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당신의 역지사지(易地思之), 울타리는 열려 있나요?

너의길을가라 2013. 11. 2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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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역지사지(易地思之) 

- 처지(處地)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相對方)의 처지(處地)에서 생각해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역지사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역지사지로 좀 생각해봐." 라는 식으로 말이다. 본래 역지사지라는 말은 상대방의 처지·입장·관점·시각에서 생각해 본다는 뜻으로, 나 아닌 타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 '역지사지'는 대부분 나의 유익(有益)을 꾀하기 위해 사용된다. 즉, '너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볼게'로서의 역지사지가 아니라 '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봐'의 역지사지인 셈이다. 혹 '너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관계에 있어서 보다 나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역지사지의 전용(轉用)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결국 사회는 '관계'의 총집합인 셈이다. 그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갈등과 반목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건은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발생한 문제에 대한 해결이다.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 또는 더 넓은 지평(地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역지사지'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결국 '역지사지'에 실패한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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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한다. 타자를 이해한다. 우리말로 하면 역지사지, 바꿔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건데, 기본적으로 타자를 긍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은 내가 나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열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내가 나를 버리고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 도정일 · 최재천, 『대담』- 


우리가 거듭해서 '역지사지'에 실패하는 까닭은, 앞서 말한 것처럼 '역지사지'를 나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 나'만'의 유익은 관계를 망가뜨리기 십상이다. 


도정일 교수는 역지사지란 타자를 긍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① 울타리를 열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②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도 교수의 말은 나의 알량한 역지사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울타리의 문을 꼭 닫아놓은 채, 입으로만 역지사지를 떠든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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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도 한다. 내가 놓은 한 수 한 수는 곧 내 뜻이고 말이 된다. 한 판의 바둑엔 수많은 대화가 있고, 갈등이 있다. 시비가 생기고, 화해와 양보가 있다. 이기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수도 있고, 엄살을 부리는 수도 있다. 이기기 위해서 … 승리하기 위해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 말만 해서는 바둑을 이길 수 없다. 


- 윤태호, 『미생』-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우선 나의 울타리를 열어야만 한다. 내 울타리를 꽉 닫아둔 채로는 그 어떤 소통도 이뤄질 수 없다. 나의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는 좁은 사고방식, 상대방의 처지·입장·관점·시각을 비난하거나 틀렸다고 지적하는 태도는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고 만다. 이와 같은 시행착오는 늘상 겪어오지 않았던가? 


울타리를 연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윤태호의 『미생』에서 '내 말만 해선 이길 수 없다'는 말은 바둑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적용되는 진리다. 우리는 잘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격(반격)의 기회를 잡기 위한 듣기보다는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한 '듣기'가 이뤄질 때,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도 조금씩 따뜻해질 것이다. 


오늘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나의 울타리는 열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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