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立夏)가 지나고 '여름 기분'이 돌기 시작한다는 소만(小滿)도 지났다. 바야흐로 여름이 돌아왔고, 그에 맞춰 <캐리비안의 해적>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6년 만의 귀환이다. 잭 스패로우 선장(조니 뎁)과의 재회가 반갑기만 하다. 무려 2003년부터 시작된 인연이 아니던가. '여름'이야말로 그를 만나 찬란한 모험담을 전해 듣기에 적절한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전설이 깃든 바다를 배경으로 해적들의 삶과 죽음, 어드벤처를 담고 있는 <캐리비안의 해적>은 철저히 여름 시즌을 공략해왔다. 


1편인 '블랙펄의 저주'만 9월에 개봉을 했을 뿐, 2편 '망자의 함'은 더위가 한창인 7월에 개봉했고, 3편 '세상의 끝에서'와 4편 '낯선 조류'은 5월에 관객들을 찾았다. 5편인 '죽은 자는 말이 없다'도 3, 4편과 마찬가지로 5월을 개봉 시기로 잡았다. 오프닝 스코어는 만족스럽다. 206,529명을 동원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2위인 <겟 아웃>의 71,895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25일 <노무현입니다>가 개봉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의 독주에 맞설 정도는 아니다. <원더우먼>과 <대립군>이 개봉하는 다음 주까지는 적수 없는 1위를 질주할 예정이다.



5번째 편을 맞이한 <캐리비안의 해적>은 '초심'으로 돌아갔다. 시리즈의 탄생을 알렸던 1편의 스토리 구조를 다시 가져온 것이다. '블랙펄의 저주'에서 윌 터너(올랜도 블룸)과 엘리자베스 스완(키이라 나이틀리)의 러브 스토리는 그들의 아들인 헨리 터너(브렌튼 스웨이츠)와 카리나 스미스(카야 스코델라리오)가 대신 한다. 플라잉 더치맨 호의 저주에 걸려버린 아버지 윌 터너를 구하기 위해 헨리 터너는 잭 스패로우 선장을 찾아나서고, 이 과정에서 마녀로 오해를 받는 여성 천문학자 카리나 스미스를 만나게 된다. 


헨리 터너와 카리나 스미스는 저주를 풀 열쇠인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찾기 위해 마법의 나침반을 가진 잭 스패로우와 힘을 합친다. 세 사람은 과거에 윌 터너와 엘리자베스 스완, 잭 스패로우가 그랬듯 서로 티격태격하며 관계를 형성해나가고, 그 장면들은 1편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 '잭 스패로우'라는 캐릭터가 워낙 큰 존재감을 형성하고, 압도적 사랑을 받게 되면서 무너졌던 캐릭터 간의 균형이 5편에서는 어느 정도 맞춰졌다. '망자의 함'에서 아예 잭 스패로우만을 내세웠던 '실수(?)'를 바로잡은 셈이다.



한편, 잭 스패로우는 자신이 어린 시절(의 모습이 CG로 구현됐다!)악마의 삼각지대에 가둬버렸던 바다의 학살자 살라자르(하비에르 바르뎀)의 추격을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바르보사 선장(제프리 러쉬)이 합류한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악의 축을 맡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극의 무게를 한층 더하고, 또 다른 해적 제프리 러쉬는 기존의 모습뿐만 아니라 새로운 면모를 선보이면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사랑해 왔던 관객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물한다. 


여전히 잭 스패로우 선장이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의 힘은 강렬하다. 짙은 눈 화장과 붉은 머리 수건, 땋아 내린 수염. 독특한 걸음거리 등은 여전하고, 특유의 능글 맞은 행동들과 재치있는 입담도 그대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는 무한 긍정주의자 잭 스패로우 선장은 정말이지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다. 아직까지는(?) 그 활약이 미비한 헨리 터너와 카리나 스미스의 부족한 캐릭터 매력을 조니 뎁이 상쇄해 가득 채우는 느낌이다. 



일각에서는 '울궈먹기'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조니 뎁이 예전의 그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견 타당한 이야기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리즈'가 울궈먹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캐리비안의 해적>의 경우에는 여전히 캐릭터의 매력이라든지 이야기의 변주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가 구현하고 있는 해상 전투신의 박진감과 화려함은 여전히 관객들의 입맛을 만족시킨다. 여름의 더위를 날려버리기에 이보다 좋은 볼거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니 뎁이 기존에 형성해 놓은 캐릭터에 의존해 다소 방만한 연기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잭 스패로우라는 캐릭터와 조니 뎁의 상성은 부정할 수 없고, 조니 뎁 이외의 다른 배우를 떠올릴 수조차 없는 밀착성을 보인다. 게다가 유리병 속에 갇혔던 '블랙 펄'이 다시 등장하고, 올랜도 볼룸과 키이라 나이틀리가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도 <죽은 자는 말이 없다>를 놓칠 수 없는 이유다. 엔딩 크레디트 후의 쿠키 영상은 의미심장한데, 6편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문제는 디즈니 특유의 보수적인 색채의 '가족주의'가 등장한다는 것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시시껄렁한 농담들이 지나치게 반복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디즈니만의 색깔이라는 점에서, 또 나름대로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굳이 넣지 않았어도 좋았을 부분이이었기에 만약 6편이 제작된다면 반드시 고려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에도 역시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2017년 여름, 최고의 오락 영화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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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찰리 헌냄)가 성검(聖劍) 엑스칼리버(Excalibur)를 뽑는 건 '운명'이었다. 보티건 (주드 로)의 보호를 받고 있던 바이킹과 마찰을 빚으면서 쫓기는 처지가 된 아서는 체포를 당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배를 타고 도주하려 한다. 하지만 운명의 굴레는 쉽사리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엑스칼리버를 뽑는 시도를 했(다가 실패했)다는 표식이 없는 아서는 검 앞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운명을 마주한다. 검을 뽑아야 하는, 그래서 왕이 되어야 하는 운명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서가 엑스칼리버를 뽑는 건 '운명'이었다. 바위가 된 우서 왕(에릭 바나)의 등에 꽂힌 검을 그의 아들인 아서가 뽑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우서 왕과 그의 '혈통'만이 그 검을 사용할 자격이 있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신의 형을 죽이고 권좌를 탈취한 보티건에 맞서는 것,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공포'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보티건의 극악무도한 폭정을 멈추고 새로운 왕이 되는 것도 아서의 운명이었다. 



백성들은 누구도 뽑지 못했던 엑스칼리버를 뽑아 든 아서를 추앙하기 시작한다. 암흑과도 같은 보티건의 시대를 끝낼 수 있는 영웅으로 여기고 그의 이름을 연호한다. 갑자기 너무 큰 기대의 중심에 서게 된 아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제발, 날 그냥 내버려 둬!' 처음에는 부정하려 했다. 외면하고 피하려 했다. 양손으로 검을 쥘 때마다 끔찍한 장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매일 밤마다 악몽으로 다가왔던 그 견디기 힘든 슬픔과 아픔들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운명은 가혹했고, 운명을 감당할 힘을 기르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강 속으로 검을 던져 운명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지만, 운명은 더욱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결국 아서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보티건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킹 아서> 속의 '아서'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같은 이름을 떠올렸을 것이라 짐작한다. 지금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 된 사람, 공교롭게도 『운명』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던 사람, 바로 '문재인' 말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문재인은 자신이 쓴 책에서 참으로 의미심장한 문장을 남겼다. 이때 그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노무현의 '운명'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혼자 외로울까봐" 청와대로 들어가 초대 민정수석과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던 그였지만, 한사코 현실 정치에 발을 들이는 것은 거부했다. 그랬던 문재인을 정치라는 잔혹한 무대의 한복판에 끌어들였던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2009년 노무현의 죽음이었다. 그가 '내 생에 가장 긴 하루였'다고 회상했던..


영결식을 찾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향해 "정치 보복'이라고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적개심과 분노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 상황을 정리한 사람이 바로 당시 상주를 맡았던 문재인이었다. 예를 갖추고 머리를 숙여 사과를 하는 그의 성숙한 모습은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만 같은 얼얼함을 남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에 깊은 위로를 받았고, 문재인을 새로운 '희망'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라면 노무현의 운명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리라.


쉽지 않았다. 정치라는 게 어디 그리 만만한 것이던가. '권력 의지가 없다'는 비판은 꼬리표처럼 달라 붙었다. '등이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정치를 시작했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2012년의 실패는 뼈아팠다. 어찌 보면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그의 '혈육'을 통해 재현되는 것이 당시의 시대적 흐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또 한번 대한민국을 뿌리채 뒤흔들었다. 그 결과는 '촛불'로 이어졌고, 박근혜는 탄핵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사실 <킹 아서>를 통해 '문재인'을 떠올리게 되는 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6세기 웨일스의 전설과 신화, 우서 왕의 아들인 아서만이 '엑스칼리버'를 뽑을 수 있고, 그 '혈통'만이 진정한 왕위의 승계자라는 건 '누구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밀어내야 할 유산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박정희의 '딸'이라는 후광 효과가 그를 지지하는 이유가 되는 안타까운 사례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후진적 발상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은 노무현에 갇혀서는 안 된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문재인을 노무현에 가둬서는 안 된다. 아서는 보티건을 물리치고 왕의 자리에 오른 후, 그의 아버지 우서의 '그림자'를 좇지 않았다. 오히려 '원탁'을 만들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새로운 정치를 시작했다. 그 원탁에는 여러 의견을 가진 기사들이 둘러 앉게 될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자신의 의견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피력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서 왕은 아서의 시대를 열었다. 19대 대통령 문재인도 그러하길 바란다. 


'누군가의' 운명을 이어받기보다 '자신만의' 운명을 걸어나가길 희망한다. 그를 지지하는(지키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그러하길 바란다. 그에게서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게 되길 바란다. 아서의 시대에는 '혈통'과 '운명'이 삶을 결정했을지라도, 우리가 사는 지금은 다르다. 문재인이 뽑은 '엑스칼리버'는 '(정치적) 혈통'에 의해 결정된 '운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민의' 그 자체였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거기에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 그에게 표를 던진 사람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의(意)'가 담겨 있음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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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부산 기장을 무대로 한 로컬 수사극 <보안관>이 예상을 뛰어 넘는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200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개봉 11일 만의 기록이었다. 14일에도 16만 4,556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5월 9일 개봉한 <에이리언: 커버넌트>(18만 9,848명)의 뒤를 이어 박스 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다. 같은 날(5월 3일) 개봉했던 <보스 베이비>(16만 758명),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12만 254명)와의 경쟁에서도 근소하지만 앞서 있는 모습이다. <보안관>은 누적 관객 220만 6,013명으로 손익분기점인 220만 명을 넘어섰다. 


상대작들이 워낙 막강했다는 점에서 <보안관>의 이와 같은 선전은 놀랍다. 연휴 기간에는 가족 단위의 관객이 많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코미디 영화가 강세를 보인다는 점을 적극 공략했던 선택이 먹혀들었다. 영화적 완성도나 시나리오의 아쉬움이 언급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웃기다'는 입소문이 돌았던 게 주효했다. 그러나 <보안관>의 박수받아야 마땅한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다소(어쩌면 상당히) '시니컬'해질 수밖에 없다. 



"동네 보안관을 자처하는 오지랖 넓은 사내가 자기 눈엔 마약 범죄자로 보이는 남자로부터 마을을 지키려는 '고군분투기'이고, 한편으론 희미해져 가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고자 끝없이 몸부림치는 한 중년 사내의 이야기"


김형주 감독은 <보안관>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한다. 영화에 대한 참으로 적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는데, 사실 저 짧은 문장 속에 이 영화가 '싫은' 이유가 몽땅 들어가 있다. 첫 번째는 '오지라퍼'에 대한 불편함이다. 제발, 남의 일에 신경 끄시라! 두 번째는 이 영화가 말하는 '남성성'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성고착화돼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를 증명하고자 몸무림치는' 상황들이 끔찍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방식들이 '단순무식'으로 연결되는 자연스러움(은 필연적이겠지만)도 마뜩지 않다. 


이 모든 설명들이 집약적으로 드러난 대목이 슈퍼 앞에 비치된 테이블에 모여 앉은 남정네들의 대화 내용이다. '오지라퍼' 전직 경찰, 부산 기장을 지키는 '보안관' 최대호(이성민)는 자신을 따라는 무리들을 모아놓고 '고충 상담'을 하고 있다. 정수기 사업을 하는 강곤(임현성)이 용환(김종수)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면허가 정지됐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대호, 다시 말해서 '오지랖 넓은',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고자 몸부림치는' 중년 사내는 이렇게 말한다.



'내 경찰 옷을 벗은 지가 꽤 됐지만서도 이 정도 민원은 거뜬하게 처리해 줄 수 있다!귀여운 허세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러한 듯 보이지만), 가벼운 웃음 포인트로 여길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역 공동체'와 '남성성'이 묘하게 결합된 이 장면에 우리는 불쾌함을 느껴야 한다. 동네에서의 음주운전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용납되는 분위기, 게다가 '운전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쉴드를 치는 동네 이웃들의 모습은 한심스럽기만 하다. 


또, 음주 단속에 걸려 면허가 정지된 문제를 파면된 경찰관에게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오지라퍼 대호는 '허세'를 드러내며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한다. 그것이 정말 '남자다운' 모습인지 의문이지만, 그에게 열광하는 동네 이웃들의 반응을 보면 이 레퍼토리가 제법 잘 먹혀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순박하다'고 해석해야 할까. 영화 속에서 정확히 묘사되진 않지만, 대호는 과거의 인맥을 동원해 이런 식으로 동네 민원을 여러 차례 해결해 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거기는 정말 그럽니까?'



'보안관'이라는 용어가 낡아버린 것처럼, 대호는 여전히 '감'에 의한 수사 방식에 머물러 있고, 과거의 경찰 인맥을 동원해 수사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또, 그는 "한번 뽕쟁이는 영원한 뽕쟁이"라는 '낙인 이론'의 신봉자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그 감이 맞아 떨어져 종진(조진웅)의 검은 속내를 파헤쳐내고, 그의 범죄를 막는 영웅적 모습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행되는 온갖 불법적 수사 기법들은 불편함을 자아낸다. 영화는 이를 '웃음'으로 무마한다. 


또 한번의 '성공'을 거뒀으니 대호가 자신의 '오지라퍼', '남성성'과 같은 기질들을 바꿀 리 만무하고, '지역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웃 주민들은 그의 활약에 감동을 받았을 테니 앞으로도 대호는 기장의 '보안관'으로 활개를 치며 살아갈 것이다. ''신화적인 인물로 격상됐을 테니, 누가 감히 그의 행보에 태클을 걸 수 있겠는가. 코미디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사람도 더러 있겠으나, 그런 공동체라면 하루빨리 떠나고 싶을 것만 같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지만, 배우들의 변신은 신선했고 그 변화 속에서 드러나는 매력은 흥미롭다. 배우들의 연기야말로 <보안관>이라는 영화를 지탱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아재 근육'으로 돌아온 이성민은 기존의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는 모험을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흡족한 반응을 얻었다. 또, 시종일관 대호의 의심을 받아야 하는 종진 역을 맡은 조진웅의 의뭉스러운 연기도 반갑다. 뻔한 반전과 이를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시나리오의 허술함에도 그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tvN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이미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던 김성균과 김형주 감독의 히든 카드였던 배정남도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내는데, 조우진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내부자들>과 tvN <도깨비>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 그는 영화 <더 킹>, <원라인>과 드라마 tvN <시카고 타자기>에 연달아 출연했는데, 겹치는 캐릭터가 없이 모든 캐릭터를 '다르게' 표현해냈다. 언젠가 조우진의 1인 다역 연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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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아니, 그게 아니라.." 


'의도'와 '결과'가 일치한다면, 다시 말해서 창작자의 이야기가 그가 원했던 방향으로 수용자에게 '전달'된다면 그건 이상적인 '소통'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간단하고 단순한 산출(算出)이 '예술'이라는 영역에서는 그리 만만하지 않은 일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일상 생활에서도 대화 간에 생각지도 않았던 오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상대방의 말 한마디 혹은 그가 사용한 단어 하나를 두고도 옥신각신하는 걸 보면, 그것이 단지 '예술'에 국한된 문제는 아닌 듯 하다. 



'권력을 향한 또 한번의 선거전쟁!'이라는 홍보 문구로 설명이 가능한 영화 <특별시민>은 상영 전부터 크게 화제가 됐던 영화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해 보자면, 첫 번째는 최민식, 곽도원, 라미란, 문소리, 심은경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개봉 시기(4월 26일)가 '장미 대선'이라 이름 붙여진 19대 대통령 선거와 맞물렸다는 점 때문이었다. '선거 영화'가 '선거철'을 맞았으니, 이 얼마나 공교로운 일인가. 


과연 영화 관계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적기(適期)라 봤을까, 아니면 불운하다고 생각했을까. 결과적으로는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개봉 5일 만에 90만 관객(누적 관객 904,416명)을 넘어서는 등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걸 보면 '화제'가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경쟁작인 <임금님의 사건수첩>이 턱 밑까지 바짝 추격하고 있고, 마블의 야심작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의 개봉이 코 앞(5월 2일)까지 다가온 상황이 녹록치 않지만, 개봉 첫 주의 프리미엄을 획득한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서두에 언급했던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다. 어쩌면 그것이 <특별시민>의 흥행 동력을 갉아먹는 요인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특별시민>의 30일 관객 수는 223,262명이었는데, 이는 29일에 비해 17,732명이 줄어든 숫자였다. 반면,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경우 전날에 비해 13,103명이 늘었던 건 의미심장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특별시민>이 의도한 바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변종구(최민식)는 현직 서울시장이자 3선 시장에 도전하는 '후보'다. 국회의원 2선의 경력도 갖고 있는 그는 제법 든든한 정치적 기반을 다지고 있고,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발판 삼아 대권에 도전할 야심을 가지고 있다. 변종구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심혁수(곽도원)는 변종구와 당 대표 김낙현(김홍파)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인물인데,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변종구와 심혁수는 '권력'을 향해, 권력을 획득하는 데 정신이 팔린 소위 '정치꾼'에 불과한 인물들이다.


박인제 감독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저열하고 비열한 '속임수'를 서슴지 않는 변종구와 심혁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치의 민낯, 더 정확하게는 '선거'의 민낯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여기에 토크 콘서트에서 변종구를 향해 당돌한 질문을 던진 광고 기획자 박경(심은경)이 변종구에게 '캐스팅'돼 선거 캠프에 합류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파생된다. 변종구의 '팬'이었던 박경은 선거판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인정을 받지만, 자신이 갖고 있던 정치에 대한 가치관과 너무도 다른 실제 정치판의 생리를 겪으면서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회의'를 느끼게 되는 건 박경만이 아니다. <특별시민>을 보고 나온 사람들은 일종의 허탈감을 갖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정치 혐오'가 다시 솟구치는 것이다. '그렇지, 정치인들은 어차피 다 똑같아.' 가까운 지인도 그리 말하더라. 그러면서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고까지 말한다. 마땅히 쉴드칠 말이 없었다. '정치, 좀더 엄밀하게는 선거의 매커니즘을 보여주는 영화일뿐 모든 정치인들이 저러하다라고 말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봐야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왜 그런가. 박경은 '당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유권자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만, 그 선언은 공허하게 들린다. 변종구의 승리는 달콤해 보이고, 권력을 향한 그의 집념은 더욱 단단해졌다. 권선징악은 선명히 드러지 않고, 인물에 대한 판단도 유보적이다. 이런 장치들은 영화를 세련되기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객들의 불만을 자아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특별시민>은 '유권자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정작 그 유권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에 대해 무관심하다. 



"마냥 절망적인 결론은 아니다. 부패한 변종구의 모든 것을 지켜본 박경이 평범한 유권자로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결국은 유권자가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박인제 감독)


심혁수는 박경에게 '선거는 똥물에서 진주 꺼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진주를 꺼내고자 한다면 손에 똥물을 묻힐 수밖에 없다는 '설득'의 일환이었다. 그럴 듯 하게 들린다. 그런데 정작 '진주'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탐욕스러운 정치인 변종구는 이미 탈락했고, 그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다른 후보들을 살펴보자.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한 양진주(라미란) 후보의 행태도 변종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깨끗한 이미지와는 달리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또, 캐스팅 보트를 쥔 무소속 허만길(이윤희) 후보는 어떠한가. 제법 바른말을 하는 듯 보였던 그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단일화'에 합의하는 후진적 정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처럼 <특별시민>이 제시한 3명의 후보에게서는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도대체 '유권자' 혹은 '지지자'가 보이지 않는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이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그 어떤 '위안'을 얻을 수 없다. 나름대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자 했던 <특별시민>은 그 때문에 오히려 '늪'에 빠진 건 아닐까. 


'진주'가 없는 선거판, <특별시민>이 생생히 재현한 정치의 생리와 선거의 매커니즘은 '그러므로 투표를 잘 해야한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어차피 다 똑같아. 투표를 하나마나야.'라는 정치 혐오나 무관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보인다. 차라리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 <특별시민>의 제작진이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차라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가 박스오피스를 시원하게 흔들어주는 편이 대한민국 정치(와 '특별(한) 시민'들)을 위해 좋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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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0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리라 짐작했었지만, 전반부의 분위기가 썩 긍정적이지 않았다. 피가 말랐고, 입이 바짝 말랐다. 비단 나뿐이었겠는가. 온 나라가 그러했을 것이다. ‘긴장감 지수’라는 수치를 측정하는 기계가 있다면, 아마 버텨내지 못하고 고장나버리거나 폭발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팽팽한 줄처럼 날이 선 긴장이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었다. 그의 입 모양에 주목했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들려 온 ‘결말’.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담담한 목소리로 단호히 말했다. 이 한 마디를 위해 이토록 오래 숨죽였던가. 시원함과 허탈함이 공존했다. 어딘가에는 탄식이 혹은 분노가, 어느 곳에서는 환호와 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무거운 시작이 열린 순간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두괄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록 쫄깃한 긴장감은 없었겠지만, 불필요한 시간 낭비와 감정 소모를 덜어준다는 점에서 두괄식이 갖는 장점이 새삼 간절했다.

 


만약 화성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가 화성에 착륙했을 때 실제로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프로듀서 데이비드 엘리슨)

 

그래서일까. (벌써 두 문단이나 써버리고 말았지만) 문득 이 글은 ‘두괄식’으로 풀어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라이프>는 ‘퇴보(退步)’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가령, ‘분단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들에 비유를 해보자. 이 계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쉬리>(1999)의 경우, ‘분단’이라는 비극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각각 남과 북의 특수요원이었던 유중원(한석규)와 이명현(김윤진)은 연인이자 적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끝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남북의 첨예한 대치와 대립 속에서 ‘개인’의 관계는 성립될 수 없는 종속적 관계로 그려졌다. 개인 간의 사랑, 우정 더 나아가 연대는 실패로 귀결됐다. 하지만 분단의 아픔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당시 북한에도 통일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2000)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정상 회담이 개최되면서 남북이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었던 시점에 개봉됐다. 그 또한 비극적 결말로 귀결됐지만, 남북의 군인들이 서로 왕래를 하며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했던 유의미한 영화였다.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형제애’를 통해 남과 북의 관계를 설명하려 애썼고,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웰컴 투 동막골>(2005)은 ‘동막골’이라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국군과 인민군, 미군인 스미스가 힘을 모아 연합군에 대항하는 기발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국가대표2>(2015)는 ‘자매’라는 관계를 통해 갈등과 화해를 담아냈다. 그리고 2017년 개봉했던 <공조>는 남북의 형사가 함께 수사를 하며 인간적인 정을 쌓아가는 모습을 경쾌하게 그려냈다.

 

이처럼 분단문제를 다룬 영화의 계보를 살펴보면, ‘비극’에서 ‘희극’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어왔다. 남북의 긴장 관계는 현존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개인의 관계까지 결정짓는 절대적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만약 이 ‘흐름’을 부정하고 <쉬리>의 비극으로 회귀하려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면, 그를 두고 ‘퇴보’라 부르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외계 생명체와의 적대적 관계를 답습한 <라이프>는 분명 퇴보라 할 수 있다.



우주 정거장에 머물며 화성 탐사선 필그램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던 6명의 우주인은 8개월 만에 돌아온 필그램이 가져 온 ‘샘플’에 환호한다. 화성에서 채취한 토양 속에서 놀랍게도 외계 생명체가 확인됐고, 최초의 그리고 위대한 발견에 지구 전체가 들뜬다. ‘캘빈’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여주고, 이 경이로운 생명체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런데 이 위대한 발견이 가장 위험한 발견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크기의 세포였던 캘빈은 급속도를 진화를 거듭한다.

 

모든 신체가 근육이자 뇌세포이며 시각 세포인 존재, 그것이 캘빈의 정체였다. 마치 식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때만 해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인간과 교감을 할 줄 아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고(이를 자초한 것은 결국 인간이었지만), 높은 지능과 뛰어난 생존 능력을 통해 인류를 위협하고 급기야 멸종시킬 존재로 자리 잡는다. 이제 6명의 우주인은 ‘괴물’로 변한 캘빈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한다. 절대 지구로 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이 더해져 이 싸움은 제법 숭고함까지 엿보인다.

 

밀폐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투는 긴장감을 가중시키고, 이 과정은 분명 손에 땀이 날 만큼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런데 캘빈은 왜 인간을 공격하는가. 캘빈과 처음 교감을 나눴던 영국의 생물학자 휴 데리(앨리욘 버케어)는 캘빈이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본능 에 충실한 것이라는 것이다. 외계 생명체에 대한 무분별한 호기심에 대한 ‘경고’일까.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을 나무랄 필요는 없겠지만, 외계 생명체를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인류의 ‘적’으로 그려낸 건 역시 퇴보다.

 


이미 외계 생명체를 인류의 적대적 존재로 못박고, 그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는 이야기 구조는 <에이리언> 시리즈와 <에이리언>을 참고했던 수많은 영화들을 통해 숱하게 봐왔던 반복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상의 놀라움과 독창성을 보여줄 자신이 없다면 굳이 도전하지 않아도 될 장르라는 말이다. 물론 현대 과학이 성취한 기술적 발전을 잘 담아내고 있는 <라이프>의 가치를 몽땅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역시 <에이리언>이 줬던 충격과 공포를 재현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게다가 최근 개봉했던 <컨택트> 역시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조우를 다루고 있는데, ‘언어’, ‘시간’ 등 고차원적인 개념을 녹여내며 놀라움을 선사했다. 또, <컨택트>의 외계인들은 “3,000년 후에 너희들(인간)을 도움을 받기 위해” 언어를 알려주고 떠난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기존의 SF 영화들이 답습하던 ‘외계 생명체=적대적 존재’라는 등식에도 변화를 줬다. 그런데 <라이프>는 이 진보에서 다시 뒷걸음질을 쳐버린 것이다. 흉측하고 기괴스러운 괴물과 인류는 고작 ‘살아남기 위해’ 또 다시 서로를 죽여야만 한다. 이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


문득 또 하나의 생각이 스친다. 촛불 민심이 일궈낸 '박근혜 탄핵'이라는 위대한 승리가 자칫 위험한 승리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가. '적대'와 '배제'의 정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고, '음모론', '피해의식' 등이 '논리'와 '성찰'을 막아서고 있다. '촛불'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됐던 '국민'들을 다시 둘로 쪼개고, 이들 간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참담한 심정을 숨길 수가 없다. '생존을 위해' 너를 죽여야 하는 수준의 정치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이 퇴보의 흐름에 우리의 몸을 맡기지 말자. 거슬러 올라감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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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교도소가 범죄의 대가를 치르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범죄를 생산하는 곳이라면? 죄수가 교도관을 휘어잡고 있다면? 죄수들이 교도소 안팎을 넘나들 수 있다면?’ 모든 관습을 뒤틀어버리는 완전히 새로운 교도소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프리즌>의 출발은 기존의 상식과 고정관념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이었다. 밤만 되면 죄수들이 교도소 밖으로 나가 완전범죄를 저지른 후 복귀한다. 기업의 탈세 혐의를 밝힐 중요 증인을 감쪽같이 살해하고, 대규모의 마약 밀매 및 유통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이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의 짓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완벽한 알리바이의 존재, 그리하여 교도소는 완전범죄의 온상이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감옥 안의 제왕, 절대권력을 손 안에 거머쥔 정익호(한석규)가 존재한다.


 


물론 ‘교도소=범죄의 대가를 치르는 곳’이라는 1차원적인 개념은 ‘교도(矯導)’라는 과정을 통해 사회복귀를 추구함으로써 재범률을 최저 수준으로 낮춘 노르웨이의 교도소 시스템(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음 침공은 어디?>를 참고)의 걸음마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전을 위해 이 글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기로 하자. 어찌됐든 ‘우리에게’ 감옥이란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범죄를 단죄하는 공간이고, 그에 대한 이미지는 지극히 폐쇄적이고 제한적이라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95년, 당시 대한민국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가. 부실 공사로 세워졌던 상품백화점이 무너지고(6월 29일), 노태우와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이 차례로 구속(11월 16일과 12월 3일)됐다. 이처럼 초유의 사태들이 연달이 벌어지면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교도소라는 곳은 그 사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했다”는 나현 감독의 말을 받아들이자면, 제법 적절한 시기를 잡아낸 셈이다. 그 영화가 2017년에 개봉을 하는 이 ‘공교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 2016년 11월 13일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 씨의 구속을 시작으로, 2017년 1월 21일에는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됐고, 2월 17일에는 433억원대 뇌물공여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다. 삼성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그래서 ‘삼성 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덧입혀진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은 놀라운 일이었고, 더불어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3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기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자연스레 ‘교도소(혹은 구치소)’라는 공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수용자 번호 503번이 어떤 수감방에 머물게 되는지, 그 크기나 구조는 어떠한지, 그리고 식사의 질은 어느 정도인지 말이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궁금증들이 뒤섞여 있다. 이러한 물음들의 핵심에는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했던 자들에 대한 교도행정이 다른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이뤄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분명 이들이 ’특혜‘를 받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도 함께 말이다.

 

물론 <프리즌>에서처럼 죄수가 교도소 전체를 장악하고, 심지어 교도소장(정웅인)마저 발아래에 두는 일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범죄를 설계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다니는 것도 불가능하다. (영화 속에서 익호는 유건(김래원)에게 빚을 진 후, 이를 갚기 위해 함께 회를 먹으러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 현실성을 따진다면 <검사외전>에서 변재욱(황정민)과 한치원(강동원)의 내외 합작이라면 또 모를까. 이쯤에서 지난 2005년의 판례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법호인 접견을 이용하여 변호인이 휴대전호와 증권거래용 단말기를 구치소 내로 몰래 반입하고 교도관에게 적발되지 않기 위해 휴대전화의 핸즈프리를 상의 호주머니 속에 숨긴 다음 수용자와 머리를 맞대고 변호인과 수용자가 상담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가방을 세워 두어 통화모습을 거리는 등의 방법으로 마치 형사사건에 관하여 상담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수용자로 하여금 외부와 통화하게 하고 물품을 수수하게 한 것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를 구성한다. 2005. 8. 25. 2005도 1731

 

이것이 일반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교도소’는 여전히 은폐된 공간이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투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교도소가 격리된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곳도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하나의 사회이고, 그렇다면 바깥세상의 ‘룰’이 적용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전반부의 <프리즌>이 관객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제공하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죄수들과 교도관들 사이에 ‘뇌물’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관계망이 형성될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를 가둘 감옥은 없어“

 

익호의 처절한 외침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처참한 수놈 하이에나의 삶(한석규의 표현)’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동시에 저와 같은 생각을 실제로 하고 있을지 모를 ‘죄수’들과 그들에 대한 처우에 난처함을 겪고 있을 교정당국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한편, <채널A>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최순실 씨는 교도관에게 특정 수감자들을 ‘의무실로 데려오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법무부 교정본부 관계자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대꾸할 가치가 없는 보도”라며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각종 특혜 의혹(편의를 위해 별도의 시설을 만들었다거나 서울구치소장이 3일 연속 면담을 가졌다는 등)도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교정당국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감자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며 강력히 부정한 바 있다. 계속된 의혹 제기에 교정당국은 당혹스럽겠지만 어찌하겠는가.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은 것을, 그리고 그러한 불신을 자초하고 증폭시킨 사람들이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저들인 것을.

 

또, ”언론과 국민의 관심 밖에 있던 법무부 교정 교도 제도와 사람들, 철저한 실태조사와 강도 높은 개혁이 있어야 할 어둡고 심각한 '그늘'“이라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처럼, ‘단순히 어처구니없고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동안 ’그늘‘로 존재했던 교정당국이 경각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개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과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처럼 보이는 <프리즌>이 지금 이 시점에 대한민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P.S.  손익분기점인 215만을 넘기고 250만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프리즌>이 조금 더 힘을 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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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차디 찼던 그리고 길고 길었던 겨울이 지났다.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해빙(解氷)이다. 꿈틀꿈틀, 무언가 시작될 조짐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얼음을 딛고 서 있던 사람에게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 언제 바다 밑으로 빠질지 모른다.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초조하기만 하다. 한편, 얼음 아래 갇혀 있던 '비밀'에게는 스스로를 드러낼 적기(適期)다. 혹은 그 비밀이 떠오르기를 고대하고 있던 사람에게도, 해빙은 반가운 순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강이 녹자 머리 없는 여자의 시체가 떠오른다. 얼음이 녹듯, 그리하여 무언가가 시작되듯,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승훈(조진웅)은 자신이 운영하던 병원이 도산한 후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수정(윤세아)과 이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미제 연쇄살인 사건으로 유명했던 경기도 북부의 한 신도시(극 중의 '화정신도시'는 '화성시'을 연상케 한다.)로 옮겨가 선배의 병원에 월급쟁이 의사로 취직하게 된다. 또,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의 건물 3층에 세를 들어 살아간다. "이런 데서 (아들을 데리고) 살 생각이야?"라고 따져 묻는 수정의 대사처럼, 허름한 건물의 원룸이다. 승훈은 짐조차 풀지 않고 지낸다. 어차피 몇 개월밖에 되지 않는 계약 기간, 다시 또 어디론가 옮겨야 할지 모른다. 피곤에 절어 퇴근을 하면 곧바로 퍼져 잠이 든다. 그러나 안식은 없다. 



"팔다리는 한남대교에, 몸통은 동호대교에… 이렇게 따로 버려야 내년 4월까지는 떠오르지 않을 거야."


성근의 아버지, 치매 노인(신구)가 수면 내시경 도중 내뱉은 의문스러운 말은 승훈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이것은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살인 고백'인가, 아니면 치매 노인의 단순한 '헛소리'인가. 평소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기 때문일까. 그때부터 모든 것이 의심스럽기 시작한다. 한강에 떠오른 시체, 15년 전에 발생한 살인 사건, 치매 노인의 괴상한 말.. 승훈의 혼란은 점점 가중된다. 그 와중에 들려오는 소문들은 또 어떠한가. 치매 노인의 아내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문에서부터 성근의 필리핀 국적의 전처(前妻)도 어느 순간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까지. 게다가 자신에게 자꾸만 '접근'하는 성근의 태도는 왜 저리도 의뭉스럽단 말인가. 


이상한 건 성근만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죄다 그렇다. 승훈의 주위를 맴도는 정체불명의 남자(조경환)는 도대체 누구일까.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성근의 아내 미숙(김주령)의 태도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고,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미연(이청아)는 끈적하고 노골적이다. 안정적 삶이 붕괴된 충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승훈의 입장에서 낯선 곳의 낯선 사람들이란 존재는 그 자체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일터뿐만 아니라 집까지, 불안과 공포가 스며든다. 긴장은 풀어지지 않고, 불면의 밤이 늘어간다. 승훈의 히스테리가 늘어갈수록, <해빙>의 미스테리는 점차 증폭된다. 



"두 번의 경제위기가 휩쓸고 간 한국.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이미 무너졌고, 한 번의 실패는 영원한 계층 추락으로 이어져 그 어느 때 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해 가고 있습니다. () 저는 미스터리 심리스릴러인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어떤 불안을 포착해 보고, 그것으로 인해 확인하게 되는 인간의 본성까지를 다뤄 보고자 했습니다." (이수연 감독)


<4인용 식탁>(2003)을 통해 데뷔했던 이수연 감독은 <해빙>을 통해 자신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치밀한 '심리 스릴러'를 선보였다. 전체 분량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던 조진웅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승훈의 의심을 받는 정육식당 주인 성근 역을 맡았던 김대명의 연기 변신이 돋보였다. 섣불리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캐릭터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김대명의 호연이 있었기에 <해빙>의 긴장감이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또, 기존의 청순발랄 이미지에서 벗어나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미연 역을 맡은 이청아의 역량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신구의 독보적 존재감은 부연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


영화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 아쉬움이 있다. 개연성에 대한 지적은 물론이고, 과도한 음악의 개입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에서부터 스릴러치고는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의견들이 많다. 지금 <해빙>이 받고 있는 낮은 평점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범인(악)'을 찾는(쫓는) 일반적인 스릴러와 달리 한 인물의 심리 변화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둔 <해빙>의 결을 따라 승훈이라는 인물에 온전히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각나 있던 퍼즐이 하나로 맞춰지는 순간이 주는 쾌감도 제법 시원한 편이다. 다만, '반전'에 대해서는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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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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