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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주검이 돼 돌아온 아들, '묻지마 징병'의 비극이었다

너의길을가라 2021. 10. 3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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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 신체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83.8%'이다. 이 수치는 지난 5년간 꾸준히 상승했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이 통계를 접하면 꽤나 긍정적인 신호처럼 보인다. 그만큼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청년들이 많아졌다는 얘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역 판정 비율을 높이기 위해 기준을 대폭 낮췄다면 어떨까. 그렇다. 숫자는 착시였다.

"우리 아들, 그렇게 아파했는데 몰랐어. 아빠가 미안해. 우리 아들, 보고 싶어."


지난 30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묻지마 징병'의 비극 편은 군대에 보낸 아들을 잃은 아빠의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고(故) 한재산(가명) 이병은 입대한 지 열흘 만에 주검이 돼 돌아왔다. 아들이 죽은 지 2년이 지났지만, 아빠는 여전히 슬픔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이 떠올라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걸까.

고 한 이병은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척추측만증을 부풀려 4급 공익 판정을 받았지만,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병무청에 자수했다.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부담감을 느꼈고, 그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아 4달 동안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됐다.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고, 고 한 이병은 재검에서 현역 2급 판정을 받았다. 우울증을 이유로 입대 연기를 문의했지만, 병무청은 거부했다.


병무청은 병역 면탈로 인한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입대 연기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면제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우울증의 경우 6개월 이상이 진료력 혹은 한 달 이상의 입원력이 필요하다.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고 한 이병은 진단 검사에서 증중 우울증과 전문가 상담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최종 군생활 적응검사에서는 양호 판정을 받았다.

중증 우울증이라면 귀소시킬 수 있었지만 그런 조치는 없었다. 자대 배치 후 중대장은 신병교육대 면담기록을 확인하지 않았고, 병사들을 관리하는 행정보급관은 고 한 이병에게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신병교육대에서 우울증 진단이 나오면 원칙적으로 보호/배려 병사로 선정해야 하지만, 일반 병사로 관리된 것이다. 하지만 군 당국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2014년 자대 배치 12일 만에 숨진 고 유안수(가명) 이병은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고, 병무청 신검 복무적합도 검사에서 군생활에 어려움이 예상되며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정밀 진단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2차 심리검사에서는 군 생활 초기에 관심과 배려가 주어지면 금세 적응해 나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고, 결국 현역 입대가 결정됐다.

"검사 자체가 정신과 전문의에 의해서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검사를 해서 분석이 되고 확인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한 30분짜리로 만들어버린 거죠. 일종의 심리테스트를 해서 들여보내는 수준인 거거든요."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팀장, 예비역 해병 대위)

2013년 말 육군 5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고 유 이병은 신병교육대에서 두 차례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당시 그는 사격 훈련에서 총구를 돌려 다른 훈련병을 해칠 것 같았고, 새벽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고 털어놨다. 우울증약까지 처방 받았지만 귀가 조치나 현역 부적합 판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자대로 배치된 고 유 이병은 안타깝게도 운명을 달리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팀장은 신병교육대에서는 환자를 맡고 싶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기수에 배출해 내야 하는 인원과 들어오는 인원이 정해져 있으므로 일단 자대로 보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인원이 자대로 배치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건강한 신병이 들어올 수 있는 수 자체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군 내 우울증 진료 병사는 10,839명에 달한다. 2016년 4,441명에 비해 2배 넘게 급증한 숫자다. 김대히 인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징병 검사에서 병의 입증 책임이 국가가 아닌 징집 대상자에게 있는 불합리한 현실을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채용 검진을 할 때 검증 책임이 고용자에게 있는 점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다. 유독 군대만 그 책임이 피고용자에게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현역 판정 비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83.8%라는 수치는 정상적이지 않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에 따르면, 청년들의 환자 발생 추이를 감안했을 때 청년의 76% 이상 징병해서는 안 된다는 게 대체적인 연구 결과라고 한다. 그렇다면 7.8%의 초과치는 무엇을 의미할까. 경제적/신체적으로 병역을 수행하기 힘든 청년들을 입대시키는 경우 아닐까.

몸이 아픈 홀어머니 때문에 군 입대를 미뤄왔던 A씨는 혼자 벌어서 어머니의 수술비를 대야 하는 상황인데도 입대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생계 곤란 병역면제 월수입 기준(2인 가족, 1,235,232원)을 넘는 수입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A씨의 수입 200만 원은 거의 어머니의 병원비로 지출되고 있다. A씨의 어머니는 A씨가 입대하면 당장 수술비를 낼 수 없는 절박한 입장이다.

중학교 때 녹내장 수술을 받고 5년째 치료를 받고 있는 B씨는 아직 완치되지 않았지만 신검에서 현역 2급 판정을 받았다. 매일 1회씩 넣어야 하는 약을 냉장 보관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시야 검사도 받아야 하는데 입대 후에는 여의치 않은 일이다. 녹내장 관련 병역 판정 기준은 2008년부터 강화됐다. 그밖에도 디스크 환자나 안구 함몰증, 안구 이식자에 대한 기준도 강화됐다.

이렇게 기준을 강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병력 수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징집 가능 인원이 줄어들고 있으니 기준 자체를 낮춰 일정 수준을 맞추겠다는 의도이다. 이에 대해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팀장은 "군인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인구수와 병력 수급 상황에 따라 기준이 제멋대로 바뀌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무리한 징집은 결과적으로 군에 부담이 되고 있다. 군 내 도움/배려 병사는 매년 3만 명 안팎의 수를 유지하고 있다. 우울증 진료 인원도 지난 5년 간 두 배 이상 늘었다. 각종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군은 55만 명인 군 병력을 50만 명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인구 감소 속도가 그보다 빨라서 무리한 징집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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