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 앞에는 '산소 같은 여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퀴즈로 내더라도 100%의 정답률을 기록할 것 같다. 바로 이영애다. 1991년 태평양의 화장품 브랜드 '마몽드' CF에 출연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으니 어언 27년이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산소 같다'는 말은 '맑고 투명한 피부'를 강조한 표현일 텐데, 이영애의 깨끗한 이미지와 완벽히 부합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 버렸다. 마몽드도 대박을 쳤고, 이영애 역시 최고의 CF 스타로 등극하며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산소 같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극상의 찬사일 수 있겠으나, 당사자에겐 족쇄와도 같은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어떤 행동으로 그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부담감, 자신의 어떤 변화가 그 이미지를 '오염'시킬지 모른다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을테니 말이다. 물론 그로 인해 이영애가 얻은 이익, 가령 명예나 경제적 이득도 엄청나지만, 한 평생을 시달려야 했을 그의 삶의 무게를 누가 책정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산소 같은' 이라는 수식어와 '여자'가 결합됐을 때 발생하는 '대상화'도 그가 감당해야 할 무게였을 텐데 말이다.


이영애는 자신에게 주어진 왕관의 무게를 견뎌냈다. MBC <대장금>(2003)으로 최고 시청률 57.8%(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고, 아시아 전역에 인기리에 방영되며 한류 스타로 거듭났다. 영화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연기 변신에 시도하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물론 아쉬움이 왜 없겠는가. 최근에는 SBS <사임당, 빛의 일기>로 13년 만에 안방 극장에 복귀했지만, 오랜만의 복귀 때문인지 연기력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영애의 존재감은 배우 이외의 모습을 통해서도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다. 지난 8월 18일, 강원도 철원의 육군부대 사격장에서 K-9 자주포 사격 훈련 도중 폭발 사고로 인해 2명의 사망자와 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기꺼이 내어준 저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또, 그 가족의 슬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이 소식을 알게 된 이영애는 21일 육군부사관학교 발전기금에 "이번 사고로 순직하거나 부상당한 장병들과 그 가족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해달라"며 위로금 5천 만 원을 기탁했다. 


생후 18개월 된 아이를 두고 순직한 이태균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쌍둥이 남매의 엄마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아이들이 더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나라,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군이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육군부사관학교 발전기금 측에 따르면, 이영애는 위로금뿐만 아니라 이태균 상사 아들의 대학 졸업까지 학비를 전액 지원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물론 순직한 장병들에 대한 예우는 국가의 책무이겠으나, 이영애의 마음이 따뜻한 온기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이영애는 이와 같은 기부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 그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5년 8월에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 지뢰 도발로 2명의 부상자(김정원 · 하재헌 하사)가 발생하자 지체없이 5천 만 원의 위로금을 보냈고, 2016년 9월에도 6·25 참전용사의 자녀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성금 1억 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영애의 국군장병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은 그의 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였던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장애인재단

 

 


한편, 이영애의 나눔 실천은 장르와 분야, 국가를 가리지 않았다. 2015년 뇌종양을 치료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5살의 베트남 소년을 위해 치료비 전액을 지원했고, 4월에는 에콰도르 지진 구호 기금으로 5만 달러를 쾌척했다. 올해 3월에는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가족, 다문화 가정을 위해 강릉 아산병원에 1억 원을 전달했고, 강원도의 소외된 이웃을 위해 1억 5천 만 원을 기부했다. <사임당, 빛의 일기>를 촬영하면서 강원도 강릉과 맺은 인연의 연장선이었다. 


또, 4월에는 저소득층 산모를 위해 서울 제일병원에 5천 만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또, 6월에는 스리랑카에서 홍수가 발생하자 5천 만 원을 보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처럼 이영애의 기부 활동은 단순히 나열만 하기에도 숨이 찰 정도다. 알려진 기부 액수만 따져도 올해 기준으로 5억 원이 훌쩍 넘고, 총액은 14억 원 이상라고 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기부' 등 타인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주는 행동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사회와 그 구성원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나눔을 실천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박수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이영애는 자신의 기부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도와준 나라가 많다. 우리가 도와주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서 "미얀마, 베트남, 대만 등 모두 한류를 사랑하는 나라이고, 이것도 하나의 외교"라고 강조한다.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의 사랑을 받아왔던 만큼 그의 사랑이 세계 각지로 향하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산소 같은 여자'라는 수식어로 대중들로부터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영애는 자신의 머리에 놓인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 그리고 그는 '산소 같은 사람' 되어 대중들 앞에 섰다. 맑고 투명한 그의 선한 영향력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전해져 세상을 밝게 빛나고 있다. 차기작은 아직 좀더 고민해보겠다는 그가 어서 '배우'로서도 자신의 진가를 다시 펼치길 기대한다. 그때는 그를 '산소 같은 배우'라고 부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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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칙칙. 이것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여. 바람을 가르는 소리여. 칙칙"


흔히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에게 '천의 얼굴을 가진'이라는 (진부한) 수식어를 사용하곤 하는데, 그 상투적인 표현을 꺼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배우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박철민'처럼 말이다. 그의 얼굴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고, 그의 연기에는 그 4가지 감정들이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된다. 그 정도로 박철민을 '천의 얼굴'이라 부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순히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을 드러내는 수준을 넘어서 그 감정들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사칙 연산을 무한대로 해낸다. 그래서 박철민의 연기는 '깊다'. 


놀랍게도 그는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 그는 '연기'가 너무도 하고 싶어서 극단을 찾았고, 그 세계를 전전했다. 영화 <목포는 항구다>(2004)에서 가오리 역으로 출연했던 박철민은 권투 동작과 함께 내뱉는 익살스러운 대사를 단박에 유행어로 만들며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맡으며 '명품 조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여직원과 그 아버지의 고독한 싸움을 그린 <또 하나의 약속>(2013)에서는 주연을 맡기도 했다. 


배유람의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gaeddac)


최근에는 MBC <군주>에 출연 중인데, 세자 이선(유승호)의 스승인 우보 역을 맡아 특유의 애드리브를 발휘하며 촬영장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8년 동안 여섯 작품(영화 <4교시 추리영역>(2009),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2011), SBS <무사 백동수>(2011), MBC EVERY1 <상상고양이>(2015), 영화 <조선마술사>(2015))을 함께 했던 인연은 곧 찰떡 궁합으로 이어져 수목 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군주>에서의 모습은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보여줬던 악역(이조판서 김의교)의 그것과는 180도 달라 눈길을 끈다.


이처럼 박철민의 연기는 다채롭다. 한때 '코믹 연기'로 규정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는 연극 무대에서 다져온 연기력으로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과감히 돌파해냈다. "어쨌든 행복을 느끼는 일을 이 나이에도 하고 있고, 나의 장단점을 볼 줄 아니까 참 다행이지 않나?" (<오마이뉴스>, 'B급 배우' 자처하는 박철민, "난 잡놈 중 잡놈")고 말하는 박철민은 상업 영화, 독립 영화, TV 드라마와 예능(SBS <정글의 법칙 와일드 뉴질랜드>), 연극 무대까지 그야말로 종횡무진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 이정민


"나는 까부는 게 좋다. 익살부리고 오버하기도 하고 그러면 더 신난다. 그러다 최고의 지점에서 행복하게 끝난다. 슬픈 장면도 마찬가지더라. 하면 할수록 더 슬퍼진다. 아파지고 더 먹먹해지고. 이런 감정들이 아주 훌륭한 경험이지만, 자주하지 말자는 생각도 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박철민의 연기, 그 본질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은 어떨까. 대중들은 왜 박철민이라는 배우, 혹은 박철민이라는 인간에 매력을 느끼는가. 감히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자면, 그건 아마도, 그가 (남들은 쉽사리 외면하고 마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진솔한 사람이며, 그것을 대중들과 교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솔직함'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그러한 '능력'은 대중들과 부대끼고 호흡해야 할 배우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일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가족> 출연은 박철민에게 큰 도전이었다. 단순히 '삼성과의 싸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이 '실화'였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이전까지 주로 '밝은' 연기를 해왔던 그가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전했고, 결국 감동적인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투자를 받기 어려웠던 저예산 영화의 주연 배우, 그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자신이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였다면 흥행에 더욱 도움이 됐을 거라며 자책했다.


ⓒ 이선옥


"저 같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자격이 있는지 걱정이 되긴 합니다. 막 살고, 딴따라로 사는 사람인데…. 저보다 더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들이 이 사업을 함께 하면, 더 많이 널리 알릴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저라도 할 수 있다면 하겠습니다. 인기 없는 대신 발품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전태일다리 이름짓기 범국민캠페인 < 808행동 > 선포식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영화에 출연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던 박철민. 그는 지난 2010년에는 전태일 40주기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다. 당시 "내가 어릴 때부터 영향을 받았던 인물, 정서적인 아름다움을 가졌던 인물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이유를 밝히면서 최선을 다해 전태일의 '정서적인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2010년'이 정치적으로 어떤 시기였는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그 '암흑기'를 떠올리는 데 무리가 없으리라. 


한편, 박철민은 2017년 6월 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무대에 올랐다. 6 · 10 민주항쟁 30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한열 열사의 추모 문화제가 열리고 있었고, 박철민은 사회를 맡았다. 그는 이한열과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이 열사는 중2 때 같은 반 친구였다. 그는 2분단장, 나는 3분단장이었다. 6월이 되면 부끄럽게 사는 제 인생을 반성하면서 이 열사를 한없이 그리워한다." 이한열과 중학교 동창이었다는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또 한번 부끄러워했다. 



"저는 이번 선거 때 대통령님 못 찍었습니다. 아내하고 늘 싸웠는데요. 끝나고 나서 한 2주일 만에 제가 술 한 잔 먹고 "여보, 당신의 선택이 멋졌어. 훌륭했어"라고 말하고 사과했어요."


지난 6월 2일 박철민은 서울 강남구 구립서울요양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치매국가책임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 대통령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코미디언 김미화와 함께 사회를 맡았던 그는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찍지 못했지만, 2주일 만에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했던) 아내에게 사과를 했다며 고백(?)하며 문 대통령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솔직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요양원에 갔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까닭은 박철민의 개인사와 연결돼 있다. 그의 어머니는 지난 10여년 동안 치매를 앓고 있었고, 이 때문에 자연스레 치매라는 병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치매 홍보대사를 맡으며 '치매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치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또, 일상 속의 직접적인 경험과 치매 환자가 65만 명(2015년 기준)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 등은 그에게 치매라는 병이 개인의 헌신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병이라는 깨달음을 줬을 것이다. 


ⓒ 쿠키뉴스 스토리펀딩 치매편


"노래 부르기 좋아하시고, 그림 잘 그리시고. 그래서 더 애틋합니다.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너무나 사랑스럽고 선한 모습을 살아가고 계시죠. 그렇지만 예전에 가족과 함께했던 기억들, 추억들을 간직하시지 못하고 계셔서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하십니다."


지난 26일, 박철민은 저소득 치매 노인들의 지원을 위해 4천 만 원을 기부했다. 치매학회 홍보대사로 선정돼 받은 활동비를 전액 기부한 것이다. "어머니 덕분에 받은 돈인데 당연하다"던 그는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역할을 재차 강조했다. 배우 박철민, 인간 박철민. 그의 '깊은' 연기의 뒤에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또, 중학교 동참 이한열을 떠올리면 밀물처럼 몰려오는 부끄러움도 있었다. 또,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 사회 속에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있었다. 


천 명의 '스타'가 만들어지는 것보다 한 명의 '배우'가 탄생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의 연기에는 그가 살아 온 굴곡진 인생과 그 안에서 생성된 '세계관'과 '가치관'이 오롯이 담겨지기 때문이다. 그건 '스타'를 찍어내는 '산업'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하물며 그가 '천의 얼굴'을 지녔다면 그 가치가 어떠하겠는가. 부디 천의 얼굴의 지닌 배우 박철민의 '인지도'가 더욱 높아져서 그가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가 '꿈꾸는' 일들이 더욱 원활히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 글이 쇠털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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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사진 출처 : 영화인 


꽃에는 그마다 '꽃말'이라는 게 있는데,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기억'이다. 누군가가 특정한 날(이 아니더라도) 물망초를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그가 이 순간을 환기(喚起)시키고자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야 한다. 가령, '4월 16일'에 누군가 자신의 SNS에 물망초 사진을 게시했다면, 우리는 그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잊지 말자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센스를 (적어도 앞으로는) 발휘해야 한다. 여기에서 그 누군가는 바로 '신민아'인데, 그래서 그를 떠올리면 맨 먼저 떠오르는 꽃이 바로 물망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신민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최악의 대답을 미리 제시하자면, 그건 아마도 '김우빈'일 것이다. 설령 그런 연상을 했다고 해도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두 이름을 '동등한 선상'에서 떠올리지 않고, 김우빈'의' 여자친구 정도로 기억했다면 그건 문제가 좀 다르다. 물론 그건 당신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선, 언론의 책임이 아주 무겁다. 



'신민아, 김우빈도 반한 눈빛'

'신민아, 김우빈 사로잡은 미모', 


비단 신민아만 이런 제목의 '제물'이 되는 건 아니다. 공개 연애를 하는 많은 여성 연예인들은 매번 타깃이 된다. 반대의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더 나아가 '내조'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김우빈을 위한 특급 내조' 같은 식이다. 김우빈이 비인두암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에는 더 노골적이다. tvN <알쓸신잡>에서 유시민과 황교익은 강릉 오죽헌을 찾았다가 격분했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들이 그처럼 분개했던 이유는 여전히 신사임당을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만 제한한 채 기억하는 가부장적 역사관 때문 아니었던가.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고, 훌륭한 아들을 둬야만 좋은 여성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었던 조선시대와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최고의 톱스타조차도 다른 누군가의 '무엇'으로 기억되고 불려지는 상황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알콩당콩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은 그 자체로 응원하기로 하고, 우리는 신민아를 신민아라는 이름의 한 인간으로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양민아(신민아의 본면)라는 자연인에 대한 접근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신민아'라는 스타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건 가능할 것이다.


사진 출처 : 씨네그루(주)다우기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인드 컨트롤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사람들에게 '오늘 얼굴이 되게 밝아 보이네?'라는 말을 듣는 게 제겐 '예뻐 보인다'는 말이랑 같아요" 


- 『코스모폴리탄』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얼마 전, 신민아의 인터뷰 내용을 접하고 그가 참 단단하고 강한,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영화와 드라마, CF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활약하며, 최고의 자리에 머물 수 있는 저력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1998년 하이틴 잡지 『키키』의 전속 모델로 데뷔하고, 2001년 SBS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과 영화 <화산고>를 통해 본격적으로 연기자로 데뷔한 이래 신민아는 자신만의 영역을 단단히 구축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신민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랑스러움'인데, '블리'라는 별명의 진정한 주인은 신민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는 '사랑스러움의 대명사'이다. 스크린에서는 <마들렌>(2003), <야수와 미녀>(2005), <고고70>(2008), <키친>(2009),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등에 출연하며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했고, TV에서는 <때려>(2003), <이 죽일놈의 사랑>(2005), <마왕>(2007),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 <아랑사또전>(2012), <오 마이 비너스>(2015) 등에 출연하며 연기의 폭을 점차 넓혀 나갔다.



최근에는 tvN <내일 그대와>에서 기존의 '사랑스러움'에 더해 생활 연기와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이제훈은 SBS 파워FM <박선영의 씨네타운>에 출연해서 "드라마를 찍기 전부터 신민아 씨랑 꼭 함께 하고 싶었던 열망이 컸다"면서 그 바람이 10년 전부터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민아는 '사랑 이야기'를 함께 연기하기에 최고의 파트너가 틀림 없다. 다만, 시청률이 부진했던 점과 그의 연기에 대해서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점은 그가 안고 가야 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흔히 신민아의 사랑스러움은 그의 외적인 모습들 때문인 것으로 강조되곤 했지만, 사실 그 사랑스러움의 비결은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기부한 금액이 14억 원을 넘었다는 소식은 신민아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진가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금액도 금액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꾸준함이 더욱 놀라웠다. 그건 기본적으로 '사랑'이 내재돼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또, '나눔'에 대한 의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진 출처 : 실버스푼 


그동안 신민아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왔는데, 가령 공부방 선생님을 지원하는 사업이라든지 여성 및 어린이 화상 환자를 위한 치료 사업, 독거 노인의 난방비 지원, 탈북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사업 등에 자신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또, 지난 2015년 네팔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1억 원을 기부해 무너진 학교를 재건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기부 행사에 참여하며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얻은 사랑을 다시 대중들에게 되돌려주는 신민아의 삶의 궤적은 뭇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웃을 때마다 깊게 패는 그의 보조개와 상큼발랄한 미소가 덩달아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의 따뜻한 선행이 사람들의 마음마다 온기를 전염시킨다. 신민아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오늘 얼굴이 되게 밝아 보이네? 그리고 이런 바람을 전해주고 싶다. 내일도, 또 그 다음 날도 얼굴이 밝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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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얼마 전,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던 MBC 소속 김소영 아나운서가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몇 장과 그에 대해 달아놓은 짤막한 코멘트를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사진 속에는 남편인 방송인 오상진의 사뭇 진지한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안내문을 읽고 있었고, 심히 낙담한 포즈를 취한 채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원래 진지한 편이지만, 더욱 진지해 보였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이제 김소영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제운전면허를 만들고 렌터카여행을 계획한 남자가 집 식탁에 면허증을 두고온 뒤 낙담하고 있다. 가장의 권위 안녕"


아, 이럴수가! 정말 열심히 그리고 야심하게 렌터카 여행을 준비했을 텐데, 국제운전면허증을 그것도 식탁 위에 놓고 오다니. 사진 속에 드러난 그의 낙담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래도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이렇듯 렌터카 여행을 계획했으면서도 국제운전면허증을 깜빡 잊어버린 채 여행을 떠날 만큼 의외로 허당인 그이지만, 6월 9일을 맞아 그가 결코 잊지 않았던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고(故) 이한열, 1987년 오늘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결국 세상을 떠났던 이한열 열사였다. 


 - 오상진의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angjinoh) -


오상진은 9일 오전 자신의 SNS에 고(故)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과 함께 "강권의 최루탄으로 젊은 생을 마감한 이한열 열사 선배님을 추모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바랐던 이들의 모든 희생이 무의미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는 글을 남겼다. 당시 이한열 열사는 다음 날인 6월 10일 개최될 예정이었던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결의대회를 열고 난 후 시위를 하던 중에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인 무력진압에 의해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됐다.


불법 체포에 이은 고문으로 죽음에 이른 박종철과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은 전 국민적인 분노를 자아냈고, 그 분노의 불길은 6월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 불길은 거침없이 타올라 걷잡을 수 없는 단계까지 퍼져나갔고, 결국 전두환으로부터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권 이양을 약속하는 · 29 선언을 이끌어냈다.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나 다름 없었다. 비록 그로부터 우리가 얻어낸 것이 고작 전두환 정권의 연장인 노태우 정권이었다는 것이 통탄스럽지만 말이다. 



22살에 맞이한 너무도 이른 죽음이었다. 이한열이 그토록 타도하고 싶었던 독재 정권의 원흉 전두환이 올해로 87세를 맞아 천수(天壽)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씁쓸하고 야속한 마음마저 든다. 6월 민주항쟁도 30주년을 맞이했고, 더불어 이한열의 죽음에도 30년이라는 세월이 켜켜이 쌓였다. 6월 항쟁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6월 항쟁은 1987년판 촛불 혁명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한열, 지금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는 이름이다. 가슴 아픈 이름, 뼈아픈 이름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이다. 그런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희생이 무의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기'시켜준 오상진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누구인가. 대통령 투표를 하기 위해 신혼여행 일정을 조절해 권리이자 의무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던 '개념' 방송인이 아니던가. 



지난 4월 5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을 다시 찾아 만감이 교차했던 듯 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쌓여있던 회환을 어찌하지 못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건 단지 오상진, 개인의 눈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MBC의 참담함, 회사의 거대한 부정에 투쟁했던 그가 끝내 사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럼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MBC의 현실에 대해 중첩된 복합적 성격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가 이한열을 떠올렸듯이, 그리하여 우리가 이한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처럼, 오상진의 이름도 대중들에게 소중히 기억되길 희망한다. 맑은 눈망울에 선한 얼굴의 오상진을 보면 여린 듯 하면서도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옳고 그름'에 대해 명확한 기준과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을 가슴 속에 기억하고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역사를 잊지 않은 그가, 그 역사를 만들어 왔던 희생을 잊지 않은 그가 강하지 않다면 누가 강하다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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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결혼식에 왜 안 갔어?"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프로불참러' 조세호의 전성기를 여는 데 결정적인 기여했던 건 MBC <세바퀴>에서 김흥국의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조세호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던 안재욱도 결혼을 하면서 간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안재욱이 그 시기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프로불참러'라는 별명과 함께 조세호의 전성기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농담이니 심각하게 듣진 말기 바란다. 겸사겸사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전성기'의 '임팩트'를 따졌을 때 가장 강렬했던 '스타'를 꼽으라면 아마 안재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994년 MBC 공채 탤런드 23기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안재욱은 단막극 <눈먼 새의 노래>에 출연해 실존 인물이었던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대중들의 시야에 포착됐다. <짝>, <호텔>, <전쟁과 사랑>, <자반고등어>에 연달아 출연하며 자신의 입지를 차분히 다져 나갔다. 그러다 같은 소속사였던 故 최진실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1997년 <별은 내 가슴에>에 출연하게 됐고, 일약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이자 '신드롬'의 주인공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전형적인 캔디형 드라마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별은 내 가슴에>는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49.3%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안재욱은 '백마 탄 왕자님'인 강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는데, 오른쪽 눈만 덮은 독특한 헤어 스타일은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이 따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됐고, 모든 것이 주목을 받았다. 약간 과장하자면 대한민국의 모든 카메라가 안재욱의 뒤를 따라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안재욱의 인기는 측정 불가였다. 


2012년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던 안재욱은 "당시의 엄청난 인기가 부담스러웠다"면서 "그 때 내 나이는 27살이었다. 많은 화제와 이슈를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고 당시의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별은 내 가슴에>가 중국에 수출되면서 '한류스타 1세대'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못하는 게 없는 그야말로 '재인(才人)'이었다. 극중에서 부른 노래 '포에버(Forever)'로 드라마 종영 후 곧바로 가수로 데뷔하면서 자신의 인기를 더욱 공고히 했다. 안재욱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시기였다. 



안재욱은 반짝 스타가 아니었다. MBC <복수혈전>(1997)과 MBC <해바라기>(1998)은 각각 최고 시청률 37. 2%, 38.2%를 기록했고, 그 인기의 중심에 안재욱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MBC <엄마야 누나야>(2000), MBC <천생연분>(2004), KBS2 <오! 필승 봉순영>(2004), KBS2 <미스터 굿바이>(2006)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냈고, 그의 족적은 매번 선명하게 새겨졌다. 주로 드라마에서 활약을 하던 안재욱은 MBC <빛과 그림자>(2011) 이후 뮤지컬에 좀더 집중하기 시작한다.


"제가 생각하는 옮은 삶이란 척하지 않는 삶이에요. 마치 영웅인 척 행동하던 몇몇 사람 때문에 나머지 올바르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피해를 입죠. 안중근 의사 역에 대한 기대감, 책임감, 남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민족 전체의 영웅이니, 명예에 누가 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고 그 도전이 헛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안재욱은 <황태자 루돌프>, <잭 더 리퍼>, <태양왕>, <아리랑> 등에 출연했는데, 최근에는 안중근 의사의 삶과 인간적 고뇌를 다룬 창작 뮤지컬 <영웅>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서도 확고히 자리잡았다. 성남 공연(4월 29일~5월 7일)의 경우에는 좌석 점유율 92%를 달성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기도 했다. 기존에 안중근 역을 맡았던 정성화 등 다른 배우들과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안재욱만의 섬세하고 중후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재욱은 '테리우스'라는 별명의 원조로서 '스타'의 모습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단련시켜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한편, 그가 무려 23년 동안 배우로서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인간적 면모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날고 기는 예능 MC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재치있는 입담과 투덜이 캐릭터로 많은 웃음을 주는 그이지만 속내는 누구보다도 깊고 따뜻하다.


ⓒ 한국일보


지난 5월 19일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는 조재희 씨(EBS <메디컬 다큐-7요일>에 출연)는 시청자 게시판에 "잔잔한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해주신 안재욱씨도 방송이 나간 후 재활치료비를 후원해주셨다. 따뜻한 마음이 진심으로 다가왔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는데, 이와 같은 안재욱의 선행은 소속사도 몰랐던 만큼 훈훈함을 더했다. 실제로 안재욱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선행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가 연예인 자선단체인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바자회 및 봉사활동 등을 하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안재욱은 1억 원 이상을 기부하거나 5년 동안 1억 원을 약정할 경우 가입 조건이 충족되는 '아너 소사이어티'의 멤버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유니세프 코리아를 통해 3,000만 원을 기부했고, 2013년에는 팬들이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보낸 쌀 화한 4.8톤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쓰이도록 했다. 또, 2015년에는 자신의 팬클럽 '포에버'와 함께 고려대 의료원에 1,500만 원을 기부해 결핵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소득층을 위한 진료비로 보태기도 했다. 


안재욱은 "팬들은 늘 책임감을 심어주는 존재였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의 자리에 올랐던 그가 흔히 말하는 '스타병'에 걸리지 않고(설령 걸렸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배우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던 바탕에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목표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을 테지만, 무엇보다 팬들에 대한 '책임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바로 사람에 대한 사랑, 그 따뜻함일 것이다. 안재욱의 노래이자 그의 팬클럽 이름처럼, 그가 앞으로도 '포에버'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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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저 '판듀' 촬영왔어요! 오늘 날씨가 좋은데 저는 방송국 #안이에요"


지난 16일 그룹 '하이라이트'의 양요섭이 자신의 SNS에 남긴 짧은 글이다. 사실, 별다른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니다. 이 글을 읽는 어떤 이들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며 시니컬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매순간이 궁금한 팬들에겐 이런 '소통'이 참 소중하다. 특히 '열애설'이 제기됐을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일견 아무 내용도 없어 보이는 저 문장 안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비밀의 열쇠는 해시태그(Hash Tag)이다.


양요섭은 자신이 '방송국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안이에요' 앞에 굳이 해시태그를 달아 '강조'를 하고 있다. 특별히 강조해야 할 의미가 있는 단어가 아니라 그 의도를 찾도록 만들었는데, '안이에요'는 연음 법칙(連音法則)에 따라 '아니에요'로 발음된다. 결국 자신의 열애설에 대해 '대답'한 셈이다. 갑작스럽게 터진 스타의 열애 소식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팬들의 입장에서 스타의 이와 같은 센스있는 대처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열애설이 터졌을 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연예인들도 수두룩하지 않던가.


또, 구차하게 해명을 하는 것보다 세련된 면도 있었다. 간접적이지만 그 누구도 민망해하지 않고 '웃으면서' 이 상황을 넘길 수 있는 영리한 대응이었다. 실제로 양요섭의 소속사인 어라운드어스 엔터테인먼트는 "두 사람의 열애설은 사실무근"이고 "친한 동료 사이"라고 부인했다. 양요섭이 해시태그로 전한 내용이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는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그 화자가 양요섭이기 때문인데, 그만큼 그는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스타와 팬의 관계는 참으로 오묘하다. 절대적인 지지(가 대부분이겠지만)에서 적정한 거리를 둔 지지까지 그 '태도'도 다양하고, 한때는 모든 것을 다 줄듯 '사랑'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미움'을 넘어 '증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정치인과 지지자'의 관계와도 유사하고, 때로는 '연인'의 관계와도 비슷한 측면이 많다. 어쩌면 '대상'의 문제라기보다는 '관계'가 갖는 '속성'의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됐든 이 관계를 잘 형성 · 유지하지 못하는 스타가 있는가 하면, 양요섭처럼 잘 이끌어가는 스타도 있다. 


과거 비스트 초창기 시절에도 그러했고, 장현승의 탈퇴 이후 5인 체제(윤두준, 용준형, 양요섭, 이기광, 손동운)로 활동하던 시기에도, 큐브 엔터테인먼트를 나와 '비스트'라는 그룹명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하이라이트(Highlight)'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도 양요섭은 팬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 마음에 생채기가 남지 않도록 애썼다. 당연한 일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그다지 흔한 케이스가 아닐 뿐만 아니라 쉬운 일은 더더욱 아니다. 




양요섭이라는 이름을 눈여겨 보게 됐던 계기가 있었는데, 그가 2013년 7월 KBS2 <해피투게더3>에 출연하면서 '위안부 의식 팔찌'를 착용한 것을 기사를 통해 확인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소속사였던 큐브엔터테인먼트는 양요섭의 말을 빌려 "다른 아이돌 가수들도 이 팔찌를 많이 하고 있는데, 본인만 새삼 화제가 된 것 같아 부끄러워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요섭은 팬들로부터 그 팔찌를 받게 됐는데, "팬들 덕분에 '위안부'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며 팬들과 맺고 있는 '건강한' 관계를 언급하기도 했다.


또, 2014년 우리를 집단 멘붕 속으로 빠뜨렸던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세월호 리본을 달고 행사장에 참석해 애도의 뜻을 전했고, SNS를 통해 세월호 기억 팔찌를 착용하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또, 세월호 2주기에는 "4월 16일을 잊지 말아요"라는 글을 게시하며 추모의 마음을 표했다. 세월호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그와 관련한 발언을 입밖에 내는 것조차도 '정치적'으로 해석돼 부담스러운 시기였기에 그의 용기있는 행동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우리 팬들 최고.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정말 행복했고 또 힘들고 슬픈 일들도 여러분들 덕분에 잘 견뎌내고 힘낼 수 있었습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양요섭은 2017년 2월 중증어린이재활병원건립을 위한 기부에 참여하는 등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데 발휘하고 있다. [버락킴의 칭찬합시다] 시리즈를 통해 '스타와 팬은 닮는다'는 주장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데, 양요섭의 팬들은 이른바 '착한 팬덤문화'의 선두주자라 할 만 하다. 양요섭의 팬클럽인 '섭이방'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양요섭이 중학생 시절까지 살았던) 서울시 도봉구에 쌀과 라면과 성금 등을 꾸준히 기부했다. 


또, 양요섭 서포터즈는 양요섭의 생일(1월 5일)과 데뷔(10월 16일)를 기념하며 청각장애인을 돕기 위해 사단법인 사랑의달팽이 측에 기부 활동을 해오고 있다. 양요섭 팬카페 소울메이트도 그의 생일을 맞아 희귀 난치병 어린이를 돕는 비영리단체 '여울돌'에 후원금을 보내고, 여울돌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장난감 등 선물을 증정했다. 이처럼 스타에 대한 사랑을 '기부'라는 형태로 표현하는 팬들의 성숙함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양요섭도 이에 대한 고마움을 SNS를 통해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 이런 '마음'들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고, 아름다운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것 아니겠는가. 매력적인 보이스 컬러와 수준급 가창력으로 여러 드라마의 OST(최근에는 MBC <군주-가면의 주인>에 참여했다) 등에 참여하는 등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양요섭인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뽐내고 더욱 많은 사랑을 받기 바란다. 그리고 지금의 '소통'하는 모습을 통해 팬들과도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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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 이 세상 속에서 /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 수많은 알 수 없는 길속에 /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 언제까지나 너 함께 하는 거야 /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소녀'가 '숙녀'가 됐다.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당연한 일이다. '걸그룹'으로 그 긴 세월을 버텨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선 '인기'가 뒷받침 돼야 하는데, 워낙 경쟁이 심한 업계이다보니 살아남는 것 자체가 어렵다. 설령 인기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7년차 징크스'가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걸그룹(을 포함한 아이돌)들 이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해체의 길을 걷곤 한다. 카라, 포미닛, 2NE1과 미쓰에이, 시크릿, 레인보우 등이 대표적이다.



이 '7년차 징크스'라는 게 유독 7년째가 되면 멤버들 간의 극심한 불화가 생겨 해체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계약 기간'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걸스데이의 유라가 "보통 전속계약 기간이 7년이라서 그렇다"고 증언했듯이, 지난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예 기획사와 연기자 간에 전속 계약을 맺을 때, 그 최장 기간을 7년으로 제한하면서 통상적인 계약 기간이 7년이 됐다. 자유의 몸이 된 계약자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회사 측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할 때, 데뷔부터 1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 '최고'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소녀시대의 힘은 정말이지 놀랍기만 하다. 소녀시대가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막내 서현의 말처럼 "우리는 일이 아닌 가족처럼 지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덕분이리라. 그들이라고 왜 부침이 없었겠는가. 멤버 개인의 문제들도 있었고, 7년차였던 2014년에는 제시카의 탈퇴라는 난관을 겪으며 9명이라는 숫자는 8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소녀시대는 건재하다. 



8인 체제로 재정비를 마친 2015년에는 정규 5집 앨범 '라이온 하트’(Lion Heart)'를 발표했는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여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으로서의 위상을 뽐냈다. 지금의 '소녀시대'가 있기까지 (제시카를 포함해서) 모든 멤버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을 것이다. 또, SM의 전폭적인 지지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굳이 한 명의 멤버를 꼬집어서 칭찬을 해야 한다면, 역시 '센터' 윤아(본명 임윤아)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소녀시대가 전(全)세대를 아우르는 인지도를 얻고, 이른바 '국민 걸그룹'이 될 수 있었던 건 그의 역할이 컸다. 


이미 광고 모델로 활동하며 대중들과 친숙해졌던 윤아는 '연기자'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7년 8월 MBC <9회말 2아웃>을 통해 연기에 발을 들여놨고, 곧이어 2008년 KBS1 <너는 내 운명>에서 '캔디 캐릭터'인 장새벽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소녀시대는 데뷔 2달 만에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가능성이 큰 걸그룹이었지만,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기까지는 역시 윤아의 공이 컸다. 최고 시청률 43.6%를 기록했던 일일연속극의 파괴력은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그 기세를 몰아 MBC <신데렐라 맨>(2009), KBS2 <사랑비>(2012), KBS2 <총리와 나>(2013) 등에서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연기력 논란이 불거지며 '연기돌'이라는 비아냥의 대상이 돼야 했다. 또, 시청률 면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다. 2015년에 소녀시대로 활동을 했던 윤아는 2016년 방영된 중국 드라마 <무신조자룡>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100억 뷰를 넘기며 흥행에 성공하며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어 tvN <THE K2>에서 고안나 역을 맡아 국내 복귀에도 성공한다.


하지만 배우 '임윤아'의 가능성을 인정하기엔 부족함이 느껴졌다. 오히려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 건 7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공조>였는데, 림청령(현빈)에게 반한 엉뚱한 처제 박민영 역을 마치 '맞춤 옷'을 입은 듯 연기해냈다. 스스로도 꾸밈 없는 자연인 임윤아의 모습이 가장 많이 담겼기 때문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윤아를 '연기'에 영역에만 국한해 바라보는 건 곤란하다. 10cm의 권정렬과 함께 부른 '덕수궁 돌담길의 봄'에서는 윤아만의 달콤한 음색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도 했으니 말이다.




"조용히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처음엔 알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나눔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꾸준한 나눔 실천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윤아) 


윤아를 이야기함에 있어 그(와 팬들)의 기부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걸그룹 최초로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이름을 올렸다.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는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 원 이상을 기부하거나 5년 동안 1억 원을 약정할 경우 가입 조건이 충족되는데, 2010년부터 꾸준히 저소득층을 돕는 나눔을 실천했던 윤아는 2015년에 가입하게 됐다. 구체적으로 2014년 망막색소변성증 환자들을 위해 '실명퇴치 자선음악회(한국RP협회)'에 1,000만 원을 기부했고, 또 중구명예홍보대사로 위촉돼 3,000만 원을 후원했다.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닮는다는 사실은 그동안 '버락킴의 칭찬합시다' 시리즈를 통해 반복적으로 주장해왔는데, 윤아와 그의 팬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일본, 중국, 캄보디아, 태국, 페루 등 윤아의 다국적 팬들은 사랑의열매 측에 쌀화환 42톤을 기부했다. 이와 같은 활동은 2012년, 2013년, 2015년에 이어 계속되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스타의 드라마 촬영을 응원하거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기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난 5일 MBC 새 월화드라마 <왕은 사랑한다> 촬영 중인 윤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전 투표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임시완, 홍종현과 함께 투표소 앞에서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자신이 속해 있는 소녀시대에서뿐만 아니라 연기자로서 개인 활동에도 최선을 다하는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여러 분야에서 대중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윤아가 앞으로도 승승장구하길 응원한다. 또, 그가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꾸준히 발휘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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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