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방영된 'S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국민 MC' 유재석이 통산 20번째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런닝맨', '틈만나면'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은 유재석은 20년 만에 20번째 트로피를 손에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요즘이야말로 웃음이 꼭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을 위해 많은 동료들과 함께 더욱더 노력하겠"다는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같은 시각 MBC에서는 '손석희의 질문들'이 방영되며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비상계엄 실패 이후 급변하는 정치 상황을 주제로 홍준표 대구 시장과 유시민 작가가 맞붙었다. 두 사람의 맞토론은 2023년 '100분 토론' 1000회 특집 이후 약 2년 만이었다. '손석희의 질문들'은 시의성을 살리고 편집에 대한 뒷말을 없애기 위해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최재천 교수는 자신의 책 <숙론>에서 토론의 오염을 아쉬워하며 대안으로 '숙론'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 숙고해보고 자기 생각을 다듬으려고 하는 행위"인데, 좀더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숙론은 '누가 옳은가(Who is right)?'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What is right)?'를 찾는 과정"이다.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성숙한 숙론을 기대하기에는 패널 선정이 다소 아쉬웠다. 우선, 홍준표 시장은 언변이 좋고 유머러스해서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지만,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고 객관적 사실보다는 주관적 의견에 치우쳐 있어 적합한 패널이 아니다. 또, CBS '김현정의 뉴스쇼' 생방송 중 앵커의 질문에 불쾌하다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적도 있을 만큼 안하무인이다.
반면, 유시민 작가도 유려한 언변을 자랑하지만 숙의를 이끌어내기에는 편향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 최근까지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매불쇼' 등 색깔이 뚜렷한 방송에 출연해 왔다. 또, '손석희의 질문들' 2회에서는 '유튜브가 희망이다'는 주장을 펼치며 레거시 언론을 비난하는 등 균형을 잃은 모습을 보여줬다. 유튜브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오염됐는지 비상계엄 사태가 여실히 증명하지 않았던가.
역시나 토론은 처음부터 막혔다. 손석희 앵커는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을 물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비상계엄은 위헌적인 중대 범죄'라는 응답자는 58%, '합헌적인 대통령의 권한 행사'라는 응답자는 39%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보수 과표집'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수 패널의 기가 사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홍준표 시장은 "처음 계엄했을 때는 45년 만의 계엄이다 보니 국민적 저항이 굉장히 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엄을 할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까?'를 국민들이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의 원인을 무려 29번의 탄핵을 한 192명의 야당 연합이 폭주의 탓으로 돌렸다. 비록 "계엄을 달했다고 보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이해한다는 얘기였다.
유시민 작가는 "비상계엄은 위헌, 위법한 행위"라고 못박은 후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처음에 홍 시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여당 보수 진영이 노력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또, 보수 과표집 때문에 "표면적으로 '국민들이 이런 식의 헌법 파괴 행위조차 괜찮은 행위였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민주주의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다음 주제는 '비상계엄은 내란인가?'였다. 두 사람의 의견은 또 다시 엇갈린 채 평행선을 내달렸다. 홍준표 시장은 "탱크를 동원해 관광서를 막았"냐고 반문하며, "그냥 군인들이 나와서 하는 시늉만 했고 2시간 만에 끝났"기 때문에 "폭동이 아니"며, 따라서 "폭동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내란죄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직권 남용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유시민 작가는 "행정권을 가진 사람(대통령)이 국군 통수권과 경찰에 대한 지위권으로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려 했으니 내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시장님이 입장을 바꿀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시민들이 어떤 근거를 통해 판단할 때 시장님과 다른 측면에서 고려해야 될 법적 요소가 있다는 걸 말씀드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비상계엄이 2시간여 만에 끝난 것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상반된 견해를 드러냈다. 홍준표 시장은 "계엄을 방송사에서 생중계하는 나라가 어디있"냐며 "어설프게 왜 저런 짓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어이없어 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나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여러 차례 밝힌 '2시간짜리 계엄이 어디있나'는 주장을 답습한 내용과 다름 없었다.
이에 유시민 작가는 운이 따르지 않고 시민과 야당의 빠른 대처로 인해 실패한 것이라고 반박하며 "만약 성공했으면 이 토론은 없었다. 시장님도 나도 어떻게 됐을지 몰"랐다며 "너무 무서운 일"이라 말했다. 그러자 홍준표 시장은 웃으며 "유 작가는 큰일 날 뻔 했"다는 얼토당토 않은 농담을 던졌고, 손석희 앵커는 "이렇게 웃으면서 할 이야기는 아닌데"라며 심각성을 주지시켰다.
이 장면이야말로 비상계엄 이후의 탄핵 정국, 그리고 민주주의를 대하는 양 진영의 태도 차이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시청률은 의미심장했다. '손석희의 질문들'은 전국 기준 시청률 8.6%(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를 기록하며 7, 8월 당시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동시간대에 방송된 3.5%에 그친 'SBS 연예대상'을 압도했다. 유재석의 대상보다 손석희의 질문에 주목했던 것이다.
물론 질문에 비해 대답이 아쉬웠을 수도 있다. 인지도를 고려한 패널 선정은 시청률 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토론은 정체되었고, 양 진영의 대립은 좀처럼 완화될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 연속선상 위에서 우리는 끝내 적절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TV + 연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아온 손석희가 기록한 8.6%, 윤석열이 시사 프로그램을 부활시켰다 (2) | 2025.02.05 |
---|---|
2025년 우리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름 '에드워드 리' (1) | 2025.01.27 |
길고 긴 설 연휴, 도파민 채워줄 영화·드라마·예능 있습니다 (0) | 2025.01.27 |
'김민희'를 보도하는 언론의 폭력성, 이 기사들이 나쁜 이유 (3) | 2025.01.19 |
넷플릭스 '지옥' 떠올리게 한 법원 습격, 진짜 화살촉은 누구인가? (2) | 2025.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