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도서관(圖書館)'이 도서를 대여하고 반납하는 공간(+어르신들이 신문 읽는 곳)이었다면, 최근의 도서관은 그런 소극적인 의미에서 탈피해 지역사회 속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국의 여러 지자체들은 이미 도서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역 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도서관 + 문화'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각종 프로그램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곳 주변에도 제법 큰 규모의 도서관(신방 도서관)이 지난 2013년 1월 21일 개관을 했는데, 그 안에 북카페를 비롯해서 문화강좌실과 다목적홀 등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간들이 제법 알차게 자리잡고 있다. 역사가 짧은 탓에 도서의 수는 약 5만 4천 권으로 시의 다른 도서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책이 대부분 신간이거나 깨끗한 책들이라 양의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오늘 낮에 도서관에 잠깐 들렀는데, 마침 '쉬어가는 힐링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작고 소박한 이벤트를 즐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뒤에서 사진을 찰칵 찍었다. 굳이 일정을 내서 찾지 않더라도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앉아 여유롭게 음악을 감상하고, '지금'의 시간들을 즐기는 것이야말조 진짜 '문화'가 아닐까.


또, '과년도 잡지배부전'이라고 해서 2014년에 발행됐던 잡지들을 도서관 이용객들에게 1인당 5권 씩 가져갈 수 있도록 진열해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2년 전의 잡지의 효용성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혹시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어차피 '재활용'이 그 마지막 목적지일 이 잡지들을 지역 주민들에게 '배부'하고자 한 작은 배려가 돋보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훼손 도서 전시회'였다. 도서관 측은 훼손된 도서를 '페이지가 많이 없음', '물에 젖음', '장비 훼손' 이렇게 세 유형으로 분류해서 그 처참함 몰골을 있는 그대로 전시해두었다. 예전에는 책을 반납할 때 사서에게 직접 건네야만 했고, 책이 완전히 '반납 처리'된 후에야 뒤돌아 나올 수 있었다. 따라서 책을 훼손했다면 양심껏 고백을 하거나 최소한 민망함과 얼굴의 홍조는 가져가야 했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서는 기계를 통해 자동 반납하도록 되어 있어서 설령 책을 훼손했다 하더라도 딱히 꺼리낌 없이 마음 편히 반납할 수 있게 됐다. 모르긴 몰라도 도서 반납이 자동화되면서 오히려 책이 훼손되는 사례는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다. 결국 양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 방법으로 '훼손 도서 전시회'를 생각해낸 건 정말 번뜩이는 아이디어인 것 같다.



'책을 깨끗하게 봅시다', '책을 훼손하지 맙시다'와 같은 딱딱한 문구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보다는 '훼손 도서 전시회'처럼 '너희들이 한 짓을 보라'며 말없이 실상을 보여주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것을 본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남길 수 있도록 해 참여를 이끈 것도 괜찮은 발상이었다. 덧붙이자면 '훼손'이라는 딱딱한 표현보다 '아프다', '다쳤다'는 쪽을 강조했다는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분명 이 도서관에 인적 구성에 있어 뭔가 변화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기발한 이벤트가 없었는데, 갑작스레 여러 발칙한 일들이 생겨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어쨌든 활기찬 도서관의 모습(물론 훼손 도서를 보곤 마음이 아팠다ㅠ)에서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하루였다. 아마 도서관을 찾았던, 또 앞으로 도서관을 찾을, 지역 주민들도 그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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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 에두아르 마네,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 1880년, 캔버스에 유화, 46x55cm -


인상주의 화가들의 풍경화로 가득 채워진 전시회에서 과연 이 그림은 사람들의 이목을 얼마나 끌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도대체 이 그림이 왜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라는 타이틀의 전시회에 걸려 있는지 의아했다. 게다가 이건 정물화(靜物畵)잖아? 물론 일반(사전)적인 의미에서 풍경화란 '자연의 경치를 그린 그림'이지만, 아스파라거스를 하나의 '풍경'이 되게 했다는 의미에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한편,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이 그림을 두고 "영혼을 치유하는 그림"이라 극찬하기도 했다. 아스파라거스는 19세기 프랑스 사람들이 자주 먹던 익숙한 식재료였다. 우리로 치자면 '배추' 정도 일까? 알랭 드 보통은 이 익숙한 식재료를 예술 작품의 주인공으로 다룬 마네의 상상력과 관점의 전환에 깊이 감탄한 것이다. 


또, 그는 "손목이나 어깨만으로도 우리를 흥분시켰던 사람이 눈앞에 벌거벗고 누워 있어도 무덤덤"한 순간이 찾아온다면서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이 권태기에 빠진 오래된 연인이 그들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마네가 "겹겹이 쌓인 습관과 타성 밑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면"을 발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쯤되니 저 그림이 왜 수많은 풍경화들 사이에 걸려 있어야 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것은 단순히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마네의 그림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의 기획을 맡은 서순주 커미셔너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풍경화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를 마네의 「아스파라거스」에 빗대서 이렇게 설명한다. 


"일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오브제들이 화면에 그려진 순간 일상과는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일상의 삶속의 경험과 기억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은 삶의 부분이고, 정신활동의 산물이다. 예술작품이 감동을 줄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보편적 영혼의 개념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를 추구한 화가들은 기존의 모든 표현기법, 전통적인 회화기법을 거부한다.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오로지 색채 · 색조 · 질감이었고, 그것을 표현하기에 최상의 도구였던 '자연의 빛'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낸다. 그들은 자연 속으로 직접 뛰어들었고, 화폭에 '일상(日常)'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 익숙했던 일상들이 화면에 그려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닌 것이 됐다. 마치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처럼 말이다.


- 빈센트 반 고흐, 랑글루아 다리, 1888년, 캔버스에 유화, 49.5x64cm -


 - 클로드 모네, 팔레즈의 안갯속 집, 1885년, 캔버스에 유화, 73.5x92.5cm -


- 아쉴 로제, 강변 산책, 1888년, 캔버스에 유화, 34.5 x 44cm -


인상주의는 왜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가? 나는 인상주의 등장의 필연성(必然性)을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의 등장에서 찾는다. 1839년 발명된 '사진'은 끊임없이 미술을 압박했다. 붓으로 아무리 사실적인 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사진의 사실성을 따라잡을 수 없다. 다시 말해 미술의 사실성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실의 재현과 기록이 사진의 몫으로 돌아가자, 미술은 예술적 실험에 몰두한다. 형태나 색채의 본질을 연구하고, 시간과 속도와 같은 추상적인 영역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한다. 이른바 역할분담이 이뤄졌다고 할까? 한가람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는 이와 같은 필연성 이후 인상주의의 등장과 그 발전에 대해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 전시다. 



1. 인상주의의 선구자

부댕, 쿠로, 용킨트, 쿠르베, 도비니, 드라 페나


2. 프랑스 인상주의

카유보트, 마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모리조, 시슬리, 기요맹, 시다네


3. 후기 인상주의

세잔, 반 고흐, 고갱, 툴루즈 로트렉


4. 인상주의

쇠라, 시냑, 크로스, 핀치, 루스, 리셀베르그


5. 독일 인상주의

코린트, 리버만, 슬레포크트, 폰 우데


6. 나비파와 야수파

보나르, 마티스, 뷔야르, 모리스 드니, 반 동겐, 블라맹크, 마르케


서순주 커미셔너는 "풍경화를 통해 인상주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교육적인 의미가 깊은 전시"이자 "인상주의 미술의 모든 것을 풍경화라는 단일 장르를 통해 소개하는 국내 최초의 전시"라고 소개했는데, 인상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진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 될 테고, 인상주의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전시를 통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시는 2016년 4월 3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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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박물관(博物館) : 고고학적 자료, 역사적 유물, 예술품, 그 밖의 학술 자료를 수집ㆍ보존ㆍ진열하고 일반에게 전시하여 학술 연구와 사회 교육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든 시설


'박물관'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보존(保存)일까? 질문은 질문을 부른다. 그 보존은 과연 무엇으로부터의 보존일까? 그리고 보존만 된다면, 그 과정은 용납되는 것일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 다녀왔다. '대영박물관전 - 영원한인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3년간의 기획! 한국 최초 전시! 전 시대와 전 대륙을 아우르는 방대한 인류사 전시!' 이 매혹적인 홍보 문구를 보라. 누구라도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구미(口味)가 당긴다. 하지만 다시 질문이 시작됐다. 어째서 '전 시대와 전 대륙을 아우리는 방대한 인류사'가 대영박물관에 있단 말인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한단 말인가?


파르테논 신전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된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현재 이 신전은 둘로 쪼개져 영국과 그리스에서 각각 보관되어 있다. 19세기 초 투르크 주재 영국 대사 엘긴이 신전의 대리석 조각을 톱으로 잘라 훼손한 후 영국으로 가져갔던 탓이다. 그 조각들은 '엘긴 마블스'라는 이름으로 대영박물관에 소장 중인데, 그렇게 옮겨진 것이 파르테논 신전 전체의 절반이나 된다.



보존과 반환을 두고 날선 공방이 이어졌고, "아테네가 아니라 런던에 있었기에 보존이 가능했다"는 주장과 "파르테논은 곧 그리스의 것이며 그리스의 것이므로 파르테논은 그리스에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은 격렬히 부딪쳤다. 어느 쪽의 말이 맞는 것일까? 물론 전자의 주장에는 반환의 선례를 남기면 대영제국 시절에 '약탈'했던 다른 문화재도 돌려줄 수밖에 없다는 불안이 잠재되어 있다.


불우한 근현대사를 경험했던 역사의 후손이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후자의 주장에 좀더 마음이 간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국외에 소재한 우리 문화재는 16만 342점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매매를 통해 건너간 것도 있겠지만, 상당수가 약탈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 일본이 소장한 우리 문화재는 6만 7,708점이나 된다. '일본에 있었기에 보존이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서 소개했던 것처럼 '대영박물관 한국전 - 영원한인간'에는 전 시대, 전 대륙을 아울러 영원한 테마인 '인간'을 주제로 한 유물(조각 포함)과 회화 등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76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시대적으로는 기원전 8,400년 전부터 2012년을 넘나들었고, 지역적으로는 아시아, 아랍, 유럽, 지중해, 이집트,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그야말로 전 세계를 아울렀다. 


전시되어 있는 전 시대의, 전 세계의 수많은 '인간'들 앞에 서는 순간마다 '질문'은 계속 떠올랐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마주치는 예리코(Jericho, 여리고)에서 출토된 기원전 8,400년 전의 해골에서부터 그리스와 로마의 유려한 조각상, 고대 이집트의 신비로운 유물,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얼굴 형상, 중국과 일본, 한국의 얼굴이 담긴 그림, 라파엘로, 피카소, 마티스 등 대가들이 담은 인간의 모습들은 끊임없이 묻고 있는 듯 했다.


그 많은 '인간'들은 도대체 이 전시를 찾아 자신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후세의 '인간'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이국적인 땅의 좁은 공간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기괴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보존의 공간 혹은 교육의 현장이라는 미명(美名)으로 덮여 있는 박물관의 '욕망'과 '약탈'이라는 본질은 결코 그 추악함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다.



예상치 못했던 '반가움'도 있었다. 당신의 '미의식'은 건강한가요? 라는 글을 통해 1,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경험했던 오토 딕스가 전쟁의 끔찍하고 참혹한 참상을 화폭에 옮긴 「적진으로 돌진하는 병사들」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작품을 직접 두 눈으로 목도(目睹)할 수 있었다. 그래, 박물관이 아니라면 이 작품을 이 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었겠는가. 우습게도 그런 생각이 스쳤다. 


부끄럽게도 이번 전시 감상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했던 19~20세기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얼마나 다양한 '곳'에서 얼마나 다양한 '것'들을 빼앗았는지를 체감하는 동시에 이 다양한 것들을 한 데 모아 볼 수 있는 것에 편의(便宜)를 느끼는 모순 속에 1시간 30분을 헤맨 양가적(兩價的)인 감정 속에 짓눌렸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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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지난 2월 12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다녀왔다. 지난해(2014년) 9월 2일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展>을 보러 들른 지 약 5개월 만이다.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展>, 키스 반 동겐을 발견하다) 당시에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선택의 패러독스에 걸릴 만큼 마음에 드는 전시가 많았다.


(지금이야 끝났지만) 전시 기간을 생각한다면 <모네, 부댕, 쿠르베, 터너, 뒤피...인상파의 고향, 노르망디>를 고르는 것이 맞았겠지만, 선택권은 함께 간 (미술관이 처음인) 친구에게 주기로 했다. 물론 '동전 던지기'라는 어이없는(?) 방법으로 결정됐지만.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춰 봅시다!



<블라디미르 쿠쉬전>은 또 다른 지인과 함께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고,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 특별전>은 '그림'이 아닌 관계로 제외했다. 좁은 의미의 미술관을 경험하는 것이 (그 친구의) 목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동전 던지기'의 결과는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였다.


인상파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지역 중 하나인 노르망디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모네, 부댕, 쿠르베, 코로, 터너, 라울 뒤피 등 여러 화가들이 그려낸 작품들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았겠지만, 미술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나 역시 마찬가지)한 친구에게는 18세기 말 고전주의부터 현대 추상 표현주의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오히려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동전 던지기'는 현명하고도 절묘했다.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는 반즈컬렉션(Barnes Foundation collection)과 함께 미국의 양대 컬렉션을 형성하고 있는 필립스컬렉션(The Phillips collection)을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한다). 반즈든 필립스든 미술 애호가들에겐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그다지 솔깃한 이야기는 아니다.


무엇보다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입체주의, 현대 추상 표현주의를 아우르는 서양미술사의 후반부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런 포괄적인 전시에서는 다양한 미술형식과 수많은(68인) 화가들의 작품들을 차례차례 보면서 미술사를 공부하는 동시에 내 취향이 무엇인지 캐치할 수 있다. 물론 겉핥기식 감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단점이지만, 균형을 맞춰가는 건 각자의 몫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술관에서 공들여 들여와 '짜잔'하고 들이미는 메인 화가들의 작품보다는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물론 그들도 엄청나게 유명한 화가들이겠지만 내 입장에서) 화가들이나 처음 보는 생소한 작품들에 꽂힐 때가 많다.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展>에서도 키스 반 동겐에 매료됐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찾을 수 있는 선에서 옮겨봤다.


- 어니스트 로슨, 「폭풍우 가까이」, 캔버스에 유채, 62.9 x 76.2cm, 1919~1920 -


- 베르트 모리조, 「두 소녀」, 캔버스에 유채, 1894 -


- 모리스 프랜더개스트, 「나무 아래에서」, 60.6 x 80cm, 1913~1915 - 


"나의 눈은 태어날 때부터 추한 것을 지우도록 되어 있다."

-라울 뒤피-


- 라울 뒤피, 「화가의 아틀리에」 -


최근에 읽었던 이택광의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에서 아두아르 마네와 모리조, 사제 관계이면서 동료이고 또는 그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터라 모리조의 「두 소녀」라는 작품에 더욱 눈길이 갔다. 그림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문득 모리조를 '마네의 여인'이라는 타이틀로 국한해서 언급하는 것은 모리조라는 화가에 대한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매력적인 그림이었다.


유명한 미술품 컬렉터인 거트루드 스테인은 "뒤피는 즐거움이다"라고 평가했는데,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경쾌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이 마음이 밝고 즐거워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뒤피는 밝고 화사한 색채로 '빛과 색의 축제'를 표현하고자 했고, 그러한 생각들이 그의 작품들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혹시 마음이 울쩍하거나 기분이 다운된다면, 뒤피의 그림을 검색해서 찾아보길 권한다.


-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전시의 후반부에서 흥미로운 이름을 발견했다. 서양미술을 전시한 공간에서 '김환기'라는 대한민국 화가의 이름을 만난 것이다. 무엇보다 작품이 압도적이었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따온「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의 작품은 고국을 떠나 뉴욕에서 지내던 화가가 자신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투영한 것이라 한다. 하나 찍고 친구를 떠올리고, 점 하나 찍고 고국을 생각했다고 할 만큼 절절한 작품이다.


함께 갔던 그 친구는 미술관을 찾은 것에 매우 만족했다. 부러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재차 유심히 확인해봤지만, 실제로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즐겼던 것 같았다. 주변에도 미술관 하면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상한 척 한다고 비아냥대기도 하고, '간지럽다'면서 그런 데(?) 안 간다고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무엇이든 첫걸음이 힘든 것 아니겠는가?


실제로 가보면 알 수 있겠지만, 미술관 그거 별 거 아니다. 대단한 고상을 떠는 곳도 아니고, 특별히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만 찾는 곳도 아니다. 나처럼 아는 건 쥐뿔도 없는 사람도 찾을 수 있는 곳이고, 미술이라는 것 자체가 낯설고 어색한 내 친구도 빠져들 수 있는 공간이다. 삶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면, 뻔한 데이트 공간이 지겹다면, 미술관을 한 번쯤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P.S. (1)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는 3월 12일까지이고, 관람료는 15,000원이다.

P.S. (2) 아래는 전시장에서 훔쳐온 말들이다.


선을 그어라. 많은 선을 그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실물을 보고 그려도 좋고, 기억으로 그려도 좋다. -앵그르-


인간의 영혼, 특히 동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표현하는 것만이 나의 관심사다. 그것이 없다면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다. -에두아르 마네-


색채는 건반, 눈은 현을 두드리는 망치,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이다. 예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건반 하나하나를 누르는 손이다. -칸딘스키-


나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바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지아 오키프-


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서는 안 된다. 작품에 어떠한 설명을 달아서도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 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침묵이다. -마크 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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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오랜만에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현재 한가람 미술관에는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展>과 <에드바르드 뭉크전>, <퓰리처상 사진전> 등이 전시되고 있는데요. 세 가지 전시 모두 썩 마음이 동하진 않았지만, 그 중에서 저의 선택은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展>이었습니다. 우선, 사진보다는 그림을 더 좋아하기에 <퓰리처상 사진전>은 제외했고, <에드라브드 뭉크전>은 10월 12일까지인 반면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展>은 9월 17일에 끝이 난다는 점을 고려해서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展>을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展

르누아르에서 데미안 허스트까지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展>은 5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상주의로부터 시작해서 팝아트를 거쳐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뱅크시까지를 다루는 말 그대로 20세기 예술의 전반적인 흐름을 짚어보는 기획입니다.



PART 1. 파리를 중심으로 모이다.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파리의 화가들

- 빛의 화가 모네와 행복을 그린 르누아르

- 색채와 형태를 해방시킨 마티스와 피카소

- 자유로운 파리의 화가 샤갈과 라울 뒤피, 그리고 마리 로랑생


PART 2. 새로운 무대의 등장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 달리, 꿈을 현실로 현실을 꿈으로

-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했던 윌렘 드 쿠닝

- 격정적이고 호소력 짙은 회화 장 뒤뷔페


PART 3. 기회의 땅, 미국

팝아트, 옵아트

-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앤디 워홀

- 너무나 미국적인 팝아트 로이 리히텐슈타인

-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옵아트의 바사렐리


PART 4. 귀향과 반향

누보레알리즘, yBa

- 공허함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브 클라인

- 영국의 아성 줄리안 오피와 데미안 허스트


PART 5. 지금, 여기

Comtemporary

- 형태와 색으로 태어난 볼륨감 보테로

- 낙서로 세상에 저항하는 뱅크시



평일의 미술관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여유로웠습니다. 보통 주말에 미술관(혹은 박물관)을 찾았던 탓에 항상 사람에 치여서 제대로 감상을 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는데요. 이번에는 아주 느긋하게 그리고 마음껏 작품들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은 거리를 조절해가면서 한참동안 바라볼 수도 있었고요.


물론 예술적 감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저는 야수주의니, 입체주의니, 추상주의니, 팝아트니, 누보레알리즘이니 하는 20세기 예술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미술사를 들여다보거나 미술 관련 서적을 읽을 때도 '전기 인상주의'까지만 읽고, 반 고흐, 고갱, 세잔 등이 등장하는 '후기 인상주의'부터는 책을 덮어버렸었죠. 실제로 작품을 마주해도 그런 취향은 달라지지 않더군요.


하지만 미술관에 갔을 때 모든 작품에 감명을 받을 필요는 없겠죠. '바로 이거다!'싶은 작품 한 두 개만 발견해도 어쩌면 충분한 것 아닐까요? 혹은 넋 놓고 시간조차 잊은 채 바라보게 되는 작품이 있다면 그보다 멋진 일도 없겠죠. 비록 20세기 예술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저이지만, 나름대로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는데요.



키스 반 동겐, 앙티브의 작은 만, 캔버스에 유채, 82 x 100.3 cm, 1922∼1925년


그 수확이란 바로 야수파의 대표 화가인 '키스 반 동겐'의 '앙티브의 작은 만'입니다. 초록과 분홍의 대비 그리고 한 여인의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인데요. (제 수준에서 볼 때는) 아무리 봐도 '대충' 그린 것만 같은 이 그림인데, 이상하게도 한참동안 바라 보고 있게 되더군요.


키스 반 동겐의 그림 옆에는 그가 남긴 "나는 내 시간과 활기차고 몹시 흥분되는 내 삶을 열렬히 사랑한다. 아, 삶은 그림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벽에) 새겨져 있었는데요.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순간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더군요. '나는 내 삶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가?'



모리스 드 블라맹크, 건널목



베르나르 뷔페, 노르망디 빌라


키스 반 동겐 외에도 모리스 드 블라맹크의 '건널목'과 베르나르 뷔페의 '노르망디 빌리', '라 로쉬로의 주변' 등의 작품도 마음에 들었는데요. '건널목'의 경우에는 강렬한 색감과 표현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작품들은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보는 것보다는 실제로 전시된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만한 가치도 있어 보이고요.


또, 전시 후반부에서는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 데이비드 마크의 '많은 호랑이'를 만날 수 있는데요. 작품 소개를 보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작품의 소유자가 빅뱅의 태양(동영배)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요. 예술적 관심 때문인지 '제태크엔 역시 미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알 순 없지만, 미술사에 기록될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S.

별다른 내용도 없었지만, 간단히 정리를 해보자면..미술관은 '평일에' '혼자' 가라. 그리고 나는 20세기 예술과는 거리가 먼 '중세적 인간' 혹은 '전근대적 인간'이다. 혹시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展>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9월 17일에 전시가 마감되니까 서두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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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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