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0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리라 짐작했었지만, 전반부의 분위기가 썩 긍정적이지 않았다. 피가 말랐고, 입이 바짝 말랐다. 비단 나뿐이었겠는가. 온 나라가 그러했을 것이다. ‘긴장감 지수’라는 수치를 측정하는 기계가 있다면, 아마 버텨내지 못하고 고장나버리거나 폭발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팽팽한 줄처럼 날이 선 긴장이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었다. 그의 입 모양에 주목했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들려 온 ‘결말’.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담담한 목소리로 단호히 말했다. 이 한 마디를 위해 이토록 오래 숨죽였던가. 시원함과 허탈함이 공존했다. 어딘가에는 탄식이 혹은 분노가, 어느 곳에서는 환호와 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무거운 시작이 열린 순간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두괄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록 쫄깃한 긴장감은 없었겠지만, 불필요한 시간 낭비와 감정 소모를 덜어준다는 점에서 두괄식이 갖는 장점이 새삼 간절했다.

 


만약 화성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가 화성에 착륙했을 때 실제로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프로듀서 데이비드 엘리슨)

 

그래서일까. (벌써 두 문단이나 써버리고 말았지만) 문득 이 글은 ‘두괄식’으로 풀어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라이프>는 ‘퇴보(退步)’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가령, ‘분단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들에 비유를 해보자. 이 계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쉬리>(1999)의 경우, ‘분단’이라는 비극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각각 남과 북의 특수요원이었던 유중원(한석규)와 이명현(김윤진)은 연인이자 적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끝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남북의 첨예한 대치와 대립 속에서 ‘개인’의 관계는 성립될 수 없는 종속적 관계로 그려졌다. 개인 간의 사랑, 우정 더 나아가 연대는 실패로 귀결됐다. 하지만 분단의 아픔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당시 북한에도 통일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2000)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정상 회담이 개최되면서 남북이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었던 시점에 개봉됐다. 그 또한 비극적 결말로 귀결됐지만, 남북의 군인들이 서로 왕래를 하며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했던 유의미한 영화였다.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형제애’를 통해 남과 북의 관계를 설명하려 애썼고,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웰컴 투 동막골>(2005)은 ‘동막골’이라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국군과 인민군, 미군인 스미스가 힘을 모아 연합군에 대항하는 기발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국가대표2>(2015)는 ‘자매’라는 관계를 통해 갈등과 화해를 담아냈다. 그리고 2017년 개봉했던 <공조>는 남북의 형사가 함께 수사를 하며 인간적인 정을 쌓아가는 모습을 경쾌하게 그려냈다.

 

이처럼 분단문제를 다룬 영화의 계보를 살펴보면, ‘비극’에서 ‘희극’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어왔다. 남북의 긴장 관계는 현존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개인의 관계까지 결정짓는 절대적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만약 이 ‘흐름’을 부정하고 <쉬리>의 비극으로 회귀하려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면, 그를 두고 ‘퇴보’라 부르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외계 생명체와의 적대적 관계를 답습한 <라이프>는 분명 퇴보라 할 수 있다.



우주 정거장에 머물며 화성 탐사선 필그램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던 6명의 우주인은 8개월 만에 돌아온 필그램이 가져 온 ‘샘플’에 환호한다. 화성에서 채취한 토양 속에서 놀랍게도 외계 생명체가 확인됐고, 최초의 그리고 위대한 발견에 지구 전체가 들뜬다. ‘캘빈’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여주고, 이 경이로운 생명체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런데 이 위대한 발견이 가장 위험한 발견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크기의 세포였던 캘빈은 급속도를 진화를 거듭한다.

 

모든 신체가 근육이자 뇌세포이며 시각 세포인 존재, 그것이 캘빈의 정체였다. 마치 식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때만 해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인간과 교감을 할 줄 아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고(이를 자초한 것은 결국 인간이었지만), 높은 지능과 뛰어난 생존 능력을 통해 인류를 위협하고 급기야 멸종시킬 존재로 자리 잡는다. 이제 6명의 우주인은 ‘괴물’로 변한 캘빈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한다. 절대 지구로 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이 더해져 이 싸움은 제법 숭고함까지 엿보인다.

 

밀폐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투는 긴장감을 가중시키고, 이 과정은 분명 손에 땀이 날 만큼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런데 캘빈은 왜 인간을 공격하는가. 캘빈과 처음 교감을 나눴던 영국의 생물학자 휴 데리(앨리욘 버케어)는 캘빈이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본능 에 충실한 것이라는 것이다. 외계 생명체에 대한 무분별한 호기심에 대한 ‘경고’일까.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을 나무랄 필요는 없겠지만, 외계 생명체를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인류의 ‘적’으로 그려낸 건 역시 퇴보다.

 


이미 외계 생명체를 인류의 적대적 존재로 못박고, 그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는 이야기 구조는 <에이리언> 시리즈와 <에이리언>을 참고했던 수많은 영화들을 통해 숱하게 봐왔던 반복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상의 놀라움과 독창성을 보여줄 자신이 없다면 굳이 도전하지 않아도 될 장르라는 말이다. 물론 현대 과학이 성취한 기술적 발전을 잘 담아내고 있는 <라이프>의 가치를 몽땅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역시 <에이리언>이 줬던 충격과 공포를 재현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게다가 최근 개봉했던 <컨택트> 역시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조우를 다루고 있는데, ‘언어’, ‘시간’ 등 고차원적인 개념을 녹여내며 놀라움을 선사했다. 또, <컨택트>의 외계인들은 “3,000년 후에 너희들(인간)을 도움을 받기 위해” 언어를 알려주고 떠난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기존의 SF 영화들이 답습하던 ‘외계 생명체=적대적 존재’라는 등식에도 변화를 줬다. 그런데 <라이프>는 이 진보에서 다시 뒷걸음질을 쳐버린 것이다. 흉측하고 기괴스러운 괴물과 인류는 고작 ‘살아남기 위해’ 또 다시 서로를 죽여야만 한다. 이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


문득 또 하나의 생각이 스친다. 촛불 민심이 일궈낸 '박근혜 탄핵'이라는 위대한 승리가 자칫 위험한 승리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가. '적대'와 '배제'의 정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고, '음모론', '피해의식' 등이 '논리'와 '성찰'을 막아서고 있다. '촛불'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됐던 '국민'들을 다시 둘로 쪼개고, 이들 간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참담한 심정을 숨길 수가 없다. '생존을 위해' 너를 죽여야 하는 수준의 정치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이 퇴보의 흐름에 우리의 몸을 맡기지 말자. 거슬러 올라감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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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교도소가 범죄의 대가를 치르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범죄를 생산하는 곳이라면? 죄수가 교도관을 휘어잡고 있다면? 죄수들이 교도소 안팎을 넘나들 수 있다면?’ 모든 관습을 뒤틀어버리는 완전히 새로운 교도소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프리즌>의 출발은 기존의 상식과 고정관념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이었다. 밤만 되면 죄수들이 교도소 밖으로 나가 완전범죄를 저지른 후 복귀한다. 기업의 탈세 혐의를 밝힐 중요 증인을 감쪽같이 살해하고, 대규모의 마약 밀매 및 유통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이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의 짓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완벽한 알리바이의 존재, 그리하여 교도소는 완전범죄의 온상이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감옥 안의 제왕, 절대권력을 손 안에 거머쥔 정익호(한석규)가 존재한다.


 


물론 ‘교도소=범죄의 대가를 치르는 곳’이라는 1차원적인 개념은 ‘교도(矯導)’라는 과정을 통해 사회복귀를 추구함으로써 재범률을 최저 수준으로 낮춘 노르웨이의 교도소 시스템(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음 침공은 어디?>를 참고)의 걸음마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전을 위해 이 글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기로 하자. 어찌됐든 ‘우리에게’ 감옥이란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범죄를 단죄하는 공간이고, 그에 대한 이미지는 지극히 폐쇄적이고 제한적이라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95년, 당시 대한민국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가. 부실 공사로 세워졌던 상품백화점이 무너지고(6월 29일), 노태우와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이 차례로 구속(11월 16일과 12월 3일)됐다. 이처럼 초유의 사태들이 연달이 벌어지면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교도소라는 곳은 그 사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했다”는 나현 감독의 말을 받아들이자면, 제법 적절한 시기를 잡아낸 셈이다. 그 영화가 2017년에 개봉을 하는 이 ‘공교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 2016년 11월 13일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 씨의 구속을 시작으로, 2017년 1월 21일에는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됐고, 2월 17일에는 433억원대 뇌물공여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다. 삼성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그래서 ‘삼성 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덧입혀진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은 놀라운 일이었고, 더불어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3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기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자연스레 ‘교도소(혹은 구치소)’라는 공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수용자 번호 503번이 어떤 수감방에 머물게 되는지, 그 크기나 구조는 어떠한지, 그리고 식사의 질은 어느 정도인지 말이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궁금증들이 뒤섞여 있다. 이러한 물음들의 핵심에는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했던 자들에 대한 교도행정이 다른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이뤄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분명 이들이 ’특혜‘를 받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도 함께 말이다.

 

물론 <프리즌>에서처럼 죄수가 교도소 전체를 장악하고, 심지어 교도소장(정웅인)마저 발아래에 두는 일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범죄를 설계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다니는 것도 불가능하다. (영화 속에서 익호는 유건(김래원)에게 빚을 진 후, 이를 갚기 위해 함께 회를 먹으러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 현실성을 따진다면 <검사외전>에서 변재욱(황정민)과 한치원(강동원)의 내외 합작이라면 또 모를까. 이쯤에서 지난 2005년의 판례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법호인 접견을 이용하여 변호인이 휴대전호와 증권거래용 단말기를 구치소 내로 몰래 반입하고 교도관에게 적발되지 않기 위해 휴대전화의 핸즈프리를 상의 호주머니 속에 숨긴 다음 수용자와 머리를 맞대고 변호인과 수용자가 상담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가방을 세워 두어 통화모습을 거리는 등의 방법으로 마치 형사사건에 관하여 상담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수용자로 하여금 외부와 통화하게 하고 물품을 수수하게 한 것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를 구성한다. 2005. 8. 25. 2005도 1731

 

이것이 일반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교도소’는 여전히 은폐된 공간이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투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교도소가 격리된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곳도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하나의 사회이고, 그렇다면 바깥세상의 ‘룰’이 적용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전반부의 <프리즌>이 관객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제공하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죄수들과 교도관들 사이에 ‘뇌물’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관계망이 형성될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를 가둘 감옥은 없어“

 

익호의 처절한 외침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처참한 수놈 하이에나의 삶(한석규의 표현)’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동시에 저와 같은 생각을 실제로 하고 있을지 모를 ‘죄수’들과 그들에 대한 처우에 난처함을 겪고 있을 교정당국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한편, <채널A>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최순실 씨는 교도관에게 특정 수감자들을 ‘의무실로 데려오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법무부 교정본부 관계자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대꾸할 가치가 없는 보도”라며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각종 특혜 의혹(편의를 위해 별도의 시설을 만들었다거나 서울구치소장이 3일 연속 면담을 가졌다는 등)도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교정당국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감자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며 강력히 부정한 바 있다. 계속된 의혹 제기에 교정당국은 당혹스럽겠지만 어찌하겠는가.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은 것을, 그리고 그러한 불신을 자초하고 증폭시킨 사람들이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저들인 것을.

 

또, ”언론과 국민의 관심 밖에 있던 법무부 교정 교도 제도와 사람들, 철저한 실태조사와 강도 높은 개혁이 있어야 할 어둡고 심각한 '그늘'“이라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처럼, ‘단순히 어처구니없고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동안 ’그늘‘로 존재했던 교정당국이 경각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개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과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처럼 보이는 <프리즌>이 지금 이 시점에 대한민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P.S.  손익분기점인 215만을 넘기고 250만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프리즌>이 조금 더 힘을 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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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차디 찼던 그리고 길고 길었던 겨울이 지났다.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해빙(解氷)이다. 꿈틀꿈틀, 무언가 시작될 조짐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얼음을 딛고 서 있던 사람에게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 언제 바다 밑으로 빠질지 모른다.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초조하기만 하다. 한편, 얼음 아래 갇혀 있던 '비밀'에게는 스스로를 드러낼 적기(適期)다. 혹은 그 비밀이 떠오르기를 고대하고 있던 사람에게도, 해빙은 반가운 순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강이 녹자 머리 없는 여자의 시체가 떠오른다. 얼음이 녹듯, 그리하여 무언가가 시작되듯,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승훈(조진웅)은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이 도산한 후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수정(윤세아)과 이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미제 연쇄살인 사건으로 유명했던 경기도 북부의 한 신도시(극 중의 '화정신도시'는 '화성시'을 연상케 한다.)로 옮겨가 선배의 병원에 월급쟁이 의사로 취직하게 된다. 또,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의 건물 3층에 세를 들어 살아간다. "이런 데서 (아들을 데리고) 살 생각이야?"라고 따져 묻는 수정의 대사처럼, 허름한 건물의 원룸이다. 승훈은 짐조차 풀지 않고 지낸다. 어차피 몇 개월밖에 되지 않는 계약 기간, 다시 또 어디론가 옮겨야 할지 모른다. 피곤에 절어 퇴근을 하면 곧바로 퍼져 잠이 든다. 그러나 안식은 없다. 



"팔다리는 한남대교에, 몸통은 동호대교에… 이렇게 따로 버려야 내년 4월까지는 떠오르지 않을 거야."


성근의 아버지, 치매 노인(신구)가 수면 내시경 도중 내뱉은 의문스러운 말은 승훈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이것은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살인 고백'인가, 아니면 치매 노인의 단순한 '헛소리'인가. 평소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기 때문일까. 그때부터 모든 것이 의심스럽기 시작한다. 한강에 떠오른 시체, 15년 전에 발생한 살인 사건, 치매 노인의 괴상한 말.. 승훈의 혼란은 점점 가중된다. 그 와중에 들려오는 소문들은 또 어떠한가. 치매 노인의 아내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문에서부터 성근의 필리핀 국적의 전처(前妻)도 어느 순간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까지. 게다가 자신에게 자꾸만 '접근'하는 성근의 태도는 왜 저리도 의뭉스럽단 말인가. 


이상한 건 성근만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죄다 그렇다. 승훈의 주위를 맴도는 정체불명의 남자(조경환)는 도대체 누구일까.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성근의 아내 미숙(김주령)의 태도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고,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미연(이청아)는 끈적하고 노골적이다. 안정적 삶이 붕괴된 충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승훈의 입장에서 낯선 곳의 낯선 사람들이란 존재는 그 자체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일터뿐만 아니라 집까지, 불안과 공포가 스며든다. 긴장은 풀어지지 않고, 불면의 밤이 늘어간다. 승훈의 히스테리가 늘어갈수록, <해빙>의 미스테리는 점차 증폭된다. 



"두 번의 경제위기가 휩쓸고 간 한국.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이미 무너졌고, 한 번의 실패는 영원한 계층 추락으로 이어져 그 어느 때 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해 가고 있습니다. () 저는 미스터리 심리스릴러인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어떤 불안을 포착해 보고, 그것으로 인해 확인하게 되는 인간의 본성까지를 다뤄 보고자 했습니다." (이수연 감독)


<4인용 식탁>(2003)을 통해 데뷔했던 이수연 감독은 <해빙>을 통해 자신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치밀한 '심리 스릴러'를 선보였다. 전체 분량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던 조진웅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승훈의 의심을 받는 정육식당 주인 성근 역을 맡았던 김대명의 연기 변신이 돋보였다. 섣불리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캐릭터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김대명의 호연이 있었기에 <해빙>의 긴장감이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또, 기존의 청순발랄 이미지에서 벗어나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미연 역을 맡은 이청아의 역량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신구의 독보적 존재감은 부연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


영화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 아쉬움이 있다. 개연성에 대한 지적은 물론이고, 과도한 음악의 개입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에서부터 스릴러치고는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의견들이 많다. 지금 <해빙>이 받고 있는 낮은 평점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범인(악)'을 찾는(쫓는) 일반적인 스릴러와 달리 한 인물의 심리 변화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둔 <해빙>의 결을 따라 승훈이라는 인물에 온전히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각나 있던 퍼즐이 하나로 맞춰지는 순간이 주는 쾌감도 제법 시원한 편이다. 다만, '반전'에 대해서는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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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순간의 꽃> -


앞만 보고 뛰었다. 쉼 없이 달렸다. 무엇을 위해? 아마도 성공, 일까? 소위 세상의 문법을 따랐다. 안정된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벌고, 반듯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 말이다. 노력했다. 최선을 다했다. 양심을 접어둔 채 고객들에게 부실 채권을 팔았고, 덕분에 승진을 거듭했다. 제법 젊은 나이에 증권 회사 지점장 자리까지 올랐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고, 아내와 하나뿐인 아들을 호주로 보냈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는 필수였기 때문에, 그래야만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시차가 없는 호주는 최적지였다. 


기러기 아빠로 지내야 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계획했던 '2년'은 곧 흘러갈 테니까.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연락은 일상적으로 이뤄졌고, 아내와 아들은 가끔씩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아들의 영어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무엇보다 여전히 삶은 바빴고, 분주했다. 가족을 돌아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나'를 살펴 볼 시간도 없는데, 다른 건 말해 무엇하랴. 그래도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만족스러웠다.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대형 부실채권 사건. 강재훈(이병헌)의 삶은 요동친다. 모든 것을 잃었다. 손 안의 모래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욕망'이 만들어 낸 거품이 사라지자 허망함이 남았다. 회사는 일순간에 무너졌고, 자신의 자리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윗선을 탓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너도 알고 있었잖아. 그러면서 왜 그래?'라는 핀잔뿐. 무릎을 꿇고 '죄송합니다'를 외쳤지만, 돌아오는 건 고객들의 분노뿐이었다. 뺨을 세게 얻어맞은 뒤, 그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내게 남은 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불 꺼진 방, 재훈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죄의 글을 쓰고,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 가족이 있는 시드니로 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수면제를 한 움큼 집어 들고 입안에 털어 넣는다. 그는 '싱글 라이더(Single Rider, 홀로 떠난 여행객)'가 돼 여행을 시작한다. 낯선 땅, 낯선 존재가 됐다. 가방도 하나 없이, 그의 삶을 정직하게 말해주는 양복 차림, 손에 써넣은 주소 하나, 그저 빈손이다. 아내 이수진(공효진)와 아들 진우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했지만, 그는 선뜻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아내와 정체 모를 한 남자의 웃음소리. 혼란스럽다. 도대체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저 남자는 누구지. 아내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돌아갈 곳이 없는 자신이 보인다. 재훈은 생각에 잠긴다. 자신이 부재했던 2년의 시간,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의 자리는 다른 존재(크리스)가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세상이 얼마나 흉흉하냐며, 현관문 도어락에 민감하게 굴었던 아내가 이젠 고장난 현관문에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 간다.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은 듯 하다. 


또, 포기했던 꿈, 내팽개쳤던 꿈에 다시 도전한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이수진'으로 살아가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 '남편'으로서는 몰라도 '아빠'로서 나의 효용 가치는 여전한 것 아닐까. 재훈의 시선은 아들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아픈 아들을 안고, 자신의 발이 상해가는 것마저 잊고 내달렸던 크리스를 보자, 더 이상 '내가 없어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긴다. 재훈은 아내와 아들의 '행복'을 빌어주고, 진정한 의미의 '싱글 라이더(Single Rider)'가 돼 떠난다. 



사람들이 세속적인 욕망을 쫓고 있는데 어느 순간 그 욕망이 꺾일 때가 있잖아요. 그 무력함이 쌓이면서 사회 전체가 우울하게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요즘 사회나 시스템의 부조리에 대해 고발하는 작품들은 많지만 저는 그런 상황에서 개인들이 느끼는 감정에 더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이주영 감독)


<싱글라이더>는 '비밀'스러운 영화다. 여러 차례 '힌트'를 제시하지만, 사실 그 '반전'이 그리 중요하진 않다. 승부수는 거기에 있지 않다. '이야기'는 이미 탄탄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든든하다. '동양 사태'를 떠올리게 할 법한 사회적 문제(모럴 해저드)와 브레이크 없는 자본주의의 민낯, 기러기 아빠, 청년 실업, 노동자에 대한 인식 등 여러가지 사회적 인식이 다양하게 담겨 있지만, <싱글라이더>는 그 상황 속에 놓여 있는 '개인'들이 느끼는 '감정'에 오롯이 집중한다. 


이주영 감독은 영화 속에 '여백'을 최대한 많이 두고, 관객들에게 그 빈 자리를 스스로 채우도록 만든다. 그래서 일까. 여운이 깊게 남는다. 홀로 쓸쓸히 걸어가 절벽 앞에 선 재훈을 보는 관객들은 자신만의 '메시지'를 가슴 속에 안고 영화관을 나서게 된다. 전체 분량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배역의 비중이 컸던 이병헌은 섬세한 감정 연기를 통해 관객들을 집중하게 만든다. 블록버스터를 통해 표현되는 '강렬함' 못지 않게, '표정'만으로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표현하는 이병헌의 연기는 <싱글라이더>의 '힘'이라 할 만하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즐비한 요즘, <싱글라이더>와 같은 감성이 짙게 밴 영화의 등장은 반갑기만 하다.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동시에 '사회', '가족',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어찌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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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지난 2000년 8월,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 기사 유 씨(42세)가 흉기에 십수 차례 찔려 살해 당했다. 마침 오토바이를 몰고 현장을 지나가고 있던 최 군(16세)가 이 끔찍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1심에서 범행을 부인한 최 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는 범행을 시인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0년 형기를 가득 채우고 세상을 돌아왔다. (9년 7개월 만에 특사로 출소) '군'이라는 호칭이 '씨'로 바뀔 만큼 긴 세월이었다. 그리고 2013년 4월 최 씨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再審) : 이미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중대한 하자가 있음을 이유로 소송 당사자나 기타 청구인이 그 취소와 변경을 청구하여 다시 하는 재판


▲ "잡히고 나서 바로 경찰서에 간 게 아니라 여관을 데려 갔다. 거기서 머리도 때리고 무자비하게 폭행 당했다. 범행을 거부하면 더 맞았다. 무섭다는 생각만 들었다" (최 씨)

▲ "내가 죄인이야, 뭐야? 그때 일은 기억 안 난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찰)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2013년과 2015년 두번에 걸쳐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을 다뤘다. 최 씨의 억울한 사연을 소개하며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했고, 2015년에는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자의 진술을 추가로 확보해 공개했다. 당시 혈흔과 증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경찰은 폭행 · 강금 등 강압적인 수사를 통해 '범인 만들기'에 몰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참담한 진실 앞에 국민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타락한 공권력, 부패한 공권력의 추악한 민낯에 또 한번 몸서리를 쳐야했다. 정말이지 진저리가 났다. 


법원은 최 씨가 불법 체포 · 감금 등 가혹행위를 당했고, 새로운 증거(증인)가 확보된 점을 들어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항고로 맞섰다. 대법원은 재심을 인용하기로 결정했지만, 검찰은 또다시 재항고로 어깃장을 놨다. 대법원이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드디어 최 씨에 대한 재심이 열리게 됐다. 그리고 지난 2016년 11월 17일, 광주고법 제1형사부(노경필 부장판사)는 "검찰이 확보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충분하지 않다"면서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실제 사건에 대해 듣는 순간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소재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란 것이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김태윤 감독)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유명(?)해진 이 사건이 영화로 제작됐다. 바로 <재심>이다. (물론 김태윤 감독이 이 영화의 연출에 착수한 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되기 전이라고 한다.)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상업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닌데, 15일 개봉한 이래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개봉 첫 주에는 <조작된 도시>와 함께 쌍끌이 흥행 구도'를 형성했고, <23아이덴티티>, <존윅-리로드>, <싱글라이더>가 개봉한 22일에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재심>의 흥행은 쟁쟁한 작품들 사이에서 거둔 쾌거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처럼 <재심>이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열광적인 입소문의 파도를 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무래도 '실화'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충격적이고, 극적인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또,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은 이야기에 훨씬 더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영화를 볼 때, 시작과 함께 나오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내용의 자막은 자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를 고쳐잡게 만들지 않던가?


타이밍도 좋았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도중,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최 씨에 대한 재심이 '무죄'로 결론나면서 영화의 '타당성'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해 <재심>의 김태윤 감독, 그리고 함께 분노했던 국민들의 '판단'은 정확했던 셈이다. 분명 이 '교감'이 '상승 작용'을 일으켰으리라. 흥행의 측면에서 볼 때, '결과'를 모른 채 영화가 개봉됐다면 더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얄팍한' 생각이 들지만, 지금의 '해피 엔딩'에 만족하기로 하자. 



이렇듯 <재심>의 첫 번째 힘이 '실화'라면, 두 번째 힘은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속물 변호사 이준영(실제 사건에서 변호를 맡은 변호사의 이름은 박준영이다.) 역을 맡은 정우와 억울한 누명을 쓴 조현우 역을 맡은 강하늘은 탄탄한 연기 내공을 뽐낸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tvN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정우는 <히말라야>, <쎄시봉>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대중 앞에 섰다. 하지만 <히말리야>에서는 황정민, <쎄시봉>에서는 김윤석에 가려져 '정체'됐다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재심>에서는 기존의 틀(어쩌면 그는, 그가 연기했던 '쓰레기' 역에 지나치게 묶여 있었는지도 모른다)을 깨고 한층 성숙한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의 포인트가 살인 누명을 쓴 조현우의 억울함보다 속물 변호사 이준영의 변화와 성장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기만 하다. 그 무게감을 잘 견뎠다고 해야 할까. 특유의 장난기와 진지함을 동시에 그리고 적절히 표현했는데, 그가 지닌 또 하나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폭발력'도 영화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강하늘은 기존의 '착한'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하고, 저돌적이고 터프한 캐릭터를 맡아 변신을 시도했다. 보여줬던 놀랍게도 이 변신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 오히려 강하늘이 원래 이런 눈빛을 가지고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만큼 강하늘의 연기는 안정적이면서 깊고 단단했다. 그러고 보면 <동주>에서도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청년 윤동주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냈고,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서는 8황자 왕욱 역을 맡아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연기를 펼쳐보였던 그였다.



이처럼 정우와 강하늘, 두 젊은 배우의 '기'가 맞부딪치면서 발현되는 에너지는 <재심>의 관람 포인트다. 여기에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힘겨운 싸움이 깊은 울림을 준다. 그 승리가 짜릿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토록 힘겹게 싸워야만 '겨우'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정의'인가, 라는 답답함과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법의 존재 이유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겠지만, 여전히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법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아니겠는가.


김태윤 감독은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는데, 정말이지 하루빨리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사회가 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안하다'는 사과가 우선돼야 한다. 강압적인 수사를 했던 경찰은 물론이고, 검사, 판사, 국선 변호사 모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비록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그 반성이 없다면 여전히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은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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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한 내레이션,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천상병 시인의 <나무>라는 시다. 사람들이 '썩은 나무'라고 했던 그 나무가 사실 무한한 생명력을 내재한 존재였고, 꿈 속에서 그 잠재성을 발견한 '나'는 다시 사람들을 모아 이렇게 외친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흘러나오는 '썩은 나무' 타령에 처음에는 '뭐? 무슨 말이야?'라는 의문이 들 법 한데,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다보면 첫 장면의 내레이션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다시 읊어지는 저 시를 마주한 관객들은 '맞아, 썩은 나무가 아니야'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천상병의 <나무>는 영화 <조작된 도시>를 꿰뚫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어찌보면, <조작된 도시>가 천상병의 <나무>라는 시에 대한 '재해석'이라 여기지기도 한다. 그만큼 두 '작품'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단순히 '썩은 나무'의 재조명을 넘어 어떤 존재를 '썩은 나무'라고 '규정'짓는 '닫힌' 사회적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뒤집기 위해선 또 다시 '사람을 모아'야 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게임과 현실을 넘나든다. 마치 <나무> 속의 '나'가 ''꿈'을 꾸듯이. 권유(지창욱)는 게임의 세계에서는 팀원들을 이끌고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리더 '권대장'이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백수에다 'PC방 죽돌이'에 지나지 않는다. 3만 원이 없어서 정모에 참석도 할 수 없는 처지, 그러니까 '썩은 나무'라 할 만 하다. 그의 팀원들은 어떠한가. 데몰리션(안재홍)은 특수효과 회사의 말단 스태프이고, 용도사(김민교)는 용산 전자상가 출신 이른바 '용팔이'다. 여백의 미(김기천)는 지방대 교수인데, 게임 속 그들의 멋진 캐릭터와 현실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현실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썩은 나무'인 셈이다. 한편,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또 다른 팀원 은폐(김슬기)와 엄폐(심원철)는 성인 인터넷 방송 VJ와 감독으로 우리 사회의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 할 수 있다. 또, 가장 도드라지는 캐릭터인 '털보형님' 여울(심은경)은 천재적인 해커 실력을 자랑하지만, '메시지'로 대화를 해야 할 만큼 심각한 대인기피증이 있어 현실에선 부적응자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게임 속에서 맺어진 인연을 바탕으로 '의리'를 발휘해 누명을 쓴 '권대장' 권유를 물신양면으로 돕는다. 살인범으로 몰려 그 누구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 권유를 돕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팀원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들은 웃음을 주는데, 이들이 힘을 모아 권유의 억울함을 해소시키는 과정은 묘한 쾌감을 준다. '썩은 나무',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 '루저'라고 규정된 어떤 존재들이 현실의 '질서'를 뒤집고, 기득권의 오만함에 한방 먹이는 그 유쾌한 반란이 주는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정보'를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졌다고 했던가. 어느덧 정보는 권력이 됐다. CCTV, 신용카드 등을 통해 개인 정보가 자동적으로 수집되고, SNS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사회에서 '감시'와 '통제'는 더욱 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민천상(오정세)은 '21세기 빅브라더'이다. 자신의 서버에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사건을 '은폐'하기도 하고 '조작'하기도 한다. 그의 기획에 따라 전문가 · 언론 등이 움직이고, 여론은 신명나는 춤을 춘다. 그 과정이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소위 기득권자들이 범죄를 저지른 후 '의뢰'를 하면, 민천상은 시나리오를 짜고 그럴듯한(!) 범죄자를 선택한다. 권유처럼 게임에 빠져 PC방을 전전하는 백수라면 '땡큐'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쾌히 수긍을 하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성매매 여성은 좋은 먹잇감이다. 그가 톱스타에 대한 집착으로 엽기적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면 세상은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니까.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더하자면, 민천상이 '인권 변호사'라는 탈을 쓰고 있다는 설정이다.



은폐된 진실, 조작된 증거, 여기에 가담한 언론.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몰린 권유와 그의 팀원들은 이 공고한 '세상'에 기꺼이 맞서 싸운다. 그 '전투'는 무모해 보이지만, 그들은 조금씩 '조작된 도시'에 균열을 내고, 끝내 그 거짓된 세상을 박살내고야 만다. 특히 이들이 '진실과 거리가 먼' 방송국을 배경으로 마지막 활극을 벌이고, '권력의 언어를 고스란히 읽는' 앵커를 향해 돌진하고, 결국에는 성인 인터넷 방송의 은폐와 엄폐가 '진실을 담은' 뉴스를 전국에 생중계하는 장면은 눈과 귀를 닫은 이 시대의 언론에 경종을 울린다. 


누군가가 처음 그들을 향해 '썩은 나무'라고 불렀고, 사람들은 덩달아 그들을 '썩은 나무'라고 믿었다. 하지만 <조작된 도시>는 그 시선과 생각들이 '조작'된 것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를 알아챌 수 있는 '안목'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기득권이 만들고 주입시킨 딱딱한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뿐일까. 아니다.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바로,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외칠 준비가 됐는가.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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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유해진에게선 '사람 냄새'가 난다. 또, 그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한마디로 '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식상한 표현이지만, 유해진에겐 그 '진부함'마저도 설득시키는 묘한 힘이 있다. tvN <삼시세끼>에서 보여준 수더분하고 인간적인 모습 때문일까?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이 도움이 된 건 분명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인 것만 같진 않다. 이미 대중들은 알고 있었다. 그가 성실히 쌓아왔던 진정성 가득한 필모그래피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배우 유해진, 인간 유해진의 매력에 대해서 말이다.



"복 받았지. 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날 밀어 주려 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아요. 도움을 준다고 해야 하나? 고맙고 감사하죠." <일간스포츠>, 유해진 "인생은 파도타기..입방정 떨지 않을것"



6,975,295명. 그가 '첫' 주연을 맡았던 <럭키>가 거둔 흥행 기록이다. '손익분기점(180만 명)만 넘기면 좋겠다'던 소박한 목표를 가볍게 뛰어넘은 대성공이었다. 사실 큰 기대가 있었던 작품은 아니었다. 냉정히 말하자면, '뻔한 코미디'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뻔함'이 '유해진'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고 나자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에게는 '진부함'마저도 설득시키는 힘이 있다고. 유해진은 '사람들이 날 밀어 주려 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는데,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 '느낌'이 유효한 듯 하다.


'쌍끌이 흥행'. 현재 박스오피스 상황을 설명하기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지난 18일, 같은 날 개봉한 <더 킹>과 <공조>는 각각 185만 2,944명과 115만 4,011명을 동원하며 '공생(共生)'의 길을 걷고 있다. '시국'에 절묘히 부합하는 데다 정우성 · 조인성을 앞세운 <더 킹>을 앞지르는 건 어려워 보이지만, 설 연휴에 가장 어울리는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은 <공조>의 앞날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유해진'이라는 대중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배우가 있지 않은가. 



▲ 공조(共助) :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서로 함께 도움


'재료'만 놓고 보면 <공조>는 굉장히 매력적인 영화다. 무엇보다 '남북 공조 수사'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페쇄하는 등 남북의 교류와 협력이 사실상 문을 닫은 상황에서 남북한의 형사들이 팀을 이뤄 '수사'를 펼친다는 설정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북한 형사 임청령 역을 맡은 현빈이 소화하는 짜릿한 액션과 남한 형사 강진태 역을 맡은 유해진의 코미디 연기도 감상 포인트다. 거기에 JK필름(윤제균) 특유의 따뜻한 가족애까지, 또 하나의 '선물 세트'의 탄생이라 일컬을 만 하다.


그런데, 이 재료들을 몽땅 한 솥에 넣고 주구장창 끓이니 평범한 '부대찌개'가 돼 버렸다. 부대찌개라는 음식을 폄훼하는 게 아니라 재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독특한 특색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결국 영화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설득력을 부여하고, 그리하여 관객들을 이해시키는 건 '감독'의 역할이다. 그런데 <공조>의 김성훈 감독은 차분히 관객들에게 다가가기보다 우격다짐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데 급급하다. 마치 '우리 영화 주인공이 무려 유해진과 현빈이야!'라고 말하는 듯 하다.



위폐 제작에 쓰이는 동판을 훔쳐간 북한 인민보안부 간부 차기성(김주혁)을 쫓는 과정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뿐만 아니라 차기성이 동판을 탈취한 동기와 목적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돈'이라는 이유가 제시되지만, 그것만으로 이 모든 상황을 얼버무리긴 무리스럽다. 임청령과 강진태의 관계의 '급진전'도 다소 의아하다. 고작 3일의 시간만으로 '목숨'을 걸 만큼의 관계 형성이 가능한지 의문스럽다. 다분히 '가족애'라는 장치를 활용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여 불편하기도 하다. 끝내 '가족애'를 결말에 갖다 부치는 '과욕'이라니!


결국 <공조>를 이끌어 가는 힘은 당의 지시를 수행하는 동시에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공조 수사'에 투입된 림철령과 그런 림청령의 활동을 감시하고 막는 한편, 진짜 목적을 캐내야 하는 강진태가 보여주는 동상이몽, 그 애매한 콤비네이션에서 나온다. 거기에서 최대한 많은 '웃음'을 낚아채야 하는데, 영화는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그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예측 가능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지루함마저 느껴진다.



분명 <공조>는 흥행 면에서는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건 '코미디'라는 장르가 명절 연휴를 만났을 때 나타나는 필연적 화학 현상과도 같은 것이다. 거기에 '유해진'이라는 배우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날개'를 잔뜩 붙인 셈이다. 그런데 고민해봐야 한다. '이번에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말이다. 이번에도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부실한 이야기와 뻔한 연출, '감동'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추구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또, 유해진이라는 배우에게도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럭키>와 <공조> 두 작품에서 힘을 뺀 코미디 연기를 통해 주연 배우로 거듭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면, 이제 다시 '긴장감' 넘치는 연기를 관객들에게 선보여야 할 시기가 아닐까. 과거 <이끼>와 <부당거래>에서 보여줬던 강렬한 연기, 그 예측 불가능한 천의 얼굴을 다음 작품에선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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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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