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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진과 팬 충돌 논란, 선수 이해와 관중 문화 성숙의 계기가 되길

너의길을가라 2015. 1.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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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cm, 150kg. 농구 선수로서는 '축복'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신장(身長)을 갖고 있는 하승진은 체격조건으로만 보면 탈(脫)아시아를 넘어 NBA급이다. 실제로 하승진은 2004년 NBA 드래프트에서 46순위로 포틀랜드에 지명돼 '꿈의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2시즌 동안 46경기에 출전, 경기당 1.5 득점, 1.2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데 그치며 KBL로 유턴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KBL을 사실상 평정했다. 데뷔하자마자 신인상을 수상했고, 소속팀 전주 KCC를 챔프전에서 두 번이나 우승(3년 연속 챔프전 진출)시켰다. 그렇게 계속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그였지만, 이후 그는 상당기간 정체기를 걸었다. 탁월한 신체조건을 가진 반면 부상의 위험도가 높고 회복 속도가 더디다는 것은 하승진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2년 간의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하면서 경기에 뛰지 않고 꾸준히 재활을 했지만, 이번 시즌에도 그는 끊임없이 부상의 악령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14년 12월 9일 서울 SK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으면서 경기에 빠졌고, 그 기간동안 전주 KCC는 7연패의 늪에 빠졌다. 김태술의 트레이드 이적으로 강력한 우승 후보라는 평가를 받았던 만큼 팀의 주축으로서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절치부심의 시간을 갖고 다시 복귀한 새해 첫 날, 하승진은 또 다시 부상을 당했다. 서울 삼성과의 약 한 달 만의 복귀전에서 라이온스의 팔꿈치에 코를 맞고 코트 바닥에 쓰러졌다. 양쪽 콧구멍에서는 피가 흘러나왔고 하승진은 한참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속공 상황에서 나온 충돌로 라이온스의 고의성을 지적하긴 어렵지만, 충격 자체는 엄청났고 하승진의 코뼈는 부러지고 말았다. 오랜만의 복귀전에서 팀의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을 만큼 또 다시 찾아온 부상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치료와 휴식을 위해 라커룸을 향했고, 방송 카메라는 그 움직임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런데 갑자기 하승진이 관중석 쪽을 바라보더니 이내 관중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체육관 통로에 앉아 있던 한 여성 관중이 하승진을 향해 '제대로 맞지도 않았는데 엄살을 피운다'는 식으로 비난을 했고, 이에 하승진이 격분한 것이다. 다행히 경기 진행요원들과 경호원들이 몸으로 막아서는 등 재빠른 조치를 취해 하승진과 관중이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었다.



비록 욕설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관중의 언행은 수많은 농구 팬들의 질투를 받았다. 관중에게 허용되는 '야유'를 넘어섰다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아마 이것이 일반적인 상식에 근거한 판단이 아닐까 싶다. 물론 '프로 선수'라면 관중들이 보내는 야유와 비난에 흔들림 없이 태연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도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부상을 입어 피를 흘리며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선수에게 '엄살을 피운다'는 비아냥은 분명 선을 넘어 보인다.


한편, 격분한 하승진이 프로답지 못했다는 비판도 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어찌됐든 관중을 향해 폭력적인 언행을 보였고, 주변에 있는 관중과 TV 화면을 통해 지켜보고 있는 팬들에게 공포스러운 상황을 연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평생토록 짊어지고 살아왔던 '스토리'를 안다면, 그 갑작스러웠던 '격분', 라커룸에 들어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하고 살았다고…"라며 울부짖었던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을 것이다. 


ⓒ 바스켓코리아


하승진은 부상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적이 여러차례 있었다. 지난 2011년 2월 24일 하승진은 구단 홈페이지에 "답답한 마음에 공개적인 곳에 글을 쓰게 됐다"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하승진은 "언론이나 팬들은 내가 부상 당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하승진 또 다쳤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몸 여기저기에 잔부상이 많지만 쉬지 않고 뛰었다. '하승진 또 다쳤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왔을지 감히 짐작이 된다.

그러면서 그는 "난 농구도 잘하지 못하고 단점도 많아 많은 사람들에게 비호감인 선수라는 점을 알고 있다. 단점도 고쳐나가고, 농구도 더 잘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또한 호감가는 선수가 되기 위해 비판도 달게 받겠다. 하지만 원색적인 비난은 자제해주길 부탁한다. 부모님과 누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글을 보고 속상해 할 모습이 눈에 훤하게 보인다"며 팬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했다.





그를 향한 팬들의 기대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일까? 여전히 하승진은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렸고, 지난 7월에는 하승진이 부상을 이유로 대표팀 차출을 거부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그는 농구 관련 커뮤니티에 '안녕하세요. 하승진 입니다'라는 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만 했다. 장문의 글에는 그가 지난 2년 간의 복무기간 동안 어떤 노력을 쏟아왔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또, 대표팀 합류를 위해 "조바심에 무리해 몸을 만들다 허벅지 근육에 출혈이 생기는 상황까지 맞게 됐다"는 상황까지 설명하면서 "이번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 해 누구보다 안타깝고 괴로운 사람은 나 스스로다. 병역을 다 마쳤다고 해서 대표팀을 고사하는 그런 얄팍한 생각을 하며 세상 사는 놈이 아니다"며 답답한 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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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농구 관중들이 하승진의 상황을 알고 있지 않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도 아니다. 결국 이는 선수와 관중 간의 예의와 배려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선수로서 좋은 플레이를 펼치고 성적이 뛰어날 때는 박수와 찬사를 받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을 때는 비판을 넘어 비난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 선수의 숙명이다. 팬이 있기 때문에 선수도 존재하는 것이고, 많은 연봉을 받는 만큼 그에 걸맞은 성적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선수들도 잘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일정한 선은 존재해야 한다.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는 선수에게 '비아냥'을 보내는 것은 팬이 갖춰야 할 스포츠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선수들의 성숙만큼이나 팬들의 성숙도 절실하다. 모든 일에서 그렇듯이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그로부터 얻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 상처만 남는 결론을 도출해선 안 된다. 이번 일을 통해 팬들이 하승진을 비롯해서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선수들의 입장을 좀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하승진과 무심결에 그런 말을 뱉었을 팬 모두 상처 없이 화해를 하면서 마무리된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코뼈가 골절된 하승진은 교정 시술을 받아 2~3주가 지난 후에나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또 한번 가슴 깊숙한 곳에 생채기가 생겼을 하승진이 더욱 단단해져서 경기장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그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과 표효로 농구 코트를 마음껏 활보하는 모습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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