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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s 오래된 공책 (34)

그 사람은 제 모든 것이었어요 …… 여자가 입을 열자마자 그렇게 말했을 때 내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더구나 여자가 남자를 두고 내 모든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말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토록 단호하게 뱉을 수 있는지. 나는, 이게 옳아요, 라는 확신과 신념과 이런 것들을 가지고 모든 인간에게 언제나 그랬듯이 아마도 막연하게 그녀에게 질투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을 두고, 설사 그것이 유치하고 어리석으며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결말로 끝난다고 해도, 그렇게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대상을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버락킴's 오래된 공책 (32)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고 정리하였던 때가 있었다. 내가 사형선고를 받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것은 저항의 언어이기도 하였고 이념적 결의이기도 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러한 결의에도 불구하고 사형선고는 거대한 상실감을 충격적으로 안겨주고 있었음을 숨길 수 없다. 그 상실감의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소중한 것을 두고 떠나는 아쉬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중한 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뒤돌아보며 떠나는 모든 죽음은 결코 삶을 완성하는 것이 못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후 나는 화두처럼 걸어놓게 된다.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 신영복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31)

내 얼굴에 단호하고 굳은 표정이 떠올랐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그 순간 살려는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 경험을 보면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한숨 지으며 생명을 포기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약간 싸우다가 희망을 놓아버린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운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싸우고, 빼앗기며, 성공의 불확실성도 받아들인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그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놓아버리지 않는 것은 타고난 것이다. 그것은 생에 대한 허기로 뭉쳐진 아둔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얀 마텔, 『파이 이야기』中 -

지쳐가는 사람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벌써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4일이 지났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미 지쳐가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안산 단원고 2학년 전모 군의 어머니는 사건 소식을 접하자마자 '내일까지 쉽니다'라는 메모를 붙여두고 발걸음을 진도로 재촉했었다. 금세 구조해서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단 한 명의 아이들도 구조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 시간만 흘러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선체 인양해 시신이라도 찾자 vs 객실 반도 안뒤져..무슨 소리 지난 주말부터 날씨가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파도는 높아졌고, 조류도 빨라졌다. 수색구조작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은 어려워졌다. 잠수부들의 사정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잠수부들은 사실상 탈진 상태에 빠졌고, 부상자도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악조건..

옛날 버릇 나온 연예부 기자들과 충격 상쇄용 아이템, 타깃은 연예인?

언제나 가장 만만한 것은 '연예인'이었다. 국민들의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을 때마다 연예인의 마약 · 도박 · 성매매 사건들이 하나 둘씩 터져나왔다. '기획'됐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킬 만큼 타이밍은 항상 절묘했다. 검찰에서 연예인 관련 사건을 '묶혀두고 있다가 시기를 봐서 터뜨린다'는 것은 관련자를 통해서도 이미 나온 이야기다. 물론 그 범죄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타이밍과 의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정권에서부터 연예인들을 정부의 방패막이로 사용해왔음은 필자와 당신만 아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드라마와 예능은 올스톱 됐다. (지난 25일, MBC는 '사남일녀' '나 혼자 산다'가 정상 방송했다. 차츰 예능도 정상화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또, 여건상 어쩔 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언론, 국민의 분노가 브레이크가 될까?

지난 24일, 이상호 기자의 욕설이 담긴 영상이 화제가 됐다. 당시 이 기자는 고발뉴스와 팩트TV로 팽목항 현장을 생중계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의 '물살 거세지기 전에…사상 최대 규모 수색 총력'이라는 기사를 읽고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그는 "연합뉴스 기자 개XX야. 너 내 후배였으면 죽었어. 이건 기사가 아닙니다. 저는 쫓겨난 해직기자지만 이 기자는 기자 아닙니다"라고 한바탕 쏟아낸 뒤 "당국은 배 수십척을 동원하고 신호탄 수백 발을 쏘아 올리는 등 밤샘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 배 한척도 보이지 않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누리꾼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물론 생중계 중에 욕설을 한 부분에 대해서 비판적인..

방통위의 손석희 징계는 아직도 유효한가?

징계가 두려운가,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가! 손석희 앵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는 분명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국민들의 대답은 무엇인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JTBC 를 향해 징계를 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나섰다. 방송심의규정 제24조의 2(재난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 위반 여부를 심의하겠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지난 21일 JTBC 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를 인터뷰한 것이 마뜩지 않다는 이야기다. 당시 이종인 대표는 "구조 작업에 다이빙벨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종인 대표 : 지금 저희가 장비가 있고 그런 기술이 있고 수심 100m까지 작업을 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어떤 다이빙 군까지 그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손석희 앵커 ..

세월호 참사, 주간지 표지를 통해 본 언론의 시선

, , , , 을 비롯한 주간지들이 일제히 발행됐다. 모두 '세월호 참사'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정정하겠다. 을 제외한 다른 주간지들만 '심층적으로 다뤘다.) 각 주간지의 표지를 확인해보도록 하자. 사진은 각 주간지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사진의 크기가 일률적이지 않은 점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은 태극기 뒤로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의 모습을 표지 사진으로 선정했다. '기다리라 하더니…' 라는 문구도 함께 삽입했다. 마치 침몰하는 것은 세월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도 침몰하는 세월호의 사진을 배경으로 '고장난 나라'라는 타이틀에 '비겁한 선장 무능한 정부 한심한 언론'이라는 문구를 집어 넣었다. 현재의 상황을 가장 적나..

이 상황에서 교원 해외연수, 이건 정말 아니잖아요?

"너희 거기 있으면 다 죽는다. 힘이 들더라도 여기로 올라와야 한다." 지난 16일, 세월호가 조금씩 기울어가던 당시 한 중년 남성은 분주하게 학생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대학생인 A 씨가 탈출에 힘겨워하고 있자, 그를 향해 소리치며 독려하며 손을 잡아 끌어주었다. 대학생 A 씨의 말에 따르면, 그 중년 남성은 "본인이 먼저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학생들을 구하려고 동분서주 돌아다녔고, 내가 눈으로 본 것만 6~7명을 구했"다고 한다. - 에서 발췌 -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달라.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 지역에 뿌려 줘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 그 중년 남성은 바로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

버락킴's 오래된 공책 (30)

대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물원에서도 해뜰녘과 해질녘이 가장 멋진 시간이다. 동물들은 그 때 생기를 띠니까.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해, 우리를 떠나 살금살금 물가로 간다. 동물들은 속살을 보여준다. 노래한다. 서로 의지해서 의식을 치른다. 그것을 지켜보고 귀담아 듣는 이는 큰 보상을 받는다. 나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오랫동안 다양한 생명의 표정을 지켜봤다. 그 표정들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밝고 시끄럽고, 묘하고 섬세한 표정들이다. - 얀 마텔, 『파이 이야기』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28)

"아빠, 왜 우리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가 없는 걸까?"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아오이는 마음 속으로 외치듯 말했다. 무언가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단지 허공을 잡고 있을 뿐.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발을 내딛을 수가 없다. '아빠, 만약 어던가에서 나나코가 심하게 상처를 받아서 울고 있다면 나는 뭘 해 줄 수 있을까?' 달려갈 수도,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낼 수도 없지 않은가. 무엇을 위해 우리는 어른이 되는 걸까? 어른이 되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고 가고 싶은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갈 수 있을까? - 가쿠타 미츠요, 『대안의 그녀』中 -

새누리당의 사과와 자제령이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이유

지난 22일,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지만원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시스템클럽'에 '박근혜, 정신 바짝 차려야'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 에서 발췌 - 세월호 사건을 맞이한 박근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다른 하나는 안산과 서울을 연결하는 수도권 밴드에서 국가를 전복할 목적으로 획책할 '제2의 5·18 반란'에 지금부터 빨리 손을 써야 하는 것이다. '무능한 박근혜 퇴진'과 아울러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봉기가 바로 북한의 코앞에서 벌어질 모양이다. 시체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는가? 세월호 참사는 이를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다. … '이판사판'의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 도박으로 살길을 뚫어야 하는 것이 김정은의 토정비결이다. 세월호 참사는 이런 도박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 제2의 5·1..

권위에 대한 복종, 밀그램의 실험과 세월호 참사

오전 8시 58분 세월호 : 지금 배가 많이 넘어갔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빨리 좀 와주십시오. 오전 9시 해상교통관제센터 : 퇴선 준비를 하라 사건 발생 당시, 해상교통관제센터는 '퇴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세월호 승객들은 이 지시를 전달받지 못했다. 방송에서는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 움직이지 마세요. (9시 15분)'라는 멘트만 반복됐다. 오전 9시 28분에도 '선실이 더 안전하겠습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무려 한 시간 뒤, 10시 15분에 이르러서야 여객선 침몰이 임박했으니 바다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지시였다. 생사를 가르는 급박한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잘..

버락킴's 오래된 공책 (25)

"다시 한번 성격을 바꿔 보면 어때? 아침마다 간호사 엉덩이를 더듬는다거나.""바보 같은 소리. 성희롱이라고 난리칠 게 뻔하지.""그럼 책상 속에다 장난감 뱀을 몰래 숨겨둔다거나.""간호사 센터에서 항의할 텐데.""그런 행동을 1년 동안 해봐. 그럼 주위에서도 포기해.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 놈은 어쩔 수 없다고 손 들게 만들면 이기는 거지." -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中 -

버락킴's 오래된 공책 (24)

사람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바둑의 문외한들은 몇 년 전에 둔 바둑도 복기해 내는 기객의 재주에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바둑을 전혀 둘 줄 모르는 사람이 흑돌과 백돌을 번갈아 바둑판 아무 곳에나 내려놓은 다음 돌을 놓은 순서를 재현할 것을 요청하면 국수급의 기사라 하더라도 재현하지 못한다. 기사는 돌이 놓인 반면의 좌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돌들의 관계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의 시각 전부에 해당하는 특징이다. 사람은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이나 열을 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해석한 세상을 본다. 같은 수준의 화가 두 명이 같은 풍경을 그려도 같은 풍경화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 여러분의 환상과 달리 한 남자를 세상의 모든 여자가 사랑하지 않는 것..

버락킴's 오래된 공책 (23)

나는 힘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힘내라는 격려의 말을 기대하고 있니? 그건 지금의 네게는 역효과야.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라고 격려하는 소리들만 넘치는 세상,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참된 힘이 솟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 잘못된 세계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잖니? 인간이란 실은 그렇게 힘을 내세 살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 속도에 맞춰 그저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되는 거야. -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