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대국민담화의 이면(裏面), 색출하고 연행하고 사찰하고..

너의길을가라 2014. 5. 21.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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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9시,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를 읽어나갔다. 해경 해체 등의 파격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고, 담화를 갈무리 부분에서는 '세월호 영웅'을 언급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담화문 중에서 '국민'과 '유가족'을 언급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 부분을 각각 조금씩 발췌했다. 본격적인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히 읽어보도록 하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지 오늘로 34일째가 되었습니다. 온 국민이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과 비통함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국민 여러분과 함께 힘을 모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어 가겠습니다.


(……)


앞으로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해 추모비를 건립하고, 4월 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 <서울신문>에서 발췌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운을 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사과'로 시작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물론 그건 거짓말이다. 이토록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수두룩하게 있다. 이 글에서 그 근거들을 하나씩 나열할 생각이다. 대국민담화의 중간에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힘을 모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겠다는 부분도 있다. 역시 거짓말이다. 길고 길었던 대국민담화의 마지막, 눈물과 함께 열심히 읽어나갔던 그 끝부분에서 박 대통령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거듭 말하지만 역시 거짓말이다. 


대국민담화의 하이라이트였던 '박근혜의 눈물'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동 그 자체였던 모양이다. '불쌍한(안쓰러운) 박근혜'를 이야기하면 감정이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충분히 이해한다. 얼핏 보기엔 그렇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야 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한다. 누가 써줬는지 알 수도 없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읽어낸 것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하고 있는 '짓'을 확인해야 한다. 


이제부터 시작해보자.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겉과 속이 다른 박근혜 정부를 들여다보도록 하자.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스승의 날이었던 지난 15일, 전교조 등 전국의 교사 1만 5,853명은 '세월호 참극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을 발표했다. 교사선언의 내용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물이 차오르는 배 안에서 아이들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을 때 대통령이 공직자들에게 문책 위협을 한 것 말고 무엇을 했느냐"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대통령은 자신의 책무 불이행을 뼈저리게 고백하고 이제라도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 추궁이 담겨 있었다. 


정부의 반응은 지극히 '예상대로' 였다. 사과와 눈물로 가득한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직후 일선학교에서는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교사들을 색출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교사는 "오늘 아침 교장이 불러 시국선언 교사들의 명단과 공문을 보여주며 본인 여부를 일일이 확인했고 참여가 사실이면 감봉 이상의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 학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학교에서도 '색출'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지난 1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린 교사 43명들에 대한 징계와 함께 시국선언문에 실명으로 참여한 1만 5,853명의 교사에 대한 징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13일 청와대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43명에 대한 조치 협조 이외에 추가로 공문을 내려보낸 사실이 없다. 일선 학교에서 이전에 내려보낸 공문의 취지를 확대해석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 JTBC <뉴스9> 방송 화면 캡처 - 


한편, 경찰은 세월호 참사 추모 촛불집회에 대해 '과잉대응' · '과잉진압'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지난 17일, 청계광장 등에서 열린 추모 집회와 시위는 약 3만여명이 참여했다. 시위는 산발적으로 진행됐고, 시위대의 일부는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을 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경찰은 본격적인 대응 및 진압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115명이 연행됐다. 


다음날인 18일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광화문 일대에서 추모시위를 하고 있던 대학생 등 100여 명을 강제로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집회참가자와 일반 행인의 통행까지 가로막는 '과잉대응'을 해 눈살을 찌푸렸다. 외신 사진기자를 비롯한 기자들까지 연행됐다고 하니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경찰의 과잉 대응과 인권 유린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강력히 반발했다. 당시 경찰에 연행됐던 고상균 향린교회 목사는 연행되던 상황을 세세히 증언했다. "연행되는 경찰 차량 안에서 만난 한 시민은 자신이 '서점에서 책을 사서 나오는 길에 연행됐다'며 책까지 경찰에게 보여주며 항의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미친사람 취급했다." 누가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했던가? 이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변호인 접견을 위해 어느 경찰서로 연행되는 것이냐는 물음에도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인권을 침해당한 것은 물론이고 당연히 누려야 할 법적 권리도 전혀 보장받지 못했다. 



- <뉴시스>에서 발췌 -


여기서 끝이라면 다행이겠으나 정말 뒤로 까무러칠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지난 19일, 세월호 가족대표단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 관련한 회의를 열기 위해 진도로 향하고 있었다. 전북 고창군의 한 휴게소에 들러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던 가족대표단은 그들 주위를 배회하는 남성 2명을 발견했다. 유족들은 "왜 우리를 수사(미행)하느냐. 경찰관 아니냐. 신분이 뭐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들은 "경찰이 아니다"며 부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는 안산단원서 소속 정보형사였다. 유족들은 이들을 버스에 태워 다시 안산으로 올라왔고 경찰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최동해 경기경찰청장은 정부합동분향소 앞에서 유가족에게 "사전 동의없이 사복 경찰이 유가족을 뒤따른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사전 동의를 거치지 않은 절차는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유가족을 보호하거나 활동에 도움이 되기 위해 한(뒤따랐던) 것이지 불이익을 줄 마음은 아니었다. 나쁜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찰이나 미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족을 붙이면서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러한 내용들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됐고, 누리꾼들은 이 상황을 '아침엔 눈물 저녁에 사찰'이라고 정리했다. 



- <국민일보>에서 발췌 -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던 까닭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은 그저 아무런 의미 없는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힘을 모으겠다는 말도 한낱 레토릭에 불과하다. 그가 흘린 눈물은 어떠한가? 그것이 '선거'를 위한, 혹은 자신에게 닥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 지나친 말일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박 대통령은 몰랐을 거라고. 물론 박 대통령은 색출하고 연행하고 사찰하는 세밀한 일까지는 모를 수도 있다. (몰랐다고 해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국가 운영 철학의 문제이고, 대통령과 그의 주위에서 보좌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의 문제이다. 이들에게 이미 색출과 연행, 사찰은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 <연합뉴스>에서 발췌 - 


어제(19일) 김무성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제주도로 날아가서 "이번 일(세월호 참사)은 국가 개혁의 좋은 계기이자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좋은 계기가 돼야 하는데 이럴 때 사회를 혼란시키는 세력들이 대통령 하야까지 주장하고 있다"면서 "사회를 어지럽히는 세력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 쏟아져 나온 망언들을 보건대, 모르긴 몰라도 김무성 선대위원장의 생각은 곧 새누리당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 그것은 박 대통령의 생각과도 같을 것이다. 


그들에게 국민이 안중에나 있을까? 그들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을까? 그들의 사과는 진정성이 있는 것이었던가? 지금 이 순간에도 박 대통령을 비롯한 새누리당에게 국민들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거짓말로 점철된 대국민담화의 이면(裏面)이자 저들의 진짜 속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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