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유독 춥다. '춥다'는 말로 그 차가움을 모두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의 매서운 한기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벌어진 사달이라고 한다. 북극의 차가운 공기를 가두는 역할을 하던 제트기류가 약해져 그 한기가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MBC <무한도전>의 유재석, 정준하, 조세호는 '이한치한'으로 추위와 맞서싸웠지만, 방송인도 아닌 우리가 그리 할 필요까진 없으리라. 


이럴 때 이스탄불을 여행했던 기억이 조금은 도움이 된다. 한여름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터키의 9월 햇볕은 엄청나게 강렬했다. 정수리로 쏟아지는 그 뜨거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했고, 그 따가움은 살갗이 익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지하궁전 예레바탄 사라이를 피난처로 삼아 더위로부터 벗어나곤 했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그 햇볕이 이제는 그리워지는 걸 보면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 



베벡(Bebek)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곳은 흔히 '유럽풍의 낭만이 숨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풍의 낭만이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즐비하고 여유가 넘치는 공간인 건 분명하다. 최근에 들어 유명해진 탓에 사람들이 제법 많이 찾게 됐지만, 주요 관광지만큼의 북적임은 아니다. 그래서 여행의 복잡함에서 벗어나 조금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원한다면 베벡으로 가길 추천한다. 


혹시 베벡이라는 지명을 듣고서 젖병 브랜드의 하나인 ‘베벡’을 떠올린 사람이(흔치는 않겠지만)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유아용품 전문기업 씨케이디커머스가 런칭한 브랜드인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냐 하면 터키어로 베벡(bebek)이 '아기, 유아, 젖먹이 아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여담은 이쯤에서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유럽의 낭만이 살아 숨쉬는 베벡으로 가보도록 하자. 



베벡은 이스탄불 중심지로부터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가는 방법이 어렵진 않지만(오히려 간단하다), 시간이 제법 소요된다. 돌마바흐체 궁전 부근에서 루멜리 히사르 방향으로 버스(40, 40T, 42T)를 타고 약 40~45분 정도를 가야 한다. 차가 많은 저녁 시간대라면 1시간 이상을 각오하는 게 좋다. 오르타쾨이와 보스포루스 대교를 지나 한참을 더 이동해야 한다. 


이동 시간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오른쪽으로 펼쳐져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뻥 뚫린 풍경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또, 바다를 가르는 요트와 유람선 등이 가는 길을 심심하지 않게 한다. 버스에서 내리면 길 양쪽으로 쭉 늘어선 레스토랑과 카페들을 볼 수 있는데,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베벡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젖어들게 된다. '유럽풍의 낭만'이 무엇인지 알 듯하다. 



해안가로 나가면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에미뇌뉘에서 워낙 많이 봐왔던 광경이라 더 이상 놀랍지는 않았다. 해안 인근에 공원도 있어 쉬어갈 수도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베벡의 백미(白眉)는 '스타벅스'다. 어딜 가나 있는 스타벅스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베벡의 스타벅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어떻길래 그런 특급 별명을 가지고 됐을까. 궁금증이 생겨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베벡을 방문한 여러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실제로 방문해보니 외관이라든지 내부, 그러니까 건물 자체가 특출나게 아름다웠던 건 아니었다. 어찌보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긴 어려울 거라 생각됐다. 솔직히 처음에는 살짝 실망했다. 


베벡의 스타벅스가 이름을 드날리게 된 건, 아마도 카페 안에서 펼쳐지는 뷰(view)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황홀할 정도의 장관을 연출했다. 건물 밖에서 내뱉지 못했던 탄성이 그제서야 터져 나왔다. '이래서 베벡의 스타벅스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거구나!' 1층의 창가와 아래쪽의 테라스는 자리가 쉽게 나지 않지만, 한번쯤 작심하고 노려볼(?) 만하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순식간에 어둠이 몰려왔다. 저녁이 되면 베벡에는 사람들이 더욱 많이 몰려든다. 식당에는 음식과 술을 즐기는 손님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다. 거리가 제법 시끌벅적해지고, 분위기도 한층 더 뜨거워진다. 낮과 밤의 차이가 확연했다. 저 분위기에 함께 취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역시 혼자서는 좀 어려웠다. 


타지에서 맞는 밤은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어쩌겠는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올 수밖에. 이스탄불의 교통체증을 몸소 체험하면서 말이다. 여전히 혼자 가는 여행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베벡은 친구나 연인과 함께 들린다면 더욱 좋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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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구시가지가 <인디애나 존스>의 느낌이라면, 신시가지는 <미션 임파서블>이랄까? 


물론 과장된 비유지만, 그만큼 두 곳의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구(舊)시가지 여행은 사실상 유적 탐사에 가깝다. 고대와 중세 시대를 탐방하는 역사학자가 된 기분이다. 반면, 신(新)시가지는 그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현대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톱카프 궁전을 대체하기 위해 지어진 돌마바흐체 궁전은 당연히 신식이고 훨씬 웅장하다. 이스탄불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갈라타 탑조차도 현대적인 구조물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여행의 성격도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 이스탄불 현대 미술관 내의 카페에서 바라본 보스포루스 해협 -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 책자와 구글 지도를 보면서 신시가지를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끌리는 곳'을 체크해 봤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군사 건축물 '루멜리 히사르'와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베벡(Bebek)'은 빼놓을 수 없었다. 유럽풍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베벡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가 있다. 어차피 두 곳은 근거리에 있어 한꺼번에 다녀올 수 있을 듯 싶었다. (루멜리 히사르는 입구까지 갔지만, 일정과 체력적인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밖에도 이스탄불 현대 미술관(Istanbul Museum of Modern Art), 문화복합공간 솔트 갈라타(SALT Galata), 페라 박물관(PERA museum) 등이 눈에 띠었다. 이 세 곳은 (내가 구입한) 여행 책자엔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히 패키지로는 갈 수 없는 장소였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일정을 하루 통째로 비워두고, 나만의 '예술의 날'로 만들면 좋겠다 싶었다. 제법 근사한 하루가 될 거란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마침내 그날의 아침이 밝았다. 여유 있게 둘러보려면 바삐 움직여야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이스탄불 현대 미술관으로 정했다. 숙소 근처인 카바타스(Kabatas) 역에서 T1을 타고 톱하네(Tophane) 역까지 간 후 도보로 이동했다. 가지고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아서 구글 지도와 표지판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해야 했는데,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공장을 개조한 듯한 외관은 전혀 미술관스럽지 않아서 미술관을 찾는데 조금 헤맸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외관이야말로 현대 미술관이라는 이름과 개념에 적확히 부합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 미술관으로 가는 길답게(?) 중간에 작은 공원에서 설치 예술가 한 명을 만날 수 있었다. 판지로 집을 지어놓고 호기롭게 'Cardboard museum'이라는 이름을 써놓았다. 관심을 보였더니 굉장히 반가워하며 간단한 설명을 곁들였다. "내부를 볼 수 있냐?"고 묻자 흔쾌히 안쪽을 구경하게 해줬다. 언어적 한계 때문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순 없었지만, 괴짜의 괴짜스러운 작품을 통해 현대 미술관으로 가기 전에 뭔가 독특한 경험과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미술관 외부에는 다양한 설치 예술이 전시돼 있었다. 밭을 구현해 두고 소의 쟁기질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는데, 역시 난해해서 이해가 어려웠다. 미술관 내부에는 다양한 미술 작품들이 펼쳐져 있었다. 전문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전공자가 아니라 한계가 있다. 그저 '보는 것', 그 행위 자체에 만족한다. 어쩌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곳에 가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좋아서, 라는 말이 대답이 될까. 잘 모르는 미지의 것을 접하는 순간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페라 박물관은 갈라타 탑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Meşrutiyet Cd. 에 위치해 있다. (참고로 Cd는 Caddesi의 약자로, 거리라는 뜻이다.) 이스티클랄 거리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니 그곳을 기점으로 길을 찾아가는 게 좋다.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찾아가기 쉽진 않다. 아주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므로 큰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길을 헤맬 염려도 있다. 실제로 그냥 지나쳐 버렸다가 '어? 여기 아니야?'라며 다시 돌아왔다. 그래도 신시가지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재미가 있다. 


페라 박물관 앞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1893년 건축돼 호텔(Hotel Bristol)로 사용됐던 건물이 지금은 박물관이 됐다. 『오리엔탈 특급살인사건』의 저자로 유명한 아가사 크리스티가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페라 박물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으로 이뤄져 있다. 1~2층에는 이스탄불의 과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회화, 공예품 등이 전시돼 있는데, 오리엔탈 회화를 비롯해 소아시아 지방의 저울과 저울추 등을 볼 수 있다. 3~5층은 기획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었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으로 시끌벅적였던 구시가지와는 달리 신시가지(의 갈라타 탑과 같은 유명 관관지를 제외하면)는 확실히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이스탄불 현대 박물관이나 페라 박물관에선 훨씬 더 도드라졌다. 당연히 한국인들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완벽히 낯선 곳이 주는 자유로운 느낌을 좋아하는 터라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해외 여행이 주는 해방감이라고 할까. 같은 세대의 기운을 많이 받을 수 있었고, 관광지의 느낌에서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테마를 정해 여행의 일정을 짰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나만의 '예술의 날'은 내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스탄불 현대 미술관과 페라 박물관을 들리기 전에 솔트 갈라타(SALT Galata)를 방문했었는데, 그 곳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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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미뇌뉘 선착장 -


이스탄불 여행기의 전반전이 끝났다. 지금까지 소개했던 곳들은 굳이 자유 여행이 아니더라도 '갈 수 있는 곳'이자 '가게 되는 곳'이다. 구시가지에 밀집한 주요 관광지들과 신시가지의 갈라타 탑, 돌마바흐체 궁전은 워낙 유명한 명소라서 패키지 여행의 필수 코스에 포함돼 있다. 달리 말하면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제법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직 아야이리네 박물관, 예레바탄 사라이 등 구시가지에서 소개하고 싶은 곳이 몇 군데 남아 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부터는 그 틀을 벗어나보기로 하자. 

자유 여행의 묘미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잠깐동안 주어지는, 일정한 제한이 있는 옵셥이 아니라 완전한 선택권 말이다. 주체적인 권한이랄까. 쉽게 말하면 '내 마음대로' 쯤 될 것이다. 이미 일정과 숙소, 음식 등에서 그 권한을 제법 누렸지만, 장소적인 면에서 좀더 과감한 선택을 해보고 싶었다. 나는 그 선택권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중심지로부터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을 다녀오는 데 쓰기로 했다. 그리하면 그 곳이 좀더 잘 보이고, 좀더 깊이 보인다. 이스탄불도 예외가 아니리라. 



그리하여 고른 곳이 바로 카리예 박물관(Kariye Museum)이다.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카리예 박물관은 구시가지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다. 드디어 베이스캠프를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모험심이 조금은 발현되는 듯 하다. 그때부터 여행이 좀더 생동감을 띤다. 선택을 하면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이동 수단은 무엇으로 할 건지, 돌아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일지, 인근 지역에 가볼 만한 곳이 더 있는지.. 이것이야말로 자유 여행이 주는 행복한 두통이다. 게다가 매우 중독적인 통증이다. 

카리예 박물관까지 가는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에미뇌뉘(Eminönü)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되는 간단한 이동 경로였다. 에미뇌뉘는 여행 기간 중 밤마다 들렀던 곳이라 익숙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는 골든혼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에미뇌뉘는 두 곳을 연결하고 있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길다란 다리 아래에는 케밥 가게들이 즐비했고, 해협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인파의 북적거림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 중의 한 명이 되는 일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에미뇌뉘까진 트램(T1)을 타고 세 정거장만 이동하면 되니 어려울 게 없었다. 문제는 버스를 타는 일이었다. 지도를 보고 찾는데도 제법 헤맸다. 다리 아래로 들어가 지하의 통로를 돌아다닌 끝에야 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 있었다. 37E버스에 올랐다. '터키 하면 케밥? 진짜 명물 따로 있었네'라는 글에서 소개했던 구운 밤을 사서 버스에 올랐다. 외곽 지역으로 빠지는 버스라 승객 중에 관광객은 없는 듯 보였다. 현지인들로 가득한 공간, 그런 느낌을 좋다. 마침내 그들의 한 명이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에디르네카프(Edirnekapı)에서 하차했다. 핵심 관광 지역을 벗어나자 벌써 공기가 달랐다. 왠지 모를 상쾌함이 느껴졌다. 이제부터 약 5분이면 카리예 박물관이다. 목적지가 근거리에 있는 만큼 좀더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이스탄불 거리와 사람들을 좀더 느긋하게 경험하고 싶어졌다. 일단, 슈퍼에서 콜라를 사서 마시고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골목길을 누비는 아이들이 보였다. '메르하바!'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쾌활한 웃음소리와 함께 인사가 돌아왔다. 아이들만이 줄 수 있는 그 천진난만함이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해줬다. 




카리예 박물관(Kariye Museum)
- 주소 : Dervişali Mahallesi, Kariye Cami Sk. No:8, 34087 Fatih/İstanbul, 터키
- 관람료 : 15TL(뮤지엄 패스 사용 가능)

코라 구세주 성당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카리예 박물관은 1081년 완공됐다. 건설 당시에는 동방 정교회 수도원 부속 교회였다고 한다. 14세기까지 증축과 개축이 반복됐다고 하는데, 여행을 하던 당시에도 외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발견하지 못한 채 지나칠 뻔 했다. '어라, 저긴가?' 여러 번의 의심 끝에야 그곳이 카리예 박물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어찌나 먼지가 올라오던지 건너편의 식당에서 피자를 먹는데 아주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카리예 박물관은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현관 역할을 하는 나르텍스(narthex)와 성당 내부, 보조 교회당인 파레클레시온(parecclesion)으로 구분된다. 내부에는 14세기에 제작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가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그리스도와 동정녀 마리아의 일생을 담아놓은 작품을 비롯해 예수의 12제자,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등도 묘사돼 있다. 가히 비잔틴 예술의 걸작이라 할 만 하다. 특히 신비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욱 강인한 인상을 남긴다. 




성당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예쁨을 받지 못했고, 15세기에 다른 성당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 사원으로 바뀌게 된다. 한편, 아이소피아 박물관의 모자이크들이 그랬듯, 카리예 박물관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들은 회칠로 가려지게 된다. 그러다가 1947년 미국의 비잔틴 연구소가 회칠을 벗기기 시작하면서 카리예 박물관의 수많은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그래서 군데군데 훼손된 작품들이 눈에 띠어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한참을 머무르며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를 눈에 담았다. 관람객이 많지 않아 마치 전세를 내고 박물관을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동영상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멋들어지게 찍을 수 있었다. 서늘한 공간이 주는 쾌적함도 좋았다. 밖으로 나가면 또 다시 땡볕 더위와 전쟁을 벌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식당에서 피자로 배를 채운 뒤, 다시 이스탄불의 골목길을 이리저리 누볐다. 애초의 진짜 목적은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근처의 놀이터에서 엄마와 함께 놀고 있는 터키 소녀를 만났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말(을 알아들었을지 의문이다)에 밝은 미소로 응답했다. 수줍은 손짓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덩달아 웃음이 났다. 피로가 싹 가셨다. 누군가 여행을 왜 가느냐고 묻는다면 (여러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바로 이 순간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짧지만 강렬한 교감 때문이라고 말이다. 낯선 여행자를 향해 건네는 아이들의 경계심 없는 밝은 미소 때문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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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 


지난 추석에 경복궁을 들렀다. 연휴가 길기도 했고, 무료 개장이라는 소식에 오랜만에 찾았다.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였다. 가족 단위의 방문뿐만 아니라 손을 꼭 잡은 연인들도 많았다. 또, 한복을 차려 입은 외국인도 제법 눈에 띠었다. 사람이 워낙 많아 질식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밝은 분위기가 반갑고 좋았다. 명절이라는 전통적인 기념일과 궁(宮)이라는 전통적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은 것이리라. 


tvN <알쓸신잡>에서 유희열은 어린 시절 경회루에서 스케이트를 타곤 했다는 추억담을 꺼내 놨다. 지금이야 문화재 보호 때문에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쉽게 궁을 '구경'할 수 있게 됐다. 입장료를 내고, 제한된 선을 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애시당초 그곳은 백성에겐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궁이란 임금을 비롯한 왕족이 거처하는 집을 뜻하니 말이다.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일까. 사람들은 그리도 궁을 찾는다. 


- 돌마바흐체 궁전 -


경복궁만이 아니다. 해외 여행을 가게 되면 꼭 그 나라의 궁을 찾게 된다. 프라하에 가면 프라하 성은 필수 코스이고, 파리를 가면 인근의 베르사유 궁전을 들리지 않을 수 없다. 화려함의 극치를 뽐내는 그곳은 당연히 아름답다. 찬란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쩍 벌어진 입이 언제부터 그리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슬프다. 백성들이 발 붙일 수 없었던 공간, 하지만 백성들에 의해 지어졌던 공간. 백성의 피와 땀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세운 것일까. 그런 생각에 자연스레 빠져든다. 


이스탄불을 여행할 때도 궁을 빼놓을 수 없다. 톱카프 궁전과 돌마바흐체 궁전, 유명한 두 곳의 궁을 차례로 '구경'하면서 역시 만감이 교차했었다. 이국적인 건축의 화려함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공간을 창조했을 터키의 백성들이 떠올랐다. 결국 무너뜨려야 했을 공간이 지금에 와서 관광 상품이 돼 알뜰히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었다. 실제로 이곳의 내밀한 공간들은 가이드 투어로만 둘러볼 수 있을 만큼 비밀스럽게 보존되고 있다.


- 아흐메트 3세의 샘(위), 톱카프 궁전 입구(아래) -


- 톱카프 궁전 내부의 모습 -




1. 톱카프 궁전(Topkapı Palace)


톱카프 궁전은 구시가지에 있다. 앞서 살펴봤던 아야소피아 박물관을 끼고 왼편으로 돌아 쭉 직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흐메트 3세의 샘(이라는 이름의 정자풍의 건물)과 거대한 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문을 통과하면 왼편으로 아야이레네 박물관과 고고학 박물관이 보인다.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제1정원의 안락함에 취하기 십상인데,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 중간 지점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다. 매표소 앞쪽에선 말을 타고 달리는 기마병의 모습도 볼 수 있다. 


1467년에 완공된 톱카프 궁전은 돌마바흐체 궁전이 완공된 1856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안쪽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푸른 빛의 바다가 펼쳐져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보스포루스 해와 마르마라 해가 만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데, 그 풍경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물론 단순히 뷰포인트를 위한 입지 선정은 아니었다. 방어를 위해서도 톱카프 궁전은 중요한 위치에 세워졌다. 톱카프가 터키어로 '대포의 문'이라는 뜻인 걸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톱카프 궁전은 고고학 박물관이 있는 제1정원과 도자기 전시실, 주방, 하렘으로 구성된 제2정원과 알현실과 보물관이 있는 제3정원, 바그다드 쾨시퀴(정자) 등 3개의 쾨시퀴가 있는 제4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궁전은 웅장할 것이라는 기존의 선입견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좋았다. 벤치에 앉아 마르마라 해를 바라보는 그 평온한 시간들이 이스탄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행복했다. 



2.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ce Palace)


술탄 압뒬메지트 1세는 톱카프 궁전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새로운 궁전을 세우도록 명령한다. 1843년부터 1856년까지 공사가 이어졌고, 그리하여 돌마바흐체 궁전이 탄생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이 궁전은 사이즈가 톱카프 궁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홀이 43개, 방이 285개, 발코니가 6개, 목욕탕이 6개나 된다고 한다. 톱카프 궁전을 다녀온 뒤라 그런지, 돌마바흐체 궁전의 규모는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술탄 압뒬메지트 1세가 궁전을 옮기고 난 후 얼마나 만족했을지 알 듯 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외곽에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찾아가기 까다로울 수 있다. 트램을 타고 이동한다면 카바타쉬 역(종점)에서 내려 5~10분 남짓 걸으면 되고, 탁심 광장 부근에서 이동한다면 40번(혹은 40T, 42T) 버스를 타면 된다. 필자의 경우에는 돌마바흐체 궁전 근처에 숙소를 잡아둔 터라 도보 이동이 가능해 불편이 없었다. 오전에 돌마바흐체 궁전을 둘러본 후, 오후에 루멜리 히사르(Rumeli Hisarı)나 베벡(Bebek)로 옮겨가는 걸 추천하는데, 하루가 꼬박 필요한 일정이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앞서도 말했던 것처럼 돌마바흐체 궁전은 워낙 크기가 커서 구석구석 둘러보려면 엄청난 체력을 요한다. 가뜩이나 여행에 지쳐있던 터라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안쪽에 위치한 미술관에서는 그림을 보다가 잠시 의자에 기대 잠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체력을 보충해가며 고군분투해야 했던 곳이다. 돌마바흐체 궁전 관람은 가이드 투어로만 가능한데, 한국어 지원이 되지 않아 원활한 이해가 어려워 아쉬웠다. 하지만 베르사유 궁전을 참고한 그 호화로움은 눈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화려함을 좇는 건 인간의 본능적 욕망일까. 아니면 권력의 속성일까. 나도 인간인지라 그 건축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눈이 현혹되고, 입을 잔뜩 벌린 채 감탄한다. 그러라고 만들어 놓은 곳이니까. 그렇게 화려함에 취해 있는 동안 잠깐이나마 정신을 차려 그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이 궁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는지 말이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권력'이라는 달콤한 알맹이를 취하고, '공간'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박물관(博物館) : 오래된 유물이나 문화적, 학술적 의의가 깊은 자료를 수집하여 보관하고 전시하는 곳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대한민국을 찾은 핀란드 친구들은 첫 번째 여행지로 국립중앙박물관을 선택했다. 이유를 묻자 빌레는 "우리가 어떤 곳에 왔는지 알아보는 건 당연하지."라고 대답했다. 솔직히 놀랐다. ‘여행=관광’이라는 등식이 일반화된 요즘, 외국인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박물관을, 그것도 첫 여행지로 골랐다는 게 신선했다. 이 땅에 볼거리, 놀거리가 좀 많은가. 제한된 기간 내에 알찬 여행을 계획해야 하는 입장에서 '박물관'을 여행 코스에 넣는 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타이완의 국립고궁박물관처럼 관광에도 특화된 공간도 아니지 않은가. 국립중앙박물관을 진지하고 세심히 둘러본 핀란드 3인방은 과거 핀란드가 러시아에 지배를 당했었다며,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참으로 기특하고, 예뻐 보였다. 단지, 우리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려고 노력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이 가산점이 되긴 했지만, 여행이라는 행위의 의미와 그것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생각할 때 핀란드 3인방이 보여준 태도는 반가웠다. 


민망하지만, 사실 나도 해외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박물관을 찾곤 한다. '역사를 샅샅히 훑겠어.'와 같은 엄청난 일념이 있어서 그리 하는 건 아니다. 박물관을 한번 찾는다고 해서 그 나라의 역사를 완전히 이해한다거나 해박해질 수 없다. 시간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행을 떠났을 때 그곳의 박물관을 찾는 이유는 일종의 '존중' 때문이다. 또, '호기심' 때문이다. 빌레의 말처럼 "우리가 어떤 곳에 왔는지 알아보는 건 당연하"니까. 


또, 한 가지 실용적인 이유가 더 있다. 박물관만큼 쾌적하고, 깨끗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쉬어가기(재정비라는 말로 표현해도 좋다)에 그만한 곳이 또 없다. 이스탄불 구 시가지에서 들렀던 박물관(아야소피아 박물관의 경우는 비록 명칭은 박물관이지만, 통상적인 의미의 박물관은 아니므로 제외했다.)은 총 3곳이었다. 터키-이슬람 미술 박물관, 모자이크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순이었다.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자.



1. 터키-이슬람 미술 박물관(Turkish and Islamic Arts Museum)

이슬람 미술의 정수(精髓)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1984년 유네스코 유럽 위원회에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이슬람 미술과 관련한 모든 종류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 기간이 8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고, 코란의 사본, 도기, 그림, 글씨, 카펫, 금속 세공품, 가구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평소 이슬람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박물관이다. 나처럼 문외한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한번쯤 들러봄직 하다. '느낌'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위치는 블루 모스크 인근이라 찾기 어렵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숙소와 2~3 블록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방문하기 수월했다. 원래 이 건물은 슐레이만 1세(Süleyman)의 사위이자 수상이었던 이브라힘 파샤(Ibrahim Pasa)의 궁전(혹은 대저택)인데, 미술관으로 활용되는 공간은 전체의 일부분이라고 한다. 1524년에 지어졌다니 건물의 역사만 해도 상당하다. 입장료는 20TL인데, 뮤지엄 패스(MUSEUM PASS, 85TL)를 구입했다면 입장이 가능하다. 



2. 모자이크 박물관(Great Palace Mosaic Museum)

모자이크 박물관을 찾으려면 먼저 아라스타 바자르(Arasta Bazaar)를 찾아야 한다. 바자르는 시장(市場)이라고 보면 된다.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가 압도적인 크기의 대형 시장이라면, 아라스타 바자르는 아기자기한 소형 시장이다. 딱히 쇼핑을 할 필요까진 없지만, 가는 길에 예쁜 카페도 있어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다. 아리스타 바자르 안으로 들어가면 모자이크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안내돼 있다. 나름대로 미로를 찾는 기분이라 재미도 있다. 


비잔틴 제국의 궁전이 있던 곳답게 모자이크 박물관에는 초기 비잔틴 시대의 발전했던 모자이크들이 잘 보존돼 있다. 상당 부분 훼손돼 있지만, 보존 상태는 훌륭한 것이라 한다. 모자이크의 내용은 종교적인 것이 대부분일 거라는 예측과 달리 생활양식, 사냥 등 인간의 삶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색깔이라든지 그 표현 양식이 매우 생생해 보는 내내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터키-이슬람 미술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라 여유있게 감상할 수 있다. 입장료는 10TL이고, 역시 뮤지엄 패스 사용 가능하다.




3. 고고학 박물관(Istanbul Archaeology Museums)


톱카프 궁전(Topkapı Palace)으로 향하는 문을 통과하고, 이야이레네(Hagia Irene)를 지나 평화로운 산책길을 걷다보면 고고학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고고학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야말로 큰 나무들이 만드는 그늘과 함께 새소리, 바람소리 등이 어우러진 최고의 힐링 포인트이기도 하다. 고고학 박물관은 고고학 박물관, 에나멜 키오스크 박물관, 고대 아시아 박물관 으로 구성돼 있다. 1881년 터키 고고학의 거장인 오스만 함디 베이(Osman Hamdi Bey)가 관장이 되면서 건물을 세우고 박물관으로 발전됐다고 한다.


세계 5대 고고학 박물관으로 알려진 곳이라 앞선 두 곳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또, 백만 점이 넘는 예술품들이 소장돼 있어 앞선 두 박물관보다 관람 시간이 훨씬 더 소요되는 편이다. 물론 조각, 석상, 석관 등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면 그리 오래 걸릴 것도 없다. 주로 고대 아시아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편이다. 일반 관광객들은 톱카프 궁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바쁠 테니 말이다. 입장료는 20TL이고, 역시 뮤지엄 패스로 입장이 가능하다.


시간이 부족한 여행객이라면 박물관을 둘러볼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구시가지만 해도 블루 모스크, 아야소피아 박물관, 톱카프 궁전 등 가봐야 할 곳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곳들도 놓쳐선 안 되겠지만,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혹은 중간 즈음에 그 곳의 박물관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역사를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여행지에 대한 이해(와 애정)가 훨씬 더 높아질 테니 말이다. 우리가 어떤 곳에 왔는지 알아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이스탄불 여행의 핵심은 아무래도 구시가지, 술탄 아흐메트 지역이다. 이 구역은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됐을 만큼 찬란하고 아름다운 문화 유적지이자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 숨쉬는 삶의 현장이다. 9월의 술탄 아흐메트 지역은 너무도 뜨거웠다. 쉼 없이 내려쬐는 햇볕과 수많은 여행객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한데 엉겨 화끈하게 타올랐다. 그 와중에도 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타오르는 신앙심은 이스탄불을 또 한번 가열했다. 아찔할 정도로 열렬한 도시, 이스탄불은 그런 곳이었다.



술탄 아흐메트 역(트램)을 내려오면 거대한 문화 유적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술탄 아흐메드 공원을 기점으로 왼쪽에는 블루 모스크(Blue Mosque)가 위용을 자랑하고, 오른쪽에는 아야소피아 박물관(Ayasofya Camii Müzesi)이 고귀한 자태를 뽐낸다. 두 건물은 넋을 잃고 쳐다볼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답고 훌륭해서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 엄청나게 고민했다. 블루 모스크와 아야소피아 박물관 중 어느 곳을 먼저 방문할 것인가. 선택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동선(動線)'이라는 반갑고 명쾌한 해답이 없었다면 한참동안 헤맸을지도 모르겠다. 블루 모스크가 왼쪽 끝에 위치해 있으므로 그곳을 먼저 들린 후, 아야소피아 박물관과 톱카프 궁전(Topkapı Palace)으로 향하는 게 합리적이라 판단됐다. 그제서야 고민을 접고 방향을 왼쪽으로 꺾어 블루 모스크로 향했다. 걸어가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탄성은 더욱 커졌다. 자연스레 입이 쩍 벌어졌다.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는 곳답게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이곳이 왜 이슬람 신자들에게 성지순례의 출발점일 수밖에 없는지 알 듯 했다. 이슬람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나조차도 1616년 완성된 그 압도적인 건축물을 마주하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으니 말이다. 직경 27.5m에 달하는 대형 돔 1개와 여러 개의 작은 돔으로 구성된 지붕 그리고 6개의 미나레(Minaret)는 위압적인 힘을 뿜어냈다. 일반적인 이슬람 사원들의 미나레가 4개인 반면, 블루 모스크의 미나레는 그보다 2개가 많은 6개라 강렬함이 더욱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블루 모스크의 미나레는 6개인 걸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다. ① 건축가가 '황금'(알툰)을 '6개'(알트)로 잘못 알아 들었다. ② 사우디아라비아 메카(Mecca)에 있는 카바 모스크의 미나레가 6개였기 때문이다  건너편에 위치한 아야소피아 박물관(동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성당으로 지어졌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맞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블루 모스크 건축을 명했던 제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가 비잔틴 제국이 세웠던 아야 소피아를 의식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외부에서 느꼈던 감동은 내부로 들어가면 더욱 짙어진다. 안쪽은 무려 21,043장의 타일과 250개가 넘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돼 있다. 푸른빛의 타일은 그곳의 이름이 블루 모스크였다는 걸 되새기게 만들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살은 화려하게 빛난다.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위세와 함께 이슬람교의 자긍심이 느껴진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신발을 벗어야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발냄새가 진동을 한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알라의 힘으로 극복할 수밖에.   


블루모스크 앞쪽의 기다란 터가 있는데, 그곳의 이름은 히포드롬(Hippodrome)이다.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Severus) 시절에는 검투 경마장 터로 쓰였고, 나중에는 마차 경기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유적의 대부분이 파괴돼 남아 있지 않고, 이집시안 오벨리스크(obelisk)만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기원전 16세기 이집트에서 가져온 디킬리타스(Dikilitas)와 콘스탄티누스 7세가 940년에 만든 오르메 수툰(Orme Sutun)이 과거의 영광을 홀로 대신하고 있다. 


아야소피아 박물관


아야소피아 박물관의 내부


블루모스크를 나와 반대편으로 쭉 걸어가면 사각형 모양의 아야소피아 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예쁘게 가꿔진 공원을 지나가다보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흐드러지게 핀 협죽도(유도화)가 눈길을 잡아끈다. 그 꽃길은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아야소피아 박물관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인데, 360년 처음 만들어졌다가 화재로 소실돼 532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483~565)가 재건축을 시작해 537년 12월 비로소 완공됐다. 


이스탄불이 그 지리적 특성 때문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것처럼, 아야소피아 박물관도 역사의 부침을 몸소 겪었다. 애초에 성당으로 지어졌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지만, 762년 서로마 제국과 가톨릭이 분리되자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으로 탈바꿈 됐다. 오스만 제국의 메메드 2세의 콘스탄티토플 점령(1453년) 이후에는 이슬람 사원이 되어야 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랄까. 성당 내의 모자이크(mosaic)들은 회칠이 덧입혀져 세상에서 지워졌다. 


1. 대리석으로 된 '천국의 문'

2. 성모 마리아(왼), 예수(중앙), 세례자 요한(오른)

3. 여황제 조에(왼), 예수(중앙), 조에의 세 번째 남편 콘스탄티누스 9세(오른)

4. 콤네노스 황제(왼), 성모 마리아와 예수(중앙), 부인 이레인, 아들 알렉시스우스(오른)


본당으로 들어가면 그 웅장함에 압도 당하게 된다. 중앙 돔은 지름이 31m, 높이가 55m에 달한다. 당시에는 내부 공사 중이라 완전한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부분적으로 가려진 그 모습만으로도 위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공사 중이라 건물의 크기가 더욱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2층은 여성들이 기도하는 곳인데, 가마가 이동할 수 있도록 통로가 계단이 아니라 비탈길로 돼 있었다. 여기까지 가마를 지고 올라와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아야소피아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2층에 있는 모자이크다. '천국의 문'을 통과하고 나면 회칠로 가려졌던 모자이크를 만날 수 있다. 앞쪽만 보고 정신없이 걷다보면 발견하지 못할수도 있는데, 문을 통과하고 오른쪽을 돌아보면 모자이크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테니 놓칠 염려는 없다. 혹시라도 가는 길에 보지 못했다면 돌아올 때 무조건 보게 되는 구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훼손이 상당히 많이 됐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기만 하다.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됐던 곳에서 예수의 흔적이라니..


블루 모스크(위)와 아야소피아 박물관(아래)


블루모스크, 아야소피아 박물관. 단지 두 곳을 둘러보는 데만도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이질적인 두 공간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구도가 참으로 흥미로웠다. '내가 더 아름답고 웅장해!'라고 기싸움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대치(對峙) 아닌 대치가 이스탄불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지 가려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열을 가리는 건 불필요했다. 그저 공원 한 가운데의 벤치에 앉아 양쪽을 한번씩 바라보며 그 팽팽한 긴장감을 맛보는 걸로 행복할 따름이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톱카프 궁전을 비롯해서 모자이크 박물관, 터키-이슬람 미술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아야이레네 박물관, 예레바탄 사라이 등 둘러봐야 할 곳이 산더미다.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진 말자. 어차피 하루만에 끝낼 수 있는 일정이 아니었다. 잠시 한숨 돌리고 이스탄불 여행을 계속 이어나가 보도록 하자.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누가 처음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터키 요리를 세계 3대 요리로 손꼽는 모양이다. 대개 중국, 프랑스와 함께 거론되곤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공신력 있는 기관의 검증을 받은 타이틀은 아니다. 어디에선 태국을 포함시키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탈리아를 넣어 그리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프랑스는 제외하는 경우가 없지만, 다른 두 나라를 고를 땐 상당히 개인적인 취향이 개입되는 듯 하다. 애시당초 '입맛'이라는 게 자의적일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 탁심 광장의 케밥 식당 -



이 글에서 터키 요리가 진짜 세계 3대 요리에 포함되는지 가려낼 생각은 없다. 물론 그럴 능력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건 입맛의 자의성을 얘기했을 때 결론이 난 듯 싶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음식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맛을 칭찬한다면 그 정도의 가치를 존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을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잡은 지리적 특성에서 기인한 역사적 특수성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은 터키의 요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으리라.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해놓고보니 뭔가 엄청난 음식들을 소개할 거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이스탄불의 맛집을 소개한다던가 감명 깊었던 별미를 언급한다든지 말이다. 애석하게도 음식(혹은 맛)에 대한 호기심이 전혀 없는데다 심지어 입맛이 까탈스럽기까지 한 필자는 애시당초 터키의 요리에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았다. 해외 여행을 가게 되면 맥도날드의 위치부터 확인하는 터라 이스탄불에도 맥도날드가 (많진 않지만)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을 뿐이었다.


아침은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으로 든든하게 채우고, 나머지 두 끼 가운데 한 끼는 맥도날드에서 해결하는 터라 고작 한 끼만 입맛에 맞는 음식으로 때우면 될 일이었다. 음식에 호기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현지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굳이 먹으려 하지 않는 편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갔을 땐 슈니첼(Schnitzel)의 맛에 빠져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이스탄불에선 그런 음식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저 몇 가지 길거리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실망스럽더라도 어쩔 수 없다.


블루모스크 입구 앞에서 옥수수를 판매하고 있는 아저씨가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이스탄불(아마도 터키 전역이 그럴텐데)을 가면 어디서나 쉽게 옥수수, 밤, 시미트(simit) 등의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시미트는 고리 모양처럼 생긴 빵인데, 깨가 잔뚝 뿌려져 있다. 가격은 1~2리라 정도로 저렴한 편이라 부담없이 사먹을 수 있다. (11월 17일 기준으로 1리라는 284원인데, 9월 여행 당시에는 320원 정도였다.) 맛은 특별할 게 없다. 밤도 마찬가지다. 구운 밤이 터키라고 다를 게 있겠는가. 가격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100그램에 10리라, 250그램에 20리라 정도다.


오히려 좀 색다른 건 옥수수 쪽이다. 이스탄불의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옥수수는 두 종류인데, 하나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것처럼 찌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굽는 것이다. '색다르다'고 말한 건, 이렇게 조리된 옥수수에 소금을 뿌리기 때문이다. 소금을 넣어 찌는 게 아니라 눈앞에서 소금을 듬뿍 치는데, '저걸 짜서 어떻게 먹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데 옥수수를 사먹는 사람들마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게다가 엄지 손가락을 내밀기까지 했다.


엄지 손가락을 믿고 용기를 내서(?) 도전을 해봤다. 이게 웬일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잔뜩 뿌려진 소금이 미각을 돋우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정신 없이 옥수수 하나를 먹어치웠다. 가격도 1~3리라 정도로 저렴한 편이었다. 블루 모스크 등 주요 관광지에서는 3리라까지 올라가지만, 외곽으로 벗어나면 조금 더 싼 가격에 옥수수를 맛볼 수도 있다. 옥수수를 먹다보면 이에 잔뜩 껴서 곤혹스럽다는 점만 제외하면 최고의 간식거리가 아닐 수 없다.



길거리 음식을 얘기하면서 돈두르마(Dondurma)를 빼놓을 수 없다. 터키에선 아이스크림을 돈두르마라고 부르는데, 주걱이나 국자 등에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붙이거나 줄듯 말듯 하는 익살스러운 쇼가 주요 볼거리이기도 하다. TV에서 방송되는 여행 프로그램 등에서 봤던 그대로인데, 그 수작(!)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유쾌한 장난에 속게 되고 어느새 빠져들게 된다. 다만, 일행이 있다면 덜 뻘쭘할 테지만, 혼자라면 조금 민망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돈두르마 쇼를 경험하고 싶다면 장난기가 얼굴에 가득한 베테랑 판매원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가게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탄성과 웃음이 터지는 곳이 있다면 놓치지 말자.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들어올리는 과감한 장난은 돈두르마 특유의 끈기 때문에 가능한데, 전분질 다당류가 함유된 살렙과 유향수지를 넣어 쫄짓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가격은 5리라 정도로 부담이 없다. 터키의 불볕 더위에는 역시 아이스크림, 아니 돈두르마다.


- 갈라타 교를 따라 이어지는 케밥 식당들 -


- 고등어와 빵의 조합이 과연 맛있을까? -


- 카리예 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카페 -



이스탄불 전역에서 맛볼 수 있는 되네르 케밥(Döner kebab)이나 에미뇌뉘(Eminönü) 선착장 근처의 명물인 고등어 케밥 등 터키의 대표적인 음식인 케밥 종류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길거리 음식만 전전했던 건 아니다. 카리예 박물관(Kariye Museum)에 들렀을 땐, 입구 건너편에 있는 카페를 찾아 터키식 피자를 맛보기도 했다. 물론 기대했던 맛이 아니라 절반도 먹지 못하고 자리를 떴지만 말이다. 역시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세계 어디를 가나 공통적인 맛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맥도날드였다. 


이스탄불의 맥도날드 빅맥 세트는 11.5리라였는데, 당시 환율로 3,500원 안팎이었다. 지금 환율로 치면 3,200원 정도일 텐데, 5,500원 쯤 하는 우리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전체적으로 물가도 싼 편이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물(500㎖ 기준)은 1리라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데, 마트(sok market)에서 구입하면 0.35리라에 불과하다. 콜라도 캔은 1.25리라, 패트병은 2.75리라밖에 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갈 때 콜라와 간식을 사들고 가는 편인데, 터키에선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이 정도로 터키의 길거리 음식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마치기로 하자. 아무리 터키 음식이 세계 3대 요리로 손꼽힌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음식 궁합'이 잘 맞지 않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음식을 먹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그 때문에 여행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하진 않는다.) 그렇게 며칠을 버티다가(?) 귀국길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제공된 비빔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내게 세계 3대 요리를 꼽아보라 한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 요리를 1위 자리에 올릴 것 같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