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들이 몰리며 혼돈 속에 빠졌던 추석 극장가의 승자는 <안시성>으로 결판났다. <물괴>, <명당>, <협상> 등 경쟁작에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안시성>은 지난 25일 하루에만 79만 4,806명을 동원하며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개봉 8일 만에 300만 관객 돌파,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당 태종 이세민의 매서운 공세를 견뎌내고 수성(守城)에 성공한 양만춘의 <안시성>답다.


<안시성>은 명쾌하다. 안시성을 사이에 두고 공격하는 자와 이를 막아내는 자가 존재한다. 전자는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과 당나라 군사들이고, 후자는 양만춘(조인성)과 고구려 백성들이다. 정말이지 치열하고 처절한 공성전이다. 이 구도는 워낙 분명하고 명확해서 관객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고구려를 응원하지 누굴 응원하겠는가? 자연스럽게 후자 쪽에 감정이입이 된 상태에서 주먹을 꽉 쥐고 스크린을 지켜보면 된다. 



고정관념은 <안시성>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단어다. 우리는 '사극'에 대해 일종의 굳어진 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극의 주인공은 중후한 배우가 맡아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가령, 최수종이나 김명민, 최민식과 같은 배우들(이 보여주는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남성적인 이목구비와 묵직한 목소리를 기본 옵션이라 여긴다. 그런데 <안시성>은 이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비틀어버렸다.


<안시성>은 양만춘 장군으로 조인성을 내세웠다. 파격적인 캐스팅이다. 이는 제작진이 <안시성>을 어떤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하사극이 아닌 젊은 느낌의 사극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게다가 당시 고구려 장군들의 나이가 30대 중후반이었다고 하니 조인성(의 나이가 벌써 38이다)이 맡는다고 한들 이상한 그림이라 할 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 편견에서 벗어난다면 말이다.



또, <안시성>은 양만춘을 묘사하는 데 있어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부하들과 성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인물로 캐릭터를 잡아 나간다. 애초에 양만춘에 대한 사료가 적다보니 제작진이나 배우 입장에서도 훨씬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제작비 220억 원의 영화를 만들면서 이와 같은 도전적인 선택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큰 부담을 짊어지고 있었을 조인성은 자신의 몫을 충실히 수행했다. 역사 속의 양만춘을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매력적으로 연기했다. 장수의 고뇌와 성주로서의 번민을 잘 표현해냈다. 이질감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목소리에 대한 아쉬움이 초반에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 역시 다양성이라는 범주에서 이해하면 될 일이다. 모든 장수들이 중후한 목소리를 가졌을 리 없고,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 또한 고정관념이다.



이렇듯 캐릭터의 고정관념을 깼던 <안시성>이지만, 영화적인 고정관념에선 탈피하지 못했다. 추석 대목을 겨낭하고, '천만 영화'를 노리는 영화답게(?) 클리셰들이 난무한다. 양만춘을 보필하는 부관 추수지(배성우), 환도수장 풍(박병은), 부월수장 활보(오대환)를 소개하는 장면들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뿐더러 캐릭터들도 평면적이다. 연기력만큼은 나무랄 데 없지만, 활용이 다소 아쉽다. 


또, 정확히 예상되는 지점에 '신파'를 배치해 관객들의 눈물을 유도하는 전략은 너무도 뻔하다. 가상의 인물인 백하(설현)는 양만춘의 여동생으로 설정됐는데, 기마부대장 파소(엄태구)와 사랑하는 사이로 그려진다. 아니나 다를까, 백하는 신파를 위한 카드로 전락한다. 영화 후반부의 우대(성동일)과 일꾼들의 희생도 전형적인 그림이라 감동보다는 억지스러움이 강하다. 



신녀 시미(정은채)는 도대체 왜 등장하는지 까닭을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시종일관 "고구려의 신은 우릴 버렸다"를 외치며 계속해서 패배주의를 강요한다. 그리고 양만춘의 계획을 방해하는 등 민폐 캐릭터로 활약(?)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신의 뜻도 제대로 읽지 못한 무능력한 신녀였다. 전쟁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의 부재를 채우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보이나 백하와 마찬가지로 실패에 가깝다. 


그럼에도 <안시성>이 구현한 공성 전투 장면들은 확실한 재미와 쾌감을 준다. 우리에겐 왜 그럴듯한 전쟁 영화가 없는가, 라는 아쉬움을 확실히 씻어주는 영화다. <안시성> 덕분에 우리에게도 멋드러진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가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게 됐다. 영화적 만듦새나 이야기의 짜임새 등에서 드러난 고정관념이 아쉽긴 하지만, <안시성>이 깨버린 고정관념에 초점을 맞춘다면 '엄지 척'을 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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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극장가는 이례적으로 '한국영화 4파전'으로 라인업이 구성되며 관심을 끌었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얼추 결판이 난 것 같다. 선봉에 나섰던 <물괴>는 누적 관객수 701,253명에 그치며 일찌감치 나가 떨어졌다. 조인성을 앞장세운 <안시성>은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며 1,409,525명을 동원했다. 압도적이다. 그리고 2위 자리를 두고 <명당>(758,862명)과 <협상>(618,427명)이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최소한 1위 자리를 경쟁할 것으로 예상됐던 <명당>은 생각보다 뒤처졌다. 분명 나쁜 성적표는 아니다. 지금의 흐름을 잘 유지한다면 손익분기점(약 300만 명)에 이르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명절마다 사극 영화들이 각광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결과는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게다가 조승우라는 확실한 카드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 정도에 그친다면 사실상 '실패'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명당>의 실망스러운 성적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외부적인 부분을 따져보자. <안시성>의 위력이 거셌다. 고구려의 기상과 패기를 강조한 전쟁액션 블록버스터에 관객들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양만춘 장군과 고구려인들의 힘이 작금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던 것일까. 눈과 귀를 만족시킨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이 입소문을 통해 퍼져 나갔다.



"땅은 매개체일 뿐, 결국 사람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 (박희곤 감독)


그러나 <명당>은 그에 맞설 만한 무기가 사실상 없었다. 같은 사극에 밀려버린 것이다. 그만큼 경쟁력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제 내부로 눈을 돌려보자. <명당>은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다. "인간이 갖지 말아야 하는 욕망, 생각들을 꼬집"(조승우)는 것이다. 풍수 지리를 소재로 삼아 '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명당>의 배경은 조선 말 세도 정치기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고 열한 살의 순조가 즉위한 때부터 권력을 틀어쥔 안동 김씨(영화에서는 장동 김씨)는 60여 년 동안 자신들의 세상을 만끽한다. 그 위세가 어느 정도였냐하면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말고는 못하는 일이 없다'는 풍문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왕실의 권위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명당>은 땅의 기운을 읽고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지관(地官) 박재상(조승우)을 앞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효명세자의 묫자리를 점지하는 과정에서 흉지를 길지로 추천한 장동 김씨의 수장 김좌근(백윤식)의 음모를 고한 박재상은 가족을 잃고 만다. 장동 김씨 일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박재상은 '풍수지리'를 통해 복수의 칼날을 간다. 길지에 조상의 묘를 써 후손의 발복(發福)을 꾀하는 장동 김씨의 비밀을 파헤치려 한다. 



장동 김씨 일가를 저지하려는 박재상의 의도는 흥선(지성)과 맞닿아있고, 서로의 뜻을 이해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다. '상갓집 개'를 자처하며 몸을 숙이고 있던 흥선은 왕실의 권위를 되찾고, 세도가에 넘아간 권력을 되찾으려 한다. 물론 마음 속 깊은 속에는 뜨거운 야심을 품고 있다. 여기에 박재상의 절친 구용식(유재명)과 기방인 '월영각'의 대방 초선(문채원)이 합류한다. 


<관상>의 그림자를 좇고 있는<명당>의 패착은 이야기의 얽개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명당>은 단종과 수양대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관상>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 위에 허구와 사실을 섞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그 허구의 상상력이 빈곤하게 다가온다. 결국 반전으로 분위기 전환을 꾀하지만, 흥선이 등장하고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가 언급되는 순간 예고된 결말이었기에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얼굴'을 통해 사람의 내면과 심리를 파악했던 <관상>이 설득적이었던 것과 달리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한 <명당>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애초에 정해진 답을 향해 이야기를 짜맞춘 것 같다는 인상마저 든다. 그러다보니 캐릭터들도 살아움직이지 못하고 박제된 듯 생기가 없다. 장동 김씨 김좌근과 그 아들 김병기(김성균)는 뻔한 악역으로 그려져 허무하게 소비되고 만다. 



또, 감초 역할인 구용식을 연기한 유재명의 연기도 빛을 보지 못한다. 문채원의 이야기는 연결고리가 없이 그냥 툭 던져져 있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기보다 기능적 역할에 그쳤다. 이는 <관상>에 비해 확실한 퇴보가 아닐 수 없다. 김병기는 <관상>의 한명회에 비해 심심하고, 구용식은 <관상>에서 팽헌(조정석)의 재탕일 뿐이고, 초선은 연홍(김혜수)보다 존재감이 훨씬 약하다. 


지성의 다양한 얼굴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관전 포인트가 되겠지만, 그가 연기한 흥선도 <관상>의 수양(이정재)의 매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역학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명당>은 <관상>(9,135,806명)처럼 되길 바랐겠지만, 오히려 <궁합>(1,340,149명)에 조금 더 가까운 고만고만한 범작(凡作)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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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치기 출연'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종의 '상도덕'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존재하고, 대중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기피한다. TV 드라마(혹은 예능)의 경우에는 그런 불문율이 잘 지켜지는 편이다. 사전 제작이 아닌 이상 거의 실시간으로 촬영에 돌입하는 한국 드라마의 여견에서 (주연) 배우가 같은 시기에 TV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도 그런 예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조연 배우들의 경우에는 주연에 비해 탄력적으로 촬영이 이뤄지는 탓에 겹치기 출연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할과 분량이 적어 잠깐의 논란으로 끝나곤 한다. 그마저도 배우의 잘못이라 보긴 어렵다. 캐스팅된 배우는 그저 연기만 할 뿐, 편성은 방송사와 제작사의 몫이 아니던가. 조연 배우가 드라마의 방영시기까지 체크할 순 없는 노릇이다.



반면, 영화의 경우엔 TV 드라마와 달리 겹치기 출연이 왕왕 있다. 그런 상황이 현재 극장가에서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주지훈은 <신과 함께-인과 연>(8월 1일 개봉)에서 저승 삼차사 중 한 명인 해원맥 역으로 출연했다. <신과 함께>는 1편에 이어 2편까지 천만 관객(11,088,206명)을 돌파했는데, 거기에는 주지훈의 공이 크다. 한편, 주지훈은 곧이어 개봉한 <공작>(8월 8일 개봉)에서 보위부 소속 정무택 역으로 등장했다. 


재미있는 건 <공작>에서 북한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 역으로 출연한 이성민이 다음 주인 8월 15일 개봉한 <목격자>의 주연배우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캐스팅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겨울 하정우가 캐스팅된 <신과 함께-죄와 벌>과 <1987>가 연달아 개봉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는 멀티 캐스팅이 낳은 문제이면서 한국영화계의 얕은 배우풀에서 비롯된 난점이기도 하다. 그만큼 신뢰할 배우가 적다는 뜻이다. 


어떤 언론에서는 “잘나가던 '공작' 스스로 발목잡은 '목격자' 이성민”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논란을 야기했지만, 오히려 '쌍끌이 흥행'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그 책임을 배우에게 전가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극중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이성민의 연기는 비난의 대상이 될 여지가 전혀 없었다. 


이성민은 <공작>과 <목격자> 두 작품에서 완전히 다른 역할을 맡았다. 이성민은 <공작>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북한의 실세이자 최고위층이었고, <목격자>에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연기의 결이 판이하게 다르고, 연기의 폭의 차이가 워낙 커서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다. 연기의 완성도도 높다. 역시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답다. 



<공작>은 총 관객 수 4,040,514명(19일 기준)을 기록하며 장기 흥행 체제로 접어들었다. 북파 공작원 ‘흑금성’ 박석영 역을 열연한 황정민의 활약도 돋보이지만, 그와 함께 뜨거운 ‘브로맨스’를 선보인 이성민의 존재감이 없었다면 <공작>의 무게감은 현저히 떨어졌을 게 뻔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또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만큼 현실감 있는 전달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이성민은 감정과 속내를 숨긴 채 박석영과의 거래에 응하는 북한 최고위층의 상황을 사실감 있게 전달했다. 이성민을 통해 리명운이라는 인물은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지닌 캐릭터로 거듭날 수 있었다. 기존에 북한을 다뤘던 영화들이 북한 측 인물들을 판에 박힌 방식으로 다루는 데 그쳤다면, <공작>은 북한 최고위층을 좀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리는 데 성공했다. 그 공이 이성민에게 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 이성민이 불과 1주일 만에 은행 대출을 끼고 어렵사리 아파트를 구입한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인 상훈으로 나타난다. 이질감을 느낄 법 하지만, 이성민의 연기에는 그런 낯섦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훈은 새벽 늦게 귀가를 한 날, 아파트 베란다에서 망치로 여성을 죽이는 살인자 태호(곽시양)를 목격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한 참혹한 살인 사건이다. 경찰에 신고를 하던 순간, 집안의 불이 켜지고 범인과 눈이 딱 마주친다. 


사건의 목격자가 된 상휸은 범인으로부터 쫓기는 한편,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형사 재엽(김상호)의 압박도 받게 된다. 이성민은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목격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딜레마를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영화의 놀라운 몰입도는 이성민의 연기가 자아낸 마법이라 할 만 하다. <목격자>는 <공작>을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1,365,479명)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여름 극장가를 접수할 기세다.


이성민은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집에서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이성민이란 배우의 연기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이성민은 불만족스럽다지만, 관객들은 그를 신뢰하고 있다. 또, 계속해서 그를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 이성민이 앞으로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야 끊임없이 도전에 나서 관객들 앞에 나타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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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는 황정민밖에 없냐?’ 


또, 황정민이 해냈다! <공작>(감독 윤종빈·제작 영화사 월광)의 상승세가 무섭다. <신과 함께-인과 연>의 기세에 눌러 있던 <공작>은 개봉 6일 만에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 누적 관객은 232만 2644명. <공작>은 1990년대 중반 안기부가 주도했던 북파 공작의 민낯을 그린 첩보물이다. ‘흑금성’은 암호명인데, 안기부의 밀명을 받고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북한의 고위층과 접촉했던 스파이로 실존인물이다. 



<공작>이 흥행에 시동을 걸면서 ‘한국영화에는 황정민밖에 없냐?’는 말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언뜻 칭찬처럼 들린다. 그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있거나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니까. 그러나 저 말에는 노골적인 불만이 섞여 있다. ‘왜 이렇게 자주 나오느냐?’라는 불평, 실상 야유에 가깝다. 사실일까? 절반은 그렇다. 황정민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쉼없이 일을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황정민은 한 해도 쉬지 않았다.


이처럼 황정민이 꾸준히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건 맞지만, ‘영화판에 황정민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잦은 출연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보다 훨씬 다작을 한 배우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황정민에게 <공작>은 <군함도> 이후 1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왜 ‘황정민 피로감’을 호소하는가? ‘또, 황정민이야?’라는 선입견이 생긴 건 2014년~2016년 무렵으로 짐작된다. 



황정민은 2014년 겨울 개봉한 <국제시장>으로 천만 관객(14,262,766명)을 돌파하면서 명실공히 최고의 흥행배우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그 후 찬란한 ‘황정민 전성시대’가 펼쳐지는데, 그는 2015년에 <베테랑>으로 또 한번 천만 관객(13,414,200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같은 해 <히말라야>(7,759,761명)도 흥행에 성공하며 관객들에게 황정민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주마가편이라고 했던가. 공교롭게도 2016년에는 그가 출연한 영화가 무려 3편이나 개봉했다. <검사외전>(9,707,581명)부터 <곡성>(6,879,989명), <아수라>(2,594,420명)까지 영화 관객의 입장에선 ‘또, 황정민이야?’라는 말이 나올 법 했다. 그나마 망했던(?) 영화가 250만 명의 <아수라>였던 점을 고려하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영화관에서 황정민을 피해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순히 출연 빈도 때문이었을까? (솔직히 좀 심하긴 했다.) 그렇지만 ‘또, 황정민이야?’라는 볼멘소리의 원인이 단지 그것뿐일까? 어쩌면 트레이드 마크처럼 굳어진 ‘황정민표 연기(휴머니즘 혹은 눈물을 짜내는 신파)’에 대한 식상함이 존재했던 건 아닐까? 실제로 황정민에게는 연기톤이 매번 반복된다는 지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익숙해지면 당연히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황정민은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개봉일은 배우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닐 뿐더러 이른바 ‘황정민표 연기’도 <국제시장>과 <히말라야>를 제외하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군함도>의 경우, 부성애가 강조되는 신파적 요소가 있었으나 그가 연기한 이강옥은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 당한 후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간사한 캐릭터로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


<아수라>에서는 정경유착의 끝판왕인 악덕 시장인 박성배를 통해 악역의 진수를 선보였다. 소름이 돋는 살벌한 연기였다. 외지인인 무속인 일광을 연기했던 <곡성>에서 황정민은 실제로 접신을 한 듯한 놀라운 연기를 펼쳐 보였다. 황정민만이 할 수 있는 몰입도 높은 연기였다. 이처럼 황정민은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꾸준히 변신을 꿰했다. 그 작품들이 죄다 흥행했던 건 관객들의 인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공작>의 황정민도 마찬가지다. 그는 실존인물인 북파 공작원 흑금성 박채서(극중 배역 이름은 박석영)를 연기했는데, 특유의 생동감 있는 인물 묘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캐릭터(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빠르게 인지시킨다. <공작>은 정치적인 요소가 짙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이지만, 황정민이라는 ‘익숙함’이 관객과 영화의 거리감을 대폭 줄여 놓는다. 관객들은 무리없이 <공작>의 ‘공작’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가 연기하는 배역들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와닿는다. 그 현실감이야말로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가졌다는 사실 말이다. 씁쓸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짊어지고 1년 만에 돌아온 황정민, ‘한국영화에는 황정민밖에 없냐?’는 비난은 온당할까? 오히려 꾸준히 관객들을 찾아오는 그의 성실함을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본업인 연기에 집중하기보다 광고를 찍는 데 급급한 ‘CF 배우’들에 비해 황정민의 행보는 얼마나 칭찬할 만한가? 오히려 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을 격려하고 북돋아줘야 하지 않을까? 황정민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금의 열정을 잃지 않길 바란다. 여전히 충무로와 관객들은 황정민이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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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미!' <마녀>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이 영화의 주연 배우 이름을 검색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누구야?", "이름이 뭐야?", "김다미가 누구야?" 패닉에 빠진 게 소수는 아닐 게 분명하다. '김다미?' 처음 본 얼굴, 처음 들은 이름이다. 자신이 검색한 배우가 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많은 관객들은 영화에서 받았던 충격에 이어 또 한번 크게 놀랐을 것이다. 


<은교>(2012)의 김고은의 출현과 <아가씨>(2016)의 김태리 등장에 못지 않은, 어쩌면 그 이상의 충격이다. 조민수, 박희순, 최우식. 이들의 역할과 활약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조민수의 카리스마가 초반의 분위기를 다잡은 채 영화를 이끌어 나가고, 박희순과 최우식의 연기가 김장감을 끌어 올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김다미의 존재감은 영화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렇다, <마녀>는 김다미의 영화다. 



"너 언니한테 까불면 모가지 날아간다."


자윤(김다미)은 유전자 조작으로 완벽한 살인 병기(마녀)로 태어났지만, 기억을 잃은 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김다미는 '소녀'와 '마녀' 사이를 능청스럽게 오가고, 각각의 이미지를 이질감 없이 연결시킨다. 박훈정 감독은 자윤을 통해 성악설을 설파한다. 인간의 본성은 악(惡)하고, 태생부터 악을 내재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문득 김다미의 소름끼지는 연기에 의문이 생긴다. 그 능력은 타고 난 걸까, 길러진 걸까? 


박 감독은 자윤 역에 신인을 캐스팅한다는 원칙을 세워뒀다고 한다. 허나 기준에 부합하는 신인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오디션에 지쳐가고 있을 때쯤 김다미가 들어왔는데 보는 순간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되겠는데?’ 정도가 아니었다. 김다미의 캐릭터 분석과 소화력은 자칫 유치할 법한 영화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괜히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괴물 신인이 아니었다. 



'고민시!' <마녀>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자윤'의 친구 '명희'로 출연한 배우가 누구인지 궁금해 찾아보느라 바빴을 것이다. 어쩌면 저렇게 찰지고 맛깔스럽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실제 고등학생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던 관객이 결코 소수는 아니리라. '고민시?' 아무래도 낯선 이름이다. 예명이라 생각할 법한 이름이지만, ‘높은 곳에서 하늘을 보라는 뜻’의 본명이라고 한다.


이름은 몰라도 그의 얼굴을 이미 알고 있던 관객은 제법 많았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 종영한 tvN <라이브>를 봤다면 오양촌(배성우)의 딸 오송이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오송이가 까칠하고 차가운 딸이었다면, 명희는 살갑고 애교 많은 딸이다. 또, 천방지축에다 깨방정을 떠는 쾌활한 10대 소녀다. 오송이와 명희, 두 캐릭터의 차이를 통해 우리는 고민시라는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다. 



명희는 자윤을 단짝 친구다. 자윤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끔찍이 아낀다. 자윤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조차 그가 자신의 친구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윤이 '마녀'가 아닌 평범한 '소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명희는 극중에서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약 1시간에 해당하는 영화 전반부의 헐렁한 이야기의 밀도를 채운다. 


무엇보다 <마녀>의 어둡고 꿉꿉한 분위기를 희석시키고, 관객들에게 편안한 웃음을 선사한다. 명희가 주는 웃음은 관객들에게 있어 숨구멍 같은 역할을 한다. 고민시는 실제로 고등학생이라 해도 믿을 만큼의 싱크로율을 보여주는데, 주연 못지 않은 조연으로서의 존재감을 뽐냈다. 친근한 캐릭터가 갖는 힘을 100% 활용하는 영리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설프지도 않았고, 넘치지도 않았다. 


김다미와 고민시, 평범하지 않은 이름의 두 동갑내기 배우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사뭇 궁금하다. 또, '여성'이 대상화와 객채화를 당하지 않고, 이야기의 주체로서 중심을 잡아간 <마녀>의 흥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지켜볼 일이다. (5일 현재 1,345,637명,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Part 1. The Subversion(전복)'에 이은 Part 2.가 기대된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직도 2017년 10월 30일을 또렷히 기억한다. 무심코 집어든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보(誤報)에 비판적이지만, 그 소식만큼은 잘못된 것이길 바랐다. '김주혁 교통사고로 사망' 단 열 글자로 설명된 그의 죽음. 참으로 황망했다. 믿기지 않았다. 한 배우의 죽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했다. 함께 고통을 나눴다. 그만큼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게다가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였다. 원인에 대한 여러 추측들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올해 1월 3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차량에 대한 감정 결과를 '결함 없음'으로 결론지었고, 강남경찰서는 이 결과를 인용했다. 의문은 풀리지 않았으나 우리는 받아들여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더 이상 김주혁이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호랑이가 죽은 후 가죽을 남기듯 배우는 작품을 남기는 것일까. 이제 남은 건 먹먹한 심정으로 그가 남긴 유작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요즘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 글을 봐도 얄팍하게 보였다면, 이제는 좀 더 깊이 보이는 것 같다."던 그는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해 이미 촬영을 마친 후였다. 김주혁이 어떤 연기를 남겼을지 한편으로는 기대가 됐다. 


먼저 개봉했던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여러가지 면에서 실망스러웠다. 개연성 부족 등 영화의 만듦새에서 허술함을 드러내 관객들을 허탈하게 만들었고, 조현근 감독의 성희롱 사실이 미투 운동을 통해 밝혀지면서 영화의 흥행에 찬물을 끼얹었다. 故 김주혁의 유작이라는 특별한 의미까지 퇴색시켰다. 결국 <흥부>는 총 관객 416,346명에 그치고 말았고, 김주혁의 연기에 대한 평가나 감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독전>뿐이었다. 중국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을 원작으로 한 <독전>은 ‘이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마약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피말리는 싸움을 그린 영화다. 잔혹성과 선정성은 별개로 영화의 완성도가 탄탄하고, 이야기의 몰입도 역시 높다.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데드풀2>이 휩쓸고 있는 극장가에서 1위 자리를 탈환했고, 그 여세를 몰아 8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가 ‘짱짱’하게 뽑히자 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받기 시작했다. 조진웅, 류준열, 김성령, 박해준, 차승원, 진서연 등 하나같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역량이 언론을 통해 조명받고 있다. 물론 앞서 이름을 거론한 배우들의 활약에 뛰어났지만, 역시 가장 돋보였던 건 특별출연한 故 김주혁이었다. 그는 아시아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을 연기했는데, 광기 어린 카리스마는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예측할 수 없는 진하림이란 캐릭터,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故김주혁의 연기에 손에 땀을 쥐게 된다. 그의 탁월한 연기는 어수선한 영화 초반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특히 아내 보령 역을 맡은 진서연과의 호흡은 경탄스러울 정도다. 더욱 놀라운 건 평소 예능에서 보여줬던 친근한 형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었다는 점이다. 그가 천상 배우였음을 또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제야 故 김주혁이 환하게 웃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안도감이 들었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서글퍼졌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배우로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남기고 간 혼이 담긴 연기가 이를 증명한다. “이제는 좀 더 깊이 보이는 것 같다”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빠른 이별이었다. 분명 그는 보여줄 게 훨씬 더 많이 남은 배우였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평일 저녁에도 관객들이 꽉 들어찼다. <리틀 포레스트>는 사이즈가 큰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멀티플렉스에서 작정하고 밀어주는 영화도 아니다. 순 제작비 15억 원의 저예산 영화다. 이 작은 영화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한 사람들, 애정이 가득한 그들 속에 함께 있는 기분이 제법 좋다. 게다가 영화관을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영화를 보고 머리가 맑아진 건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지난 7일, <리틀 포레스트>가 손익 분기점(80만 명)을 넘겼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누적 관객 수는 860,572명(8일 기준). 100만 돌파는 시간 문제로 보인다. 별다른 경쟁작이 없는 비수기라는 점도 한몫 했겠지만, 역시 영화의 만듦새가 뛰어나다. 좋은 영화는 입소문을 타기 마련이고, 관객들이 찾게 돼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언제 개봉했더라도 관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영화가 분명하다.



"다들 바쁘게 시간을 보내니 사는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해요. 내일도 모레도 계속 바쁘죠.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보리밭을 거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보리밭에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리밭에 앉아도 보고 그 사이를 걷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생각해보고 이를 계기로 (삶이) 나아질 수 있길 바라요." <조이뉴스24>,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도시 속 현대인에 전하는 선물


<리틀 포레스트>는 김태리의 영화다. 그가 연기한 혜원은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한다. 카메라는 줄곧 혜원의 동선을 좇는다. 시험, 연애, 취업. 청춘의 무게인지 청춘을 짓누르는 이 시대의 무게인지 알 수 없지만, 혜원은 그 압박감에 숨막혀 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만, 삶의 색채는 바래져만 간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어서, 그 허기 때문에 혜원은 고향인 의성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엄마(문소리)와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한다. 또,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을 만나 특별한 시간들을 만들어 나간다. "태리 씨 말고는 다른 배우들이 많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김태리는 꾸밈없는 연기와 포장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혜원이라는 캐릭터와 완벽한 일체감을 보여 준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형형색색 빛나는 자연과 음식을 제외하면) 단연 김태리지만, 흔들림없이 듬직하게 <리틀 포레스트>를 지탱하고 있는 류준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연기한 재하라는 캐릭터는 결코 튀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존재감이 약해서도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한순간에 강렬하게 빛나는 연기보다 힘을 배분해서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 스며드는 연기가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은숙이 처음부터 고향에 남아 있었다면, 재하는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가 귀농했다. 그가 경험했던 회사 생활은 인격 모독에 가까웠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수동적인 것이었다. 피동적인 삶에 환멸을 느낀 재하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스스로의 삶에 주체성을 부여한다.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인간의 의지와 몫을 명확히 알고 있는 굉장히 강인한 인물이기도 하다. 



"모든 온기가 있는 생물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 영화 속 재하의 대사

 

한번의 과도기를 겪어냈기에 재하는 혜원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준다. 물론 끈적이지 않는 삼각관계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류준열은 "쉬는 기분으로 촬영했고, 그런 마음을 관객들이 함께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지만, 임순례 감독은 그에 대해 "자신의 역할에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임하고, 연기에 있어서는 열정과 애착을 가진 발전 가능성이 큰 배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15년 tvN <응답하라 1988>을 통해 혜성처럼 나타나 '어남류' 열풍을 이끌었던 류준열은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갔다. 인기에 안주하거나 특정한 캐릭터에 머무르기보다 과감하게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MBC <운빨 로맨스>에서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했고, <더 킹>에서는 조직 폭력배 최두일 역을 맡아 들개와 같은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그런가 하면 <침묵>에서는 찌질한 스토커 연기를 실감나게 보여주기도 했다.



놀라운 건 어떤 역할을 맡아도 거북함 없이 자연스러웠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라. <택시운전사>에서 류준열은 영락없는 80년대 대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질감 없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낸다는 건 류준열이라는 배우가 지닌 역량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또, 연기에 대한 열정과 애착이 그만큼 뜨겁다는 뜻이리라. 더욱 경이로운 사실은 젊디 젊은 그가 '분량', '타이틀' 같은 부차적인 것에서 자유로워보인다는 것이다.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식감과 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하는 <리틀 포레스트>. 오감을 만족시키고 따뜻한 힐링을 선물하는 이 영화에 류준열이 있음을 기억하자. 아니, 영화를 보면 그를 쉽사리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잔잔하게 그리고 깊이 스며드는 그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류준열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