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참 좋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감옥을 네 번이나 다녀온 장발장에 대한 이야기. 레미제라블. 장발장의 인생을 바꾼 것은 미리엘 주교의 은촛대, 믿음과 기회였습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만 믿고 기회를 줘도 인생은 바꾸리 수 있다." (백종원)
약 10,000개의 양파가 쌓인 거대한 산 앞에 20명의 참가자가 당황한 낯빛을 하고 있다. 무게만 3톤, 총 200망의 엄청난 양의 양파였다. 이를 본 참가자들은 "정말 아파트 2, 3층 높이는 되는 것 같았다", "공판장에 있는 양파들 다 모아놓은 것 같다", "이건 산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라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의 첫 관문은 '양파 썰기'였다.
부모가 버린 자식 1번(성현우), 한화 이글스 방출투수 4번(양경민), 망한 아이돌 6번(김국헌), 9호 처분 소년 절도범 7번 김동준, 알코올 중독 9번(오창석), 가족 버린 탈북인 13번(하진우), 태어나서 불편한 아이 15번(유지민), 다단계 빚 4억 아버지 16번(주현욱), 철없는 싱글대디 19번(김현준) 등 20명의 참가자는 분주하게 양파를 자신의 자리로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양파를 날랐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참가자들의 요리 실력은 천차만별이라 양파를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도 있었다. 참가자의 숫자는 요식업 경력을 뜻하고, 숫자가 높을수록 경력이 많았다. '3mm 크기'라는 조건이 주어졌는데, 그 크기를 가늠하지 못해 허둥대는 참가자도 있었다. 백종원은 양파 썰기를 통해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친목 도모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백종원)
지난 30일, ENA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이 베일을 벗었다. 장발장의 재기를 다룬 동명의 소설에서 착안한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은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한 20명의 도전자들이 인생 역전 기회를 잡기 위해 스파트라식 미션을 수행하는 서바이벌이다. 백종원이 제시하는 모든 미션을 훌륭히 수행하고, 전 과정을 성실히 마친 참가자에게는 '나만의 가게'라는 특급 선물이 주어진다.
충남 예산군에 위치한 4만 평의 폐공장에 찾아온 참가자들은 환복을 하고 정신을 재무장해야 했지만, 누가 봐도 느슨한 태도를 보였다. 전반적인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백종원은 "긴장 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기들끼리 웃고 막 장난치고."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지금 친목 도모하러 온 게 아니라는 쓴소리로 참가자들의 경각심을 자아냈다.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은 한마디로 설명하면 백종원의 '인간 개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낯설지는 않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했던 일이다. '홍탁집 아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백종원이 유독 좋아하는 서사다. 본인도 실패를 여러 차례 경험했기에 "우리 사회가 실패한 청년들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자"는 취지를 담은 것이다.
다시 말해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여러 차례 엿보였던 인간 개조 프로젝트의 확장판인 셈이다. 창업의 진정성이 요구되는 만큼 6개월의 대장정이 펼쳐질 예정이다. 백종원을 돕기 위해 4명의 요리 고수(일식반 김민성 셰프, 고기반 데이비드 리 셰프, 중식반 임태훈 셰프, 양식반 윤남노 셰프)가 합류했다. 모두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했기에 출연을 결정했다.
그렇다면 백종원은 왜 양파 썰기를 첫 번째 미션으로 제시한 걸까. 그는 외식업의 첫 질문은 '어떤 재료로 무엇을 어떻게 팔 것인가.'라고 운을 띄웠다. 심사 기준은 ①일머리(눈치와 센스) ②재료 수율 ③위생과 청결이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양파 썰기에 임했다. 재료를 살뜰히 아껴 90%를 사용하는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을 낭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실패의 이유는 다양해도 두 번째 기회가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참가자들은 그렇기에 '백종원의 레 미레자블'에 도전하는 마음가짐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15번은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쳤음에도 행여나 불이익이 있을까봐 이를 숨긴 채 양파를 썰 정도로 절박함을 보여줬다. 나중에 이를 발견한 김민성 셰프의 호통에 치료를 받게 됐다. 재기에 대한 목마름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백종원의 레 미레자블'을 보는 시선이 따뜻하기만 한 건 아니다. 우려의 눈빛도 있다. 바로 '범죄자 미화' 논란이다. 하지만 한경훈 PD는 "일차적인 검증은 모든 프로그램 기준 이상으로 했다. 사회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분들은 다 걸러냈다."며 자긴감을 드러냈다. 소년범 9호 처분을 받은 7번도 절도범으로 강력 범죄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 상권 살리기에 이어 인간 개조 프로젝트까지, 백종원은 자신의 영역을 어디까지 확장할까. 그 성패는 결국 참가자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임하느냐에 달려 있고, 제작진이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진실되게 스토리텔링하느냐로 결판 날 것이다. 첫 회 시청률은 0.958%(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로 '내 아이의 사생활' 마지막 회 시청률 1.128%에 비해 하락해 실망스러운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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