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라라랜드>가 로맨틱하기만 했던 당신에게

너의길을가라 2016. 12. 2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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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라랜드(La La Land) 

1.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 LA의 별명

2. 꿈의 나라, 비현실적인 세계를 의미


우연한 만남이 세 번이나 연속된다면 인연이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미아(에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LA의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처음 마주친다. 정체된 도로가 풀리기 시작했는데, 오디션 대본에 읽느라 집중하고 있던 미아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뒤에 있던 세바스찬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날카로운 경적 소리를 울려 대곤 미아를 잔뜩 노려보고 질주한다. 물론 대찬 성격의 미아도 거기에 뒤지지 않는 반응과 제스처로 화답한다. 와우, 첫 번째 우연은 '악연'이었다. 


두 사람은 이내 또 마주치게 된다. 길을 걷고 있던 미아는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어느 재즈바로 발길을 옮긴다. 이럴수가. 경적을 울리던 고속도로의 그 남자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이라니. 세바스찬은 마침 '해고'를 당했고, 기분이 좋을 리 없는 그는 미아가 건네는 인사를 묵살한 채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친다. 두 번째 우연도 '악연'이었다. 여기에서 끝났다면, 두 사람은 '인연'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곧 세 번째 만남이 이뤄진다. 파티에 참석한 손님과 출장을 온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로 만난 두 사람. 그들의 '운명'이 시작됐다.



"2시간 동안 마법처럼 반짝이는 밤하늘로 데려간다." <텔레그래프>

"대공황 시기 미국 뮤지컬계의 전설 프레드 아스테어가 세운 '뮤지컬 영화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진정 어린 노력이다." <뉴욕타임즈)


<라라랜드>는 <위플래쉬>를 연출했던 데미언 채즐(Damien Chazelle)의 후속 작품이다. 그는 전작인 <위플래쉬>에서 '최고의 재즈 드러머가 되겠다'는 '꿈'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청년 앤드류(마일스 텔러)와 재능을 극한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강압적인 교육 방식을 채택한 교수 플렛처(JK 시몬스)의 이글거리는 욕망과 그 치열한 부딪침을 '음악'을 통해 풀어냈다. 무엇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강렬한 사운드는 관객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전율을 느끼게 했다.


여전히 '음악'은 적절하고, '꿈'을 향한 도전 역시 유효하다. 하지만 '광기'에 차있던 <위플래쉬>와 달리 <라라랜드>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관객들을 홀린다. 아마도 그건 '낭만'이 아닐까. 기회의 땅이자 꿈의 공간 미국의 LA, 도시 전체를 '뮤지컬' 무대로 삼은 <라라랜드>는 아름답다. 2시간 동안 영화를 어루만지는 재즈 선율은 그 음악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세바스찬과 미아로 대표되는 청춘의 꿈과 사랑, 열정과 도전은 역시 그 자체로 아름답다.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가 사람들로 외면받는 현실이 마뜩지 않다. 그는 정통 재즈 클럽을 열어 그 안에서 사람들에게 마음껏 연주를 들려주는 게 목표다. 미아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LA로 왔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틈이 오디션에 참가하지만 번번히 오디션에서 낙방한다. '실패'의 아픈 경험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며 로맨틱한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이뤄지지 않는 꿈, 도달하지 못한 이상은 곧 두 사람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라라랜드>는 마냥 로맨틱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슬프고, 아련하고, 때론 '비릿'하다. <라라랜드>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꿈'과 '사랑'을 다 이룰 순 없는 거라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고, 한 가지를 가지면 하나는 손에서 놓아야 한다고 말이다. 결국 인생은 '선택'이고, 우리는 그 결정의 순간에 서게 된다고. 무엇을 잡을지는 결국 너의 몫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만약(What if)'이라는 상상을 통해서만 그 선택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건 행복한 반추(反芻)일까, 쓸쓸한 되새김일까.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데미언 채즐의 세계관은 제법 비관적이다. 혹시 그건 재즈 드러머를 꿈꿨지만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버드 대학 영상학부에 입학하며 영화 감독으로 삶의 방향을 바꿨던 그의 개인사와도 연결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의 영화들이 대한민국에서 더욱 사랑받는 까닭(21일까지 누적 관객 수 1,509,373명)도 한국 관객들이 '낭만' 아래 깔려 있는 '비관'을 직관적으로 낚아챌 수밖에 없는 씁쓸한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1960년대 프랑스 감독 자크 드미의 작품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데미언 채즐은 <라라랜드>를 통해 클래식한 뮤지컬 영화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안정적인 연기와 두 배우 간의 호흡이 돋보이는 춤과 노래는 경쾌하고 흥겹고 때론 가슴 시리기까지 한다.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추천할 만한 영화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색하거나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단순히 박스오피스 순위만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이라면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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