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하고 터졌다. '주말 + 크리스마스'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300만 명을 넘어 버렸다. 개봉 첫 날 39만 2,866명을 동원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던 <마스터>는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무려 182만 1,541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300만 고지를 거뜬히 넘었다. 누적 관객 수는 300만 2,269명.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특수를 제대로 누렸다. 별다른 경쟁작이 없는 상황이라 이런 추세라면 2017년 첫 1,000만 영화의 자리를 노려봄직하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꿈의 캐스팅에 엄지원, 오달수, 진경까지 특급 배우들이 참여한 <마스터>는 '진수성찬'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이 배우들을 데리고 못하면 내가 정말 못한 것"이라는 조의석 감독의 말처럼 '실패'를 예상하기 힘든 라인업이다. 관건은 '입소문'이다. '런닝타임이 너무 길다', '지루하다'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어 앞으로의 흥행 전선이 어떻게 형성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연말 + 연초'라는 또 하나의 특수가 기다리고 있어 <마스터> 입장에선 미소를 살짝 머금어도 될 것 같다.



1. <마스터>는 쉽다. 


"조희팔을 모티브로 한 것은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커서 그랬어요. 진현필을 필두로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부조리를 모두 진현필에 담아보려고 그랬죠."


조의석 감독은 <마스터>가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사기 사건인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혔다. 조희팔이 누구인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0여 개의 피라미드(다단계) 업체를 통해 투자자 약 3만여 명으로부터 무려 4조 원을 가로 챈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표현조차 너무 낭만적이라 죄송하다)이다. 사기 행각이 들통나고, 검찰이 기소를 하기 직전 조희팔은 중국으로 밀항에 성공한다. 신분을 숨긴 채 중국에서 숨어 살아가던 조희팔을 수사하던 경찰은 2012년 5월 난데없이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발표한다. 


"조 씨가 지난해(2011년) 12월 중국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으며, 같은 달 국내로 유골이 화장되어 이송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정말 조희팔은 사망했는가? 경찰이 '조희팔은 죽었다'며 제시한 증거는 응급진료기록부, 사망진단서, 화장증명서, 장례식 동영상 등이었다. 하지만 사망진단서에 공안의 직인이 없었고, 화장증명서에는 조희팔이 사망한 날의 일주일 전 날짜 도장이 찍혀 있는 등 의심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았다. 결정적으로 조희팔의 유골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조사를 의뢰했지만, '감식 불가'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조희팔의 위장 죽음에 대한 의혹은 커져만 갔다. 결국 경찰은 "사망했다고 판단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물러서야만 했다. 



조의석 감독이 '조희팔 사건'을 끄집어낸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매력적인 소재'였기 때문이다. '사이즈'가 대충 나오지 않는가. 이건 1,000만 영화의 '사이즈'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카드'까지 손에 거머쥔 조 감독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부터 기조는 이랬을 것이다. '쉽게 가자, 쉽게' 그래서 <마스터>의 구도는 명확하다. 사기꾼 진현필이라는 '악'이 있고, 그를 잡아들이려는 경찰 김재명(강동원)이라는 '선'이 맞선다. 그 사이를 줄타기하며 오가는 박장군(김우빈)은 '정의'라는 이름에 감복해 '새사람'이 된다.


'오락 영화'이자 '1000만 영화'라는 쉬운 길을 선택한 <마스터>는 '조희팔 사건'이 담고 있는 문제(천민자본주의나 정경유착 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지적으로 뛰어난 인간들, 그것이 사기꾼이든 경찰(영화 속에서 김재명은 진현필을 속일 만큼 명석한 두뇌를 자랑한다)이든 간에, 그들 간의 '전쟁'으로 몰아간다. 여기에 조희팔에게 돈을 갖다 바친 사람들, 그 평범한 이들은 '욕망'의 노예가 된 '바보'에 불과하다. 똑똑한 사람들은 그 바보들을 등쳐먹고, 어쩌면 그들을 대신해서 '정의'를 외친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2. <마스터>는 헷갈린다.


<마스터>의 런닝타임은 143분이다. 제법 길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런닝타임이 너무 길다'고 말한다. 사실 영화가 길다는 건 그 자체로 흠이 아니다. <곡성>만 156분이나 되고, <타이타닉>은 195분이다. 문제는 여기에 한마디가 덧붙여진다는 것이다. 바로 '지루하다'는 혹평이다. 이건 치명적이다. 그것도 범죄, 액션 영화가 지루하다니! '조희팔 사건'이라는 영화적으로 가장 구미가 당기는 소재에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재료'까지 갖춘 <마스터>가 지루한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은 분명 <마스터>의 삼각축이다. 영화는 초반의 긴 시간을 인위적으로 배분해 세 인물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그건 '설명'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보여주기'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단조로운 캐릭터가 입체감마저 잃어버렸다. '정의'를 부르짖은 김재명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라 매력적이지 않다. 강동원의 비주얼이 빛을 발하지만,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눈길은 절대 악이라고 할 수 있는 진현필에게로 자꾸만 쏠린다. 


<베테랑>에서 유아인을 통해 증명된 것처럼, 악역이 살아야 영화 전체가 살기 마련이다. 이병헌은 발군의 연기를 통해 진현필을 묘사한다. 하나의 감정만을 얼굴에 드러내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이병헌쯤 되는 배우는 다양한 감정들을 얼굴에 녹여낸다. 그의 연기를 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문제는 <마스터>가 원하는 건, '조희팔=사기꾼'이라는 공식일 뿐 관객들이 그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을 차단한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이병헌의 연기는 뭔가 '소비'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병헌의 진현필은 지나치게 매력적이고, 영화는 관객들이 진현필에 감정이입을 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그는 사기꾼 조희팔의 모방이 아닌가. 그는 나쁜 놈이고,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관객들이 기댈 곳은 박장군뿐이다. 생존을 위해 진현필과 김재명 양쪽을 '박쥐'처럼 오가는 박장군은 그나마 가장 '친근한' 캐릭터다. 김우빈은 다양한 표정과 과장된 제스처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물하지만, 판에 박힌 스토리 라인과 결말을 구제하기엔 역부족이다. 


관객들의 헷갈림은 바로 애매한 삼각축이 만들어 낸 부조화에서 비롯되고, 관객들이 느끼는 지루함 역시 여기에 책임이 있다. 밋밋한 인물 소개 따위는 과감히 잘라버리고, 차라리 후반부에 펼쳐지는 진현필과 김재명의 진검승부에 좀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삼각축에 대한 인위적 배분을 포기하고, 하나의 축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지루하다'는 평은 듣지 않게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마스터>는 한국영화의 기술적인 완성도가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그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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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라랜드(La La Land) 

1.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 LA의 별명

2. 꿈의 나라, 비현실적인 세계를 의미


우연한 만남이 세 번이나 연속된다면 인연이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미아(에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LA의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처음 마주친다. 정체된 도로가 풀리기 시작했는데, 오디션 대본에 읽느라 집중하고 있던 미아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뒤에 있던 세바스찬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날카로운 경적 소리를 울려 대곤 미아를 잔뜩 노려보고 질주한다. 물론 대찬 성격의 미아도 거기에 뒤지지 않는 반응과 제스처로 화답한다. 와우, 첫 번째 우연은 '악연'이었다. 


두 사람은 이내 또 마주치게 된다. 길을 걷고 있던 미아는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어느 재즈바로 발길을 옮긴다. 이럴수가. 경적을 울리던 고속도로의 그 남자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이라니. 세바스찬은 마침 '해고'를 당했고, 기분이 좋을 리 없는 그는 미아가 건네는 인사를 묵살한 채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친다. 두 번째 우연도 '악연'이었다. 여기에서 끝났다면, 두 사람은 '인연'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곧 세 번째 만남이 이뤄진다. 파티에 참석한 손님과 출장을 온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로 만난 두 사람. 그들의 '운명'이 시작됐다.



"2시간 동안 마법처럼 반짝이는 밤하늘로 데려간다." <텔레그래프>

"대공황 시기 미국 뮤지컬계의 전설 프레드 아스테어가 세운 '뮤지컬 영화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진정 어린 노력이다." <뉴욕타임즈)


<라라랜드>는 <위플래쉬>를 연출했던 데미언 채즐(Damien Chazelle)의 후속 작품이다. 그는 전작인 <위플래쉬>에서 '최고의 재즈 드러머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청년 앤드류(마일스 텔러)와 재능을 극한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강압적인 교육 방식을 채택한 교수 플렛처(JK 시몬스)의 이글거리는 욕망과 그 치열한 부딪침을 '음악'을 통해 풀어냈다. 무엇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강렬한 사운드는 관객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전율을 느끼게 했다.


여전히 '음악'은 적절하고, '꿈'을 향한 도전 역시 유효하다. 하지만 '광기'에 차있던 <위플래쉬>와 달리 <라라랜드>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관객들을 홀린다. 아마도 그건 '낭만'이 아닐까. 기회의 땅이자 꿈의 공간 미국의 LA, 도시 전체를 '뮤지컬' 무대로 삼은 <라라랜드>는 아름답다. 2시간 동안 영화를 어루만지는 재즈 선율은 그 음악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세바스찬과 미아로 대표되는 청춘의 꿈과 사랑, 열정과 도전은 역시 그 자체로 아름답다.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가 사람들로 외면받는 현실이 마뜩지 않다. 그는 정통 재즈 클럽을 열어 그 안에서 사람들에게 마음껏 연주를 들려주는 게 목표다. 미아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LA로 왔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틈이 오디션에 참가하지만 번번히 오디션에서 낙방한다. '실패'의 아픈 경험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며 로맨틱한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이뤄지지 않는 꿈, 도달하지 못한 이상은 곧 두 사람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라라랜드>는 마냥 로맨틱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슬프고, 아련하고, 때론 '비릿'하다. <라라랜드>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꿈'과 '사랑'을 다 이룰 순 없는 거라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고, 한 가지를 가지면 하나는 손에서 놓아야 한다고 말이다. 결국 인생은 '선택'이고, 우리는 그 결정의 순간에 서게 된다고. 무엇을 잡을지는 결국 너의 몫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만약(What if)'이라는 상상을 통해서만 그 선택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건 행복한 반추(反芻)일까, 쓸쓸한 되새김일까.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데미언 채즐의 세계관은 제법 비관적이다. 혹시 그건 재즈 드러머를 꿈꿨지만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버드 대학 영상학부에 입학하며 영화 감독으로 삶의 방향을 바꿨던 그의 개인사와도 연결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의 영화들이 대한민국에서 더욱 사랑받는 까닭(21일까지 누적 관객 수 1,509,373명)도 한국 관객들이 '낭만' 아래 깔려 있는 '비관'을 직관적으로 낚아챌 수밖에 없는 씁쓸한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1960년대 프랑스 감독 자크 드미의 작품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데미언 채즐은 <라라랜드>를 통해 클래식한 뮤지컬 영화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안정적인 연기와 두 배우 간의 호흡이 돋보이는 춤과 노래는 경쾌하고 흥겹고 때론 가슴 시리기까지 한다.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추천할 만한 영화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색하거나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단순히 박스오피스 순위만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이라면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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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과거를 향한) 타입슬립'은 '후회'와 동의어에 가깝다. 그 태도는 소극적인 '관조'라기보다는 적극적인 '욕망'에 가깝다. '과거를 바꾸고 싶다, 그래서 현재도 변화시키고 싶다'는 바람의 적극적 투영이다. 어쩌면 그 사고방식은 어린아이의 '떼쓰기'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지지 못한 것(사람)을 기어코 내 손안에 넣고야 말겠다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욕심이 만들어낸 판타지가 결국 '타입슬립'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현실'의 모든 것을 놓쳐도 상관없다는 무책임함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쯤되면 간단히 소극적이라 치부했던 '관조'는 오히려 성숙함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딱 한번만 보고 싶다, 그거면 됐다는 '연민'은 자신을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나오는 '힘'이다. 그런데 시간 여행을 떠난 우리들은 과연 거기에서 멈출 수 있을까.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기만 하는 데서 만족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과거를 향해 몸을 움직인 순간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고, 욕망은 그 연약함을 오래도록 지배해왔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어. 지금 이 순간 역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고."

"당신에겐 과거지만 나한텐 미래에요. 그 미랜 내가 정하는 거고!"


현재의 한수현(김윤석)은 캄보디아에서 의료 봉사를 하던 중 한 소녀를 치료하고, 소녀의 할아버지로부터 답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10개의 알약을 받는다. "삶은 당신이 잠들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한 알을 삼킨 그는 딱 30년 전인 1985년으로 돌아가 과거의 한수현(변요한)을 만난다. 그건 '갈망' 때문이었다. '폐암'으로 죽음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던 한수현은 '회한'처럼 남아 있던 첫사랑,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했던 연아(채서진)를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30년 후의 한수현이 굳이 과거까지 찾아와 연아를 만나려 한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낀 과거의 한수현은 결국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처음에는 '타입슬립'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과거의 한수현은 끔찍한 사고를 막기 위해 미래의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과거가 바뀌면 현실이 뒤죽박죽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현재의 한수현은 '관조'에 그치려 했지만 이 상황에서 발을 빼긴 이미 늦어버렸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두 사람(아니, 한사람 인가?)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이미 '현실'을 변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는 과거를 바꾸고 싶지 않은 미래의 나와 현실을 바꿔야만 하는 과거의 나 사이의 충돌이다. 기존의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수많은 이야기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이 싸움의 승자는 당연하게도 과거의 나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과거의 한수현은 보다 강력하게 현재의 한수현을 압박하고, 이를 실감한 현재의 한수현은 과거의 자신에게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김윤석은 기존의 강(强)의 연기를 버리고 힘을 뺀 채로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중년의 수현을 연기했다. 과거의 연아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헬륨 풍선을 들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반갑기도 했다. 변요한은 대선배 김윤석을 상대로 자신만의 연기 내공을 뽐냈는데, 젊음의 강렬함과 동시에 유약함과 미숙함을 적절히 표현해냈다. 깊은 눈빛을 통해 발현되는 내면 연기는 그가 앞으로 충무로를 이끌 배우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두 배우는 케미가 잘 맞을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닮았다.



또, 김옥빈의 여동생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채서진은 배우로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수현의 친구 역할 태호 역을 맡은 김상호와 안세하는 이야기가 다소 무거워지거나 전개가 뻑뻑해질 때 쯤이면 어김없이 등장해 '웃음'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타입슬립'이라는 판타지 소재를 가져왔으면서도 굳이 시간을 이동할 때 쓸데없는 CG를 쓰지 않은 부분은 오히려 담백했다. 잘 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없애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첫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부성애'까지 놓치지 않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는 추운 겨울에 관객들을 따스하게 위로한 좋은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물론 숱하게 나왔던 '타입 슬립'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개연성을 기대하진 말기 바란다. '적절한' 이야기를 '적절한' 수준에서 매듭 지은 탓에 '틈'이 존재하지만, 어차피 '감성'에 무게를 둔 영화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에 초점을 맞춰 마음 편히 감상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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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 오래다. 영화 <내부자들>로 제37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병헌은 "<내부자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은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겨버린 상황"이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현실이 영화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어버린 상황, 사람들은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작년 이맘때, 정경언 유착을 밀도 있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던 <내부자들>을 지금에서 본다면 우리는 '시나리오가 좀 약하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12월 7일 개봉한 영화 <판도라>는 매우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개봉한 셈이다.



<판도라>는 지진 발생에 이은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재난 영화'다. 예고 없이(사실 예고와 징후는 숱하게 있었다. 단지 외면하고 회피하고 은폐했을 뿐.) 찾아온 초유의 재난과 그로 인한 극심한 혼란 양상을 다룬다. 이 영화가 기획되고, 촬영에 돌입했을 때 사람들은 '비현실적'이라 말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정부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의 주장이었고, 이것은 토를 달아서는 안 될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발전소에서 근무하며 원자력 발전의 효용성을 홍보하는 연주(김주현)도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 누군가는 <판도라>를 두고 '껄끄럽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법하다. 대한민국은 25기의 원전을 보유한 세계적인 원전 강국(!)이다. 미국(99기), 프랑스(58기), 일본(43기), 러시아(35기), 중국(32기)에 이어 무려 세계 6위다. 앞으로 33기까지 늘어날 전망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추세는 탈핵 · 탈원전을 추구하고, 그 실천 방안을 논의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 놀랍기만 하다. 설득력 있는 문제제기마저 모조리 '괴담'과 '루머'로 몰아가는 '윗분'들의 명쾌한 사고방식은 <판도라>가 흥행에 성공해 원자력 발전에 대해 의문을 갖는 상황이 끔찍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하랴. 개봉 첫 날, 박스오피스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니 말이다.



'비현실적'이고, '껄끄러운' 이 영화에 사람들은 어째서 호응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사람들은 원전 사고를 '비현실적'인 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두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다. 첫 번째는 후쿠시마 원자력 폭발 사고다.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바다 밑에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최대 38.9m에 이르는 초대형 쓰나미가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후쿠시마를 덮쳤다. 제1원전 단지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고, 방사능이 고스란히 유출됐다. 직간접 피해자가 2만 명에 이르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17만 명이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만 피폭당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태평양을 방사성 물질로 오염시킨 세 번째 나라로 세계인에게 회자될 것이다. 또한 대기권에서 원폭실험을 한 미국이나 과거의 소련과 함께 대기 중에 방서성 물질을 대량으로 방출한 나라의 일원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전 세계가 후쿠시마의 교훈을 공유해야 할 터이며, 사고의 경과와 책임을 포장하고 은폐하지 말아야 한다. 밝힐 것을 밝히고 더 나아가 솔선하여 탈 원전사회, 탈 원폭사회를 선언하고 그 모델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야마모토 요시타카,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 세계를 충격 속으로 몰아 넣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라는 '달콤함'을 취하기에 원전은 지나치게 위험했다. '안전'이라는 문제에 있어 '만의 하나'라는 레토릭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내진 설계가 완벽하다던 원전이 폭삭 내려앉고, 방사능이 바다와 공기로 스며드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목도한 상황에서 '제로에 가깝다'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탈핵 · 탈원전 선언이 잇따랐고,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본의 바로 옆에 위치한 대한민국에선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고, 남의 일처럼 여겼다. 



하지만 앞으로 이야기 할 두 번째 사건은 첫 번째 사건을 '현실'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지난 9월 12일 경주시 남남서쪽 8km 지역에서 발생한 5.8 규모의 강진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고, 더 이상 지진의 공포를 '비현실적'이라든지 '상상 속의 일'로 여길 수 없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후쿠시마에서 발생했던 원전 사고 역시 '가능성 제로에 대한 희박한 문제제기'로 남겨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진앙지를 중심으로 반경 50km 이내에 원전 12기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한반도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고, 따라서 후쿠시마의 재앙이 재현될 가능성은 결코 제로에 가깝지 않다.


<판도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어떤 재난이 발생하는지를 그려낸다. 활자로만 접하던 상황들을 영상으로 접할 때 실감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물론 영화적으로 볼 때,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판도라>는 <터널>이 제시했던 재난 영화의 '새로운 접근'보다는 <해운대>나 <타워>와 같은 교과서적인 접근에 머문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여주고, 재난을 통해 이를 붕괴시키는 전개는 다소 상투적이다.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희생 정신을 발휘하는 재혁(김남길)을 비롯한 원전 직원과 급박한 상황 속에서 냉철함을 잃지 않고, 무능한 관료들과 맞서 싸우는 발전소 소장 평섭(정진영) 등 주요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또, 가족애를 강조하는 후반부의 몇몇 장면들은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 뻔히 들여다보인다. 무능한 대통령과 은폐를 시도하는 정부라는 설정도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그럼에도 '원전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판도라>는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필요한 영화"가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후쿠시마 방사능 관련 영화 <스톱>이 <판도라>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판도라>가 보여주는 것처럼, 원전으로 인한 재앙은 한 개인의 영웅적인 희생으로 극복될 수 없는 것이고, 발생하는 순간 아무런 대책과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판도라>는 이 부분을 놓친 채 '감동'에만 매달린다.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판도라>의 대중적인 선택을 존중한다. 영화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원전 사고'라는 재난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문제를 다양한 루트를 통해 공론화시켜 원전 정책을 재고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 말이다. <판도라>가 분명 그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경고등은 이미 여러차례 울렸다. 심지어 옆 나라는 재앙을 직접 겪기도 했다.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문제들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결국 '반복'되는 역사는 우리에게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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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의 시나리오에서 '엄마' 역할을 제외시켰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없어진 자식을 찾는 엄마는 너무나도 강하다. 약점이 없는 주인공이 나오면 영화가 성립이 안 된다." 모성(母性)의 위대함은 '인간'에서 출발했지만, '인간'을 간단히 뛰어넘어버린다. 그래서 그 힘은 초인적이고, 심지어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섣불리 끝을 잴 수 없고, 애시당초 깊이를 알 수 없다. 한계가 없다. 그걸 간파했던 봉 감독은 <마더>를 통해 '모성'을 따로 다루는데, 김혜자가 구현한 '마더'는 '엄마'라기보다는 '어미'에 가깝다.


그밖에 '모성'을 이야기한 영화로 김윤진이 주연을 맡았던 <세븐데이즈>를 빼놓을 수 없다.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한 엄마의 사투가 강렬히 표현됐는데, 과감함 액션과 김윤진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가 잘 버무려졌다. 팽팽한 긴장감이 살아있는 영화였다. 최근 작품 중에는 장르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개성이 넘치는 <비밀은 없다>가 떠오른다. 자신만의 처절한 복수를 완성시켜 나가는 광기어린 모성을 그려낸 손예진은 연기의 스펙트럭을 확장하는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다.



이처럼 '모성'을 다룬 영화는 제법 많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 (이하 <미씽>)가 '모성'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었다면, 그러니까 (또 다시) '사라진 아이를 찾는 엄마의 이야기'였다면 뻔하다 여겼을 것이다. 식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목을 유심히 봤다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사라진 아이'가 아니라 '사라진 여자'다. 그렇다. <미씽>에는 엄마 지선(엄지원) 외에 또 다른 여자가 등장한다. 바로 보모 한매(공효진)다.


지선은 싱글맘이자 워킹맘이다.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어린 딸을 키우지만 사정이 녹록치 않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중국 출신의 보모 한매를 고용해 다은을 맡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매가 다은을 데리고 사라져 버린다. 의사인 전 남편은 지선이 양육권 분쟁 때문에 아이를 일부러 숨긴 것이라 여기고, 경찰도 이에 동조하는 눈치를 보인다. 결국 지선은 스스로, 직적, 아이를 찾아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조금씩 한매의 정체에 접근해간다. 이름도 신분도 가짜였던, 한매라는 인물에 대해서 말이다.



<미씽>이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그리하여 특별해지는 포인트는 바로 '한매'다. 한국 농촌으로 시집을 온 중국 여성 한매는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갖은 폭언(시어머니는 한매를 두고 '사왔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에게 한매의 역할은 아들을 낳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과 폭행에 시달리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다. <미씽>은 한매라는 인물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위치와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한국 국적에 번듯한 직장을 가진 지선의 위치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전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시달리고,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그는 한매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분명 두 사람은 계층도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도 다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처해있는 위치와 상황은 그들 사이에 '유리벽'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선과 한매는 '모성'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결국 화해한다. 초반에는 제법 명확하게 구분될 것 같던 '가해'와 '피해'가 전복되고, 심지어 그 구분의 의미조차 상실한다. 



이전에 '모성'을 다뤘던 영화들이 결국 '분노'와 '복수'로 귀결(반전을 통해 모성 간의 충돌을 그려냈던 <세븐데이즈>조차도 그러했다)됐다면, <미씽>은 그 뻔함을 넘어 '모성'을 통한 '여성'들의 공감과 연대로 나아간다. '모성'으로 시작해 '여성'으로 끝난다고 할까? 그 결이 다른 접근과 태도가 이 영화를 더욱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 물론 영화적으로 보면 '스릴러'라는 장르로서의 재미는 다소 떨어진다. 무엇보다 너무 쉽게 이야기(사건)가 풀려나가는데, 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빨리 들려주고 싶은 감독의 조바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상업성'의 지배에 사실상 무릎을 끓은 한국영화는 판에 박힌 기획과 캐스팅을 반복해왔다. '남자 배우'들이 전면에 내세워졌고, '여자 배우'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왔다. 그와 같은 편향된 흐름은 최근에 들어 더욱 심화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자 배우 두 명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는 영화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얕은 수준의 접근이 아니라 탄탄한 이야기 속에서 호흡하는 캐릭터를 소화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공포, 드라마, 멜로, 코미디 등 장르 불문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는 엄지원과 TV 드라마 속 '공블리'라는 틀을 깨고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 공효진은 <미씽>을 통해 배우로서 자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엄지원은 히스테릭한 목소리와 섬세한 표정과 동작으로, 공효진은 특유의 무표정과 처연한 눈빛으로 각각의 캐릭터를 완벽히 표현해냈다. 두 배우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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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스플릿>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답답한 때 시원한 스트라이크가 될 수 있는 영화" 정말 그렇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굳은 확신을 의심케 할 만한 일들이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돌이키는 건 불가능하다 여겼던 최소한의 '근대성(近代性)'조차 무너지고 있는 시절이 아닌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허약함이 또 한번의 발작(發作)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이를 목도하는 우리들의 시선은 어느새 '불안'으로 그득하다. 


퍽퍽한 현실, 어느 때보다 '스트라이크' 같은 시원함이 필요한 시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링'을 소재로 한 겜블(도박) 영화인 <스플릿>은 이런 현실에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거침없이 굴러간 공이 세워진 핀을 몽땅 날려버리는, 시원히 꽂히는 스트라이크를 보고 있노라면 막혔던 속이 뻥 뚫리듯 마음이 후련해진다. 물론 다시 꿉꿉한 현실로 돌아와야 하지만, 잠깐의 외도(外道)는 괜찮지 않을까? "뉴스가 제일 재밌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뉴스에 관객을 뺏기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최국희 감독의 걱정이 안쓰럽게 들린다.



"볼링이 왜 사람을 미치게 하는 줄 알아? 다음에는 꼭 스트라이크를 칠 것 같거든"


<스플릿>은 제작비 30억에 총 50억 정도가 들어간 중예산 영화다. 사이즈가 크진 않지만, 내용이 제법 알차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스플릿>은 스포츠와 도박을 버무린 오락 영화다. 그 안에 '권선징악'과 '휴머니즘'을 잘 녹여냈다. 어찌보면 뻔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볼링'이라는 낯선 소재가 그 익숙함을 상당히 지워낸다. 다양한 모습의 볼링장과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호쾌하고 리얼한 사운드는 자존심을 건 승부의 긴장감과 짜릿함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철종(유지태)은 볼링계의 전설이라 불리던 국가대표 출신의 볼링 선수였다.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다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철종은 도박 볼링판을 전전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그의 파트너인 도박 볼링 브로커 희진(이정현)은 볼링 코치였던 아버지로부터 볼링장을 물러받아 운영하다 빚을 지는 바람에 두꺼비(정성화)에게 볼링장을 통째로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지적 장애가 있는 볼링 천재 영훈(이다윗)을 만나게 되면서 반전(反轉)의 계기가 마련된다.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폼으로 투구를 하는 영훈이지만, 실력만큼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철종은 백발백중 스트라이크를 성공시키는 영훈을 도박 볼링판으로 이끈다. 물론 악의적인 접근이다. '재능'을 '돈'으로 환산하는 '어른'들의 욕망이 불편하고, 지적 장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과 비뚤어진 시선이 끊임없이 노출된다. 결국 '휴머니즘'으로 귀결되지만, <스플릿>은 영훈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트레이드 마크이다시피 한 '슈트'를 벗어던지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온 유지태는 거칠면서도 따뜻한 철종 역을 잘 소화했다. tvN <굿와이프>에서 보여줬던 악랄한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연기의 결을 보여줌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만큼 캐릭터에 대한 분석이 뛰어나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독특한 연기로 청룡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이정현도 과하지 않은 담백한 연기를 펼쳤다. 철종에 대한 열등감 혹은 '살리에르 증후군'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악역 두꺼비를 입체적으로 살려낸 정성화의 연기도 탁월했다.



무엇보다 돋보였던 건 자폐 증상이 있는 볼링 천재 영훈 역할을 완벽히 소화한 이다윗의 연기였다. 대중에겐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그는 9살이었던 2003년 KBS1 <무인시대>로 데뷔한 14년 차 배우다. <시>, <고지전>, <더 테러 라이브>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스프릿>에서 '영훈'은 이야기 전개의 핵심적인 키이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갈등의 재료나 웃음의 소재로 소비되기 쉬운 캐릭터였다. 하지만 눈빛, 말투, 습관, 틱 등 캐릭터를 디테일하게 살려낸 이다윗의 진솔한 연기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이른다.


영화의 제목인 '스플릿(split)'은 볼링에서 첫 번째 투구에 쓰러지지 않은 핀이 간격을 두고 남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스페어 처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큰 실수를 뜻한다. 이는 곧 주인공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현실에서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도 곧 '스플릿'처럼 난해한 국면이 아닐까. 풀어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대답을 찾아낼까. 영화 속에서는 스플릿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면서 '웃음'을 되찾지만, 그야말로 개판이 돼버린 현실에선 어떨까? 아, 속이 뻥 뚫리는 스트라이크가 절실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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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스트레인지>의 기세가 무섭다. 이틀 동안 78만 2,192명의 관객이 마블의 새로운 히어로를 만났다. 100만 돌파는 시간 문제로 보인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믿고 보는 마블'이라는 신뢰감을 또 한번 상기시켰다. 이젠 확신을 갖고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마블은 영화를 잘 만든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블은 DC에 비해 훨씬 더 영화를 잘 만든다최근작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퀸' 하나만 남기는 처참한 실패를 거둔 DC와 만드는 족족 '대박'을 치는 마블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그건 '자기성찰'의 유무(有無)라는 생각이 든다. 마블은 자신들의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들의 성향과 바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바탕으로 경쾌한 시나리오를 얹고, 화려한 비주얼로 부드럽게 감싼다. 엄격한 개연성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수준의 유머 감각을 섞는다. 그리하여 대부분 '비슷비슷한 영화'가 되지만, 주기적으로 스펙터클한 히어로물을 찾는 관객들의 기대치에는 근접시키고 있다. 마블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이 필요한 만큼만 만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DC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후 끝없는 방황을 계속하고 있다. 그 높은 '성과'를 따라잡기엔 후발주자들의 '역량'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마블을 흉내내며 가볍게 스텝을 밟자니 기존의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그렇다고 마블처럼 매끄럽게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제작을 둘러싸고 벌어진 잡음과 처참한 결과물은 DC가 처해있는 난맥상을 잘 보여줬다. 앞으로 <원더우면>, <저스티스 리그>, <아쿠아맨> 등의 개봉을 앞둔 DC의 행보가 여전히 불안한 까닭이다.



마블의 체계성과 영리함은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도 돋보인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을 필두로 기존의 마블 영웅들이 악의 '물리적 위협'에 대항했다면,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법의 위협'에 대항하는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내세운다. 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의 확장이라 일컬어도 무방하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유체이탈, 염력 등 각종 '마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존재는 앞으로 마블 히어로물에서 '연결고리'이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안하무인(眼下無人)한 신경외과 전문의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학술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두 손에 큰 부상을 당하고 만다. 신경이 손상된 그는 더 이상 유능한 의사일 수 없었고, 깊은 자괴감과 절망감에 빠지고 만다. 치료를 위해 여러 최첨단 의학에 기대보지만, 완쾌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다 우연찮게 '카마르-타지'의 존재를 알게 되고, 네팔 카트만두로 찾아가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의 제자가 된다.



에인션트 원이 보여주는 초자연적 현상을 목도한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새로운 세계, 다중 세계(멀티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리한 마블은 이 복잡한 개념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킬 마음이 애초부터 없다. 오히려 크리스토퍼 놀란이 <인셉션>에서 구현했던 '시각적 쾌감'을 더욱 발전시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현실의 공간이 해체되고, 도심의 건물들이 상하좌우 제멋대로 움직이는 장면들은 온몸을 긴장시키는 데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물론 <매트릭스>와 <인셉션>이 쌓은 각자의 영역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두 영화가 가진 매력들을 한 바구니에 예쁘게 담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그것이 마블의 목표였으니, <닥터 스트레인지>의 도전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아쉬운 점도 여러군데에서 눈에 띤다. 다소 진부한(좋게 말하면 평범한) 스토리 전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에인션트 원의 제자가 되는 과정, 그러니까 캐릭터의 변화 과정이 상당히 뻔하다. 진부한 영웅 서사와 평범한 악, 이 대결 구도가 큰 흥미를 일으키진 않는다.



또, 여성 캐릭터의 활용도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도 아쉽다. 우선, 틸다 스윈튼의 에인션트 원은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였음에도 영화 속에서는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채 밋밋하게 그려졌다. 원작 속에서 에인션트 원이 동양인 남성이었지만, "동양인에 대한 클리셰를 깨고 싶었다"는 스콧 데릭슨 감독의 의지에 따라 '백인 여성'을 캐스팅했다면, 좀더 설득력 있게 그려냈여야 했다. 또,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크리스틴 팔머(레이첼 맥아담스)도 철저히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고 말았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닥터 스트레인지>가 구현해 낸 세계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경이롭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의 최첨단 영상을 넋놓고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115분이 후딱 지나가 버릴 것이다. 진정한 신스틸러인 '망토'의 활약도 숨겨진 포인트다. (쿠키 영상 2개도 놓치지 말자!) 무엇보다 BBC One <셜록>을 통해 가장 섹시한 남자로 자리매김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활약은 넋 놓고 바라보기에 충분하다. 캐릭터의 연속성을 살린 마블의 캐스팅은 또 한번 말하지만 영리했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아찔한 현실 왜곡 못지 않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혼란'을 실체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닥터 스트레인지가 시전(始展)하는 마법은 정말 유혹적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니! 아, 정말 갖고 싶은 마법이 아닌가? 처참히 망가져 누더기가 된 이 세계에 닥터 스트레인지의 소환을 바라는 나의 바람이 참으로 순실(淳實, 순진하고 참되다)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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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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