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속옷 벗으라? 대법원 판결도 무시한 경찰, 법치의 민낯을 보다

너의길을가라 2014. 5. 2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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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선진민주국가의 반석위에 올려놓기 위해선 법치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법과 질서가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겠다. 예외가 없다."


"김용준 총리 지명자가 살아온 길을 보면 늘 약자 편에 서서 희망을 줘 왔다. 나라의 법치와 원칙을 바로 세우고, 무너진 사회 안전과 불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갈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MB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수구) 정권을 관통하는 핵심적 단어를 꼽으라면 '법치(法治)'가 가장 우선 순위에 놓일 것이다. 두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내내 '법치'를 강조했다. MB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법과 질서가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첫 총리를 지명하면서 '나라의 법치와 원칙을 바로 세울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물론 우리는 MB의 법치라는 것이 얼마나 얄팍하고 조악(造惡)한 것인지 두 눈을 부릅뜬 채 확인했고, 박 대통령이 야심차게 지명했던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가 아들의 병역 문제와 부동산 투기 등으로 낙마하는 것도 지켜봐야 했다. 법치, 보수의 상징과도 같은 그 무겁고 단단한 가치는 그것을 함부로 입에 담는 자들에 의해 넝마가 되어 버렸다. 


'법치의 넝마됨'을 논하기 위해 용산 참사와 쌍용차 문제 등 국가 폭력이 자행된 큼지막한 일을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법치'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살펴보기 위해선, 현재 일선 경찰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유린의 실태, 대법원 판결을 경시하고 공권력을 앞세워 시민들을 억압하고 희롱하는 현실을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왜 동대문경찰서에서 속옷을 벗어야 했나 <오마이뉴스>


지난 18일,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참가했다가 동대문경찰서로 연행된 대학생 이가현 씨(22)는 경찰관에 의해 속옷(브래이어)을 탈의해야만 했다. 이 씨의 주장에 따르면, 유치장에 들어가기 전에 여자 경찰관은 "속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유는 "속옷으로 자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씨의 눈에 들어온 유치장 내의 규정문에는 속옷 탈의와 관련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경찰에 연행된 것도 처음인데도 유치장이라는 낯선 환경 등에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을 이 씨는 그것이 규정인 줄 알고 경찰관의 지시에 따랐다고 한다. "헐렁한 옷이라도 달라"는 요청은 그대로 묵살됐고, 결국 이 씨는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이틀 동안 추가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날 총 6명의 여성이 연했됐고, 그 중에 4명이 경찰에 의해 속옷을 탈의해야만 했다.



"유치장 입감 전에 수용자의 브래지어를 탈의시키도록 한 경찰업무편람은 법규명령으로서의 효력이 없고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에도 유치장 수용자에게 불필요한 고통이나 수치심을 주지 않으려고 신체검사의 유형을 세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브래지어를 탈의시키도록 하는 것은 위 규칙의 취지에도 반한다."


"교도소 등에서도 여성 수용자의 경우 브래지어 소지가 허용되는데 유치장 내 여성 수용자에게만 이를 금지할 이유가 없고 브래지어를 이용한 자살을 방지하고자 하였더라도 보다 피해가 덜 가는 방안을 강구하지 않고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한 것은 원고들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 것으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 대법원 2013다200438 - 


이 씨는 연행됐던 당시에 위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 몰랐다고 한다. 법을 전공하거나 개인적으로 큰 관심이 없는 이상,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과연 그 경찰관도 이 판결을 몰랐을까? 아니, 동대문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모든 경찰관들이 이 판결의 내용을 몰랐을까? 


위와 같은 중요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면, 경찰청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일선 경찰서에 하달할 것이다. 그런데도 규정이 바뀌지 않은 채 지금까지 유지됐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위의 판결이 내려진 것이 2013년 5월 9일이니 무려 1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1년 가까이 대법원 판결은 무시되어 왔다는 것인가? 정말이지 놀라운 '법치'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는 경찰의 모습인가? 



- <머니투데이>에서 발췌 - 


동대문 경찰서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그 내용 중에는 당장의 상황을 면피하기 위해 '거짓말'이 섞여 있었다. 사과문에는 '규정을 지키지 않은 부분이 발견되었으므로 향후 재발방지를 약속드립니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씨가 유지장 내에서 본 규정문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또, 김경구 동대문경찰서 수사과장은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한 경찰관이 지구대에 있다가 수사관으로 부임한 지 두달 정도밖에 안 돼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타깃이 될 만한 희생양을 만들어 가는 경찰의 교묘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동대문 경찰서에 묻고 싶다. 그렇다면 이 씨가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이틀 동안 추가 조사를 받는 동안 이 씨의 요구를 묵살했던 경찰관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마음껏 자행됐던 경찰의 인권유린에 제동을 거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면, 경찰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국민 앞에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찰은 어떠했는가?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법원 판결에는 쉬쉬하고, 뒤로는 버젓이 판결에 어긋나는 규정을 계속해서 적용해왔다. 



- <오마이뉴스>에서 발췌 -


MB 정부 5년과 박근혜 정부 1년 반 동안 법치라는 이름 하에 '인권'은 그야말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인권은 너무도 쉽게 무시됐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됐다. 동대문 경찰서의 행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부에서도 무시하는 인권을 일선의 경찰서가 챙길 리가 만무하다. 모르긴 몰라도 경찰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 알량한 효율성을 위해서 '인권'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졌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고백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다를 바 없었다. (공권력의 입장에서) 법치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인권이 무시당할 때, 우리는 그것이 나와는 무관하다고 여겼다. 때로는 범죄자의 인권은 무시해도 좋다고 여겼다. 결과는 어떠한가? 공권력(경찰)이 보기에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참가한 여학생도 (잠재적) 범죄자였고, 그들은 마음껏 인권을 유린했다. 그 다음 대상자가 우리가 될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고삐가 풀린 공권력은 언제나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 못지 않게,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그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인 정부, 즉 대통령을 꾸짖지 않을 수 없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그 힘을 국민을 보호하는 데 쓰지 않고, 어찌하여 국민을 모욕하고 억누르고 짓밟는 데 쓰고 있는 것인가? 또 다시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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