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공감이 결여된 사회는 미개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너의길을가라 2013. 4. 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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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감이 가족의 단위, 며칠 전 일어난 일에만 관심 갖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이 사회는 아직 미개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공감의 촉수가 혈육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사회가 있는 반면, 내 가족의 고통을 통해 다른 가족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공감의 범위를 확장하는 사회가 있다. 우리는 전자와 같은 미개사회에서 벗어나 후자에 가까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김동춘, 『대한민국 잔혹사』-



'공감'이라는 단어는 위안을 준다. 일종의 '치유'의 힘을 가진 단어다. 제레미 러프킨도 『공감의 시대』에서 '공감'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외의 수많은 책에서도 '공감'이라는 단어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공감'이 시대의 화두이긴 화두인 모양이다. 이처럼 '공감'이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쉽게 쓰이지만, 과연 그 '공감'이 제대로 표현되고 있긴 한 것일까?


김동춘은 공감의 '범위'를 통해 그 사회가 미개사회에 머물러 있는지, 그 단계를 뛰어넘었는지 파악한다. 가만히 한번 생각해보자. 나의 공감의 범위는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를 곰곰히 되새겨보자. 만약 나의 가족이 불의한 일을 당했거나 불합리한 일에 희생당했다면, 당연히 그에 즉각적이고 강렬한 반응을 나타낼 것이다. 분노할 것이고 또는 슬퍼할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사안들을 꼼꼼하게 따질 것이고, 그 대상에게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때로는 복수를 감행하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가족(혈육) 단위의 고통에는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정작 그 단위(범위)가 조금만 확장되면 우리는 금세 고개를 돌리고 만다. 


사람들에게 '비정규직', '청년 실업', '노동자 파업', '하우스푸어', '독거노인'과 같은 단어들은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뉴스'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은 엄연히 존재하고, 그 고통으로 인한 신음소리가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공감의 촉수'가 거기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간혹, 성범죄와 관련한 뉴스가 나오면 분노에 가득찬 댓글들이 도배가 된다.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그 촉수는 어디론가(다른 대상을 찾아) 사라져버리고 만다. 적어도 김동춘의 정의대로라면 대한민국은 '미개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위안부 할머니', '민간인 학살자', '군사 정권 하의 고문 피해자'와 관련한 뉴스들이 보도되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분노가 쏟아져 나온다. 애석하게도 그 분노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며칠 달아올랐다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6.25 전쟁 당시,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그것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범죄였다. 그야말로 '학살'이었다. 참혹한 일이었다. 하지만 국가는 이를 간단히 덮어버렸고, 이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물론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통해 밝혀낸 사건들이 꽤 있지만, 모든 진실을 밝혀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오늘은 4월 3일이다. 제주도 4.3 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다음과 같이 말했다. "4·3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4·3 희생자와 가족들이 겪은 아픔을 치유하는 일에 저와 새누리당 앞장서서 노력하겠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4.3 위령제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처음 참석한 이후, 7년 째 현직 대통령이 불참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매우 미약한 것 같다. 제주의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다시 덧나버렸다.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오멸 감독의 <지슬>이 극장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서 <지슬>과 관련한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의 촉수'를 뻗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치유되지 못한 역사적 상처를 비롯해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안고 있는 수많은 고통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바로 '공감'이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한 걸음 더 다가선다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한걸음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공감의 촉수'로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공감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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