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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전국 운동회로 전락한 2014 인천아시안게임

너의길을가라 2014. 9. 2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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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시안게임의 운영미숙을 둘러싼 논란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대회 초반 미숙한 운영과 여러 가지 문제점 등이 보도되면서 조직위 측이 잔뜩 독을 품은 상태에서 중국과 일본의 언론들도 비판 대열에 합류하자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놓고 고민과 논의를 하기 위해 마련된 미디어브리핑에서조차 갈등은 더욱 고조돼 언론 기자들과 조직위 간에 고성이 오가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연출이 됐다.



난 24일, 일본 <산케이신문>은 '평창 올림픽은 괜찮겠습니까?'라는 제목과 함께 "선수나 임원 1만3000명, 보도진 7000명이 모이는 대회를 정연하게 진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드러난 문제 중에는)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면서 운영위 측의 준비 부족을 꼬집었다. 중국에 비하면 일본의 비판은 애교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날 중국 <신화통신> 일본판은 중국 신문인 <문회보>를 인용하면서 "정말 '아시안게임'인가? 아니면 '한국판 전국 운동회'인가"라며 날선 비판을 전개했다. '운동회'까지는 아니었지만 '전국체전'을 보는 것 같다는 비아냥은 누리꾼들에 의해 이미 지속적으로 제기했었던 만큼 중국 측의 비판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 것이라고 치부할 것은 아니다. 


중국 신화통신 일본판은 "프 레스 센터의 카운터 앞에 놓여 있는 조직위 발간의 '아시아 대회 일보'는 그 내용의 90%가 한국 선수의 성적에 관한 것이다. 한국 선수단 소식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타국 소식인 남은 10%마저 중요도가 북한, 중국, 일본, 기타 국가의 순서로 보인다"면서 '과연 인천아시안게임이 45억 아시아인 모두의 축제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심지어 "경기장 입장권은 언어 문제 등으로 일본인조차 구매가 어렵다고 한다"고 하니 사정이 어떠한지는 뻔한 일이다.



씁쓸하지만 계속해서 비판들을 들어보도록 하자. 중국의 <진링완바오>는 "기자회견 취소, 배드민턴 경기 중 정전, 심지어 개막식 때 점화된 성화가 이틀만에 꺼지기도 했다"면서 "인천아시안게임이 계속해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텅쉰넷>은 "이번 개막식에 '한류'가 거세게 불어 마치 한류콘서트를 연상케 했다. 스포츠가 연예에 잠시 자리를 양보했다"면서 부끄러웠던 개막식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중국과 일본에서부터 날아든 '공격'이라 다소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비판은 이미 국내 언론들을 통해서도 제기된 바 있는 익숙한 것이다. 또, 한국의 누리꾼들의 반응 또한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만큼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 측의 운영미숙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한류 스타들의 뽐내기로 일관한 대회 개막식은 보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대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화가 20일 오후 11시 38분 부터 약 12분 가량 센서 오작동으로 전원이 차단돼 꺼지는 참사가 발생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였다. 그밖에도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속출했는데, 선수촌에 방충망이 없어 선수들이 모기에 노출됐다거나 경기장에 의료진이 배치되어 있지 않아 트레이너가 치료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발생했다.


지난 21일에는 사격과 펜싱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지급될 점심 도시락에서 살모넬라균이 검출돼 도시락을 전부 폐기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도시락을 지급받지 못한 선수들은 빵과 우유, 바나나 등으로 식사를 대체할 수밖에 없었고, 일부 선수들은 경기 시간에 쫓겨 아예 식사를 하지 못하기도 했다. 국제 대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태국 야구대표팀의 경우 야간 훈련을 하는 데 조명이 켜지지 않아 연습에 어려움을 겪었고, 배드민턴 경기 중에는 갑자기 정전이 되면서 진행이 올스톱 되기도 했다. 300억 원을 들여 만든 사격장에는 선수들이 이용할 수 있는 라커가 없는 실정이고, 배관 문제로 간이화장실에서 소변이 새는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도 벌어졌다.



속불 터지는 사례들을 전하는 것은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하자.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사례만으로 글을 써도 상당한 분량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라 안팎으로 인천아시안게임에 대한 비판이 속출하자 조직위원회 측은 26일 송도 미디어센터에서 브리핑을 열었다. 문제에 대한 고민과 이를 풀어나갈 방법에 대한 논의보다는 오히려 갈등은 더욱 증폭됐다.


당연하게도 한 기자가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아시안 운동회'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이런 비난을 받는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는 질문을 던졌다. <한겨레> 박현철 기자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 질문을 들은 '권경상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이 발끈'했다고 한다. "동 의할 수 없다. 오씨에이(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회장도 '열일곱번의 아시안게임 중 가장 진행이 잘 되고 있는 대회'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의 진행 노하우를 배우려고 몇몇 나라들로부터 연락이 오고있다. 그런데 운동회라니 굉장한 모욕이다."


이쯤되면 소통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조직위가) 대회 진행자이자 행사의 주인인데도 '자기네(조직위)들은 좌우지간 잘못한 게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이래가지곤 대화가 진전되기 어렵다"는 지적처럼 조직위가 아무런 잘못도 인정하지 않은 채 "언론들이 무턱대고 비판만 한다. 긍정적인 면도 보도했으면 좋겠다"는 닫힌 자세로 일관한다면 이 문제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미숙한 대회 운영에 관해서는 이미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걱정스럽긴 한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 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록 별반 차이를 보이지 못한다는 점은 더욱 걱정스러운 대목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1986년 서울, 2002년 부산에서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경험이 있다. 그렇기에 경험 부족으로 인한 운영 미숙이란 변명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대회를 준비하는 데 있어 고민과 준비가 현저히 부족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회가 치러지기 몇 년 전부터 시민단체 등은 인천시의 과도한 부채와 부족한 예산을 지적하면서 "재정 위기가 심각한 가운데 수조원이 들어가는 아시안게임을 굳이 주최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인천시는 지방채를 발행해 대회 개최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했고, 심지어 예산 부족으로 인해 경기장 건설마저 차질을 빚기도 했다.


허겁지겁 쫓기듯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45개 회원국이 참가한 만큼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적 배경에 대한 철저하고 섬세한 준비와 이해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통역조차 갖추지 못한 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성급하고 방만하게 준비를 한 탓에 45억 아시아인의 축제여야 할 인천아시안게임은 '한국판 전국 운동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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