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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역 칼부림 등 흉악 범죄자, '국민사형투표'가 답일까?

너의길을가라 2023. 8. 2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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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그 날의 충격을 쉬이 떨치기 어렵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은 전례를 찾기 힘든 '묻지마 범죄'였다. 피의자 조선(남, 33)이 휘두른 칼에 총 4명의 사상자(사망 1명, 부상 3명)가 발생했고, 피해자는 모두 일면식 없는 남성이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대낮에 갑자기 칼에 찔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방 범죄가 이어졌다.

8월 3일, 분당구 서현동 AK플라자 분당점 내에서도 칼부림이 벌어져 무려 14명의 사상자(사망 1명, 부상 1명)가 발생했다. 체포된 피의자 최원종(남, 22)은 “특정 집단이 나를 스토킹하며 괴롭히고 죽이려 한다. 내 사생활을 전부 보고 있다”고 진술했다. 17일에는 관악구에서 등산로로 출근하던 초등 교사가 너클을 낀 남성에게 폭행 및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19일 사망했다.

잇딴 흉악 범죄에 시민들의 불안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매일같이 살인 예고 글이 게시된다. 공포가 증폭되고, 치안 불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찰이 IP 추적 등을 통해 게시자들을 검거하고 있으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사형제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공포에 짓눌린 탓에 범죄자에 대한 일벌백계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민사형투표에 참여하시겠습니까?"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SBS 목 드라마 '국민사형투표(연출 박신우, 극본 조윤영)'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악질범들을 대상으로 국민사형투표를 진행하고 사형을 집행하는 정체 미상 개탈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탈은 사법부의 안일함을 꾸짖으며 '무죄의 악마'를 색출하여 공개 사형에 붙인다. 그의 자양분은 공분(公憤)이다.

1차 국민사형투표의 대상은 아동성착취물 유포범 배기철(김민식)이었는데, 투표 결과 과반수의 찬성으로 사형이 집행되고 말았다. 경찰은 이를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차 국민사형투표 대상은 보험 살인을 저질러 3명의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간 엄은경이었다. 그가 챙긴 보험금만 100억에 달했는데, 이를 접한 시민들의 의견은 사형 집행 쪽으로 기울어졌다.

특수본 팀장 김무찬(박해진)과 사이버수사국에서 차출된 주현(임지연)이 백방으로 막으려 애썼지만 녹록지 않았다. 김무찬은 차량 내에 폭탄이 설치되어 꼼짝할 수 없는 엄은경의 옆 좌석에 탑승해 "정의 실현하겠다며? (...) 근데 내가 이 여자랑 같이 죽으면 그땐 뭐라고들 할 거 같냐?"고 물었으나 폭탄은 터지고 말았다. 주현은 그 장면을 목도하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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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의 현실을 적극 반영한다면, 개탈은 다음 국민사형투표에 칼부림을 벌여 사람들을 찌르고, 흉기로 여성을 강간한 저 흉악범들을 대상으로 내세우지 않을까. 물론 개탈은 '무죄의 악마'를 대상으로 삼기에 아마도 높은 형량을 선고받을 저 흉악범들은 제외되겠지만, 사형제 부활에 대한 분노의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어느 쪽에 투표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개탈은 국민사형투표를 통해 '정의'를 주장하지만, 투표를 통해 사형을 집행하는 시스템 자체는 한계가 뚜렷하다. 지금까지는 명확한 악인이 등장했기에 판단이 쉬웠지만,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인물이 등장하면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보의 양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반론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물론 현재의 사법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약점과 허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1988년 지강헌이 외쳤던 '유전무죄 유전유죄'가 여전하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전관예우 등 불합리한 면이 잔존해 있다. 그럼에도 '감정'에 기대어 '투표'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시스템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로 인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이 도입되면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실효적인 제도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그렇다면 사형제가 이 시국을 돌파할 답이 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1997년 12월 사형을 집행한 이후 더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서 흉악범들이 판을 치는 것이라 주장하나, 사형제가 존치되어 있는 나라에서도 강력범이 줄어들지 않는 것만 봐도 사형제의 효용은 없다고 볼 수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형제 부활 대신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흉악범들을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이다. 윤석열 정부 하의 법무부는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형 집행의 공백이 발생했"다며, "현행법상 무기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도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될 수 있어 국민 불안이 가중됐"다는 입장이다.

흉악범들을 사형에 처해 목숨을 빼앗거나 드라마 '국민사형투표'에서처럼 잔혹한 사적 복수를 가하는 방식은 순간적으로 속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가 사랑받았던 건 그 쾌감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쉬운 답은 오답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록 느릴지라도 제도적 접근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영화 '악마의 유혹'에서 수현은 사랑하는 약혼녀를 살해한 연쇄살인범 장경철(최민식)에게 잔혹한 방법으로 사적 복수에 성공하지만, 끝내 허탈한 울음을 터뜨린다. 자신이 장경철을 응징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약혼녀가 돌아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영화는 시원한 복수의 쾌감을 주지 않고, '이 방법이 옳은가' 되묻는다.

사회가 흉흉하다. 공포와 불안이 증식한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처벌'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원인'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해야 한다. 어째서 저 남성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가. 왜 어떤 여성은 출근길에 남성에게 살해당해야 하는가. 국민사형투표에 붙인다고 해서, 사형제를 부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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