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 단과대학사업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저지하기 위한 이화여대 학생들의 '독자적' 투쟁은 비선 실세 최순실의 존재와 그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 입학 과정과 재학 중 여러가지 특혜를 받았다는 '고구마 줄기'를 캐냈다. 학생들이 2,000여 건에 달하는 민원을 제기하고, 대자보를 붙이는 등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덕분이다. 아득바득 버티던 최경희 전 총장은 사퇴할 수밖에 없었고, 이화여대 학생들의 투쟁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열어젖힌 역사적인 사건이 됐다. 역사는 그리 기록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책임을 져라"


지난 2일 전국대학생시국회의는 '박근혜 정권 퇴진!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선포식'을 개최했다. 87주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학생의 날)인 3일에는 각 캠퍼스 별로 집회를 개최했고, 5일에는 '동시다발 전국 대학생 지역별 시국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12일로 예정돼 있는 '민중총궐기'에 맞춰 일정을 맞추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2030 청년들의 모임 '청년하다'는 인터넷 구글 지도에 시국선언에 참여한 대학교를 표시한 '시국선언 지도'를 제작했는데, 4일 현재까지 107개 대학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4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5%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IMF라는 국가 부도 사태를 야기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6%보다도 낮은 수치다. 세대별 지지율을 살펴보면, 20대 1%, 30대 1%, 40대 3%, 50대 3%, 60대 이상이 13%였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60대 이상조차도 박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이다. 워낙 밑바닥까지 떨어진 처절한 지지율 탓에 20대의 낮은 지지율이 표가 나지 않지만, 사실 박 대통령에 대한 20대의 외면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18대 대선 직후 발표된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20대로부터 33.7%를 득표할 것이라 예측됐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65.8%였다. 30대에서는 33.1% VS 66.5%, 40대에서는 44.1% VS 55.6%로 표가 갈렸던 점을 보면, 결국 18대 대선을 결정지은 건 연령대별 유권자 비중이 높았던 50대와 60대 이상이었다. 그들은 62.5%, 72.3%라는 몰표를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줬다. '미래'를 위한 선택을 '미래'를 열어가야 할 세대에게 맡기지 않고, '기득권'을 쥐고 있거나 쥐었던 '과거' 세대가 좌지우지한 셈이다. 


18대 대선에서부터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마주하는 일련의 흐름은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말해주고 있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20대 개새끼론'은 그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냈던 이른바 '386 세대'의 깊은 반성으로 귀결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거리로 나와 민심을 이끈 건 언제나 학생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정권은 물러나야 한다"고 외치는 이 시대의 청년들은 본능적으로 '구린 것'과 '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거부하는 정신을 갖고 있었다.



"어른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저희도 다 알고 있어요.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있거든요."


지난 29일, 광화문 일대에서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이 사실을 전혀 들은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모였고, 각자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기 시작했다. <오마이 TV>의 생중계를 보고 있던 중, 인터뷰에 응한 한 고등학생(남)의 발언은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품게 만들었다. 그는 '얼느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들도 여러가지 루트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고, 적절히 판단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전국의 중 · 고등학생들은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중동고등학교 학생들은 "박 대통령은 4·19혁명, 서울의 봄,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장구한 민주투쟁의 역사를 지닌 민주법치국가의 수장임을 스스로 부정했다. 더 이상 대통령이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고, 전북 김제에서는 중학생 20여 명이 스스로 만든 피켓을 들고 최순실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거리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중고생연대와 중고생혁명추진위원회, 전국중고등학교총학생회연합 등 3개 청소년 단체는 5일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중ㆍ고등학생들의 집회'를 열 계획이라 밝혔다. 최준호(19) 중고생혁명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은 4ㆍ19혁명, 6월 민주항쟁 등의 가장 앞에 학생들이 있었다면서 "최순실 게이트의 주인공인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통해 책임을 지는데도 우리 중ㆍ고등학생들이 가장 앞장설 것"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시국 선언의 '들불'의 중심에 이처럼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다. 


'20대 개새끼론'에 대한 반성 못지않게, 중 · 고등학생들을 '철없는 어린애'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쯤으로 여기며,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기 일쑤였던 '어른'들의 낡은 생각도 각성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20대에겐 왜 투쟁하지 않느냐, 너희는 왜 우리처럼 학생 운동에 뛰어들지 않느냐고 타박하면서 정작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는 '부모'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386 세대의 '민낯'은 아니었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세종 온빛초등학교 정유진 선생님은 알파고 시대, 공부보다 사는 법 가르치는 가정 이뤄야(<한국일보>) 라는 기사를 통해 '좋은 부모는 좋은 시민'이라면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공부에 대한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헌법과 우리나라에 대해 이야기해'볼 것을 권한다. 그의 조언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자. 주입식 교육, 입시 위주의 교육과 학벌주의..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끔찍한 세계, 그 안에서 지옥 같은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깨어 있다. 그들은 다양한 자료를 통해 건강한 방식으로 사고할 줄 알고, 그 판단과 생각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할 줄 알고 있었다. 취업 전선에 내몰린 청년들이 다시 '정치'를 이야기하고,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온 고3도 시국선언에 동참한다. 중학생들도 '선배들'에게 뒤지지 않겠다며 거리로 나오고 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끝없이 교차한다. 또한, 부끄러움이 스친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어른'들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박근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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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만약 최순실 태블릿PC를 YTN 기자가 구해왔다면 보도할 수 있었겠나?" 뉴스 채널 YTN 경제부의 한 기자는 자사(自社)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언론사마다 자성의 목소리가 드높다. YTN뿐만 아니다. 지상파 방송인 KBS, MBC, SBS 소속 기자들의 반성도 이어지고 있다. 기시감이 든다. 지난 2014년 대한민국을 충격 속으로 몰고 갔던 그때가 떠오른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직후, 언론들은 지금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기레기'라 칭하는 '위악(僞惡)'을 떨며, 이대로는 안 된다고 소리치지 않았던가.



한낱 기자 '나부랭이'들의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반성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SBS 기자협회의 권영인 협회장은 JTBC <뉴스룸>의 시청률이 자사의 뉴스를 추월한 데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정말 참담했다. 짜증났다. 화도 났다" 그러면서 그들(JTBC)은 우리가 무시하고 외면할 상대가 아니"란다. 뉴스 '신뢰도'에서 JTBC <뉴스룸>에 뒤진 지 오래건만, '시청률'의 역전에 저토록 민감히 반응하는 태도야말로 오히려 참담하고 짜증나고 화가 난다. 


"JTBC가 하는 것과 우리가 하는 것, 매일매일 비교하면서 그들하고 경쟁하고 뒤처지지 않게 열심히 싸워나가는 게 바른 언론사, 바른 저널리즘을 실현하는 거라 생각한다"고 하지만, 그 의지가 얼마나 갈지 솔직히 의문스럽다. 권영인 협회장은 섭섭해 하지 마시라. 당신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니까.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박수홍은 "(가족에 대한 악플을 제외하면) 연예인은 더 얘기 들어도 괜찮다"고 말하더라. 이 말을 패러디하자면, "기자는 더 부끄러워해야 한다. 당신들은 더 욕 먹어도 된다."



"약 70년 전 르 몽드 지의 창간자인 뵈브 메리는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을' 다루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저희들의 몸과 마음도 그만큼 가벼워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 지난 2013년 9월 16일 JTBC <뉴스9> 첫 방송에서 손석희 앵커가 시청자에게 했던 다짐 -


두 번에 걸친 언론인들의 반성을 이끌어낸 주인공은 MBC를 뛰쳐나가 JTBC에 자리잡은 손석희 앵커(사장)였다. 보도 부문의 '전권'을 갖는 조건으로 종편으로 이적했던 그를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했다. 그건 일종의 '의구심'이었다. <JTBC>의 사주가 한국 보수 언론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조중동' 가운데 <중앙일보>를 소유하고 있는 홍석현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또, <중앙일보>와 삼성 간의 '혈연(홍석현은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의 동생) 관계도 물음표를 더했다. 


하지만 손석희 사장은 <JTBC>에서 뉴스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출연시켜 삼성의 노조 무력화 문건을 최초로 공개하는 등 삼성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에 관한 보도에도 앞장서는 등 성역 없는 '객관성'을 유지해왔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던 2014년에는 팽목항을 지키며 절망에 신음하던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최순실 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 PC를 찾아내 공개하면서 '진실'을 전달하는 데 여념이 없다.



한편, 손석희 사장과 함께 MBC에 몸을 담았던 후배이자, 손석희와 더불어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는 몇 안 되는 앵커인 김주하 씨의 행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혼 소송 등 복잡한 개인사를 겪은 후, 2015년 7월 MBN으로 자리를 옮긴 김주하 특임 이사는 메인뉴스인 'MBN 뉴스8' 앵커가 됐다. "시청자들이 믿고 보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던 그는 시청률 면에서 오히려 손석희 앵커를 앞질렀다. 첫 방송에서부터 종편 메인뉴스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지난 2월에는 시청률 5%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김주하 앵커의 발언 전문


최순실씨에게…. 죄송하지만 오늘은 한 사람에게 이 시간을 할애할까 합니다. 최순실씨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최순실씨, 혹시 요즘 뉴스 보셨습니까? 대한민국이 지금 당신으로 인해 얼마나 난리가 났는지? 지난 3년 간 현 정권과 관련해 끊이지 않았던 소문의 배후가 당신이었다는 사실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정작 그 주인공인 당신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독일로 갔다는 소식이 마지막이고, 독일에서도 많은 언론이 당신을 찾고 있지만 흔적조차 없다고들 하더군요.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딸과 평범한 대학생…. 쉽지않은 인연으로 만나 40년 간 우정을 지켜오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했을 것이고, 물심양면 도움도 줬을 겁니다. 하지만 그 언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고, 대통령은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닌 국가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일진대, 지금 대통령은 당신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못했다는 이유로 큰 곤경에 빠져있습니다. 물론 처음엔 언니를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줬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새 호의는 권력이라는 보상을 받게 됐고, 당신은 그 권력을 남용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언니를 넘어 나라를 위해 한 일이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죠. 하지만 덕분에 그 언니는 지금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죠. '지금까지 언니 옆에서 의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이만큼 받고 있다' 당신이 한 말에서 보듯 당신은 이미 언니와의 의리가 순수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했죠. 당신 말대로 박 대통령과의 의리 때문이었다면, 나라가 들쑤셔놓은 듯 엉망이 된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빨리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당신은 떳떳하게 그동안 한 일을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제 대국민 사과를 하는 대통령을 본 기자들은 그렇게 힘없고 어두운 모습은 처음 봤다고들 합니다. 지금 당신의 언니가 처한 상황이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언니를 위해, 나라를 위해 한 일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숨지말고 당당하게 세상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그 의리를 보여주십시오. 국민을 대신해 김주하가 전합니다.


'여성들의 워너비'로 자리매김했던 김주하 앵커는 지난 26일 최순실 씨에 대한 코멘트로 가득 채운 '3분 브리핑'에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발언으로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돼버렸다. 김주하 앵커는 '최순실 씨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의 브리핑에서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며 "쉽지않은 인연으로 만나 40년 간 우정을 지켜오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했을 것이고, 물심양면 도움도 줬"을 거라며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씨를 '두둔'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지금 대통령은 당신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못했다는 이유로 큰 곤경에 빠져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피해자'로 만들어 버렸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다. '최순실'이라는 '핫 아이템'이 빠져 언론들이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에 신나브로 형성된 프레임, '나쁜 최순실과 불쌍한 박근혜(대통령)'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김주하 앵커는 두 사람의 관계를 '언니와 동생'이라는 사적 관계로 치환하면서 공적인 부분에서 저지러진 만행을 '신의'의 문제로 뒤바꿔버렸다.


그러면서 제멋대로 '국민을 대신해 김주하가 전합니다'라니?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김주하는 '김주하'를 대변할 수 있을 뿐이다. 애초부터 앵커 김주하에 대한 '기대감'이 없던 터라, 이번 논란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그가 생산하는 '뉴스'가 그리 건강한 것이 아니라는 건, 구의역 사고의 피해자 김 씨의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눈물'을 카메라에 담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지 않았던가. 극단적인 비교를 하자면, '뉴스를 전달하는 손석희와 뉴스가 되고 싶은 김주하' 정도 일까.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JTBC <썰전>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금태섭 대변인도 "'최순실 게이트'라고 불려왔던 국정농단 의혹을 이제부터 '박근혜 게이트'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한다면서 그 이유를 "박 대통령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경고이자, 이번 사태의 본질에 대한 확인"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본질과 은폐의 핵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사과문을 통해 "저로서는 좀더 꼼곰하게 챙겨보자고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한 최순실 씨의 '언어'는 어떠했는가. "왜 그런 것을 가지고 사회 물의를 일으켰는지 박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이고,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그의 발언은 '대통령=피해자'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려 애쓰고 있다. 


지금 우리는 '나쁜 최순실과 불쌍한 박근혜'라는 고약한 프레임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간에, 이 프레임을 만들고 단단히 하는 데 일조한 김주하 앵커에게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언론인으로서 그가 감내해야 하는 몫이다. 김주하 앵커는 "손석희와 김주하는 무엇이 다를까요? 손석희는 국민을 주어로 사용했고 김주하는 박근혜를 주어로 사용했다"는 정청래 전 의원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뉴스가 되려 애쓰기보다(그는 또 한번 성공했다), 그 중심에 '국민'을 두는 앵커로 환골탈태 하길 기대한다. 솔직히 지금은 제아무리 '손석희'와 '김주하'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쏟아지는 '지면'도 아까울 만큼 중대한 시국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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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아이와 어울리고, 놓고 온 휴대전화를 찾아 '직접' 헐레벌떡 뛰어가는 버락 오바마를 보면서 '우리에게도 저런 대통령이 있었다'고 추억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겐, 각자가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인간 노무현'을 그리워 할 자유가 있다. 물론 리더십이 실종되고, 그저 눈앞의 이익만 좇는 모리배(謀利輩)에 가까운 정치인들을 바라보며 '정치인 노무현'을 떠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대통령 노무현'이 그리울 수 있다. 하지만 '농민 백남기'를 떠올리며 '노무현'을 그리워한다는 건 불편하고 잔인한 일이다.



농민 백남기와 대통령 노무현이 그리웠던 밤 <미디어오늘>


지난 2005년 11월 15일 농민대회(시위)에 참가했던 농민 전용철 · 홍덕표 씨가 사망했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두 사람의 사망 원인을 '경찰의 과잉진압'이라 명시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전용철 씨는 기동대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진행방향에 서 있다가 떠밀려 넘어지는 과정에서 두부손상이 발생했고, 홍덕표 씨는 경찰의 방패에 뒷목 등을 가격 당해 경추 손상을 입었다. 그리하여 두 농민은 사망했다. 명백한 공권력의 남용이었고,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이었다.


정확히 10년의 세월이 흐른, 그럼에도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는, 2015년 11월 14일로 시선을 옮겨보자. '1차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농민 백남기 씨는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고, 병상 위에서 317일 간의 사투를 벌였음에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 지난 2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백남기 씨에게 '조준'된 물대포의 위력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명백한 공권력의 남용이자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이었다. 



- 2005년 12월 26일 저녁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전원회의 결과를 공개하면서 전용철, 홍덕표씨 사망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바로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참모들의 의견이었나? 

"아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기는 어렵다. 경찰의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소관 부처가 있는데... 시민사회수석으로서도 진상을 숨기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엄정하게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시점에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가지 않았다." 


- 그렇다면 대통령 자신의 생각이었나? 

"그렇다. (2005년 12월) 27일 아침에 대통령이 비서실장, 정책실장, 소관 수석인 나를 불러서 농민사망 사태에 대한 대통령 사과를 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 참모들의 반응은 어땠나? 

"다들 만류했다. 아직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고 각 부처에 직접적인 책임자들도 있었다. 경찰청도 있었고. 그런데 대통령이 먼저 사과하는 것은 너무 나가시는 것이라는 신중론이 다수였다." 


- 만류에도 강행한 것인가? 

"당시 대통령 입장에서는 따지려면 따져볼 만한 내용은 충분했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검토할 부분은 있지만 공권력 행사는 엄중한 문제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할 공권력이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건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문제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하셨다."


<오마이뉴스>, "모두 말렸지만 노 대통령이 사과 강행"


물론 정부의, 아니 정확히는, '대통령'의 '대응'은 달랐다. (위의 인터뷰 내용을 길게 인용한 까닭은, "그 땐 TV속 대통령의 사과가 당연한 건 줄 알았다."는 <미디어오늘>의 기사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당시에도 대통령의 사과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과를 선택했다.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며 입을 뗀 그는 공권력의 남용이 국민에게 매우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외면'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개월이 지난 시점까지도 담당자에 대한 문책도 없었고, 당연히 사과도 없었다. 끝내 백남기 씨가 사망했음에도 그 어떤 '발언'조차 없었다. 지난 24일 시정연설을 위해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을 찾은 박 대통령은 '#나와라_최순실', '백남기 농민 부검 대신 사과!'라는 피켓을 든 김종훈 의원을 스쳐지나갔다.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개헌'으로 돌파하고자 애쓰는 그에게 '농민 백남기'가 눈에 보이기나 했겠는가.



확연한 차이다. 이 점에 착안해 두 정부를 비교하고, 더 나아가 대통령의 '품격'을 비교하는 건 가능한 일이다. 어느 쪽이 더 진솔했고, 어느 쪽이 더 성숙했는지에 대해 굳이 코멘트를 달지 않아도 충분하리라. 하지만, 그 슬프고 고독했을 죽음 앞에 '누군가가 그립다'고 말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하다. 또, 무례하다. 2005년에도 농민은 암담한 현실에 떠밀려 자신의 논밭을 떠나 시위 현장에 나서야 했고, 그건 2015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농민이 죽어야 했고, 지금에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 현실을 깨닫지 못한 채, '정파적 시각'에만 매물돼 누군가를 추앙하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데 매물되는 건 처량한 일이다. 그리고 매우 이기적인 생각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한 전직 의경은 2005년 당시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양심고백했다. 그 명령의 최종책임자가 누구인지,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되리라 판단된다. 그리움에도 정도가 있다. '여론'이야 그렇다쳐도, '언론'까지 나서서, '그 때가 그립다'고 호들갑을 떠는 건, 감히 말하건대, 농민 백남기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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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성장 과정 등을 볼 때 종교적 신념과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 · 개인 양심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고 형사처벌로 이를 제한할 수 없다. 국제사회도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인정하는 추세이고, 우리 사회도 대체복무제 필요성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600명 정도로 추산되는 병역 거부자를 현역에서 제외한다고 병역 손실이 발생하고 기피자를 양산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항소심에서 첫 무죄 판결이 나왔다. 18일 광주지법 형사항소3부(부장판사 김영식)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심적 병역 거부자 A씨에 대해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1년 동안 1심에서 무죄 판결이 여럿(9건) 나오긴 했지만,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김영식 부장판사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우리 사법부는 그동안 '타협 판결'을 했다"고 통렬한 자성(自省)의 목소리를 냈다. 


상당히 의미가 큰 판결이고, 용기 있는 '한걸음'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사법부'를 향해 내지른 일갈(一喝)이라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게 무엇이고,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고 있을까. 간단히 정리를 해보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선 먼저 '헌법(憲法)'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헌법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1. 한 나라 최고의 상위법

3. 국가의 통치 체제에 관련된 기본적 원칙과 국민의 기본적 권리, 의무 따위를 규정한 것


그러니까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최고의 상위법이고, 대한민국 통체 체제에 관련된 기본적 원칙과 국민의 기본적 권리,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서열상 헌법 아래 놓이게 되는 '실정법'은 헌법에 기반해야 하고, 헌법의 지향점을 거스를 수 없다. 이론적으로는 그러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수많은 실정법이 헌법적 가치와 충돌한다. 수도 없이 부딪친다.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제20조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병역법]

제88조(입영의 기피 등) ①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더불어 양심의 자유도 가진다고 천명(闡明)하고 있다. 알다시피, 집총(執銃) 거부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99% 이상은 '여호와의 증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그들'만'의 것이라 할 순 없다. 지난 2001년 불교 신자이면서 평화주의자인 오태양 씨가 병역 거부 선언을 하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는 특정 종교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문제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평화'를 우선시해야 할 여타 종교들이 '현실 세계'와 적극적으로 타협하고 있는 데 비해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상당히 기이(奇異)한 것이긴 하다. 어찌됐든 그들'도' 당연히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마찬가지로 '양심의 자유'도 보장받는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교리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겠다는 개인의 양심적 판단(내면의 생각 또는 지식)을 국가는 존중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당연히 군대를 가야한다'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헌법에 보장도니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9일 청주지법은 '양심의 가치'를 최우선이라 판단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그 논거를 살펴보도록 하자. "개인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며 진지하고도 강력한 마음의 소리를 따라 살 수 있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양심의 자유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자유권으로 이를 보장하는 건 가치상대주의를 토대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구현의 기본적 전제가 된다." (2016고단64)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병역법'을 앞세워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양심적 자유를 묵살해왔다. 2004년 대법원은 '병역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며 유죄를 선고했고, 2004년과 2011년 도 차례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자의 형사처벌은 징병제 하에서 병역자원 확보, 병역의무의 공평한 부담, 국가 안보라는 중대한 공익실현을 위한 것으로 정당하다"며 병역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한편, 국방부는 "남북 대치상황에서 병역의 형평성에 악영향을 끼치고 다른 의무에 대한 거부 명분을 제공하게 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병역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일까? 결코 그런 게 아니다. 이미 2004년 헌재는 "양심의 자유와 국가안보라는 법익의 갈등관계를 해소하고 양 법익을 공존시킬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것을 국회에 주문했다. 이듬해인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도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다. 2007년 9월에는 국방부도 나서서 대체복무 허용 방안 추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돼던 대체복무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무산됐다. 



MB정부는 당시 실시됐던 여론조사(리서치앤리서치) 결과에서 반대 의견(68.2%)이 찬성 의견(29%)을 압도하자,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반대했다.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도 있었던 '대체복무제 도입'은 연이은 보수 정권 하에서 수면 아래로 깊게 가라앉게 됐다. 한편, 지난 2013년 11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대체복무제를 허용하자는 의견이 68%를 차지했다. 오잉? 국민적 여론이 그 사이에 180도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여론조사는 '과학'이라는 지적처럼 '포인트'는 '설문지'에 있었다. 국방부가 의뢰했던 리서치앤리서치의 설문지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영입 및 집총거부자'로 명기했고, 한국 갤럽은 그대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는 일반적 호칭을 따른 것이다. 굳이 '국민적 여론'을 참고하고자 한다면, '후자'의 것을 따르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만큼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대체 복무제'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각은 상당히 진보적이고 유연하다. 



대체복무제의 악용 가능성에 대해서 논란이 많지만,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이 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또, 그밖의 '양심적인 판단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군 복무 기간의 1.5배 내지 2배 가량의 대체 복무를 하도록 한다면 '악용'의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또,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피'하는 곳(정신병원, 요양소, 구조 업무 등)에 복무토록 한다면 사회적으로 훨씬 이득이 아닐까? 


헌법재판소는 조만간 또 한 번의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이번엔 '변화'가 있을까? "국가는 소수자 권리 주장에 인내만 요구하지 않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선진국 사례를 볼 때 현실적 대책(대체복무제)이 있는데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일선 재판부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또, 정부도 이제는 방관을 멈추고 반세기 넘게 지속되고 있는 갈등 해결을 위해 움직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대체복무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제스처를 취한다면, 헌법재판소도 마음 편히 '양심'을 따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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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것을 훔치는 것을 절도라고 한다. 따질 것도 없이 명백히 나쁜 짓이다. 사실판단(事實判斷)이야 그렇다치고, 가치판단(價値判斷)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조금 다른 이야기들을 할 수 있다. 가령, 사회 고위층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대범한 절도 행각을 벌이는 대도(大盜)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 묘한 생각이 든다. 비록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심지어는 응원까지 하게 된다. 한편, '장 발장(Jean Valjean)'과 같은 생계형 절도범에겐 '어쩌다 저리 됐을까..'라며 애잔한 감정을 품기도 한다.



광주의 한 대학교의 도서관에서 발생한 절도 사건은 어떨까? 용의자인 40대 남성은 동안(童顔)의 외모에 대학교 교재(『국토 및 지역계획론』)를 들고 마치 대학원생인양 도서관을 손쉽게 출입했다. 그는 지난달 30일부터 약 보름 가량 동안 8차례에 걸쳐 학생들과 취업준비생들의 소지품을 훔쳤다. 대상자들이 취업 준비에 지쳐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물건들을 슬쩍한 것이다. 그렇게 훔친 물건은 식권, 교통카드, 얼마 되지 않는 현금 등이었다고 한다.


22세 대학생(여)의 지갑에는 현금 3,000원과 신분증만 들어 있었고, 31세 취준생(남)의 지갑에는 2,500원이 전부였다. 소유자를 파악할 수 없는 지갑에는 식권 18장이 고이 접혀 있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도하면서 <연합뉴스>는 대학도서관 도둑이 훔친 지갑속에서 드러난 '가난한 청춘' 이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그보다 절묘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가난한 청춘'이라는 말이 가슴을 때리고, 마음을 시리게 한다. 이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은 이렇다.



"정말 짠하다. 한국의 청춘들이 왜렇게 살아가야하는지. 가장 찬란하게 빛나고 넘치는 기쁨으로 충만해야될 시기가 아닌가. 그러나 지갑속에 들어있는 너무나 초라한 청춘들의 현실을 보며 알수없는 죄책감을 느낀다. 지금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정말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를 털어먹고 사는 헬코리아"


청춘들의 현실을 보며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누군가와 그의 말에 수많은 공감을 보낸 사람들의 존재에서 위안을 얻다가도 '가난한 자가 가난한 자를 털어먹고 산다'는 표현에서 또 다시 무너져 내린다. 겉으로 드러나는 몇몇 수치로는 세계에서 제법 잘 사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며 곪고 썩어 있는 걸 쉬이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청춘들의 삶이 왜 저토록 피폐해졌을까. 그들의 현실을 보다 잘 보여주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실시한 '일상생활에서의 정서경험과 콘텐츠 소비의 관계' 설문조사(전국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의 49%가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42.4%로 나타나 동의하지 않는 의견(44.3%)가 비슷했다. 놀라운 건 20대의 반응이었는데, 무려 50%가 감정을 숨기는 게 좋다고 대답했다. 이는 30대 45.6%, 40대 38.8%, 50대 35.2%보다 높은 수치였는데, 흔히 자유분방할 것이라 여겨지는 20대의 반응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아무래도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좌충우돌 부딪쳐야 할 20대가 어째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진 것일까? 또, 그래야 한다고, 그것이 맞다고 여기게 된 것일까? "조직에 맞춰 감정을 숨기는 게 편하다. 이젠 눈물이나 웃음도 안난다. 그런 감정은 세상 편하게 사는 사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20대 직장인과 "미래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웃고 떠드는 것이 뭔가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다"는 20대 취준생의 대답을 읽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사회가 그들에게서 웃음을 빼앗아 간 것이다. 지금의 20대 대부분이 2008년 촛불 집회를 경험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감없이 표현하고 드러냈던 세대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경직성은 더욱 놀랍기만 하다. 한편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보수적 성향과 억압이 어느 정도인지 새삼 절감케 된다. 재기발랄했을 청년들이 마음껏 뛰어 놀 판을 만들기보다 기존의 딱딱한 틀 안에 집어 넣고, '여기에 적응해라'고 강압했던 '어른'들이 만들어 낸 결과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지갑 안에 현금 3,000원을 들고 다니는 대학생, 돈은 가져도 좋으니 밑줄 그어 공부한 책은 제발 돌려달라는 취준생, 웃음은 사치라고 말하며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수많은 20대들.. 그런 그들에게 이화여대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왔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에 대한 뉴스는 어떻게 들렸을까? 학교 측의 특별 관리를 받고, 학점도 아무 어려움 없이 손쉽게 딸 수 있었다고 알려졌던 '특별한' 또래로 인한 박탈감을 얼마나 컸을까? 


과제물을 첨부하지 않아도 교수로부터 "앗! 첨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는 친절한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 제출 기한이 지나 학기가 끝났고, 그마저도 인터넷 검색을 하면 쉽사리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을 붙여넣기 한 과제물이었음에도 B학점을 받았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친다. 지울 수 없는 허탈감이 공허히 맴돈다. '공정함'이라는 게 사라진 사회, '부모'가 그리고 '권력'이 그리고 '부(富)'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 그런 세상을 만들어 놓고, 청년들에게 '재주껏' 살아남아 보라니. 이 얼마나 잔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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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① 두려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자신의 신분이나 능력 따위를 넘어서서 주제넘게.


"김제동이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 군 간부 문화를 정말 희롱하고 조롱한 것으로 군에 대한 신뢰를 굉장히 실추시키고 있다"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



촌극(寸劇). 그 이상 적합한 단어를 찾기 어렵다. 어휘력의 부족을 탓해야 할까? 새누리당의 백승주 의원은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방송인 김제동이 JTBC <김제동 톡투유 - 걱정말아요 그대>에서 이야기했던 '영창 에피소드'를 문제 삼았고, 급기야 김제동의 우스갯소리는 '군(軍)에 대한 모독'으로 비화됐다. 김제동은 '감당할 수 있으면 부르라'고 당당히 외쳤고, 국방위 김영우 위원장은 '증인 불채택 방침'을 밝히면서도 김제동에게 사죄를 요구했다. '감당할 수 없어서' 못 부른 꼴이 됐지만, '권위'는 챙기겠다는 것일까. 


과연 김제동은 '군'을 모독했는가?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발언'을 하는 김제동의 거침없음은 누군가에게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 반응의 기저에는 두 번째 의미의 '감히'가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이를테면,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방송인 주제에 '감히' 함부로 떠들어? 정신 차리게 혼쭐을 내줄까'와 같은 것이다. 이른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 대해 취하는 전형적인 태도다. 신분제가 공고했던 조선시대로 돌아가면, '한낱 백성 주제에 감히?', '노비 주제에 감히?' 정도일 게다. 



신분제가 표면적으로는 해체됐지만, 그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겠는가. 애석하게도 DNA 속에 내재된 그 수직적 사고방식은 사회 속에 체화된 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특정한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우위에 두고 생각하고, 상대방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못된 버릇이 생겨버렸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잘못된 표어는 '감히 손님한테?'라는 반응을 당연하게 만들었다. '라면 상무'의 갑질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작은' 갑질엔 무신경한 사람들 틈에 숨어 있진 않은가?


경기도 안성의 어느 중소기업의 간부는 주말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폭행했다. '외국인 노동자 주제에 감히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전주시에 살고 있는 60대 남성은 단골 막걸리집에서 자주 마주친 한 남성에게 "같이 술을 먹자"는 제안을 했다가 거절 당하자 그를 도로에 밀어 넘으뜨려 죽음에 이르게 했다. '감히 네가 나를 무시해?' 충남 청양의 한 고등학교에선 고3인 A군이 후배가 SNS에 반말로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1시간 넘게 폭행을 하기도 했다. '후배 주제에 감히?'




광주에선 아파트 입주민인 50대 남성이 큰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면 다른 입주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한 아파트 경비원의 뺨을 담뱃불로 지진 사례도 있었다. '경비원 따위가 감히?'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여학생 기숙사에 들어갔다가 이를 따져 묻는 경비원에게 "내가 이 학교 교수인데 여학생 기숙사에 들어온 게 잘못 됐냐. 넌 개 값도 안 돼서 못 때려"라는 천박한 소리를 해대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를 '감히'라는 한 단어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이건 어휘력의 한계가 아니다. 


너도나도 '감히'를 입에 담는다. 경제적 부(富)를 '신분'의 척도라 여기는 재벌가의 횡포는 천민자본주의가 판치는 시대 속에서 감내해야 할 몫이라지만, 국민을 섬겨야 할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윗사람'으로 여기고, 되려 국민들을 '아랫 것'으로 대하는 태도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19대 국회에 입성했던 운동권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내가 왜 질의서를 (국회 본청까지) 들고 가야 하냐!"며 서류뭉치를 보좌관에게 던지며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 꼴사나운 권위주의 문화의 정점에는 '대통령'이라고 하는 선출직 공무원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보수 정권의 '대통령'들은 걸핏하면 국민에게 칼을 들이대면서 '대통령 모독'했다고 위협을 가하곤 한다. 이명박 정부는 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은 대학 강사를 처벌하는 데 열을 올렸고, 결국 국민들로부터 풍자의 자유를 빼앗아 버렸다. 또, 자신의 트위터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게시한 군인을 기소하면서 '상관모욕죄'를 적용하기도 했다. '감히 국가 원수를 모욕해?'라는 식이다. 그렇게 표현의 자유마저 앗아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 2014년 9월 16일 )"며 국민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검찰은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지 이틀 만에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 수사팀을 꾸려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꼴이 아닌가. 그야말로 '제왕'으로 군림하는 대통령의 안중에 '국민'이 있을 턱이 없다. 이쯤되면 '최고 존엄을 건드렸다'는 북한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한번 조성된 공포 분위기는 사람들을 위축시킨다. 억압적인 사회 구조는 사람들의 사고를 제한한다. '감히'를 외치며 상대방을 내려찍으려는 오만방자한 태도, 그 권위주의적 태도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열설적으로 '감히'에서 나온다. 바로 '첫번째' 감히' 말이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감히 이야기하고, 감히 대항해야 한다. 그리하여 무엇보다 '정점'에서 권위주의 문화를 생산하고, 퍼뜨리는 위정자들이 반성토록 해야 한다. 자정(自淨)이 힘들다면, 강제로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김제동은 저들의 '감히' 앞에 '감히'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왜 겁이 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가 성주에서 말했듯, '쪽팔리지 않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감히' 싸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혹시 나도 입버릇처럼 '감히'를 말하고 있진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의 '감히'는 첫 번째 의미(두려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인가, 두 번째 의미(자신의 신분이나 능력 따위를 넘어서서 주제넘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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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으면 '돈'을 드립니다"


기껏해야 '100만 원' 남짓한 돈을 받기 위해 아이를 낳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산장려금' 제도를 제각기 시행하고 있지만, 그 얼마 안 되는 돈이 '출산'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영향력은 없어 보인다. 조금만 삐딱하게 생각해보면, '출산장려금'이라는 건 꽤 불쾌한 정책이다. 100만 원이라는 '미끼'를 던지면 사람들이 기뻐서 아이를 순풍순풍 낳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대한민국 시민들이 그 정도에 낚일 만큼 '바보'들은 아닌 듯 싶다.



하지만, 애초에 출산을 계획하고 있다면, 가능하면 더 많이 주는 곳에서 아이를 낳을 생각은 하지 않을까? 전라남도 해남군은 4년째 출산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비결은 무엇일까? 애석하게도 '돈'이다. 첫째 아이를 낳으면 300만 원을 지급하고, 둘째는 350만 원, 셋째는 600만 원을 지원한다. 제법 파격적이다. 다른 지자체가 3억~4억 가량의 예산을 출산 지원 정책에 투입한다면, 해남군은 40억 원을 넘게 할당하고 있다. 하려면 '제대로' 하는 게 낫다는 점에서 해남군은 최선을 다한 셈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투자 대비 성과는 괜찮았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3,802명의 신생아가 해남에서 태어났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출산율 1위다. 문제는 이 글의 첫 문단으로 회귀한다. '기껏해야 100만 원 남짓한 돈을 받기 위해 아이를 낳는 사람이 있을까?' 같은 기간 해남군의 인구는 2,152명이 줄었다고 한다. 이른바 '먹튀'다. 상대적으로 많은 '출산장려금'만 챙기고, 보육 시스템이나 취학 여건이 좋은 인근의 대도시로 이탈한 것이다. 



이런 경향은 경상남도의 지자체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함양군은 첫째 아이에 50만 원, 둘째에 100만 원, 셋째에 1,000만 원(600만 원에서 지난 7월 증액했다)을 지원한다. 하지만 인구는 2012년 4만 714명에서 2016년 현재 4만 189명으로 줄어들었다. 거창군도 셋째부터 1,500만 원을 지원한다. 2012년 6만 3,103명에서 2016년 현재 6만 3,257명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2015년(6만 3,232명)에 비하면 감소한 수치다. 결국 좀더 좋은 환경으로 이주하는 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해남군(을 비롯한 여러 지자체들)의 파격적인 출산장려금이 실질적으로 출산율에 기여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단 얘기다. 어차피 낳을 사람들이 해남군으로 '위장전입'을 한 후, 챙길 돈만 낼름했다는 결론이 좀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출산장려금'이라는 제도는 애초에 부작용이 예견된 정책이었다.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마다 지급액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이와 같은 문제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먹튀'들을 탓할 까닭도 없다. 이건 정책 '디자인'의 실패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같은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7월 22일, 정부 고위관계자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내부 추산 결과, 상반기 비공식 합계출산율이 1.2명에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돼 우려가 큰 상황"이라면서, 기존의 세 자녀 이상 가구에 적용하던 각종 인센티브를 두 자녀 가구로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고 나서 8월 25일 저출산 보완대책을 발표했는데, 역시 일정한 대상에 어떤 혜택을 주는 것이 기본 골자였다. 




'인센티브'를 줘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라면, 차라리 허경영의 공약을 배울 필요가 있다. '웃음거리'로 전락하긴 했지만, 과거 허경영이 내놓았던 '해법'들은 이제와서 생각하면 '선경지명'이라 할 만한 것이 꽤 있다. 결혼수당으로 1억 원을 지원한다든지, 주택 자금으로 2억 원을 무이자로 지원하는 정책은 (액수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핵심'을 잘 꿰뚫고 있는 것이다. 또, 출산을 할 때마다 3,000만 원의 출산수당을 지급하고, 전업주부에게 10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발상은 이제와선 오히려 현실적으로 들린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80조 원의 예산을 '허튼 곳'에 쏟아부었던 걸 생각하면, 차라리 허경영의 제안이 더 경제적이란 생각도 든다. 합계출산율이 1.24명(2015년 기준)으로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하는 등 현실적인 지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2016년 현재의 합계출산율은 이미 1.20명 이하로 떨어졌다는 이야기고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허경영처럼 할 게 아니라면, 어줍잖은 '인센티브' 제도는 무의미하다. 이제 '디자인'을 바꿔야만 한다.


'결혼을 하면 얼마를 준다'라든지, '출산을 하면 얼마를 준다', 이를 넘어 셋째 아이를 낳으면 이런 혜택을 준다'는 식의 디자인은 낡디 낡은 것이다. 일정한 지원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결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아이를 낳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거기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저출산의 원인은 다양한 사회 문제가 결합된 고차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엔 청년 실업을 비롯해서 비정상적인 주택 가격, 보육 문제 그리고 여성 문제도 결합돼 있다. 


- 워킹맘 고통지수 -


무엇보다 결혼과 출산이 '사회적 커리어'를 단절시키는 지금의 기업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출산율은 풀기 어려운 실타래다. 또, 안정적인 누리과정의 운영 등 '무상보육'이 자리잡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물론 '무상교육'도 실현해야 할 과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지금의 노동 정책도 바꿔야 한다. 전방위적인 사회 개혁을 모색해야 한다. '출산장려정책'은 이처럼 방대하고,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진행돼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목을 메지 말고, 거시적인 틀을 그려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정부에 그런 것을 기대하긴 참 어렵다. 


그리고 '출산장려금' 제도를 계속 시행하는 지자체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지금처럼 첫째 아이에는 적은 금액을 지원하고, 셋째 아이부터 큰 액수의 지원금을 주는 출산장려책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부디 출산을 우스꽝스러운 일로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인구 유지를 위한 궁여지책이겠지만, 차라리 몇 째 아이인지 순서와 관계없이 같은 금액을 지원하는 게 어떨까? 세종시의 케이스(출산 때마다 120만 원을 지급, 세종시의 합산출산율은 1.90명으로 가장 높다)를 본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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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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