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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
이번에도 걷는 이야기다. '파리 여행기'를 시작하면서 줄곧 '걷는'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파리는 정말 여행자의 '걸음'을 유혹하는 곳이니 말이다. 그리고 '패키지'가 아닌 '자유' 여행이라면, 도보(徒步)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한 곳이라도 더 발을 딛겠다는, 하나라도 더 눈에 담겠다는 '체력'과 '깡'은 여행에 있어 필수 요소다. 이번에는 좀더 편안하게 마레 지구를 걸어보고, 그 곳의 풍경들을 만끽해보자. '빅토르 위고의 집'이 있는 '보주 광장'을 뒤로 한 채 조금(정말 조금이다)만 걸어가면, '쉴리 저택(Hôtel de Sully)'이라 이름 붙여진 건물이 나온다. 17세기 르네상스 양식의 웅장한 저택은 눈길을 확 사로잡는 힘이 지녔다. 그냥 지나쳐버리긴 아쉽다. 그..
배우 송혜교는 (우리의) '자존심'이다. 송혜교는 남자 일색으로 채워졌던 2016년 연말 시상식들 가운데 홀로 빛났다. 방송 3사의 연예대상은 애초에 대상 후보가 죄다 남자로 꾸려졌고, 그와 같은 흐름은 연기대상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MBC에서는 이견의 여지 없이 이종석이 대상을 수상했고, SBS에서는 당연히 한석규가 대상 트로피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KBS 연기대상에서 송혜교가 '송송커플' 송중기와 함께 공동대상을 수상하며, 여배우(라는 묘한 이름을 쓰는 게 마뜩지 않지만)의 자존심을 오롯이 세웠다. 가 최고 시청률 38.8%을 기록하며 2016년 최고의 화제작으로 우뚝설 수 있었던 건, '강모연'이라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한 송혜교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로맨틱 코미..
가부장제가 강제하는 성적 질서는 여성과 청소년들에게서 성적 자유를 박탈하는 대신 성을 상품화하고, 성적 관심을 경제적 예속의 대가로 만들어 버린다. 성은 억제되어야 하는 것이 되고 육체가 갖는 자연스런 욕망과 순수한 감각은 더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정숙함이 여성들이 지녀야 할 기본적 가치로 도입되면, 성적 욕구를 지닌 여성은 천박하고 가치 없는 존재가 된다고 라이히는 지적한다. 가부장제의 질서가 강하게 존속하는 한국에서 그 가부장들은 자신들의 얼니 딸들의 성교는 금지하나, 딸 또래 어린 여자들의 성은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소비한다. 여전히 우리는 라이히가 지적한 성적 질서의 악순환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목수정, 『야성의 사랑학』-
또 하나의 진실.어떤 사람이건 사랑을 하게 마련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한다.어린 아이도, 어른도.결혼을 한 사람도, 하지 않은 사람도.노동가도, 자본가도.좌파도, 우파도.그리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제가끔 서 있더군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숲이었어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낯선 그대와 만날 때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정희성, 「숲」-
'아직'에 절망할 때'이미를 보아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 내는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박노해, 「아직과 이미 사이」-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는 것이다. 당신이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면 그들은 제일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도무지 묻지를 않는다. 그들은 '그애 목소리는 어떻지? 그앤 무슨 놀이를 좋아하지? 나비를 수집하니?' 하고 묻는 법이 절대로 없다. '나이는 멋 살이지? 형제는 몇이고? 몸무게는? 아버지 수입은 얼마지?' 하고 물어 대는 것이다. - 생 텍쥐베리, 『어린왕자』-
특별한 감상에 사로잡힌 건 아니다. 그리움을 느낀 것도 아니다. 만나고 싶은 얼굴을 떠올린 것도 아니다. 아무런 이벤트도 일어나지 않을 주말을 맞이하고,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건 오랫동안 질리도록 반복했다. 아무 데나 좋아, 모임만 있다면 어디라도 좋아.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 미야베 미유키, 『눈의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