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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과 박해영, 결국 웰메이드로 증명했다.

너의길을가라 2022. 5. 1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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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 다가오면 설렌다. 가슴이 쿵쾅쿵쾅한다. 근래에는 없던 일이다. 바야흐로 주말이 기다려지는 시절이다. 이토록 기대감에 부푸는 까닭은 다름 아니라 두 편의 드라마 때문이다. 같은 날(4월 9일) 시작한 tvN <우리들의 블루스>와 JTBC <나의 해방일지>, 왠지 제목도 서로 통하는 듯한 드라마 두 편이 주는 블루스한 감성과 해방의 통쾌함은 일주일을 버티게 한다.

"슬퍼하지 말란 말이 아니야. 우리 엄마처럼 슬퍼만 하지 말라고. 밥도 먹고 기뻐도 하고 슬퍼하면서 살아." (이동석)


'노희경 작가의 복귀작'으로 홍보 효과를 잔뜩 누렸던 <우리들의 블루스>는 초반부터 치고 나갔다. 이병헌, 신민아, 엄정화, 차승원, 이정은, 한지민, 김우빈 등 한 자리에 모으기 힘든 톱스타들이 출연한다는 소식도 드라마 흥행에 한몫했다. 첫회 시청률은 7.324%로 기대감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중년의 애환을 담은 '한수(차승원)와 은희(이정은)' 에피소드가 초반부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물론 부침도 있었다. 노희경 작가는 '청소년 임신'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극에 녹여내며 시청자들을 논란 속으로 초대했다. 과감한 시도이자 현실 반영이라는 옹호 여론이 많았지만, '임신 중단'에 죄책감을 부여했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또, '순정남들에 대한 시대착오적 연민'이라는 날선 비판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들의 블루스>는 7%대 시청률에 머물렀다.

하지만 '인권(박지환)과 호식(최영준)' 에피소드에서 절친이었던 두 아빠의 절교와 화해, 자녀를 향한 절절한 부성을 다루면서 눈물샘을 자극했고, '동석과 선아' 에피소드에서 이병헌과 신민아가 전면에 등장하자 몰입도가 높아졌다. 특히 이병헌의 순애보 연기와 신민아의 감정 연기가 눈길을 끌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11.242%로 두 자릿수 시청률로 껑충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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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상황을 자꾸 크게 만들어. 오늘은 팔뚝 하나 물어뜯기고, 내일은 코 깨지고, 불행은 그렇게 잘게 잘게 부숴서 맞아야 하는데 자꾸 막아서 크게 만들어. 난 네가 막을 때마다 무서워. 더 커졌다. 얼마나 큰 게 올까" (주자경)



초반부터 치고 나갔던 <우리들의 블루스>와 달리 <나의 해방일지>는 어려움을 겪었다. tvN <나의 아저씨>를 집필한 박해영 작가의 신작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초반의 느린 전개와 무거운 분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물론 박해영 작가의 작품을 애정하는 시청자들에게는 그 '나른함'마저도 흥미로웠을 것이다.) 첫회 시청률은 2.941%였고, 줄곧 3%대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나의 해방일지>는 꿋꿋하게 해방을 향해 나아갔다. 염기정(이엘), 염창희(이민기), 염미정(김지원) 삼남매의 캐릭터를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미정과 구씨(손석구)의 관계가 본격화 됐고, 마침내 '추앙' 바람을 타고 시청률 답보를 뚫어냈다. 일부 시청자들은 '나를 추앙해요.'라는 '낯선' 대사에 몰입하기 어렵다고 불평했지만, 캐릭터가 주는 설득력이 더해지며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무엇보다 박해영 작가가 천착하는 '구원'이라는 주제의식이 전달된 점이 주효했다. 삶 속에서 각자의 구원에 굶주려 있던 시청자들은 <나의 해방일지>의 인물들이 갈구하는 해방에 동질감을 느꼈다. 또, 중반 이후 느린 듯했던 전개 속도는 구씨의 정체(구자경)가 밝혀지며 급물살을 탔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휘몰아친 10회 시청률은 4.594%로 급상승했다.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결국 드라마는 극본'이라는 확신이다. 드라마의 성공을 좌우하는 요건들은 많지만, 역시 뼈대가 되는 건 극본이다. 좋은 배우들을 설득하는 것도 결국 '책(극본)'이고, 좋은 배우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책'이다.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에는 조연 배우들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지 않은가!

명확하고 뚜렷한, 일관된 주제 의식 속에 삶과 인생을 담은 작가의 깊이 있는 고민이 담겨 있다. 설득력을 갖춘, 합당한 캐릭터들이 개연성 있는 전개와 맞물려 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명대사는 소름을 돋게 한다. 시청자를 열불 터지게 하는 막장 드라마가 아닌 웰메이드 드라마의 복귀가 반갑기만 하다. 토, 일이 충만해지는 요즘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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