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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폼의 시대, 롱폼의 반격에 유재석이 앞장선다

너의길을가라 2025. 1. 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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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은 가속화되기 마련이다. 짧음은 그 이상의 짦음을 요구받는다. 다시 말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시청하는 짧은 영상 콘텐츠, '쇼트폼(short-form)' 얘기다. 처음에는 10분 이내도 쇼트폼의 범위에 포함됐지만, 이젠 15초도 길어서 5초에 승부를 봐야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조금이라도 길다는 느낌이 들거나 내용이 늘어지면 외면당하기 일쑤다.

쇼트폼은 이중적이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할 때 이동 시간을 '순삭'해주는 든든한 친구지만, 잠들기 전에는 수면 시간을 앗아가는 무시무시한 적이다.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나 틱톡,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는 자조섞인 탄식이 여기저기에서 속출한다. 문제는 그것이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쇼트폼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쇼트폼은 이미 OTT마저 압도하고 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5120만 명을 대상으로 사용 시간을 비교 분석했는데, 지난 8월 쇼트폼 앱의 1인당 월평균 사용 시간은 52시간 2분이었고, OTT 앱 사용 시간은 7시간 17분에 불과했다. 무려 7배 이상 차이로 쇼트폼이 압도적이다. 지금은 쇼크폼 전성시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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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등은 쇼트폼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경고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미국 워싱턴대 데이비드 레비 교수의 '팝콘 브레인'이다. 팝콘이 전자레인지에 들어가 '타닥'하고 튀는 것마냥, 쇼트폼에 길들여진 뇌가 점점 더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게 된다는 뜻이다. 쇼트폼으로 인한 뇌의 변화가 우울증, 불안, ADHD, 수면 장애 등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쇼트폼을 향해 치닫는 지금의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2025년은 그 가속화가 더욱 살벌하게 진행되는 해일 것이다. 다만, 무엇이든 임계점을 넘어버리면 반동이 오기 마련이다. 쇼트폼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움직임도 엿보인다. 이를테면 롱폼(long-form)의 반격이라고 할까. 1시간을 넘어 거의 2시간에 육박하는 분량의 콘텐츠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 중 대표 주자는 유튜브 채널 '뜬뜬'의 콘텐트 '풍향고'이다. 배우 황정민의 말실수('핑계고'를 '풍향고'라고 말한 것)로 시작된 이 콘텐츠는 유재석, 양세찬, 지석진이 앱을 사용하지 않고 해외 여행을 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1시간 40분~50분 분량의 롱폼 포맷에도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1월 1일 기준 1회 1148만, 2회 857만, 3회 661만, 4회 505만 회이다.

또, 2시간 20분 분량의 '핑계고' 연말 시상식 콘텐츠는 조회 수 695회를 기록 중이다. 편집을 통해 짧은 콘텐츠로 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처럼 '뜬뜬'은 긴 호흡의 롱폼 영상들을 제작하고 있다. 맥락이 삭제되면 웃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의미일까. 그밖에도 유튜버 침착맨이 소설 '삼국지'를 쉽게 풀어 설명한 동영상인 '침착맨 삼국지 완전판'은 조회수가 2192만 회 가까이 된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은 "현재의 디지털 환경이 굉장히 복합적이어서 쇼트폼이나 롱폼 둘 중 어느 한쪽으로만 간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며, "시청자에겐 두 가지 수요가 모두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또,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롱폼과 쇼트폼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콘텐츠는 재미만 있으면 길이나 플랫폼은 상관 없다"고 딱 잘라말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얼마 전까지 '불멍' 영상에 열광했고, 무해한 예능을 보며 힐링하지 않았던가. 물론 여전히 쇼트폼은 우리 곁에 너무나 가까이 있고, 거기에서 한발짝 벗어나려면 굉장한 결단이 필요하지만,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긴 호흡만이 주는 정서와 감동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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