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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슈틸리케 감독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가?

너의길을가라 2015. 2. 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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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보내고 있는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의 인터뷰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한바탕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의 눈에는 참으로 쓸데없는, 불필요한 논란처럼 보인다. 오히려 논란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속이 시꺼먼 기자의 뜨거운 근성(?)만 드러났을 뿐이다. 과연 슈틸리케 감독의 인터뷰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논란거리인지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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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이 부족해.", "이게 잘못됐어", "이걸 고쳐나가야 해."


개인이나 조직이 한 단계 더 도약(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냉정한 진단과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잘못된 것이 무언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르게 접근했다가는 "이 산이 아닌가벼?"가 되기 일쑤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이러한 패착(敗着)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비판과 지적을 한다는 건 꽤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또, 그런 냉정한 시선은 내부에서 해결하기가 어렵다. 쓴소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부담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맥'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관계들이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든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 등에서는 외부에서 컨설팅 업체를 불러 조직을 정밀히 분석하도록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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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축구 팬들이 국내 감독보다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협회'와 '인맥'에 의해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좀더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네들의 사고방식이 우리와 다른 측면도 있지만, 역시 선후배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운신의 폭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한편, 야구에서는 '야신'이라고 불리는 김성근 한화 감독이 대표적으로 총대를 메고 쓴소리를 아낌없이 하는 편이고, 농구에서는 유재학 감독과 전창진 감독이 협회가 듣기 싫을 법한 직설(直說)을 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축구에서는 그런 감독을 찾아보기 어렵다. 고작해야 야인의 신분인 김호 전 감독 정도일까? 그것이 대한민국 축구계의 현실이다.



홍명보 감독의 사퇴 이후 축구협회는 부랴부랴 외국인 감독인 슈틸리케 감독을 모셔왔다. 축구 팬들의 성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급히 소환된 슈틸리케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에 올려놓았고, FIFA 랭킹도 69위에서 54위로 수직상승시켰다. 비록 우승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뒀고 슈틸리케 감독은 달콤한 휴가를 떠났다. 


오늘(21일) 새벽 <골닷컴>의 한만성 기자는 휴가를 보내고 있는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스페인 일간지 <아스>와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기사를 썼다. 바로 이 기사가 문제의 화근이자 발단이었다. 사실 기사 내용을 읽어보면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은 없다. 적어도 필자가 읽기엔 그렇다. 오히려 문제는 '제목'에 있지 않았나 싶다. 우선, 기사에서 인용한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들을 확인해보자.


"감독으로서는 더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팀 내 규율이 잘 잡혀 있다.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인상적이다.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에 오르며 FIFA 랭킹도 69위에서 54위로 올랐다. 다만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한국의 K리그는 솔직히 말해 강하지 않다. 그런데 반대로 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는 상당하다. 한국대표팀에는 독일에서 활약 중인 선수 네 명, 잉글랜드에 두 명이 있다. 나머지는 전부 아시아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이대로는 지속적인 수준 향상이 어렵다. 당연히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더 준비가 잘 돼 있는 게 현실이다. 아시안컵을 통해 수비는 일정 부분 발전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부족한 건 순수들이 창의력을 발휘하게 해줄 만한 교육 정책이다. 순간적으로 상대를 놀라게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러시아 월드컵에 진출한다면, 나는 한국을 2018년까지 이끌게 된다. 목표는 16강 진출이다."


슈틸리케 직언 "K리그, 솔직히 수준 이하" <골닷컴> 한만성 기자


슈틸리케 감독은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면서 '한국의 K리그는 솔직히 말해 강하지 않'은데도 '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는 상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내용이 '슈틸리케 직언 "K리그, 솔직히 수준 이하"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됐다. '강하지 않다 = 솔직히 수준 이하'가 된 순간 논란은 예고 되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니, 논란을 만들기로 작정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는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또 다른 기사를 살펴보자.




"아시아 국가에서 처음 일하는 것이 아니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에 만족한다. 우리는 아시안컵을 끝내며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69위에서 54위로 올라갔다. 수비가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 아시안컵에서는 5경기 연속 무실점을 했고 결승에서도 전반 직전까지 골을 내주지 않았다. 다만 부족한 공격력과 창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제공권이 높지 않은 대신 빠르다. 사실 K리그는 강한 편이 아니다. 대표팀에는 독일에서 뛰는 선수가 4명, 잉글랜드 소속 2명이 있으며 나머지는 아시아권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런 리그에서 뛰면서 레벨을 올리는 것이 의문이다. 선수들은 조금 더 유럽에서 뛸 준비를 해야 한다"


슈틸리케 "아시안컵은 중요했던 한 걸음, 이제는 월드컵" <엑스포츠뉴스>


내용에 큰 차이는 없다. 번역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눈에 띄는 정도인데, '이런 리그에서 뛰면서 레벨을 올리는 것이 의문이다'는 표현은 오히려 더 과격하게 느껴진다. 두 기사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제목에 있다.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달 것인지, 기사 내용에 맞게 정상적이고 무난한 제목을 달 것인지에 따라서, 포인트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격의 기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떡밥은 던져졌고, 이제 '하이에나'들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할 차례다. <스포츠조선>의 김진회 기자는 얼씨구나 하며 휴가 중인 슈틸리케 감독, 적절하지 못한 처사 도마 라는 기사를 들고 달려들었다. 사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이런 류의 기사들이다. 김진회 기자는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면서 "스페인 휴가 중인 울리 슈틸리케 감독(61)의 적절하지 못한 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고 쓰고 있다. 과연 무엇이 '적절하지 못한 처사'라는 것일까? 김진회 기자의 걱정을 들어보도록 하자.


슈틸리케 감독은 한 국가의 축구대표팀 수장으로서 말 한 마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아무리 휴가 중이고, 한국에서 떨어져 있다고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코멘트가 3월 태극마크를 달 선수들의 사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개월간 평가전과 호주아시안컵을 통해 다진 선수와 감독의 신뢰관계가 말 한 마디로 깨질 수 있다.


아하! 슈틸리케 감독의 코멘트가 태극마트를 달 선수들의 사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난 5개월간 평가전과 호주아시안컵을 통해 다진 선수와 감독의 신뢰관계가 말 한 마디로 깨질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기우(杞憂)'라고 하던가? 김진회 기자도 양심상 슈틸리케 감독의 진단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는 건 자신도 그 분석에 동의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이를 '적절하지 못한 처사' 쪽으로 몰고 가려고 하는 건 다소 비겁한 행동이다.


김진회 기자가 생각하는 축구대표팀 감독의 역할은 '우쭈쭈'인 모양이다. 무조건 잘한다고 칭찬을 해야 한다는 말일까?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이미 수 차례 경험하지 않았던가? 유럽의 여타 리그들에 비해 K리그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100명에게 물으면 100명 모두 '그렇다'고 대답할 사안이다. 이를 언급한 것이 '부적절한 처사'인 것일까?


-김진회 기자의 <휴가 중인 슈틸리케 감독, 적절하지 못한 처사 도마>라는 기사에 달린 댓글 -


ⓒ 대한축구협회


아시아 내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월드컵 16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에겐 성에 안 차는 것이 당연하다. 좀더 많은 선수들이 유럽 리그에서 뛴다면 그만큼 기량 향상이 이뤄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선수들의 분발을 위해 "조금 더 유럽에서 뛸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은 백 번 들어도 지당한 말이다.


부적절하다? 도마 위에 올랐다? 정작 부적절한 것은 누구일까? 누가 슈틸리케 감독을 도마 위에 올려 놓았는가? 객관적인 평가와 선수들의 분발을 바라는 감독의 생각마저 '도마 위에 올려' 난도질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자들이야 말로 부적절한 것 아닌가? 기사에 달린 댓글이야말로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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