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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학폭, 노출 논란으로 낯뜨거운 ‘더 글로리’는 무엇을 남겼나

너의길을가라 2023. 3. 16.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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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드라마(영화)가 좋은 작품일까. 연출, 극본(시나리오), 배우 등 다양한 요소가 갖춰져야 하겠고, 명대사도 필요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조금 추상적인 얘기를 해보자. 좋은 작품은 좋은 논의를 이끌어낸다. 많은 사람들을 말하게 만들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게 하고, 마침내 사회적 논의를 유도한다.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그런 면에서 ‘더 글로리’는 좋은 작품이 될 여지가 많다.

“내가 죽도록 누굴 때리면 더 가슴이 아플 것 같아? 아니면 죽도록 맞고 오면 더 가슴이 아플 것 같아?”


'더 글로리'는 김은숙 작가의 딸이 던진 날카로운 질문에서 시작됐다. 고심 끝에 김은숙은 자신만의 답을 찾아냈고, 그 답을 드라마로 써냈다. 김은숙은 권선징악, 인과응보를 담아냈다. 또,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뒤틀린 욕망에 의해 공멸하는 과정을 그렸고, 가해자 연대에 맞서는 피해자 연대의 공고함을 증명했다. 물론 가해자들이 받은 벌에 대해서는 따져볼 여지가 있다.

'더 글로리' 파트1(시즌1)이 공개됐을 때 우리 사회는 공분했고, 다양한 논의가 촉발됐다. 학교폭력의 실상에 대해 좀더 접근할 수 있었고, 피해자들의 아픔과 트라우마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를 잊은 채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가해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전달됐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물론 생산적인 논의까지 이어졌는지는 의문이다.


파트2가 공개됐을 때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몰입도와 복수의 통쾌함, 배우들의 열연과 별개로 훨씬 더 자극적인 스토리와 선정적인 장면들은 불편함을 자아냈다. 게다가 안길호 PD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글로리'를 마음 편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 PD는 처음에는 모르쇠로 일관했으나, 추후 피해자의 폭로가 더해지자 사과에 나섰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안길호 PD가 학교폭력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학교폭력 가해자가 학교폭력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의 드라마를 연출했다는 아이러니에 많은 시청자들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진 게 사실이고, '더 글로리' 쏘아올린 학교폭력 논의들은 동력을 잃고 좌초하고 말았다.

'더 글로리'와 관련한 잡음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바로 차주영(최혜정 역)의 노출 논란이었다.  파트 2에서 차주영의 전라가 두 번 등장하는데, 이 장면들은 보는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과감했다. 파트1에서도 차주영의 몸매와 관련한 이슈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인터넷 커뮤티니 등에서 화제가 됐다. 언론들은 '가슴 노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를 무분별하게 생산했다.

"가슴 노출신은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혜정이의 모습을 잘 대변하는 신이었죠. 단순히 벗어젖히고 끝인 장면이 아니었죠." (차주영)


이후 CG설, 대역설 등 진실 공방으로 이어지며 논란은 혼탁해졌고, 급기야 동명의 모델이 애먼 피해를 입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더 글로리' 파트2의 엔딩 크레딧에 '해정 대역 이도연'이라는 자막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편, 동명의 모델 이도연은 "내가 아니라는 정정기사가 나왔음에도 내 사진을 쓴" 유튜버들이 있다며, 그들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차주영은 "가슴 노출신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혜정이의 모습을 잘 대변"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캐릭터를 가장 열심히 연구했을 배우의 생각을 충분히 존중하지만, 차주영의 노출은 생뚱맞은 측면이 없지 않다.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줄 방법이 그것뿐이었는지, 그렇다 해도 굳이 가슴을 노출하는 식으로 연출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차주영의 노출은 '더 글로리'와 관련한 많은 논의들을 잠식하는 '블랙홀'과 같은 역할을 했다. 드라마에도, 출연 배우에게도 유해한 논란이었다. 결국 '더 글로리'가 품고 있는 이야기, 우리 사회에 던졌던 메시지는 희석되고 말았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던 '더 글로리'가 대중에게 소비되는 방식도 지극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더 글로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중적인 작가가 써내려간 더할나위 없이 대중적인 작품이고, 따라서 '넷플릭스' 측에서는 지금의 화제성에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입장은 어떨까. 지금의 화제성이 그들이 애초에 원했던 방향과 부합할까. 시청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남는 건 생각보다 쓴 뒷맛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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