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어?'라는 물음이 우문(愚問) 중의 우문이라는 건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정치는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 7년의 세월의 거치면서 공영방송은 처참히 붕괴됐다. 견디다 못한 우수한 인재들이 앞다퉈 떠났고,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은 그 특수를 확실히 누렸다. 지상파가 패권을 움켜쥐고 있던 시절은 지났다. 주도권이 넘어갔다. KBS와 MBC(의 경우는 일단락 됐지만)의 총파업은 그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예능'으로 범위를 국한시켜 봤을 때, 2017년 한 해 동안 지상파는 주춤하다 못해 퇴보했다. KBS와 MBC가 애초에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면, SBS는 '가족 예능'의 덫에 갖혀 허우적댔다. 반면, tvN과 JTBC는 훨훨 날았다. '나영석 월드'가 구축된 tvN은 뚜렷한 강세를 보였고, 다양한 예능을 론칭했던 JTBC도 신흥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또, 개국 10주년을 맞은 MBC every1의 활약도 눈에 띠었다. 올해 어떤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순서는 방영 순이다.



1. tvN <윤식당> 

방송 기간 : 2017년 3월 24일~ 2017년 5월 19일 

최고 시청률 14.141%


"나는 노을 지는 게 너무 싫은 거 있지? 싫어, 노을 지면 너무 슬퍼. 꼭 울어야 될 거 같아. 난 노을 질 때 굉장히 슬퍼, 아무튼. 혼자 있을 때는 운 적도 많아. 노을 지는 거 보면서. 그만, 그만 울어 버렸네. 아니 너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구. 이제 꼴깍 넘어가지? 저러다가. 내가 나이가 들어서 석양이 싫은 건가?"


귀감이 되는 어른이 사라진 시대, 어느새 '꼰대'들만 잔뜩 남아 버린 시대. 젊은이들은 '푯대'를 상실했다. 그런 와중에 <윤식당>은 해갈(解渴)과도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진짜 '어른'을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제공했고, '아,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이상향을 제시했다.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졌고, 누구보다 따뜻한 배려를 보여줬던 윤여정은 시대의 워너비로 자리잡았다. 그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도전에 주저함이 없는 신구와 함께 단순히 '나이'가 '늙음'을 규정짓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줬다. 


<윤식당>은 '은퇴 후 (가족이 함께 하는) 자영업'이라는 판타지를 이상적으로 구현했는데, 이 설정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았다. 두 명의 어른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상무' 이서진과 '윰블리' 정유미도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하며 프로그램을 빛냈다. <윤식당>은 콘셉트와 캐스팅, 연출 등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나영석 PD의 걸작이었다. 성별과 세대를 초월해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윤식당>을 2017년 최고의 예능이라 꼽아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2.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방송 기간 : 2017년 6월 2일~ 7월 28일, 현재 시즌 2 방영 중 

최고 시청률 : 7.192%


"정말 빛나는 것들은 대화를 통해서 나와요. 이야기하는 중에 더 빛나는 것들이 많이 나왔어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살다살다 '아재'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될 줄이야. 혹시라도 한마디라도 놓칠까봐 정신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나 자신이 그리 놀라울 수가 없었다. <알쓸신잡>은 그만큼 충격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아재들의 대화가 유익할 수 있다를 넘어 아재들의 대화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대가를 이룬 다섯 사람, 작가 유시민 ·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 소설가 김영하 · 뇌과학자 정재승 · 가수 유희열은 여행을 하면서 지치지 않는 무한 수다를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그들의 수다가 (우리가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른 아재들의 그것과 달리) 유익하고 재미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에 있었다. 네 명의 잡학박사들은 각자의 여행을 계획할 뿐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정답'이라 말하지 않았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수긍하는 자세는 곧 수다의 지속성을 보장했다. 물론 <알쓸신잡>은 모든 아재들의 대화가 저들의 것과 같지 않다는 현실도 분명히 깨닫게 해줬다. 



3. JTBC <효리네 민박> 

방송 기간 : 2017년 6월 25일 ~ 9월 24일  

최고 시청률 : 9.995%


"파도 소리가 기억 나? 난 '파도'라고 하면 '철썩철썩'을 생각했는데, 너한테 설명을 하려고 자세히 들어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아. 꼭 들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파도를 그냥 마음으로 느낀다고 해야 하나? 안 들려도 들리는 사람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 같아"


<효리네 민박>은 제주도에 정착한 이효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시청자들의 '호기심'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기 싫은 스타의 '욕망'이라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절묘히 맞아 떨어진 프로그램이었다. 최고의 스타인 이효리가 자신의 집을 일반인에게 민박집으로 제공한다는 설정은 매우 기발했고, 당연히 시청자들의 엄청난 궁금증을 유발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아이유를 직원으로 캐스팅한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효리네 민박>이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효리네 민박> 성공의 핵심 포인트는 '소통'이었다. 이효리는 '스타'가 '자연인'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왔고, 그 수더분하고 꾸미지 않은 모습들이 더할나위 없이 보기 좋았다. '볼매 캐릭터'로 자리잡은 남편 이상순의 존재도 큰 버팀목이었다. 이효리는 민박집 손님들과 세대를 초월한 소통 능력을 보여줬는데, 그 어우러지는 모습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보는 사람도 자연스레 '힐링'이 되는 놀라운 체험이었다. 듣는 데 인색하지 않고, 웃음에 머뭇거리지 않는 이효리의 교감 능력은 2017년 최고의 발견이었다.



4 .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방송 기간 : 2017년 7월 27일 ~ 

최고 시청률 : 4.805%


"일제강점기에 대해 일본은 외면하고 있어" (마리오)

"일본이 사과해야지" (다니엘)

"그걸 다뤄서 얻는 게 없으니까 일본은 사과하지 않는 거야" (페터)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한마디로 발상의 전환이었다. '외국인'과 '여행'은 예능에서 그동안 숱하게 활용했던 낡은 소재였다. 그런데 두 가지를 한 데 모아놓았더니, 전혀 다른 성격의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어서와>는 여행의 주인공으로 외국인을 내세우고, 그들이 자유롭게 대한민국을 여행하는 모습을 따라간다. 외국인의 관점에서 국내를 바라보자 익숙했던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타자의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는 경험, 이른바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분단을 경험했던 독일 친구들 편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그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DMZ와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보기도 했다. 우리조차 외면하고 있던 역사를 외국인의 시선으로 듣게 되다니, 부끄러움과 고마움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놀라운 체험이었다. 또, <어서와>는 '독일 사람은 어떻다더라', '프랑스 사람은 그렇지 않아?'와 같이 우리가 외국인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는 역할도 했다. 웃음과 잔잔한 감동, 그리고 의미까지 담아버린 이 예능을 어찌 최고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 예능 프로그램들은 단순히 예능적 재미를 넘어 다양한 가치(힐링, 지적 만족, 문화적 다양성)까지 함께 전달하고 있기에 '좋은' 예능이라 할 만 하다. 2017년 한 해 동안 가장 사랑받았던 예능을 뽑아놓고 보니, 관통하는 특성이자 공통점이 보인다. 그건 '타자를 향한 열린 자세'가 아닐까. 그건 곧 '꼰대 아님'을 뜻하기도 한다. 삶의 곳곳에서 꼰대들을 목격하고, 저들처럼 늙지(살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곤 하는 사람들에게 '꼰대 없음'을 보여준 예능들이 사랑받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은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속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지상파를 제치고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알쓸신잡>은 시즌2를 시작해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여전히 멈추지 않는 수다를 과시 중이다. <윤식당>은 시즌2 촬영을 마쳤고, 1월 5일부터 방송될 예정이라 한다. <효리네 민박>도 시즌2 촬영에 들어간다. 이들의 인기는 2017년을 넘어 2018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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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엄마가 없으면 나는 어쩌나.."


부재(不在)가 존재를 증명한다. 인간이란 왜 이토록 아둔한 것일까. 잃어 봐야, 없어져 봐야, 그제야 소중함을 느낀다. 왜 좀더 일찍 깨우치지 못하는 걸까. 언제나 빈자리를 경험해야, 뒤늦게 그 존재의 위대함과 절실함을 깨우치게 되는 걸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존재의 이름을 '엄마'라고 상정해보자. 벌써부터 눈앞이 깜깜해진다. tvN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연수(최지우)처럼 당장 "엄마가 없으면 나는 어쩌나.."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이 지점에서 씁쓸해진다. 엄마가 죽는다는데, 엄마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는데, 우리는 고작 '나는 어쩌나'하고 살 궁리를 하고 있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엄마의 암 소식을 전해 들으며 나는 그때 분명 내 이기심을 보았다. 암 걸린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나는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라며 자신의 뺨을 치던 박완(고현정)처럼 말이다.


'노년'을 새롭게 조명했던 <디마프>에서도 '부모와 자식'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던 노희경 작가였다. 간암에 걸려서도 온통 딸 걱정뿐인 난희(고두심), 치매에 걸리자 아들 민호(이광수)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희자(김혜자). 노 작가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을 통해 부모의 내리사랑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반면, 자식들은 기어이 자기 살길을 찾아 나섰다. 이것이 노희경 작가가 생각하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본질적 구도였던 모양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써내려갔던 그 처절한 자기고백이 참으로 아팠다.


노희경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본격적으로 '엄마'를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가족을 뒷바라지하며 평생을 희생하고 살아왔던 중년의 주부가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족들과 눈물의 이별을 준비한다는 내용이다. 이 설명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얼마나 슬플지, 아니 슬플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1996년 MBC 창사 35주년 특집 드라마로 방영됐던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 했다. 굳이 21년 전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효용이 있다고 봤던 것일까.



"요즘 대부분의 드라마 속 엄마는 엄마가 아니에요. 자식들을 잃어버리고, 재산 안 준다며 괴롭히는, 극중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장치일 뿐이죠. 그러다 보니 부모상이 왜곡되고, 엄마는 불편한 존재라고 받아들여지지요. 그래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가족 이야기가 지금 다시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동아일보>, "어느새 왜곡된 부모상.. 진짜 엄마 보여주고파"


노 작가는 시대가 외면하고 있는 혹은 잃어버린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재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년을 위한 드라마가 없다'는 문제의식이 <디마프>를 낳았던 것처럼, '엄마를 위한 드라마가 없다'는 안타까움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리메이크한 결정적 이유였다. 1996년 방영 당시에도 안방을 눈물 바다로 만들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회자되는 명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2011년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요즘 드라마 속의 '엄마'가 매우 극단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노 작가의 작품 속에서도 '엄마'라는 존재가 (다른 의미에서) 극단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1, 2부가 방송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역시 슬프고 아팠다. 무뚝뚝한 가장(家長) 정철은 걸핏하면 소리만 질러댔고,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딸 연수는 제 살기에 바빴고, 아들 정수(최민호)는 철없는 삼수생이었다. 동생 근덕(유재명)은 정신을 못 차리고 경마장에 나가 돈을 탕진했다.


인희(원미경)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다. 그뿐인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김영옥)를 집으로 모셔와 간병까지 도맡아야 했다. 간병인이 따로 있다곤 하나 24시간을 케어할 수 없는 노릇이고, 시어머니는 계속해서 인희만 찾아댔다. 그런데도 인희는 밝다. 소녀처럼 해맑다. 가부장제라는 체제 속에서 '엄마'가 살아남는 방법은 그것뿐이었을까. 드라마를 보면서 슬프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부대꼈다. 엄마와 희생을 동의어로 받아들이는 생각이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것일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희가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철은 그제야 아내를 살뜰히 챙기지만, 그의 후회는 너무 뒤늦은 것 아닐까. 아픈 아내의 걸레질이 마뜩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대신 걸레질을 하는 게 아니라, 딸에게 바닥을 닦으라며 고함을 지른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자 손찌검을 하기 급급하다. 슬픔으로 덕지덕지 붙여버리기엔 그 가부장제의 민낯이 서글프다. 정철에게 아내의 죽음은 중년 남성의 무기력함을 되새김질하는 기제로 작용할 뿐이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곧 접하게 될 연수와 정수는 부재를 통해 존재의 그리움을 더욱 강렬히 느낄 테고, 심지어 망나니 근덕조차 정신을 차리게 될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살아서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자신을 삶을 접어두었는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가족에 매어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 희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그건 지나친 강요는 아닐까. 엄마를 한 명의 '여성'으로,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할 수 있는 성숙함은 여전히 요원한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시청률 3.248%(1회), 3.888%(2회)를 기록했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감동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결과다.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었다. 그런데 '진짜 엄마'에 대한 노희경 작가의 설교는 조금 불편하다. 1996년의 엄마가 희생과 인내를 당연하게 생각했을지라도 2017년의 엄마는 좀 달라야 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쌓아올린 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온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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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처음에는 이거 보름 동안 어떻게 하지 그랬는데"

"모든 일이 그런 거 같아. 어찌어찌 하다 보면 끝이 나"


아직도 JTBC <효리네 민박>의 장면들이 눈에 선하다. 이효리와 이상순의 알콩달콩했던 일상뿐 아니라 평온이 깃든 집의 구조라든지 그 공간에서 나눴던 소소한 대화들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히 떠오른다. 괜시리 마음이 짠했던 영업 종료의 순간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손님까지 떠나자 민박집은 마침내 고요해졌다. 정신 없는 시간을 보냈던 이효리 · 이상순 부부에게 휴식이 주어진 것이다. 어쩌면 '이제 끝났다. 일상으로 돌아가자!'며 후련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추측건대, 북적북적하던 공간이 텅 비어 어색하고, 시끌벅적하던 공기가 빠져나가 허전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어느덧 진짜 민박집 회장과 사장이 돼버린 것일까. 사람을 탄 집은 곳곳에 이야기가 남겨져 있었을 테고, 구석구석에 묻어있는 온기가 그리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그렇게 이효리 · 이상순 부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얼굴을 보고 머지않아 다시 돌아올 거라 직감했었다.



드디어 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 지난 8일 JTBC는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가 <효리네 민박> 시즌2를 결정했다"고 전하며, "1월 중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 밝혔다. 최고 시청률 9.995%(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했을 만큼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효리네 민박>이 시즌 2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대중들의 반응은 뜨겁기만 하다. 제작진은 공식 홈페이지에 민박집 예약 신청을 받기 시작했는데, 하루 만에 신청글이 10만 개를 훌쩍 넘었다. 얼마나 많은 관심과 기대가 쏠리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방송의 기본적인 콘셉트는 그대로 유지된다. 소길리에 위치한 이효리의 자택이 다시 민박집으로 변모하고, 예약 신청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행운의 투숙객이 정해질 예정이다. 또, 시즌 1과 동일한 PD와 작가들로 제작진이 꾸려지면서 요란하지 않고 잔잔했던 프로그램의 성격도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계절의 변화일 것이다. 제주도의 봄과 여름을 배경으로 했던 시즌 1과 달리 시즌 2에서는 겨울이 배경이 돼 색다른 제주도의 모습을 담아낼 것이다. 


이효리와 친자매 같은 케미스트리를 보여줬던 직원 아이유의 합류가 불발된 건 아쉽다. tvN <나의 아저씨> 촬영 일정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니 어찌하랴. <효리네 민박> 제작진은 더할나위 없었던 아이유를 대신할 새로운 직원을 구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어쩌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전화위복이 될 여지도 충분하다. 아이유가 이효리와 좋은 장면들을 많이 보여줬던 것처럼, 이번엔 남자 직원을 구해 이상순과의 조합을 이끌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효리네 민박>이 다시 문을 열게 돼서 반갑고 기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우려가 남는다. 바로 사생활 침해 문제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자 이효리(와 이상순)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고,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소길리로 몰려들었다. 방송을 통해 봤던 이효리의 집을 굳이 찾아가서 보겠다고 말이다. 몰상식한 행태들이 이뤄졌다. 대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담장 안을 들여다 보는 건 예사일이었다. 셀카봉을 이용해 담장 안을 찍고, 경보음이 울리게 만들었다.  


이상순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가 이곳에서 방송을 찍기로 결정했고 뒷감당도 우리가 해야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는 바람에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지경"이라는 글을 게시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조금은 잠잠해졌을 관광객의 횡포가 시즌 2가 시작되면 다시 불붙지 않을까. 윤현준 CP는 "이효리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안내소를 설치해 집까지 가려는 관광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다시 돌려보내고 있다. 한 달 정도 시행했는데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생각해 보자. 이효리가 또 다시 자신의 집을 민박집으로 내놓기로 결정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돈 때문은 아닌 게 분명하다. 이효리는 제작비 충당을 위해 제작진이 받아 온 최소한의 PPL(제품 간접 광고)만 수용했을 뿐 사적인 PPL은 사양했고, 방송이 끝난 후 30억 원이 넘는 광고 제안도 모두 거절했다. 상업 광고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소신을 지킨 것이다. 그런 이효리가 고작 돈 때문에 방송을 재개하려는 건 아닐 게다. 잊히기 싫은 마음이 일부 포함됐을 순 있겠지만, 인기 때문인 것 같지도 않다.


아마 시즌 2를 간절히 바라는 시청자들의 끈질긴 요청이 그들의 마음을 바꿔놓았을 것이다. 또, 시즌 1의 마지막에 언뜻 비췄듯, 정이 많은 이효리 · 이상순 부부의 사람을 향한 그리움도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전달받았다면,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동은 삼가도록 하자. 제작진의 대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관광객의 자발적인 협조와 배려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보자. 어떤 이야기들이 <효리네 민박>을 통해 펼쳐지게 될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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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첫 무대였던 운명을 시작으로 사랑, 세대공감을 지나 위로까지, Mnet <더 마스터 - 음악의 공존>은 '음악'이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클래식(임선혜), 국악(장문희), 재즈(윤희정, 김광민), 뮤지컬(최정원, 박은태), 대중가요(최백호, 박정현), 밴드(이승환) 등 여러 장르를 통해서 말이다. <더 마스터>가 구현하고 있는 형형색색의 무대들, 그 이야기의 다채로움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신기원이라 해도 무방하다. 



<더 마스터>는 음악의 다양성에 목말라 있던 시청자들에게 단비와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돌(idol)에 편중된 음악 시장은 점차 그 영역이 협소해졌다. 나아가 존재 의미도 퇴색돼 갔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대두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듀스 101>을 통해 아이돌을 '제작'하는 데 혈안이 됐던 엠넷(Mnet), 음악 시장의 다양성을 해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음악 전문 채널이 대안을 제시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더 마스터>였다. 


대중가요, 밴드 등 대중들에게 익숙했던 장르를 바탕으로 클래식, 국악, 재즈, 뮤지컬 등 생소한 음악들을 대거 포함시켰다. 상당히 파격적인 실험이 아닐 수 없다.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장인들을 모셔서 제대로 된 판을 만들었고, 기꺼이 무대에 오른 마스터들은 자신의 음악 내공을 남김 없이 발산했다. 경연이라는 방식(은 화제성을 감안한 선택이겠지만, 여전히 불필요하게 느껴진다)을 채택했지만, 경쟁의 요소를 최소화하면서 공존을 강조했다. 



"가시나무처럼 뾰족하게 돋아있었던 마음, 그 마음을 어루만져 줬던 건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였습니다. 저에게 위로를 주었던 음악으로 여러분께도 위로를 드리고 싶어요." 


4회의 주제는 바로 위로(慰勞)였다. 연약하고 미성숙한 존재인 우리들은 매순간 삐끗하고, 흔들리고, 무너진다. 그 순간 필요한 게 바로 위로다. 돌이켜 보면, 백 마디의 말보다 한 곡의 음악이 위로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하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어떤 음악이든 상관없다. 신기하게도 음악은 감정에 찰싹 달라붙어 제각각의 방식으로, 제각각의 이야기로 우리를 위무(慰撫)한다. 그 순간의 평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클래식 마스터 임선혜는 워낙 많은 스케줄에 치여 음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남수단으로 도망치듯 떠났다가 그곳에서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며, 'You Raise Me Up'(2005)을 선곡했다. 음악 수업을 들으러 왔던 남수단의 아이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였다. "내가 사랑과 위로를 주러 갔는데, 오히려 제가 더 큰 사랑과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한 임선혜는 위로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친구라는 존재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고 생각해요. 제 곁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어요. 언제나 절 지켜주는 친구였던 거죠."


"오늘도 진심을 다해 모든 것을 다 바쳐 노래하고 싶습니다. 이 무대가 전하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모두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윤희정의 빈자리에 합류한 새로운 재즈 마스터 김광민은 '친구'라는 존재를 통해 위로를 전달했다. 국내 1세대 재즈 피아니스트인 그는 'You've Got a Friend'(1971)를 선곡했고, 가수 성시경을 섭외해 노래에 감미로움을 더했다. 최정원과 배턴 터치한 뮤지컬 마스터 박은태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겟세마네'를 불렀는데, 섬세한 연기력과 강렬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압도했다. 진심을 다해 모든 것을 다 바쳐 노래하는 그의 무대는 보는 이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위로가 됐다. 



"모든 청춘은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살죠. 저 역시 젊은 시절 많은 방황을 했어요. 하지만 해답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힘들고 고단하고 울고 싶어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어둠 끝에는 반드시 빛이 기다리고 있으나 용기를 잃지 말고 꿋꿋하게 이겨 내시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마지막 무대를 가졌던 이승환은 '청춘'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의 선곡은 자신의 노래인 '물어본다'(2004)였다. "요즘 시대 젊은이들이 저희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는 그의 진심이 온전히 전달돼 가슴 뭉클했다. 국악 마스터 장문희는 창무극 <천명>의 한 대목, '백성은 역사의 맥'을 열창했다. 한 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 짜릿했던 그의 무대는 '촛불'로 타올랐던 우리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두 마스터의 무대는 세대와 시대를 향한 위로였다.



"음악이 누군가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전 충분해요. 누구에게나 그리운 사람이 있겠죠. 그들의 마음을 대신해서 전하고 싶어요. 이 노래를 듣는 순간만이라도 그립고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위로받으실 수 있기를"


최백호의 공백은 박정현이 메웠다. 그가 누구인가. 가창력과 기교로 MBC <나는 가수다>를 평정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아닌가. 하지만 <더 마스터>에서 그의 무대는 좀 달랐다. 확 터져버리거나 확 달라지는 경연식 편곡이 아니라 묵직하고 담담한 무대를 꾸미고 싶다던 박정현은 '꿈에'(2002)를 재해석한 무대를 선보였다. 한 유학생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다 꿈에서나마 만날 수 있었던 사연을 듣고 울컥했다던 그의 노래는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더 마스터>가 특별한 이유는 장르의 다양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다양성이라는 측면도 빼놓을 수 없다. 마스터들은 매회마다 주제에 맞는 선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에 담는다.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한 분야의 대가의 자리에 오른 저들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여섯가지의 다양한 위로, 그 깊은 울림이 있었던 무대를 선사했던 <더 마스터>는 정말 귀중한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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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기사 :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어려운 일을 대신 해 주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항암 치료만 12번 했어. 하루하루 죽고 싶었어. 어깨 재활만 3년 했어."라며 절규하는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김제혁(박해수)만큼은 아니지만, KBS <흑기사>의 정해라(신세경)의 인생도 꼬일 대로 꼬였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부모를 여의고 가세(家勢)가 기울면서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가난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살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정해라에게 남은 건 긍정적인 태도, '캔디는 울지 않아'의 정신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상황은 더욱 꼬여가고, 불행은 쏜살같이 다가온다.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정해라는 불륜 여행을 계획한 남성으로부터 문자를 보냈다는 이유(그가 보낸 것이 아님에도)로 다짜고짜 뺨을 맞는 어처구니 없는 폭행을 당해야 했다. 또, 검사인 줄 알았던 남자친구 최지훈(김현준)은 사기꾼이었다. 미련하게 "네가 검사가 아닌 걸 알았지만, 사귈 수 있을 것 같아"라며 매달려 보지만, "돈 없는 애 안 만나"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뿐인가. 해라가 부양하던 이모 이숙희(황정민)는 그의 전 재산을 몽땅 날려 버린다. 


쌓일 만큼 쌓였던 걸까. 해라는 절망하며 울음을 쏟아낸다. 죽겠다며 약을 입에 털어 넣고, 거리를 헤매다가 벤치에서 스르륵 잠이 든다. 죽음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는 순간, 해라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자주색 코트'를 기억해 낸다. 집안이 망하지만 않았다면 당연히 입게 됐을 자주색 코트 말이다. 해라는 그 옷을 입었다면 자신의 삶이 새로워졌을 거라 생각한다. 여전히 죽음인지 꿈인지 구분되지 않는 시간, 해라는 기억을 더듬으며 '샤론양장점'으로 향한다. 



그리고 미스터리한 인물 샤론(서지혜)을 만나 당시에 찾지 못했던 자주색 코트를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인생을 바꾸자는 은밀한 거래를 받아들이게 된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해라는 자신의 집에 자주색 코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꿈이 아니었단 말인가. 절망 속에서도 일상은 계속되기 마련이고, 해라는 어젯밤의 일을 그대로 남겨둔 채 코트를 입고 출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코트 덕분일까. 헤라에게 갑작스럽게 행운들이 찾아온다. 


자신의 뺨을 때렸던 진상 고객은 음주운전을 하다 가로수를 들이받아 입원을 했고, 식중독에 걸린 직원 대신 해외 출장을 가게 됐다. 슬로베니아로 떠나게 된 해라는 어린 시절 헤어졌던 문수호(김래원)를 만나게 된다. 업무를 위해 만나야 하는 포토그래퍼로 착각한 것이다. 한편, 화재 사고로 부친을 잃은 뒤 해라의 집에 얹혀 살았던 문수호는 사업가로 성공한 뒤 정해라를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 "우리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 여기서 만나자"던 어릴 적 두 사람의 약속이 이뤄진 것이다. 



<흑기사>는 정해라의 절망과 불행을 출발점을 삼고,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 중심에 '흑기사'를 자처하는 문수호(김래원)가 있음은 당연하다. 전생과 현실 · 과거와 현재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불사의 존재 샤론과 정체불명의 장백희(장미희)가 설켜 있지만, 드라마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줄기는 '흑기사'일 뿐이다.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련한 운명의 여자 주인공과 모든 걸 다 가진 남자 주인공의 명백한 대비를 강조한다. 결국 '백마 탄 왕자님'이라는 진부한 이야기의 반복일 뿐이다.


과연 이 비현실적인 판타지가 절망에 빠진 우리들에게 한줄기 위로가 될까. 물론 사람들은 판타지를 보며 일종의 위안을 삼는다. 바뀌지 않는 현실을 한탄하면서 가상의 이야기를 희구(希求)하기도 하지만, 모든 판타지에 넋놓고 대리만족을 느끼진 않는다. 더구나 철 지난 '구원자 놀이'에 반응할 만큼 시청자들의 수준이 낮지 않다. 가뜩이나 tvN <미스터 션샤인>, <나의 아저씨> 등이 캐스팅 논란에 휘말리며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김래원과 신세경의 나이 차(9살)도 몰입에 방해 요소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흑기사>에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그건 김래원이라는 연기자의 '힘'일 것이다. 눈빛, 목소리 톤, 감정 등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그의 연기는 확실히 드라마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언뜻 보기에 tvN <도깨비>와 SBS <푸른바다의 전설>을 섞어 놓은 듯한 <흑기사>가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다소 정신 없었던 1회와 달리 정돈된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투적인 설정과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뻔한 주제는 식상하기만 하다. 언제까지 흑기사를 기다리며 사는 여성을 그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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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外傳) : 만화나 소설, 게임 등의 작품에서 본편 외의 스토리를 다루는 작품


"나는 <강식당>을 한다는 걸 텔레비전을 보고 알았어. 아니, 나하고 상의를.. 얘기를 한 적 있니?" 강호동은 손사래를 쳤다. 주방에는 들어가 본 적도 없고, 달걀 프라이도 못 만든다고 엄살을 부렸다. tvN <신서유기>에서 멤버들과 농담처럼 '강식당을 차려보자'고 웃고 떠들었지만, 막상 메인 셰프가 돼 식당을 운영한다니 기겁할 만도 했다. 눈앞이 캄캄해진 강호동은 "지금이라도 돌이킬 수 있으면 빨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라며 막중한 부담감을 제작진에게 토로했다. 



하지만 천하의 나영석 PD에게 그런 죽는 소리가 통할 리가 없었다. 나 PD는 "형, 돌이키기에는 우리가 준비를 너무 많이 했어."라며 쐐기를 박았는데, 이미 가게 오픈을 위한 리모델링 작업과 사업자 등록까지 마친 뒤라고 설명했다. 메인 셰프인 강호동(과 멤버들)만 몰래 만반의 준비가 이미 갖춰진 뒤였다. <신서유기 4>에서 농담처럼 시작된 '손님보다 사장이 더 많이 먹는 식당'이 현실이 돼 돌아왔다. 그렇게 <신서유기 외전-강식당>의 파란만장한 운명이 시작됐다.


<강식당>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윤식당>을 모티브로 한 패러디 프로그램이다. 사장인 윤여정을 필두로 신구, 이서진, 정유미가 타국(첫번째 시즌에선 발리의 작은 섬을 찾았었다)에서 조촐한 한식당을 연다는 콘셉트의 <윤식당>은 2017년 상반기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시청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예능적 재미가 특출났던 건 아니지만, 지옥 같은 일터의 고됨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대리만족시켜 줬다. 또, '은퇴 후 자영업'이라는 판타지를 자극하며 '힐링'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성공했던 포맷을 취하고, 강호동의 이름을 내걸었다. <신서유기>의 멤버들(이수근, 은지원, 안재현, 송민호)들이 주방보조에서부터 주문, 서빙 등 가게 운영의 전반적인 업무에 투입됐다. 성공하지 않을 수 없는 조합처럼 보였다. 그러나 늘 그렇듯 성공은 당연하지 않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부터 제주도(또, 제주도야?)에 식당을 열었다는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고, 인근에 위치한 동명(同名)인 상호의 식당 운영자는 항의성 글을 띄우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호의 대신 다소 냉담한 태도로 <강식당>을 맞이할 채비를 했다.


그런 분위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작진으로서도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강식당>이 쟁취한 성공은 더욱 값져 보인다. <신서유기>의 '외전'으로 이름 붙여진 <강식당>은 첫 방송에서 5.448%(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화끈한 출발을 했다. <신서유기>의 최고 시청률 5.119%(시즌4의 10회)를 경신하며 본편의 인기도 넘어섰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교 대상일 수밖에 없는 <윤식당>과의 차별성도 뚜렷했다.



나영석 PD의 다른 작품들이 힐링을 전면에 내세우는 다큐 형식의 예능이라면, <신서유기>는 상당히 독특한 포지션에 위치해 있다. 오로지 '웃음'만을 향해 달려가는 기관차와 같다고 할까. 애초에 예능이 갖고 있(고 기대되)는 본질에 충실하다. <강식당>은 <신서유기>의 외전인 만큼 <신서유기>가 달리는 노선을 따른다. 또, <윤식당>이 판타지가 덧입혀진 가상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면, <강식당>은 철저히 리얼리티를 강조한다. 예능의 세계에서 (제작진과 출연자와의) 돈독한 팀워크는 곧 얄짤없다는 말과 동의어 아니겠는가.


오픈 준비를 하면서 멤버들은 멘붕에 빠졌고, 그러다가 진짜 싸우기까지 했다. 그 현실적인 모습이 웃음을 유발했다. 제작진은 그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자막을 넣어가며 친절히 설명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메뉴를 정하느라 3시간 동안 옥신각신하는 장면이라든지, 일반 돈까스보다 3배나 큰 초대형 돈까스 '강호동까스'의 고기를 망치로 펴느라 새벽까지 고생하는 모습도 웃음 포인트였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몰려온 손님들의 주문을 깜빡 잊기도 했고, 손발이 맞지 않아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한편, 시청자들은 <강식당>을 통해 <신서유기>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던 멤버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의견 충돌로 다투고, 처음 경험하는 식당 일에 갈팡질팡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우리가 행복하자고 하는 거니까 너무 화를 내지 마", "자, 싸우지 말고 우왕좌왕하지 말고 괜찮아. 우리 잘하고 있는 거야."라며 중심을 잡아주는 강호동의 리더십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또,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등 진지한 모습을 보여줘 몰입감을 높였다. 그러면서도 오랜 기간 쌓아온 호흡으로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강식당>은 <윤식당>을 패러디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신제품'이니 '복제품'이니 하는 논란은 불필요해 보인다. 애초부터 '외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탄생한 이벤트에 불과하니 말이다. 오히려 '콜라보(혹은 퓨전)'의 가능성을 확장시킨 흥미로운 실험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우선, <윤식당>과는 전혀 다른 색깔을 지닌 <강식당>만의 웃음기 가득한 매력을 즐기기로 하자. 그러다 보면 곧 느림의 미학과 아름다운 풍경의 힐링이 가득한 <윤식당> 시즌2(2018년 1월 방송 예정)가 찾아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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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예능에서 워낙 많이 '소비'됐던 공간이다. JTBC <효리네 민박>은 제주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효리의 집을 민박으로 활용하며, 제주도를 제법 깐깐하게 훑었다. 제주도와 그곳에서의 삶을 매우 이상적으로 그려낸 프로그램이었다. 그뿐인가. tvN <신혼일기2>, JTBC <밤도깨비>, 채널A <도시어부> 등 제주도의 일부분을 잠깐씩 담아간 프로그램은 부지기수다. 곧 tvN <강식당>까지 제주도에 터를 잡고 가게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하니, 제주도는 일년 내내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와 제주도민)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노출 빈도가 높아지는 만큼 식상함도 커졌던 게 사실이다. 제작진은 어김없이 카메라 속에 제주도의 유려한 경관을 담고서 만족스러워 했고, 출연자들은 다양하고 맛깔스러운 특산물을 맛보며 기계적인 감탄사를 연발했다. 프로그램의 제목만 바뀔 뿐 1차원적인 (제주도) 소비 패턴은 반복됐다. 고민 부족이었다. 당연히 지루했다. 좋은 것도 하루이틀 아닌가. TV에서 제주도를 배경으로 낄낄대는 웃음소리를 들을 때면 ‘또, 제주도야?’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너무 많이 보여져서 더 이상 매력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제주도였지만, 그 공간도 tvN <알쓸신잡 2>의 잡학박사들이 훑으니 완전히 달라 보였다. 제주도가 새롭고, 또 특별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그 이유는 제주도를 대하는 잡학박사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제주도를 소비하기에 앞서 먼저 ‘이해’하고자 했다. 제주도가 언제부터 관광지로 유명해지게 됐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으로 여행의 포문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조명했다. 


황교익 : 아주 예전에 제주도는 유배지였고 전쟁때는 피난지였다. 이후 80년대 와서야 신혼여행지의 메카로 떠올랐다.


유시민 : 원래는 탐라국이라고 해서 독립한 문명이었다. 통일신라 때부터 문화적 교섭이 시작됐고, 고려 때 행정체계에 편입됐다. 하지만 차별을 심하게 받았던 지역이라 사람들이 육지로 이주를 시작했다. 출륙 금지령이 내려져 국가의 허락 없이는 제주도를 나가지 못했다. 조선 시대 내내 차별과 배제의 땅이었다. 대륙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을 제주도는 유배, 소외, 차단, 억압, 고립의 지역이었다.


황교익 : 일제강점기에 제주 사람들이 일본으로 1/5이 이주해버렸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제주는 더 살기 어려워졌다. 


유시민 : 해양세력이 세계를 제패하는 시대가 되면서 제주도는 지금 열린 시기가 됐다. 1964년 통금이 통째로 먼저 풀렸고, 1970년대부터 일본 관광객이 들어오면서 국내 관광 소득이 높아지면서 살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잡학박사들은 제주도민들의 가장 아픈 상처인 '제주 4 · 3 사건(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까지 다뤘다. 제주도에 정착해 귤 농사를 짓고 있는 루시드폴이 등장하자, 안테나의 수장인 유희열은 자사의 소속가수를 소개하면서 그가 4 · 3 사건을 다룬 곡('4월의 춤')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본격적으로 4 · 3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고, 황교익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유시민은 "5·10 남한 단독 선거가 예고됐고, 제주도 안에 남로당 조직이 있었으며 거기에서 시작됐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남로당 350여 명이 제주 경찰서 지서들을 공격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학살과 탄압이 퍼져나가게 됐고, 육지에서 들어온 병력에 의한 살육과 그 반대편에서도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제주도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 골자였다. 4. 3 사건에 대한 그의 배경 설명이 다소 미흡했을지라도 방송에서, 그것도 예능에서 4. 3사건을 정면으로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유시민 : 조금 의심이 되면 마구잡이로 죽였다. 제주 인구가 30만이 안 됐는데 사망자만 3만여 명이다. 


황교익 : 4.3 사건의 대표적 피해마을인 북촌리 너븐숭이 4 · 3 위령 성지를 다녀왔다. 하루만에 350여 명이 죽었는데, 명단이 쭉 이렇게 있더라고요. 그 옆에 나이가 이렇게 쓰여 있는데, 두 살, 세 살, 네 살.. 



역사를 다루자 제주도가 달리 보였다. 아니, 이제야 제주도를 제대로 만난 것 같았다. 지금까지 우리의 제주도 탐방은 수박 겉핥기에 그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알쓸신잡 2>가 무거운 이야기만 전했던 건 아니었다. 우선, 유시민은 직접 장을 봐서 참돔 회를 시작으로 돔베고기 요리, 돌돔구이, 방어 맑은탕까지 코스요리를 준비해 수다를 위한 먹거리 세팅을 마쳤다. 유현준 교수는 돌하르방과 모아이 석상의 공통점을 이야기했고, 그밖에도 제주도 흑돼지의 기원, 거상 김만덕이 신여성의 표본인 이유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여행 첫째 날의 배경이 북제주였다면, 둘째 날은 서귀포로 대표되는 남제주 지역이었다. 잡학박사들은 이중섭 거리, 추사관, 해녀 박물관, 다빈치 박물관, 정방폭포 등 제주도의 특색있는 명소들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했다. 제주도에 그런 장소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관광의 우선순위에 밀려 쉽사리 찾기 어려웠던 곳들이었다. 하지만 잡학박사들의 자세한 소개와 더불어 재미있는 수다가 어우러지면서 그 장소들은 제주도를 방문하면 꼭 들리고 싶은 워너비 장소로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서귀포로 피난살이 왔던 이중섭의 고달팠던 삶이 묻어 있고, 일본 국적의 아내와 알콩달콩 나눴던 편지가 보관돼 있는 이중섭 미술관은 각별하게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유시민이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을 만큼 매력적인 공간이었던 추사관은 또 어떠한가. 추사 김정희를 이해하기 쉽게 동선이 짜여 있는 건축의 미학은 놀라웠다. 또, 추사관의 외관은 세한도를 똑같이 구현해 눈길을 끌었다.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할 만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감탄과 질투, 정방폭포에서 비롯된 노화와 영생에 관한 인문학적 또는 과학적 접근도 흥미로웠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제주도를 여행하고,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숱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봐왔다. 그래서 제주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만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쓸신잡 2> 제주편을 보고나서 제주도가 이처럼 다채로운 공간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또, 제주도가 안고 있는 아픔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도 알게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만큼 잡학박사들의 다양하고 수준있는 관점들이 제주도라는 공간을 제대로 바라봤던 것이리라. 이처럼 <알쓸신잡>의 잡학박사들은 여행에 대한 새로운 관점, 방식,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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