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5.4 규모의 지진은 지난해 9월 12일 발생했던 5.8 규모의 경주 지진보다 규모는 0.4 작았지만 피해는 훨씬 컸다. 인구 밀집 지역 · 역단층 · 얕은 곳에서 발생했다는 점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포항 지역에는 재산 피해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가 잇따랐고, 심지어 수능 시험이 일주일 연기되기까지 했다. 다수의 원자력 발전소가 인접한 지역에 1년 사이 두 번의 강진이 발생하자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과 우울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문재인 정부의 대처가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물론 100%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지난 정부들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안정됐다고 할 수 있으리라. 또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지진 피해를 입은 포항 지역의 주민들을 돕기 위해 연예계 · 스포츠계 스타들도 발벗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 명단에 이영애, 동방신기, 이동국 등의 이름과 함께 어김없이 유재석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역시 유느님!'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관계자는 "유재석 씨가 포항 지진 이재민을 위해 5,000만 원을 기부했다."고 밝혔고, FNC 엔터테인먼트 측은 "회사도 몰랐던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십수년 째 반복되는 패턴이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유반장'이랄까. 유재석은 재해가 발생해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어떻게든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해 왔다.



스타들의 기부나 선행이 의의가 있는 까닭은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앞장 서서 분위기를 만들면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은 움직이기 수월해진다. 또, 잊고 있거나 잘 몰랐던 일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전쟁으로 치자면 스타들은 '선봉장'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선순환 구조'는 우리 사회에 온기를 불어 넣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유재석은 우리 시대 그 누구보다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는 스타다. 


유재석의 기부 또는 선행, 미담 사례는 나열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 그 중에서 세간에 '알려져 있는' 몇 가지 사례만 간단히 언급해보도록 하자. 유재석은 아름다운재단이 설립(2000)된 이래 꾸준히 기부를 해오고 있는데, 이 같은 사실이 처음 알려진 건 2008년 그가 아름다운재단 공익 캠페인 포스터에 모델로 등장하면서였다. 또, 2012년부터 밥상공동체복지재단 연탄은행에 지속적으로 기부 활동을 이어왔는데, 그 금액이 총 1억 8,0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최근의 사례들을 살펴보자. 2016년 10월 태풍 '차바'로 인해 피해를 당한 울산 및 부산의 주민들을 위해 5,000만 원의 성금을 냈고, 그해 12월에는 화재가 휩쓸고 간 대구 서문시장의 상인들을 돕기 위해 5,000만 원을 기부했다. 2017년 1월에는 화재 피해를 입은 여수 수산시장 상인들을 돕기 위해 5,000만 원을 쾌척했다. 그런가하면 7월에는 중부 지방의 수재민을 위해 5,000만 원을 보탰다. 이쯤되면 '유반장'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게 실감되지 않는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MBC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기부금을 전달했고, 방송에 추모의 뜻을 담은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오기도 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센터 건립을 위해 2014년부터 기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나눔의 집에 2억 10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한다. 이처럼 유재석은 힘든 상황을 맞이한 이웃을 돕는 일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도 소신있는 행보를 이어 왔다. 


솔직히 유재석이 의심(?)스러웠던 적도 있었고, 염려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바른 이미지'가 과도하게 포장된 결과물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했고,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그 이미지가 유재석이라는 인간을 너무 옥죄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부담감을 어찌 가늠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유재석은 십수 년째 최고의 MC로서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시청자들의 굳건한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위업이다. 



도대체 유재석을 '유느님'으로 만든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진심'일 것이다. 유재석은 입버릇처럼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는데, 그것이야말로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서 유재석이 갖고 있는 일념이리라. 실제로 그는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자신의 삶의 궤도를 방송에 최적화시켜 살아가고 있다. 더 건강히, 더 오래 시청자들을 만나기 위해 운동을 하며 몸관리를 하는 이가 유재석이 아니던가. 뿐만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철저한 자기 관리는 동료에게뿐만 아니라 만인의 귀감이다.


또, 그의 기부 행보에도 '진심'이 느껴진다. 유재석은 단발적인 기부가 아니라 꾸준한 기부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또,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소속사가 모르는 일인 것처럼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한 기부도 아니다. '진심'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무명이었던 시절이 길었던 만큼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후배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동료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그들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결국 '진심'의 힘 때문이리라.



"<무한도전>을 통해 많은 걸 느끼고 배웁니다. 요즘 특히 역사를 통해서 나라가 힘들 때,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구하는 것은 국민이고,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요즘 꽃길 걷는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소수의 몇몇 사람이 꽃길을 걷는 게 아니고, 내년에는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껴서 모든 국민 여러분들이 꽃길을 걷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2016년 MBC 연예대상 수상소감)


드디어 <무한도전>의 유재석이 돌아온다. 9월 4일부터 시작된 MBC노조의 총파업이 지난 15일 잠정 중단됐다. 13일 방문진이 김장겸 사장 해임 결의안을 가결했기 때문이다. 김태호 PD는 "그동안 기다려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죄송하고 감사하다. 조속히 녹화 및 방송을 재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밝혔고, 지난 20일 <무한도전>은 '국민의원' 특집 관련 촬영을 위해 국회의원 회관을 찾았다. 드디어 <무한도전>이 재개되고, '진심'을 다해 웃음을 전달하려 노력하는 유재석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재석이 대단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래서 그를 칭찬한다는 건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다. 가급적 쓰지 않으려 했고, 최대한 뒤로 미루고자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더 이상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건 오히려 바보스러운 짓이라고 판단됐다. 칭찬할 일은 칭찬해야 마땅하고, 고마워해야 할 사람에겐 그 감사한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 국민MC 유재석이 더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주길 바라면서, '유느님'에게 뒤늦은 칭찬을 보낸다. '꽃길'을 걷길 바란다는 그의 '진심'이 2017년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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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무브먼트


"특별한 일을 한다기보다 제가 할 수 있을 때 시작한 기부와 봉사활동에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사실 좀 쑥스럽다. 앞으로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활동을 하도록 노력하겠다. 여러분들도 관심을 보여주시면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서로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려 17억 원. 지난 2011년부터 배우 박해진이 사회의 이곳저곳에 기부한 총 금액이다. 물론 기부를 이야기할 때 '금액'을 강조하는 건 바람직한 접근은 아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기부라는 행위 그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고, 따라서 우리는 그 행위를 있게 한 마음가짐 혹은 동기 같은 것들에 집중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금액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그 또한 바람직한 접근은 아니다. 일회적인 것이 아닌 이상 금액은 행위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그 지속성은 달리 말하면 진정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2011년부터 약 6~7년동안 17억 원을 기부를 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의 꾸준함을 인정해야 한다. 분명 대단하고 감탄스러운 일이다. 물론 박해진이라는 이름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기부'라는 긍정적인 카테고리 외에 '고영태'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 연상된다는 것이다. 고영태가 누구인가.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과 관련된 인물이 아닌가. 나중에야 사이가 틀어지며 중요한 폭로를 하기도 했지만, 어찌됐든 썩 반가운 이름은 아니다.


박해진에게 고영태 씨와 함께 찍었던 사진은 아킬레스건과 다름 없었다. 그 사진이 유포되면서 악성 루머(박해진은 소속사를 통해 고영태 씨와의 관계에 대해 전적으로 부인했다)가 나돌기도 했고, 그의 과거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이 글에서 그런 의혹들을 캐낼 생각은 없다. 설령, 그가 예전에 어떤 삶을 살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니겠는가. 과거와 현재가 명확히 구분되고, 그 절단면이 깨끗하다면 우리는 그 변화를 긍정해야 하는 동시에 응원해야 한다.



그래서 '2011년부터 17억 원을 기부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의 꾸준함과 지속성은 진정성을 담보한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박해진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3년 동안 세월호 팔찌를 착용했다. 그의 팔목에는 말 그대로 항상 노란색 팔찌가 빛나고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마음 속에서 3년 상을 치르자는 생각이 들었"(<뉴스1>, 3년 동안 '세월호 팔찌' 빼지 않은 이유)다고 밝혔듯 박해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3주기엔 직접 팽목항을 찾았고, 추모를 한 후 3년 상을 끝냈다. 팔찌는 뺐지만 여전히 그는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할 때마다 노란 리본을 달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블랙리스트'가 쓰여져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연예인들에 대해 경제적 탄압을 가하던 예민한 시기(가 불과 몇 년 전이다.)가 아니었던가. 박해진은 그 엄혹했던 시기에 자신의 소신을 강단있게 드러냈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이쯤되면 박해진의 '현재'와 '변화'에 대해 신뢰해도 되지 않을까.


ⓒ유튜브 채널 'Vstar'


지난 9월 5일, 박해진은 서울특별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7 서울 사회복지대회'에 참석해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상했다. 그동안의 다양한 기부 활동과 각종 봉사 활동을 통해 사회복지 분야에 공헌한 부분을 높이 평가받은 것이다. 실제로 박해진이 보여준 선한 영향력의 구체적 사례를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2011년 일본 디너쇼 수익금을 일본 지진 피해 돕기 성금으로 기부했고, 국내의 한 아동복지시설을 방문해 물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개포동 구룡마을을 찾아 2,500여장의 연탄을 비롯해 1억 원 상당의 생필품을 지원했는데, 더욱 의미가 깊었던 건 자신에게 악성 댓글을 달았던 악플러 가운데 반성문을 쓰고 선처를 호소했던 일부와 함께 봉사 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2014년에는 구룡마을의 독거노인을 위해 1억 원을 쾌척했고,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해 장례비와 생활비를 지원했다. 또, 장애인 축구 국가대표인 노영석 선수를 후원하고, 수해를 입은 부산의 시민들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했다.


푸르메 어린이 재활 병원 건립기금 마련에 힘을 보태기도 했고, 2016년에는 경주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5,000만 원을 기부했다. 이러한 박해진의 따뜻함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2011년부터 상해 아동복지센터를 통해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을 후원했고, 우물 파기 봉사활동이라든지 아이들의 학용품과 각종 생필물을 지원하는 데도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 그뿐인가. 틈날 때마다 재능 기부를 통해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사회를 위해 사용하고자 노력했다.


ⓒ마운틴 무브먼트


'서로 돕고 나누고 살아야 더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박해진의 신념은 팬들에게 전염돼 이젠 그의 팬들이 더 열심히 사회 봉사에 나설 정도다. 지난해 말, 공식 팬클럽인 클럽진스(CLUB Jin's)와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의 팬카페 '박애인', 디시인사이드의 박해진 갤러리 등은 성금 530만 원과 연탄 7,940장, 쌀 1톤을 기부했다. 참으로 훈훈하고 아름다운 전염이 아닌가. 다가오는 14일에는 클럽진스의 2기 창단식이 열릴 예정인데, 26개국에서 1,400명의 팬들이 모인다고 한다. 박해진이라는 스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박해진은 내년 상반기 영화 <치즈인더트랩>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에선 드라마로 먼저 제작됐던 tvN <치즈인더트랩>에서 비중 논란의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올해 11월에는 드라마 <사자> 촬영에 돌입한다고 한다. 시기적인 문제로 SBS 편성이 불발됐는데, 편성 문제가 하루빨리 마무리 돼 가뿐한 마음으로 촬영에 임할 수 있길 바란다. 지난 6월 종영했던 JTBC <맨투맨>에서 확인됐던 것처럼 배우 박해진의 가치는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앞날을 개척해 온 박해진이 앞으로 꽃길만을 걷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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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 앞에는 '산소 같은 여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퀴즈로 내더라도 100%의 정답률을 기록할 것 같다. 바로 이영애다. 1991년 태평양의 화장품 브랜드 '마몽드' CF에 출연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으니 어언 27년이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산소 같다'는 말은 '맑고 투명한 피부'를 강조한 표현일 텐데, 이영애의 깨끗한 이미지와 완벽히 부합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 버렸다. 마몽드도 대박을 쳤고, 이영애 역시 최고의 CF 스타로 등극하며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산소 같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극상의 찬사일 수 있겠으나, 당사자에겐 족쇄와도 같은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어떤 행동으로 그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부담감, 자신의 어떤 변화가 그 이미지를 '오염'시킬지 모른다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을테니 말이다. 물론 그로 인해 이영애가 얻은 이익, 가령 명예나 경제적 이득도 엄청나지만, 한 평생을 시달려야 했을 그의 삶의 무게를 누가 책정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산소 같은' 이라는 수식어와 '여자'가 결합됐을 때 발생하는 '대상화'도 그가 감당해야 할 무게였을 텐데 말이다.


이영애는 자신에게 주어진 왕관의 무게를 견뎌냈다. MBC <대장금>(2003)으로 최고 시청률 57.8%(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고, 아시아 전역에 인기리에 방영되며 한류 스타로 거듭났다. 영화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연기 변신에 시도하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물론 아쉬움이 왜 없겠는가. 최근에는 SBS <사임당, 빛의 일기>로 13년 만에 안방 극장에 복귀했지만, 오랜만의 복귀 때문인지 연기력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영애의 존재감은 배우 이외의 모습을 통해서도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다. 지난 8월 18일, 강원도 철원의 육군부대 사격장에서 K-9 자주포 사격 훈련 도중 폭발 사고로 인해 2명의 사망자와 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기꺼이 내어준 저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또, 그 가족의 슬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이 소식을 알게 된 이영애는 21일 육군부사관학교 발전기금에 "이번 사고로 순직하거나 부상당한 장병들과 그 가족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해달라"며 위로금 5천 만 원을 기탁했다. 


생후 18개월 된 아이를 두고 순직한 이태균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쌍둥이 남매의 엄마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아이들이 더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나라,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군이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육군부사관학교 발전기금 측에 따르면, 이영애는 위로금뿐만 아니라 이태균 상사 아들의 대학 졸업까지 학비를 전액 지원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물론 순직한 장병들에 대한 예우는 국가의 책무이겠으나, 이영애의 마음이 따뜻한 온기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이영애는 이와 같은 기부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 그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5년 8월에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 지뢰 도발로 2명의 부상자(김정원 · 하재헌 하사)가 발생하자 지체없이 5천 만 원의 위로금을 보냈고, 2016년 9월에도 6·25 참전용사의 자녀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성금 1억 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영애의 국군장병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은 그의 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였던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장애인재단

 

 


한편, 이영애의 나눔 실천은 장르와 분야, 국가를 가리지 않았다. 2015년 뇌종양을 치료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5살의 베트남 소년을 위해 치료비 전액을 지원했고, 4월에는 에콰도르 지진 구호 기금으로 5만 달러를 쾌척했다. 올해 3월에는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가족, 다문화 가정을 위해 강릉 아산병원에 1억 원을 전달했고, 강원도의 소외된 이웃을 위해 1억 5천 만 원을 기부했다. <사임당, 빛의 일기>를 촬영하면서 강원도 강릉과 맺은 인연의 연장선이었다. 


또, 4월에는 저소득층 산모를 위해 서울 제일병원에 5천 만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또, 6월에는 스리랑카에서 홍수가 발생하자 5천 만 원을 보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처럼 이영애의 기부 활동은 단순히 나열만 하기에도 숨이 찰 정도다. 알려진 기부 액수만 따져도 올해 기준으로 5억 원이 훌쩍 넘고, 총액은 14억 원 이상라고 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기부' 등 타인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주는 행동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사회와 그 구성원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나눔을 실천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박수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이영애는 자신의 기부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도와준 나라가 많다. 우리가 도와주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서 "미얀마, 베트남, 대만 등 모두 한류를 사랑하는 나라이고, 이것도 하나의 외교"라고 강조한다.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의 사랑을 받아왔던 만큼 그의 사랑이 세계 각지로 향하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산소 같은 여자'라는 수식어로 대중들로부터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영애는 자신의 머리에 놓인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 그리고 그는 '산소 같은 사람' 되어 대중들 앞에 섰다. 맑고 투명한 그의 선한 영향력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전해져 세상을 밝게 빛나고 있다. 차기작은 아직 좀더 고민해보겠다는 그가 어서 '배우'로서도 자신의 진가를 다시 펼치길 기대한다. 그때는 그를 '산소 같은 배우'라고 부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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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 이것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여. 바람을 가르는 소리여. 칙칙"


흔히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에게 '천의 얼굴을 가진'이라는 (진부한) 수식어를 사용하곤 하는데, 그 상투적인 표현을 꺼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배우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박철민'처럼 말이다. 그의 얼굴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고, 그의 연기에는 그 4가지 감정들이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된다. 그 정도로 박철민을 '천의 얼굴'이라 부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순히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을 드러내는 수준을 넘어서 그 감정들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사칙 연산을 무한대로 해낸다. 그래서 박철민의 연기는 '깊다'. 


놀랍게도 그는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 그는 '연기'가 너무도 하고 싶어서 극단을 찾았고, 그 세계를 전전했다. 영화 <목포는 항구다>(2004)에서 가오리 역으로 출연했던 박철민은 권투 동작과 함께 내뱉는 익살스러운 대사를 단박에 유행어로 만들며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맡으며 '명품 조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여직원과 그 아버지의 고독한 싸움을 그린 <또 하나의 약속>(2013)에서는 주연을 맡기도 했다. 


배유람의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gaeddac)


최근에는 MBC <군주>에 출연 중인데, 세자 이선(유승호)의 스승인 우보 역을 맡아 특유의 애드리브를 발휘하며 촬영장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8년 동안 여섯 작품(영화 <4교시 추리영역>(2009),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2011), SBS <무사 백동수>(2011), MBC EVERY1 <상상고양이>(2015), 영화 <조선마술사>(2015))을 함께 했던 인연은 곧 찰떡 궁합으로 이어져 수목 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군주>에서의 모습은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보여줬던 악역(이조판서 김의교)의 그것과는 180도 달라 눈길을 끈다.


이처럼 박철민의 연기는 다채롭다. 한때 '코믹 연기'로 규정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는 연극 무대에서 다져온 연기력으로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과감히 돌파해냈다. "어쨌든 행복을 느끼는 일을 이 나이에도 하고 있고, 나의 장단점을 볼 줄 아니까 참 다행이지 않나?" (<오마이뉴스>, 'B급 배우' 자처하는 박철민, "난 잡놈 중 잡놈")고 말하는 박철민은 상업 영화, 독립 영화, TV 드라마와 예능(SBS <정글의 법칙 와일드 뉴질랜드>), 연극 무대까지 그야말로 종횡무진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 이정민


"나는 까부는 게 좋다. 익살부리고 오버하기도 하고 그러면 더 신난다. 그러다 최고의 지점에서 행복하게 끝난다. 슬픈 장면도 마찬가지더라. 하면 할수록 더 슬퍼진다. 아파지고 더 먹먹해지고. 이런 감정들이 아주 훌륭한 경험이지만, 자주하지 말자는 생각도 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박철민의 연기, 그 본질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은 어떨까. 대중들은 왜 박철민이라는 배우, 혹은 박철민이라는 인간에 매력을 느끼는가. 감히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자면, 그건 아마도, 그가 (남들은 쉽사리 외면하고 마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진솔한 사람이며, 그것을 대중들과 교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솔직함'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그러한 '능력'은 대중들과 부대끼고 호흡해야 할 배우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일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가족> 출연은 박철민에게 큰 도전이었다. 단순히 '삼성과의 싸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이 '실화'였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이전까지 주로 '밝은' 연기를 해왔던 그가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전했고, 결국 감동적인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투자를 받기 어려웠던 저예산 영화의 주연 배우, 그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자신이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였다면 흥행에 더욱 도움이 됐을 거라며 자책했다.


ⓒ 이선옥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자격이 있는지 걱정이 되긴 합니다. 막 살고, 딴따라로 사는 사람인데…. 저보다 더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들이 이 사업을 함께 하면, 더 많이 널리 알릴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저라도 할 수 있다면 하겠습니다. 인기 없는 대신 발품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전태일다리 이름짓기 범국민캠페인 < 808행동 > 선포식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영화에 출연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던 박철민. 그는 지난 2010년에는 전태일 40주기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다. 당시 "내가 어릴 때부터 영향을 받았던 인물, 정서적인 아름다움을 가졌던 인물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이유를 밝히면서 최선을 다해 전태일의 '정서적인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2010년'이 정치적으로 어떤 시기였는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그 '암흑기'를 떠올리는 데 무리가 없으리라. 


한편, 박철민은 2017년 6월 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무대에 올랐다. 6 · 10 민주항쟁 30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한열 열사의 추모 문화제가 열리고 있었고, 박철민은 사회를 맡았다. 그는 이한열과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이 열사는 중2 때 같은 반 친구였다. 그는 2분단장, 나는 3분단장이었다. 6월이 되면 부끄럽게 사는 제 인생을 반성하면서 이 열사를 한없이 그리워한다." 이한열과 중학교 동창이었다는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또 한번 부끄러워했다. 



"저는 이번 선거 때 대통령님 못 찍었습니다. 아내하고 늘 싸웠는데요. 끝나고 나서 한 2주일 만에 제가 술 한 잔 먹고 "여보, 당신의 선택이 멋졌어. 훌륭했어"라고 말하고 사과했어요."


지난 6월 2일 박철민은 서울 강남구 구립서울요양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치매국가책임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 대통령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코미디언 김미화와 함께 사회를 맡았던 그는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찍지 못했지만, 2주일 만에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했던) 아내에게 사과를 했다며 고백(?)하며 문 대통령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솔직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요양원에 갔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까닭은 박철민의 개인사와 연결돼 있다. 그의 어머니는 지난 10여년 동안 치매를 앓고 있었고, 이 때문에 자연스레 치매라는 병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치매 홍보대사를 맡으며 '치매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치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또, 일상 속의 직접적인 경험과 치매 환자가 65만 명(2015년 기준)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 등은 그에게 치매라는 병이 개인의 헌신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병이라는 깨달음을 줬을 것이다. 


ⓒ 쿠키뉴스 스토리펀딩 치매편


"노래 부르기 좋아하시고, 그림 잘 그리시고. 그래서 더 애틋합니다.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너무나 사랑스럽고 선한 모습을 살아가고 계시죠. 그렇지만 예전에 가족과 함께했던 기억들, 추억들을 간직하시지 못하고 계셔서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하십니다."


지난 26일, 박철민은 저소득 치매 노인들의 지원을 위해 4천 만 원을 기부했다. 치매학회 홍보대사로 선정돼 받은 활동비를 전액 기부한 것이다. "어머니 덕분에 받은 돈인데 당연하다"던 그는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역할을 재차 강조했다. 배우 박철민, 인간 박철민. 그의 '깊은' 연기의 뒤에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또, 중학교 동참 이한열을 떠올리면 밀물처럼 몰려오는 부끄러움도 있었다. 또,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 사회 속에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있었다. 


천 명의 '스타'가 만들어지는 것보다 한 명의 '배우'가 탄생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의 연기에는 그가 살아 온 굴곡진 인생과 그 안에서 생성된 '세계관'과 '가치관'이 오롯이 담겨지기 때문이다. 그건 '스타'를 찍어내는 '산업'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하물며 그가 '천의 얼굴'을 지녔다면 그 가치가 어떠하겠는가. 부디 천의 얼굴의 지닌 배우 박철민의 '인지도'가 더욱 높아져서 그가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가 '꿈꾸는' 일들이 더욱 원활히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 글이 쇠털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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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영화인 


꽃에는 그마다 '꽃말'이라는 게 있는데,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기억'이다. 누군가가 특정한 날(이 아니더라도) 물망초를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그가 이 순간을 환기(喚起)시키고자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야 한다. 가령, '4월 16일'에 누군가 자신의 SNS에 물망초 사진을 게시했다면, 우리는 그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잊지 말자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센스를 (적어도 앞으로는) 발휘해야 한다. 여기에서 그 누군가는 바로 '신민아'인데, 그래서 그를 떠올리면 맨 먼저 떠오르는 꽃이 바로 물망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신민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최악의 대답을 미리 제시하자면, 그건 아마도 '김우빈'일 것이다. 설령 그런 연상을 했다고 해도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두 이름을 '동등한 선상'에서 떠올리지 않고, 김우빈'의' 여자친구 정도로 기억했다면 그건 문제가 좀 다르다. 물론 그건 당신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선, 언론의 책임이 아주 무겁다. 



'신민아, 김우빈도 반한 눈빛'

'신민아, 김우빈 사로잡은 미모', 


비단 신민아만 이런 제목의 '제물'이 되는 건 아니다. 공개 연애를 하는 많은 여성 연예인들은 매번 타깃이 된다. 반대의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더 나아가 '내조'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김우빈을 위한 특급 내조' 같은 식이다. 김우빈이 비인두암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에는 더 노골적이다. tvN <알쓸신잡>에서 유시민과 황교익은 강릉 오죽헌을 찾았다가 격분했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들이 그처럼 분개했던 이유는 여전히 신사임당을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만 제한한 채 기억하는 가부장적 역사관 때문 아니었던가.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고, 훌륭한 아들을 둬야만 좋은 여성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었던 조선시대와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최고의 톱스타조차도 다른 누군가의 '무엇'으로 기억되고 불려지는 상황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알콩당콩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은 그 자체로 응원하기로 하고, 우리는 신민아를 신민아라는 이름의 한 인간으로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양민아(신민아의 본면)라는 자연인에 대한 접근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신민아'라는 스타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건 가능할 것이다.


사진 출처 : 씨네그루(주)다우기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인드 컨트롤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사람들에게 '오늘 얼굴이 되게 밝아 보이네?'라는 말을 듣는 게 제겐 '예뻐 보인다'는 말이랑 같아요" 


- 『코스모폴리탄』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얼마 전, 신민아의 인터뷰 내용을 접하고 그가 참 단단하고 강한,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영화와 드라마, CF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활약하며, 최고의 자리에 머물 수 있는 저력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1998년 하이틴 잡지 『키키』의 전속 모델로 데뷔하고, 2001년 SBS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과 영화 <화산고>를 통해 본격적으로 연기자로 데뷔한 이래 신민아는 자신만의 영역을 단단히 구축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신민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랑스러움'인데, '블리'라는 별명의 진정한 주인은 신민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는 '사랑스러움의 대명사'이다. 스크린에서는 <마들렌>(2003), <야수와 미녀>(2005), <고고70>(2008), <키친>(2009),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등에 출연하며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했고, TV에서는 <때려>(2003), <이 죽일놈의 사랑>(2005), <마왕>(2007),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 <아랑사또전>(2012), <오 마이 비너스>(2015) 등에 출연하며 연기의 폭을 점차 넓혀 나갔다.



최근에는 tvN <내일 그대와>에서 기존의 '사랑스러움'에 더해 생활 연기와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이제훈은 SBS 파워FM <박선영의 씨네타운>에 출연해서 "드라마를 찍기 전부터 신민아 씨랑 꼭 함께 하고 싶었던 열망이 컸다"면서 그 바람이 10년 전부터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민아는 '사랑 이야기'를 함께 연기하기에 최고의 파트너가 틀림 없다. 다만, 시청률이 부진했던 점과 그의 연기에 대해서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점은 그가 안고 가야 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흔히 신민아의 사랑스러움은 그의 외적인 모습들 때문인 것으로 강조되곤 했지만, 사실 그 사랑스러움의 비결은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기부한 금액이 14억 원을 넘었다는 소식은 신민아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진가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금액도 금액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꾸준함이 더욱 놀라웠다. 그건 기본적으로 '사랑'이 내재돼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또, '나눔'에 대한 의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진 출처 : 실버스푼 


그동안 신민아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왔는데, 가령 공부방 선생님을 지원하는 사업이라든지 여성 및 어린이 화상 환자를 위한 치료 사업, 독거 노인의 난방비 지원, 탈북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사업 등에 자신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또, 지난 2015년 네팔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1억 원을 기부해 무너진 학교를 재건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기부 행사에 참여하며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얻은 사랑을 다시 대중들에게 되돌려주는 신민아의 삶의 궤적은 뭇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웃을 때마다 깊게 패는 그의 보조개와 상큼발랄한 미소가 덩달아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의 따뜻한 선행이 사람들의 마음마다 온기를 전염시킨다. 신민아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오늘 얼굴이 되게 밝아 보이네? 그리고 이런 바람을 전해주고 싶다. 내일도, 또 그 다음 날도 얼굴이 밝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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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얼마 전,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던 MBC 소속 김소영 아나운서가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몇 장과 그에 대해 달아놓은 짤막한 코멘트를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사진 속에는 남편인 방송인 오상진의 사뭇 진지한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안내문을 읽고 있었고, 심히 낙담한 포즈를 취한 채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원래 진지한 편이지만, 더욱 진지해 보였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이제 김소영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제운전면허를 만들고 렌터카여행을 계획한 남자가 집 식탁에 면허증을 두고온 뒤 낙담하고 있다. 가장의 권위 안녕"


아, 이럴수가! 정말 열심히 그리고 야심하게 렌터카 여행을 준비했을 텐데, 국제운전면허증을 그것도 식탁 위에 놓고 오다니. 사진 속에 드러난 그의 낙담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래도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이렇듯 렌터카 여행을 계획했으면서도 국제운전면허증을 깜빡 잊어버린 채 여행을 떠날 만큼 의외로 허당인 그이지만, 6월 9일을 맞아 그가 결코 잊지 않았던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고(故) 이한열, 1987년 오늘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결국 세상을 떠났던 이한열 열사였다. 


 - 오상진의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angjinoh) -


오상진은 9일 오전 자신의 SNS에 고(故)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과 함께 "강권의 최루탄으로 젊은 생을 마감한 이한열 열사 선배님을 추모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바랐던 이들의 모든 희생이 무의미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는 글을 남겼다. 당시 이한열 열사는 다음 날인 6월 10일 개최될 예정이었던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결의대회를 열고 난 후 시위를 하던 중에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인 무력진압에 의해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됐다.


불법 체포에 이은 고문으로 죽음에 이른 박종철과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은 전 국민적인 분노를 자아냈고, 그 분노의 불길은 6월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 불길은 거침없이 타올라 걷잡을 수 없는 단계까지 퍼져나갔고, 결국 전두환으로부터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권 이양을 약속하는 · 29 선언을 이끌어냈다.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나 다름 없었다. 비록 그로부터 우리가 얻어낸 것이 고작 전두환 정권의 연장인 노태우 정권이었다는 것이 통탄스럽지만 말이다. 



22살에 맞이한 너무도 이른 죽음이었다. 이한열이 그토록 타도하고 싶었던 독재 정권의 원흉 전두환이 올해로 87세를 맞아 천수(天壽)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씁쓸하고 야속한 마음마저 든다. 6월 민주항쟁도 30주년을 맞이했고, 더불어 이한열의 죽음에도 30년이라는 세월이 켜켜이 쌓였다. 6월 항쟁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6월 항쟁은 1987년판 촛불 혁명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한열, 지금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는 이름이다. 가슴 아픈 이름, 뼈아픈 이름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이다. 그런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희생이 무의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기'시켜준 오상진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누구인가. 대통령 투표를 하기 위해 신혼여행 일정을 조절해 권리이자 의무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던 '개념' 방송인이 아니던가. 



지난 4월 5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을 다시 찾아 만감이 교차했던 듯 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쌓여있던 회환을 어찌하지 못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건 단지 오상진, 개인의 눈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MBC의 참담함, 회사의 거대한 부정에 투쟁했던 그가 끝내 사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럼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MBC의 현실에 대해 중첩된 복합적 성격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가 이한열을 떠올렸듯이, 그리하여 우리가 이한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처럼, 오상진의 이름도 대중들에게 소중히 기억되길 희망한다. 맑은 눈망울에 선한 얼굴의 오상진을 보면 여린 듯 하면서도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옳고 그름'에 대해 명확한 기준과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을 가슴 속에 기억하고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역사를 잊지 않은 그가, 그 역사를 만들어 왔던 희생을 잊지 않은 그가 강하지 않다면 누가 강하다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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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결혼식에 왜 안 갔어?"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프로불참러' 조세호의 전성기를 여는 데 결정적인 기여했던 건 MBC <세바퀴>에서 김흥국의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조세호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던 안재욱도 결혼을 하면서 간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안재욱이 그 시기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프로불참러'라는 별명과 함께 조세호의 전성기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농담이니 심각하게 듣진 말기 바란다. 겸사겸사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전성기'의 '임팩트'를 따졌을 때 가장 강렬했던 '스타'를 꼽으라면 아마 안재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994년 MBC 공채 탤런드 23기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안재욱은 단막극 <눈먼 새의 노래>에 출연해 실존 인물이었던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대중들의 시야에 포착됐다. <짝>, <호텔>, <전쟁과 사랑>, <자반고등어>에 연달아 출연하며 자신의 입지를 차분히 다져 나갔다. 그러다 같은 소속사였던 故 최진실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1997년 <별은 내 가슴에>에 출연하게 됐고, 일약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이자 '신드롬'의 주인공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전형적인 캔디형 드라마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별은 내 가슴에>는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49.3%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안재욱은 '백마 탄 왕자님'인 강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는데, 오른쪽 눈만 덮은 독특한 헤어 스타일은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이 따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됐고, 모든 것이 주목을 받았다. 약간 과장하자면 대한민국의 모든 카메라가 안재욱의 뒤를 따라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안재욱의 인기는 측정 불가였다. 


2012년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던 안재욱은 "당시의 엄청난 인기가 부담스러웠다"면서 "그 때 내 나이는 27살이었다. 많은 화제와 이슈를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고 당시의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별은 내 가슴에>가 중국에 수출되면서 '한류스타 1세대'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못하는 게 없는 그야말로 '재인(才人)'이었다. 극중에서 부른 노래 '포에버(Forever)'로 드라마 종영 후 곧바로 가수로 데뷔하면서 자신의 인기를 더욱 공고히 했다. 안재욱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시기였다. 



안재욱은 반짝 스타가 아니었다. MBC <복수혈전>(1997)과 MBC <해바라기>(1998)은 각각 최고 시청률 37. 2%, 38.2%를 기록했고, 그 인기의 중심에 안재욱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MBC <엄마야 누나야>(2000), MBC <천생연분>(2004), KBS2 <오! 필승 봉순영>(2004), KBS2 <미스터 굿바이>(2006)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냈고, 그의 족적은 매번 선명하게 새겨졌다. 주로 드라마에서 활약을 하던 안재욱은 MBC <빛과 그림자>(2011) 이후 뮤지컬에 좀더 집중하기 시작한다.


"제가 생각하는 옮은 삶이란 척하지 않는 삶이에요. 마치 영웅인 척 행동하던 몇몇 사람 때문에 나머지 올바르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피해를 입죠. 안중근 의사 역에 대한 기대감, 책임감, 남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민족 전체의 영웅이니, 명예에 누가 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고 그 도전이 헛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안재욱은 <황태자 루돌프>, <잭 더 리퍼>, <태양왕>, <아리랑> 등에 출연했는데, 최근에는 안중근 의사의 삶과 인간적 고뇌를 다룬 창작 뮤지컬 <영웅>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서도 확고히 자리잡았다. 성남 공연(4월 29일~5월 7일)의 경우에는 좌석 점유율 92%를 달성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기도 했다. 기존에 안중근 역을 맡았던 정성화 등 다른 배우들과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안재욱만의 섬세하고 중후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재욱은 '테리우스'라는 별명의 원조로서 '스타'의 모습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단련시켜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한편, 그가 무려 23년 동안 배우로서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인간적 면모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날고 기는 예능 MC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재치있는 입담과 투덜이 캐릭터로 많은 웃음을 주는 그이지만 속내는 누구보다도 깊고 따뜻하다.


ⓒ 한국일보


지난 5월 19일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는 조재희 씨(EBS <메디컬 다큐-7요일>에 출연)는 시청자 게시판에 "잔잔한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해주신 안재욱씨도 방송이 나간 후 재활치료비를 후원해주셨다. 따뜻한 마음이 진심으로 다가왔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는데, 이와 같은 안재욱의 선행은 소속사도 몰랐던 만큼 훈훈함을 더했다. 실제로 안재욱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선행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가 연예인 자선단체인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바자회 및 봉사활동 등을 하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안재욱은 1억 원 이상을 기부하거나 5년 동안 1억 원을 약정할 경우 가입 조건이 충족되는 '아너 소사이어티'의 멤버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유니세프 코리아를 통해 3,000만 원을 기부했고, 2013년에는 팬들이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보낸 쌀 화한 4.8톤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쓰이도록 했다. 또, 2015년에는 자신의 팬클럽 '포에버'와 함께 고려대 의료원에 1,500만 원을 기부해 결핵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소득층을 위한 진료비로 보태기도 했다. 


안재욱은 "팬들은 늘 책임감을 심어주는 존재였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의 자리에 올랐던 그가 흔히 말하는 '스타병'에 걸리지 않고(설령 걸렸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배우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던 바탕에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목표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을 테지만, 무엇보다 팬들에 대한 '책임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바로 사람에 대한 사랑, 그 따뜻함일 것이다. 안재욱의 노래이자 그의 팬클럽 이름처럼, 그가 앞으로도 '포에버'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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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