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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모녀 살해'와 '만삭 부인 살해', 비슷한 두 사건의 결정적 차이

너의길을가라 2021. 9. 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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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살인과 방화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약 8년간의 지난한 법정 공방 끝에 무죄가 확정된 남자가 있다. 일명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이다. 반면, 2011년 무죄를 주장했으나 결국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은 남자가 있다. 이른바 '만삭 부인 살해사건'이다. 무엇이 이 두 사건의 결말을 뒤바꾼 걸까. 29일 방송된 KBS2 <표리부동>은 그것이 '증거'였다고 얘기했다.

먼저 2011년 1월 서울 마포구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부터 살펴보자. 한 여성이 자신의 집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출산을 3주밖에 남겨두지 않은 만삭의 임신부였다. 뱃속의 아이도 엄마와 운명을 같이 했다. 아내는 잠옷 차림으로 욕조에 가로로 누워 있었다.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자세였다. 그런데 집을 드나든 건 오직 외과 의사인 남편뿐이었고, 신고도 남편이 한 것이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질식사였다. CCTV를 확인했으나 외부인이 출입은 없었다. 전날 저녁 외식 후 두 사람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외출 당시(6시 41분)에는 아내가 살아 있었지만, 자신이 신고한 시간(17시 11분)에는 아내가 죽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시신이 손톱 밑에서 남편의 DNA가 발견됐다. 남편은 전날 밤 아내가 자신이 등을 긁어줬다고 맞받았다.

하지만 표창원 프로파일러는 피부 각질에서는 DNA가 검출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러모로 남편이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내가 죽었는데도 차분하게 신고를 했다는 점도 의아했다. 경찰은 사망 추정 시간(6시에서 8시)을 근거로 남편이 아내를 살해 후 집을 나섰을 거라고 추정했다. 물론 남편은 출근 당시 아내의 배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일 남편의 행적은 어떠했을까. 남편은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도서관을 다녔는데, 그날따라 평소와 달리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목도리에 감아두었다고 진술했다. 연락을 받지 못했던 건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CCTV 확인 결과, 남편은 점심 무렵 도서관을 나서면서 목도리를 두르고 휴대전화로 추정되는 물체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 외에도 수상한 점은 또 있다. 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장모의 전화를 받은 남편은 부재중 전화에 남아 있떤 아내의 직장동료, 본인의 지인 등에게는 전화를 걸었지만, 정작 아내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 앞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한 통 걸었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간 후 2분 후에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가 죽었다고 얘기했고, 이어 2분 간격으로 119과 112에 신고했다.

욕조에 사망해 있는 만삭의 아내를 보고 감정 동요 없이 전화를 걸었다는 점도 의심스러웠다. 경찰은 사건 당일 남편의 이마와 관자놀이에서 상처를 발견했다. 사망 전 부부싸움을 했다는 가족들의 증언도 있었다. 남편은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혼났다. 당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시신에는 저항 흔적과 상처가 남아 있었고, 남편이 집에서 입고 있던 옷에서 두 사람이 혈흔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남편이 게임 중독이었고, 그 때문에 부부간에 잦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남편이 부부싸움 끝에 아내를 살해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사건은 쉽게 해결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재판은 쉽지 않았다. 남편은 캐나다의 유명한 법의학자 마이클 폴라넨 박사를 증인으로 법정에 세웠다. 흥미롭게도 16년 전, 이와 매우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스위스의 법의학자가 한국까지 왔던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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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남편의 병원으로 집에 불이 났다는 장모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이 화재로 치과의사인 아내와 1살 딸이 함께 사망했다. 경찰 조사 결과, 모녀의 사망 원인은 화재로 인한 질식사가 아니라 교살로 밝혀졌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남편을 지목했다. 하지만 남편은 완강히 부인했다. 앞서 살펴본 2011년 '만삭 부인 살해사건'과 굉장히 비슷하지 않은가.

현관문은 닫혀 있었고, 귀중품도 그대로였다. 복도식 아파트라 건물에 들어가려면 경비실을 지나가야 했는데, 경비원은 외부인의 출입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남편이 용의자로 지목된 이유는 남편의 오른팔에 3개의 손톱자국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남편은 스스로 만든 손톱자국이라 강력히 주장했으나 손톱의 반달 모양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보기에 부자연스러웠다.

결국 남편은 구속됐다. 하지만 경찰이 내세운 증거는 정황 증거뿐이었다. 딸의 교살에 사용된 범행도구도 찾지 못했다. 또, 초등 조치 과정에서 시신이 옮겨지는 등 증거 보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망 추정 시간을 계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경찰들이 과학 수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벌어진 안타까운 일이었다. 남편은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남편의 출근 시간은 7시였다. 하지만 화재 발생 추정 시간은 빨라도 8시 40분이었다. 경찰과 검찰은 지연 화재라고 주장했다. 옷장 안에 미리 방화한 후 문을 닫아 외부의 산소를 차단하면 큰 화재로 번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논리였다. 검경은 실험까지 하며 입증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실험한 아파트 구조와 사건 현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는 '범인이 왜 방화를 저질렀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제3의 인물이 남편의 출근 시간을 이용해 불을 지르고 남편을 범인으로 만들고자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애당초 경찰은 외부 침입이 없었던 점에서 남편을 용의자로 추정하고 수사에 임했지만, 나중에 아파트에 다른 통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섣부른 배제가 수사를 교착 상태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후 피해자에게 내연남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치과 개업 당시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업체 사장이었다. 게다가 피해자에게 빚도 지고 있었고, 당시 부도가 난 상황이었다. 충분한 상해 동기가 있었다. 남편도 내연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1심은 사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에 검찰이 상고했고,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결국 다시 재판이 열리게 됐다.

남편은 세계적인 법의학 권위자인 스위스의 토마스 크롬페쳐 교수를 법정에 세웠다. 크롬페쳐 교수는 시신과 시반(사람이 죽은 후에 피부에 생기는 옅은 자주색의 반점)의 상태로 보아 피해자가 오전 7시 이전에 사망했다고 볼 수 없다고 답변했다. 재판부는 그 의견을 받아들여 결국 남편은 무죄가 확정됐다. 결국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표창원은 사건 초반의 증거수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만삭 부인 살해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남편은 무죄를 주장하고자 캐나다의 유명 법의학자 마이클 폴라넨 박사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1995년 사건을 재현할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피해자의 목에 타인에 의한 목 졸림을 확인할 수 있는 부검 사진을 공개했다.


깜짝 놀란 폴라넨 박사는 자신이 보지 못했던 사진이라며 '액사로 인한 타살'로 입장을 바꿨다. 자신의 논문 방향과 일치한다고 여기고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무작정 한국으로 온 폴라넨 박사의 헛발질이었다. 결국 남편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초범 및 우발적 살인이라는 점을 참작한 결과였다. 하지만 1살 딸까지 죽였다는 점에서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는 생각이 든다.

1995년에는 증거를 찾지 못한 범인을 놓쳤지만, 2011년에는 발전된 과학 수사를 통해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그만큼 현장 보존, 사진 촬영 방법, CCTV 등 과학적 툴 이용 방법 등이 많이 개선됐다. 또, 현장 경찰관들의 인식도 높아졌다. 서중석 당시 국과수 법의학 부장은 만약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이 동시대에 발생했다면 100% 해결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표창원과 이수정은 '증거가 사건의 결과를 바꾼다'는 점을 강조했다. <표리부동>은 비슷한 유형의 두 가지 사건을 나란히 배치하면서 '증거'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물론 나름대로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기존에 '표창원의 시선', '이수정의 시선' 등으로 표현됐던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다소 밋밋했다. 표창원과 이수정은 단순 '이야기꾼'으로 활용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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