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네 남은 인생의 첫 날이다."


트리 겔브만(제시카 로스)은 화끈한 파티를 좋아하는 캠퍼스 최고의 퀸카다. '교과서'적인 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삶은 비틀어져 있다. 오로지 즐기고 탐닉하는 삶을 추구한다. 여러 남자를 무분별하게 만나고, 심지어 유부남인 교수와 은밀한 관계를 맺는다. 룸메이트는 그런 트리에게 '경고'를 보내지만, 트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가족의 중요성을 모르고, 친구의 소중함도 모른다. 자신이 잘난 맛에 제멋대로 살아가는 철부지 대학생이랄까. 



어김없이 뜨거운 파티로 밤을 보냈던 트리는 '평범한' 남학생 카터 데이비스(이스라엘 브루사드)의 기숙사 방에서 눈을 뜬다. 이윽고 아빠의 전화가 걸려오는데, 벨소리가 생일 축하 노래로 바껴 있다. 과음을 한 탓에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오고, 두통약을 먹으며 상황을 파악한 트리는 '똥을 밟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내가 왜 여기, 그것도 이렇게 별로인 남자의 방에 있는 거야?' 트리는 허겁지겁 소지품을 챙겨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고, 다시 강의실, 파티장으로 이어지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트리는 아기 얼굴 가면을 쓴 누군가에게 살해 당한다. 더욱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죽음을 맞이한 순간, 그 고통을 간직한 채 트리는 잠에서 깨어난다. 다시 카터의 방이다. 악몽이라도 꿨던 걸까? 이상하게도 똑같은 일들이 반복된다. 단순한 기시감일까. 이미 경험했던 하루를 반복해서 살아가던 트리는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또 한번 살해 당하게 되고, 그제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자신이 기묘하고 끔찍한 '오늘'에 갇혔다는 사실을 말이다. 



<해피 데스데이>는 주인공이 세상에 태어난 날인 생일날 죽음을 당하는데, 그 하루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설정을 취하고 있다. 이제는 흔하디 흔한 '타임 루프'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공포라는 장르에 예상 밖의 유머가 버무려지면서 톡특함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각본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랜던이 감독을 맡았는데, "이번 영화에서 유머와 공포, 두 장르를 똑같이 중요하게 다뤘다"던 그의 선언은 헛되지 않았다. 영화는 적어도 영화적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지루하지 않다.


트리는 가면을 쓴 살인범을 찾아내지 않으면 이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범인을 찾기 위해 주변의 의심스러운 인물들을 추적해 나간다. 만약 용의자의 뒤를 밟고 있는 중에 가면을 쓴 범인이 나타나면 추적하고 있던 이름을 용의자 목록에서 빼버리는 식이다. 이런듯 여자 주인공이 겁에 질려 있기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태도는 굉장히 신선하다. 또,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범인과 맞서 싸우는 모습도 짜릿하다. 



한편, <해피 데스데이>는 '성장' 영화다. 트리는 무려 16번을 죽는다. 그 말은 17번 살아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리는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하게 될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시선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되새겨보게 된 것이다. 죽음의 순간(죽음 그 자체는 트리에게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은 매번 고통스럽지만,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생일'이라고 하는 날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 아닐까. tvN <알쓸신잡>에서 유현준 교수가 대나무의 마디를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대나무가 가장 튼튼하고 높게 올라갈 수 있는 구조라는 설명을 한 대목이 떠오른다. 유 교수는 대나무의 마디 구조를 우리의 삶과 유비(類比)시켰는데, 끊김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우리의 삶에 '1년' 등의 구분(마디)을 지어둔 까닭은 중간중간 새로움을 다져야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냐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주인공의 이름도 '나무'라는 뜻의 '트리'가 아닌가.



이제 트리는 과거와는 단절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죽음 이후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 그를 성장시킨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짚어봐야 할 부분은 '성장'이 자칫 잘못하면 '교정(矯正)'과 동의어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트리의 성장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의 삶이 잘못됐기 때문에 교정시키겠다는 개입은 불편한 일이다. 삶의 가치를 알고 사랑의 진실됨을 찾아가는 동시에 가족의 소중함과 친구의 중요함까지 깨닫는 전형적인 교훈은 너무 뻔하다. 영화적 번뜩임과 달리 내용적인 지루함은 그 때문이다. 


또, 개연성이 사라진 결말은 분노를 자극하기도 하다. '타임 루프'의 허술함이야 영화적 장치로 받아들이고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범인'을 허투루 설정해둔 건 아쉽기만 하다. 뜬금없이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거나 진짜 범인이 가진 살해 동기의 허무함은 짜증이 날 정도다. 그럼에도 <해피 데스데이>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데, 1,127,392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 오피스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수익 1억 달러 돌파에 대한민국 관객들이 큰 기여(해외 시장 수익 1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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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이는 것을 사실이라고 믿지만 그것이 사실일 수는 있어도 진실은 아닐 수 있다. <침묵>을 통해 사실과 진실이라는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지우 감독)


흔히 사실과 진실을 같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가 표면적이고 부분적이라면, 후자는 내면적이고 전체적이다. 단면적인 사실과 달리 진실은 통찰적이다. 둘의 관계를 쉽게 표현하자면, '보이는 사실 너머에 진실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실들 가운데 진실을 찾아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어쩌면 '재판'이라는 과정이 사실과 진실의 관계를 잘 설명하는 가장 좋은 예라는 생각도 든다. 유죄의 사실(증거)과 유죄가 아닌 사실(증거)들의 충돌 속에서 진실을 꿰뚫어 보는 선별이 곧 재판이 아니던가.


사실과 진실, 그 미묘한 간극을 이야기한 영화라고 본다면 <침묵>은 분명 수작이다. 정지우 감독은 사건과 인물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들을 영화 곳곳에 영리하게 배치함으로써 진실이 궁금한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범인은 누구인가?', '임태산(최민식)의 진심은 무엇일까?', '유나(이하늬)는 정말 태산을 사랑했을까?' 스크린 밖의 관객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 속의 인물들도 혼돈을 겪는다.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들이 진실이라 믿는 사실들에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각자(가 믿은 진실)의 몫을 챙긴 채 살아간다.



또, <침묵>을 한 인물의 내면 속 감정을 이야기한 영화라고 보더라도 수작임에 틀림없다. 범인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법정극의 틀을 가지고 있지만, <침묵>은 단순히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얽히고설킨 인물들 간의 감정선을 강조하고 부각시킨다. 특히 임태산 역을 맡은 최민식은 중심적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다. 그가 보여주는 연기의 깊이는 <침묵>에 묵직함을 더하는데, 이 영화를 수작이라 말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힘의 8할은 최민식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임태산의 로드 무비 구조를 취하고 있다. 사랑하는 약혼녀 유나가 살해당했지만, 그에겐 슬픔을 온전히 느낄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유력한 용의자로 자신의 딸 임미라(이수경)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이가 좋지 못해 반목했던 두 사람이 사건이 발생하던 날 만났다는 것이 검찰이 제시한 정황 증거였다. 사랑하는 연인을 딸이 살해했다? 이 상황적 딜레마에 빠진 임태산의 다양한 얼굴, 즉 최민식이 표현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정말이지 쏠쏠하다. 



임태산은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재력과 권력을 총동원한다. 불법과 편법도 서슴지 않는다. 돈이 최고의 가치이며,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믿는 임태산에게 도덕은 하등 중요치 않다. 인맥을 동원해 담당 검사를 회유하고자 시도하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검사를 직접 찾아가 '검찰총장 자리를 사주겠다'고 유혹하기도 한다. 이러한 임태산의 모습들은 대한민국 재벌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 한데, 최민식은 그 뻔뻔스럽고 역겨운 얼굴을 누구보다 '열받게' 잘 소화해낸다.


그런가하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나가던 중 '실체'를 맞닥뜨린 순간, 감정의 균열과 붕괴를 매우 섬세하게 표현했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한데 엉겨붙어 묘한 색채를 발한다. 매우 이질적이면서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또, 딸을 향한 지극한 '부성애'를 드러내는 장면들은 감동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관객들이 임태산을 '악인'이라 여기면서도 그를 마냥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만큼 최민식의 연기는 설득력 있게 파고 든다.



"<침묵>은 소중한 것을 잃은 한 남자의 뒤늦은 참회,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최민식)


이처럼 <침묵>은 얽개와 연기 등의 측면에서 봤을 때 충분히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정지우 감독이나 최민식의 말처럼, '소중한 것을 잃은 한 남자의 뒤늦은 참회'라고 해석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임태산은 딸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딸의 죄를 덮기 위해 진실을 조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한다. 임태산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참회'라고 볼 수 있을까?


대신 감옥에 갇힌 만큼 극진한 '부성애'를 보여줌으로써 중년 남성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하는 <침묵>은 여전히 '그들만의' 해결책만을 강조하고 있다. 딸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기보다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가부장제를 답습하고 있고, '목적이 정당하다면 옳지 않은 수단을 써도 된다'는 그릇된 윤리관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정당한 죗값을 치르고, 진정한 반성을 하는 게 아니라 아빠의 대속(代贖)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오만한 것 아닐까. 



'미안하면 잘 살아'라고 말하는 아빠의 속 편한 생각과는 달리 딸은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릴 것인가. 아빠가 자신을 대신해 감옥에 갇혀 있는데, '미안하니까 잘 살아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또, '혹시 진실이 밝혀지는 건 아닐까'라며 매일 밤 전전긍긍하며 보내지 않을까.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발을 뻗고 잠들 수 있을까. 과연 제대로 된,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쯤되면 과연 이 '참회'가 누구를 위한 참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것을 참회라고 부를 수 있기는 한 걸까.


<침묵>이 제시한 '반전'은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임태산이 꺼내든 카드에 재판정의 모든 사람들이 쉽사리 동조해버리는 부분은 다소 의아했다. 치밀한 법정극을 쌓아왔던 영화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긴장감을 허무하게 놓아버린 느낌이다. 물론 자신이 믿고 싶었던 '진실'을 추구했던 이들이 임태산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고 본다면 불만은 없다. 하지만 임태산의 행동에 대해 해석의 여지를 제거하고 '참회'로 못박은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울 뿐더러 이 영화의 가치를 대폭 떨어뜨렸다. 그래서 감히 수작이라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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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전력이 훨씬 부족한 약팀이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있다. 가령, 지난 21일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허더즈필드가 맨유를 상대로 2 : 1 승리를 거둔 경기가 대표적이다.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에 스포츠에선 이런 일들이 가끔 벌어진다. 영화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추석 극장가를 떠올려보자. 출연 배우들의 이름값, 배급사의 규모와 스크린 숫자 등에서 한참 밀렸던 <범죄도시>가 <남한산성>을 넘고 추석 극장가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범죄도시>는 여러모로 관객 동원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범죄도시>는 돌풍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박스오피스를 점령했는데, <범죄도시>의 선전을 넘어선 완승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남한산성>이 기대와 달리 379만 9,205명을 동원하는 데 그치며 손익분기점 500만에 한참 못 미치는 스코어로 문을 닫게 된 것과 대조적으로 <범죄도시>는 500만 관객을 돌파(528만 7,856명)하며 <토르: 라그나로크>에 이어 여전히 박스오피스 2위에 올라있다.


ⓒ키위미디어그룹


이와 같은 예상밖의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다양한 이유들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두 영화의 차이점에서 그 까닭을 도출해 보자면 역시 '카타르시스의 유무'에 정답이 숨어있는 듯 하다. <남한산성>의 경우에는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관객들의 입장에선 쾌감을 느낄 여지가 없었다. 반면, <범죄도시>는 장첸(윤계상)이라는 극악(極惡)의 캐릭터를 설정해두고, 강력반 형사 마석도(마동석)가 이를 철저히 깨부수는 카타르시스를 완벽히 보여주고 있다. 그 쾌감은 극상(極上)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범죄도시>는 어떻게 극상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균형'이다. 범죄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악역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면적이고 색깔 없는 악역은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파멸이라는 뻔한 결말을 향해 수직 강하한다. 1300만 관객을 불러 모은 <베테랑>의 성공에 조태오(유아인)라는 매력적인 악역이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범죄도시>에는 역시 장첸이 있었다. 


ⓒ키위미디어그룹


신흥범죄조직 보스 장첸은 완벽한 악인이다. 그야말로 극악무도하다. 사람을 죽이는 데 주저함이 없고, 기본적인 윤리의식도 없다. 도끼를 들고 '니 내가 누군지 아니?'라고 묻는 그의 살범함과 잔혹함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강윤성 감독은 '악인을 악인처럼 보이게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고, 윤계상은 그 원칙을 100% 소화했다. 영화 속에서 윤계상은 장첸 그 자체였다. 악역이 탄력을 받자 극의 균형이 맞아떨어졌고, 이는 곧 팽팽한 긴장감이 돼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당연히 결말 부분의 카타르시스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마블리' 마동석의 활약도 눈부셨지만, 첫 악역을 맡은 윤계상의 변신은 놀라웠다. 머리카락을 붙여 장발을 연출하고, 수염을 기르고 체중을 불렸다. 중국어와 연변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사실감을 높였다. 장첸 역에 몰입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 티가 역력했다. 준비는 곧 실전의 힘으로 발현되기 마련이다. 캐릭터와 혼연일체된 상태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표정, 몸짓, 대사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저리 신이 나 연기하는 배우가 스크린 속에 있는데,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키위미디어그룹


사실 윤계상을 악역의 카테고리에 넣어놓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악역을 향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잘 안 들어온다. 순한 외모 때문인 것 같다"고 스스로도 밝혔듯이 눈웃음이 선한 그에게 다른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윤성 감독은 윤계상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착해보이고 선한 역할만 했던 윤계상이 그려내는 악역은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고 설명했는데, 과거 박찬욱 감독이 이영애에게서 '금자'를 발견했던 것처럼 그 판단이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god 출신인 윤계상은 1세대 아이돌이자 1세대 연기돌이다. <발레교습소>를 시작으로 13년 동안 꾸준히 작품을 찍어 왔다. <비스티 보이즈>(2008), <집행자>(2009)<풍산개>(2011), <소수의견<(2013) 등 다양하고 의미있는 영화들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하지만 흥행작이 없었다는 점은 스스로도 아쉬웠으리라. 하지만 <범죄도시>를 통해 흥행에 대한 아쉬움을 깨끗하게 털어냈다. 인생 캐릭터와 대표작을 손에 거머쥔 윤계상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까. 그의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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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부활자(RV, Resurrected Victims): 억울하게 죽은 뒤 복수를 위해 살아 돌아온 사람.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 물론 '모든' 사자(死者)가 부활하는 건 아니다. 일정한 규칙이 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 그리고 복수를 하려는 사람만이 죽음의 강을 거슬러 돌아온다. 아직 진범이 잡히지 않아 온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미제 사건의 피해자가 희생부활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이 되돌아와 못다한 애틋한 감정들을 나눌 거라는 낭만적인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다. 곽경택 감독의 <희생부활자>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검사 진홍(김래원)은 누나인 희정(장영남)에게 엄마 명숙(김해숙)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전화를 받고 집으로 향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7년 전 자신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셋돈을 전해주기 위해 길을 나섰던 엄마가 오토바이 강도에게 잔인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진홍은 그리움과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다. 술도 끊고, 오로지 일에 파묻힌 채 기계처럼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살아서 돌아오다니, 누나의 헛소리가 분명하다. 


이게 웬일인가. 집에 도착한 진홍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분명 죽었던 엄마가 누나와 함께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진홍은 "누구세요?"라고 물어보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비현실적인 일에 이내 할 말을 잃는다. 그런데 곧이어 더욱 놀랄 일이 벌어진다. 음식을 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던 명숙이 '복수'라는 말에 반응하더니 갑자기 칼을 들고 진홍을 죽이려 하는 게 아닌가. 교회 사람들의 도움으로 진홍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한편, 국정원은 빠르게 이 사건에 개입한다. 그리고 명숙을 격리시켜 따로 관리하기 시작한다. 명숙은 세계적으로 89번째 출현한 희생부활자이자 국내에선 첫 번째로 발견된 사례였다. 국정원은 희생부활자가 진범을 공격하고, 복수가 완성된 뒤에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홍을 살인범으로 의심한다. 한편, 진홍은 엄마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진실을 좇아 7년 전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까지 이 사건에 뛰어들면서 이야기는 꼬여가기 시작한다. 


결국 이야기의 초점, 질문의 포인트는 한 곳으로 모여든다. '엄마는 왜 아들을 공격했을까?' 추리는 간단하다. 희생부활자의 존재는 곧 진범의 존재와 동의어가 아닌가. 다시 말하면, 명숙을 죽인 진범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복수를 목적으로 하는 희생부활자는 진범을 공격하므로, 그가 공격하는 대상은 복수의 대상이자 진범이다. 그렇다면 '엄마가 아들을 공격한 이유'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명숙을 죽인 범인이 그의 아들 진홍이란 말인가? 차라리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처럼 <희생부활자>는 관객들에게 상당히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신선했던 도입과 달리 영화는 중반으로 향할수록 힘을 잃고 우왕좌왕한다. 그 오락가락이 안타까울 정도다. 'RV'라고 하는 신선한 판타지 소재, 김래원과 김해숙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내세우고도 아쉬운 결과물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희생부활자>가 '모성애'라는 결론을 항해 올인하기 때문이다. 올인이 나빴던 게 아니라 손쉽고 진부한 모성애라는 해답에 집착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희생부활자>는 박하익 작가의 소설 『종료되었습니다』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이 '흉악 범죄자에 대한 가장 완전한 심판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면, <희생종결자>는 명숙의 모성애를 중심에 두고 다른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남은 가족한텐 돈보다 중요한 게 죗값이야."라는 진홍의 힘 있는 대사는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그 자리를 채운 건 모든 죄를 용서하고, 심지어 아들의 죗값마저 치르는 극진한 모성애다. 쫀득쫀득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관객의 입장에선 모성애라는 쉬운 선택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과거 봉준호 감독은 <괴물>(2006)에 '엄마'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솔직히 말해 엄마가 등장하면 괴물을 잡아죽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엄마를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모성애가 지닌 초월적인 힘을 알고 있었던 봉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배제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더>를 통해 모성애를 따로 조명하며, '모든 모성애는 선할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곽경택 감독은 RV라는 소재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발전시키기보다 모성애를 통해 주제의식을 널뛰어버렸다. 


<해바라기>와 SBS <천일의 약속>에 이어 세 번째로 모자(母子) 관계로 만난 김해숙과 김래원은 최고의 열연을 펼쳤다. 특히 김해숙의 연기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 연기에 취하기엔 너무 뻔한, 그래서 뻔뻔할 정도인 전개가 흥을 깬다. 드라마에선 그 어떤 배우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던 성동일의 연기도 영화에선 이상하리만치 어색하다. 장영남과 전혜진도 평이하다. <범죄도시>의 흥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재미'가 있으면 관객들이 몰리는 요즘, 241,656명에 그친 관객 수는 <희생부활자>에 대한 가장 정확한 관람평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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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speak." 나옥분(나문희)는 거듭해서 "나는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록 대사로서 "i can speak"는 딱 한번 등장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아니,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것은 구청을 대상으로 한 '민원'이었다. 8,000건에 달하는 민원 제기 덕분에 '도깨비 할매'라는 별명을 얻었고, 구청 직원들에겐 기피 대상이 됐다. 간단히 말해 '블랙리스트'였다. 동네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을 했지만, 돌아오는 건 원망과 불평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비아냥이었다. 


다음에는 '영어'였다. 어렸을 때 입양을 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친동생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나옥분은 영어를 배워야 했다. 절실히 필요했다. 여기에서 명진구청에 발령받은 9급 공무원 민재와의 접점이 생긴다. 옥분은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민재에게 영어를 배우기로 하고, 민재는 옥분이 차려주는 뜨뜻한 저녁상을 통해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만남이 웃음과 훈훈함을 이끌어내는 시점에서 <아이 캔 스피크>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흘러간다. 



이제 나옥분은 미국 하원에서 열린 공개 청문회에 서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채택을 위한 '증언'을 하기 위해서다. 오랜 친구이자 위안부 피해자인 정심(손숙)의 치매 증세가 심각해지면서 그의 짐을 나눠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국가와 사회, 심지어 부모조차도 그의 존재를 외면하고 숨기려 했기에 옥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살아왔다. 그 때문에 옥분이 위안부였다는 공식 기록이 없었고, 일본 측은 이를 물고 늘어진다. 


증언을 위해 단상에 선 옥분은 자신의 배에 난 칼자국과 욱일승천기 문신을 드러낸다. 그보다 더 명백한 증거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참혹했던 기억, 그 가슴 찢어지는 아픈 과거를 세상 앞에 증언한다. 그의 목소리, 일본을 향한 꾸짖음에는 힘이 실려 있다. 그건 외부를 향한 외침이기도 하지만, 홀로 외로이 고통스러운 기억들과 싸워왔던 자신을 향한 외침이기도 했다. 그럼으로써 소문자였던 'i'는 대문자 'I'로 바뀌게 된다. 주체성을 획득한 개인이 연대를 통해 더욱 강한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아이 캔 스피크>라는 영화가 우리에게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피해자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상존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 캔 스피크>는 옥분을 '피해자'에 묶어두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이웃'으로 그려나간다. 또, 옥분을 발화(發話)의 주체로 삼고, 연대의 중심축으로 그 존재를 확장해 나간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문제의 본질을 오히려 또렷이 드러내는 동시에 문제 해결의 해답까지 건네준다. 


옥분은 함께 살아가는 시장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를 향해 계속해서 질문한다. "하우 알 유? (How are you?)", "하우 해브 유 빈? (How have you been?)", "왓츠 업? (What's up?)" 안부를 묻는 질문을 받았으니, 남은 건 대답이다. 물론 첫 번째 대답은 "아임 파인 땡큐, 앤 유? (I'm fine thank you, and you?)"이겠으나,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역사적 문제 앞에 서 있는 우리는 그 다음 대답도 생각해야만 한다. 



김현석 감독은 "나문희 선생님과 이제훈의 조합이 백번 옳았다"고 자신의 판단을 자평했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 조합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문희를 캐스팅한 건 더할나위 없는 훌륭한 결정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전반부가 희노애락을 갖춘 휴먼 드라마로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오로지 나문희라는 배우에게서 나왔다. 또, 비장의 카드처럼 숨겨뒀던 영화의 본 주제로의 갑작스러운 전환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도 결국 나문희라는 배우의 설득력 덕분이었다.


언론 시시회에서 "내 나이에도 주인공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알 거다. 사실 부담도 걱정도 많았지만 끝까지 해냈다는 점에 뿌듯하다"며 소감을 표현했던 나문희는 데뷔 57년 차를 맞이한 대배우다. 여성 캐릭터의 부재(를 넘어 상실)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한 한국 영화에 있어 배우 나문희의 존재는 예외에 속한다. 그는 꾸준히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는데, 그는 남자 배우에 의존하기보다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나왔다.


<권순분 여사 남치사건>(2007), <걸스카우트>(2008), <하모니>(2009), <수상한 그녀>(2013)는 나문희의 매력이 한껏 발휘했던 작품들이다. 또, 그는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남편과 며느리에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거침없이' 반격에 나서는 코믹한 모습을 연기했는데, 그를 '국민 할머니'라 떠올리게끔 만든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는 가족들의 뒷바라지로 평생을 바치다 '독립'을 선언하는 정아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한편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어찌보면 배우 나문희에게는 '가부장제'라는 전통의 질서를 순응한 채 그 안에 머무르는 캐릭터가 존재하는가 하면, 동시에 이를 전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이 내재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무슨 말이나 요구라도 다 들어줄 것 같은 따뜻한 엄마이자 할머니인 동시에 불합리와 부조리에 두 팔 걷어 맞서는 단호하고 당찬 여성이 함께 보인다. <아이 캔 스피크>의 김현석 감독은 나문희 속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이미지와 캐릭터를 절묘히 포착했고, 나문희는 그 기대에 100% 부응했다.


<아이 캔 스피크>는 누적 관객 수 2,406,163명을 돌파(10월5일 기준)하며 추석 연휴 기간동안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주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나문희가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다시 찾아올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위대한 배우' 나문희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70편이 넘는 드라마, 20편이 넘는 영화에서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왔던 나문희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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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섹시한 대사와 "온종일 그렇게 서 있을꺼야? 아님 싸울꺼야?"로 대변되는 유쾌한 액션. 무려 6,129,681명의 관객을 매료시켰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이 2편인 <킹스맨: 골든 서클>로 돌아왔다.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영화 속에 녹여냈던 매튜 본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고, 에그시 역의 태런 에저튼은 더욱 성숙해졌다.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에게 죽음을 당했던 해리(콜린 퍼스)도 (억지스러웠지만) 살아 돌아왔다. 이쯤되면 구색은 모두 갖춘 셈이다.



그런데 141분이라는 긴 런닝타임을 '견뎌내고', 영화관을 나서면서 냉정히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만족보다는 실망이 훨씬 크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이른바 '젠틀한 액션'으로 스파이 액션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혔던 <킹스맨>이었건만, 2편에서는 '껍데기'만 남은 그저그런 액션 영화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전작이 거둔 찬란한 성취 덕분에 '스케일'은 커졌지만, 커진 몸집에 비해 '스토리'는 허약해졌다. 내실 없는 업그레이드는 일종의 허탈함마저 준다. 


물론 전작의 미덕이 몽땅 사라진 건 아니다. <킹스맨> 특유의 '유쾌함'과 '잔혹함'은 그대로 유지됐다. <킹스맨: 골든 서클>은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유쾌한 액션과 잔혹한 감성을 조화시키려 노력했다. 여기에는 리드미컬한 음악이 (전편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힘을 보탠다. 프린스의 '렛츠 고 크래이지(Let’s go Crazy)' 같은 노래들 말이다. 씬스틸러로 맹활약하는 앨튼 존의 노래 '새터데이 나이츠 올라이트 포 파이팅(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도 윤활유 역할을 제대로 한다. 



전작의 빌런인 발렌타인의 빈자리는 포피(줄리안 무어)가 대체했다. 세계적 마약 조직 '골든 서클'의 수장인 포피는 친절함과 사악함이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역시 사무엘 L. 잭슨이 보여줬던 전형적이지 않은 빌런의 활약에는 미치지 못한다. 또, <킹스맨>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교회 몰살신'의 짜릿함을 재현하려 애썼지만, 그 감각적인 액션 장면을 대체하는 데는 실패했다. 의족 칼날로 사람의 몸을 반으로 잘라냈던 날카로운 액션(가젤)이 의수의 둔탁함(찰리)로 바뀐 데서 '눈치'를 채야 했다.


문제는 결국 스토리다. <킹스맨: 골든 서클>은 골든 서클의 미사일 공격으로 영국 스파이 조직인 킹스맨의 본부가 무참히 폭파당한 후의 상황을 그린다. 운 좋게 목숨을 건지게 된 에그시와 멀린(마크 스트롱)은 미국의 켄터키로 가서 형제 스파이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스테이츠맨'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리고 두 조직(한 쪽은 사실상 모든 기능과 능력을 상실했지만)이 힘을 합쳐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골든 서클의 음모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설정을 세계관의 확장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킹스맨의 남은 요원들이 스테이츠맨의 힘을 빌리는 정도에 관계 설정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가령, 진저(할리 베리), 데킬라(채닝 테이텀), 샴페인(제프 브리지스)은 존재감이 약해 캐릭터로서 온전히 기능하지 못했다. 그나마 에그시와 멀린을 간단히 제압했던 데킬라가 눈에 띠지만, 초반 이후에는 아예 활용조차 하지 않았다. 카우보이 액션을 보여줬던 위스키(페드로 파스칼)가 매력적이지만, 갑작스럽게 '배신자'가 되면서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비밀스러운 조직으로 그 위세가 크고 역사가 깊었던 킹스맨이 한 순간에 폭파돼 사라진다는 설정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려면 골든서클의 짜임새가 두터워야 하지만, 캄보디아 오지에 자리잡고 있는 골든서클의 비밀기지는 그저 '지뢰'로만 지켜지고 있을 만큼 허술하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무시무시한 로봇개가 있다고 하나 골든서클의 짜임새를 높일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애시당초 포피에겐 '킹스맨'이라는 조직을 제거할 만한 동기가 마땅치도 않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문은 위스키라는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과 그의 죽음이 온당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1편에서도 요긴하게 써먹었던 '배신자'라는 반전을 2편에서도 써먹기 위해선 누군가 재물이 될 필요가 있었겠지만, 위스키가 새로운 캐릭터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렇게 버리는 카드로 쓰기엔 너무 아까웠다는 생각이다. 또, 분쇄기에 몸이 갈리는 처참한 죽음을 당할 만큼 위스키가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의문이다. 딸과 아내를 잃었던 위스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죽음은 아니었을까.


굳이 여성의 질 안에 위치 추적기를 삽입하는 장면을 집어넣었어야 했을까라는 물음표도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실제로 이 장면은 여성 캐릭터를 성적 도구로 활용했다는 비판과 함께 '여성 혐오'와 관련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매튜 본 감독은 "에그시가 처한 도덕적 딜레마가 핵심이지 지금의 논란은 맥락에서 벗어난 거 같"다면서 "여성 차별 코드가 들어갔다는 것에는 동의 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최소한 불필요했을 장면을 통해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 <킹스맨: 골든 서클>은 3,683,978명의 관객을 동원(10월 5일 기준)하며, <남한산성>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 중이다. 1편이 뿜어냈던 매력에 흠뻑 빠졌던 팬들이 보기엔 다소 아쉬운 구석이 눈에 띠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화려하고 유쾌한 액션들은 관객들의 눈길을 휘어잡기에 충분해 보인다. 개봉 첫 주에 제작비 1억 400만 달러를 회수한 이후의 성적은 신통치 않은 편이지만, 글로벌 수익이 받쳐주고 있어 결국 3편 제작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부디 3편에선 보다 촘촘한 영화가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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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하나의 공간에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흐른다. 시간은 공간 하나를 유심히 살핀다. 그곳이 어느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카페'의 창가 쪽 테이블이라면 어떨까. 먼지는 청소를 하는 주인의 손길에 매일마다 지워질 테지만, '이야기'는 시간만큼 차곡차곡 쌓여 나갈 것이다. 그 이야기를 타이핑 해서 얇은 A4용지에 옮겨 적어 둔다 하더라도 카페의 지붕을 뚫고 나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 어쩌면 이미 달나라에 가 닿았을지 모를 일이다.

 

흐르는 건 시간뿐이라 그것만 변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시간이 스치고, 머물고, 할퀴고, 엉키고 지나가면 공간도 변한다. 아주 완연히, 그리고 현격히 변한다. 가끔 카페에 가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과 함께 있으므로 대화가 거의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앉아 있는, 혹은 항상 붐비는 저 창가 쪽 테이블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을까. 또, 어떤 이야기들이 머물다 갔을까. 어쩌면 저 테이블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더 테이블>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 같은 영화인데, 하루라는 시간동안 어느 한 카페의 테이블에 쌓인 4개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테이블은 어김없이 창가에 있고, 그 위에는 꽃이 들어 있는 작은 유리컵이 놓여 있다.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테이블이 분명하다. 간혹 창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결코 붐비진 않다. 카페의 분위기도 거리를 닮아 조용하고, 분위기가 있다. 카페 주인은 조용히 책을 읽으며 손님을 기다린다. 어쩌면 그도 귀를 쫑긋하며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첫 번째 이야기는 스타배우가 된 유진(정유미)과 전남친 창석(정준원)의 대화다. 재회의 첫 순간엔 묘한 설렘이 감돌지만, 금세 관계의 끝이 보인다. 눈치없는 창석은 급기야 유진에게 연예계의 낯뜨거운 루머들이 담긴 '찌라시'의 내용들을 캐묻기 시작하는데, 유진의 표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감정 변화가 흥미롭다. 두 번째는 과거 하룻밤을 보냈던 경진(정은채)과 민호(전성우)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만나 나누게 되는 대화다. 경진은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민호에게 화가 나 있고, 그 감정은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더욱 묘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결혼사기를 계획하고 있는 은희(한예리)는 결혼대행 업체를 통해 숙자(김혜옥)를 만난다. 은희의 역할은 숙자의 엄마인데, 두 사람은 완벽한 사기, 아니 결혼을 위해 입을 맞춘다. 네 번째 이야기는 서로에게 미련이 남은 남녀의 대화다. 다른 사람과 결혼을 앞둔 혜경(임수정)은 노골적으로 운철(연우진)의 마음을 떠보지만, 운철은 끝내 비겁한 태도로 일관한다. 헤어지기 직전, 그가 보여준 모습은 혜경에게 '최악의 하루'라 기억될 만큼 형편 없었다.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네 명의 배우는 각자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런닝타임에 70분에 불과하다) 속에서 극 속의 캐릭터를 설명할 뿐 아니라 자신의 매력도 분명히 표현한다. 이들이 작은 영화임에도 <더 테이블>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던 이유는 획일화된 한국영화 속에서 느꼈던 질식감 때문이었으리라. 최근 상영된, 그리고 상영되고 있는 한국영화들의 라인업을 살펴보라. 답답한 건 배우들만이 아니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을 그들이 <더 테이블>의 시나리오를 지나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김종관 감독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로 데뷔를 했던 정유미와 김 감독의 전작인 <최악의 하루>에 출연했던 한예리는 선택이 좀더 쉬었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최악의 하루>에서 한예리가 맡았던 역의 이름도 '은희'였다.) 지금부턴 포스터에 나오는 네 명의 배우 말고 다른 배우 이야기를 해보자. 바로 김혜옥이다. <더 테이블> 속의 인물들은 '거짓'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눈앞의 상대방을 속이려 든다. 하지만 그 거짓 속에 '진실'이 언뜻 보이고, 때로는 상대방에게 간파당한다.  

 

 

거짓이 난무하는 대화 속에서 '진심'이 우러나오는데, 그 조화가 가장 강렬하게 두러나는 이야기가 바로 세 번째, 그러니까 숙자와 은희의 대화다. 김종관 감독의 뮤즈로 떠오른 한예리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김혜옥의 그것은 순식간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감정을 움켜쥔다. 특히 은희로부터 어릴 적 집에서 불린 별명이 '거북이'였다는 말을 들은 숙자가 은희의 시부모 앞이라 가정하고 '딸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대사를 연습하는 장면은 여운이 길게 남는다.


1978년 연극배우로 무대에 데뷔하고, 1980년 MBC 특채 탤런트로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한 김혜옥은 연기 인생 초반에는 그리 이름을 떨치지 못했다.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왔지만, 주인공의 엄마를 비롯한 주변 인물을 맡아 스포트라이트에서 몇 걸음 비껴 있었다. 하지만 김혜옥은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 스타일을 제한된 캐릭터 속에 녹여냈고, 시청자들에게 김혜옥만의 무언가를 꾸준히 각인시켰다. 가령, 엄마 역을 맡더라도 '푼수 같은 엄마', '엉뚱한 엄마'처럼 특화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이런 차별화는 그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자 시청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김혜옥이 비로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건 그의 나이 40대 후반 무렵인데, KBS2 <올드미스 다이어리>(2004~2006)에서 건망증 심한 셋째 할머니 역을 맡아 전환점을 마련했다. 여세를 몰아 영화 <가족의 탄생>(2006), <육혈포 강도단>(2010)에 출연해 스크린에서도 역량을 뽐냈다. 김혜옥의 진가가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 작품은 <내 딸 서영이>(2012)였는데, 서영이(이보영)의 시어머니 차지선 역을 맡아 시청률 47.6%를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 

 


MBC <투윅스>(2013)는 김혜옥의 연기력과 카리스마를 최대치로 뽑아냈던 작품이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악역이었지만, 평면적이지 않은 복잡한 캐릭터였다. 조서희는 겉으로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 정치인이지만, 실제로는 조폭과 결탁해 온갖 이권을 챙기는 탐욕적인 인물이었다. 김혜옥은 분노와 절제를 섞어가며 그동안 쉽사리 보지 못했던 여성 악역을 완성시켰다. 그 뒤로도 김혜옥은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는데, 2014년에는 <왔다! 장보리>로 대박을 터뜨렸고, 현재는 <황금빛 내 인생>에 출연 중이다. 

한예리는 김혜옥이 상대배우라 은희 역이 더 매력적이라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그만큼 두 배우의 호흡은 기대 이상의 긴장감과 감동을 만들어냈다. <더 테이블>의 네 가지 이야기 중 남녀 관계가 셋이나 되는데, 그래서인지 은희와 숙자의 대화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더 테이블>은 개봉 11일 만인 지난 9월 3일 7만 관객까지 돌파했고, 9월 4일까지 73,333명을 동원했다. 이 작은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저력이 놀랍고 반갑기만 하다. 아마도 그 공은 포스터를 장식한 네 명의 배우와 숨겨진 히든 카드 김혜옥에게 돌려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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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