를 배우길 바란다. 출발점은 "국민 여러분들께서 허락하시면"이어야 한다. 이를 망각한 정부라면, 이를 망각한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사퇴'하고 내려와야 마땅하다. 유재석의 13번째 대상 수상을 축하하며, 그와 함께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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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강산'은 '박사모', '어버이(연합)' 따위가 불러서는 안된다"


지난 17일,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박사모, 어버이 연합 등 소위 친박 단체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 반대 집회'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합창하는 걸 보고 '기가 차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두 가지 시선이 맞섰다. 창작물은 수용자의 것이고, 누구라도 '노래를 부를 자유'가 있다는 반론이 첫 번째였고, 음악인이 자신의 창작물이 음악적 방향 혹은 정치적 신념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 쓰이는 걸 거부할 수 있다는 게 두 번째였다.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신대철이 '아름다운 강산'이 '저들'의 입으로 불려지는 걸 극도로 꺼렸던던 까닭을 알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알려진 것처럼, '아름다운 강산'은 신대철의 아버지, 록 음악의 대부 신중현이 만든 곡이다. 신대철은 아버지의 회고(『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를 인용하며, '아름다운 강산'은 '각하(박정희)에 대한 찬가를 만들라'는 청와대와 공화당의 요구를 거절한 후 바로 쓴 곡이라고 전했다. "만약 만들지 않으면 다친다"는 협박에도 신중현은 "그런 노래를 만들 수 없다"고 거절했고, 결국 신중현의 노래들은 유신시대 내내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그런 시절이었다. 되지도 않는 이유를 갖다붙여 멀쩡한 노래를 '금지곡'으로 만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노래가 참담한 시절을 재현하고자 애썼던, 그 각하의 딸을 위해 불려진다니, 신대철의 분노가 충분히 이해된다.


'금지곡'을 지정해 진실을 좇는 목소리를 차단하려 했던 1970년대와 문화예술인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탄압하는 2010년대는 과연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촛불'에 의해 '탄핵'이라는 심판을 받고 업무가 정지된 그가 여전히 '권좌'에 올라 있었다면, 시대착오적 발상을 하는 몰락한 정권이 여전히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면 분명 이렇게 외쳤을 것만 같다. "힙합을 금지하라!"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지만, 시대를 역행하는 낡고 병든 그들의 속성은 머리에 핏대를 세우며 그리 소리질렀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노래는, 목소리는,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닌 것을.



MBC <무한도전>은 도끼, 딘딘, 지코, 송민호, 비와이, 개코 등 가장 핫한 힙합 가수들과 함께 '역사 알리기'에 나섰다. 10대부터 2030 세대에 걸쳐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인 '힙합'을 통해 젊은 세대들과 함께 우리 역사를 공유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한편, JTBC <힙합의 민족2>에선 시국을 비판하는 가사를 담은 노래들이 연달아 불려졌다. 지난 27일 방송에서는 '아듀 2016'이라는 주제로 준결승전이 펼쳐졌는데, 브랜뉴뮤직 가문 피타입과 박준면, 양미라는 산이의 'Bad Year'를 편곡해 불렀고, 박준면의 "이 가사 쓰는데 7시간 걸렸어"라는 속시원한 펀치 라인은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날 방송 가운데 단연 압권은 '핫칙스' 치타와 장성환이 부른 '옐로 오션(Yellow Ocean)'이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이 노래는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었다. '탄핵 정국'에서 촛불 집회에 참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치타는 세월호를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든 까닭에 대해 "2014년 일어났던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 이 주제를 이야기하게 됐다. 기도하는 것 말고는 힘이 없었던 어른들의 미안함을 가사에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만큼 조심스러운 마음에 치타와 장성환은 미리 광화문 광장을 찾아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자신들의 생각과 마음을 전했고,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부모님은 그들을 응원했다. 



무대는 감동 그 자체였다. 세월호 참사 당시, 오보로 얼룩졌던 언론들 가운데 '진정성'을 보이며 '진실'만을 좇았던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스크린에 등장했고, 관객들은 자연스레 당시의 참담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요동칠 무렵, "그 땐 눈 감고 눈 뜰 때 숨 쉬는 것도 미안해서 난 입을 틀어막고 두 손 모아. 기도하길 반복 했어치타의 랩이 시작됐고, "밖에 누구 없어요? 벽에다 치는 아우성" 열여덞 살의 장성환은 교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무대를 지켜보던 다른 프로듀서들와 참가자들, 관객들, 시청자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방청석에 자리했던 세월호 유가족들도 오열했다. 


그 땐 눈 감고 눈 뜰 때 / 숨 쉬는 것도 미안해서 / 난 입을 틀어막고 두 손 모아 / 기도하길 반복 했어 단언코 진실도 있었지 인양해야 할 건 진실은 이제 조금씩 떠오르고 있어 규명이 빠진 진상 그들은 의지가 없고구경 하고 다 조작 오보 연기였고 그 뒤로 많은 날이 지났지만 오늘도 기억해  / 우린 촛불과 함께 / 밝혀야 할 것들이 남았기에 / 지금쯤이면 누구보다 아름다웠을 / 피지 못한 꽃들과 희망 도대체 무엇을 / 위한 일이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 아직 거기 있을 / 가엾고 죄 없는 이들과 아이들 거긴 그 사람들의 심장처럼  차갑지 않길 남은 이들의 시린 가슴이 하루라도 빨리 낫길 좋은 곳으로 가야 할 너희들을 아직 맘 편히 놓아주지 못해 미안해 잊지 않을 게요 흐르는 세월 속 잊지 않을 세월 호 우리의 빛 그들의 어둠을 이길 거야 Yellow Ribbons in the Ocean / 진실은 침몰하지 않을 거야 / Yellow Ribbons in the Ocean / Ocean Oh shine / 밖에 누구 없어요 / 벽에다 치는 아우성 / 얼마나 갑갑했어요 / 난 그 때만 생각하면 / 내 눈물이 앞을 가려 / 지금은 2016 잊지 말아야 돼 / 당시에 빅이슈 이 얘길 가져온 이유 / but 시간이 흐르면서 / 잊혀져 가는 세월 / 배워야 할 시기에 / 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했냐고 / 대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 그 시간 동안 / 알 수 없어 바다 보다 / 더 차가운 그들의 맘 / 선배여야만 했던 아이들은 / 여전히 18살 친구로 머물러/ 수많은 사망자 실종자 / 학생뿐 아닌 이들 / 자랑스러운 영웅들까지도 / 거기선 편안하길 바래요 / 아직 봄이 많이 춥네 그때 일처럼 / 거긴 어때요 나의 봄이 아직 시린 이유 / 떨어지는 꽃잎이 너무나 슬픈 이유 / 기우는 배 주위에 파도처럼 / 시간이 흘러가도 잊지마 잊지마 / 눈물에 젖은 꽃잎 우리의 봄 / 반성 없는 그들 미안함은 우리의 몫 / 그 날 이후 코앞까지 드리운 / 시작만 있지 끝이 안 보이는 그리움 / Remember 4. 16 / Remember 4. 16 / 눈물이 차올라 내 가슴 속에 새겨진 / 2014년 4월 16일



분명했다. 내상(內傷)은 생각보다 깊었다. 여전히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었다. 인양해야 할 '진실'이 여전히 바닷속에 갇혀 있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지도 모른다. 진상이 규명되는 그 날까지, 모든 것이 명백히 밝혀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저희 노래의 제일 중요한 핵심은 '잊지 말자'지 '우리 슬퍼하자'가 아니"라는 치타의 말처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 불편해서 '기억'을 외면해선 안 된다. 그것만이 상처입은 우리들의 가슴을 치유하고, 무너져버린 우리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마디 보태자면, 최근 '힙합'이라는 장르의 음악이 보여주는 변화가 놀랍고 반갑다. '그들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비주류의 음악이 어느새 주류의 위치에 올라섰다. 음원 시장뿐만 아니라 방송에서도 힙합의 강세는 두드러진다. 하지만 저항과 분노에서 출발했던 힙합이 상업주의에 물들고, '겉멋'으로 전락한 모양새가 마뜩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결국 '힙합'도 '음악'의 일부이고, '음악'은 곧 '삶'의 한 부분임을. 그리고 그 '음악'은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핫칙스의 무대는 힙합이라는 음악의 힘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 무대였고, 장르를 떠나 음악이라는 예술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줄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줬다. 물론 '저들'은 두려웠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금지곡', '블랙리스트'라는 못난 명단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손을 벌벌 떨며, "젊은이들을 현혹하는 힙합을 금지하라!"고 핏대를 세울지도 모르겠다. 우스운 일이다. 겁내지 마라. 손석희 앵커의 말처럼, '블랙리스트가 오히려 정상인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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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난 돌이 정 맞는다

1. 성격이 너그럽지 못하면 대인 관계가 원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2. 너무 뛰어난 사람은 남에게 미움을 받기 쉬움을 이르는 말.


사전적 의미가 실제 사용되는 '뉘앙스'와는 다른 말들이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그와 같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모난 돌'을 별난 성격, 뾰족한 성품으로 몰고간다거나 재능과 능력의 문제로 국한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모난 돌'의 의미는 자신만의 스타일, 즉 '개성'을 갖춘 원석(原石)에 맞닿아 있다. 부딪치고 깨지는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연마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존재. 그리하여 끝내 자신을 내려치는 '정'을 향해 단단한 목소리를 내뱉고마는 존재. '모난 돌'의 진정한 의미를 새기라면 그리 대답하겠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의 김사부, 그러니까 부용주는 '모난 돌'이었다. 뛰어난 실력에 높은 도덕성까지 갖추고 있었던 그는 사사건건 병원 측과 부딪쳤다. 온갖 병폐로 물든 병원이라는 세상은 그에게 함께 타락(墮落)할 것을 권유했고, 자본주의와 세속주의에 찌든 병원이라는 세상은 그에게 굴종(屈從)을 요구했다. 도윤완(최진호)과 신현정(김혜은)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이라는 '정'은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부용주라는 '모난 돌'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부용주는 깎고 깎여 지금의 김사부가 됐다. 


그처럼 지난한 과정을 거쳤던 김사부에게 '모난 돌'을 찾아내는 안목이 생겼다고 한들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마치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줬을 테고, 그와 같은 감각은 본능적인 것이라 할 만하다. 김사부가 윤서정(서현진)과 강동주(유연석)을 거둔 까닭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자신의 정적(政敵)이라 할 수 있는 도윤완의 아들인 도인범(양세종)을 굳이 돌담 병원에 두며 가르치려 했던 이유도 그의 존재가 '모난 돌'이라는 것을 꿰뚫어봤기 때문이었다.



김사부는 도종완으로부터 은밀한 지시를 받은 채 돌담 병원에 머물렀던 도인범이 끝내 '진실'을 말하지 않자, "진심이란 걸 말할 줄 모르는 거냐"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난 말이야. 두리뭉실한 돌보다는 모난 돌을 더 선호하는 편이야. 모가 났다는 건,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거고, 자기만의 생각이 있다는 거니까. 그런 게 세상이랑 부딪치면서 점점 자기 모양새를 찾아가는 걸 좋아하지. 그냥 뭐, 세상 두리뭉실 재미없게 말고, 엣지있게, 자기의 철학, 자기의 신념이라는 걸 담아서 자기의 모양새로 말이야."


그리고 "난 네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며 병원에서 나갈 것을 명령한다. 포기이자 단념일까? 김사부는 도인범의 손을 놓아버린 걸까. 겉으로는 그리 보일 수 있지만, 이 '자극'이야말로 김사부식 가르침이자 이끎이라 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통해 겹겹이 씌워져 있던 껍질을 깨고 나오도록 말이다. 강동주가 속물적인 출세와 성공의 유혹을 깨버리고, 자신의 진면목을 찾아낸 것처럼 도인범도 그리할 것이다. 그 바탕에 김사부라는 든든한 '모난 돌'이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참으로 든든하지 않은가. 문득 '노무현'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떠오른다.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에 대해 이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인 그리고 자연인 노무현이 걸었던 삶을 부정할 순 없다. 그야말로 우리 역사의 '모난 돌'이 아니었던가. 200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그가 남겼던 연설은 지금 읽어봐도 가슴이 뜨거워질 만큼 가히 명문이라 할 만하다. 누구보다 진보적인 정치인의 외침이자 대한민국 진정한 보수의 사자후(獅子吼)였던 그의 연설을 함께 읽어보자.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자손들까지도 멸문지화를 당하고 패가망신을 했습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 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가 남겨주셨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 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어라 말할 것인가. 여전히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바람 부는 대로 눈치 보며 살라'고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김사부처럼 "세상 두리뭉실 재미없게 말고, 엣지있게, 자기의 철학, 자기의 신념이라는 걸 담아서 자기의 모양새로 살라"고 말할 것인가. 만약 내가 속한 직장에, 또 우리가 속한 사회에 '김사부'와 같은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정'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김사부'와 같은 존재가 하늘에서 떨어지길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다. 


생각을 바꿔보자. 우리가 '김사부'와 같은 존재가 돼 새롭게 자라나는 '모난 돌'들을 품어주는 건 어떨까. 다양한 개성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고, 다른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해도 되는 세상. 자신의 모양새에 대해 고민하고 부딪치는 과정을 용납하는 넉넉한 세상. 더 나아가 불의한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우리의 역사를 이루려는 시도들이 이뤄지는 세상. 떳떳하게 정의를 말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데 우리도 힘을 보태보는 건 어떨까. 우리, '엣지있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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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하고 터졌다. '주말 + 크리스마스'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300만 명을 넘어 버렸다. 개봉 첫 날 39만 2,866명을 동원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던 <마스터>는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무려 182만 1,541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300만 고지를 거뜬히 넘었다. 누적 관객 수는 300만 2,269명.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특수를 제대로 누렸다. 별다른 경쟁작이 없는 상황이라 이런 추세라면 2017년 첫 1,000만 영화의 자리를 노려봄직하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꿈의 캐스팅에 엄지원, 오달수, 진경까지 특급 배우들이 참여한 <마스터>는 '진수성찬'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이 배우들을 데리고 못하면 내가 정말 못한 것"이라는 조의석 감독의 말처럼 '실패'를 예상하기 힘든 라인업이다. 관건은 '입소문'이다. '런닝타임이 너무 길다', '지루하다'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어 앞으로의 흥행 전선이 어떻게 형성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연말 + 연초'라는 또 하나의 특수가 기다리고 있어 <마스터> 입장에선 미소를 살짝 머금어도 될 것 같다.



1. <마스터>는 쉽다. 


"조희팔을 모티브로 한 것은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커서 그랬어요. 진현필을 필두로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부조리를 모두 진현필에 담아보려고 그랬죠."


조의석 감독은 <마스터>가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사기 사건인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혔다. 조희팔이 누구인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0여 개의 피라미드(다단계) 업체를 통해 투자자 약 3만여 명으로부터 무려 4조 원을 가로 챈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표현조차 너무 낭만적이라 죄송하다)이다. 사기 행각이 들통나고, 검찰이 기소를 하기 직전 조희팔은 중국으로 밀항에 성공한다. 신분을 숨긴 채 중국에서 숨어 살아가던 조희팔을 수사하던 경찰은 2012년 5월 난데없이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발표한다. 


"조 씨가 지난해(2011년) 12월 중국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으며, 같은 달 국내로 유골이 화장되어 이송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정말 조희팔은 사망했는가? 경찰이 '조희팔은 죽었다'며 제시한 증거는 응급진료기록부, 사망진단서, 화장증명서, 장례식 동영상 등이었다. 하지만 사망진단서에 공안의 직인이 없었고, 화장증명서에는 조희팔이 사망한 날의 일주일 전 날짜 도장이 찍혀 있는 등 의심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았다. 결정적으로 조희팔의 유골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조사를 의뢰했지만, '감식 불가'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조희팔의 위장 죽음에 대한 의혹은 커져만 갔다. 결국 경찰은 "사망했다고 판단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물러서야만 했다. 



조의석 감독이 '조희팔 사건'을 끄집어낸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매력적인 소재'였기 때문이다. '사이즈'가 대충 나오지 않는가. 이건 1,000만 영화의 '사이즈'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카드'까지 손에 거머쥔 조 감독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부터 기조는 이랬을 것이다. '쉽게 가자, 쉽게' 그래서 <마스터>의 구도는 명확하다. 사기꾼 진현필이라는 '악'이 있고, 그를 잡아들이려는 경찰 김재명(강동원)이라는 '선'이 맞선다. 그 사이를 줄타기하며 오가는 박장군(김우빈)은 '정의'라는 이름에 감복해 '새사람'이 된다.


'오락 영화'이자 '1000만 영화'라는 쉬운 길을 선택한 <마스터>는 '조희팔 사건'이 담고 있는 문제(천민자본주의나 정경유착 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지적으로 뛰어난 인간들, 그것이 사기꾼이든 경찰(영화 속에서 김재명은 진현필을 속일 만큼 명석한 두뇌를 자랑한다)이든 간에, 그들 간의 '전쟁'으로 몰아간다. 여기에 조희팔에게 돈을 갖다 바친 사람들, 그 평범한 이들은 '욕망'의 노예가 된 '바보'에 불과하다. 똑똑한 사람들은 그 바보들을 등쳐먹고, 어쩌면 그들을 대신해서 '정의'를 외친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2. <마스터>는 헷갈린다.


<마스터>의 런닝타임은 143분이다. 제법 길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런닝타임이 너무 길다'고 말한다. 사실 영화가 길다는 건 그 자체로 흠이 아니다. <곡성>만 156분이나 되고, <타이타닉>은 195분이다. 문제는 여기에 한마디가 덧붙여진다는 것이다. 바로 '지루하다'는 혹평이다. 이건 치명적이다. 그것도 범죄, 액션 영화가 지루하다니! '조희팔 사건'이라는 영화적으로 가장 구미가 당기는 소재에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재료'까지 갖춘 <마스터>가 지루한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은 분명 <마스터>의 삼각축이다. 영화는 초반의 긴 시간을 인위적으로 배분해 세 인물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그건 '설명'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보여주기'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단조로운 캐릭터가 입체감마저 잃어버렸다. '정의'를 부르짖은 김재명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라 매력적이지 않다. 강동원의 비주얼이 빛을 발하지만,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눈길은 절대 악이라고 할 수 있는 진현필에게로 자꾸만 쏠린다. 


<베테랑>에서 유아인을 통해 증명된 것처럼, 악역이 살아야 영화 전체가 살기 마련이다. 이병헌은 발군의 연기를 통해 진현필을 묘사한다. 하나의 감정만을 얼굴에 드러내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이병헌쯤 되는 배우는 다양한 감정들을 얼굴에 녹여낸다. 그의 연기를 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문제는 <마스터>가 원하는 건, '조희팔=사기꾼'이라는 공식일 뿐 관객들이 그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을 차단한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이병헌의 연기는 뭔가 '소비'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병헌의 진현필은 지나치게 매력적이고, 영화는 관객들이 진현필에 감정이입을 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그는 사기꾼 조희팔의 모방이 아닌가. 그는 나쁜 놈이고,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관객들이 기댈 곳은 박장군뿐이다. 생존을 위해 진현필과 김재명 양쪽을 '박쥐'처럼 오가는 박장군은 그나마 가장 '친근한' 캐릭터다. 김우빈은 다양한 표정과 과장된 제스처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물하지만, 판에 박힌 스토리 라인과 결말을 구제하기엔 역부족이다. 


관객들의 헷갈림은 바로 애매한 삼각축이 만들어 낸 부조화에서 비롯되고, 관객들이 느끼는 지루함 역시 여기에 책임이 있다. 밋밋한 인물 소개 따위는 과감히 잘라버리고, 차라리 후반부에 펼쳐지는 진현필과 김재명의 진검승부에 좀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삼각축에 대한 인위적 배분을 포기하고, 하나의 축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지루하다'는 평은 듣지 않게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마스터>는 한국영화의 기술적인 완성도가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그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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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無)로 돌아가지 않으면 은탁이가 죽어."

"그러니까 죽고 싶어서 나보고 신부가 돼서 그 검을 빼 달란 얘기였다고요?"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가 자신들의 운명을 알아챘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죽어야만 하는 도깨비와 존재의 이유가 사랑하는 이를 죽여 무(無)로 되돌리는 것인 도깨비 신부. 이토록 비극적인 관계가 또 있을까. 가까스로 사랑을 깨달은 그들의 운명이 참으로 처연하다. 물론 '정답'은 하나다. 도깨비 신부가 도깨비의 가슴팍에 꽂힌 검을 뽑는 것. 운명을 따르는 것. 하지만 그 답은 모두에게 슬프다. 그래서 '사랑'은 또 다른 해답을 원한다. 슬퍼도 좋으니 하루라도 더 함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운명을 거스르라고 말이다. 아니, 바꿔 버리라고. 


'완벽한 상대'를 만나면 '질투'라든지 '시기심' 같은 얄팍한 감정을 넘어 '부러움'마저도 우스워진다. 그저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tvN <도깨비>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다. 한 편의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서 몇 박자가 갖춰져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도깨비>는 그 설명에 따라오는 모든 박자를 다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탄탄하게 뿌리내린 '이야기'는 캐릭터가 뛰어놀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된다. 거기에 김은숙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캐릭터들의 향연은 두손두발을 다 들게 만든다. 


공유는 김은숙표 대사들을 그 누구보다 탁월하게 구사하고, 김고은과 찬란한 케미를 완성한다. 김은숙 작가가 무려 5년을 기다렸던 이유를 시청자들도 납득했을 것이다. 또, '서브 플롯'을 담당하는 이동욱과 유인나 역시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이처럼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는 <도깨비>의 또 다른 '힘'이다. 대본, 연출 뭐 하나 빠질 게 없다. 거기에 찬열&펀치, Lasse Lindh, 크러쉬 에디킴, 샘킴 등이 합류한 OST는 드라마의 감수성을 배가시킨다. 엄청난 몰입도를 자랑하는 <도깨비>에 '역대급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이 '몰입'을 자꾸만 방해하는 요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완벽함을 갉아먹는 그 요소의 이름은 간접 광고, 바로 'PPL(Product PLacement)'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그 'PPL'의 진짜 이름은 '넘쳐버린 자신감'이 아닐까. SBS <파리의 연인>, SBS <시크릿 가든>, SBS <신사의 품격>, SBS <상속자들>, KBS2 <태양의 후예>에 이어 <도깨비>까지 김은숙은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며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실패가 없었다. 그의 대사는 어김없이 유행어가 됐고, 그의 캐릭터는 매번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도깨비>로 거둔 또 한번의 성공은 그의 자신감을 과도할 만치 높여버린 건 아닐까. 그가 대본 속에서 구사하는 '간접 광고'들은 '직접 광고'라고 불러야 할 만큼 노골적이다. 게다가 '양'도 지나치게 많다. 도깨비를 모시는 유신우(김성겸)을 공유가 모델로 있는 가구업체의 회장으로 설정하고, '명함'을 의도적으로 노출하거나 공유가 살고 있는 집의 가구를 그 업체의 것으로 깔아놓은 건 속아주는 셈 치자. 직업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유인나를 치킨 가게 사장으로 설정한 것도 웃어넘기기로 하자. 



하지만 드라마의 전개와는 무관한 장면들에서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건강 음료, 카페, 치킨, 인스턴트 커피, 화장품 등의 PPL는 과하다. 김고은이 공유에게 "집에만 계시는 거 괜찮아요? 고려시대 때 나랏일 한 게 다잖아요"고 묻자 "나도 직업 있었거든"이라 발끈하며 건강 음료 판매 사원, 화장품 가게 판매 사원, 가구 판매 사원 등 자신의 직업을 나열하는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이동욱이 치킨을 사와 공유에게 들이미는 장면은 짜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쯤되면 드라마 속에 PPL이 등장하는 것인지, PPL 속에 드라마가 껴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사실상 <도깨비>는 공유와 김고은의 슬픈 운명이 그려지는 '드라마' 반과 온갖 PPL로 가득찬 '시트콤' 반으로 구성돼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미 시청자들은 PPL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도깨비>는 판타지 로맨스라는 장르의 특성상 높은 제작비가 필요했을 게다. 따라서 간접 광고 자체를 문제 삼진 않는다. 다만, 자연스럽게 녹아들게끔, 그래서 불편함이 들지 않게끔만 만들어 달란 것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다. <도깨비>의 경우에는 이미 60초 광고를 넣고 있는데다, PPL마저 과도하게 삽입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언제나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다. 헛웃음을 유발하는 PPL 퍼레이드를 이제 그만 끝내고, 시청자들이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의 슬픈 운명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뭘 해도 돼!'라는 김은숙 작가의 '넘치는' 자신감이 부디 이 역대급 드라마를 망치지 않기를 바란다.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부디 다음 회 방송에선 '적절한' PPL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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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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