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마녀들의 소굴? 궁금증 해소시켜주는 '맘카페라는 세계'

너의길을가라 2025. 2. 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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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모인 공간은 정녕 '마녀들의 소굴'인가."


'맘카페'가 궁금했다. 현실 속에서 맘카페를 향한 혐오의 말들이 난무하다보니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갑질', '마녀사냥', '조리돌림', '집단 이기주의'와 같은 무서운 말들이 맘카페에 집요하게 따라붙고, '정치화된', '장삿속에 눈먼' 같은 수식어가 맘카페의 정체성을 혼탁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맘카페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을까.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언론을 통해 살포되거나 주변에서 쉽게 발화되는 맘카페에 대한 부정적 언어("또, 맘카페야?", "하여간 맘충들이 문제야.")들에 장기간 노출되다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동조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정신을 빠짝 차려야 했다. 최재천 교수는 '알면 사랑한다'고 설파한다. 맘카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다. 정지섭의 '맘카페라는 세계'가 좋은 교재가 되리라 생각했다.

"나는 평범한 보통 사람입니다."


2023년 11월 출간된 '맘카페라는 세계'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엄마들이 모인 공간은 정녕 '마녀들의 소굴'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이 우리를 논쟁 속으로 이끌었다. 85년생인 저자 정지섭(필명)은 10년 간 국책은행을 다니다 결혼 후 1남 1녀를 키우는 워킹맘을 거쳐 전업주부가 됐다. 헌데, 그에게는 "남편 말도 아무애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바로 "맘카페 운영자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정지섭은 (5년의 운영자 경력을 지녀) 맘카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발언권을 지닌 내부자인 셈이다. 출판사 '사이드웨이'는 국내 최초의 '맘카페론(論)'이라고 자평한다. 실제로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맘카페의 실체와 성격, 존재의 이유에 대해 차분히 접근한다. 생동감이 넘치는 그의 비밀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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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저자는 맘카페를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엄마들이 모인 공간"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엄마들은 왜 맘카페라는 공간으로 모여 드는 걸까. 저자는 '준거집단'의 필요성으로 이 질문에 답한다. "자녀를 출산하고 엄마가" 되는 "일생일대의 대사건"을 겪은 이들이 "혼란 속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기준이 되는 집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터넷 속의 '맘카페'라는 공간은 그렇게 엄마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준거집단이 되었다." (p. 112)


맘카페에는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육아한다는 동질감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하고, 최신 육아 정보를 찾고 공부해서 신뢰할 수 있는 이들과 손쉽게 소통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고된 육아라는 어려움을 온마음으로 이해하는 동지들이 손을 내밀고 있다. 저자는 "(맘카페가) 도깨비방망이 같은 존재라서" 자주 들른 것이 아니라 "내가 겪을 수밖에 없던 육아로 인한 고독 때문"이라 고백한다.

그런 이유로 2000년대 중반 생겨난 맘카페는 약 20년의 역사를 거치며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 됐다. 2003년 맘카페의 시초 격인 '맘스홀릭베이비'가 태동한 이래 2023년을 기준으로 네이버에만 약 1만 2000개 이상의 맘카페가 존재한다. 가입자 수가 수백 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곳도 생겨났다. 구성원의 수가 많아지면서 당연한 일이지만, 갖가지 문제들이 발생했다.

"맘카페에서 활동하고 친목을 다지는 동기는 정서적 안정감보다는 소외되지 않기 위한 불안감에 더욱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p. 99)


그렇다면 맘카페에는 어떤 글들이 올라오는가. 저자는 ①일상과 정보 공유 ②상품 및 서비스 후기 ③무엇이든 물어보세요 ④인생 조언 ⑤물품 거래 ⑥ 시사 정치 이야기 등 6가질로 유형화했다. '마녀들의 소굴'로 손가락질 당하지만, 실상은 평범하고 소소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맘카페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둥글둥글한 세계'라며 순하고 민폐 없는 공간을 지향한다고 덧붙인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날 선 표현은 보고 싶지 않아요.", "불편한 분은 패스해 주세요."와 같은 일명 '쿠션어' 화법이나 과도한 비난이나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아이 키우시는 분 맞나요?"라고 묻는 자성의 목소리가 맘카페의 주요 언어라고 소개한다. 이 밖에도 책에는 실제 맘카페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파악하기 힘든 구체적 사례들이 가득하다.
  
저자는 5년 동안 맘카페를 운영하며 경험했던 '작은 선의'들에 주목하며, "이런 선의로 생겨나는 작은 사회적 소속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윤활유"라고 말한다. 다만, 모성의 본질은 '내 자식만 위하는 이기심'이므로 타인의 모성은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이해를 구한다. 극단적 경쟁과 사회적 비난이 엄마를 점점 고립켰다는 주장이다.

'맘카페라는 세계'는 모성의 이중성, 맘카페의 양면성을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맘카페는 마녀들의 소굴'이라는 누명을 벗긴다. 물론 저자가 인정하듯, 맘카페의 부작용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실상은 평범한 곳이라는 말에 좀더 무게가 실린다. 결국 맘카페의 고립과 단절은 우리 사회의 무지와 몰이해에서 기인한 결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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