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집을 짓는다? 흔히 나무로 지은 집이라고 하면 산 속의 오두막 정도가 연상되지만,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앞다퉈 쌓아올리고 있는 목재 건축물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작고 실용적인 공간부터 수십미터에 달하는 빌딩까지 다양하다. 외관이 아름답고 멋스러울 뿐더러 친환경적이다. 시멘트, 철, 플라스틱 같이 탄소를 배출하는 건축 재료가 없거나 거의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방송된 JTBC <팩추얼> '나무의 혁명 편은 '목재 건축'이 세계적인 건축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흐름을 짚어봤다. 먼저 노르웨이로 떠나보자. 브루문달이라는 작은 도시에 세워진 '우드 호텔'은 이름 그대로 나무로 지어졌다. 브루문달 지역 인근의 나무 12,000 그루로 구성되어 있다. 우드 호텔은 뉴욕 디자인 어워드를 비롯해 유럽 각종 건축 분야의 상을 수상했다.
우드 호텔은 높이가 85미터에 달한다. 기존 최고 기록이었던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기숙사 건물(53미터)보다 30미터 이상 높은 세계 최고 높이의 목재 건축물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나무를 베어 집을 짓는 게 어째서 친환경적일까. 우선, 앞서 언급했다시피 기존의 건축 재료들이 만들어질 때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저서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1년에 510억 톤의 탄소가 배출되는데, 그 중 31%가 시멘트, 철, 플라스틱을 만들 때 나온다고 적시했다. 상당 부분은 건축 재료로 쓰인다. 따라서 목재로 건축을 하면 엄청난 양의 탄소를 줄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한다'는 얘기를 반복해 들었던 터라 나무를 벤다고 하면 거부감부터 드는 게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나무는 산소를 내뿜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우리에게 더할나위 없이 고맙고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데 나무의 수명이 70년 이상 되면 더 이상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 못한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는 베어주는 게 좋고, 잘라낸 나무를 잘 활용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건축이 답이 될 수 있다. 오래된 나무를 건축에 사용하는 건 여러모로 친환경적인 셈이다.
숲이 많은 오스트리아는 예로부터 임업과 목재 관련 산업이 발달했다. 8층짜리 건물 '라이프 스타일(생애 주기) 타워'는 목재 건축 전문 설계 사무소이다. 이곳은 '패시브 하우스(최소한이 냉난반으로 적정온도를 유지하는 주택)'로 난방에 나무, 그러니까 펠릿이라는 목재 폐기물을 사용한다. 건축 재료로 사용할 수 없는 목재를 난방 연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나무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오스트리아의 중소도시 포알베르트에는 목조 건축 연합이 있다. 헤르베르트 브룬너 회장은 "토지는 점점 더 비싸지고 땅을 사서 그 위에 집을 짓는 것 역시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심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게가 콘크리트 건축물의 1/3에 불과하고 조립속도도 빠른 목조 건축이 도심에 훨씬 적합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목재 건축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혹시 엄청나게 오래 걸리진 않을까. 그렇지 않았다. 1층을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일주일이었다. 그 이유는 공장에서 나무 벽과 바닥을 만들어 오고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용은 어떨까. 간단한 구조를 개발하고 쉽게 건축하는 노력을 기울여 일반 건축과 거의 같은 수준의 경제성을 갖췄다고 한다.
그건 CLT(Cross-Laminated Timber) 목재 덕분이다. CLT란 넓은 집성판을 직각 방향으로 교차해서 접착제로 여러 겹 적층한 목재를 뜻하는데, 젠가처럼 층마다 직각으로 쌓아올리는 게 특징이다. 탄소배출량을 약 65~70% 줄일 수 있고, 철근이나 콘크리트 구조물보다 훨씬 가볍다. CLT의 등장으로 완전히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꾼 셈이다.
"목재는 색이나 자재 표면이 콘크리트보다 조금 빨리 변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이 더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변해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친근한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쿠메 켄고)
일본도 목재 건축의 흐름에 발맞춰 나가고 있다.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 목조 건축을 도입했다. 62미터의 지붕에 일본에서 많이 나는 삼나무를 사용한 것이다. 건축가 쿠마 켄고가 큰 역할을 했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나이들어 가는 건축물이 그가 추구하는 이상향이다. 사까에마치라는 작은 마을에는 그의 6번째 목조 건축물이 들어섰다. 이제 목조 건축물은 사까에마치의 자랑이자 상징이 됐다.
목재 건축의 또 다른 효과는 목재 건축의 시작인 임업의 활성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침체돼 있던 산골 마을에 선순환이 일어나는 식이다. 또, 바이오매스 산업과도 연계되어 있다. 벌채를 통해 나온 원목 중에서 목재 산업에 이용되지 않는 부산물을 이용해 재생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재 건축은 친환경적인 것은 물론 지역경제까지 되살리는 효과가 있다.
"지금 현재 콘크리트가 차지하고 있는 시장이 99%라고 한다면 그 시장이 상당 부분을 나무가 협력적으로 하이브리드된 방식으로 만들어가지 않을까. 그게 좀더 건강한 도시 아닐까." (한그린목조관 건축설계사 배기철 소장)
박하선은 '어떤 것으로 집을 짓느냐'는 질문은 참 많은 것을 바꾸는 일이었다며 내레이션을 맡은 소회를 밝혔다. 또, 공동 내레이션을 맡은 정상훈은 집을 짓고 살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자연과 공존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아마 시청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이렇듯 조금씩, 그렇지만 분명히 바뀌어 가는 우리의 생각이 나무 혁명의 시작일 것이다.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로 빌딩을 올리는 것. 이건 단순히 건축의 한 양식을 바꾸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삶을 바꾸고 도시를 바꾸는 일이다. 아직까지 콘크리트가 건축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99%이지만, 앞으로 나무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이다. 좀더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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