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공연기 9

옥주현에 대한 편견, 전율 그 자체 '마타하리' 보고 버렸다

무대의 조명이 바뀐다. 화려한 붉은 색 전통 의상을 입은 댄서가 매혹적인 춤사위를 선보인다. 숨을 멎게 만들 정도로 현란한 몸짓에 관객은 넋을 잃게 된다. 무대가 그를 위해 존재하는 듯하고, 그는 무대를 위해 태어난 존재같다. 세계 최초로 스트랩 댄스를 선보이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마타하리(옥주현), 말레이어로 '새벽의 눈동자'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그는 누구인가.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의미처럼 거리 곳곳마다 풍요롭고 로맨틱한 사랑이 꽃핀다. 사람들은 행복에 가득차 있다. 그런 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추레한 모습의 여성이 눈에 띤다. 그의 이름은 마가레타. 길을 지나가던 안나(윤봉)가 그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상냥하고 친정한 안나는 처절하고 불운한 삶을 살았던 마가레타를..

인기 극작가 도청하던 경찰의 변화, '타인의 삶' 이동휘의 재발견

"왜 사람을 안 재우죠? 비인간적이잖아요.""결백한 자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분노한다. 부당한 처사를 당했으니까. 그러다 고함을 치고 폭발하지. 반면 죄가 읶는 놈들은 풀이 죽고 조용해지지. 질질 짜기도 하고. 왜 잡혀왔는지 아니까. 자백받으려면 끝까지 몰아붙이는 게 가장 좋아."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는 고문도 서슴지 않는 냉혈한이다. 잠을 재우지 않는 극단적 상황에 몰아넣어 자백을 받아낸다.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효과적인 심문 기법을 강의하는 그는 사회주의 체제 수호의 첨병이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수행한다. 인간에 대한 악의를 지녔다기보다 주어진 책무를 수행할 뿐이다.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비즐러에게 인생의 변곡점이 나타난다. 반체제 극작..

대학로의 터줏대감 연극 '행오버', 관객 반응이 뜨거운 이유

이름만 호텔이지 실상은 모텔이나 다름 없는 그 곳, 서울 변두리의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모든 일이 벌어진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지연(아내)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작심한 듯 작전명 "행오버"를 지시한다. 도대체 '행오버'는 무엇을 언급하는 걸까. 질문은 깜깜해진 조명과 함께 사라진다. 탑 조명 아래 강렬한 오프닝으로 연극 '(행오버hangover)'의 막이 오른다. 이어 예행 연습을 하는 두 남성이 나타난다. 잠시 후 비명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알고 보니 지연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철수(남편)는 이벤트 업체 대표 태민을 고용해 지연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한다. 문제는 그 이벤트가 '납치'라는 점인데,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만취한 철수가 지연을 살해한다는 것이다. 파라다이스 호텔 506호는 살인..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가 노래하는 기적의 이름은 '인류애'

2001년 9월 11일 오전, 테러범들이 납치한 비행기 (4대 중) 2대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다. 뉴욕의 상징, 미국의 자존심, 자본주의의 심벌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비상 상황이 선포됐고, 미국 영공(領空)이 완전히 폐쇄됐다. 그 말은 미국 내 모든 공항에 착륙이 금지됐다는 뜻이다. 날아다니는 모든 물체가 공포였기 때문이다. 하늘이 텅 비었다. 9.11 테러 당시 하늘을 날고 있던, 그 많은 비행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당시에는 충격적인 이미지에 시선을 뺏겨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그 이후에는 '테러와의 전쟁'이 뿜어내는 도파민에 노출되어 신경쓰지 못했다. 마냥 하늘을 배회할 수 없으니 분명 어딘가에 착륙해야 했다. 연료에 한계가 있으니 회항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갔..

"사람 거미에 반한 순간" 거미(GUMMY) 투어 콘서트 2023 <LOVE> 서울 후기

얼마 남지 않은 2023년, 연말을 뜻깊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공연을 감상하는 것 아닐까. 최근에는 뮤지컬을 보러가곤 했는데, 올해는 특별히 콘서트를 즐겨보기로 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가수는 바로 거미(GUMMY)였다. GUMMY 투어 콘서트 2023 일시 : 2023. 12. 15. (금) 20:00 장소 : 올림픽 공원 올림픽홀 항상 TV와 음원으로만 듣던 거미의 노래를 직관할 수 있다니! 생애 첫 콘서트인 만큼 설렘 가득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더구나 약 3000석(고정 2,452석, 플로어 500~600석)에 달하는 대형 공연장이라 기대가 컸다. 콘서트의 분위기를 잘 몰라서 4, 50분 정도 넉넉하게 도착했다. 근처에서 저녁('고모네원조콩탕북어탕'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올..

돌아온 국민 연극 '스페셜 라이어', 웃음 뒤에 남은 비릿함은 뭐지?

윔블던에 거주하는 메리 스미스와 스트리트햄에 살고 있는 바바라 스미스, 두 사람은 남편이 귀가하지 않자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한다. 평소 시간을 칼같이 지키던 사람인지라 걱정이 태산이다. 아무런 연락조차 없으니 큰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여겼다. 윔블던의 형사 트로우튼과 스트리트햄의 형사 포터 하우스는 동시에 수사를 개시한다. 그들이 찾는 대상의 이름은, 바로 존 스미스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동명이인? 이쯤에서 존 스미스의 큰 비밀이 밝혀지는데, 그는 이중 생활, 그러니까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교대 근무를 하는 택시 기사 존 스미스는 밤에는 윔블던의 메리에게, 밤에는 아침에는 스틀리스햄의 바바라에게 가는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그동안 들통나지 않고 지냈지만, 간밤에 가벼운 강도 사건에 휘말..

새해에는 우리 솔직해지자, 평생 어긋났던 '그와 그녀의 목요일'

연극 예매율 상위권은 어지간하면 변동이 없는 편이다. 판 자체가 기본적으로 안정적이다. 애초에 작품 수가 많(기가 쉽)지 않고, 그런 만큼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도 않다. 대개 기존에 상위권에 있던 작품들이 계속해서 우선순위를 점한다. 생동감(?)이 넘치는 영화계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들은 '잔잔해 보이는 호수 아래에서 어떤 일이 있어나는지 알기나 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연극은 영화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진다. 영화를 보고 싶으면 동네의 멀티플렉스를 찾으면 그만이지만, 연극의 경우는 연극의 메카 '대학로'를 찾아야 한다. 참고로 KOBIS(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가입되어 있는 영화관의 수는 526개다. 아무래도 서울 친화적인(?) 예술이다. 예술의 전당이 있는 지역이라..

뮤지컬 '엘리자벳'의 감동, 신영숙 배우에게 사과합니다!

​​​ 캐스팅 황후 엘리자벳 : 신영숙 죽음 : 박형식 루이지 루케니 : 박강현 황제 프란츠 요제프 : 손준호 대공비 소피 : 이태원 황타자 루돌프 : 최우혁 지난 크리스마스 저녁에 용산구에 위치한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구 삼성전자몰)에 다녀왔습니다. 뮤지컬 '엘리자벳'을 관람하기 위해서 였죠. 크리스마스와 뮤지컬이라..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밤을 위한 최상의 선택이었습니다. 제법 그럴 듯하게 말을 했지만,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저는 뮤지컬 문외한입니다. 지금까지 봤던 뮤지컬이 고작 1편이죠. (이제 2편이 됐네요.) '메노포즈(menopause)'라는 제목의 작품이었습니다. 지금도 공연이 이어지고 있죠. 잠시 설명을 하자면, 메노포즈는 폐경(閉經) 또는 폐경기(閉經期)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요즘엔 이를 월..

김정난에 이끌렸던 '진실X거짓', 연작의 단점이 도드라졌다

공연시간 100분. 2019년 1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원씨어터 2관."제목만 봐도 호기심이 가지 않나요?(웃음) 우리가 평소 생각한 진실과 거짓을 어떤 식으로 풀어내고 있을 지 궁금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김정난의 말처럼 제목에 이끌렸다. 대학로를 거닐다가 이곳저곳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저 연극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 너무 흔해서 때로는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 오래되고 묵직한 단어들이 건네는 분위기가 좋았다. 진실과 거짓의 갈림길, 그 선택의 순간에 선 인물들의 고뇌를 함께 하고 싶어졌다. 그들의 치열한 고민 앞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할지도 궁금해졌다. 진실과 거짓,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진실을 원하는가, 거짓을 원하는가? 이 질문은 쉽다. 누구라도 거짓을 바라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