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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의 공연기

뮤지컬 '엘리자벳'의 감동, 신영숙 배우에게 사과합니다!


캐스팅

황후 엘리자벳 : 신영숙
죽음 : 박형식
루이지 루케니 : 박강현
황제 프란츠 요제프 : 손준호
대공비 소피 : 이태원
황타자 루돌프 : 최우혁

지난 크리스마스 저녁에 용산구에 위치한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구 삼성전자몰)에 다녀왔습니다. 뮤지컬 '엘리자벳'을 관람하기 위해서 였죠. 크리스마스와 뮤지컬이라..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밤을 위한 최상의 선택이었습니다.

제법 그럴 듯하게 말을 했지만,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저는 뮤지컬 문외한입니다. 지금까지 봤던 뮤지컬이 고작 1편이죠. (이제 2편이 됐네요.) '메노포즈(menopause)'라는 제목의 작품이었습니다. 지금도 공연이 이어지고 있죠.

잠시 설명을 하자면, 메노포즈는 폐경(閉經) 또는 폐경기(閉經期)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요즘엔 이를 월경을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완경(完經)'이라 부르자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죠. 부정적인 어감인 폐경보다 좀더 중립적인 완경이 나아보이죠?

어찌됐든 '메노포즈'는 중년 여성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따뜻하고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뮤지컬입니다. 대학생이던 시절에 이 뮤지컬을 보게 됐는데, 당시에는 그 의미가 가슴에 와닿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블루스퀘어 내 서점-

그래서 제게 뮤지컬은 '유쾌하지만, 시끄럽고 정신없는 쇼(?)' 정도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절대 '메노포즈'라는 작품에 대한 폄하가 아닙니다. 아마도 지금의 제가 '메노포즈'를 보게 된다면 훨씬 더 깊이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다시 뮤지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좀더 뜻깊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였죠. '팬텀', '지킬 앤 하이드' 등 여러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더군요. 문외한에게 가장 설득력이 있는 건 평점과 순위죠.

'엘리자벳'은 당당히 랭킹 1위였고, 평점도 9.5점으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평점이 높긴 합니다. 사실 이 선택에는 '느낌'이 큰 역할을 했을 뿐, 체계적인 분석과 냉철한 판단이 필요했던 건 아닙니다. 그저 필이 꽂혔던 거죠.


이제 본격적으로 '엘리자벳'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2012년에 우리나라에서 초연을 시작했는데요. 당시 누적관객이 15만 명을 돌파했다고 하죠. 2015년에는 10주간 예매율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인기있는' 작품입니다.

'모차르트', '레베가', '마리앙투아네트' 등을 쓴 미하일 쿤체와 작곡가 실제스터 르베이가 합작한 첫 번째 뮤지컬입니다. 물론 그들이 누구인지 알 리가 없죠. 중요한 건, '엘리자벳'이 유럽 뮤지컬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걸작이라는 것이죠.

이쯤에서 또 한번 고백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엘리자벳' 역에 캐스팅된 배우의 이름을 살펴보면 옥주현, 김소현, 신영숙 이렇게 세 명인데요. 인지도에서 앞선 두 사람이 앞서는 게 사실이죠. 아무래도 그들의 무대가 더 궁금했었죠.


신영숙 배우에 대해 잘 몰랐던 터라 큰 기대를 하진 않았습니다. 또, '죽음' 역의 박형식에 대해서도 아이돌 그룹 출신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죠. 같은 역에 캐스팅된 김준수도 아이돌 출신이지만, 뮤지컬 무대에 선 지 오래돼 안정감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인지도에 대한 선입견,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은 무대를 통해 완전히 씻겨 나갔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감동에 어찌할 바랄 몰랐죠. 지금까지도 그 무대의 전율이 남아있는 것만 같습니다.

신영숙 배우는 한마디로 최고였죠. 어린 엘리자벳의 앳된 음성부터 성숙한 엘리자벳의 풍부한 성량, 끝내 죽음에 이른 중장년의 엘리자벳의 다양한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팔색조'라는 표현이 절로 떠올랐죠. 제 선택은 옳았던 겁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에 맞서 '나는 나만의 것(ICH GEHOER NUR MIR)'을 열창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의 치열함 그 자체였습니다. 신영숙 배우가 '숨이 막혀'라고 부르면 제가 숨이 꽉 막히는 심정이었죠.


나중에 다른 배우들이 부른 '나는 나만의 것'을 다 들어봤는데, 신영숙 배우의 버전이 가장 좋더군요. 모두 노래 실력은 훌륭하지만, 감정의 전달이라는 부분에서 신영숙 배우는 탁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세한 떨림들을 느껴보세요!

박형식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죠? 그는 죽음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죽음은 형이상학적 개념을 인물로 형상화시킨 겁니다. 판타지적 캐릭터인 셈이죠. 초월적인 존재답게 매우 매혹적이게 그려집니다. 아주 섹시하죠.

어린 엘리자벳이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죽음은 그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엘리자벳의 주변에 머무르며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그만이 엘리자벳이 갈망하는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박형식은 편견을 깨부수는 연기력과 가창력을 보여줍니다.

                                                          -ⓒ EA&C신영-

엘리자벳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 역의 손준호는 완벽한 발성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인 대공비 소피를 거역하고, 아내인 엘리자벳을 선택하는 순간 그가 부르는 노래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강인해, 냉정해, 냉철해!'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이태원 배우도 인상적이었죠. 박강현 배우의 재기발랄한 모습도 관객들의 흥을 깨워줬습니다. 그냥, 다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무조건 강추라는 얘기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마 VIP 좌석(15만 원)은 거의 매진된 상태일 텐데요. R석(13만 원)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으니, 더 밀려나기 전에 얼른 예매하시길 추천합니다. 아쉽더라도 뮤지컬 글래스를 대여(1천 원)하면 되니까요.

다시 한번 신영숙 배우에게 '사과'를 하고 싶네요. 몰라봐서 미안합니다. 당신은 최고의 엘리자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