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유 작가는 큰일날 뻔 했다. 아니, 나는 가만 생각해 보니까 어떻게 계엄을 해도 저렇게 어설프게 할까. 나는 해프닝이라고 봤어요. 오죽 답답하면 저런 해프닝이라고 해서 국민한테 알리려고 했을까." (홍준표)
정치는 부재하고, 사회는 혼란스럽다. 이럴수록 진지한 태도와 정제된 언어가 필요하다. 그 말은 경솔한 태도와 극단적 언어가 판을 친다는 얘기다. 시사(時事)에 대한 수요가 분명 존재하지만, '유튜브'라는 회오리바람이 모든 걸 쓸어가는 분위기다. 이 와중에 극우 유튜버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구호를 외치며, 일명 '슈퍼챗(super chat)'으로 호주머니를 채우고 있다.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는 불법 계엄을 '해프닝'이라고 표현한 홍준표 대구 시장의 발언을 지적하며, "너무 무서운 일이 우리나라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홍 시장은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상황을 얼버무리려 했다. 그러자 손석희 앵커는 "웃으면서 얘기할 문제는 아니"라고 했고, 유 작가는 "오죽 어리석으면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라고 쏘아붙였다.
방송사의 분위기가 묘하다. 시사 프로그램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그만큼 시절이 하 수상하기 때문이다.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두 달 넘게 탄핵 정국이 지속되면서 방송사들은 시사 프로그램을 전면에 띄우기 시작했다. MBC는 지난해 7~8월 5회 특집으로 방영했던 '손석희의 질문들'을 다시 꺼내들었다. 파급력은 상당했다.
유 작가와 홍 시장이 패널로 나왔던 29일 방송은 시청률 8.6%(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를 기록하며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같은 시간대 방송된 SBS '연예대상'의 시청률 3.5%에 두 배가 넘는 수치였다. '손석희의 질문들'의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은 시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정제된 언어에 대한 요구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나는 윤 대통령 편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비판을 많이 했는데" (전원책)
"그런데 결국은 윤 대통령 편이에요." (박범계)
사실 MBC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인 건 JTBC였다. 정치토크쇼 '썰전'을 6년 만에 부활시켰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방송됐던 '썰전'은 박형준, 이철희, 노회찬, 유시민, 전원책, 최진기, 이준석, 김진 등이 출연했고, 최고 시청률 9.3%까지 기록했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부활 후 첫회에는 전원책 변호사와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출연해 설전을 벌였다.
썰전' 제작진은 "가짜 뉴스와 편향전 정치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진영 간 논리를 정확하고 균형있게 다룰 것"이라며 귀환의 포부를 밝혔다. 현재까지 5회가 예정되어 있으며, 정규 편성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3.012%로 기세 좋게 출발했던 시청률은 2.5%, 1.3%로 하락세다. 시청자의 기대감은 컸지만, 변화 없는 포맷과 차별화 없는 패널 선정이 아쉬웠다.
지난 몇 년 간 시사 프로그램은 축소, 폐지되는 추세였다. 권력에 대한 비판이 용이하지 않았던 측면도 있었지만, 방송사 스스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와 동시에 시청률이 쪼그라들었고, 드라마나 예능에 비해 대중의 관심이 적었기 때문에 외면의 이유를 내놓기도 수월했다. 하지만 탄핵정국에 접어들면서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평소 1%대 시청률에 그쳤던 MBC '100분 토론'은 불법 계엄 직후 편성된 방송에서 7.5%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PD 수첩' 1445회('서울의 밤2 - 내란국회' 편)는 8.2%를 기록했다. 평소 2%대 시청률에서 4배 가량 급등한 것이다. TV조선 '강적들'도 불법 계엄 전에는 2%대 시청률이었지만, 그 이후 꾸준히 3%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정국이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당분간은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지속될 것이다. 각 방송사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지 고심해야 한다. 단지,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져서 시사 프로그램 전체의 파이가 커진 것인지, 아니면 양극단의 자극적인 언어에 지친 대중이 정제되고 보다 객관적인 시사 프로그램을 찾는 것인지 구분해서 방향성을 정해야 한다.
현재까지의 분위기를 보면 '정론'에 대한 요구가 분명 존재한다. 그건 '손석희'라는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인이 진행하는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으로 구체화된다. 또, 지상파 방송이라는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 엿보인다. 적어도 이런 정돈된 방송에서는 유튜브에서 하듯, 막말과 억지, 거짓을 살포하며 막나가지는 못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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