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공연기

김정난에 이끌렸던 '진실X거짓', 연작의 단점이 도드라졌다

너의길을가라 2018. 12. 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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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시간 100분. 2019년 1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원씨어터 2관.

"제목만 봐도 호기심이 가지 않나요?(웃음) 우리가 평소 생각한 진실과 거짓을 어떤 식으로 풀어내고 있을 지 궁금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김정난의 말처럼 제목에 이끌렸다. 대학로를 거닐다가 이곳저곳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저 연극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진실X거짓>. 너무 흔해서 때로는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 오래되고 묵직한 단어들이 건네는 분위기가 좋았다. 진실과 거짓의 갈림길, 그 선택의 순간에 선 인물들의 고뇌를 함께 하고 싶어졌다. 그들의 치열한 고민 앞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할지도 궁금해졌다. 


진실과 거짓,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진실을 원하는가, 거짓을 원하는가? 이 질문은 쉽다. 누구라도 거짓을 바라진 않을 터. 그래서 이 질문은 마치 당위처럼 다가온다. 그러니까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허나 '실제로도' 그럴까? 우리는 진실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망설인다. '이걸 말해야 하나?', '이걸 믿어야 하나?' 진실은 말하기도, 듣기도 어렵다. 


진실에는 '무게'가 있다. 우선, 발견하는 것부터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발견했더라도 그걸 옮기는 데에도 큰 힘이 필요하다. 물론 넘겨받는 사람의 준비도 중요하다. 아무리 진실을 건넸다 하더라도 수용자의 상황과 입장, 태도와 마음가짐이 미성숙된 상태라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건 시간문제다. 진실이 가져오는 고통과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때로는 '파괴적'이다. 




진실이 끔찍하고 거짓이 평화롭다면, 당신은 그래도 진실을 선택할 수 있을까? 혹은 진실을 요구하고 바랄 수 있을까? <진실X거짓>은 연작(連作)으로 구성돼 있는데, 모두 4명의 인물이 출연한다. 꽤나 단출한 구성이다. 알리스(배종옥/김정난)와 폴(김진근/이형철), 미셸(김수현/이도엽)과 로렌스(정수역, 양소민)가 각각 부부이다. 또, 미셸과 폴은 오래된 절친이다. 


4명의 인물은 꽤나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는데, 알리스와 미셸의 불륜이 그 꼬임의 시작이다. 알리스는 폴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고, 미셸 역시 폴에게 미안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려 한다. 알리스는 진실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폴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긴 바란다. 반면, 폴은 진실을 말할 경우에 닥칠 파국이 두렵다. 그래서 친절한 거짓으로 현상을 유지하길 원한다. 


물론 <진실X거짓>은 이 정도의 이야기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며, 훨씬 더 복잡한 관계들이 드러난다. 한 사람이 비로소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하자, 연쇄적으로 다른 진실들도 표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과연 누가 어떤 비밀스러운 진실을 숨겨놓고 있었던옷 입고  걸까. 그리고 그 진실 앞에 4명의 인물들은 각기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 연극열전


연극 <진실X거짓>은 '연극열전7'의 세 번째 작품으로 '리얼 부부공감 블랙코미디'를 표방한다. 20년차 부부를 주인공으로 삼은 만큼 아무래도 중년 관객들이 많은 편이고, 공감대 형성도 훨씬 잘 될 것이다. 극본은 플러리앙 젤레르가 썼는데, 그는 세계 3대 문학상 콩쿠르상 노미네이트, 프랑스 연극 최고 영예 몰리에르상 수상, 2016 영국 올리비에상, 미국 토니상 수상 등 현재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사실 주인공으로 배종옥이 출연한다는 걸 알고 예매를 준비 중이었는데, JTBC <SKY 캐슬>에서 김정난의 열연을 보고 급선회하게 됐다. 알리스 역으로 출연한 김정난은 확실히 남다른 포스를 뽐냈다. 그의 연기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100% 만족이었다. 다만, 진실 편에서는 알리스의 분량이 적은 편이고, 캐릭터의 연기 폭도 생각보다 좁아 김정난의 진가가 전부 발휘됐다고 보긴 어렵다. 거짓 편을 봐야 김정난의 연기를 맘껏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연작'의 장점이자 단점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진실 편을 봤다면 자연스레 거짓 편이 궁금할 수밖에 없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다시 극장을 찾게 할 만큼의 매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애매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웃음 포인트가 있다고는 하나 다른 창작 연극들의 빵빵터짐에 비하면 약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열연'으로 이어지기까지 힘이 부족했다. 


다시 말해서 거짓 편까지 챙겨보게 만들 정도의 '매력'은 없었다. 분명 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을 거란 걸 짐작하면서도 그 궁금증을 극대화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점에서 <진실X거짓>은 연계성이 조금 약하다는 인상이었다. 김정난의 안정적인 연기와 이도엽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활약이 돋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극장을 찾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만큼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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