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미궁 속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6시간 만에 막아냈을 때만 해도 이 괴상한 터널을 금방 통과할 거라 생각했다. 순식간에 거리로 나온 시민과 계엄 해제 결의를 한 190명의 국회의원의 저력이 한편으로 든든했다. 그 기세로 윤석열을 탄핵시켰을 때만 해도 이 괴이한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이 어둠이 길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탄핵 건을 차일피일 미루며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 한편, 윤석열의 내란죄 재판은 다음달 14일 시작된다. 이를 기점으로 비상계엄에 가담했던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의 두 번째 공판이 이어지고, 여인형 전 방청사령관,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첫 공판도 진행된다. 이들은 수감되어 있으나, 윤석열은 풀려나 있는 상태이다.

"용산의 장군들은 왜 12·3 비상계엄을 거부하지 못했을까."
<용산의 장군들>(메디치미디어)의 저자 박성진 기자는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째서 장군들은 대통령의 위헌적인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랐을까.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눴을까. 어째서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는 행위를 당당하게 할 수 있었을까. 22년 동안 국방부를 출입했던 저자는 이 질문을 출발점으로 윤석열 군부 핵심의 실체 및 비상계엄의 뒷이야기를 파헤친다.
비교할 만한 사례가 미국에서 있었다. 2020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백악관까지 몰려들자 군대 출동을 명령했다. 하지만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군은 시민을 진압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적한테서 국가를 방어하는 게 임무"라며 거부했다. 최고통수권자에게 항명을 하다니!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춰보면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마크 밀리는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있었을까.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그 믿을 구석은 "미군의 임무는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에 복종하는 게 아니라 수정헌법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라는 지휘 서신에 잘 표현되어 있다. 바로 '수정헌법'이다. 반면, 대한민국 군대는 또 다시 헌법을 유린했다. 전두환, 노태우 이후 달라진 게 없다. 도대체 한국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김 전 장관의 군맥은 첫째 소수의 충암고 출신, 둘째 근무 인연이 있거나 셋째, 김용현의 인사 혜택을 받은 영관, 장성급 장교들을 합친 집단으로 보는 게 맞다. 그래서 나온 말이 '용현파'다." (p. 76)
<용산의 장군들>은 윤석열 군부의 시작과 몰락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우선, '쌍두마차'라 할 수 있는 신원식과 김용현을 집중 조명하며 그 무게중심이 김용현으로 기울어진 상황과 맥락을 짚어나간다. 그와 동시에 12·3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드러난 한국군의 뿌리 깊은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제시한다. 미시적 분석도 흥미롭지만, 거시적인 관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저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잘못된 브로맨스'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군 내에 '미니 하나회'와 다름 없는 '충암파', '용현파'가 결성된 과정을 다룬다. 그에 따르면 곽종근(육사 47기) 수방사령관, 문상호(육사 50기) 정보사령관 등도 '용현파'로 분류된다. 결국 군이 "'용현파를 중심으로 한 윤석열 친위체제'로 구축"됐고, 이것이 12·3 비상계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몰락의 신호탄은 역시 '채상병 사망 사건'이었다. 저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가 어떤 파장을 몰고 왔는지 국방부 기자 출신답게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는 "국방장관과 군의 많은 장군이 대통령의 발언을 덮으려다 '거짓의 늪'에 빠"졌다며 "군 통수권자가 채 해병 사건을 시작으로 국방장관 및 그의 심복 장군들과 함께 '몰락의 길'을 선택한 셈"이라고 냉정히 평가했다.
다시 '왜'로 돌아온다. '채상병 사망 사건'부터 '12·3 비상계엄'까지 우리 군이 보여준 민낯은 왜 토록 낯뜨거운 수준일까. 저자가 한국군의 고질병으로 제시하는 문제는 '진급을 미끼로 한 충성 경쟁'이다. 이러한 상황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장, 덕장, 용장보다 '운장(운이 좋은 장군)'이 득세하는 퇴행적인 군의 생리가 만들어졌다고 개탄한다.

"국무위원이면서 국방 업무의 전반을 전문성 있게 담당할 경영인 출신 장관이 나올 때가 됐다. 전문 경영인 출신의 국방장관은 예비역 퇴역 단체나 외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군 조직의 효율화에 적극 나설 수 있다."(p. 180)
"군을 사랑하기에 비판했고, 대안 없는 비판은 싫어한다"는 소개글처럼, 저자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해답을 제시한다. 그는 사관학교 교육 통합을 주장하고, 시민으로서의 군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 과감하게 '문민 국방장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충성 경쟁에서 벗어나 "안보를 경제적 관점에서 책임져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용산의 장군들>은 20년 넘게 군을 출입한 안보전문기자가 쓴 책답게 전문성이 돋보인다. 한국군의 현실을 꿰뚫고 있는 시야와 업계 사람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고급 정보가 눈길을 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전후에 벌어진 일들이 워낙 흥미진진하게 기술되어 술술 읽힌다. 한국군이 처해 있는 현실과 오랜 세월 누적된 병폐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부록으로 실린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어떻게 이루어졌나'도 흥미롭게 읽힌다. 왜냐하면 청와대 이전 문제로 고심하던 김용현에게 "고민하지 말고 용산 국방부로 가면 된다"고 조언한 사람이 바로 저자였기 때문이다. 바로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전말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최초 제안자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책에서 확인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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