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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의 아찔한 역습, 도대체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너의길을가라 2021. 8.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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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2,600만 년 전, 인간보다 훨씬 먼저 지구에 태어난 초경량 생명체가 있다. 그들은 지구의 수많은 변화를 견뎌냈고, 지금껏 살아남아 번성했다. 바로 '모기(mosquito)'이다. 우리는 지금껏 모기를 그저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 정도로 여겼다. 여름철마다 나타나 피를 빨아먹고 달아나는 징글맞은 놈들! 하지만 놀랍게도 모기는 가장 많은 인간을 죽인 생명체이다.

모기는 말라리아, 일본뇌염, 웨스트나일병,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치쿤구니아열병, 뎅기열까지 숱한 감염병을 옮긴다. 그 결과 매년 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모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인간이 죽는다니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그런데 지구가 뜨거워질수록 모기의 위협도 커진다고 한다. 지구온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지금, 이른바 '모기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KBS 기후변화 특집 '지구의 경고' 제작진은 여름을 맞이한 미국 알래스카를 찾았다. 경비행기를 타고 알래스카를 누비는 베테랑 부시 파일럿 배건 씨는 최근 낯선 광경을 목격했다. 지역 명소로 꼽리는 타날리안 폭포의 얼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쌓여 있어 얼음 폭포라는 불리는 별명이 무색했다.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리면서 폭포수가 돼 버렸다.


사실 빙하가 녹아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빙하가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최근 북극의 여름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북극이 섭씨 30도라니! 만년 빙하의 천국으로 불리던 알래스카의 산은 이제 얼음 대신 푸른 이끼로 뒤덮였다. 오랜 세월 알래스카의 상징이었던 빙하와 영구동토는 지구온난화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반면, 늘어난 것이 있다. 그렇다. 불길한 생각은 비껴가는 법이 없다. 바로 모기다. 제작진이 신발끈을 묶기 위해 잠시 멈춰 서자 모기들이 순식간에 달라붙었다. 불과 10여 초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온몸을 물어뜯겼을 것이다. 북극 모기는 몸집이 크고 무리를 지어 달려드는 특징이 있는데,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도대체 왜 모기가 이렇게 많아진 걸까.

알래스카에는 영구동토가 많아 땅에 물이 많은데, 물의 온도가 낮기 때문에 증발하지 않고 물웅덩이로 남게 된다. 데릭 시크스 알래스카 대학교 곤충학 교수는 최근 알래스카가 더워지면서 물웅덩이가 많이 생겨났고, 여름이 되면 동면에서 깨어난 모기 알들이 한꺼번에 부화하면서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각종 영상에서 확인한 모기떼는 마치 재앙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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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기온은 세계 다른 지역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모기는 작은 생물체이자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환경적 온도 변화에 매우 민감합니다." (로렌 쿨러 다트머스대학교 북극연구소 교수)


로렌 쿨러 다트머스대학교 북극연구소 교수는 수년 간 북극의 기온에 따른 모기의 생태를 연구해 왔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온도가 섭씨 1도 상승할 때마다 모기 유충의 성장 속도는 10% 증가하고, 섭씨 2도가 오르면 모기의 생존 가능성은 50% 증가한다고 한다. 기후 변화로 인해 물웅덩이의 온도가 따뜻해지면서 모기가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모기떼가 북극 생태계에 미칠 영향이다. 시베리아 툰드라 순록에게 모기는 목숨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이다. 심지어 그 때문에 목숨을 잃는 순록도 있다. 그 피해는 순록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순록이 줄어들면 북극 원주민은 먹을 식량이 사라진다. 어쩌면 모기의 변화가 북극 생태계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년 말라리아 매개모기가 얼마나 말라리아원충에 감염됐는지를 조사하고 있는데 작년도 같은 경우 굉장히 많은 감염 모기를 확인했고요. 예년에 비해서는 조금 남쪽으로 내려온 경향을 보였었습니다." (질병관리청 매개체분석과 이희일)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매해 국내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 환자 수는 500여 명이다. 대개 휴전선 인근 부근에거 발생한다. 중국얼굴날개모기는 국내에 말라리아를 옮기는 주범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중국얼굴날개모기의 개체수가 더 많아졌고, 포집되는 위치도 이전에 비해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물론 작년 한 해의 특별한 상황인지 위험지역이 확산됐는지는 좀더 조사가 필요하다.


한편, 최근 제주도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제주대학교 수의과대학 윤영민 교수 연구팀은 모기를 포집해 감염병 인자를 보유한 모기를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뇌염을 매개하는 작은빨간집모기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런데 문제는 채집 시기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에는 4월 6일, 2020년에는 3월 26일, 올해는 3월 22일로 점차 시기가 앞당겨졌다.

원인은 기후 변화이다. 지구가 빨리 따뜻해지다보니 동면에 들어간 모기도 그만큼 일찍 깨어난다. 모기는 체온 조절 기능이 없어 기온이 오르면 몸속 화학 반응이 빨라져 성장 속도도 빨라진다. 모기는 평생 7번 정도 알을 낳는데, 평생 낳는 알의 개수만 200~700개 정도가 된다. 기후 변화로 모기의 활동 시간과 영역이 늘고, 여기에 무서운 번식 능력이 더해져 예측 불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15년 브라질에서는 지카바이러스가 대유행 했다. 감염된 숲모기에 물려 전파되는 이 병은 브라질 전역을 넘어 세계 30개 국으로 퍼져 나갔다. 세계보건기구는 '국제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임산부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 태아가 소두증을 일으킬 수 있는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3,5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지카바이러스 감염에 영향을 받아 발달 문제를 나타내고 있다.

이상한 점이 있다. 1954년 처음 보고된 지카바이러스는 열대 지역에 존재했던 풍토병으로 그리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동안 잠잠하던 바이러스의 행동 양상이 변화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상파울루대학교 공중보건학과 마리아 애니스 교수는 "지카바이러스의 주요 매개체인 이집트숲모기가 도시에 등장하고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기후 조건이 갖춰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나친 삼림 벌채로 모기가 알을 낳을 곳이 많아진데다 연평균 기온 상승으로 모기의 활동 시간과 영역이 늘어나면서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카바이러스가 유행한 2015년은 기후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고 있다. 이처럼 모기는 빠르게 변화한 환경에 더욱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적응력은 인간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다시 한국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부산 고신대학교 이동규 교수 연구팀은 부산과 경남 일대에서 모기을 채집했다. 과연 어떤 모기들이 잡혔을까. 말라리아를 옮기는 얼룩날개모기, 일본뇌염을 옮기는 작은빨간집모기, 흰줄숲모기도 발견됐다. 그밖에 뎅기열, 지카열, 황열을 옮기는 모기도 발견됐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서식하는 흰줄숲모기에서는 감염병을 옮기는 바이러스가 발견된 적은 없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플로리다대학교 질병지리학 사디 라이언 부교수는 "지카바이러스 감염에 적합한 기후 지역에 사는 인구가 2050년까지 최소 13억 명 증가"할 것이라 경고했다. 2050년 한국의 1월 평균 기온은 10도로 예상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열대 지역의 범위가 넓어진다면 흰줄숲모기는 얼어 죽지 않고 성충으로 살아 활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감염병의 위험도 그만큼 높아지는 셈이다.

문제는 기후 변화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극지방의 얼음은 이 시각에도 녹고 있다. 세종과학기지의 기후 상태,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의 기상 기록을 기준으로 보면 기온은 평년보다 1~2도 높았고 강수량은 평년보다 좀 적었다고 한다. 올해는 유난히 기온이 높은 날이 많아 특히 2월에는 영상 12.3도를 기록해서 관측 이래 세 번째로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모기는 그 서식지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인간은 살충제와 유전자 조작 등으로 모기와의 전쟁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모기는 살충제에 적응해 더 강력해지고 있다. 또, 유전자 조작의 경우에는 그 영향이 검증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어쩌면 지구는 모기로 인한 질병을 통해 오래 전부터 경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뚜렷해지고 빨라지고 강력해진 모기의 경고에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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