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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진과 찰스 로드, 애증의 관계? 기자가 논란을 조장한다

너의길을가라 2014. 3. 1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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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에서 발췌 -


프로농구는 6강 플레이오프가 한창이다. 한편에서는 인천 전자랜드와 부산 KT(1:1)가 항구더비를 펼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서울 SK와 고양 오리온스(1:0)가 대결을 갖고 있다. 인천 전자랜드와 부산 KT는 2년 전에도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은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부산 KT가 3:2로 인천 전자랜드를 극적으로 물리치고 4강에 올랐었다. 물론 그 승리에는 찰스 로드가 있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부분은 전창진 감독과 찰스 로드의 소위 '애증의 관계'이다. 찰스 로드는 2010-2011, 2011-2012시즌 부산 KT에서 뛰었다. 2010-2011년 시즌 6강 플레이오프에서 (제스퍼 존슨의 부상 탓에) 찰스 로드는 부산 KT의 유일한 외국인 선수로 활약했다. 


당시 보여준 훌륭한 활약 덕분에 KT와 재계약을 했지만, 전창진 감독은 돌발 행동을 하는 찰스 로드가 불만스러웠다. 경기 중계 화면에는 전창진 감독이 찰스 로드를 혼내는 장면이 많이 잡혔고, 찰스 로드도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여러 번 연출됐다. 팬들은 화면에 비친 모습들만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 전 감독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결국 두 사람은 '애증의 관계'로 엮이고 만다. 그런 관계를 만드는 데 언론이 한몫 단단히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해는 마시라. 이 글에서 농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초점은 언론, 특히 기자다. 자, 두 개의 기사가 있다. 


1. 전창진, 격앙된 당부 "찰스 로드와 엮지 마세요" <엑스포츠>

2. 전창진 감독의 하소연 "찰스 로드랑 그만 비교해주세요" <점프볼>


하소연 : 억울한 일이나 잘못된 일, 딱한 사정 따위를 간곡히 호소함. 

당부 : 말로 단단히 부탁함. 또는 그런 부탁. 


제목만 놓고 비교를 해보자. 우선, <점프볼>은 '하소연'이라고 표현했고, <엑스포츠>는 '격앙된 당부'라고 표현했다. 하소연과 격앙된 당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의미에서도 분명히 다를 뿐 아니라 느낌 자체도 다르다. 특히 '격앙된'이라는 수식어를 쓴 순간, 읽는 사람으로서는 '전창진 감독이 엄청 화를 낸 모양이군'이라고 받아들이기 된다. 선입견이 작용한다. 


다음으로는 기사에 싣은 사진을 비교해보자. 왼쪽이 <엑스포츠>의 조용운 기자가 선택한 사진이고, 오른쪽은 <점프볼>의 곽현 기자가 고른 사진이다. 



<엑스포츠>의 조용운 기자는 기사 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사진을 실었다. 관련이 있다면, 자신이 쓴 제목처럼 전창진 감독이 '격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점프볼>의 곽현 기자는 찰스 로드가 부산 KT 소속으로 뛰던 시절의 사진을 실었다. 전 감독이 찰스 로드에게 '지적'을 하고 있는 장면으로 기사의 내용과 관련성이 있다. 


자, 이제 문제가 정말 심각한 '기사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엑스포츠>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찰스 로드와 엮지 마세요." 남자농구 KT의 전창진 감독이 더 이상 로드(전자랜드)와 과거사를 두고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반면, <점프볼>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찰스 로드랑 저랑 이제 그만 비교해주세요. 부탁입니다." 전창진 감독이 하소연을 했다. 


'찰스 로드와 엮지 마세요'와 '찰스 로드랑 저랑 이제 그만 비교해주세요. 부탁입니다'는 표현 자체가 다르다. '엮지 마세요'와 '그만 비교해주세요' 정도는 표현상의 차이로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겠다. '부탁입니다'를 뺀 것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표현과 '하소연을 했다'는 그 의미가 천양지차(天壤之差)에 가깝다. 


혹시 두 기자가 전 감독을 따로 만나서 인터뷰를 한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전창진 감독과 기자들이 따로따로 만난 것은 아닌 듯 하다. 라커룸에 모인 기자들과 전창진 감독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찰스 로드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고, 이에 대해 전 감독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자 이를 기자들이 기사로 써낸 것이다.  


자, 결정적인 문제는 이제부터인데, 


그는 "로드는 내가 1만 달러에 데려와 성장시켰다. 조금 크니 건방지고 우쭐해졌다. 경기에서 걸어다닌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면서 "내가 여기서 로드가 한 행동을 다 말할 수는 없다"고 옛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나도 KBL에서 10년차 감독이다. 이런 대우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자랜드와 경기만 하면 로드 얘기가 나오는데 솔직하게 기분이 나쁘다"고 역정을 냈다


- <엑스포츠> -


이것이 <엑스포츠>의 조용운 기자가 쓴 내용이다. 만약 전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면, 조용운 기자의 표현처럼 '역정을 냈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것 같다. 또, 발언 자체가 조금 아슬아슬하다. '내가 성장시켰다'는 표현도 조금 거슬린다. 정말 전 감독은 이렇게 말했을까? 이번엔 <점프볼>의 곽현 기자의 기사를 보자. (참고로 <OSEN>의 기사도 인용해 두었다.)


전 감독이 하소연을 한 이유는 분명 있다. 전 감독은 "저도 나름대로 KBL에서 10년을 한 감독인데, 이런 대우를 받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라며 "로드는 드래프트에서 만불을 주고 데려온 선수입니다. 한국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김승기, 손규완 코치가 로드를 가르치느라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런 선수를 자유계약까지 데려가서 5만불을 줬습니다. 근데 돈을 받고 좀 컸다고 우쭐해서 건방진 행동을 많이 했어요. 로드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하나하나 제가 다 얘기할 순 없습니다. 이번 드래프트할 때 저한테 뽑아달라고 전화도 했었습니다. 그런 선수랑 저랑 계속해서 비교를 하는 건… 솔직히 저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라며 토로했다. 

- <점프볼> - 

전 감독은 "로드가 한국에 와서 농구가 많이 늘었다. 코치들이 연습을 엄청 많이 시켰다. 2라운드 끝에 뽑은 선수를 자유계약시절에도 계약했다. 외국선수는 조금만 기량이 좋아져도 콧대가 높아진다. 로드도 갑자기 안 뛰고 걸어 다녔다. 익을수록 숙여야 하는데 용병은 그렇지 않다. 팬들이 내 노력은 몰라주고 로드만 봐서 속상하다. 로드는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다. 

- <OSEN> -

어떤가? 우선, 존댓말과 반말은 수용자의 입장에서 너무도 큰 차이다. '저도 나름대로 KBL에서 10년을 한 감독인데, 이런 대우를 받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는 완곡한 표현은 '나도 KBL에서 10년차 감독이다. 이런 대우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직설이고 오만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저는'과 '나는'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고, '나름대로'의 생략 여부도 의미에 큰 영향을 준다. 


또, <엑스포츠>의 조용운 기자의 '내가 성장시켰다'는 표현은 '한국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김승기, 손규완 코치가 로드를 가르치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를 지나치게 압축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표현들이 조금은 악의적으로 '각색'이 되어 있었다. 사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기사의 전체적인 뉘앙스를 바뀌는 데는 모두 결정적이다. 


게다가 '이번 드래프트할 때 저한테 뽑아달라고 전화도 했었습니다'라는 부분을 넣은 것과 뺀 것은 두 사람의 사이를 설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농구 팬들은 전창진 감독과 찰스 로드의 관계를 '증(憎)'으로만 이해할 것이 뻔하다. 인용한 내용의 마지막 부분을 보자. '역정을 냈다'와 '토로했다'는 또 얼마나 다른가! 



- <연합뉴스>에서 발췌 - 


인터넷 상에서는 허무맹랑하고 낯부끄러운 기사를 쏟아내는 막장스러운 기자를 '기레기'라고 부른다. 아무리 기자의 위상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기자로서의 책무와 역할이 부정되고 있다곤 하나, 이런 식으로 악의적인 기사를 써대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발언을 마음대로 자르고 붙여서 전혀 다른 맥락의 말로 바꿔놓았다. 이 정도면 기사를 자신의 '악감정'의 도구로 활용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것이 아니라면 '클릭수'에 노예가 된 기자의 정신상태가 드러난 것이리라. 


전창진 감독은 최소 경기 400승을 달성했고, 플레이오프 최다승(39승)을 기록하고 있는 KBL의 명장 중의 한 명이다. 물론 그는 강한 승부욕과 다혈질적인 스타일 등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에 대해서 기자들은 관련된 내용을 취재해서 기사로 쓸 수 있다. 농구 팬들도 그런 기사들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기사를 쓸 때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 농구와 관련된 기사를 쓰는 기자라면 그 정도의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아니, 언론인으로서 한 사람의 발언을 다룰 때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직업적 책임은 필요하지 않을까? 


만약 <점프볼>의 기사가 없었다면, 사람들이 <점프볼>의 기사는 읽지 않고 <엑스포츠>의 기사만 읽었다면 어땠을까? 전창진 감독에 대한 오해와 미움이 더욱 커졌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갈등을 조장하고, 오해를 증폭시키는 것이 기자의 책무인가? 부디.. 기자들이여, 펜의 무서움을 자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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