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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스페셜] 파헤쳐진 지리산, 새끼 반달가슴곰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너의길을가라 2021. 6. 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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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KBS2 <환경스페셜> 제작진과 국립공원연구원 남부보전센터 연구원들은 지리산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반달가슴곰의 동면굴이었다. KF-52 개체의 출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무인 센서 카메라와 녹음기를 동면굴 앞까지 내려보냈더니 새끼곰의 울음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지리산에 또 한 마리의 곰이 태어난 것이다. 정말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KF-52의 오른쪽 앞발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까닭일까. KF-52는 지난 2017년 올무에 걸려서 생명까지 위험한 상태로 발견됐었다고 한다. 결국 괴사된 앞발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야생으로 돌아간 KF-52는 다행히도 지금까지 7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현재 지리산 권역과 덕유산 권역에는 약 74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종 복원 사업이 결과이다.


지난 3일 방송된 KBS2 <환경스페셜> '곰 내려온다' 편은 반달가슴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한때 한반도는 반달가슴곰의 땅이었다. 백두산 일대와 설악산, 지리산 등지에서 많은 개체가 서식했다. 하지만 1983년 설악산에서 마지막 야생 반달곰이 밀렵꾼에 의해 죽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해수구제사업으로 1076마리가 사냥당했다. 웅담 선호도 멸종 위기에 한몫했다.

국립복원연구원 남부보전센터에는 반달가슴곰 제석(RM-1)이가 살고 있다. 2004년 복원을 위해 첫 방사됐던 개체이다. 그런데 제석이는 왜 야생에서 살고 있지 않은 걸까. 방사 당시 3살로 무척 건강했던 제석이는 KF-52와 마찬가지로 올무에 걸려버렸다. 방사 1년 만에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결국 제석이는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됐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환경스페셜> 제작진은 국립복원연구원 남부보전센터 연구원들과 함께 지리산에 올랐다. 창애, 올무 등 불법엽구를 수거하기 위해서였다. 야생동물들이 지나다니는 길목마다 불법엽구들이 설치돼 있었는데, 불과 1시간 만에 15개나 발견할 정도로 그 숫자가 상당히 많았다.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을 시작하면서 줄어들었다지만, 여전히 불법엽구는 존재하고 있었다.


촬영을 위해 지리산을 둘러본 제작진은 올무 외에도 또 다른 덫이 있었다고 운을 띄웠다. 그건 바로 산을 가로지르는 도로, 산골짜기 깊숙이 있는 관광 시설 등이었다. 오로지 인간의 편의를 위한 도로는 동물들의 길을 끊어버렸고, 관광 시설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아버렸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생태계를 옥죄는 커다란 덫이었다.

현재 지리산에는 지자체 간 개발 계획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오도재에는 울창했던 나무가 베어지고,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길이 들어섰다. 어쩌면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을지도 모를 땅이었다. 지리산 형제봉(경상남도 하동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케이블카와 모노레일, 전기 열차 등 대규모 개발(알프스하동프로젝트)이 계획 중이다.


"너희들이 '곰이 여긴 거의 살지 않는다'고 말했지? 아니야, 우린 여기 살고 있어'라고 시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곰이 살고 있는 땅, 형제봉을 우리가 반드시 지키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고 의무가 아닐까." (윤주옥 반달가슴곰친구들 대표)

특히 형제봉은 골이 깊고 암벽이 많아 반달가슴곰의 서식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그곳에 설치한 센서 카메라에 KM-61과 함께 추적 장치가 없는 반달가슴곰이 촬영됐다. 미확인 반달가슴곰이었다. 한 시민단체는 그 반달가슴곰이 복원 사업을 통해 태어난 개체가 아니라 원래 형제봉에 살고 있던 야생 반달가슴곰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런 걸까.

제작진은 연구원들과 함께 트랩을 설치해 확인에 나섰다. 형제봉에서 발견된 미확인 반달가슴곰 UM-29(Unidentifined Male-29)는 4~5살로 추정되는 수컷이었다. 추적 발신기가 부착됐던 흔적도 없었고, 개체를 식별하는 마이크로칩도 없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 부모자가 일치하는 부모 개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연에서 출생한, 관리가 되지 않은 새로운 개체의 후손이었다.


우리는 형제봉에, 아니 지리산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반달가슴곰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른다. 지난 20년 연구원들은 매일마다 산을 누비며 반달가슴곰 복원에 애써왔다. 미확인 반달가슴곰은 그 노력의 결실이다. <환경스페셜> 제작진은 다시 KF-52와 막내곰을 비췄다. 동면굴에서 나온 새끼곰은 나무를 오르며 세상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켜나가야 할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MC 김효진은 "이 어린 반달가슴곰이 덫에 걸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치지 말고 굶주리지 않고, 이 백두대간의 품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희망을 말했다. 그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역시 우리 인간이 탐욕을 줄여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편의를 위해 산을 헤집거나 경제 논리를 앞세워 그들의 터전을 앗아간다면 다시 반달가슴곰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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