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61

버락킴's 오래된 공책 (39)

사형의 진정한 대상은 사실상 범죄나 범죄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사형에는 이미 저질러진 범죄를 원상복구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살인자를 수백, 수천 번 매달아도 피해자가 부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형을 집행한다 해도 법리학자들의 호사스러운 말처럼 '정의가 회복' 되지는 않는다. 피해자가 죽은 상태에서 정의가 회복되었다고 부르짖어 봐야 무의미하다. 사형의 진정한 대상은 범죄나 범죄자가 아니라 아무 관계가 없는 군중이다. 다른 이들에게 살인을 저지르지 말라는 강력한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살인자를 교수대에 매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사형은 전시성을 가진다. 교수대가 높은 것은 전시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 이영도, 『피를 마시는 새』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35)

사형제도는 그 벌을 당하는 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이다. 정신적으로 수 개월 내지 수 년 동안 육체적으로 생명이 다하지 않은 제 몸뚱이가 둘로 잘리는 절망적이고도 잔인한 시간 동안 그 형벌을 당하는 사형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른 품위라고는 아무 것도 없으니, 오직 진실이라는 품위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이 형벌을 제 이름으로 불러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지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 - 알베르 카뮈, 「단두대에 대한 성찰」-

버락킴's 오래된 공책 (34)

그 사람은 제 모든 것이었어요 …… 여자가 입을 열자마자 그렇게 말했을 때 내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더구나 여자가 남자를 두고 내 모든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말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토록 단호하게 뱉을 수 있는지. 나는, 이게 옳아요, 라는 확신과 신념과 이런 것들을 가지고 모든 인간에게 언제나 그랬듯이 아마도 막연하게 그녀에게 질투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을 두고, 설사 그것이 유치하고 어리석으며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결말로 끝난다고 해도, 그렇게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대상을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버락킴's 오래된 공책 (32)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고 정리하였던 때가 있었다. 내가 사형선고를 받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것은 저항의 언어이기도 하였고 이념적 결의이기도 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러한 결의에도 불구하고 사형선고는 거대한 상실감을 충격적으로 안겨주고 있었음을 숨길 수 없다. 그 상실감의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소중한 것을 두고 떠나는 아쉬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중한 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뒤돌아보며 떠나는 모든 죽음은 결코 삶을 완성하는 것이 못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후 나는 화두처럼 걸어놓게 된다.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 신영복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31)

내 얼굴에 단호하고 굳은 표정이 떠올랐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그 순간 살려는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 경험을 보면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한숨 지으며 생명을 포기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약간 싸우다가 희망을 놓아버린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운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싸우고, 빼앗기며, 성공의 불확실성도 받아들인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그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놓아버리지 않는 것은 타고난 것이다. 그것은 생에 대한 허기로 뭉쳐진 아둔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얀 마텔, 『파이 이야기』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30)

대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물원에서도 해뜰녘과 해질녘이 가장 멋진 시간이다. 동물들은 그 때 생기를 띠니까.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해, 우리를 떠나 살금살금 물가로 간다. 동물들은 속살을 보여준다. 노래한다. 서로 의지해서 의식을 치른다. 그것을 지켜보고 귀담아 듣는 이는 큰 보상을 받는다. 나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오랫동안 다양한 생명의 표정을 지켜봤다. 그 표정들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밝고 시끄럽고, 묘하고 섬세한 표정들이다. - 얀 마텔, 『파이 이야기』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28)

"아빠, 왜 우리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가 없는 걸까?"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아오이는 마음 속으로 외치듯 말했다. 무언가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단지 허공을 잡고 있을 뿐.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발을 내딛을 수가 없다. '아빠, 만약 어던가에서 나나코가 심하게 상처를 받아서 울고 있다면 나는 뭘 해 줄 수 있을까?' 달려갈 수도,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낼 수도 없지 않은가. 무엇을 위해 우리는 어른이 되는 걸까? 어른이 되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고 가고 싶은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갈 수 있을까? - 가쿠타 미츠요, 『대안의 그녀』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25)

"다시 한번 성격을 바꿔 보면 어때? 아침마다 간호사 엉덩이를 더듬는다거나.""바보 같은 소리. 성희롱이라고 난리칠 게 뻔하지.""그럼 책상 속에다 장난감 뱀을 몰래 숨겨둔다거나.""간호사 센터에서 항의할 텐데.""그런 행동을 1년 동안 해봐. 그럼 주위에서도 포기해.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 놈은 어쩔 수 없다고 손 들게 만들면 이기는 거지." -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24)

사람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바둑의 문외한들은 몇 년 전에 둔 바둑도 복기해 내는 기객의 재주에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바둑을 전혀 둘 줄 모르는 사람이 흑돌과 백돌을 번갈아 바둑판 아무 곳에나 내려놓은 다음 돌을 놓은 순서를 재현할 것을 요청하면 국수급의 기사라 하더라도 재현하지 못한다. 기사는 돌이 놓인 반면의 좌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돌들의 관계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의 시각 전부에 해당하는 특징이다. 사람은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이나 열을 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해석한 세상을 본다. 같은 수준의 화가 두 명이 같은 풍경을 그려도 같은 풍경화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 여러분의 환상과 달리 한 남자를 세상의 모든 여자가 사랑하지 않는 것..

버락킴's 오래된 공책 (23)

나는 힘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힘내라는 격려의 말을 기대하고 있니? 그건 지금의 네게는 역효과야.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라고 격려하는 소리들만 넘치는 세상,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참된 힘이 솟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 잘못된 세계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잖니? 인간이란 실은 그렇게 힘을 내세 살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 속도에 맞춰 그저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되는 거야. -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