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영화인 


꽃에는 그마다 '꽃말'이라는 게 있는데,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기억'이다. 누군가가 특정한 날(이 아니더라도) 물망초를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그가 이 순간을 환기(喚起)시키고자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야 한다. 가령, '4월 16일'에 누군가 자신의 SNS에 물망초 사진을 게시했다면, 우리는 그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잊지 말자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센스를 (적어도 앞으로는) 발휘해야 한다. 여기에서 그 누군가는 바로 '신민아'인데, 그래서 그를 떠올리면 맨 먼저 떠오르는 꽃이 바로 물망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신민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최악의 대답을 미리 제시하자면, 그건 아마도 '김우빈'일 것이다. 설령 그런 연상을 했다고 해도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두 이름을 '동등한 선상'에서 떠올리지 않고, 김우빈'의' 여자친구 정도로 기억했다면 그건 문제가 좀 다르다. 물론 그건 당신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선, 언론의 책임이 아주 무겁다. 



'신민아, 김우빈도 반한 눈빛'

'신민아, 김우빈 사로잡은 미모', 


비단 신민아만 이런 제목의 '제물'이 되는 건 아니다. 공개 연애를 하는 많은 여성 연예인들은 매번 타깃이 된다. 반대의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더 나아가 '내조'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김우빈을 위한 특급 내조' 같은 식이다. 김우빈이 비인두암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에는 더 노골적이다. tvN <알쓸신잡>에서 유시민과 황교익은 강릉 오죽헌을 찾았다가 격분했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들이 그처럼 분개했던 이유는 여전히 신사임당을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만 제한한 채 기억하는 가부장적 역사관 때문 아니었던가.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고, 훌륭한 아들을 둬야만 좋은 여성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었던 조선시대와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최고의 톱스타조차도 다른 누군가의 '무엇'으로 기억되고 불려지는 상황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알콩당콩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은 그 자체로 응원하기로 하고, 우리는 신민아를 신민아라는 이름의 한 인간으로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양민아(신민아의 본면)라는 자연인에 대한 접근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신민아'라는 스타의 진면목을 살펴보는 건 가능할 것이다.


사진 출처 : 씨네그루(주)다우기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인드 컨트롤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사람들에게 '오늘 얼굴이 되게 밝아 보이네?'라는 말을 듣는 게 제겐 '예뻐 보인다'는 말이랑 같아요" 


- 『코스모폴리탄』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얼마 전, 신민아의 인터뷰 내용을 접하고 그가 참 단단하고 강한,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영화와 드라마, CF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활약하며, 최고의 자리에 머물 수 있는 저력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1998년 하이틴 잡지 『키키』의 전속 모델로 데뷔하고, 2001년 SBS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과 영화 <화산고>를 통해 본격적으로 연기자로 데뷔한 이래 신민아는 자신만의 영역을 단단히 구축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신민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랑스러움'인데, '블리'라는 별명의 진정한 주인은 신민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는 '사랑스러움의 대명사'이다. 스크린에서는 <마들렌>(2003), <야수와 미녀>(2005), <고고70>(2008), <키친>(2009),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등에 출연하며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했고, TV에서는 <때려>(2003), <이 죽일놈의 사랑>(2005), <마왕>(2007),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 <아랑사또전>(2012), <오 마이 비너스>(2015) 등에 출연하며 연기의 폭을 점차 넓혀 나갔다.



최근에는 tvN <내일 그대와>에서 기존의 '사랑스러움'에 더해 생활 연기와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이제훈은 SBS 파워FM <박선영의 씨네타운>에 출연해서 "드라마를 찍기 전부터 신민아 씨랑 꼭 함께 하고 싶었던 열망이 컸다"면서 그 바람이 10년 전부터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민아는 '사랑 이야기'를 함께 연기하기에 최고의 파트너가 틀림 없다. 다만, 시청률이 부진했던 점과 그의 연기에 대해서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점은 그가 안고 가야 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흔히 신민아의 사랑스러움은 그의 외적인 모습들 때문인 것으로 강조되곤 했지만, 사실 그 사랑스러움의 비결은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기부한 금액이 14억 원을 넘었다는 소식은 신민아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진가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금액도 금액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꾸준함이 더욱 놀라웠다. 그건 기본적으로 '사랑'이 내재돼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또, '나눔'에 대한 의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진 출처 : 실버스푼 


그동안 신민아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왔는데, 가령 공부방 선생님을 지원하는 사업이라든지 여성 및 어린이 화상 환자를 위한 치료 사업, 독거 노인의 난방비 지원, 탈북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사업 등에 자신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또, 지난 2015년 네팔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1억 원을 기부해 무너진 학교를 재건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기부 행사에 참여하며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얻은 사랑을 다시 대중들에게 되돌려주는 신민아의 삶의 궤적은 뭇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웃을 때마다 깊게 패는 그의 보조개와 상큼발랄한 미소가 덩달아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의 따뜻한 선행이 사람들의 마음마다 온기를 전염시킨다. 신민아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오늘 얼굴이 되게 밝아 보이네? 그리고 이런 바람을 전해주고 싶다. 내일도, 또 그 다음 날도 얼굴이 밝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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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얼마 전,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던 MBC 소속 김소영 아나운서가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몇 장과 그에 대해 달아놓은 짤막한 코멘트를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사진 속에는 남편인 방송인 오상진의 사뭇 진지한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안내문을 읽고 있었고, 심히 낙담한 포즈를 취한 채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원래 진지한 편이지만, 더욱 진지해 보였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이제 김소영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제운전면허를 만들고 렌터카여행을 계획한 남자가 집 식탁에 면허증을 두고온 뒤 낙담하고 있다. 가장의 권위 안녕"


아, 이럴수가! 정말 열심히 그리고 야심하게 렌터카 여행을 준비했을 텐데, 국제운전면허증을 그것도 식탁 위에 놓고 오다니. 사진 속에 드러난 그의 낙담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래도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이렇듯 렌터카 여행을 계획했으면서도 국제운전면허증을 깜빡 잊어버린 채 여행을 떠날 만큼 의외로 허당인 그이지만, 6월 9일을 맞아 그가 결코 잊지 않았던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고(故) 이한열, 1987년 오늘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결국 세상을 떠났던 이한열 열사였다. 


 - 오상진의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angjinoh) -


오상진은 9일 오전 자신의 SNS에 고(故)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과 함께 "강권의 최루탄으로 젊은 생을 마감한 이한열 열사 선배님을 추모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바랐던 이들의 모든 희생이 무의미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는 글을 남겼다. 당시 이한열 열사는 다음 날인 6월 10일 개최될 예정이었던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결의대회를 열고 난 후 시위를 하던 중에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인 무력진압에 의해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됐다.


불법 체포에 이은 고문으로 죽음에 이른 박종철과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은 전 국민적인 분노를 자아냈고, 그 분노의 불길은 6월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 불길은 거침없이 타올라 걷잡을 수 없는 단계까지 퍼져나갔고, 결국 전두환으로부터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권 이양을 약속하는 · 29 선언을 이끌어냈다.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나 다름 없었다. 비록 그로부터 우리가 얻어낸 것이 고작 전두환 정권의 연장인 노태우 정권이었다는 것이 통탄스럽지만 말이다. 



22살에 맞이한 너무도 이른 죽음이었다. 이한열이 그토록 타도하고 싶었던 독재 정권의 원흉 전두환이 올해로 87세를 맞아 천수(天壽)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씁쓸하고 야속한 마음마저 든다. 6월 민주항쟁도 30주년을 맞이했고, 더불어 이한열의 죽음에도 30년이라는 세월이 켜켜이 쌓였다. 6월 항쟁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6월 항쟁은 1987년판 촛불 혁명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한열, 지금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는 이름이다. 가슴 아픈 이름, 뼈아픈 이름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이다. 그런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희생이 무의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기'시켜준 오상진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누구인가. 대통령 투표를 하기 위해 신혼여행 일정을 조절해 권리이자 의무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던 '개념' 방송인이 아니던가. 



지난 4월 5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을 다시 찾아 만감이 교차했던 듯 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쌓여있던 회환을 어찌하지 못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건 단지 오상진, 개인의 눈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MBC의 참담함, 회사의 거대한 부정에 투쟁했던 그가 끝내 사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럼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MBC의 현실에 대해 중첩된 복합적 성격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가 이한열을 떠올렸듯이, 그리하여 우리가 이한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처럼, 오상진의 이름도 대중들에게 소중히 기억되길 희망한다. 맑은 눈망울에 선한 얼굴의 오상진을 보면 여린 듯 하면서도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옳고 그름'에 대해 명확한 기준과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을 가슴 속에 기억하고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역사를 잊지 않은 그가, 그 역사를 만들어 왔던 희생을 잊지 않은 그가 강하지 않다면 누가 강하다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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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결혼식에 왜 안 갔어?"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프로불참러' 조세호의 전성기를 여는 데 결정적인 기여했던 건 MBC <세바퀴>에서 김흥국의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조세호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던 안재욱도 결혼을 하면서 간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안재욱이 그 시기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프로불참러'라는 별명과 함께 조세호의 전성기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농담이니 심각하게 듣진 말기 바란다. 겸사겸사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전성기'의 '임팩트'를 따졌을 때 가장 강렬했던 '스타'를 꼽으라면 아마 안재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994년 MBC 공채 탤런드 23기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안재욱은 단막극 <눈먼 새의 노래>에 출연해 실존 인물이었던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대중들의 시야에 포착됐다. <짝>, <호텔>, <전쟁과 사랑>, <자반고등어>에 연달아 출연하며 자신의 입지를 차분히 다져 나갔다. 그러다 같은 소속사였던 故 최진실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1997년 <별은 내 가슴에>에 출연하게 됐고, 일약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이자 '신드롬'의 주인공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전형적인 캔디형 드라마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별은 내 가슴에>는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49.3%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안재욱은 '백마 탄 왕자님'인 강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는데, 오른쪽 눈만 덮은 독특한 헤어 스타일은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이 따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됐고, 모든 것이 주목을 받았다. 약간 과장하자면 대한민국의 모든 카메라가 안재욱의 뒤를 따라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안재욱의 인기는 측정 불가였다. 


2012년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던 안재욱은 "당시의 엄청난 인기가 부담스러웠다"면서 "그 때 내 나이는 27살이었다. 많은 화제와 이슈를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고 당시의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별은 내 가슴에>가 중국에 수출되면서 '한류스타 1세대'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못하는 게 없는 그야말로 '재인(才人)'이었다. 극중에서 부른 노래 '포에버(Forever)'로 드라마 종영 후 곧바로 가수로 데뷔하면서 자신의 인기를 더욱 공고히 했다. 안재욱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시기였다. 



안재욱은 반짝 스타가 아니었다. MBC <복수혈전>(1997)과 MBC <해바라기>(1998)은 각각 최고 시청률 37. 2%, 38.2%를 기록했고, 그 인기의 중심에 안재욱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MBC <엄마야 누나야>(2000), MBC <천생연분>(2004), KBS2 <오! 필승 봉순영>(2004), KBS2 <미스터 굿바이>(2006)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냈고, 그의 족적은 매번 선명하게 새겨졌다. 주로 드라마에서 활약을 하던 안재욱은 MBC <빛과 그림자>(2011) 이후 뮤지컬에 좀더 집중하기 시작한다.


"제가 생각하는 옮은 삶이란 척하지 않는 삶이에요. 마치 영웅인 척 행동하던 몇몇 사람 때문에 나머지 올바르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피해를 입죠. 안중근 의사 역에 대한 기대감, 책임감, 남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민족 전체의 영웅이니, 명예에 누가 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고 그 도전이 헛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안재욱은 <황태자 루돌프>, <잭 더 리퍼>, <태양왕>, <아리랑> 등에 출연했는데, 최근에는 안중근 의사의 삶과 인간적 고뇌를 다룬 창작 뮤지컬 <영웅>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서도 확고히 자리잡았다. 성남 공연(4월 29일~5월 7일)의 경우에는 좌석 점유율 92%를 달성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기도 했다. 기존에 안중근 역을 맡았던 정성화 등 다른 배우들과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안재욱만의 섬세하고 중후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재욱은 '테리우스'라는 별명의 원조로서 '스타'의 모습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단련시켜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한편, 그가 무려 23년 동안 배우로서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인간적 면모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날고 기는 예능 MC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재치있는 입담과 투덜이 캐릭터로 많은 웃음을 주는 그이지만 속내는 누구보다도 깊고 따뜻하다.


ⓒ 한국일보


지난 5월 19일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는 조재희 씨(EBS <메디컬 다큐-7요일>에 출연)는 시청자 게시판에 "잔잔한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해주신 안재욱씨도 방송이 나간 후 재활치료비를 후원해주셨다. 따뜻한 마음이 진심으로 다가왔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는데, 이와 같은 안재욱의 선행은 소속사도 몰랐던 만큼 훈훈함을 더했다. 실제로 안재욱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선행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가 연예인 자선단체인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바자회 및 봉사활동 등을 하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안재욱은 1억 원 이상을 기부하거나 5년 동안 1억 원을 약정할 경우 가입 조건이 충족되는 '아너 소사이어티'의 멤버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유니세프 코리아를 통해 3,000만 원을 기부했고, 2013년에는 팬들이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보낸 쌀 화한 4.8톤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쓰이도록 했다. 또, 2015년에는 자신의 팬클럽 '포에버'와 함께 고려대 의료원에 1,500만 원을 기부해 결핵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소득층을 위한 진료비로 보태기도 했다. 


안재욱은 "팬들은 늘 책임감을 심어주는 존재였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의 자리에 올랐던 그가 흔히 말하는 '스타병'에 걸리지 않고(설령 걸렸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배우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던 바탕에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목표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을 테지만, 무엇보다 팬들에 대한 '책임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바로 사람에 대한 사랑, 그 따뜻함일 것이다. 안재욱의 노래이자 그의 팬클럽 이름처럼, 그가 앞으로도 '포에버'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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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판듀' 촬영왔어요! 오늘 날씨가 좋은데 저는 방송국 #안이에요"


지난 16일 그룹 '하이라이트'의 양요섭이 자신의 SNS에 남긴 짧은 글이다. 사실, 별다른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니다. 이 글을 읽는 어떤 이들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며 시니컬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매순간이 궁금한 팬들에겐 이런 '소통'이 참 소중하다. 특히 '열애설'이 제기됐을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일견 아무 내용도 없어 보이는 저 문장 안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비밀의 열쇠는 해시태그(Hash Tag)이다.


양요섭은 자신이 '방송국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안이에요' 앞에 굳이 해시태그를 달아 '강조'를 하고 있다. 특별히 강조해야 할 의미가 있는 단어가 아니라 그 의도를 찾도록 만들었는데, '안이에요'는 연음 법칙(連音法則)에 따라 '아니에요'로 발음된다. 결국 자신의 열애설에 대해 '대답'한 셈이다. 갑작스럽게 터진 스타의 열애 소식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팬들의 입장에서 스타의 이와 같은 센스있는 대처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열애설이 터졌을 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연예인들도 수두룩하지 않던가.


또, 구차하게 해명을 하는 것보다 세련된 면도 있었다. 간접적이지만 그 누구도 민망해하지 않고 '웃으면서' 이 상황을 넘길 수 있는 영리한 대응이었다. 실제로 양요섭의 소속사인 어라운드어스 엔터테인먼트는 "두 사람의 열애설은 사실무근"이고 "친한 동료 사이"라고 부인했다. 양요섭이 해시태그로 전한 내용이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는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그 화자가 양요섭이기 때문인데, 그만큼 그는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스타와 팬의 관계는 참으로 오묘하다. 절대적인 지지(가 대부분이겠지만)에서 적정한 거리를 둔 지지까지 그 '태도'도 다양하고, 한때는 모든 것을 다 줄듯 '사랑'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미움'을 넘어 '증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정치인과 지지자'의 관계와도 유사하고, 때로는 '연인'의 관계와도 비슷한 측면이 많다. 어쩌면 '대상'의 문제라기보다는 '관계'가 갖는 '속성'의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됐든 이 관계를 잘 형성 · 유지하지 못하는 스타가 있는가 하면, 양요섭처럼 잘 이끌어가는 스타도 있다. 


과거 비스트 초창기 시절에도 그러했고, 장현승의 탈퇴 이후 5인 체제(윤두준, 용준형, 양요섭, 이기광, 손동운)로 활동하던 시기에도, 큐브 엔터테인먼트를 나와 '비스트'라는 그룹명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하이라이트(Highlight)'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도 양요섭은 팬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 마음에 생채기가 남지 않도록 애썼다. 당연한 일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그다지 흔한 케이스가 아닐 뿐만 아니라 쉬운 일은 더더욱 아니다. 




양요섭이라는 이름을 눈여겨 보게 됐던 계기가 있었는데, 그가 2013년 7월 KBS2 <해피투게더3>에 출연하면서 '위안부 의식 팔찌'를 착용한 것을 기사를 통해 확인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소속사였던 큐브엔터테인먼트는 양요섭의 말을 빌려 "다른 아이돌 가수들도 이 팔찌를 많이 하고 있는데, 본인만 새삼 화제가 된 것 같아 부끄러워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요섭은 팬들로부터 그 팔찌를 받게 됐는데, "팬들 덕분에 '위안부'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며 팬들과 맺고 있는 '건강한' 관계를 언급하기도 했다.


또, 2014년 우리를 집단 멘붕 속으로 빠뜨렸던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세월호 리본을 달고 행사장에 참석해 애도의 뜻을 전했고, SNS를 통해 세월호 기억 팔찌를 착용하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또, 세월호 2주기에는 "4월 16일을 잊지 말아요"라는 글을 게시하며 추모의 마음을 표했다. 세월호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그와 관련한 발언을 입밖에 내는 것조차도 '정치적'으로 해석돼 부담스러운 시기였기에 그의 용기있는 행동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우리 팬들 최고.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정말 행복했고 또 힘들고 슬픈 일들도 여러분들 덕분에 잘 견뎌내고 힘낼 수 있었습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양요섭은 2017년 2월 중증어린이재활병원건립을 위한 기부에 참여하는 등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데 발휘하고 있다. [버락킴의 칭찬합시다] 시리즈를 통해 '스타와 팬은 닮는다'는 주장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데, 양요섭의 팬들은 이른바 '착한 팬덤문화'의 선두주자라 할 만 하다. 양요섭의 팬클럽인 '섭이방'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양요섭이 중학생 시절까지 살았던) 서울시 도봉구에 쌀과 라면과 성금 등을 꾸준히 기부했다. 


또, 양요섭 서포터즈는 양요섭의 생일(1월 5일)과 데뷔(10월 16일)를 기념하며 청각장애인을 돕기 위해 사단법인 사랑의달팽이 측에 기부 활동을 해오고 있다. 양요섭 팬카페 소울메이트도 그의 생일을 맞아 희귀 난치병 어린이를 돕는 비영리단체 '여울돌'에 후원금을 보내고, 여울돌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장난감 등 선물을 증정했다. 이처럼 스타에 대한 사랑을 '기부'라는 형태로 표현하는 팬들의 성숙함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양요섭도 이에 대한 고마움을 SNS를 통해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 이런 '마음'들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고, 아름다운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것 아니겠는가. 매력적인 보이스 컬러와 수준급 가창력으로 여러 드라마의 OST(최근에는 MBC <군주-가면의 주인>에 참여했다) 등에 참여하는 등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양요섭인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뽐내고 더욱 많은 사랑을 받기 바란다. 그리고 지금의 '소통'하는 모습을 통해 팬들과도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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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 이 세상 속에서 /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 수많은 알 수 없는 길속에 /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 언제까지나 너 함께 하는 거야 /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소녀'가 '숙녀'가 됐다.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당연한 일이다. '걸그룹'으로 그 긴 세월을 버텨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선 '인기'가 뒷받침 돼야 하는데, 워낙 경쟁이 심한 업계이다보니 살아남는 것 자체가 어렵다. 설령 인기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7년차 징크스'가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걸그룹(을 포함한 아이돌)들 이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해체의 길을 걷곤 한다. 카라, 포미닛, 2NE1과 미쓰에이, 시크릿, 레인보우 등이 대표적이다.



이 '7년차 징크스'라는 게 유독 7년째가 되면 멤버들 간의 극심한 불화가 생겨 해체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계약 기간'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걸스데이의 유라가 "보통 전속계약 기간이 7년이라서 그렇다"고 증언했듯이, 지난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예 기획사와 연기자 간에 전속 계약을 맺을 때, 그 최장 기간을 7년으로 제한하면서 통상적인 계약 기간이 7년이 됐다. 자유의 몸이 된 계약자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회사 측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할 때, 데뷔부터 1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 '최고'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소녀시대의 힘은 정말이지 놀랍기만 하다. 소녀시대가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막내 서현의 말처럼 "우리는 일이 아닌 가족처럼 지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덕분이리라. 그들이라고 왜 부침이 없었겠는가. 멤버 개인의 문제들도 있었고, 7년차였던 2014년에는 제시카의 탈퇴라는 난관을 겪으며 9명이라는 숫자는 8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소녀시대는 건재하다. 



8인 체제로 재정비를 마친 2015년에는 정규 5집 앨범 '라이온 하트’(Lion Heart)'를 발표했는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여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으로서의 위상을 뽐냈다. 지금의 '소녀시대'가 있기까지 (제시카를 포함해서) 모든 멤버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을 것이다. 또, SM의 전폭적인 지지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굳이 한 명의 멤버를 꼬집어서 칭찬을 해야 한다면, 역시 '센터' 윤아(본명 임윤아)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소녀시대가 전(全)세대를 아우르는 인지도를 얻고, 이른바 '국민 걸그룹'이 될 수 있었던 건 그의 역할이 컸다. 


이미 광고 모델로 활동하며 대중들과 친숙해졌던 윤아는 '연기자'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7년 8월 MBC <9회말 2아웃>을 통해 연기에 발을 들여놨고, 곧이어 2008년 KBS1 <너는 내 운명>에서 '캔디 캐릭터'인 장새벽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소녀시대는 데뷔 2달 만에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가능성이 큰 걸그룹이었지만,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기까지는 역시 윤아의 공이 컸다. 최고 시청률 43.6%를 기록했던 일일연속극의 파괴력은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그 기세를 몰아 MBC <신데렐라 맨>(2009), KBS2 <사랑비>(2012), KBS2 <총리와 나>(2013) 등에서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연기력 논란이 불거지며 '연기돌'이라는 비아냥의 대상이 돼야 했다. 또, 시청률 면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다. 2015년에 소녀시대로 활동을 했던 윤아는 2016년 방영된 중국 드라마 <무신조자룡>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100억 뷰를 넘기며 흥행에 성공하며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어 tvN <THE K2>에서 고안나 역을 맡아 국내 복귀에도 성공한다.


하지만 배우 '임윤아'의 가능성을 인정하기엔 부족함이 느껴졌다. 오히려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 건 7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공조>였는데, 림청령(현빈)에게 반한 엉뚱한 처제 박민영 역을 마치 '맞춤 옷'을 입은 듯 연기해냈다. 스스로도 꾸밈 없는 자연인 임윤아의 모습이 가장 많이 담겼기 때문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윤아를 '연기'에 영역에만 국한해 바라보는 건 곤란하다. 10cm의 권정렬과 함께 부른 '덕수궁 돌담길의 봄'에서는 윤아만의 달콤한 음색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도 했으니 말이다.




"조용히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처음엔 알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나눔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꾸준한 나눔 실천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윤아) 


윤아를 이야기함에 있어 그(와 팬들)의 기부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걸그룹 최초로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이름을 올렸다.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는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 원 이상을 기부하거나 5년 동안 1억 원을 약정할 경우 가입 조건이 충족되는데, 2010년부터 꾸준히 저소득층을 돕는 나눔을 실천했던 윤아는 2015년에 가입하게 됐다. 구체적으로 2014년 망막색소변성증 환자들을 위해 '실명퇴치 자선음악회(한국RP협회)'에 1,000만 원을 기부했고, 또 중구명예홍보대사로 위촉돼 3,000만 원을 후원했다.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닮는다는 사실은 그동안 '버락킴의 칭찬합시다' 시리즈를 통해 반복적으로 주장해왔는데, 윤아와 그의 팬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일본, 중국, 캄보디아, 태국, 페루 등 윤아의 다국적 팬들은 사랑의열매 측에 쌀화환 42톤을 기부했다. 이와 같은 활동은 2012년, 2013년, 2015년에 이어 계속되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스타의 드라마 촬영을 응원하거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기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난 5일 MBC 새 월화드라마 <왕은 사랑한다> 촬영 중인 윤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전 투표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임시완, 홍종현과 함께 투표소 앞에서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자신이 속해 있는 소녀시대에서뿐만 아니라 연기자로서 개인 활동에도 최선을 다하는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여러 분야에서 대중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윤아가 앞으로도 승승장구하길 응원한다. 또, 그가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꾸준히 발휘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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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이지 '혜성'처럼 대중 곁에 나타난 배우가 있다. 지난 2015년 말부터 2016년 초까지 방영됐던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에 캐스팅 돼 이른바 '어남류' 열풍을 이끌었던 류준열 말이다. 덕선(혜리)의 남편은 결국 택(박보검)으로 귀결됐지만, '츤데레' 정환(류준열)에 대한 시청자들의 애정과 지지는 <응팔>이 승승장구하는 데 든든한 축이자 힘이었다. 2016년 한 해동안 가장 많이 검색(네이버 기준)된 신조어 2위에 '어남류'가 이름을 올릴 만큼 그 열풍은 가히 상상초월이었다. (참고로 1위가 '츤데레'였다.)



<응팔>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모두 '꽃길'을 걸었지만, 그 중에서도 류준열의 행보를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가 '배우'로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과 그의 인간적 매력이 뚜렷하게 관철돼 대중들과 소통했다는 점 때문이다. 2014년 단편 영화 <미드나잇 썬>으로 데뷔했던 그는 <동心>(2014), <급한 사람들>(2014) 등 독립영화에만 출연해 오다가 장편인 <소셜포비아>(2015)에서 주연을 받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만난 작품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응팔>이었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응팔>의 멤버(류준열, 고경표, 안재홍, 박보검)들이 tvN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에 합류해 함께 여행을 떠났고, 이 프로그램에서 류준열은 '세미프로 여행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여행 엄청 좋아한다"던 류준열은 이미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중국, 미국, 일동 등을 다녀온 '베테랑'이었고, 그 충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박보검은 "준열이 형은 엄마 같다. 뒷바라지 다 해주고"라며 말했고, 안재홍은 "준열이가 아니었으면 여행이 10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극찬했다. 



<응팔>로 얻은 인기가 워낙 '따뜻했기에' 그 속에 좀더 머무를 수도 있었을 텐데, 류준열은 곧바로 MBC <운빨 로맨스>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해나갔다. 극 중에서 아이큐 200의 천재인 게임회사 CEO 제수호 역을 맡은 류준열은 기존의 '츤데레' 이미지를 보여주는 듯 했지만, 후반부에서는 '사랑꾼'의 면모를 선보이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올해 초 개봉한 <더 킹>에서 태수(조인성)의 고향 친구이자 목포 들개파 조직의 실력자 최두일 역을 맡아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냈다. 


그는 '외로운 늑대'를 연상케 하는 두일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철저한 캐릭터 분석과 몰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우성, 조인성, 배성우 등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 있게 연기를 펼친 그는 오히려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류준열은 전작의 작품에서 맡았던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역할을 맡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변신'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변화를 즐길 줄 알았고, 대중들을 납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믿고 보는 배우, 차기작이 기대되는 배우가 된 것이다.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배우로서의 꿈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친구들을 돌아보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은 게 지금 내 꿈이다" (류준열)


류준열은 '신이 난다'고 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데뷔 2년 만에 스타의 반열에 오른 그는 각종 인터뷰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대중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선항 영향력'으로 되돌려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인기'에 취해 살기보다는 대중과 소통하는 '사람'의 향기를 풍기는 배우로 살아가겠다는 그의 포부에 팬들도 호응하고 나섰다.


"평소 배우 류준열이 강조하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시작했고, 진행 하면서 나눔의 기쁨이 배가되는걸 느꼈다.작은 정성들이 모여 큰 나눔이 되고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과정을 지켜 본 것이 뿌듯하고,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다" (DCINSIDE 류준열 갤러리)


지난 2016년 3월 디시인사이드(DCINSIDE) 류준열 갤러리는 류준열의 영화 및 방송 제작 발표회의 응원 화환을 통해 모은 쌀 3.5톤을 수원 내 무료급식 단체 12개소에 기부했다. 또, 2016년 9월에는 무연고 아동 지원(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위해 1,986만 925원의 후원금을 냈다. 이 금액의 숫자는 류준열의 생일(1986년 9월 25일)을 의미하는데, 스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기부'라는 따뜻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스타와 팬의 이상적인 관계 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디시인사이드(DCINSIDE) 류준열 갤러리


ⓒ 류준열의 팬카페 'All for RYU'


한편, 류준열의 팬카페 'All for RYU'는 지난 2016년 4월 류준열의 생애 첫 팬미팅을 기념하기 위해 밀알복지재단에 쌀 화환 2.5톤을 기부했고, 5월에는 아동주거환경개선을 위해 한국 해비타트에 500만 원을 후원했다. 또, 2017년 3월에는 류준열의 데뷔 2주년을 맞아 사단법인 여울돌에 500만 원을 기부해 22명의 희귀 난치성 질환 아동들을 돕는 데 힘을 보탰다. 이러한 기부는 2016년 9월과 12월에 이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스타의 '꿈'을 위해 함께 사랑을 실천하는 팬들의 성숙된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류준열의 팬사이트 '연어(戀語)'는 기부, 봉사 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데, 2016년 4월 역시 첫 번째 팬미팅을 맞이해 국제구호 NGO인 월드쉐어를 통해 캄보디아에 '류준열 우물 1회'를 기증했다. "류준열은 여러 인터뷰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의 꿈과 함께하려는 마음으로 조그만 정성이지만 후원하려고 한다"는 것이 팬들의 진심어린 마음이었다. 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숲 조성 기금을 모금해 수원에 '류준열 가로숲길'을 조성하기도 했다.


ⓒ 류준열 인스타그램


"사랑이라는 한 마디로 모든 게 해결돼요. 우리가 기적이라는 얘기하는 순간들이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순간들의 힘은 사랑입니다. 꼭 사랑하셨으면 좋겠어요. 사랑이라는 힘으로 자동차를 굴리고 전기도 켜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데일리안> 류준열 "내 삶의 기준은 사랑, 꼭 잡아야죠"


류준열은 '사랑'을 강조한다. 그리고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주변을 밝게 빛낸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 발언은 류준열이라는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따뜻한지 잘 보여준다. 또, 그가 얼마나 강하고 담대한 멘탈을 지닌 사람인지도 알려준다. 그런 에너지가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에게도 옮겨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 평소보다 특별히 고된 하루를 보낸 그대들에게. 어둠속에서도 우리는 해, 낸다"는 류준열의 긍정적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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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구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역시 박보영은 박보영이었다. 


tvN <오 나의 귀신님>(2015)을 통해 차세대 로코퀸으로 부상했지만, 조정석의 그늘이 컸던 게 사실이다.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에서는 '이미지가 소비되고 있다'는 우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JTBC  <힘쎈 여자 도봉순>(이하 <도봉순>)에서 타이틀 롤이자 원톱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도봉순' 역할을 맡아 신통방통한 활약을 선보이며 박보영이라는 이름의 가치를 증명시켰다. 그동안 제기됐던 의문을 가뿐히 뛰어넘는 동시에 로코퀸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바야흐로 '뽀블리' 박보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며칠 사이 '박보영'의 이름이 포함된 뉴스들이 쏟아졌다. 그럴 만도 하다. 구겨지고 찌그러졌던 JTBC 드라마국의 체면을 살리고 기를 팍 불어넣었던 <도봉순> '깔끔하게' 종영했으니 말이다. 시청률 3.829%, 등장부터 화려했다. 첫 회부터 역대 JTBC 금토 드라마 가운데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를 갈아치웠다. 쾌조의 스타트는 계속 이어졌는데, 2회에선 5.758%로 껑충 뛰어 올랐고, 3회에서 6.081%로 안정적 박스권을 형성했다. 그리고 4회에선 8.301%로 급등하며 <도봉순>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제작발표회에서 내걸었던 시청률 공약의 기준이 3%였던 점을 감안하면, <도봉순>이 보여준 이와 같은 상승세와 흡입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비록 10%의 벽을 넘진 못했지만, 최고 시청률 9.668%(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는 등 2차례나 9%를 넘어섰고, 마지막 회에선 8.957%로 훈훈하게 마무리 됐다. 지난 2013년 <무자식 상파자>가 기록했던 9.230%를 넘어서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JTBC 김수길 사장은 촬영장에 직접 뷔페를 선물하기도 했고, <도봉순> 제작진과 출연진은 발리로 포상휴가를 떠나게 됐다. 



이와 같이 표면적인 성과가 뛰어난 데 반해 드라마의 내용에 대한 아쉬움이 '살짝' 남는 건 사실이다. 초반부에 밑밥처럼 자잘히 깔렸던 다양한 이야기들, 가령 청년 실업, 페미니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정의 구현 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신선하게 다가왔던 '여성 히어로'의 활용법도 기대에 못 미쳤다. 또,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했던 스릴러는 중반 이후부터 힘이 빠져버렸다. 게다가 주인공 간의 긴장을 형성해야 할 '삼각관계'는 애초에 균형이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결국 갈 길을 잃은 <도봉순>은 박보영과 박형식의 로맨스에만 집중하기에 이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지만, 창대했던 실험정신에 비하면 용두사미라 할 만 했다. 그럼에도 <도봉순>이 지금의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박보영의 힘이었다.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돼버린 그의 존재감은 드라마를 완벽히 견인했다. 여기에 박형식과의 케미가 더해졌고, '천의 얼굴'이라 할 만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 김원해의 열연이 든든히 받쳐줬다.



우리 드라마가 시도를 하는 건 좋았지만 성 소수자분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내용도 있지 않았나. 저도 반성을 많이 했다. 제가 국두와 민혁의 망상에 대해 꿈을 꾸고 난 뒤 '더러워'라고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촬영할 때 제가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간과 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신 분들이 있어서 관련해서 조금더 공부하고 찾아보고 생각하고 그랬다. 사람들이 좋은 것만 보면 안좋은 것 같다. 안 좋은 평가와 질타도 보면서 배워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스포츠조선>, 박보영 "성소수자 비하 논란, 많이 반성하고 생각했다")


박보영을 '칭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보여준 '연기'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가 끝난 후 여러 언론과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따뜻한 인성과 올바른 가치관은 박보영이라는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만든다. 하나같이 의미가 있어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박보영의 '말말말'은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특히 드라마 속에서 불거졌던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나 '세월호'와 관련해 그가 전한 진심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성 소수자에 대한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에 기민하게 반응해 관련 기사들을 모두 찾아보는 정성을 보이는 배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박보영은 그와 같은 문제제기를 겸허히 받아들이고(실제로 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잘못이었지만), 스스로 공부하고 찾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박보영이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얼마나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이기도 했다. 또, 자신의 연기에 대한 책임감이자 배우로서의 책임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제 도봉순처럼 힘이 셌다면 세월호를 들어 올리고 싶었다. 사람들이 왜 세월호 이야기를 꺼려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세월호는 전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것을 떠나서 꽃 같은 아이들이 당한 일이지 않나. 인터넷에서 봤는데 세월호를 잊을 수 없는 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월호에 대해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많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은 분들도 있다. 그 일에 당연히 우리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광화문을 지나갈 때마다 항상 마음이 아팠다. <힘쎈여자 도봉순> 촬영이 후암동에서 많이 있었는데 주말에는 집회 소리가 들리더라. 그런데 같이 일하던 스태프나 모두가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였다. 다들 촬영이 어려우면 우리가 다른 데를 가야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경제>, '도봉순' 박보영 "세월호, 정치적 문제 아냐..책임감 가져야")

세월호에 대해서 "가볍게 농담처럼 느낄까봐 조심스럽다"면서 "실제로 도봉순처럼 힘이 셌다면 세월호를 들어올리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이 왜 세월호 이야기를 꺼려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박보영은 작심한듯 세월호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쏟아냈다. 그의 말처럼 세월호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무능과 국가의 총체적 부패, 부실이 만들어 낸 참사였고, 여기에 대해 어른들은 '책임감'을 가지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세월호 사태뿐만 아니라 국정 농단의 무한 책임이 있는 한 정당은 부끄러움마저 잊은 채 대통령 후보를 국민 앞에 내세웠다. 그 후보는 "세월호 사건을 정치권에서 얼마나 많이 우려먹었습니까. 더이상 정치권이 거기서 얼쩡대며 정치에 이용하려는 행동은 더는 안 했으면 하기에 저는 안 가기로 했습니다."면서 "3년이 지났는데 대선 앞두고 또 추모행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해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정작 세월호를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어 아이들의 죽음마저 욕 보인 건 당신들이 아니었던가.

그동안 박보영은 아이들을 위해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재능 기부 형태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 2014년 6월에는 빈곤아동을 돕기 위한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어린 시절, 고민 없이 자유분방하게 시골에서 자랐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며 "어린이들은 우리의 미래라고들 한다. 어린이들이 걱정 없이 꿈을 꿀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하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들은 아이들을 위한 '의무'를 다했던가. 그저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박보영의 말처럼,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는 인양됐지만,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가 9명이나 남았고, 세월호와 관련한 수많은 적폐들은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채 찌꺼기처럼 대한민국 곳곳에 들러붙어 있다. 배우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당연히 연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단지 그것뿐일까. 박보영은 자신이 비록 물리적인 힘은 세지 않지만,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정의'를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힘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여기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박보영이 '도봉순'처럼, '정의' 앞에 당당한 배우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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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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