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국가와 사회에 기여? 괴상한 탄원서가 효력을 발휘하는 현실

너의길을가라 2013. 12. 22.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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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피고인은 수천 억원을 횡령하는 등 죄질은 나쁘나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많아 집행유예에 처한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혹은 감형.


회삿돈을 수천 억 원씩 횡령(혹은 배임)한 재벌의 회장님들을 위한 판결은 공식처럼 정해져 있었다. 비판이 점차 거세지자 최근에는 집행유예 없이 징역을 때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국가나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많'기 때문에 감형을 받아 형량은 줄어든다. 이는 재벌의 회장님에게만 적용되는 예는 아니다. 정치인들에게도 마찬가지 '혜택'이 돌아간다. 이유는 매번 똑같다. '국가나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많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들이 국가나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얼마나 많기에, 지은 죗값을 제대로 받지도 않고 항상 법의 비호(庇護)를 받는 것일까? 물론 일정한 기여를 했다는 것조차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국가나 사회에 끼친 해악을 계산하지 않는 건 지나치게 편향적인 태도 아닌가?


또,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 아니겠는가? 만약 재벌 회장님들과 정치인들이 '공로'를 형량을 따지는 데 고려하고자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공로'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왜 법원은 여기에 대해선 철저히 외면하는 것일까?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배상 판결을 받은 노동자들에겐 '국가나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없단 말인가? 어째서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에겐 '국가나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해 감형을 해주지 않는 것일까?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 혹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어떠한가?


큰 기업을 경영해야만, 혹은 정치를 해야만 '국가나 사회에 기여'하는 것인가? 애석하게도 그들의 '기여'는 그들이 끼친 '해악'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지 않나?




- <뉴스1>에서 발췌 - 


어제 하루 동안 여대생을 청부살해한 윤길자 씨의 남편인 영남제분 류원기 회장(대한역도연맹 회장)에 대한 역도 연맹의 탄원서가 논란이 됐다. 현재 류 회장은 회사자금 87억원을 빼돌리고 이 중 약 2억5,000만원을 윤길자 씨 입원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 중이다. 


역도 연맹은 무슨 생각으로 탄원서를 제출한 것일까? 역도연맹 관계자는 "류 회장이 그동안 역도인들을 위해 애쓴 점 등을 참작, 선처해 달라 요청하기 위해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연맹 임원들 위주로 회원들이 자발적 참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자발적 참여'라는 부분은 선뜻 신뢰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역도인들을 위해 애쓴 점을 참작, 선처해달라'고 요청한 부분이다. 도대체 역도인들을 위해 애쓴 점과 류 회장이 회사자금을 빼돌리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현실은 지극히 비상식적이다. 이런 탄원서들이 법원에 전달되면, 법원은 '피고인은 대한역도연맹의 회장으로서 그동안 국가나 사회에 공헌하였으므로, 이를 참작하여…'라며 어이없는 판결을 내리지 않을까?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미란 씨에게 서명의 구체적인 내용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회장님이 어려운 여건에 있는데, 연맹 일이 어려우니 우리가 도움을 드려야 되지 않느냐"며 일단 서명부터 받고 보는 것 아니겠는가?


법은 공정해야 한다. 돈 많고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돈 없고 힘 없는 시민들에겐 가혹한 법이 어떻게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법은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내팽개치고 있다. 역도 연맹의 탄원서 제출도 비판받아야 바땅하지만, 그러한 탄원서가 엄연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타락한 법정의 현실이야말로 더더욱 비판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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