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8월,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 기사 유 씨(42세)가 흉기에 십수 차례 찔려 살해 당했다. 마침 오토바이를 몰고 현장을 지나가고 있던 최 군(16세)가 이 끔찍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1심에서 범행을 부인한 최 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는 범행을 시인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0년 형기를 가득 채우고 세상을 돌아왔다. (9년 7개월 만에 특사로 출소) '군'이라는 호칭이 '씨'로 바뀔 만큼 긴 세월이었다. 그리고 2013년 4월 최 씨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再審) : 이미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중대한 하자가 있음을 이유로 소송 당사자나 기타 청구인이 그 취소와 변경을 청구하여 다시 하는 재판


▲ "잡히고 나서 바로 경찰서에 간 게 아니라 여관을 데려 갔다. 거기서 머리도 때리고 무자비하게 폭행 당했다. 범행을 거부하면 더 맞았다. 무섭다는 생각만 들었다" (최 씨)

▲ "내가 죄인이야, 뭐야? 그때 일은 기억 안 난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찰)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2013년과 2015년 두번에 걸쳐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을 다뤘다. 최 씨의 억울한 사연을 소개하며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했고, 2015년에는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자의 진술을 추가로 확보해 공개했다. 당시 혈흔과 증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경찰은 폭행 · 강금 등 강압적인 수사를 통해 '범인 만들기'에 몰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참담한 진실 앞에 국민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타락한 공권력, 부패한 공권력의 추악한 민낯에 또 한번 몸서리를 쳐야했다. 정말이지 진저리가 났다. 


법원은 최 씨가 불법 체포 · 감금 등 가혹행위를 당했고, 새로운 증거(증인)가 확보된 점을 들어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항고로 맞섰다. 대법원은 재심을 인용하기로 결정했지만, 검찰은 또다시 재항고로 어깃장을 놨다. 대법원이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면서 드디어 최 씨에 대한 재심이 열리게 됐다. 그리고 지난 2016년 11월 17일, 광주고법 제1형사부(노경필 부장판사)는 "검찰이 확보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충분하지 않다"면서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실제 사건에 대해 듣는 순간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소재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란 것이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김태윤 감독)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유명(?)해진 이 사건이 영화로 제작됐다. 바로 <재심>이다. (물론 김태윤 감독이 이 영화의 연출에 착수한 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되기 전이라고 한다.)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상업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닌데, 15일 개봉한 이래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개봉 첫 주에는 <조작된 도시>와 함께 쌍끌이 흥행 구도'를 형성했고, <23아이덴티티>, <존윅-리로드>, <싱글라이더>가 개봉한 22일에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재심>의 흥행은 쟁쟁한 작품들 사이에서 거둔 쾌거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처럼 <재심>이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열광적인 입소문의 파도를 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무래도 '실화'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충격적이고, 극적인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또,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은 이야기에 훨씬 더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영화를 볼 때, 시작과 함께 나오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내용의 자막은 자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를 고쳐잡게 만들지 않던가?


타이밍도 좋았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도중,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최 씨에 대한 재심이 '무죄'로 결론나면서 영화의 '타당성'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해 <재심>의 김태윤 감독, 그리고 함께 분노했던 국민들의 '판단'은 정확했던 셈이다. 분명 이 '교감'이 '상승 작용'을 일으켰으리라. 흥행의 측면에서 볼 때, '결과'를 모른 채 영화가 개봉됐다면 더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얄팍한' 생각이 들지만, 지금의 '해피 엔딩'에 만족하기로 하자. 



이렇듯 <재심>의 첫 번째 힘이 '실화'라면, 두 번째 힘은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속물 변호사 이준영(실제 사건에서 변호를 맡은 변호사의 이름은 박준영이다.) 역을 맡은 정우와 억울한 누명을 쓴 조현우 역을 맡은 강하늘은 탄탄한 연기 내공을 뽐낸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tvN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정우는 <히말라야>, <쎄시봉>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대중 앞에 섰다. 하지만 <히말리야>에서는 황정민, <쎄시봉>에서는 김윤석에 가려져 '정체'됐다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재심>에서는 기존의 틀(어쩌면 그는, 그가 연기했던 '쓰레기' 역에 지나치게 묶여 있었는지도 모른다)을 깨고 한층 성숙한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의 포인트가 살인 누명을 쓴 조현우의 억울함보다 속물 변호사 이준영의 변화와 성장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기만 하다. 그 무게감을 잘 견뎠다고 해야 할까. 특유의 장난기와 진지함을 동시에 그리고 적절히 표현했는데, 그가 지닌 또 하나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폭발력'도 영화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강하늘은 기존의 '착한'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하고, 저돌적이고 터프한 캐릭터를 맡아 변신을 시도했다. 보여줬던 놀랍게도 이 변신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 오히려 강하늘이 원래 이런 눈빛을 가지고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만큼 강하늘의 연기는 안정적이면서 깊고 단단했다. 그러고 보면 <동주>에서도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청년 윤동주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냈고,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서는 8황자 왕욱 역을 맡아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연기를 펼쳐보였던 그였다.



이처럼 정우와 강하늘, 두 젊은 배우의 '기'가 맞부딪치면서 발현되는 에너지는 <재심>의 관람 포인트다. 여기에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힘겨운 싸움이 깊은 울림을 준다. 그 승리가 짜릿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토록 힘겹게 싸워야만 '겨우'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정의'인가, 라는 답답함과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법의 존재 이유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겠지만, 여전히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법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아니겠는가.


김태윤 감독은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는데, 정말이지 하루빨리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사회가 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안하다'는 사과가 우선돼야 한다. 강압적인 수사를 했던 경찰은 물론이고, 검사, 판사, 국선 변호사 모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비록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그 반성이 없다면 여전히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은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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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한 내레이션,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천상병 시인의 <나무>라는 시다. 사람들이 '썩은 나무'라고 했던 그 나무가 사실 무한한 생명력을 내재한 존재였고, 꿈 속에서 그 잠재성을 발견한 '나'는 다시 사람들을 모아 이렇게 외친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흘러나오는 '썩은 나무' 타령에 처음에는 '뭐? 무슨 말이야?'라는 의문이 들 법 한데,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다보면 첫 장면의 내레이션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다시 읊어지는 저 시를 마주한 관객들은 '맞아, 썩은 나무가 아니야'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천상병의 <나무>는 영화 <조작된 도시>를 꿰뚫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어찌보면, <조작된 도시>가 천상병의 <나무>라는 시에 대한 '재해석'이라 여기지기도 한다. 그만큼 두 '작품'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단순히 '썩은 나무'의 재조명을 넘어 어떤 존재를 '썩은 나무'라고 '규정'짓는 '닫힌' 사회적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뒤집기 위해선 또 다시 '사람을 모아'야 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게임과 현실을 넘나든다. 마치 <나무> 속의 '나'가 ''꿈'을 꾸듯이. 권유(지창욱)는 게임의 세계에서는 팀원들을 이끌고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리더 '권대장'이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백수에다 'PC방 죽돌이'에 지나지 않는다. 3만 원이 없어서 정모에 참석도 할 수 없는 처지, 그러니까 '썩은 나무'라 할 만 하다. 그의 팀원들은 어떠한가. 데몰리션(안재홍)은 특수효과 회사의 말단 스태프이고, 용도사(김민교)는 용산 전자상가 출신 이른바 '용팔이'다. 여백의 미(김기천)는 지방대 교수인데, 게임 속 그들의 멋진 캐릭터와 현실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현실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썩은 나무'인 셈이다. 한편,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또 다른 팀원 은폐(김슬기)와 엄폐(심원철)는 성인 인터넷 방송 VJ와 감독으로 우리 사회의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 할 수 있다. 또, 가장 도드라지는 캐릭터인 '털보형님' 여울(심은경)은 천재적인 해커 실력을 자랑하지만, '메시지'로 대화를 해야 할 만큼 심각한 대인기피증이 있어 현실에선 부적응자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게임 속에서 맺어진 인연을 바탕으로 '의리'를 발휘해 누명을 쓴 '권대장' 권유를 물신양면으로 돕는다. 살인범으로 몰려 그 누구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 권유를 돕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팀원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들은 웃음을 주는데, 이들이 힘을 모아 권유의 억울함을 해소시키는 과정은 묘한 쾌감을 준다. '썩은 나무',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 '루저'라고 규정된 어떤 존재들이 현실의 '질서'를 뒤집고, 기득권의 오만함에 한방 먹이는 그 유쾌한 반란이 주는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정보'를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졌다고 했던가. 어느덧 정보는 권력이 됐다. CCTV, 신용카드 등을 통해 개인 정보가 자동적으로 수집되고, SNS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사회에서 '감시'와 '통제'는 더욱 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민천상(오정세)은 '21세기 빅브라더'이다. 자신의 서버에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사건을 '은폐'하기도 하고 '조작'하기도 한다. 그의 기획에 따라 전문가 · 언론 등이 움직이고, 여론은 신명나는 춤을 춘다. 그 과정이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소위 기득권자들이 범죄를 저지른 후 '의뢰'를 하면, 민천상은 시나리오를 짜고 그럴듯한(!) 범죄자를 선택한다. 권유처럼 게임에 빠져 PC방을 전전하는 백수라면 '땡큐'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쾌히 수긍을 하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성매매 여성은 좋은 먹잇감이다. 그가 톱스타에 대한 집착으로 엽기적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면 세상은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니까.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더하자면, 민천상이 '인권 변호사'라는 탈을 쓰고 있다는 설정이다.



은폐된 진실, 조작된 증거, 여기에 가담한 언론.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몰린 권유와 그의 팀원들은 이 공고한 '세상'에 기꺼이 맞서 싸운다. 그 '전투'는 무모해 보이지만, 그들은 조금씩 '조작된 도시'에 균열을 내고, 끝내 그 거짓된 세상을 박살내고야 만다. 특히 이들이 '진실과 거리가 먼' 방송국을 배경으로 마지막 활극을 벌이고, '권력의 언어를 고스란히 읽는' 앵커를 향해 돌진하고, 결국에는 성인 인터넷 방송의 은폐와 엄폐가 '진실을 담은' 뉴스를 전국에 생중계하는 장면은 눈과 귀를 닫은 이 시대의 언론에 경종을 울린다. 


누군가가 처음 그들을 향해 '썩은 나무'라고 불렀고, 사람들은 덩달아 그들을 '썩은 나무'라고 믿었다. 하지만 <조작된 도시>는 그 시선과 생각들이 '조작'된 것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를 알아챌 수 있는 '안목'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기득권이 만들고 주입시킨 딱딱한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뿐일까. 아니다.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바로,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외칠 준비가 됐는가.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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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유해진에게선 '사람 냄새'가 난다. 또, 그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한마디로 '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식상한 표현이지만, 유해진에겐 그 '진부함'마저도 설득시키는 묘한 힘이 있다. tvN <삼시세끼>에서 보여준 수더분하고 인간적인 모습 때문일까?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이 도움이 된 건 분명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인 것만 같진 않다. 이미 대중들은 알고 있었다. 그가 성실히 쌓아왔던 진정성 가득한 필모그래피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배우 유해진, 인간 유해진의 매력에 대해서 말이다.



"복 받았지. 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날 밀어 주려 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아요. 도움을 준다고 해야 하나? 고맙고 감사하죠." <일간스포츠>, 유해진 "인생은 파도타기..입방정 떨지 않을것"



6,975,295명. 그가 '첫' 주연을 맡았던 <럭키>가 거둔 흥행 기록이다. '손익분기점(180만 명)만 넘기면 좋겠다'던 소박한 목표를 가볍게 뛰어넘은 대성공이었다. 사실 큰 기대가 있었던 작품은 아니었다. 냉정히 말하자면, '뻔한 코미디'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뻔함'이 '유해진'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고 나자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에게는 '진부함'마저도 설득시키는 힘이 있다고. 유해진은 '사람들이 날 밀어 주려 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는데,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 '느낌'이 유효한 듯 하다.


'쌍끌이 흥행'. 현재 박스오피스 상황을 설명하기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지난 18일, 같은 날 개봉한 <더 킹>과 <공조>는 각각 185만 2,944명과 115만 4,011명을 동원하며 '공생(共生)'의 길을 걷고 있다. '시국'에 절묘히 부합하는 데다 정우성 · 조인성을 앞세운 <더 킹>을 앞지르는 건 어려워 보이지만, 설 연휴에 가장 어울리는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은 <공조>의 앞날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유해진'이라는 대중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배우가 있지 않은가. 



▲ 공조(共助) :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서로 함께 도움


'재료'만 놓고 보면 <공조>는 굉장히 매력적인 영화다. 무엇보다 '남북 공조 수사'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페쇄하는 등 남북의 교류와 협력이 사실상 문을 닫은 상황에서 남북한의 형사들이 팀을 이뤄 '수사'를 펼친다는 설정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북한 형사 임청령 역을 맡은 현빈이 소화하는 짜릿한 액션과 남한 형사 강진태 역을 맡은 유해진의 코미디 연기도 감상 포인트다. 거기에 JK필름(윤제균) 특유의 따뜻한 가족애까지, 또 하나의 '선물 세트'의 탄생이라 일컬을 만 하다.


그런데, 이 재료들을 몽땅 한 솥에 넣고 주구장창 끓이니 평범한 '부대찌개'가 돼 버렸다. 부대찌개라는 음식을 폄훼하는 게 아니라 재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독특한 특색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결국 영화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설득력을 부여하고, 그리하여 관객들을 이해시키는 건 '감독'의 역할이다. 그런데 <공조>의 김성훈 감독은 차분히 관객들에게 다가가기보다 우격다짐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데 급급하다. 마치 '우리 영화 주인공이 무려 유해진과 현빈이야!'라고 말하는 듯 하다.



위폐 제작에 쓰이는 동판을 훔쳐간 북한 인민보안부 간부 차기성(김주혁)을 쫓는 과정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뿐만 아니라 차기성이 동판을 탈취한 동기와 목적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돈'이라는 이유가 제시되지만, 그것만으로 이 모든 상황을 얼버무리긴 무리스럽다. 임청령과 강진태의 관계의 '급진전'도 다소 의아하다. 고작 3일의 시간만으로 '목숨'을 걸 만큼의 관계 형성이 가능한지 의문스럽다. 다분히 '가족애'라는 장치를 활용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여 불편하기도 하다. 끝내 '가족애'를 결말에 갖다 부치는 '과욕'이라니!


결국 <공조>를 이끌어 가는 힘은 당의 지시를 수행하는 동시에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공조 수사'에 투입된 림철령과 그런 림청령의 활동을 감시하고 막는 한편, 진짜 목적을 캐내야 하는 강진태가 보여주는 동상이몽, 그 애매한 콤비네이션에서 나온다. 거기에서 최대한 많은 '웃음'을 낚아채야 하는데, 영화는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그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예측 가능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지루함마저 느껴진다.



분명 <공조>는 흥행 면에서는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건 '코미디'라는 장르가 명절 연휴를 만났을 때 나타나는 필연적 화학 현상과도 같은 것이다. 거기에 '유해진'이라는 배우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날개'를 잔뜩 붙인 셈이다. 그런데 고민해봐야 한다. '이번에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말이다. 이번에도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부실한 이야기와 뻔한 연출, '감동'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추구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또, 유해진이라는 배우에게도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럭키>와 <공조> 두 작품에서 힘을 뺀 코미디 연기를 통해 주연 배우로 거듭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면, 이제 다시 '긴장감' 넘치는 연기를 관객들에게 선보여야 할 시기가 아닐까. 과거 <이끼>와 <부당거래>에서 보여줬던 강렬한 연기, 그 예측 불가능한 천의 얼굴을 다음 작품에선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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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태에 대해서 얘기 한마디 해 주시죠.) "엘리베이터가 왜 안 오나?" (김기춘)

"영장실질심사에 성실히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윤선)


'왕실장'과 '스타장관'의 몰락.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를 받았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78)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이 결국 구속됐다. 박영수 특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국회위증죄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은 21일 오전 3시45분쯤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마(法魔) 김기춘과 법비(法匪) 조윤선은 향후 최악의 법률가 표본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 평가했다. 


이제 남은 건 또 한명의 '법꾸라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50)과 이 모든 범죄의 '몸통' 박근혜 대통령이다. 특검은 이미 두 사람을 사정권(射程圈) 안에 놓고 정조준하고 있다. 우 전 수석에 대해선 개인 비리를 포함해 재직 당시 최순실 씨 등의 비리를 눈감고, 이를 넘어 비호 · 방조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고, 박 대통령에 대해선 세월호 참사 직후 '좌파 성향'의 문화 · 예술계 인사들을 관리하도록 검토 · 지시한 주체로 보고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은 희대의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도 무겁게 져야 할 것이다. 



"그 법 기술을 현란하게 능수능란하게 사용해서 선악을 안 가리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쓰는 거 아니에요 보면. 그렇게 해서 이해관계와 권력의 정점을 얻는 것은 당연한 전리품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060회 중에서, 김경진 국민의당 국회의원의 인터뷰 내용)


법을 '정의'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는 데 이용했던 저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18일 개봉한 <더 킹>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시국과 절묘히 조응(照應)하는 영화들이 여러 편 개봉했지만, 그 중에서 <더 킹>이 차별성을 갖는 이유는 법을 다루는 '검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그런데 '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한 두 편이었던가? <더 킹>의 한재림 감독은 영리하게도 '돌파구'로 박태수(조인성)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따라가면서 그 흥망성쇠와 '현대사'를 절묘히 병치시킨다. 


박태수는 동네 건달, 그의 표현대로라면 '양아치'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바람을 피운 아버지 탓에 어머니는 집을 나간 지 오래다. 그런 아버지에게 배운 게 무엇이겠는가. 주먹질, 싸움질 그런 것들이다. 그날의 사건이 아니었지만, 그도 아버지처럼 '양아치'가 됐을 것이다. 어느 날, 태수는 아버지가 누군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모습을 본다. 작은 체구의 그 누군가는 어디서나 큰소리를 치던 아버지를 간단히 제압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검사'였다. 태수는 그날로 검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검사가 된 태수는 180도 달라진 현실을 맞이한다. 부잣집 딸인 임상희(김아중)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재력까지 손에 넣는다.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간다. 검사로서의 정의감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저히 불합리한 상황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양심'은 가진 채 말이다. 그러다 지역 유지 아들의 성폭행 사건을 맡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기로에 서게 된다. 결국 박태수는 대학 선배 양동철(배성우)의 청탁을 받아들이게 되고, 서울지검 전략부 부장 검사 한강식(정우성)의 라인에 올라타게 된다.


이제부터 박태수는 99%의 선량한 검사들의 삶이 아닌 비뚤어진 권력욕에 물든 1%의 비리 검사의 편에 선다. 아니, 적극 가담한다. <더 킹>은 무소불위의 힘을 손에 거머쥐고 나라를 마음대로 뒤흔드는 그들의 모습을 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엮어낸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까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통령들은 시대적 배경이 될 뿐 아니라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왜냐하면 비리 검사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라인'을 잡는 것이고, 누가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 묵혀 두는 거야. 김치 익히듯이 묵혀 뒀다가 때가 되면 꺼내는 거지."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


그리하여 5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는 인생의 모든 것을 건 '도박판'과 마찬가지다. '무당'을 찾아가서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 물어봐야 하고, '굿'을 해서라도 누구만큼은 절대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빌어야 한다. 그동안 묵혀 뒀던 자료들은 이때 긴요하게 사용되는데, 줄을 댈 후보 측에 갖다바치고 '자리'를 약속받는 식이다. 영화 속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을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로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 샤먼의 지배를 받는 한심한 대한민국이여!  


한강식과 양동철, 박태수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우리는 그 결과를 현실에서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뒷북'이 될 법했던 <더 킹>은 블랙코미디이자 풍자극이라는 접근을 통해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데 성공했고, 같은 날 개봉했던 <공조>를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선악의 대비가 도드라지지 않아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적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을 곱씹을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오히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정치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결코 무겁지 않다. 오히려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 차 있어 즐겁게(씁쓸함은 각오해야 한다) 감상할 수 있다. 또,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권력만을 좇아왔던 김기춘, 우병우 등이 연상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탄핵, 그리고 서거에 이르는 과정을 담아낸 건 한재림 감독이 어떤 각오를 하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 박근혜 대통령의 출연 장면도 놓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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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하고 터졌다. '주말 + 크리스마스'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300만 명을 넘어 버렸다. 개봉 첫 날 39만 2,866명을 동원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던 <마스터>는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무려 182만 1,541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300만 고지를 거뜬히 넘었다. 누적 관객 수는 300만 2,269명.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특수를 제대로 누렸다. 별다른 경쟁작이 없는 상황이라 이런 추세라면 2017년 첫 1,000만 영화의 자리를 노려봄직하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꿈의 캐스팅에 엄지원, 오달수, 진경까지 특급 배우들이 참여한 <마스터>는 '진수성찬'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이 배우들을 데리고 못하면 내가 정말 못한 것"이라는 조의석 감독의 말처럼 '실패'를 예상하기 힘든 라인업이다. 관건은 '입소문'이다. '런닝타임이 너무 길다', '지루하다'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어 앞으로의 흥행 전선이 어떻게 형성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연말 + 연초'라는 또 하나의 특수가 기다리고 있어 <마스터> 입장에선 미소를 살짝 머금어도 될 것 같다.



1. <마스터>는 쉽다. 


"조희팔을 모티브로 한 것은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커서 그랬어요. 진현필을 필두로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부조리를 모두 진현필에 담아보려고 그랬죠."


조의석 감독은 <마스터>가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사기 사건인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혔다. 조희팔이 누구인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0여 개의 피라미드(다단계) 업체를 통해 투자자 약 3만여 명으로부터 무려 4조 원을 가로 챈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표현조차 너무 낭만적이라 죄송하다)이다. 사기 행각이 들통나고, 검찰이 기소를 하기 직전 조희팔은 중국으로 밀항에 성공한다. 신분을 숨긴 채 중국에서 숨어 살아가던 조희팔을 수사하던 경찰은 2012년 5월 난데없이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발표한다. 


"조 씨가 지난해(2011년) 12월 중국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으며, 같은 달 국내로 유골이 화장되어 이송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정말 조희팔은 사망했는가? 경찰이 '조희팔은 죽었다'며 제시한 증거는 응급진료기록부, 사망진단서, 화장증명서, 장례식 동영상 등이었다. 하지만 사망진단서에 공안의 직인이 없었고, 화장증명서에는 조희팔이 사망한 날의 일주일 전 날짜 도장이 찍혀 있는 등 의심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았다. 결정적으로 조희팔의 유골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조사를 의뢰했지만, '감식 불가'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조희팔의 위장 죽음에 대한 의혹은 커져만 갔다. 결국 경찰은 "사망했다고 판단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물러서야만 했다. 



조의석 감독이 '조희팔 사건'을 끄집어낸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매력적인 소재'였기 때문이다. '사이즈'가 대충 나오지 않는가. 이건 1,000만 영화의 '사이즈'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카드'까지 손에 거머쥔 조 감독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부터 기조는 이랬을 것이다. '쉽게 가자, 쉽게' 그래서 <마스터>의 구도는 명확하다. 사기꾼 진현필이라는 '악'이 있고, 그를 잡아들이려는 경찰 김재명(강동원)이라는 '선'이 맞선다. 그 사이를 줄타기하며 오가는 박장군(김우빈)은 '정의'라는 이름에 감복해 '새사람'이 된다.


'오락 영화'이자 '1000만 영화'라는 쉬운 길을 선택한 <마스터>는 '조희팔 사건'이 담고 있는 문제(천민자본주의나 정경유착 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지적으로 뛰어난 인간들, 그것이 사기꾼이든 경찰(영화 속에서 김재명은 진현필을 속일 만큼 명석한 두뇌를 자랑한다)이든 간에, 그들 간의 '전쟁'으로 몰아간다. 여기에 조희팔에게 돈을 갖다 바친 사람들, 그 평범한 이들은 '욕망'의 노예가 된 '바보'에 불과하다. 똑똑한 사람들은 그 바보들을 등쳐먹고, 어쩌면 그들을 대신해서 '정의'를 외친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2. <마스터>는 헷갈린다.


<마스터>의 런닝타임은 143분이다. 제법 길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런닝타임이 너무 길다'고 말한다. 사실 영화가 길다는 건 그 자체로 흠이 아니다. <곡성>만 156분이나 되고, <타이타닉>은 195분이다. 문제는 여기에 한마디가 덧붙여진다는 것이다. 바로 '지루하다'는 혹평이다. 이건 치명적이다. 그것도 범죄, 액션 영화가 지루하다니! '조희팔 사건'이라는 영화적으로 가장 구미가 당기는 소재에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재료'까지 갖춘 <마스터>가 지루한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은 분명 <마스터>의 삼각축이다. 영화는 초반의 긴 시간을 인위적으로 배분해 세 인물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그건 '설명'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보여주기'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단조로운 캐릭터가 입체감마저 잃어버렸다. '정의'를 부르짖은 김재명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라 매력적이지 않다. 강동원의 비주얼이 빛을 발하지만,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눈길은 절대 악이라고 할 수 있는 진현필에게로 자꾸만 쏠린다. 


<베테랑>에서 유아인을 통해 증명된 것처럼, 악역이 살아야 영화 전체가 살기 마련이다. 이병헌은 발군의 연기를 통해 진현필을 묘사한다. 하나의 감정만을 얼굴에 드러내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이병헌쯤 되는 배우는 다양한 감정들을 얼굴에 녹여낸다. 그의 연기를 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문제는 <마스터>가 원하는 건, '조희팔=사기꾼'이라는 공식일 뿐 관객들이 그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을 차단한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이병헌의 연기는 뭔가 '소비'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병헌의 진현필은 지나치게 매력적이고, 영화는 관객들이 진현필에 감정이입을 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그는 사기꾼 조희팔의 모방이 아닌가. 그는 나쁜 놈이고,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관객들이 기댈 곳은 박장군뿐이다. 생존을 위해 진현필과 김재명 양쪽을 '박쥐'처럼 오가는 박장군은 그나마 가장 '친근한' 캐릭터다. 김우빈은 다양한 표정과 과장된 제스처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물하지만, 판에 박힌 스토리 라인과 결말을 구제하기엔 역부족이다. 


관객들의 헷갈림은 바로 애매한 삼각축이 만들어 낸 부조화에서 비롯되고, 관객들이 느끼는 지루함 역시 여기에 책임이 있다. 밋밋한 인물 소개 따위는 과감히 잘라버리고, 차라리 후반부에 펼쳐지는 진현필과 김재명의 진검승부에 좀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삼각축에 대한 인위적 배분을 포기하고, 하나의 축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지루하다'는 평은 듣지 않게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마스터>는 한국영화의 기술적인 완성도가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그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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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라랜드(La La Land) 

1.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 LA의 별명

2. 꿈의 나라, 비현실적인 세계를 의미


우연한 만남이 세 번이나 연속된다면 인연이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미아(에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LA의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처음 마주친다. 정체된 도로가 풀리기 시작했는데, 오디션 대본에 읽느라 집중하고 있던 미아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뒤에 있던 세바스찬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날카로운 경적 소리를 울려 대곤 미아를 잔뜩 노려보고 질주한다. 물론 대찬 성격의 미아도 거기에 뒤지지 않는 반응과 제스처로 화답한다. 와우, 첫 번째 우연은 '악연'이었다. 


두 사람은 이내 또 마주치게 된다. 길을 걷고 있던 미아는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어느 재즈바로 발길을 옮긴다. 이럴수가. 경적을 울리던 고속도로의 그 남자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이라니. 세바스찬은 마침 '해고'를 당했고, 기분이 좋을 리 없는 그는 미아가 건네는 인사를 묵살한 채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친다. 두 번째 우연도 '악연'이었다. 여기에서 끝났다면, 두 사람은 '인연'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곧 세 번째 만남이 이뤄진다. 파티에 참석한 손님과 출장을 온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로 만난 두 사람. 그들의 '운명'이 시작됐다.



"2시간 동안 마법처럼 반짝이는 밤하늘로 데려간다." <텔레그래프>

"대공황 시기 미국 뮤지컬계의 전설 프레드 아스테어가 세운 '뮤지컬 영화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진정 어린 노력이다." <뉴욕타임즈)


<라라랜드>는 <위플래쉬>를 연출했던 데미언 채즐(Damien Chazelle)의 후속 작품이다. 그는 전작인 <위플래쉬>에서 '최고의 재즈 드러머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청년 앤드류(마일스 텔러)와 재능을 극한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강압적인 교육 방식을 채택한 교수 플렛처(JK 시몬스)의 이글거리는 욕망과 그 치열한 부딪침을 '음악'을 통해 풀어냈다. 무엇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강렬한 사운드는 관객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전율을 느끼게 했다.


여전히 '음악'은 적절하고, '꿈'을 향한 도전 역시 유효하다. 하지만 '광기'에 차있던 <위플래쉬>와 달리 <라라랜드>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관객들을 홀린다. 아마도 그건 '낭만'이 아닐까. 기회의 땅이자 꿈의 공간 미국의 LA, 도시 전체를 '뮤지컬' 무대로 삼은 <라라랜드>는 아름답다. 2시간 동안 영화를 어루만지는 재즈 선율은 그 음악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세바스찬과 미아로 대표되는 청춘의 꿈과 사랑, 열정과 도전은 역시 그 자체로 아름답다.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가 사람들로 외면받는 현실이 마뜩지 않다. 그는 정통 재즈 클럽을 열어 그 안에서 사람들에게 마음껏 연주를 들려주는 게 목표다. 미아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LA로 왔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틈이 오디션에 참가하지만 번번히 오디션에서 낙방한다. '실패'의 아픈 경험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며 로맨틱한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이뤄지지 않는 꿈, 도달하지 못한 이상은 곧 두 사람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라라랜드>는 마냥 로맨틱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슬프고, 아련하고, 때론 '비릿'하다. <라라랜드>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꿈'과 '사랑'을 다 이룰 순 없는 거라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고, 한 가지를 가지면 하나는 손에서 놓아야 한다고 말이다. 결국 인생은 '선택'이고, 우리는 그 결정의 순간에 서게 된다고. 무엇을 잡을지는 결국 너의 몫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만약(What if)'이라는 상상을 통해서만 그 선택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건 행복한 반추(反芻)일까, 쓸쓸한 되새김일까.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데미언 채즐의 세계관은 제법 비관적이다. 혹시 그건 재즈 드러머를 꿈꿨지만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버드 대학 영상학부에 입학하며 영화 감독으로 삶의 방향을 바꿨던 그의 개인사와도 연결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의 영화들이 대한민국에서 더욱 사랑받는 까닭(21일까지 누적 관객 수 1,509,373명)도 한국 관객들이 '낭만' 아래 깔려 있는 '비관'을 직관적으로 낚아챌 수밖에 없는 씁쓸한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1960년대 프랑스 감독 자크 드미의 작품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데미언 채즐은 <라라랜드>를 통해 클래식한 뮤지컬 영화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안정적인 연기와 두 배우 간의 호흡이 돋보이는 춤과 노래는 경쾌하고 흥겹고 때론 가슴 시리기까지 한다.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추천할 만한 영화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색하거나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단순히 박스오피스 순위만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이라면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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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향한) 타입슬립'은 '후회'와 동의어에 가깝다. 그 태도는 소극적인 '관조'라기보다는 적극적인 '욕망'에 가깝다. '과거를 바꾸고 싶다, 그래서 현재도 변화시키고 싶다'는 바람의 적극적 투영이다. 어쩌면 그 사고방식은 어린아이의 '떼쓰기'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지지 못한 것(사람)을 기어코 내 손안에 넣고야 말겠다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욕심이 만들어낸 판타지가 결국 '타입슬립'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현실'의 모든 것을 놓쳐도 상관없다는 무책임함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쯤되면 간단히 소극적이라 치부했던 '관조'는 오히려 성숙함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딱 한번만 보고 싶다, 그거면 됐다는 '연민'은 자신을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나오는 '힘'이다. 그런데 시간 여행을 떠난 우리들은 과연 거기에서 멈출 수 있을까.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기만 하는 데서 만족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과거를 향해 몸을 움직인 순간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고, 욕망은 그 연약함을 오래도록 지배해왔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어. 지금 이 순간 역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고."

"당신에겐 과거지만 나한텐 미래에요. 그 미랜 내가 정하는 거고!"


현재의 한수현(김윤석)은 캄보디아에서 의료 봉사를 하던 중 한 소녀를 치료하고, 소녀의 할아버지로부터 답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10개의 알약을 받는다. "삶은 당신이 잠들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한 알을 삼킨 그는 딱 30년 전인 1985년으로 돌아가 과거의 한수현(변요한)을 만난다. 그건 '갈망' 때문이었다. '폐암'으로 죽음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던 한수현은 '회한'처럼 남아 있던 첫사랑,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했던 연아(채서진)를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30년 후의 한수현이 굳이 과거까지 찾아와 연아를 만나려 한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낀 과거의 한수현은 결국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처음에는 '타입슬립'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과거의 한수현은 끔찍한 사고를 막기 위해 미래의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과거가 바뀌면 현실이 뒤죽박죽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현재의 한수현은 '관조'에 그치려 했지만 이 상황에서 발을 빼긴 이미 늦어버렸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두 사람(아니, 한사람 인가?)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이미 '현실'을 변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는 과거를 바꾸고 싶지 않은 미래의 나와 현실을 바꿔야만 하는 과거의 나 사이의 충돌이다. 기존의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수많은 이야기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이 싸움의 승자는 당연하게도 과거의 나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과거의 한수현은 보다 강력하게 현재의 한수현을 압박하고, 이를 실감한 현재의 한수현은 과거의 자신에게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김윤석은 기존의 강(强)의 연기를 버리고 힘을 뺀 채로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중년의 수현을 연기했다. 과거의 연아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헬륨 풍선을 들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반갑기도 했다. 변요한은 대선배 김윤석을 상대로 자신만의 연기 내공을 뽐냈는데, 젊음의 강렬함과 동시에 유약함과 미숙함을 적절히 표현해냈다. 깊은 눈빛을 통해 발현되는 내면 연기는 그가 앞으로 충무로를 이끌 배우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두 배우는 케미가 잘 맞을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닮았다.



또, 김옥빈의 여동생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채서진은 배우로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수현의 친구 역할 태호 역을 맡은 김상호와 안세하는 이야기가 다소 무거워지거나 전개가 뻑뻑해질 때 쯤이면 어김없이 등장해 '웃음'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타입슬립'이라는 판타지 소재를 가져왔으면서도 굳이 시간을 이동할 때 쓸데없는 CG를 쓰지 않은 부분은 오히려 담백했다. 잘 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없애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첫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부성애'까지 놓치지 않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는 추운 겨울에 관객들을 따스하게 위로한 좋은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물론 숱하게 나왔던 '타입 슬립'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개연성을 기대하진 말기 바란다. '적절한' 이야기를 '적절한' 수준에서 매듭 지은 탓에 '틈'이 존재하지만, 어차피 '감성'에 무게를 둔 영화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에 초점을 맞춰 마음 편히 감상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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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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