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일당 5억의 황제 노역과 1주일 간의 변화, 그리고 진한 아쉬움

너의길을가라 2014. 3. 3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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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에서 발췌 - 


'고작' 1주일 만에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당 5억원의 '황제 노역'으로 그 이름을 대한민국 곳곳에 알린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지난 28일 광주지방검찰청에 출두해 "그 동안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미납한 벌금에 대해서는 "가족들을 설득해 빠른 시일내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알 순 없지만, 형식적으로나마 그가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변화는 허 전 회장에게만 찾아온 것은 아니다. 검찰은 지난 26일, "관련 법리 검토 결과, 노역장에 유치된 수형자에 대해 형 집행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노역장 유치 집행도 형의 집행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고 있고, 형 집행정지 사유 중 임의적 형 집행정지 사유에 해당하므로 향후 검찰은 관련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황제 노역'을 중단하고 벌금을 강제 집행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난 2010년 1월, 허 전 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및 벌금 254억원, 노역장 일당 5억원을 선고했던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은 지난 29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저를 둘러싼 여러 보도와 관련해 한 법원의 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함과 동시에 국민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그의 공식적인 사직의 변이다. 물론 "과거의 확정판결에 대해 당시 양형사유들에 대한 종합적이고 분석적인 접근 없이 한 단면만 부각되고 지역 법조계에 대한 비난으로 확대된 점은 아쉽다"면서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하는 오만함도 보여줬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내가 꼭 이렇게 화를 내야 겠어?"


미안하지만, 그렇다. 화를 내야 바뀐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주저함 없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꼬집어야 한다. 화끈하게 내질러야 한다. '알아서 잘 하겠지'하면서 순둥이마냥 가만히 있는다면 악순환은 끊임없이 반복될 뿐이다. 


만약 사회의 각 주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알아서 잘 수행했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 '선고유예' 구형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 뿐만이 아니다. 검찰은 허 전 회장에게 가능한 한 최대한의 특혜를 베풀었다. 허 전 회장의 입국과 검찰 소환 조사, 교도소 출소 과정에서 검찰은 과도한 '배려'를 했다. 과연 일반 수형자에게도 허 전 회장을 대하듯 자상한 태도를 취하는지 의문이다. 


검찰과 법원을 비교하는 것이 우습지만, 그래도 법원은 검찰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검찰은 선고유예를 구형했지만, 법원은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벌금 254억을 선고했으니 말이다. 물론 일당 5억 원의 노역장 유치에 처하면서 욕을 '홀로' 얻어 먹게 됐지만. 그래봤자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 이야기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이렇게 쉽고 간단히 바뀔 수 있는 것을…"


1주일 간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조금은 허탈한 생각도 들었다. '그것 봐. 하려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부분이었잖아?' 검찰과 법원은 '황제 노역'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냈다. 방법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다만, 찾지 않았을 뿐이다. 그동안 이들은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이러한 허탈함을 뒤로 하고, 지금의 상황들로부터 긍정적인 내용을 이끌어내보자. 변화를 이끌어 내는 양 날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공분(公憤)'이다. (또 하나의 축은 사랑과 배려와 같은 따뜻한 힘이다. 공분은 즉각적인 변화를, 사랑과 배려와 같은 따뜻한 힘은 장기적이고 단단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스테판 에셀이 '분노하라'고 외쳤던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우리의 공분도 불과 1주일 만에 이와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았나? 공분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실증적 경험을 한 셈이다. 


물론 그 공분이 이끌어낸 변화가 만족스럽지는 않다. 여론을 의식한 대법원은 부랴부랴 전국 수석부장회의를 열고 '환형유치'의 세부기준을 논의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과물을 국민 앞에 내놓았다. 벌금 1억원 미만 사건의 경우 1일 환형유치금액을 10만 원, 벌금 1억원 이상 사건의 경우 1일 환형유치금액 기준을 벌금액의 1/1000로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허재호 전 회장의 사건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의 성과는 '일수벌금형제도의 도입'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환형유치'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 벌금제도에 대한 고민과 제도 개선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일수벌금형제도는 개인의 소득상황에 따라 1일당 액수를 정해 이를 일수에 곱해서 벌금을 차등화시키는 제도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다. 따라서 징역 1년에 처하는 것은 그 대상이 누가 되든 공평한 '벌()'이다. 하지만 벌금은 다르다. 금 1,000만 원이 선고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벌()'일까? 재산이 1,000억인 사람에게 벌금 1,000만 원은 '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연봉 2~3천의 직장인이나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알바에게 벌금 1,000만 원은 끔찍한 벌일 것이다. 같은 1,000만 원의 벌금이지만, 그로 인해 받는 고통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것이 공평하고 정의로운 형벌일 수는 없다. 


허재호 전 회장의 사례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한 트위터리안은 "내가 벌금을 안 내면 하루 5만원이다. 대주그룹 허재호란 자는 5억. 만배가 차이 나는 값어치의 기준은 뭔가. 나보다 잭팟을 터뜨릴 확률이 만배가 높은가. 그자의 장기는 내 거보다 만배 비싼가. 똥을 싸면 운석이 되나. 나보다 만배가 잘생겼나?" 라며 자조 섞인 비아냥을 내뱉었다. 또 다른 트위터리안은 "사람값이 1만배나 차이 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사회"라며 씁쓸함을 토로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사람값의 차이는 환형유치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벌금형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는 것까지 나아갔다면 어땠을까? 1주일 동안의 공분과 함께 냉정하고 차분한 접근이 더해졌다면, 일수형벌금제도의 도입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정치'이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창당에 정신이 팔려 이 부분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고, 진보정당 역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물론 일수벌금형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례처럼 '일당 5억 원의 황제노역을 시켜버리면 무용지물일 것이다. 따라서 환형유치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을 재점검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다만, 국민적 공분이 모아진 사건으로부터 얻어낸 것이 고작 기존의 만 배의 차이를 줄이는 수준에서 머문다면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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