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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김혜자와 이병헌의 화해, 참았던 눈물 쏟았다

너의길을가라 2022. 6. 13. 17:19

"살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
"지금. 너랑 한라산 가는 지금."


목포에 다녀온 옥동(김혜자)과 동석(이병헌)은 한라산으로 향했다. 제주에 오자마자 한라산으로 간 까닭은 이제껏 한라산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옥동이 원하는 대로 그곳을 오르기 위해서였다. 눈덮인 산길을 오르며 동석은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리 하고 싶냐고 물었다. 옥동의 대답이 궁금했다. 혹 사는 게 징그럽지 않을까. "다시 태어나면 좋지." 그에게도 꿈꾸던 어떤 삶이 있었다.

"돈 많은 부잣집에 태어나 돈 걱정 안 하고, 글도 배워 알고, 자식들도 일 안 시키고 공부 많이 시키고, 너네 아빠처럼 명 짧은 사람 말고 명 긴 사람 만나 한번 그리 살면 좋을겨. 아님 말고."



동석은 또 다시 물었다. 살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냐고. 옥동은 고민없이 "지금"이라고 대답했다. 아들과 함께 한라산에 가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다는 말에, 평생 차갑기만 했던 엄마의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동석은 코끝이 찡해졌다. 괜히 멋쩍은 듯 "천하에 무뚝뚝한 아들놈이랑 기껏 제주 사람이 한라산 가는 게 인생에서 제일 좋은 일이고."라 말해보지만 동석은 그 말에 기분이 좋았다.

옥동은 백록담까지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말기 암 환자인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정도면 됐다고 달랬지만, 옥동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동석은 자신이 백록담까지 가서 사진을 찍어 올테니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겨우 옥동의 마음을 돌린 동석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엄마 때문에 화가 날 때마다 수십 번도 더 올랐던 한라산을 이번에는 엄마를 위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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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날씨로 인해 입산이 금지되어 있었다. 백록담까지 가지 못했지만, 그래서 옥동에게 백록담을 보여줄 수 없었지만, 동석은 그곳에 멈춰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나중에, 꽃 피워 꼭 함께 오자고 말했다. 나중을 믿지 않는 동석이 나중을 얘기한 것이다. 그 말을 하는 동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랬을까. 동석은 눈물을 삼켰다.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다.

목포에서의 시간은 동석과 옥동에게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제사가 끝난 후, 동석이 종우(최병모)의 괄시를 받자 옥동은 분노를 쏟아냈다. 이유없이 너네 형제들한테 맞고, 엄마는 첩살이 종살이 하는데 그만큼 참았으면 많이 참았다며 편을 들었다. 그런 옥동의 태도에서 동석은 위로를 받았다. 동석은 죽음을 앞둔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는 셈치고 그가 원하는 곳으로 향했다.

저수지가 되어 부모의 산소도 찾을 수 없게 된 고향, 13, 4살 때부터 일하다 아빠를 만났다는 구사읍의 한 허름한 식당. 옥동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반추했다. 동석은 옥동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 들여다보게 됐다. 발목을 다친 옥동을 등에 업은 동석은 가슴이 무너졌다. "다 업힌 거야? 뭐야, 가죽만 남아가지고." 늙은 부모의 물리적 무게를 실감한 동석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비가 쏟아졌다. 마침내 동석은 가슴 속에 품어왔던 말을 쏟아냈다. 평생동안 가슴에 상처로 남았던 이야기들을 남김없이 끄집어냈다.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기대하라던 날카로운 화살들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자신이 맞을 때 속상하긴 했냐고, 자식이 있어도 남자 없으면 못 살겠었냐고, 왜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냐고 따져 물었다. 도대체 뭐가 당당해서 미안한 게 없냐고 토해냈다.

"미친년이 어떻게 미안한 걸 알아. 네 어멍은 미친년이라. 미치지 않고서야 딸년을 물질을 시켜 죽이고, 그래도 살려고 붙어먹고. 그저 자식이 세끼 밥만 먹으면 사는 줄 알고, 좋은 집에 학교만 가면 되는 줄 알고 멍청이처럼 바보처럼. 자식이 쳐맞는 걸 보고도 멀뚱멀뚱. 개가 물어뜯을 년. 너 나 죽으면 장례도 치르지 말라. 울지도 말라."



동석의 원망을 듣고 있던 옥동은 가슴 속에 한이 되어 맺혀 있던 말들을 꺼내 놓았다. 남편을 잃고 딸마저 먼저 보내야 했던 황망함, 남은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 재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 상처입은 아들의 눈빛을 끝내 외면해야 했던 비참함. 자신이 죽으면 장례도 치르지 말고 울지도 말라는 옥동의 가슴에는 죄책감이 한가득했다. 동석은 옥동의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혹자는 말한다. '어른' 동석은 옥동에게 그리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동석이 화를 내야 할 대상은 가부장제 하에서 희생되어야 했던 옥동이 아니라, 아들의 하루 세끼를 위해 자신의 삶을 갈아 넣어야 했던 옥동이 아니라, 가부장제 그 자체라고. 맞는 말이다. 열 살에 고아가 된 옥동은 가난과 불행을 짊어지고 살았다. 남편을 만나 겨우 세운 울타리도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옥동이 짊어진 짐이 객관적으로 훨씬 더 무거웠다는 건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가난한 과부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지옥만큼 고달팠으리라. 그래서 첩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본처의 병수발은 물론, 전처소생의 두 아들까지 살뜰히 보살폈다. 멸시와 비아냥을 참고 견뎠다. 그런데 동석은 그런 엄마의 사정은 이해하지 못한 채 비뚤어지기만 하니 얼마나 속이 탔을까.


하지만 고통에 갇힌 이들에게 왜 거기 갇혀 있냐고, 본질을 보지 못하냐고 타박할 수 있을까. 굳이 어느 쪽의 상처가 더 컸는지 따질 필요가 있을까. 다가서지 못했던 두 사람에게는 계기가 필요했으리라. 그게 (춘희는 복이라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옥동의 암이었고, 둘만의 여행이었다. 긴 세월 자꾸만 멀어지기만 했던 옥동과 동석은 사랑한다는 말 없이 미안하다는 말 없이 화해했다.

옥동은 아들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한 사발 끓여두고 잠들었다. 동석은 영원히 잠든 옥동의 팔에 누웠다가, 다시 자신의 팔에 눕혔다가 끌어안고 아이처럼 한없이 울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은 엄마를 평생 미워한 게 아니라 화해하고 싶었다는 걸, 사실은 끌어안고 실컷 울고 싶었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여전히 '어린' 동석인 채 살았던 동석은 어른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노희경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의 리얼리즘이 퇴색됐다는 비판을 제기했고, 그의 세계관이 낡았다는 말도 나왔다. 노 작가가 노(老) 작가가 되었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대체로 맞는 말이다. 드라마 군데군데 시대적 변화에 뒤떨어지는 부분이 발견됐고 아쉬움도 남았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꼬집고, 담대한 문제의식을 담아내던 날카롭던 펜은 이제 무뎌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노희경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글에는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위로가 담겨 있다. 깊은 울림이 있다. tvN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것을 증명했다. 출생의 비밀도, 음모와 암투도, 막장적인 요소도 없는 드라마가 최고 시청률 14.597%(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한 건 놀라운 일이다.

그의 바람처럼, 모두 행복한 세상이 올까. 요원한 꿈일지 모르겠다. 삶은 고해라고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이 땅에 괴롭기 위해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내 삶에서 불행이 스물스물 피어오를 때마다 '행복'을 노래했던 <우리들의 블루스>를 떠올려 보기로 하자. 당신만의 한 장면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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