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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살인마' 온보현, 표창원과 이수정의 의견이 갈렸다

너의길을가라 2021. 9. 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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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염을 기록했던 1994년, 시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야산에서 나무에 묶여 있는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손과 발, 입은 끈과 테이프로 묶여 있고, 얼굴에는 검은색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얼굴과 다리, 무릎 등에 삽으로 수 차례 가격된 흔적도 남겨져 있었다. 푸른색 티셔츠와 검은색 바지 차림은 실종 당시 그대로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번에는 경상북도의 한 고속도로변 배수로(지금이 김천시)에서 실종 신고가 돼있는 또 다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범인이 차에 싣고 온 뒤 시체를 밀어서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됐다. 피해자의 배와 허벅지 등에 흉기에 찔린 상처들이 있었다. 수사 초기만 해도 지역이 다르고 시신을 유기한 방법도 달라 두 사건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피해자 2명 모두 사건 발생 직전 택시를 이용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90년대는 위조 번호판을 이용한 가짜 택시 범죄가 성행했던 시기였다. 시민들은 혼자 택시를 타기를 꺼려했고, 일선 경찰서에 택시 강도 전담반이 생길 정도였다. 경찰은 강원도 횡성, 전라북도 김제 등에서 비슷한 범죄를 저질러 이미 지명수배 중이었던 범인을 공개 수배했다.


그런데 공개 수배를 한 당일, 한 남자가 서초경찰서를 찾아와 "자수하러 왔습니다. 내가 지존파보다 더한 놈이요."라며 범죄를 시인하는 게 아닌가. 수사 결과, 그가 살인 택시 드라이버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의 이름은 일명 '택시 살인마' 온보현이었다. 온보현은 보름간 6명이 여성을 납치해 4명을 성폭행하고, 2명을 살해 후 사체를 유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온보현은 조서를 쓰기 전에 기자를 먼저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지존파보다 더한 놈이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보현은 지존파는 6명이서 5명을 살해했지만, 자신은 혼자 2명을 살해했으니 '내가 더 센 놈이다'라고 큰소리쳤다. 현장 검증 당시에는 "오늘 신문에 내 기사가 톱입니까, 지존파가 톱입니까?"라며 지존파에 대한 경쟁 심리를 드러내기도 했다.

온보현은 자신이 직접 작석한 범행일지를 증거로 제출했다. 그는 자신의 범행 행각에 대해 빼곡히 적어두었는데, 거기에는 자신의 나이(38)만큼 사람을 죽일 거라는 계획도 적혀 있었다. 온보현은 도대체 왜 범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했던 걸까. 범행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KBS2 <표리부동>의 두 전문가, 표창원 프로파일러와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의 의견이 갈렸다.


이수정 교수는 애당초 살인을 목적으로 한 범행은 아닌 것 같다며, 온보현의 주목적은 성폭행이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1차 범행을 제외하면 성폭행 여부에 따라 피해자들의 생사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온보현은 성폭행에 실패하면 피해자를 살해했다. 다만, 범행 중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 가령 피해자가 도주를 시도했을 때 이를 제압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게 됐을 것이라 분석했다.

표창원 프로파일러는 살인을 통해 열등감과 좌절감에 대한 보상을 얻으려 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온보현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는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후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했고 무시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다 세상을 향해 분노를 느꼈다. 선택적 살인을 통한 우얼감이 목적인 범행이라는 것이다.

한편, 6차(마지막) 피해자의 희생은 온보현의 범죄 행각에 제동을 걸었다. 살해 당시 피해자는 온보현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피해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저항에 당황한 온보현은 흉기로 피해자를 찌르는 과정에서 자신도 손가락 부상을 입었다. 분노에 휩싸인 온보현은 피해자의 복부를 다시 공격해 살해한 후, 경상북도까지 차를 몰아 고속도로변에 사체를 유기했다.

며칠 간격으로 쉬지 않고 계속됐던 온보현의 범행이 중단됐다. 온보현은 손가락 부상을 치료하는 2주 동안 서울의 한 모텔에 기거하면서 범행일지를 작성했다. 이수정은 이때까지만 해도 온보현에게 살인의 명분이 없었으며, '나는 왜 살인을 하지?'라는 고민 끝에 자존파를 라이벌로 삼아 연쇄살인의 명분으로 삼았을 거라 분석했다. 스스로 콘셉트를 잡았던 것이다.


당시 온보현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조형근)는 온보현이 직접 밝힌 살인 동기를 언급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던 온보현은 고향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버지에게 문전박대와 함께 핀잔을 듣은 후 살해 욕구를 느꼈다. 하지만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세계 제일가는 살인마로 변해서 아버지가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게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수정은 가정 불화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온보현의 엄마 쪽에 포커스를 좀더 맞췄다. 온보현은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을 느꼈고, 여성에 대한 적대감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성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던 시절,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그의 여성 혐오는 더욱 극심해졌다. 이수정은 여성에 대한 배신감과 그로 인한 적개심이 살인이 동기였다고 봤다.

"피고인의 범행 수법은 너무나 잔인하고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며 무고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참담한 상처를 가했다." (판결문)


표창원은 전과 13범(폭력 4건, 교통사고 관련 9건)이었던 온보현에게서 반사회적 성향을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규범과 규칙 등에 대한 교육이 미흡했고, 그로 인해 반사회적 습관과 성격이 굳어진 것이라 분석했다. 1995년 11월, '택시 살인마' 온보현의 사형이 집행됐다. 그가 원했던 대로 라이벌(?)이었던 지존파와 같은 날 교수형에 처해졌다.


온보현의 범행은 한 사람의 비뚤어진 시선과 잘못된 분노로 인한 참담한 사건이었다. 그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희생당했다. 판결문에 쓰인 것처럼,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참담한 상처를' 남겼다. 이수정은 온보현을 '연쇄 성폭행범'이라 정리했고, 표창원은 '누려보지 못한 권력,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여성을 납치 및 살해'한 것이라 정리했다.

다양한 관점에서 이 사건을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겠으나, 그의 범죄가 여성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 납치 후 성폭행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분명하다. <표리부동>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 사건은 온보현 개인의 '여성 혐오'에 기반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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