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61

버락킴's 오래된 공책 (12)

"자신이 나빠지는 건 다 자기 탓이야. 물론 환경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말하면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고 봐. 나 어떤 일이 있어도 삐뚤어지지 않겠다는 고집이 있어. 이곳으로 올 때 보니 이시가리 강의 상류는 무척 깨끗했어. 하류는 공장 폐수로 시커멓고 흐려져 있었지만. 그걸 보고 난 생각했어. '난 강이 아니고 인간이다. 설사 폐수와 같이 더러운 것이 흘러 들어도 난 절대로 내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이야." - 미우라 아야코, 『빙점』 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11)

「끝은 짧은 거야」휘리는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바탈리언 남작은 고개를 갸웃했다.「네?」「아무리 긴 노래라도 시작과 끝은 짧지. 노래가 길다는 것은 중간이 길다는 거야. 그리고 그건 모든 사물에 통용되는 말이지. 막대기가 길다? 막대기의 중간이 너무 긴 거야. 삶이 짧다? 삶의 중간이 너무 짧은 거지. 시작과 끝은, 언제나 같은, 한 순간의 번득임. 중간이라는 건 시시한 거야. 시작과 끝이야말로 놀라운 기적이지」 - 이영도, 『폴라리스 랩소디』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10)

「사실을 말씀하십시오」「예?」「저를 어떻게 다룰지 생각하고 계실 테지요. 사실을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하리야는 속으로 혀를 내밀었다.「좋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지요. 우리에겐 당장은 다벨을 어떻게 할 힘이 없습니다」「저는 시간에 아쉬움을 느끼는 나이가 아닙니다. 이라는 것은 필요없습니다. 가 필요합니다」젊은이는 침착하질 못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늙은이는 시간이 없어서 침착함을 잃는다. 그래서 젊은이가 침착함을 가졌을 경우 이토록 등골 서늘한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 이영도, 『폴라리스 랩소디』 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9)

후작은 그것을 읽기에 앞서 라이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넨 … 자네 정체가 뭐지?」「제 이름은 아실테니 이름을 묻는 것은 아니군요. 그럼 후작님이 말하는 정체란 직업입니까, 인격입니까, 출생지 입니까, 경험입니까, 부모의 이름입니까, 꿈입니까. 아니면 그 꿈을 위해 걷고 있는 길입니까?」 - 이영도, 『폴라리스 랩소디』 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8)

세실은 말을 멈추고 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키는 빗소리를 등진 채 조용히 세실의 말을 길다리고 있었다. 「혼자 듣는 봄밤의 빗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것이라고 하겠어」키의 눈꺼풀이 조금 꿈틀거렸다. 하지만 세실은 그것을 보지 못한 채 계속 말했다.「9 다음에 10이, 99 다음에 100이 오게 하는 그 엄청난 힘이라고 하겠어. 더 이상의 가 필요해지지 않는 최초의 라고 하겠어. 불꽃의 무게만한 마음의 무게로 가장 무거운 우주를 지탱하게 하는 지지점이라고 하겠어.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장 먼 것을 바로 그 눈동자 앞에 감추어 놓은 자라고 하겠어. 하늘과 땅을 최초로 열어버린 그 무신경함이라고 하겠어」세실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좋을 때와 장소에서..

버락킴's 오래된 공책 (7)

그러나 세실은 라이온에게 다시 한 번 다가서 보았다.「넌 누구냐?」「나? 라이온입니다. 포기해 버리고 망각해 버려야 마땅할 것들을 아직까지 끌어 안고 사는 자신을 비웃어 주기 위해 스스로를 희화하하는 얼간이 입니다. 차갑기만한 육지에서 길을 잃고 슬픔을 느끼는 갈매기입니다. 비우기에도 애매하고 그냥 놓고 보기에도 못마땅한 반쯤 찬 쓰레기통입니다.」 - 이영도, 『폴라리스 랩소디』 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6)

「후회는 선택되지 못했던 자신의 반란이겠지요. 아무리 선택을 잘했어도 한두 번쯤은 새겨나기 마련인 의혹이나 후회는, 부정된 자신이 긍정받고 싶어서 일으키는 반항 아닐까요」「와아-!」율리아나 공주는 크게 감탄했다. 오스발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결국, 행동에 있어서 뭐가 옳으냐 뭐가 그르냐 하는 것은 중요한 이유가 못 되겠지요. 그것보다는 자기가 긍정되느냐 부정되느냐의 문제 아닐까요」 - 이영도, 『폴라리스 랩소디』 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5)

「아무거나 설명해 줘! 그, 그래. 그냥 자기를 좀 합리화시켜봐. 제발!」 「자기 합리화?」그의 얼굴에 문득 그리움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세실은 눈을 크게 뜨고 키를 올려다 보았지만 그녀가 보았던 것을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키는 어느새 뭎정한 얼굴로 세실을 보고 있었다. 「네가 해.」「뭐?」「네가 필요한 거라면 네가 해. 네 마음대로 날 합리화한 다음 날 이해했다고 생각해 버리면 될 거 아닌가.」 - 이영도, 『폴라리스 랩소디』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