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이 많은 인구에 많은 오염물질을 궁급하는 압박의 환경에 있으면서도 생명의 강을 유지하는 건 이런 모래강이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 널리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오경섭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한강의 지류 중 하나인 중랑천은 서울 북동부 도심을 흐른다. 중랑천을 조금만 관찰해보면 다른 하천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차이점은 바로 '모래'다. 중랑천은 곳곳에 모래가 쌓여 있어 물길이 굽이굽이 흐른다. 그 덕에 특별한 생물을 볼 수 있다. 바로 흰목물떼새이다. 자갈과 모래가 많은 물가에 사는 흰목물떼새는 전 세계에 약 1만 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 2종이다.
환경단체 '중랑천 사람들'의 이정숙 대표는 중랑천을 관찰해 왔다. 그는 중랑천과 도봉천의 합수 지점은 모래톱이 형성돼 여러 생물이 살고 있으며, 먹이가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새들이 살게 됐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중랑천에는 왜가리, 백로, 해오라기, 원앙, 노랑할미새, 검은등할미새 등 다양한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또, 한달 전에는 참매가 비둘기를 사냥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참매는 산림 지대에서 서식한다. 그런 참매가 도심의 중랑천에서 발견되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빠르게 중랑천을 지나가던 참매가 먹이를 낚아챘다. 그런데 산책로에는 사람이 많고, 주변에 공사 현장도 있어 편히 먹이를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적 드문 모래톱을 찾은 것이다. 이 대표는 반드시 하천에는 모래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일 방송된 SBS <물은 생명이다> '다양한 생명을 품은 모래톱' 편은 모래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래톱은 강가나 바닷가에 쌓인 넓고 큰 모래 벌판으로 물의 흐름에 따라 모래나 자갈이 모여 길게 자라나는 하천 지형이다. 전문 용어로는 사저(沙渚)라고 하고, 강 한가운데 있는 모래톱은 하중도(河中島) 부른다. 그렇다면 모래톱은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지는 걸까.
한반도에는 중생대 긴 기간에 걸쳐 다량의 화강암질 마그마가 관입했다. 그 마그마가 오랜 기간 땅 속에서 암석화된 게 바로 화강암이다. 일교차와 연교차가 큰 한반도의 기후 특성상 화강암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변형됐고, 바위 틈으로 스며든 물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바위를 깨뜨려 크고 작은 알갱이의 모래층을 형성했다. 이 모래들이 하천에 쌓여 형성된 것이 모래톱이다.
오경섭 한국교원대 명예교수는 모래톱은 일교차가 작은 외국에서는 보기 힘들기 때문에 '모래톱=우리나라'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설명한다. 모래톱은 7~10m 두께의 모래층으로 부피의 40%가 물로 채워져 있는 '물 저장 공간'이다. 가뭄에도 쉽게 고갈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생태계 유지에 큰 도움을 준다. 또, 생활용수나 농업용수로도 쉽게 조달될 수 있다.
게다가 모래톱은 탁월한 수질 정화 능력을 뽐낸다. 크고 작은 무래 알갱이들이 필터 역할을 하면서 오염 물질을 걸러주고, 모래아ㄹ에 붙어 있는 미생물과 부착조류들은 각종 금속 물질이나 탄소화합물과 같은 미세 오염물질을 분해한다. 다시 말해서 천연 정수기라고 할 수 있다. 또, 모래톱이 있기에 고랭지 농업으로 비료 섞인 한강 상류의 물이 정화돼 수돗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모래톱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알다시피 대규모의 하천 공사로 보와 댐이 생겨났다. 그 때문에 물이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기 시작했고, 수많은 모래톱이 사라졌다. 작은 하천의 모래톱도 잦은 증설 공사로 인해 줄어들고 말았다. 만약 이렇게 모든 하천의 모래톱이 사라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 흰수마자(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표범장지뱀(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와 같이 모래톱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멸종위기 생물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참혹한 자연을 후대에 물려줄 수밖에 없다. 오경섭 교수는 강은 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침전이 되고, 녹조를 유발하는 휴면 씨앗들이 늦봄부터 여름철에 수면 위로 올라와 '녹조라테'를 만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4대강 보를 개방하면서 모래톱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수위가 낮아진 결과가 아닙니다. 하천에 모래톱이 돌아왔다는 것은 우리 하천에 자정 작용이 높아지고 있다는 자연성 회복의 과정으로 봐야 합니다. 모래라는 것은 하천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자원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옥기영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
옥기영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은 모래는 하천의 다양성을 높이는 자원이라며, 앞으로 모래톱의 생태계 가치를 높이고 하천 관리와 복원을 적용할 수 있는 연구와 기술개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한반도는 모래톱을 만들기에 적합한 지형이라 회복 속도도 빠르다. 최근 4대강 보를 개방하면서 사라졌던 모래톱이 다시 형성돼 다양한 생물들이 돌아왔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다시 중랑천으로 가보자. 장마철을 앞두고 중랑천은 또 한번의 증설을 앞두고 있다. (예전과 달리) 노원구는 '중랑천 사람들' 측에 중랑천에 멸종위기종이 없는지 등에 대해 문의했다. 지자체는 6월 전에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환경단체는 새들이 포란하고 부화해서 걸어다닐 수 있는 시기였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 끝에 6월 초로 공사 일정을 잡았다.
이정숙 대표는 모래톱에는 관심과 무관심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래톱에 서식하는 새들을 가까이 가서 보는 일을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새들에겐 사람이 무서운 천적이기 때문이다. 대신 모래톱 준설 공사를 하면 '왜 준설을 하지?'라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모래톱은 다양한 생명을 품은 위대한 자연의 선물인 만큼 우리가 그 고마운 가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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