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죽인 살인자가 된 검사 박정우(지성). 눈을 떠보니 기억은 사라졌고, 인생은 뒤바껴 있었다. 납득하기 힘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반면, 그가 상대했던 희대의 망나니 차민호(엄기준)는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 형마저 자살로 위장시켜 죽여버렸다. 그리곤 형의 자리를 꿰차고 차명그룹을 이끌어 나간다. 대척점에 선 두 주인공의 극단적 대비, 시작은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몰입'이 되지 않았다. 2015년 MBC 연기 대상에 빛나는 지성의 단단한 연기가 드라마를 가득 채웠는데도 말이다. 



역시 허술하고 어설픈 설정들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발코니 턱을 잡았다는 이유로 지문이 지워져 사망자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건, 작가의 기발한 '재치'라기보다는 유치한 '억지'처럼 여겨졌다. 공교롭게도 형의 아내인 나연희(엄현경)는 형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가진 '비밀'을 안고 있었고, (또 다시) 공교롭게도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차민호는 형수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또, 박정우가 계속해서 지문을 의심하며 압박해오자 아예 지문을 훼손해버린다. 그러면서 "박정우, 넌 날 절대 못 잡아"라며 웃는 꼴이라니.


그나마 2회까지는 허술했을지언정 가지고 있던 '패'를 몽땅 꺼내놓으며 제법 '빠른' 전개를 보여줬다. 하지만 30일 방송됐던 3회의 전반부 약 30분의 분량은 없어도 무방한 내용이었다. '박정우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그래서 엄~청 괴로워한다'의 무한 반복이라고나 할까? 행복했던(?) 과거사의 나열이라든지 교도소 내의 동료(?)들이 '자기소개'를 늘어놓는 장면은 지루하기까지 했다. 주변인물 소개는 차라리 '자막'으로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갔어도 충분했을 텐데, 굳이 '느릿한' 전개를 고집할 이유가 있었을까. 


최근 드라마들의 트렌드는 '빠른 전개'라 할 수 있는데, 여전히 기억을 되찾지 못한 박정우의 '오열'과 '고함'은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이끌어내기보다는 '고구마' 같은 답답함을 자아냈다. <피고인> 관련 기사에 달린 "100부작 입니까?"라는 댓글은 그야말로 '사이다'였다. 압축적으로 그려냈다면, 2회 안에 충분히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용들이었다. 아무리 지성의 연기가 훌륭하고, 시청자들이 그의 열연을 보길 원한다고 하더라도 드라마 자체가 늘어지는데 배겨낼 재간은 없다. 



지난 3회의 하이라이트는 변호사 서은혜(권유리)가 박정우를 대면하고, 그의 '억울함'을 풀어줄 실마리를 찾아내는 장면들이었다. 서은혜는 현장 검증 동영상을 어렵사리 구해, 그것이 '대역'을 써서 촬영됐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결정적인 '힌트'는 바로 박정우가 왼손잡이였다는 사실이었다. "어설프지 않아요? 저는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으로 찌르니까. 동영상 속의 남자도 어설프더라고요, 저처럼." 고작 동작이 어설프다는 이유로 '대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변호사나, 이를 추궁하자 순순히 인정하는 검사 모두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서은혜는 박정우가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우습게도 그에게 뺨을 맞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왼손잡이는 무조건 왼손으로 뺨을 때릴 것이라는 전제도 '변호사'의 것이라기엔 한심한데, 서은혜가 박정우로부터 뺨을 맞은 사건은 더욱 우스꽝스럽다. 바로 자신의 피고인을 위해 검사실에 숨어들어 관련 자료를 훔치다가 들통나 뺨까지 맞은 것이다. 검찰청에 CCTV는 괜히 있을까. 또, 이와 같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능력 자체가 없다는 걸 몰랐을까? 그렇다고 변호사의 뺨을 때리는 검사도 과한 설정이 아닌가. 


30일은 MBC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이 첫선을 보였던 만큼 <피고인>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그런데도 고구마처럼 지루한 흐름, 어설픈 설정과 허술한 전개로 일관한 건 의아하다. 실제로 <역적>은 8.3%(TNMS 기준)로 동시간대 2위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한편, <피고인>은 12.8%로 2회의 12.9%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역적>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피고인>이 4회에도 비슷한 문제점을 노출하게 된다면 '역전극'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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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1950년대 파리 지성의 본거지라고 불렸던 곳, 생제르맹데프레(St-Germain-des-Prés) 지역을 찾은 건 여행 3일째였다. 낯섦과 어색함이 어느 정도 사라진 시점, 약간의 '익숨함'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도,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먹고 마실 것을 사는 것도, 파리의 거리를 배회하는 것도, 어느덧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이 곳을 떠올리면, '여유로움' 혹은 '느긋함'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실제로 이 곳에서 느꼈던 분위기가 그러했고, 나 스스로도 여행에 있어 안정감을 찾았던 순간이었다.


생제르맹데프레 지역은 파리 6구로, 센 강의 좌안(左岸, 하천의 왼쪽 기슭)에 있는 지역을 일컬는다. 루브르 박물관이 있는 튈르리 지역의 아래쪽이다. 생제르맹데프레라는 이름은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 건립에 관여했던 생 제르맹으로부터 비롯된 이름이다. 권역별로 분류하면 다른 지역으로 구분되긴 하지만, 파리 제3, 4대학교가 들어서 있는 소르본 대학(La Sorbonne)이 있는 라탱 지역과 인접해 있고, 파리 제5, 6대학교가 위치해 있어 대학생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기도 하다. 아무래도 활기찬 젊음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뤽상부르 궁전과 공원, 생쉴피스 성당, 생제르맹데프레 성당, 들라크루아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생제르맹데프레 지역에서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을 정리하면 이 정도일 텐데, 우선, 뤽상부르 공원(Jardin du Luxembourg)으로 달려가보자. 뤽상부르 궁전은 파리에서 가장 큰 공원인데, 앙리 4세의 왕비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Marie de Medicis)를 위해 지어졌다. 앙리 4세에 대해서는 마레 지구의 쉴리의 집을 지나면서 잠깐 언급했던 기억이 있다. 현재 뤽상부르 궁전은 프랑스 상원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뤽상부르 공원의 입구로 들어서면 왼편으로 메디시스 분수(Fontain de Medicis)가 있다. 이 궁전의 주인이었던 마리 드 메디시스를 위한 것으로 이탈리아 석굴 양식의 연못 그리고 바로크 양식의 분수대로 꾸며져 있다. 사진을 찍지 않고 지나치기 쉽지 않다. 메디시스의 분수를 지나면 널찍한 공원이 펼쳐지고,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드디어 뤽상부르 궁전의 전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궁전 앞쪽으로 분수와 잔디들이 펼쳐져 있는데,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만하다. 벤치가 놓여져 있어 담소를 나누며 쉬어가기에도 좋다.


- 뤽상부르 궁전의 모습 -



궁전의 우아함과 공원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건, 공원의 잔디와 꽃밭(이라고 해야 할까?)를 관리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꽃을 심는 데 간격을 잴 수 있는 도구 등을 사용하는 듯 보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나이가 젊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일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실제로 대한민국에선 그러하니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공원의 잔디에 물 조리개로 물을 주고 있는 노동자는 20대 여성으로 보였다. 게다가 그들은 여유로웠다. 즐거워 보였다.


그러니까 '노인' 노동자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사회 보장 정책이 안정적으로 정착된 덕분이 아니겠는가?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데, 프랑스가 115년이 걸렸던 반면, 대한민국은 18년이 소요될 전망이라고 한다. 그만큼 준비가 미비할 수밖에 없다. (준비라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에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활동적 노화지수'를 분석한 서울연구원 보고서(윤민석 부연구위원과 서명희 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의 노인들의 고용률과 사회 참여는 높지만, 그 절반이 빈곤 위험에 놓여 있다고 한다.


구체적인 수치를 확인해보자. 2015년 발표된 통계청의 사회지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49.6%에 달했다. 그뿐인가. 자살률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은데, 인구 10만 명당 55.5명으로 OECD 평균 12명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르몽드에서 프랑스2 TV, Harmonie Mutuelle 보험사와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70세 이상 노년층의 89%가 자신은 행복하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프랑스의 노인들은 대부분 충분한 연금소득이 있고, 그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안정적 생활을 하고 있다.


- 뤽상부르 공원의 여유로운 풍경 -



뤽상부르 공원을 느긋하게 구경했다면, 생제르맹데프레 지역의 유명한 두 성당을 둘러볼 차례다. 공원에서 이동하는 동선에 생쉴피스 성당(Église Saint-Sulpice)이 바로 있으니 찾기는 어렵지 않다. 생쉴피스 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노트르담 대성당 · 사크레쾨르 성당과 함께 파리의 3대 성당이라 불린다. (그러고보니 이번 여행에서 파리의 3대 성당을 모두 방문했다.) 길이가 120m, 폭이 57m, 높이가 30m로 상당히 크다. 성당의 크기가 큰 것처럼 파이프 오르간도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이번에는 생제르맹데프레 성당(Église St-Germain-des-Prés)이다. 앞서 '생제르맹데프레'라는 지역명이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에서 비롯됐다고 했는데, 바로 그 수도원의 부속 성당으로 세워진 것이 생제르맹데프레 성당이다. 비록 파리의 3대 성당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는 타이틀의 주인공이다. 542년 순교자 생 뱅상의 유품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졌고, 576년 생 제르맹이 매장되면서 이름이 생제르맹데프레 성당으로 바뀌게 된다. 방문 당시에는 내부 공사 중이었다. 


- 생제르맹데프레 지역에도 마레 지구에 못지 않은 예쁜 거리가 펼쳐진다. -




"아름다움은 발견되지만, 단 한번 특별히 정해진 역사적 순간에만 발견될 뿐이다. 그러므로 그뒤에 오는 천재에겐 너무 불행한 일이다"


<키오스 섬의 학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그렇다, 바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작품들이다. 생제르맹데프레 지역에는 국립박물관으로 운영되는 들라크루아 박물관이 있다. 들라쿠르아는 뛰어난 상상력과 지성, 예민한 감수성을 화폭에 담아냈던 당대의 천재였다. 스스로는 거부했지만, 낭만주의 화풍의 거장이기도 하다. 또, 인상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2층 건물로 돼 있어 감상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니 꼭 방문하길 바란다. 


- 귀스타브 쿠르베, <오르낭에서의 장례식> -


이제 남은 건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잔뜩' 만날 수 있는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이다. 파리는 박물관(미술관 포함)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곳인데, 한 가지 꼭 알아둬야 하는 '팁'이 있다. 바로 박물관 별로 휴일이 다르고, 연장 오픈하는 날짜가 다르다는 것이다. 가령, 루브르 박물관은 화요일에 휴관이고, 수요일에는 21시 45분까지 열린다. 또, 오르세 미술관은 월요일이 휴관일이고, 목요일에 21시 45분까지 개장한다. 여행 계획을 짤 때, 이 부분을 놓치면 큰 낭패를 보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루브르 박물관은 수요일에, 그리고 오르세 미술관은 목요일에 방문하는 게 좋다. 워낙 방대한 작품들(루브르 박물관의 경우 작품마다 1분씩 감상한다고 하면 꼬박 4일이 걸린다고 하는데, 오르세도 만만치 않다.)이 전시돼 있기 때문에 연장 운영하는 날이 아니면 아쉬움이 반드시 남기 마련이다. 짧은 여행 일정에서 한 곳을 두 번 방문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수요일 저녁은 루브르, 목요일 저녁은 오르세에 '몰빵'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박물관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쯤에서 마무리 짓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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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닭의 해,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우연처럼 다가온 필연이랄까, 천간지지(天干地支)의 조합이 그야말로 상징적이다. 한바탕 시끌벅적했던 설 연휴도 어느덧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명절을 지내다 문득 이런 '삼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참 듬직할 것 같다. 그의 '선(善)'하고 밝은 기운이 온 집안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다. 누구냐고? 바로 배우 '차인표'다. 67년 생인 그는 어느덧 (놀라지 마시라!) 5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삼촌' 같은 이미지로 대중 곁에 남아 있다. 



차인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그가 남겼던 2016년 최고의 '명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12월 31일 '2016 KBS 연기대상'에서 라미란과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한 차인표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50년을 살면서 느낀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둘째,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셋째, 남편은 결코 부인을 이길 수 없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삶의 지혜와 철학이 담긴 한마디였다. 실제로 조금씩이나마 '어둠'이 걷히고, '거짓'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1993년 MBC <한 지붕 세 가족>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데뷔했던 차인표(MBC 공채 탤런트 22기)는 1994년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를 통해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다. '터프가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가죽 재킷과 오토바이, 그리고 색소폰을 부는 섹시한 모습은 차인표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근육질 상반신을 과감히 노출(지금에야 당연하다시피 여겨지는 퍼포먼스지만, 당시엔 파격적이었다.)하면서 대중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차인표는 단 하나의 작품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함께 출연했던 신애라와 열애를 시작해 이듬해인 1995년 결혼에 '성공'한다. 거칠 것이 없는 탄탄대로였다. 물론 '결혼=성공'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어딜 가나 "배우자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큰데, 그런 면에서 나는 장가를 진짜 잘 갔다"고 말하는 '애처가' 차인표의 생각을 전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그가 '이등병' 때 결혼을 했다는 점이다. 



재미교포였던 차인표는 굳이 군대를 가지 않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한다. 훗날 차인표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군대에 안가면 편법을 쓰거나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하긴 싫었다"고 밝혔다. 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하늘이 돕는 것일까. 제대 후 복귀작이었던 MBC <별은 내 가슴에>는 최고 시청률 49.4%를 기록하며 한마디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차인표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한 차인표는 안주보다는 변화를 선택했다. MBC <왕초>(1999)에서 거지들의 왕 '김춘삼' 역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 변신에 나선 것이다. 자신을 따라다녔던 '재벌', '카리스마' 라는 제한된 카테고리를 벗어던지길 원했지만,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반듯한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겠는가. 이후 MBC <영웅시대>(2005), MBC <하얀거탑>(2007), SBS <대물>(2010) 등에서 자수성가한 기업가, 의사, 국회의원 등 선이 굵은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나도 웃기고 싶은 욕구가 있다"며 시트콤 출연을 결심했고, "19년 동안 안 망가지고 버틴 차인표가 망가지길 원하시는구나 싶었다. 대중이 원한다면 잘 망가지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후 KBS2 <선녀가 필요해>(2012)에서 잔뜩 망가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코미디 연기는 차인표에겐 큰 자산이 됐던 것 같다. 최근 출연 중인 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2016)에서는 라미란과 호흡을 맞추며 좀더 편안한 연기를 선보이며 보다 친숙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게 됐다. (비록 드라마는 산으로 가고 있지만..)



"배우는 내 직업일 뿐이다. 우리 자식세대가 우리 때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소명이다." (차인표)


이처럼 차인표가 20년이 훌쩍 넘는 기간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배우로서의 신뢰감을 줄 수 있었던 바탕은 언행일치를 이룬 올곧았던 그의 삶 자체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차인표는 신애라와 함께 2005년부터 컴패션(기독교 기반의 국제 구호 기구, 전 세계 가난한 어린이를 후원자와 1:1 결연해 양육한다)을 통해 나눔을 실천했다. 또, 방글라데시, 에디오피아, 필리핀 등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어린이 후원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처음 우리 두 아이를 입양했다는 이야기를 남편 차인표씨가 주변에 밝혔을 때 여기저기서 칭찬을 받았다고 했다. 남편은 '입양은 칭찬이 아니라 함께 축하받아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신애라)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두 딸을 공개 입양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공헌했다. 또, '공개입양'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입양을 해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는 건 의무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조언을 건네며 용기를 북돋기도 했다. 2008년에는 탈북자 아버지와 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크로싱>에 출연했고, 2009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 『잘가요 언덕』으로 소설가로 데뷔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사회의 선(善)을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2014년 기부협동조합 신협사회공헌재단 홍보대사로 위촉된 차인표는 2015년 '밥상 공동체 연탄은행'에 연탄 20만 장(약 1억 4천만 원)을 기부했고, 겨울마다 취약계층 가정에 연탄을 전달하는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에게 왜 이런 활동을 계속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대중들이 주신 인기 덕분에 분에 넘치게 부유하게 살 수 있었다. 나는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대중들이 제게 주신 돈을 다시 돌려드리는 것 뿐이다" (<이데일리>, 차인표 "선행? 대중이 주신 돈, 돌려 드리는 것 뿐")


무엇보다 차인표가 빛나는 까닭은 그가 대중들의 슬픔과 분노 속에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차인표는 신애라와 함께 임시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조문했고, 지난해 탄핵 정국에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광화문 광장을 찾아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기도 했다. 대중들이 슬픔에 잠겼을 때 그들을 위로하고, 대중들이 분노에 찼을 때 앞장 서 대신 화를 내주는 것이야말로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을 대변하는 '배우'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차인표는 그 누구보다 '배우'로서 뜨거운 삶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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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미씽나인>은 여러 가지가 녹아있는 거대한 작품이다. 9명의 인물에 많은 사건들로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 마디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최병길 PD)


레전드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과 회사 대표, 매니저, 신입 스타일리스트를 태운 비행기가 기상 악화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모두 죽었을 거라 예단하고 있을 무렵, 한 명의 생존자가 나타난다. 바로 신입 스타일리스트 라봉희(백진희)였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9명의 생존자가 있었고, 무인도에 표류됐었다고 증언한다. 사건의 진상은 '무인도 생존기'로 급반전된다. 이제 당황스러운 건 정부다. '전원 사망'은 간단한 일이었지만, 생존자가 나타나면서 또 다시 '진상 파악'이라는 골치 아픈(?) 일을 떠안게 된 것이다. 



서준오(정경호) : 밴드 그룹 드리머즈의 리더, 한물 간 스타

최태호(최태준) : 밴드 그룹 드리머즈의 멤버, 주목받고 있는 배우

이열(박찬열) : 밴드 그룹 드리머즈의 멤버

윤소희(류원) : 탑 여배우이자 한류여신

하지아(이선빈) : 탑 클래스로 뜨기 시작하는 여배우

황제국(김상호) : 레전드 엔터테인먼트 대표

태호항(태항호) : 레전드 엔터테인먼트 실장

정기준(오정세) : 준오의 매니저

라봉희(백진희) : 서준오의 스타일리스트, 유일한 생존자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조희경(송옥숙)을 필두로 진상 파악이 이뤄진다. 하지만 조희경의 목적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찾아 온 기자의 비아냥에 "사람들은 진상 규명 철저히 해서 사건의 실제적인 일을 파헤쳐 밝히는 게 내 일일 거라 생각하는데, 그런 거 내 일 아니야내 일은 사람들이 이 일을 빨리 잊게 만드는 거. 연예인 애들 죽은 거 빨리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거 그게 내 일이야"라며 깔끔하게 제압해버린다. 그의 태도와 입장이 낯설지 않은 건 왜일까? 


라봉희는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왔지만, 무인도에서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생존을 궁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모든 걸 털어놔. 기억해 내!'라는 정부 측의 압박과 함께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 무인도에서의 기억들은 라봉희 자신을 괴롭힌다. 최면 치료를 받던 중 윤소희(류원)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이 소희를 죽였다고 자백하면서 라봉희의 위치는 또 다시 격량에 휩쓸리게 된다. 소희의 친오빠인 검사 윤태영(양동근)의 접근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진실을 추구하는 윤태영은 결국 라봉희를 돕게 되겠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니 말이다.



MBC <미씽나인>은 분명 기존의 드라마들이 걷지 않았던 길을 걷고 있다. 무인도 표류기라니! 그래서 색다르고 신선하다. 현실의 다소 무거운 분위기와 무인도에서의 생존기가 교차로 편집되면서 드라마는 흡인력 있게 다가온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코미디가 배어 있는데,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장르적 이질감을 충분히 커버한다. 이 상황에서 웃겨버리다니, 하며 빠져드는 식이다. 특히 정경호는 한물 간 스타 서준오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는데, 뛰어난 순발력과 애드리브는 그야말로 발군이다.


관건은 9명의 생존자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얼마나 설득력 있고, 쉽게 풀어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과연 무인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윤소희가 목격한 최태호의 '살인'의 진실은 무엇일까. 밴드 그룹 드리머즈의 멤버였던 신재현(연제욱)의 죽음을 둘러싼 서준오와 최태호의 갈등은 해소 됐을까. 정말 라봉희는 그의 자백처럼 윤소희를 죽였을까. (어쩌면 이 세 가지 의문은 한 가지 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또, 4회에 등장한 '도둑' 부기장이 말한 '4명만 탈 수 있는 구명보트'는 어떤 변화를 이끌어 올 것인가.



"라봉이 걔, 생존자 만들꺼야, 살인자로 만들꺼야?"

"아직 살인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온 게 아니니까.."

"오 조사관, 내가 지금 증거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 뭐가 우리한데 유리한 거 같냐고, 생존자 살인자 이 둘 중에서"

"정무적인 판단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거 하라고 우리한테 비싼 세금으로 월급 주는 거야"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조희경과 오 조사관(민성욱) 간의 대화


시청자들이 갖기 시작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미씽나인>은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을까. 또, 현실에서 라봉희를 둘러싼 정부와 특별조사위원회, 그리고 검사 윤태영 간의 갈등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가. 극단의 상황에 놓이게 된 각 인물들의 반응과 대응, 변화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민낯을 보여줄 <미씽나인>은 2017년 새해 가장 흥미로운 드라마임에 분명하다. 이미 떡밥은 잔뜩 뿌려졌다. 얼마나 내실 있게 거둬들일 것인가는 오로지 <미씽나인> 제작진의 역량에 달려있다. 


물론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미씽나인>의 사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출발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는 15.6%(2회 시청률)로 멀찌감치 달아나버렸고, 또 하나의 기대작이었던 KBS2 <김과장>은 '역대급 웃음'이라는 찬사와 함께 7.2%를 기록하며 조금 앞서 나갔다. 비록 경쟁작들에 밀려 시청률은 '표류'하고 있지만(4회 시청률은 5.3%), 부디 지금의 참신함을 끝까지 잘 마무리지어 '웰메이드 미스터리'로 큰 족적을 남기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감춰진 진실을 반드시 '구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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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잊혔던 '낭만'에 다시 불을 지피며 월, 화를 굳건히 책임졌던 SBS <낭만닥터 김사부>의 빈자리, 그 허전함을 '일단' 채운 건 SBS <피고인>이었다. 비록 <낭만닥터 김사부>로 쏠렸던 시청률 27.0%(번외편)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1회(14.5%), 2회(14.9%)의 시청률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만 하다. 다만, 기가 눌려 있던 KBS2 <화랑>이 10%대 시청률로 뛰어 올랐고, MBC에선 저조한 시청률에 머물렀던 <불야성>의 뒤를 이어 '홍길동'의 삶을 다룬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을 선보일 예정이라 치열한 3파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치즈인더트랩>, <또, 오해영>, <굿 와이프> 등 화제작을 통해 월화 드라마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던 tvN이지만 최근에는 그 상승세가 다소 잠잠해진 분위기다. 지난 16일 첫 방송을 시작한 <내성적인 보스>는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5>로부터 넘겨 받은 3% 대의 시청률마저 잃고 1.970%까지 하락했다. 주인공으로 발탁된 박혜수의 연기력 논란까지 불거지며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당분간 3파전의 양상으로 진행될 월화 드라마의 판도에서 가장 앞서 있는 건 역시 <피고인>이지만, 앞서 '일단'이라는 전제를 단 까닭은 <피고인>의 사정이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자.



<피고인>은 (복잡한 듯 보이지만) 단순하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명확하다. 이 말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감정을 이입할 대상, 즉 '응원'할 대상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주인공 박정우(지성)는 검사다. 하지만 딸과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힌다. 검사에서 피고인으로, 그야말로 처지가 180도 바뀐 것이다. 물론 그는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한다. 기억을 못하니 죄수복을 입고 교도소에 있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이럴수가, 4개월의 기억이 몽땅 사라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진실은 무엇일까? 이처럼 <피고인>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가지 단서는 있다. 박정우가 검사 시절 수사했던 차명그룹 차민호(엄기준) 부사장이다. 차민호는 한마디로 망나니 재벌 3세다. 그는 야구 방망이로 여성을 때려 살해하고, 자수를 권하는 쌍둥이 형 차선호(엄기준, 1인 2역)마저 죽인다. 그리고 그룹의 대표였던 형의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 차민호라는 캐릭터를 역대 최악의 악인으로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엿보인다. 박정우는 차민호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그가 형마저 죽였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압박해 들어간다. '비밀'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 대립 과정에서 차민호가 박정우를 위기로 몰아넣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처럼 굵직한 사건들은 이미 나열됐고, 그 내용들은 상당히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또, 전개 속도가 빨라 속도감도 있다. 웬만한 패는 다 보여준 셈이다. 그런데 흥미롭지는 않다. 이상한 일이다. 다시 점검해 보자. <피고인>은 <베테랑>의 '유아인'을 뛰어넘는 망나니 재벌 3세를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지만 전혀 신선하지 않다. 오히려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게다가 '미스터리'를 강화하기 위해 사용한 '장치'들은 통속적이기까지 하다. 일란성 쌍둥이, 형수와 불륜으로 낳은 아이의 존재, 게다가 기억상실증이라니! '막장 드라마'에서나 사용됐던 설정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정작 더 큰 문제는 '허술함'이다. 일란성 쌍둥이마저도 지문이 다르다는 건 상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99% 일치하는 지문은 차민호가 꾸민 짓일 게 분명하다. 서류 등을 위조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3회 예고편에는 차민호가 자신의 지문을 지져 버리며 웃음을 짓는데(아, 순진하기도 하여라), 그런다고 '위장'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게 더 우습다. 신원을 확인하는 데 있어 지문은 가장 '손쉬운' 방법일 뿐,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차민호의 유서 필적을 확인할 것이 아니라(그건 당연히 똑같을 테니까), 차선호로 위장한 차민호가 차선호의 필적을 흉내낼 수 있는지 파악하면 그만 아닌가? 



이처럼 빈틈 많은 시나리오는 첨단 공포증(모서리 증후군)마저도 간단히 극복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위기를 극복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고자 한 것인가? 4개월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 박정우의 상태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기억상실과는 다르다. 감당할 수 없는 사건 때문에 자기방어기제가 발현된 것"이라는 정신과 정문의의 설명이면 그만이다. 드라마 만들기 참 쉽다. 차민호의 존재를 알아채린 두 명, 그러니까 형수 나연희(엄현경)은 "은수가 누구 아들인지" 한마디에 간단히 제압되고, 아버지는 "아들 두 명을 다 잃을 수 없다"는 자기 합리화에 모든 것을 용납한다. 참 우스꽝스럽다. 앞으로 이 드라마를 계속 시청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남은 건 지성과 엄기준의 치열한 연기 대결이다. 2015 MBC 연기 대상에 빛나는 지성의 연기력이야 흠잡을 곳 없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오열하는 장면은 '강제' 감정이입을 시킨다. 뮤지컬 무대를 주름잡고, 드라마 영역까지 보폭을 넓힌 '엄배우' 엄기준도 빼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차민호가 죽은 형 앞에서 울면서 웃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렬했다. 다만, 엄기준의 경우에는 다소 과잉돼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1인 2역을 소화해야 하는 데다 희대의 악인을 연기해야 하는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뮤지컬이나 연극에서처럼 과장된 연기가 카메라에 비칠 때마다 몰입이 깨지는 건 아쉽기만 하다. 



<피고인>은 지성과의 '악연'으로 얽힌 국선변호사 서은혜(권유리)를 히든 카드로 제시했다. 판사한테도 대들 정도로 '싸움닭'이지만, 따뜻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캐릭터다. 한마디로 능력은 부족하지만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뻔한 캐릭터'다. '소녀시대' 출신 연기자라는 딱지를 달고 출발점에 섰지만, 2회까지 보여준 그의 연기는 딱히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렇다고 칭찬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그의 연기나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살벌한 연기력을 보일 지성과 엄기준 사이에서 '서은혜'라는 캐릭터가 제대로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진실', '정의'라는 담론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지만, 무작정 고래고래 외친다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안경' 하나로 다른 사람도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이야기와 설정의 허술함, 논리의 비약을 '속도감' 하나로 덮고 가려는 발상은 '날림 공사'와 무엇이 다를까. 결국 권선징악을 향해 달려갈 <피고인>은 어떤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과연 3회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러다가 전작인 SBS <딴따라>에서처럼 지성 혼자(엄기준이 있어 '둘'이라 해야 할까?) '열일'하다 끝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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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성공한 드라마(를 넘어 '명품 드라마'라고 해도 좋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게 무엇일까?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시나리오는 당연하고, 이름만으로도 설렘을 주는 주연 배우들의 존재도 기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특별한' 무언가가 하나 더 있기 마련이다. 그건 바로 '명품 조연' 아닐까? 물론 어느 드라마에나 '조연'은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있다. 그런데 '기억에 남는' 조연은 흔치 않다.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연기는 배우의 몫이지만, 어떤 연기를 맡기는지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주인공'의 친구 · 언니 · 이모 · 삼촌처럼, 주인공에 종속된 인물을 연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두각을 나타내는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그건 오로지 연기자의 '개인기'로 일궈낸 성과일 뿐이다. 알량한 '인지도'나 상업적인 '스타성'이 아니라 오로지 '연기'만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온 연기자들을 주인공의 주변 인물로 소비하는 건 작가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반면, 역량 있는 작가들은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얼마 전 종영한 SBS <낭만닥터 김사부>를 떠올려보자. 시청자들에게 잊고 살았던 '낭만'을 일깨우고, 사회 고발극의 진가를 보여줬던 이 드라마는 마지막회(20회)에서 무려 27.6%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매우 성공적인 마무리를 지었다. 극을 이끌어 나갔던 김사부 한석규와 유연석 · 서현진의 연기야 칭친하기 입을 아플 정도지만, 주연 배우들이 마음껏 연기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놓고 뒤를 든든히 받쳐준 건 '돌담 병원'을 지켰던 여러 조연 배우들이었다. 특히 수간호사 오명심 역을 맡았던 진경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오명심은 돌담병원에서 나무처럼 버티고 있는 사람, 공기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다른 드라마와 접근법도 달랐다. '공공선(善)을 향한 도약'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그래서 배우로서는 다른 체험을 했던 것 같다. '연기라는 게 나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하는 걸 더욱 절실히 느꼈고. 오죽하면 감독님께 '다시 연극하는 느낌'이라고 말했을까." <OSEN>, [Oh!쎈 토크] 진경 "'낭만닥터'로 잃었던 낭만 찾았죠"


진경의 분석처럼 '수쌤' 오명심은 돌담병원의 나무처럼 듬직하고, 공기처럼 필수적인 존재였다. 간호사로서 자신의 일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뚝심과 의리까지 있는, 그야말로 응급실의 '엄마'였다. '사이다' 같은 발언과 행동으로 '고구마'처럼 답답한 상황을 과감하게 돌파해내는 담력과 강단도 갖췄다. 게다가 고집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김사부를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 진경은 연극을 통해 다진 발성과 정확한 발음, 냉철한 표정 연기를 통해 오명심이라는 캐릭터를 100% 표현해냈다.


고마움의 표시였을까? 강은경 작가는 <낭만닥터 김사부> '번외편'의 엔딩을 과거 김사부와 오명심의 첫 만남으로 장식했다. '직업 정신'으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이 만나 힘을 합친다는 의미이자, '돌담 병원'이라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의미에서 손을 맞잡은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뛰는 마무리였다. 최근 TV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활약(그의 필모그래피는 놀랄 정도로 빈틈없이 꽉 차 있다.)했던 진경은 '이제 좀 쉬겠다'고 말하지만, 그의 '명품' 연기를 기다리는 시청자들을 위한 활약은 2017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에 진경이 있었다면, tvN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에는 조우진이 있었다. 마지막 회에서 20.509%를 기록하며 <응답하라 1988>을 뛰어넘는 쾌거를 거둔 <도깨비>는 '완벽한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았을 만큼 작품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그 성공의 바탕에 공유, 이동욱, 유인나, 김고은 등 주연 배우들의 활약이 있었음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허나 특별한 드라마들은 언제나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도깨비>도 마찬가지였다.


"덕화 군은 아직 세상사에, 주변인에 관심이 없으시죠. 그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덕화 군의 질문들을. 진짜 어른의 질문들을. 세상에 대해, 주변인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도깨비> 16회 중에서


김은숙 작가의 '섬세함'은 포커스가 맞춰지는 주연뿐만 아니라 그들과 화학반응을 일으킬 조연에도 '롤'을 부여했다. 그래야만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더 빛이 나고, 드라마가 더욱 풍성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유씨 가문의 비서 김도영이고, 그 역할을 맡았던 조우진은 맛깔스러운 연기로 김은숙 작가의 바람에 100% 화답했다. 유신우(김성겸), 유덕화(육성재), 김신(공유)의 뒤에서 그들을 보필하는 김 비서는 간신 '박중헌'의 환생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마지막까지 가슴 따뜻한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는 따뜻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덕화의 성장을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모습은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조우진은 무심한 듯 시크한 캐릭터에 "네~에"라는 독특한 말투를 통해 매력을 더했고, 8회에선 아이돌 댄스들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내부자들>에서 조 상무 역을 인상적으로 소화하며 대중들의 시야에 포착됐던 그는 <도깨비>를 통해 확실히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켰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더 킹>에서는 박태수를 돕는 수사관으로 출연해 존재감을 보인다.


성공한 드라마에는 반드시 '명품 조연'이 있다. 진경과 조우진뿐이겠는가. 연기력을 뽐낼 배우들은 많다. 문제는 드라마 속의 소위 '주변 인물'들에게까지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 역할에 '힘'을 불어넣을 만큼의 필력을 갖춘 작가들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불균형이 발생한다. 결국 드라마를 성공시키고, 이를 넘어 '명품'의 반열에 올리는 힘은 그 (엄청난) 한끗 차이에 달렸다. 진경과 조우진의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면서, 더 많은 '그들'이 2017년에 빛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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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한마디로 쫄깃쫄깃하다. 장르물의 본가(本家)라 할 수 있는 OCN이 야심차게 내놓은 <보이스>가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첫 회 2.321%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3회만에 5.690%를 찍으며 단숨에 2017년 새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비록 4회에서는 3.619%로 숨고르기에 들었지만,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간절함'이 가득한 장혁과 이하나의 연기가 어우러지며 상승세를 예고하고 있다. tvN <시그널> 이후 수사물에 대해 갈증을 느끼고 있던 시청자들이라면 <보이스>로부터 해갈(解渴)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주인공인 강권주(이하나)는 '예민한' 청력을 가지고 있다. 12살 때 사고로 2년 동안 시력을 거의 잃으면서 반대급부로 얻게 된 비밀스러운 능력이다. 그는 남들이 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소리까지도 캐치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그 소리의 발원지 혹은 정체를 분석해낸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이스 프로파일러'가 된 권주는 성운지방경찰청 112 신고센터 센터장으로 복귀한다. 그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이유, 보이스 프로파일러가 돼 다시 성운지청으로 돌아온 이유는 3년 전 발생했던 은형동 살인사건 때문이다.


그날 권주는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은형동에서 순찰(동료 경찰의 어머니가 칠순이라는 이유로 혼자 순찰을 돌고 있는 설정은 의아하다)을 돌고 있던 권주의 부(손종학)는 "아빠, 지금 지구대 출동했대. 그러니까 그냥 거기 서서 기다려"라는 권주의 만류(무전에서 '아빠'라는 등 사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설정은 더욱 의아하다)에도 주변 수색에 나선다. 그러던 중 손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와 마주치고, 그의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고 제지에 나서지만,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에 앞서 무진혁(장혁)은 자신의 아내 허지혜(오연아)를 잃었다. 진혁의 아내는 은형동 살인사건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피해자였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급박한 상황에서 112신고를 한 지혜의 전화를 받은 사람이 바로 권주였다. 이 과정에서 112신고 센터 경찰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지혜는 목숨을 잃고 만다. 영화 <더 콜>을 연상케 하는 설정이었는데, 섣불리 신고자에게 '콜백(Call back)'을 해서 위치를 범인에게 노출시키는 바람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악연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은형동 살인 사건의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권주는 피고인 고동철의 목소리가 "진범의 목소리와 다르다"고 증언하고, 이 때문에 유력한 범죄자였던 고동철(4회에서 고동철은 진범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은 풀려나고 만다. '뒷돈'을 받고 우호적인 증언을 해 무죄로 풀려나게 만들었다고 오해를 한 진혁은 당연히 권주를 증오하지 않았겠는가. 악연으로 얽히고설킨 두 사람이 사건이 발생하고 3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났다. 권주는 진혁을 '골든타임팀'으로 스카우트하고, 그런 권주를 향해 진혁은 으르렁댄다.



납치 사건, 아동학대 사건 등에서 권주의 비밀스러운 능력을 간파한 진혁은 권주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권주는 진혁에게 3년 전 자신이 왜 재판에서 고동철이 범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또, 3년 전 은형동 살인사건 당시 자신과 아버지 사이에 나눴던 무전 등 기록이 삭제됐다며 경찰 내부에서 진범을 돕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증거를 가져오라'며 믿지 못하던 진혁은 고동철의 죽음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직감한다. 


의심은 더욱 커졌다.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그런데 상황은 또 한번 급반전의 물살을 탄다. '골든타임팀'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던 박은수(손은서)의 동생이 납치되는 '홍창동 로데오거리 납치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를 추적하던 권주마저 납치당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도 진혁이 권주를 발견하는 듯한 장면으로 마무리 돼 구출될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두 경찰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진범을 끈질기게 추적해 나갈 거란 것이다.



사건 접수 후 3분 내 출동, 5분 내 현장 도착, 10분 내 범인을 검거


'골든 타임',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 가장 '절실했던' 단어가 아니던가. 우리는 수많은 골든 타임을 놓쳐왔고, 그래서 너무도 많은 피해자들을 바라만 봐야 했다. '골든 타임'은 비단 병원이나 구조 활동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범죄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는 사실을 <보이스>는 절실히 그려내고 있다.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눈에 띄지만, '미세한 소리마저도 듣는다'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이질감 없이 녹여낸 <보이스>에 '아직까지는' 박수를보내고 싶다. 


2016년 최고의 드라마라 할 만한 tvN <시그널>에 비해 여러가지 면에서 부족(주인공인 장혁과 이하나는 조금만 더 힘을 빼고 연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하지만, 적어도 범인을 검거하고 피해자를 구하겠다는 '간절함'만큼은 뒤지지 않는 듯 하다. 경찰 내부, 그러니까 상부에는 여전히 '은폐'와 '조작'을 일삼는 무리가 숨어 있을지 모르지만, 일선에는 자신의 열정을 다바쳐 '책임'을 다하는 형사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보이스>가 자꾸만 상기시키는 건, 어쩌면 그 '위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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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