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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Ocean',<힙합의 민족2>에 울려퍼진 세월호

너의길을가라 2016. 12. 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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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강산'은 '박사모', '어버이(연합)' 따위가 불러서는 안된다"


지난 17일,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박사모, 어버이 연합 등 소위 친박 단체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 반대 집회'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합창하는 걸 보고 '기가 차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두 가지 시선이 맞섰다. 창작물은 수용자의 것이고, 누구라도 '노래를 부를 자유'가 있다는 반론이 첫 번째였고, 음악인이 자신의 창작물이 음악적 방향 혹은 정치적 신념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 쓰이는 걸 거부할 수 있다는 게 두 번째였다.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신대철이 '아름다운 강산'이 '저들'의 입으로 불려지는 걸 극도로 꺼렸던던 까닭을 알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알려진 것처럼, '아름다운 강산'은 신대철의 아버지, 록 음악의 대부 신중현이 만든 곡이다. 신대철은 아버지의 회고(『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를 인용하며, '아름다운 강산'은 '각하(박정희)에 대한 찬가를 만들라'는 청와대와 공화당의 요구를 거절한 후 바로 쓴 곡이라고 전했다. "만약 만들지 않으면 다친다"는 협박에도 신중현은 "그런 노래를 만들 수 없다"고 거절했고, 결국 신중현의 노래들은 유신시대 내내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그런 시절이었다. 되지도 않는 이유를 갖다붙여 멀쩡한 노래를 '금지곡'으로 만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노래가 참담한 시절을 재현하고자 애썼던, 그 각하의 딸을 위해 불려진다니, 신대철의 분노가 충분히 이해된다.


'금지곡'을 지정해 진실을 좇는 목소리를 차단하려 했던 1970년대와 문화예술인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탄압하는 2010년대는 과연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촛불'에 의해 '탄핵'이라는 심판을 받고 업무가 정지된 그가 여전히 '권좌'에 올라 있었다면, 시대착오적 발상을 하는 몰락한 정권이 여전히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면 분명 이렇게 외쳤을 것만 같다. "힙합을 금지하라!"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지만, 시대를 역행하는 낡고 병든 그들의 속성은 머리에 핏대를 세우며 그리 소리질렀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노래는, 목소리는,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닌 것을.



MBC <무한도전>은 도끼, 딘딘, 지코, 송민호, 비와이, 개코 등 가장 핫한 힙합 가수들과 함께 '역사 알리기'에 나섰다. 10대부터 2030 세대에 걸쳐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인 '힙합'을 통해 젊은 세대들과 함께 우리 역사를 공유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한편, JTBC <힙합의 민족2>에선 시국을 비판하는 가사를 담은 노래들이 연달아 불려졌다. 지난 27일 방송에서는 '아듀 2016'이라는 주제로 준결승전이 펼쳐졌는데, 브랜뉴뮤직 가문 피타입과 박준면, 양미라는 산이의 'Bad Year'를 편곡해 불렀고, 박준면의 "이 가사 쓰는데 7시간 걸렸어"라는 속시원한 펀치 라인은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날 방송 가운데 단연 압권은 '핫칙스' 치타와 장성환이 부른 '옐로 오션(Yellow Ocean)'이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이 노래는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었다. '탄핵 정국'에서 촛불 집회에 참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치타는 세월호를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든 까닭에 대해 "2014년 일어났던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 이 주제를 이야기하게 됐다. 기도하는 것 말고는 힘이 없었던 어른들의 미안함을 가사에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만큼 조심스러운 마음에 치타와 장성환은 미리 광화문 광장을 찾아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자신들의 생각과 마음을 전했고,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부모님은 그들을 응원했다. 



무대는 감동 그 자체였다. 세월호 참사 당시, 오보로 얼룩졌던 언론들 가운데 '진정성'을 보이며 '진실'만을 좇았던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스크린에 등장했고, 관객들은 자연스레 당시의 참담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요동칠 무렵, "그 땐 눈 감고 눈 뜰 때 숨 쉬는 것도 미안해서 난 입을 틀어막고 두 손 모아. 기도하길 반복 했어치타의 랩이 시작됐고, "밖에 누구 없어요? 벽에다 치는 아우성" 열여덞 살의 장성환은 교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무대를 지켜보던 다른 프로듀서들와 참가자들, 관객들, 시청자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방청석에 자리했던 세월호 유가족들도 오열했다. 


그 땐 눈 감고 눈 뜰 때 / 숨 쉬는 것도 미안해서 / 난 입을 틀어막고 두 손 모아 / 기도하길 반복 했어 단언코 진실도 있었지 인양해야 할 건 진실은 이제 조금씩 떠오르고 있어 규명이 빠진 진상 그들은 의지가 없고구경 하고 다 조작 오보 연기였고 그 뒤로 많은 날이 지났지만 오늘도 기억해  / 우린 촛불과 함께 / 밝혀야 할 것들이 남았기에 / 지금쯤이면 누구보다 아름다웠을 / 피지 못한 꽃들과 희망 도대체 무엇을 / 위한 일이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 아직 거기 있을 / 가엾고 죄 없는 이들과 아이들 거긴 그 사람들의 심장처럼  차갑지 않길 남은 이들의 시린 가슴이 하루라도 빨리 낫길 좋은 곳으로 가야 할 너희들을 아직 맘 편히 놓아주지 못해 미안해 잊지 않을 게요 흐르는 세월 속 잊지 않을 세월 호 우리의 빛 그들의 어둠을 이길 거야 Yellow Ribbons in the Ocean / 진실은 침몰하지 않을 거야 / Yellow Ribbons in the Ocean / Ocean Oh shine / 밖에 누구 없어요 / 벽에다 치는 아우성 / 얼마나 갑갑했어요 / 난 그 때만 생각하면 / 내 눈물이 앞을 가려 / 지금은 2016 잊지 말아야 돼 / 당시에 빅이슈 이 얘길 가져온 이유 / but 시간이 흐르면서 / 잊혀져 가는 세월 / 배워야 할 시기에 / 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했냐고 / 대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 그 시간 동안 / 알 수 없어 바다 보다 / 더 차가운 그들의 맘 / 선배여야만 했던 아이들은 / 여전히 18살 친구로 머물러/ 수많은 사망자 실종자 / 학생뿐 아닌 이들 / 자랑스러운 영웅들까지도 / 거기선 편안하길 바래요 / 아직 봄이 많이 춥네 그때 일처럼 / 거긴 어때요 나의 봄이 아직 시린 이유 / 떨어지는 꽃잎이 너무나 슬픈 이유 / 기우는 배 주위에 파도처럼 / 시간이 흘러가도 잊지마 잊지마 / 눈물에 젖은 꽃잎 우리의 봄 / 반성 없는 그들 미안함은 우리의 몫 / 그 날 이후 코앞까지 드리운 / 시작만 있지 끝이 안 보이는 그리움 / Remember 4. 16 / Remember 4. 16 / 눈물이 차올라 내 가슴 속에 새겨진 / 2014년 4월 16일



분명했다. 내상(內傷)은 생각보다 깊었다. 여전히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었다. 인양해야 할 '진실'이 여전히 바닷속에 갇혀 있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지도 모른다. 진상이 규명되는 그 날까지, 모든 것이 명백히 밝혀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저희 노래의 제일 중요한 핵심은 '잊지 말자'지 '우리 슬퍼하자'가 아니"라는 치타의 말처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 불편해서 '기억'을 외면해선 안 된다. 그것만이 상처입은 우리들의 가슴을 치유하고, 무너져버린 우리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마디 보태자면, 최근 '힙합'이라는 장르의 음악이 보여주는 변화가 놀랍고 반갑다. '그들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비주류의 음악이 어느새 주류의 위치에 올라섰다. 음원 시장뿐만 아니라 방송에서도 힙합의 강세는 두드러진다. 하지만 저항과 분노에서 출발했던 힙합이 상업주의에 물들고, '겉멋'으로 전락한 모양새가 마뜩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결국 '힙합'도 '음악'의 일부이고, '음악'은 곧 '삶'의 한 부분임을. 그리고 그 '음악'은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핫칙스의 무대는 힙합이라는 음악의 힘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 무대였고, 장르를 떠나 음악이라는 예술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줄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줬다. 물론 '저들'은 두려웠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금지곡', '블랙리스트'라는 못난 명단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손을 벌벌 떨며, "젊은이들을 현혹하는 힙합을 금지하라!"고 핏대를 세울지도 모르겠다. 우스운 일이다. 겁내지 마라. 손석희 앵커의 말처럼, '블랙리스트가 오히려 정상인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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