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락>은 현재 1,189,291명(14일 기준)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인 160만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경민(공효진)은 연말만 되면 재계약을 걱정하는 평범한 은행원이다. 그래도 실적이 괜찮은 편이 아니라 정규직 채용을 꿈꿔 보지만, 현실은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제적 여건이 넉넉하지 않은 경민은 소형 오피스텔만 옮겨다니고 있다. 아파트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오피스텔이 1인 가구 시대에 적합한 주거지임에 틀림없지만, 권장할 만한 거주 형태는 결코 아니다. 그만큼 불안 요소가 많다. 


아무래도 오피스텔은 아파트에 비해 보안이 떨어지기 때문에 경민은 빨래걸이에 남자 옷을 걸어두고, 현관에는 남자 구두가 보이게끔 놓아둔다. 남자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여자 혼자 사는 집'으로 인식될 경우, 범죄에 쉽사리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위험도를 낮추려는 심리를 남자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해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리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믿을 건,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는 경비원들과 도어락뿐이다. 생각해보면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분을 확인할 수도 없는 경비원들에게 안전을 맡겨야 한다는 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무작정 신뢰해야 할까? 도어락은 또 어떤가. 비밀번호를 조합하면 누구에게나 쉽게 열리는 도어락은 보안에 매우 취약하다. 경민은 매일마다 열려 있는 도어락 덮개와 지문으로 뒤덮인 키패드를 볼 때마다 두려움에 잠긴다. 



퇴근 후 잠을 청하는 경민,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도어락의 키패드를 누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손잡이를 마구 흔들어 댄다. 경민은 공포감에 휩싸여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수없이 비슷한 신고를 겪은 경찰은 섣불리 '주취자'일 거라 속단한다. 물론 정말 집을 착각한 술에 취한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집안에서 경민이 느꼈을 두려움은 상상 그 이상이고, 경찰의 무신경하고 고압적인 태도는 되레 경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누군가 나의 집에 침입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자 경민은 모든 것이 두렵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빠른 속도로 뒤따라오는 남자에 몸이 움츠러들고, 늦은 밤 엘리베이터에 모르는 남자와 단둘이 타게 됐을 때 공포감이 엄습한다. 누군가는 과잉 공포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경민은 스스로 과잉적 대응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지켜야만 했다. 그런데 경민의 그것이 정말 호들갑이었을까? 


공효진과 스릴러.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섬뜩했다. 그동안 스릴러(혹은 공포) 영화들이 안 그래도 큰 눈을 가진 배우들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는 놀란 표정을 요구하고, 데시벨을 측정할 수 없는 고음의 비명을 지르도록 하는 안이한 연출을 해왔다면, <도어락>은 공효진을 통해 상황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연기를 통해 공포를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공효진은 현실적인 연기를 통해 관객들이 자연스레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효진만이 지닌 특유의 무기력한 얼굴이 경민이라는 소극적인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져 관객들이 느끼는 공포가 배가된다. 실제로 압도적인 공포를 마주했을 때 이성적인 판단을 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계속된 경민의 무력한 대응은 사실적일뿐더러 설득력이 있다. 공효진은 그 부분을 영리하게 잘 그려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오피스텔, 편의점 등 일상의 풍경 속에 공포를 직조해 넣음으로써 관객에게 '현실 공포'를 불러 일으키며 분위기를 잡아 나갔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자극적인 설정에 맥없이 영화의 운명을 맡겨 버렸다. 빠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자신감이 없었던 걸까. 오히려 뒷부분은 과감히 덜어냈다면 훨씬 더 깔끔한 영화가 됐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공포감도 극대화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 긴장감을 이끌어내야 할 범죄 용의자들의 캐릭터 설정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의심스러워 오히려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거나 아예 뜬금없이 공개되는 식이다. 공간에 불어넣은 현실감이 작위적인 캐릭터들로 인해 공중분해 되는 느낌이다. <도어락>은 '현실 공포'라는 테마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를 던지며 주목을 받았지만, 전체적으로 과유불급이 생각나는 영화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국민들이 모은 금은 기업들의 부채를 갚는데 쓰였다.’


<국가부도의 날>에는 ‘반전’이 없다. 마치 재난과도 같이 몰아닥쳤던 1997년 외환 위기를 그저 담담히 훑어 나간다. 관객들도 단단히 각오를 하고 영화관에 들어섰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말없이, 때론 깊은 탄식과 함께, 그 참담했던 역사(와 그 시기를 살아냈던 자신의 기억)의 궤적을 따라간다. 긴박하되 긴장감이 없는 이 영화는 그래서 더욱 절절하다. 그럴 수밖에. 우리가 (각자 어떤 위치에 서 있었든) 산증인이니까.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은 경제 지표를 분석하던 중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홍콩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국가들의 연쇄적인 외환 위기가 한국에도 불어닥칠 조짐이 보였다. 이미 외국 자본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한국에서 발을 빼고 있었고, 환율 방어에 투입되고 있는 외환 보유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시현은 국가 부도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영화가 잘 증언하듯, 당시 청와대와 내각은 무사태평했다. 대통령은 경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보였고,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국민소득 1만불 같은 성과에 취해 있었다. 허나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은 결코 튼튼하지 않은 상태였다. 2006년 무역 적자는 206억 달러가 넘었고, 나라빚은 1,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또, 외부 환경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우 취약했다. 



해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라 안팎으로 수많은 경고가 쏟아졌음에도 이를 무시해 왔던 정부가 한시현의 경고를 넙죽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경제 위기를 인정하면 국민들이 혼란에 빠질 거라 변명했지만,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떠안아야 할 정치적 책임이 두려웠던 것이리라. 경제 수석과 재정국 차관, 한국은행 총재 등으로 꾸려진 대책팀이 꾸려졌지만,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1997년 11월 21일, 결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걱정말라던 정부만 믿고 있다가 재앙을 마주한 국민들은 절망했다.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기업과 은행들이 줄도산했다. 실업률은 솟구쳤고, 자살률도 치솟았다. 그런데 이 재앙을 불러들인, 재정국 차관(조우진)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경제 신봉자들은 위기는 기회라 떠들어댄다. 또 따른 이득을 취할 궁리 중인 그들에게 국민은 없었다. 


재정국 차관은 IMF 체제 하에서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회라 주장한다. 시장경제로의 재편을 이야기한다. 그건 철저히 대기업 중심의 경제를 뜻했다. 그 수단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였다. 곧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시스템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국가부도의 날>은 IMF의 조건들을 전면 수용했던 당시 정부의 결정을 두고 ‘악마와의 거래’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영화는 한시현(과 윤정학)을 내세워 당시 경제 관료들의 무능과 무지를 탓하는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던 당시의 상황(과 판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공무원인 한시현이 차마 할 수 없는 힐난을 윤정학(유아인)을 통해 속시원하게 쏟아붓는다. 유일한 숨쉴 구멍이다. 또, IMF 체제가 가져온 경제 전반의 변화와 그 폐해를 지적한다. 구제금융의 진짜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따져 묻는다. 


일각에선 <국가부도의 날>의 관점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재경원은 ABS(자산유동화) 등 대안을 모색했고, 미국은 IMF의 최대 주주이므로 논의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노동자를 정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IMF에 구제 신청을 했다는 건 오버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박이 가능할 테고, 논쟁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국가부도의 날>의 의미가 거기에 있다. 이제야 IMF를 되새겨 보게 됐다는 것 말이다.


영화는 세 개의 축으로 나뉜다. 재정부 차관에 맞선 ‘한시현의 고군분투’가 첫 번째, 국가부도라는 해일의 직격탄을 맞은 납춤업체 사장 ‘갑수(허준호)의 고난’이 두 번째, 재난을 예측하고 그 해일을 타고 날아올랐던 ‘윤종학의 인생역전’이 세 번째다. 허준호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얼굴을 가진 배우답게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냈다. 유아인은 재기발랄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카메라 앞에서 마음껏 날뛴다. 


<국가부도의 날>은 12월 5일까지 1,983,84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인 260만을 향해 순항 중이다.


가장 돋보였던 건 역시 김혜수와 조우진이었다. 두 배우는 시종일관 부딪치며 신경전을 벌이는데, 수준 높은 연기로 관객들을 집중케 한다. 김혜수는 인터뷰에서 한시현을 ‘투사’가 아니라 ‘소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그려내려 했다고 밝혔는데, 캐릭터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한시현이 투사로 그려졌다면 영화적 긴장감은 살아났을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뻔한 영화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강한 신념과 전문성, 뜨거운 심장을 지닌 한시현 역에 김혜수가 아닌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그만큼 김혜수의 카리스마가 영화에 큰 힘을 불어 넣는다. 또, 조우진은 자칫 밋밋한 수 있는 관료 역을 얄밉도록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그의 연기는 매번 새롭고, 천재적이다. “진짜 잘하는 사람과 했을 때의 흥분, 그런 걸 느끼게 하는 분이 제 연기 인생에 많지 않다. 그 중 한 명이 조우진."이라는 김혜수의 극찬이 이해가 된다.


어찌됐든 그 결말이 정해진 <국가부도의 날>은 씁쓸하다. 보는 내내 입맛이 쓰다. 뒷맛도 개운치 않다. 영화 엔딩 즈음에 나오는 ‘국민들이 모은 금은 기업들의 부채를 갚는데 쓰였다’는 자막은 2시간 동안 영화를 보면서 쌓여온 배신감과 허탈감에 정점을 찍는다. <국가부도의 날>은 ‘위기는 반복된다’는 섬뜩한 경고를 보낸다. 깨인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의 우리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얼마 전까지 온통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들(<물괴>, <명당>, <안시성>, <협상>)의 사활(死活)에 영화계의 관심이 쏠렸다.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실패로 귀결된 싸움이었다.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들의 흥행 여부를 따지는 것도 흥미롭지만(당사자들은 피가 마르겠지만), 비교적 작은 영화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게 훨씬 더 즐겁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미쓰백>이다.

<미쓰백>는 약 16억 5000만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손익분기점은 90만 명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했던 영화들에 비해 체급이 낮다. 그래서 일까. 관심이 떨어지는 편이다. 작은 영화들이 늘 그렇듯 상황도 어려웠다. 덩치가 훨씬 큰 <베놈>(3,586,150명), <암수살인>(3,286,150명)과 맞서야 했다. 개봉일인 11일 <미쓰백>에게 주어진 스크린수는 547개에 불과했는데, 당시 <암수살인>은 986개, <베놈>은 953개였다.

20일 현재 <미쓰백>의 관객 수는 398,132명이다.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남은 시간도 많지 않다. 지난 18일 <퍼스트맨>이 개봉했고, 25일에는 <창궐>이 경쟁 구도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건 <미쓰백>을 본 관객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개봉 6일차부터 조금씩 스크린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일 현재 <미쓰백>의 스크린수는 664개이고, 하루 관객이 57,446명에 달했다.


“흥행 고민은 안 하다가 타이틀롤은 맡았는데 이 영화에 쏟아부은 많은 분들의 열정을 생각하면 손익분기점을 넘어야 하는 압박이 있긴 한다. 대중 분들이 요즘엔 더 좋아해주시는 장르가 조금 자극적이고 오락 요소가 있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전하고자 했던 진심을 느끼신다면 영화가 내리더라도 보시는 분들은 좋은 평가를 남겨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손익분기점에 대해 주연 배우가 느끼는 책임감은 어떤 것일까. 그 외로움과 고독함을 당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한지민 또한 그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쓰백>이 거두고 있는 예상 밖의 선전은 한지민의 힘이 절대적이다. 물론 ‘아동학대’라는 소재를 통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진심도 인상적이었지만, 그걸 구현하는 배우의
몫을 간과할 순 없을 것이다.

<미쓰백>에서 한지민이 보여준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여러 관점에서 그를 바라볼 수 있을 텐데, ‘변화’라는 포인트에서 볼 때 한지민의 도전과 열정은 놀랍기만 하다. 한지민은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스스로를 학대하듯 살아가다 전과자가 돼버린 백상아 역을 맡았다. 탈색한 머리는 부스스하고, 맨얼굴의 피부는 거칠다. 악을 바락바락 쓰고, 욕설도 걸죽하게 내뱉는다.

그동안 봐왔던 한지민의 모습이 아니다. 한지민은 상아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크림을 바르지 않은 채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배우가 자신의 외모적 부분을 포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을 감안하면 그의 용기는 칭찬할 만하다. 그건 노력이고, 관객들은 이를 통해 배우가 애썼다는 걸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몰입하게 되고, 이야기의 흐름에 호흡을 맞춰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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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의 변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KBS1 <올인>에서 송혜교의 아역으로 출연하며 데뷔했던 그는 KBS1 <부활>에서 힘겨운 상황에서도 밝은 성격을 잃지 않는 서은하로 분하면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한지민은 자신의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대뜸 공포 영화(<해부학 교실>)에 도전했고, KBS2 <경성스캔들>에서는 독립투사 나여경으로 변신해 신여성의 카리스마를 뽐냈다.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였던 MBC <이산>을 통해 한지민은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그후 SBS <카인과 아벨>, JTBC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 등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채워 나갔다. 그러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거상 한객주로 변신해 고혹미와 섹시함을 표출했다. 이후 <밀정>에서 연계순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보이며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최근에는 tvN <아는 와이프>에서 억척스러운 아내와 밝고 청순한 캐릭터를 오가며 호평을 받았다. 스토리의 아쉬움을 연기력으로 커버했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개인적으로는 (연기 변신을) 어색해 하지 않게 봐주시는 게 나의 목표”라고 밝혔는데, 지금까지의 연기 경력을 비롯해 <미쓰백>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여준 도전들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아동학대’라는 사회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풀어낸 영화에 출연을 결정하고, 평소에 대중이 바라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거친 캐릭터로 변신하는 도전정신은 한지민이라는 배우의 가치를 드높인다. <미쓰백>의 한지민이 궁금하다면 얼른 극장으로 달려가자.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대작들이 몰리며 혼돈 속에 빠졌던 추석 극장가의 승자는 <안시성>으로 결판났다. <물괴>, <명당>, <협상> 등 경쟁작에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안시성>은 지난 25일 하루에만 79만 4,806명을 동원하며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개봉 8일 만에 300만 관객 돌파,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당 태종 이세민의 매서운 공세를 견뎌내고 수성(守城)에 성공한 양만춘의 <안시성>답다.


<안시성>은 명쾌하다. 안시성을 사이에 두고 공격하는 자와 이를 막아내는 자가 존재한다. 전자는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과 당나라 군사들이고, 후자는 양만춘(조인성)과 고구려 백성들이다. 정말이지 치열하고 처절한 공성전이다. 이 구도는 워낙 분명하고 명확해서 관객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고구려를 응원하지 누굴 응원하겠는가? 자연스럽게 후자 쪽에 감정이입이 된 상태에서 주먹을 꽉 쥐고 스크린을 지켜보면 된다. 



고정관념은 <안시성>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단어다. 우리는 '사극'에 대해 일종의 굳어진 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극의 주인공은 중후한 배우가 맡아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가령, 최수종이나 김명민, 최민식과 같은 배우들(이 보여주는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남성적인 이목구비와 묵직한 목소리를 기본 옵션이라 여긴다. 그런데 <안시성>은 이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비틀어버렸다.


<안시성>은 양만춘 장군으로 조인성을 내세웠다. 파격적인 캐스팅이다. 이는 제작진이 <안시성>을 어떤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하사극이 아닌 젊은 느낌의 사극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게다가 당시 고구려 장군들의 나이가 30대 중후반이었다고 하니 조인성(의 나이가 벌써 38이다)이 맡는다고 한들 이상한 그림이라 할 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 편견에서 벗어난다면 말이다.



또, <안시성>은 양만춘을 묘사하는 데 있어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부하들과 성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인물로 캐릭터를 잡아 나간다. 애초에 양만춘에 대한 사료가 적다보니 제작진이나 배우 입장에서도 훨씬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제작비 220억 원의 영화를 만들면서 이와 같은 도전적인 선택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큰 부담을 짊어지고 있었을 조인성은 자신의 몫을 충실히 수행했다. 역사 속의 양만춘을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매력적으로 연기했다. 장수의 고뇌와 성주로서의 번민을 잘 표현해냈다. 이질감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목소리에 대한 아쉬움이 초반에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 역시 다양성이라는 범주에서 이해하면 될 일이다. 모든 장수들이 중후한 목소리를 가졌을 리 없고,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 또한 고정관념이다.



이렇듯 캐릭터의 고정관념을 깼던 <안시성>이지만, 영화적인 고정관념에선 탈피하지 못했다. 추석 대목을 겨낭하고, '천만 영화'를 노리는 영화답게(?) 클리셰들이 난무한다. 양만춘을 보필하는 부관 추수지(배성우), 환도수장 풍(박병은), 부월수장 활보(오대환)를 소개하는 장면들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뿐더러 캐릭터들도 평면적이다. 연기력만큼은 나무랄 데 없지만, 활용이 다소 아쉽다. 


또, 정확히 예상되는 지점에 '신파'를 배치해 관객들의 눈물을 유도하는 전략은 너무도 뻔하다. 가상의 인물인 백하(설현)는 양만춘의 여동생으로 설정됐는데, 기마부대장 파소(엄태구)와 사랑하는 사이로 그려진다. 아니나 다를까, 백하는 신파를 위한 카드로 전락한다. 영화 후반부의 우대(성동일)과 일꾼들의 희생도 전형적인 그림이라 감동보다는 억지스러움이 강하다. 



신녀 시미(정은채)는 도대체 왜 등장하는지 까닭을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시종일관 "고구려의 신은 우릴 버렸다"를 외치며 계속해서 패배주의를 강요한다. 그리고 양만춘의 계획을 방해하는 등 민폐 캐릭터로 활약(?)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신의 뜻도 제대로 읽지 못한 무능력한 신녀였다. 전쟁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의 부재를 채우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보이나 백하와 마찬가지로 실패에 가깝다. 


그럼에도 <안시성>이 구현한 공성 전투 장면들은 확실한 재미와 쾌감을 준다. 우리에겐 왜 그럴듯한 전쟁 영화가 없는가, 라는 아쉬움을 확실히 씻어주는 영화다. <안시성> 덕분에 우리에게도 멋드러진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가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게 됐다. 영화적 만듦새나 이야기의 짜임새 등에서 드러난 고정관념이 아쉽긴 하지만, <안시성>이 깨버린 고정관념에 초점을 맞춘다면 '엄지 척'을 줄 만하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추석 극장가는 이례적으로 '한국영화 4파전'으로 라인업이 구성되며 관심을 끌었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얼추 결판이 난 것 같다. 선봉에 나섰던 <물괴>는 누적 관객수 701,253명에 그치며 일찌감치 나가 떨어졌다. 조인성을 앞장세운 <안시성>은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며 1,409,525명을 동원했다. 압도적이다. 그리고 2위 자리를 두고 <명당>(758,862명)과 <협상>(618,427명)이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최소한 1위 자리를 경쟁할 것으로 예상됐던 <명당>은 생각보다 뒤처졌다. 분명 나쁜 성적표는 아니다. 지금의 흐름을 잘 유지한다면 손익분기점(약 300만 명)에 이르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명절마다 사극 영화들이 각광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결과는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게다가 조승우라는 확실한 카드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 정도에 그친다면 사실상 '실패'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명당>의 실망스러운 성적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외부적인 부분을 따져보자. <안시성>의 위력이 거셌다. 고구려의 기상과 패기를 강조한 전쟁액션 블록버스터에 관객들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양만춘 장군과 고구려인들의 힘이 작금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던 것일까. 눈과 귀를 만족시킨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이 입소문을 통해 퍼져 나갔다.



"땅은 매개체일 뿐, 결국 사람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 (박희곤 감독)


그러나 <명당>은 그에 맞설 만한 무기가 사실상 없었다. 같은 사극에 밀려버린 것이다. 그만큼 경쟁력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제 내부로 눈을 돌려보자. <명당>은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다. "인간이 갖지 말아야 하는 욕망, 생각들을 꼬집"(조승우)는 것이다. 풍수 지리를 소재로 삼아 '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명당>의 배경은 조선 말 세도 정치기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고 열한 살의 순조가 즉위한 때부터 권력을 틀어쥔 안동 김씨(영화에서는 장동 김씨)는 60여 년 동안 자신들의 세상을 만끽한다. 그 위세가 어느 정도였냐하면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말고는 못하는 일이 없다'는 풍문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왕실의 권위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명당>은 땅의 기운을 읽고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지관(地官) 박재상(조승우)을 앞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효명세자의 묫자리를 점지하는 과정에서 흉지를 길지로 추천한 장동 김씨의 수장 김좌근(백윤식)의 음모를 고한 박재상은 가족을 잃고 만다. 장동 김씨 일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박재상은 '풍수지리'를 통해 복수의 칼날을 간다. 길지에 조상의 묘를 써 후손의 발복(發福)을 꾀하는 장동 김씨의 비밀을 파헤치려 한다. 



장동 김씨 일가를 저지하려는 박재상의 의도는 흥선(지성)과 맞닿아있고, 서로의 뜻을 이해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다. '상갓집 개'를 자처하며 몸을 숙이고 있던 흥선은 왕실의 권위를 되찾고, 세도가에 넘아간 권력을 되찾으려 한다. 물론 마음 속 깊은 속에는 뜨거운 야심을 품고 있다. 여기에 박재상의 절친 구용식(유재명)과 기방인 '월영각'의 대방 초선(문채원)이 합류한다. 


<관상>의 그림자를 좇고 있는<명당>의 패착은 이야기의 얽개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명당>은 단종과 수양대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관상>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 위에 허구와 사실을 섞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그 허구의 상상력이 빈곤하게 다가온다. 결국 반전으로 분위기 전환을 꾀하지만, 흥선이 등장하고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가 언급되는 순간 예고된 결말이었기에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얼굴'을 통해 사람의 내면과 심리를 파악했던 <관상>이 설득적이었던 것과 달리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한 <명당>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애초에 정해진 답을 향해 이야기를 짜맞춘 것 같다는 인상마저 든다. 그러다보니 캐릭터들도 살아움직이지 못하고 박제된 듯 생기가 없다. 장동 김씨 김좌근과 그 아들 김병기(김성균)는 뻔한 악역으로 그려져 허무하게 소비되고 만다. 



또, 감초 역할인 구용식을 연기한 유재명의 연기도 빛을 보지 못한다. 문채원의 이야기는 연결고리가 없이 그냥 툭 던져져 있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기보다 기능적 역할에 그쳤다. 이는 <관상>에 비해 확실한 퇴보가 아닐 수 없다. 김병기는 <관상>의 한명회에 비해 심심하고, 구용식은 <관상>에서 팽헌(조정석)의 재탕일 뿐이고, 초선은 연홍(김혜수)보다 존재감이 훨씬 약하다. 


지성의 다양한 얼굴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관전 포인트가 되겠지만, 그가 연기한 흥선도 <관상>의 수양(이정재)의 매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역학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명당>은 <관상>(9,135,806명)처럼 되길 바랐겠지만, 오히려 <궁합>(1,340,149명)에 조금 더 가까운 고만고만한 범작(凡作)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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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치기 출연'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종의 '상도덕'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존재하고, 대중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기피한다. TV 드라마(혹은 예능)의 경우에는 그런 불문율이 잘 지켜지는 편이다. 사전 제작이 아닌 이상 거의 실시간으로 촬영에 돌입하는 한국 드라마의 여견에서 (주연) 배우가 같은 시기에 TV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도 그런 예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조연 배우들의 경우에는 주연에 비해 탄력적으로 촬영이 이뤄지는 탓에 겹치기 출연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할과 분량이 적어 잠깐의 논란으로 끝나곤 한다. 그마저도 배우의 잘못이라 보긴 어렵다. 캐스팅된 배우는 그저 연기만 할 뿐, 편성은 방송사와 제작사의 몫이 아니던가. 조연 배우가 드라마의 방영시기까지 체크할 순 없는 노릇이다.



반면, 영화의 경우엔 TV 드라마와 달리 겹치기 출연이 왕왕 있다. 그런 상황이 현재 극장가에서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주지훈은 <신과 함께-인과 연>(8월 1일 개봉)에서 저승 삼차사 중 한 명인 해원맥 역으로 출연했다. <신과 함께>는 1편에 이어 2편까지 천만 관객(11,088,206명)을 돌파했는데, 거기에는 주지훈의 공이 크다. 한편, 주지훈은 곧이어 개봉한 <공작>(8월 8일 개봉)에서 보위부 소속 정무택 역으로 등장했다. 


재미있는 건 <공작>에서 북한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 역으로 출연한 이성민이 다음 주인 8월 15일 개봉한 <목격자>의 주연배우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캐스팅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겨울 하정우가 캐스팅된 <신과 함께-죄와 벌>과 <1987>가 연달아 개봉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는 멀티 캐스팅이 낳은 문제이면서 한국영화계의 얕은 배우풀에서 비롯된 난점이기도 하다. 그만큼 신뢰할 배우가 적다는 뜻이다. 


어떤 언론에서는 “잘나가던 '공작' 스스로 발목잡은 '목격자' 이성민”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논란을 야기했지만, 오히려 '쌍끌이 흥행'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그 책임을 배우에게 전가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극중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이성민의 연기는 비난의 대상이 될 여지가 전혀 없었다. 


이성민은 <공작>과 <목격자> 두 작품에서 완전히 다른 역할을 맡았다. 이성민은 <공작>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북한의 실세이자 최고위층이었고, <목격자>에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연기의 결이 판이하게 다르고, 연기의 폭의 차이가 워낙 커서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다. 연기의 완성도도 높다. 역시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답다. 



<공작>은 총 관객 수 4,040,514명(19일 기준)을 기록하며 장기 흥행 체제로 접어들었다. 북파 공작원 ‘흑금성’ 박석영 역을 열연한 황정민의 활약도 돋보이지만, 그와 함께 뜨거운 ‘브로맨스’를 선보인 이성민의 존재감이 없었다면 <공작>의 무게감은 현저히 떨어졌을 게 뻔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또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만큼 현실감 있는 전달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이성민은 감정과 속내를 숨긴 채 박석영과의 거래에 응하는 북한 최고위층의 상황을 사실감 있게 전달했다. 이성민을 통해 리명운이라는 인물은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지닌 캐릭터로 거듭날 수 있었다. 기존에 북한을 다뤘던 영화들이 북한 측 인물들을 판에 박힌 방식으로 다루는 데 그쳤다면, <공작>은 북한 최고위층을 좀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리는 데 성공했다. 그 공이 이성민에게 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 이성민이 불과 1주일 만에 은행 대출을 끼고 어렵사리 아파트를 구입한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인 상훈으로 나타난다. 이질감을 느낄 법 하지만, 이성민의 연기에는 그런 낯섦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훈은 새벽 늦게 귀가를 한 날, 아파트 베란다에서 망치로 여성을 죽이는 살인자 태호(곽시양)를 목격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한 참혹한 살인 사건이다. 경찰에 신고를 하던 순간, 집안의 불이 켜지고 범인과 눈이 딱 마주친다. 


사건의 목격자가 된 상휸은 범인으로부터 쫓기는 한편,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형사 재엽(김상호)의 압박도 받게 된다. 이성민은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목격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딜레마를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영화의 놀라운 몰입도는 이성민의 연기가 자아낸 마법이라 할 만 하다. <목격자>는 <공작>을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1,365,479명)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여름 극장가를 접수할 기세다.


이성민은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집에서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이성민이란 배우의 연기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이성민은 불만족스럽다지만, 관객들은 그를 신뢰하고 있다. 또, 계속해서 그를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 이성민이 앞으로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야 끊임없이 도전에 나서 관객들 앞에 나타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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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는 황정민밖에 없냐?’ 


또, 황정민이 해냈다! <공작>(감독 윤종빈·제작 영화사 월광)의 상승세가 무섭다. <신과 함께-인과 연>의 기세에 눌러 있던 <공작>은 개봉 6일 만에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 누적 관객은 232만 2644명. <공작>은 1990년대 중반 안기부가 주도했던 북파 공작의 민낯을 그린 첩보물이다. ‘흑금성’은 암호명인데, 안기부의 밀명을 받고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북한의 고위층과 접촉했던 스파이로 실존인물이다. 



<공작>이 흥행에 시동을 걸면서 ‘한국영화에는 황정민밖에 없냐?’는 말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언뜻 칭찬처럼 들린다. 그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있거나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니까. 그러나 저 말에는 노골적인 불만이 섞여 있다. ‘왜 이렇게 자주 나오느냐?’라는 불평, 실상 야유에 가깝다. 사실일까? 절반은 그렇다. 황정민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쉼없이 일을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황정민은 한 해도 쉬지 않았다.


이처럼 황정민이 꾸준히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건 맞지만, ‘영화판에 황정민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잦은 출연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보다 훨씬 다작을 한 배우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황정민에게 <공작>은 <군함도> 이후 1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왜 ‘황정민 피로감’을 호소하는가? ‘또, 황정민이야?’라는 선입견이 생긴 건 2014년~2016년 무렵으로 짐작된다. 



황정민은 2014년 겨울 개봉한 <국제시장>으로 천만 관객(14,262,766명)을 돌파하면서 명실공히 최고의 흥행배우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그 후 찬란한 ‘황정민 전성시대’가 펼쳐지는데, 그는 2015년에 <베테랑>으로 또 한번 천만 관객(13,414,200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같은 해 <히말라야>(7,759,761명)도 흥행에 성공하며 관객들에게 황정민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주마가편이라고 했던가. 공교롭게도 2016년에는 그가 출연한 영화가 무려 3편이나 개봉했다. <검사외전>(9,707,581명)부터 <곡성>(6,879,989명), <아수라>(2,594,420명)까지 영화 관객의 입장에선 ‘또, 황정민이야?’라는 말이 나올 법 했다. 그나마 망했던(?) 영화가 250만 명의 <아수라>였던 점을 고려하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영화관에서 황정민을 피해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순히 출연 빈도 때문이었을까? (솔직히 좀 심하긴 했다.) 그렇지만 ‘또, 황정민이야?’라는 볼멘소리의 원인이 단지 그것뿐일까? 어쩌면 트레이드 마크처럼 굳어진 ‘황정민표 연기(휴머니즘 혹은 눈물을 짜내는 신파)’에 대한 식상함이 존재했던 건 아닐까? 실제로 황정민에게는 연기톤이 매번 반복된다는 지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익숙해지면 당연히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황정민은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개봉일은 배우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닐 뿐더러 이른바 ‘황정민표 연기’도 <국제시장>과 <히말라야>를 제외하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군함도>의 경우, 부성애가 강조되는 신파적 요소가 있었으나 그가 연기한 이강옥은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 당한 후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간사한 캐릭터로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


<아수라>에서는 정경유착의 끝판왕인 악덕 시장인 박성배를 통해 악역의 진수를 선보였다. 소름이 돋는 살벌한 연기였다. 외지인인 무속인 일광을 연기했던 <곡성>에서 황정민은 실제로 접신을 한 듯한 놀라운 연기를 펼쳐 보였다. 황정민만이 할 수 있는 몰입도 높은 연기였다. 이처럼 황정민은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꾸준히 변신을 꿰했다. 그 작품들이 죄다 흥행했던 건 관객들의 인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공작>의 황정민도 마찬가지다. 그는 실존인물인 북파 공작원 흑금성 박채서(극중 배역 이름은 박석영)를 연기했는데, 특유의 생동감 있는 인물 묘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캐릭터(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빠르게 인지시킨다. <공작>은 정치적인 요소가 짙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이지만, 황정민이라는 ‘익숙함’이 관객과 영화의 거리감을 대폭 줄여 놓는다. 관객들은 무리없이 <공작>의 ‘공작’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가 연기하는 배역들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와닿는다. 그 현실감이야말로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가졌다는 사실 말이다. 씁쓸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짊어지고 1년 만에 돌아온 황정민, ‘한국영화에는 황정민밖에 없냐?’는 비난은 온당할까? 오히려 꾸준히 관객들을 찾아오는 그의 성실함을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본업인 연기에 집중하기보다 광고를 찍는 데 급급한 ‘CF 배우’들에 비해 황정민의 행보는 얼마나 칭찬할 만한가? 오히려 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을 격려하고 북돋아줘야 하지 않을까? 황정민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금의 열정을 잃지 않길 바란다. 여전히 충무로와 관객들은 황정민이 목마르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