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땅에 떨어진 보수의 품격, 상처 받았을 진짜 보수를 위하여

너의길을가라 2014. 1. 10.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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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保守)'와 가장 매칭이 잘 되는 단어는 '품격(品格)'이 아닐까? 표창원 교수의『보수의 품격』이라는 인터뷰집은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본래 보수는 그 사회의 존경받는 사람들이 '독차지'하는 가치다. 보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며, 타의 모범이 되고, 그러함으로써 존경과 존중의 대상이 된다. 국가 혹은 민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지켜야 할 것을 위해선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그 강골(强骨)함이 보수의 미덕이다. 그리고 그것이 보수의 품격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보수'의 위치는 어떠한가? 보수의 가치가 길바닥에 쳐박힌 지 오래다. 보수를 참칭(僭稱)하는 가짜 보수들에 의해 철저히 망가졌다. 대한민국의 진짜 보수들은 상처 입었다. 그것도 아주 깊은 내상(內傷)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 글은 분개(憤慨)하고 있을 대한민국의 진짜 보수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썼다. 작금의 상황들을 지켜보면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진짜 보수들을 위해 바치는 헌정(獻呈)의 글이다. 



- <한겨레>에서 발췌 - 


밥값 300만원 깎아달라는 보수대연합 <한겨레>

낭만창고, 변희재에 "우리가 종북식당? 사과해" 일침 <노컷뉴스>


처참하다. 이 정도로 타락했던가? '교학사 교과서 논란'만 해도 보수로서는 고개를 들기 힘들 지경이었다. 언제부터 보수가 역사 왜곡을 옹호하게 됐는가? 위안부 문제와 일제 강점기에 대한 '우호적' 서술로 일관한 '교학사 교과서'를 위해 싸우게 됐는가? 대한민국의 보수가 지켜야 할 것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고깃값 300만 원' 사건이다. 이번에는 돈 문제다. 추잡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우선, 사건의 개요를 간단히 짚고 이야기를 계속 진행하도록 하자. 


지난해 12월 17일, '보수 대연합 발기인 대회'가 열렸던 모양이다. 물론 이 글을 읽으실 '진짜 보수'들은 참석하지 않았을 괴상한 모임이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비롯해서 대한민국종북감시단 · 자유대학생연합 등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25개 단체의 약 600여 명의 회원들이 '낭만창고'라는 고깃집에 모였다.


"오늘이 12월17일이에요. 공교롭게도 북괴의 괴수 김정일이가 죽은 지 2년이 되는 날이죠. 이틀 뒤면 우리가 사랑하고, 영광스러워하고, 또 정말 예쁜 박근혜 대통령께서 취임 1년을 맞는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가슴속엔 종북을 물리치는 뜨거운 사명을 갖고 있다"


"지난 좌파정권 아래서 활동하기 힘들지 않았나. 지금은 뭉쳐서 활동하기에 환경이 좋다"


이런 말들이 오갔다. 나름대로 뜨거운 자리였던 모양이다. 국내산 돼지고기, 1인분에 1만 3,000원. 식사비는 총 1,300만 원이 나왔다. 엄청난 돈이다. 문득 그 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해진다. 회비 거뒀나? 아니면 찬조금이 있었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쌀 화환도 있었고, 박석순 전 국립환경과학원장(이화여대 교수)을 비롯해 교수들도 여럿 있었다고 하니 그 분들이 조금씩 보태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찌됐든 자칭 '보수'들끼리 모여서 맛있게 식사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진 채 헤어지면 그뿐이다. 그것을 두고 나무랄 일은 아니다. 문제는 행사가 끝난 후, 보수대연합이 '서비스 불량'을 이유로 식사비 1,300만 원 중 1,000만 원만 지불하고 나머지 300만 원은 깎아달라고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식당 측은 당연히 황당했을 것이다. "1300만원도 사실상 100만원 정도를 할인해준 거다. 우리는 1원도 깎아줄 수 없다. 이런 걸로 소송을 할 수도 없고, 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낭만창고' 측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러자 행사에 참여했던 변희재 씨는 "변호사에게 확인해 보니 정상 서비스가 안 됐기 때문에 충분히 디시(할인)가 가능하다고 하더라. 100만원만 깎아주면 200만원은 주려 했는데 안 된다니까 300만원 다 가지고 법정에 가자는 거다"며 고소를 할 의사를 밝혔다. 이쯤되면 '고소 중독' 아닌가? 그 와중에 변희재 씨는 "이 식당의 회장이란 인물은 친노 종북 편향의 평론가 정관용씨와 함께 어울리는 등의 행보를 보여왔다"며 습관성 종북 몰이를 하기도 했다.




이런 추잡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두자. 교학사 교과서 논란에 이어 고깃값 300만 원까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진짜 '보수'들이 얼마나 참혹한 심경에 휩싸여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이런 게 보수가 아닌데..' 라며 부끄러움을 넘어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건 보수의 참 모습이 아니다. 정말 보수다운 보수의 모습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필자는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을 떠올린다. 그렇다. 보수를 논하기에 우당 이회영만한 인물이 또 있을까? (우당기념관)


우당 이회영은 구한말인 1867년 태어나 64세에 고문으로 죽을 때까지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을 만큼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던 인물이다. 또, 대한민국 제1대 부통령을 역임했던 이시영의 형이기도 하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명문가였는데, 그 내력이 시쳇말로 정말 후덜덜하다.


10대조인 백사 이항복을 비롯해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종성과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 등 조선조에서 6명의 정승과 2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대표적인 사대부 집안이었다. 부친 이유승 역시 고종 대에 이조판서와 의정부 참찬을 지냈으며 어머니는 이조판서를 지낸 정순조의 탈이었다. 이러한 가계도를 간략히 훑어보아도 그의 집안은 대대로 조선왕조 왕가와 긴밀했을 뿐 아니라 중앙 관직을 두루 거친 명문대가였다.


- 김명섭,『자유를 위해 투쟁한 아나키스트』이회영 -


다시 말하면, 이회영과 그의 가문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설령 조국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줄을 잘 잡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만약 이회영이 그런 길을 선택했다고 한들 누가 탓할 수 있었을까. 친일파들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떵떵 거리며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회영이 지금까지 존경받는 인물로 기억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자신이 가진 것을 독립운동을 위해 모두 버렸기 때문이다. 이회영 일가는 안락함이 보장된 국내에서의 삶을 버리고 압록강을 넘어 망명길에 오른다. 그 과정에서 약 40만 냥의 거금을 마련했는데, 지금의 쌀값으로 환상해보면 약 수백 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돈이라고 한다. 이 돈이 독립군 기지 건설(신흥무관학교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회영의 결단을 접한 월남 이상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서 역사상 나라가 망한 때 나라를 떠난 충신 의사가 수백, 수천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당 일가족처럼 6형제 일가족 40여 명이 한마음으로 결의하고 나라를 떠난 것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장하다! 우당의 형제는 참으로 그 형에 그 동생이라 할 만하다. 6형제의 절의는 참으로 백세청풍이 될 것이니 우리 동포의 가장 좋은 모범이 되리라. 

'교학사 교과서'나 '고깃값 300만 원'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런 추잡한 모습이 보수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자신의 재산을 독립 운동을 위해 아낌없이 바치고, 일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우당 이회영의 모습이야말로 보수의 참 모습이다. 이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고 고민하는 냉청할 이성과 그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을 만큼 뜨거운 심장을 가진 것이 바로 '진짜 보수'다. 



- 해방을 맞아 6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고국의 땅을 밟은 이시영 선생의 모습 - 


필자는 대한민국에 아직 이런 진짜 보수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작금의 상황들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진짜 보수들 말이다. 보수의 가치, 보수의 품격은 땅에 떨어졌다. 아니, 지하 깊숙이 파묻혔다. 더 이상 방치해선 곤란하다. 이젠 진짜 보수들이 나설 때다. 언제까지 가짜 보수들이 보수를 참칭하며 드잡이질을 하는 걸 두고만 볼 것인가? 우당 이회영과 그 형제들처럼 자랑스러운 보수의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대한민국의 진짜 보수들이여! 보수를 보수(補修)하자. 그것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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