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는 황정민밖에 없냐?’ 


또, 황정민이 해냈다! <공작>(감독 윤종빈·제작 영화사 월광)의 상승세가 무섭다. <신과 함께-인과 연>의 기세에 눌러 있던 <공작>은 개봉 6일 만에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 누적 관객은 232만 2644명. <공작>은 1990년대 중반 안기부가 주도했던 북파 공작의 민낯을 그린 첩보물이다. ‘흑금성’은 암호명인데, 안기부의 밀명을 받고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북한의 고위층과 접촉했던 스파이로 실존인물이다. 



<공작>이 흥행에 시동을 걸면서 ‘한국영화에는 황정민밖에 없냐?’는 말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언뜻 칭찬처럼 들린다. 그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있거나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니까. 그러나 저 말에는 노골적인 불만이 섞여 있다. ‘왜 이렇게 자주 나오느냐?’라는 불평, 실상 야유에 가깝다. 사실일까? 절반은 그렇다. 황정민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쉼없이 일을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황정민은 한 해도 쉬지 않았다.


이처럼 황정민이 꾸준히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건 맞지만, ‘영화판에 황정민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잦은 출연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보다 훨씬 다작을 한 배우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황정민에게 <공작>은 <군함도> 이후 1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왜 ‘황정민 피로감’을 호소하는가? ‘또, 황정민이야?’라는 선입견이 생긴 건 2014년~2016년 무렵으로 짐작된다. 



황정민은 2014년 겨울 개봉한 <국제시장>으로 천만 관객(14,262,766명)을 돌파하면서 명실공히 최고의 흥행배우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그 후 찬란한 ‘황정민 전성시대’가 펼쳐지는데, 그는 2015년에 <베테랑>으로 또 한번 천만 관객(13,414,200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같은 해 <히말라야>(7,759,761명)도 흥행에 성공하며 관객들에게 황정민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주마가편이라고 했던가. 공교롭게도 2016년에는 그가 출연한 영화가 무려 3편이나 개봉했다. <검사외전>(9,707,581명)부터 <곡성>(6,879,989명), <아수라>(2,594,420명)까지 영화 관객의 입장에선 ‘또, 황정민이야?’라는 말이 나올 법 했다. 그나마 망했던(?) 영화가 250만 명의 <아수라>였던 점을 고려하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영화관에서 황정민을 피해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순히 출연 빈도 때문이었을까? (솔직히 좀 심하긴 했다.) 그렇지만 ‘또, 황정민이야?’라는 볼멘소리의 원인이 단지 그것뿐일까? 어쩌면 트레이드 마크처럼 굳어진 ‘황정민표 연기(휴머니즘 혹은 눈물을 짜내는 신파)’에 대한 식상함이 존재했던 건 아닐까? 실제로 황정민에게는 연기톤이 매번 반복된다는 지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익숙해지면 당연히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황정민은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개봉일은 배우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닐 뿐더러 이른바 ‘황정민표 연기’도 <국제시장>과 <히말라야>를 제외하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군함도>의 경우, 부성애가 강조되는 신파적 요소가 있었으나 그가 연기한 이강옥은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 당한 후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간사한 캐릭터로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


<아수라>에서는 정경유착의 끝판왕인 악덕 시장인 박성배를 통해 악역의 진수를 선보였다. 소름이 돋는 살벌한 연기였다. 외지인인 무속인 일광을 연기했던 <곡성>에서 황정민은 실제로 접신을 한 듯한 놀라운 연기를 펼쳐 보였다. 황정민만이 할 수 있는 몰입도 높은 연기였다. 이처럼 황정민은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꾸준히 변신을 꿰했다. 그 작품들이 죄다 흥행했던 건 관객들의 인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공작>의 황정민도 마찬가지다. 그는 실존인물인 북파 공작원 흑금성 박채서(극중 배역 이름은 박석영)를 연기했는데, 특유의 생동감 있는 인물 묘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캐릭터(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빠르게 인지시킨다. <공작>은 정치적인 요소가 짙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이지만, 황정민이라는 ‘익숙함’이 관객과 영화의 거리감을 대폭 줄여 놓는다. 관객들은 무리없이 <공작>의 ‘공작’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가 연기하는 배역들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와닿는다. 그 현실감이야말로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가졌다는 사실 말이다. 씁쓸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짊어지고 1년 만에 돌아온 황정민, ‘한국영화에는 황정민밖에 없냐?’는 비난은 온당할까? 오히려 꾸준히 관객들을 찾아오는 그의 성실함을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본업인 연기에 집중하기보다 광고를 찍는 데 급급한 ‘CF 배우’들에 비해 황정민의 행보는 얼마나 칭찬할 만한가? 오히려 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을 격려하고 북돋아줘야 하지 않을까? 황정민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금의 열정을 잃지 않길 바란다. 여전히 충무로와 관객들은 황정민이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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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미!' <마녀>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이 영화의 주연 배우 이름을 검색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누구야?", "이름이 뭐야?", "김다미가 누구야?" 패닉에 빠진 게 소수는 아닐 게 분명하다. '김다미?' 처음 본 얼굴, 처음 들은 이름이다. 자신이 검색한 배우가 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많은 관객들은 영화에서 받았던 충격에 이어 또 한번 크게 놀랐을 것이다. 


<은교>(2012)의 김고은의 출현과 <아가씨>(2016)의 김태리 등장에 못지 않은, 어쩌면 그 이상의 충격이다. 조민수, 박희순, 최우식. 이들의 역할과 활약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조민수의 카리스마가 초반의 분위기를 다잡은 채 영화를 이끌어 나가고, 박희순과 최우식의 연기가 김장감을 끌어 올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김다미의 존재감은 영화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렇다, <마녀>는 김다미의 영화다. 



"너 언니한테 까불면 모가지 날아간다."


자윤(김다미)은 유전자 조작으로 완벽한 살인 병기(마녀)로 태어났지만, 기억을 잃은 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김다미는 '소녀'와 '마녀' 사이를 능청스럽게 오가고, 각각의 이미지를 이질감 없이 연결시킨다. 박훈정 감독은 자윤을 통해 성악설을 설파한다. 인간의 본성은 악(惡)하고, 태생부터 악을 내재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문득 김다미의 소름끼지는 연기에 의문이 생긴다. 그 능력은 타고 난 걸까, 길러진 걸까? 


박 감독은 자윤 역에 신인을 캐스팅한다는 원칙을 세워뒀다고 한다. 허나 기준에 부합하는 신인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오디션에 지쳐가고 있을 때쯤 김다미가 들어왔는데 보는 순간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되겠는데?’ 정도가 아니었다. 김다미의 캐릭터 분석과 소화력은 자칫 유치할 법한 영화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괜히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괴물 신인이 아니었다. 



'고민시!' <마녀>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자윤'의 친구 '명희'로 출연한 배우가 누구인지 궁금해 찾아보느라 바빴을 것이다. 어쩌면 저렇게 찰지고 맛깔스럽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실제 고등학생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던 관객이 결코 소수는 아니리라. '고민시?' 아무래도 낯선 이름이다. 예명이라 생각할 법한 이름이지만, ‘높은 곳에서 하늘을 보라는 뜻’의 본명이라고 한다.


이름은 몰라도 그의 얼굴을 이미 알고 있던 관객은 제법 많았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 종영한 tvN <라이브>를 봤다면 오양촌(배성우)의 딸 오송이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오송이가 까칠하고 차가운 딸이었다면, 명희는 살갑고 애교 많은 딸이다. 또, 천방지축에다 깨방정을 떠는 쾌활한 10대 소녀다. 오송이와 명희, 두 캐릭터의 차이를 통해 우리는 고민시라는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다. 



명희는 자윤을 단짝 친구다. 자윤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끔찍이 아낀다. 자윤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조차 그가 자신의 친구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윤이 '마녀'가 아닌 평범한 '소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명희는 극중에서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약 1시간에 해당하는 영화 전반부의 헐렁한 이야기의 밀도를 채운다. 


무엇보다 <마녀>의 어둡고 꿉꿉한 분위기를 희석시키고, 관객들에게 편안한 웃음을 선사한다. 명희가 주는 웃음은 관객들에게 있어 숨구멍 같은 역할을 한다. 고민시는 실제로 고등학생이라 해도 믿을 만큼의 싱크로율을 보여주는데, 주연 못지 않은 조연으로서의 존재감을 뽐냈다. 친근한 캐릭터가 갖는 힘을 100% 활용하는 영리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설프지도 않았고, 넘치지도 않았다. 


김다미와 고민시, 평범하지 않은 이름의 두 동갑내기 배우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사뭇 궁금하다. 또, '여성'이 대상화와 객채화를 당하지 않고, 이야기의 주체로서 중심을 잡아간 <마녀>의 흥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지켜볼 일이다. (5일 현재 1,345,637명,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Part 1. The Subversion(전복)'에 이은 Part 2.가 기대된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직도 2017년 10월 30일을 또렷히 기억한다. 무심코 집어든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보(誤報)에 비판적이지만, 그 소식만큼은 잘못된 것이길 바랐다. '김주혁 교통사고로 사망' 단 열 글자로 설명된 그의 죽음. 참으로 황망했다. 믿기지 않았다. 한 배우의 죽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했다. 함께 고통을 나눴다. 그만큼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게다가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였다. 원인에 대한 여러 추측들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올해 1월 3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차량에 대한 감정 결과를 '결함 없음'으로 결론지었고, 강남경찰서는 이 결과를 인용했다. 의문은 풀리지 않았으나 우리는 받아들여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더 이상 김주혁이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호랑이가 죽은 후 가죽을 남기듯 배우는 작품을 남기는 것일까. 이제 남은 건 먹먹한 심정으로 그가 남긴 유작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요즘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 글을 봐도 얄팍하게 보였다면, 이제는 좀 더 깊이 보이는 것 같다."던 그는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해 이미 촬영을 마친 후였다. 김주혁이 어떤 연기를 남겼을지 한편으로는 기대가 됐다. 


먼저 개봉했던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여러가지 면에서 실망스러웠다. 개연성 부족 등 영화의 만듦새에서 허술함을 드러내 관객들을 허탈하게 만들었고, 조현근 감독의 성희롱 사실이 미투 운동을 통해 밝혀지면서 영화의 흥행에 찬물을 끼얹었다. 故 김주혁의 유작이라는 특별한 의미까지 퇴색시켰다. 결국 <흥부>는 총 관객 416,346명에 그치고 말았고, 김주혁의 연기에 대한 평가나 감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독전>뿐이었다. 중국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을 원작으로 한 <독전>은 ‘이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마약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피말리는 싸움을 그린 영화다. 잔혹성과 선정성은 별개로 영화의 완성도가 탄탄하고, 이야기의 몰입도 역시 높다.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데드풀2>이 휩쓸고 있는 극장가에서 1위 자리를 탈환했고, 그 여세를 몰아 8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가 ‘짱짱’하게 뽑히자 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받기 시작했다. 조진웅, 류준열, 김성령, 박해준, 차승원, 진서연 등 하나같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역량이 언론을 통해 조명받고 있다. 물론 앞서 이름을 거론한 배우들의 활약에 뛰어났지만, 역시 가장 돋보였던 건 특별출연한 故 김주혁이었다. 그는 아시아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을 연기했는데, 광기 어린 카리스마는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예측할 수 없는 진하림이란 캐릭터,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故김주혁의 연기에 손에 땀을 쥐게 된다. 그의 탁월한 연기는 어수선한 영화 초반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특히 아내 보령 역을 맡은 진서연과의 호흡은 경탄스러울 정도다. 더욱 놀라운 건 평소 예능에서 보여줬던 친근한 형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었다는 점이다. 그가 천상 배우였음을 또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제야 故 김주혁이 환하게 웃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안도감이 들었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서글퍼졌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배우로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남기고 간 혼이 담긴 연기가 이를 증명한다. “이제는 좀 더 깊이 보이는 것 같다”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빠른 이별이었다. 분명 그는 보여줄 게 훨씬 더 많이 남은 배우였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평일 저녁에도 관객들이 꽉 들어찼다. <리틀 포레스트>는 사이즈가 큰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멀티플렉스에서 작정하고 밀어주는 영화도 아니다. 순 제작비 15억 원의 저예산 영화다. 이 작은 영화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한 사람들, 애정이 가득한 그들 속에 함께 있는 기분이 제법 좋다. 게다가 영화관을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영화를 보고 머리가 맑아진 건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지난 7일, <리틀 포레스트>가 손익 분기점(80만 명)을 넘겼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누적 관객 수는 860,572명(8일 기준). 100만 돌파는 시간 문제로 보인다. 별다른 경쟁작이 없는 비수기라는 점도 한몫 했겠지만, 역시 영화의 만듦새가 뛰어나다. 좋은 영화는 입소문을 타기 마련이고, 관객들이 찾게 돼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언제 개봉했더라도 관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영화가 분명하다.



"다들 바쁘게 시간을 보내니 사는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해요. 내일도 모레도 계속 바쁘죠.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보리밭을 거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보리밭에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리밭에 앉아도 보고 그 사이를 걷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생각해보고 이를 계기로 (삶이) 나아질 수 있길 바라요." <조이뉴스24>,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도시 속 현대인에 전하는 선물


<리틀 포레스트>는 김태리의 영화다. 그가 연기한 혜원은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한다. 카메라는 줄곧 혜원의 동선을 좇는다. 시험, 연애, 취업. 청춘의 무게인지 청춘을 짓누르는 이 시대의 무게인지 알 수 없지만, 혜원은 그 압박감에 숨막혀 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만, 삶의 색채는 바래져만 간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어서, 그 허기 때문에 혜원은 고향인 의성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엄마(문소리)와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한다. 또,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을 만나 특별한 시간들을 만들어 나간다. "태리 씨 말고는 다른 배우들이 많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김태리는 꾸밈없는 연기와 포장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혜원이라는 캐릭터와 완벽한 일체감을 보여 준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형형색색 빛나는 자연과 음식을 제외하면) 단연 김태리지만, 흔들림없이 듬직하게 <리틀 포레스트>를 지탱하고 있는 류준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연기한 재하라는 캐릭터는 결코 튀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존재감이 약해서도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한순간에 강렬하게 빛나는 연기보다 힘을 배분해서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 스며드는 연기가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은숙이 처음부터 고향에 남아 있었다면, 재하는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가 귀농했다. 그가 경험했던 회사 생활은 인격 모독에 가까웠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수동적인 것이었다. 피동적인 삶에 환멸을 느낀 재하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스스로의 삶에 주체성을 부여한다.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인간의 의지와 몫을 명확히 알고 있는 굉장히 강인한 인물이기도 하다. 



"모든 온기가 있는 생물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 영화 속 재하의 대사

 

한번의 과도기를 겪어냈기에 재하는 혜원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준다. 물론 끈적이지 않는 삼각관계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류준열은 "쉬는 기분으로 촬영했고, 그런 마음을 관객들이 함께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지만, 임순례 감독은 그에 대해 "자신의 역할에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임하고, 연기에 있어서는 열정과 애착을 가진 발전 가능성이 큰 배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15년 tvN <응답하라 1988>을 통해 혜성처럼 나타나 '어남류' 열풍을 이끌었던 류준열은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갔다. 인기에 안주하거나 특정한 캐릭터에 머무르기보다 과감하게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MBC <운빨 로맨스>에서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했고, <더 킹>에서는 조직 폭력배 최두일 역을 맡아 들개와 같은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그런가 하면 <침묵>에서는 찌질한 스토커 연기를 실감나게 보여주기도 했다.



놀라운 건 어떤 역할을 맡아도 거북함 없이 자연스러웠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라. <택시운전사>에서 류준열은 영락없는 80년대 대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질감 없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낸다는 건 류준열이라는 배우가 지닌 역량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또, 연기에 대한 열정과 애착이 그만큼 뜨겁다는 뜻이리라. 더욱 경이로운 사실은 젊디 젊은 그가 '분량', '타이틀' 같은 부차적인 것에서 자유로워보인다는 것이다.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식감과 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하는 <리틀 포레스트>. 오감을 만족시키고 따뜻한 힐링을 선물하는 이 영화에 류준열이 있음을 기억하자. 아니, 영화를 보면 그를 쉽사리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잔잔하게 그리고 깊이 스며드는 그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류준열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아니나 다를까. 가슴이 뜨거워지는 영화였다. 뜨겁다 못해 끓어 넘치게 만들었다. 그럴 만도 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격동적이었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가.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년 1월)'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어처구니 없는 거짓 발표로 잘 알려진 사건 말이다. 그리고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다루고, 마침내 6 · 10 민주 항쟁까지 이어진다. 스물 두 살 대학생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광장의 거대한 함성, 그 역사의 흐름을 다뤘다.



할 말이 많아지는 영화였다. 그래서 오히려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게 됐다.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한 서사는 그 자체로 워낙 영화적이었다. 장준환 감독의 과장되지 않은 연출도 돋보였고, 배우들의 연기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등 여섯 명의 주연 배우를 비롯해 특별출연을 한 설경구, 강동원, 여진구, 오달수, 김의성, 문성근, 우현, 문소리, 고창석 등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수많은 배우들도 빛났다. 그들은 분량에 관계없이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다. 


영화가 주는 감동이나 배우들의 열연 혹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가치 등에 대해선 이미 수많은 기사들이 이야기했을 테니, 이 글에선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987>을 보면서 감동에 젖는 한편, 가슴 한켠에 계속해서 웅크리고 있던 불편함에 대해서 말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구미유학단 간첩단 사건(1985)의 피해자인 강용주 씨가 <1987>을 두고 고문의 가해자인 안유가 미화된 영화라며 보이콧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고문가해자 교도관 안유가 의인으로 나오는 <1987>을 보지 않겠습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데 교도관들의 역할이 중요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등포 구치소 보안계장 안유는 조한경(박희순), 강진규가 가족 및 경찰관들과 면회하는 자리에 입회하면서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된다. 경찰이 명백한 물 고문으로 인한 사망을 단순한 심장 쇼크사로 조작하고, 그 대상자도 조한경과 강진규 두 사람으로 축소하려던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안유는 당시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재야 민주투사 이부영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린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이부영은 친분이 있던 교도관 한재동(유해진)을 통해 '비둘기(감옥에서 몰래 보내는 편지)'를 부탁하고, 한재동은 그 편지를 재야에서 활동하던 민주화 운동가 김정남(설경구)에게 전달한다. 김정남은 성명서를 작성해 함세웅 신부에게 보냈고, 명동성당에서 열린 5 · 18 추도 미사가 끝난 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그 어떤 영화보다 극적이다.



"그는 참 양심적이었고, 민주인사들에게 잘 대해줬어요. 그가 현직에 있을 동안에는 일체 얘기를 안 했다가 지난 2012년 25주년 때에야 얼굴을 공개했죠. 그 뒤 퇴직 간부들이 그를 왕따시킨다고 해요.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배신자라고 욕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많이 아프죠." (이부영) <한겨레>, 급히 적네, 박종철 사건이 조작됐네..6월 부른 '감옥 편지'


그 때문에 영등포 교도소 보안계장 안유(최강일)와 교도관 한재동(유해진)은 '의로운 교도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1987>은 '딥 스로트'(내부 고발자) 안유라는 인물을 철저히 의인으로 그려나간다.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이고, 이를 위해서라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대공수사처 박 처장(김윤석)과도 맞선다. 아무래도 그가 세웠던 공을 높이 샀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이부영 전 의원과 같은 '민주인사'들의 진술만을 토대로 캐릭터를 구성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강용주 의사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제게 인간 이하의 가혹행위를 가한 대구교도소의 그 보안과장이 바로 KBS 다큐멘터리(<시민의 탄생>)에 출연한 6월항쟁의 '딥스로트'입니다. 1992년은 87년 6월항쟁으로 독재정권의 야만적 전향공작이 사라졌다고 여겨진 시기였습니다. 광주나 전주로 이감 간 사람들은 징벌방 수용이나 전향 강요를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구교도소 보안과장의 손으로 전향공작을 당했습니다. '참 양심적이었고', '민주인사들에게 잘 대해 준' 바로 그 사람 손에서 말입니다." <경향신문>, [강용주의 안아픈 사회] '딥스로트'의 이중잣대



강용주의 폭로에 등장하는 '대구교도소의 그 보안과장'이 바로 안유다. 안유는 90년대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전향 공작을 펼치며 고문을 가했다. "당시 재야인사와 대학생 등 공안 관련 사범들을 감시하고 회유하는 역할을 했다"(<오마이뉴스>, 25년만에 얼굴 드러낸 박종철 사건 폭로 주역들)고 스스로 고백했듯이, 그 이전에도 같은 일을 해왔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1987>은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안유라는 이중적인 인물을 단순히 의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안유라는 인물과 그가 했던 내부 고발의 중요성은 충분히 이해된다. 또, 그가 '변절자'로 불리며 교정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처지가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고문가해자'라는 것도 변함없는 객관적 진실이다. '안유=가해자'라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감추는 건 결국 '미화'인 셈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영화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여지지도 않는다. 잘 나가는 영화에 웬 트집이냐고? 감동적인 영화에 웬 태클이냐고? 그리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그 누구도,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자신에게 가혹행위를 저질렀던 사람이 버젓이 의인으로 나온다면, 과연 당신은 뭐라 말할 것인가. <1987>을 보며 마냥 감동에 젖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1987>도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세심하지 못함에 더욱 불평할 수밖에 없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한다. 그 주체는 군부다. 쿠데타는 늘 그네들이 일으키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핵 미사일'을 보유만 하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 전쟁에 사용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군부의 입장에서 공화국을 위해 만든 핵을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한 북한 1호(김정은 국방위원장)는 제거의 대상이다. 마침내 핵을 손에 넣은 군부는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킨다. 미국 등의 경제 제재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죽을 판이므로, 핵이라도 한번 쏴보고 죽자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하여 더 고통 받는다." (곽철우)


한편, 북정찰국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는 쿠데타로 인해 부상을 입은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한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은 엄철우로부터 정보를 얻어 국가 위기 상황에 긴밀히 대응한다. 남과 북의 두 철우가 힘을 합치는 이유도 간단하다. 그들에게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좀더 확장해 본다면, 결국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이야말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의 전부가 아닐까. 


그러나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군부 측은 암살요원 최명록(조우진)을 보내 북한 1호와 엄철우를 사살하고자 애를 쓴다. 한반도의 정세는 더욱 녹록치 않다. 북한 군부는 선전포고를 하고, 이에 남한을 비롯한 주변국들엔 위기감이 감돈다. 당장 각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정황은 더욱 복잡하기만 하다. 우리만 해도 그렇다. 현직 대통령(김의성)은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을 원하고, 차기 대통령은 좀더 신중한 태도를 취하자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강철비>를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우리가 처한 엄정한 현실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 그런 태도야말로 가장 허무맹랑한 행동이다." (양우석 감독)


혹자들은 실현 가능성을 들어 <강철비>를 깎아내린다. 애시당초 군부의 구데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양우석 감독도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핵이나 쏘고 죽자'는 주장이 매우 극단적인 소수의 것이라 전제한다. 또, 북한의 핵이 '자위용'이라 못박는 쪽에서는 북한이 뻔한 공멸을 자초할 리 없다고 말한다. 결국 핵전쟁은 불가능한 시나리오란 것이다. 물론 타당한 이야기다. 우선, 북한에겐 중국이란 커다란 뒷배가 존재한다. 중국이 버티고 있는 한 북한의 기득권은 유지된다. 그건 군부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한들 분단(과 휴전)의 당사자인 우리가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라고 뒷짐을 지고 있을 순 없지 않겠는가. 양우석 감독이 <강철비>를 통해 구현한 영화적 상상력은 현실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으며, 그가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지점임에 틀림없다. 당장 2,497,872명(23일 기준)의 관객들이 뜨거운 호응을 보내고 있다는 건, 그만큼 남과 북의 적대적 긴장이 만들고 있는 근원적 공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철비>의 흥행 질주와 이 영화로부터 비롯된 여러 생상적 논쟁들은 일차적으로 <변호인>으로 데뷔한 양우석 감독의 공이다. 139분에 달하는 긴 영화지만, 결코 지루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이야기에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강철비>는 양 감독의 철저한 준비 끝에 나온 작품이다. 그는 2011년부터 연재된 웹툰 '스틸 레인(STEEL RAIN)의 스토리 작가로 참여했는데,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을 예측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 감독은 웹툰의 스토리를 구상하던 약 10년 전부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깊게 파고 들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강철비>가 그려낸 북한의 급변 사태와 제2 한국전쟁 직전의 상황을 허황되다 치부하지 않는 까닭은 그 고민의 진지함 때문일 것이다. 물론 양 감독의 해법, 북한의 핵무기 절반을 남한에 넘긴다는 발상은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그조차도 현실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단계에 와서 '한반도 비핵화'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주장인지 솔직히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양우석 감독은 <강철비>를 통해 우리가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과 여러 선택지 중의 하나를 보여준 것이다. 


<강철비>의 성공에는 양우석 감독의 공 못지 않게 주연 배우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아수라>(2016)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동갑내기 배우 정우성과 곽도원이 이번에는 '동지'로 만났다. 북의 최정예 요원 역을 맡아 탁월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 정우성은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 '밖'에서도 열일하고 있는 중이다. JTBC <뉴스룸>에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자격으로 출연해 품격 있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KBS 파업을 지지하는 영상을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사회적 발언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그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시나리오를 덮고 난 다음, 이게 만약 영화화되어서 관객에게 보여졌을 때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오갈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토론의 장이 이뤄질 거라 생각했다. 호기심이 강했다." (곽도원)


영화 속에서 엄철우가 돋보이는 건 당연하다. 또, 정우성의 연기도 발군이었다. 하지만 정우성은 워낙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니 이 글에선 덜 얘기해도 괜찮으리라. 비교적 덜 강조되고 있는 포인트, 바로 곽철우 역을 맡은 곽도원이야말도 이 영화의 히든 카드라 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에 갖혀 있지 않은 곽철우는 사실상 양우석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양 감독은 자신의 한반도 정세 분석과 그에 대한 해법을 곽철우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또, 곽도원은 전반적으로 무거울 수밖에 없는 영화 속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면서 웃음을 전달한다. 일종의 (영화의) 숨구멍이라 할 수 있는데,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한다. 뿐만 아니라 깜찍한 연기까지 넉넉하게 소화한다. SBS <유령>(2012)에서 소녀시대의 '트윙클'을 깜찍하게 불렀다면, 이번에는 G-DRAGON의 'Missing You'와 '삐딱하게'를 앙증맞게 불러낸다. 그러면서 고위 공직자의 포스까지 풍기는 다양한 매력을 선보인다. 전방위적인 활약이다.



곽도원의 연기는 변화무쌍하다. 또, 전형적이지 않다. <변호인>(2013)에서는 고문 경감 차동영 역을 맡아 극악한 연기를 펼쳐 관객들을 소름끼치게 만들었고, <곡성>(2016)에서는 순박한 경찰인 종구 역을 맡아 나약한 인간의 내면과 뜨거운 부성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수라>에서는 독종 검사 김차인 역을 맡았는데, 정의 구현을 외치면서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 악인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냈다. <특별시민>(2017)에서도 권력욕에 사로잡힌 노련한 정치인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극단적인 악역에부터 순박한 캐릭터까지, 그러면서 캐릭터의 내면에 자리한 고민까지 드러낼 줄 아는 그의 연기는 가히 탁월하다. <강철비>에서도 공적인 곽철우와 일상의 곽철우를 분리해 다른 색깔로 연기한 부분은 관객들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영화의 현실감을 부여하면서 몰입감을 높이는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곽도원이라는 배우의 '끝'은 어디일까. <강철비>라는 논쟁적 영화가 반가운 동시에 곽도원이라는 배우의 만개(滿開)도 기쁘기만 하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중세의 몰락과 함께 근대가 태동했다. 변화는 서서히, 그러나 급속히 진행됐다. 신 중심의 세계관은 인간 중심으로 옮겨갔고, 해방된 이성은 과학의 진보를 가져 왔다. 놀라운 성취였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세계를 뒤덮었다. 모든 것이 명쾌하게 구분되고, 모든 문제가 선명한 답을 찾을 듯 했다. 햇살에 쫓겨 사라지는 안개처럼 모호함이 물러가는 것인가. 옳고 그름에 분명한 구분이 존재하고, 인간의 지성은 타협 없이 '중간은 없다'고 선언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하지만 일직선 상의 선(線)에 구분점이라 할 만한 건 분명치 않았다. 어쩌면 답은 더욱 흐릿해졌다. 그것이 어디 근대뿐이랴. 근대에서 출발한 기차는 오랜 시간을 달려 현대에 이르렀지만, 종착점이 어디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년)을 통해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분명한 구분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케네스 브래너는 소설을 각색한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그 질문이 현대에도 유효하다고 외친다. 


이스탄불 시르케지 역(Sirkeci)에서 출발해 부다페스트, 빈, 뮌헨 등을 거쳐 파리까지 가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서 승객 한 명이 잔인하게 살해 당한 채 발견된다. 피해자는 사업가 라쳇(조니 뎁)인데, 그의 몸에선 무려 12개의 자상(刺傷)이 발견됐다. 도대체 누가 이토록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단 말인가. 완벽한 밀실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의 용의자는 총 13명이다. 물론 그들은 저마다 빈틈없는 알리바이를 가졌다. 이대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일까. 



"살인자는 이 안에 있다!" 


공교롭게도 그 열차에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가 탑승해 있었다. 그가 누구인가. 벨기에 태생에 경찰 출신인 포와로는 천재적인 두뇌를 뽐내는 '세계 최고의 탐정'이다. 양쪽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굵은 콧수염은 그를 상징하는 포인트이자 균형을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아닌게 아니라, 포와로는 아침마다 먹는 달걀의 크기가 똑같아야 직성이 풀린다. 영화엔 나오지 않았지만, 토스트도 9등분이 된 것만 먹을 만큼 괴짜스럽다. 사람들에게 "넥타이 좀 똑바로 매주겠나?"고 요구할 만큼 비틀어진 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포와로의 추리 방식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탐정'이라 하면 셜록 홈즈처럼 사건 현장을 누비면서 증거를 수집하리라 생각되지만, 포와로는 '면담' 방식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를테면, 용의자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특이점을 발견하는 식이다. 표정과 말투에서 거짓말을 포착하거나 악센트나 발음에서 어색한 부분을 찾아내곤 한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도 마찬가지다. 포와로는 용의자 선상에 오른 13명과 개인 면담을 실시해 사건의 본질을 추적하는 한편 범인을 찾아낸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범인을 찾는 데 모든 걸 쏟아붓지 않는다. '누가 범인인가?'라는 질문에 '범인은 바로 너야!'라고 답하는 명쾌함이 추리의 카타르시스라 할 만 하지만,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그 쾌감을 전달하기에 급급하지 않는다. 난항을 겪어야 마땅한 추리 과정은 손쉽고, 사건의 해결도 일사천리다. 신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완벽한 탐정은 용의자'들'의 연막을 간파하고, 사건의 본질에 성큼성큼 다가간다. 오히려 뻔한 '반전'이 밝혀진 뒤에 이 영화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도덕적 우위가 전혀 의미 없어지고, 명백했던 옳고 그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선명하리라 여겼던, 그래서 손쉽게 가려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선과 악의 구분이 허무해진다. 추리를 끝낸 후 13명의 용의자를 한 곳에 모아둔 자리에서 포와로는 주저한다. 진실을 밝힌 것인가, 아니면 눈 감을 것인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중간 지대'의 발견은 그의 논리적 사고를 멈추고,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케 하는 이 장면에서 배우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가히 명품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유럽 대륙을 횡단하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배경으로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에서 4대밖에 없는 65mm 필름 카메라로 촬영해 환상적인 영상미를 선사했다. 고전의 향취를 뒤살리면서 낭만적인 느낌을 전달하기까지 한다. 또, 페넬로페 크루즈, 주디 덴치, 미셸 파이퍼, 윌렘 대포, 데이지 리들리 등 명배우들은 극의 무게감을 더할 뿐 아니라 캐릭터 내면의 복잡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해 몰입감을 높였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에르큘 포와로라는 인물의 매력이 부족했던 점은 안타깝다. 섹시함으로 무장한 셜록 홈즈(베네딕 컴버배치)의 아성을 넘기엔 너무 아저씨스러웠다고 할까. 또, 살인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고, 진실을 추리해가는 과정이 상당히 불친절했다.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에겐 상당히 급작스럽고 심지어 엉뚱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소설과는 달리 시간의 제약을 받는 영화에서 13명의 용의자를 모두 담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족한 인물 설명 탓에 관객들은 포와로에 의지한 채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도덕적 딜레마를 파고들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 점은 훌륭했지만, 역시 긴장감이 빠진 영화가 주는 지루함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영국과 중국, 러시아, 스페인 등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제작비 5,500만 달러의 4배에 가까운 흥행 수익(약 2억 260만 달러)을 거둬들였다. 또, 속편인 <나일 강의 죽음> 제작도 확정됐다고 한다. 속편에선 포와로가 좀더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질 수 있을까. 또, 잃어버렸던 긴장감을 살려내 쫄깃한 추리 영화를 그려낼 수 있을까.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