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진보진영은 우월하다? 그 오만함에서 벗어나야 승리를 얻는다

너의길을가라 2013. 4. 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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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보다 더 우월하고 명석하다고 자청하고 있다는 점에 분노한다. 그들은 선거 때마다 보수 진영에 밀리면서도 스스로 자신들은 명석한데 다른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울분을 토하지만 말이다.


- 브라이언 앤더슨 -



최근 두 번의 대선에서 대한민국의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에 완패했다. 물론 두 번째 선거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어쨌거나 힘 대 힘의 격돌, 서로의 최대치를 끌어모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 패배의 원인을 따지는 것은 너무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정이므로 생략하도록 한다. 하나의 원인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지 원인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혹은 상쇄되기도 하는 등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다만, 브라이언 앤더슨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기로 하자. 뼈아픈 말이다. 굳이 범위를 대한민국으로 국한시킬 필요도 없다. 어차피 브라이언 앤더슨은 한국 사람도 아니니까. 전 세계적으로 볼 때 혹은 역사적으로 볼 때,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에 비해 언제나 '똑똑'했다. 살짝 비꼬는 말이긴 하지만, 진보 진영에는  늘 '잘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왜 선거에서는 늘상 고꾸라지고 마는 것일까? 미국에선 진보 진영이 2번 연속 승리를 거두었지만, 부시도 연달아 두 번이나 당선이 되었던 사실을 상기해보자. 추세적으로 볼 때, 보수의 약진이 두드러진 것도 사실이다.


다시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에게도 진보 진영이 승리한 2번의 예외적인 선거가 있었지만, 그 선거들이 진보 진영의 정상적인(?) 승리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한번은 이인제가 분열을 일으킨 상황에서 김종필과의 연합으로 얻어낸 것이었고, 나머지 한번은 정몽준과의 연합이 만들어낸 승리였다. 


위에서는 퉁명스럽게 표현했지만,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에 비해 더 똑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여기서는 좌와 우의 개념과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엄밀히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마구 쓰도록 하겠다. 이해의 범위 내에서 활용할 생각이니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진보는 바꾸려고 하는 것이고, 보수는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공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보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문제점을 찾고, '이건 어때?', '이렇게 바꾸는 게 어떨까?' 라고 제안한다. 당연히 여러 방면으로 궁리를 해야 하는 습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보수는 '됐고, 지금이 좋아', '귀찮아, 그냥 이대로 살래' 라며 제안들을 거부한다. 그냥 가볍게 커트하면 되기 때문에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될 수 있으면 부드럽게, 큰 변화 없이 '유지'시키는 것이 보수의 습성이다. 


이는 좌와 우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하나의 (문제적인) 사안이 주어졌을 때, 좌는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우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가령, '노숙자'를 주제로 좌와 우가 대화를 나눈다고 가정해보자. 우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녀)가 게으르기 때문이야',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야.',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는 게 어떨까?' 반면, 좌는 이렇게 접근할 것이다. '우리의 사회 시스템이 문제는 아닐까?', '노숙자들이 다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모든 사안의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우는 똑똑해질 필요가 없다. 다른 나라의 시스템이나 정책들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녀)'의 문제일 뿐이니까. 하지만 좌는 다르다. 유럽은 어떤지, 미국은 어떤지, 일본은 어떤지 살펴보고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양한 책도 읽어야 하고, 수많은 토론을 통해 생각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똑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똑똑한 사람들, 잘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진보 진영이 정작 '선거'에서 우세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그것은 '공감'의 문제 아닐까? 어차피 사람들은 다 똑같다. 잘난 척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나를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에게 애정을 쏟을 사람은 없다.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 훈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 사람은 없다. 진보 진영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행세해왔다. "왜 '조중동'을 보고 있냐? 그 찌라시를 왜 들여다보고 있어. 넌 거기에 세뇌되어 있는 거야. 에휴, 너랑은 대화가 안 된다. 공부 좀 해라. 책 좀 읽어라. 스스로 생각을 좀 해라. 객관적으로 바라봐라." 이 정도는 아주 부드럽게 순화해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소위 '싸가지' 없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 '네 말이 맞는 것 같긴 한데, 난 네가 싫어'와 같은 반응이 따라오게 된다.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진보의 미덕, 좌의 미덕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진보가 보수나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더 똑똑한지, 그들의 판단력이 얼마나 균형잡혀 있는지 의문스럽긴 하지만, 일단 그렇다고 가정하면 지금의 태도는 분명 잘못됐다. 어려운 말로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까칠한 태도로 훈계하기보다 쉽고 따뜻한 언어를 통해 공감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해야 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해서 적대시하고 깔아뭉개서는 결코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당연히 선거에서 이길 수도 없다. 


우리 안의 오만함, 그 '근자감'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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