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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스페셜] 생존 위협받는 길고양이와의 공존, 중성화가 해법이다

너의길을가라 2021. 4. 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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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은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2019년 10월,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이 착공됐다. 보상 절차가 끝난 사람들은 차례로 마을을 떠났다. 한때 도심 못지 않게 붐볐던 재개발 거주지역은 황량해졌다. 사람들이 떠난 그곳은 고양이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길고양이가 모여 들었다. 하지만 평온도 잠시뿐, 건물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길고양의 터전도 함께 무너졌다.

지난 8일 방송된 KBS2 <환경 스페셜> '그 동네 그 고양이들'은 언제 닥칠 지 모르는 죽음 앞에 숨죽여 사는 고양이들 삶을 기록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습성상 자신의 터전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고양이가 이곳에 남아 있을까. 길고양이는 하루가 지난 후에야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경계심이 가득했다. 널브러진 통조림을 뒤져보지만, 비어있어 굶주린 배를 채우지 못했다.

상한 쓰레기를 먹다보면 결국 탈이 나겠지만, 이곳의 고양이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버려진 동네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그저 끈질기게 버티는 것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고양이 보호활동가들의 존재이다. 2019년 7월, 장항동의 한 주민이 도움을 요청했다. 집 마당에 고양이들이 와서 밥을 주며 보살펴 주었는데, 곧 아파트로 들어가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고양이 보호활동가들은 고양이들의 이주를 계획하며 생활 상태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사람이 떠난 곳에 터잡은 건 고양이만이 아니었다. 주인 없이 떠도는 개들도 몰려들었다. 고양이를 쫓는 개의 본능 때문에 고양이들이 계속해서 희생되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을 뿐, 들개에게 생존을 위협받고 있었던 것이다.

늘 함께 붙어다니던 고양이 두 마리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틀이 지났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제작진은 활동가들과 함께 단짝 고양이들을 찾아 나섰다. 불안감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불길한 예감이 짙어질 무렵, 활동가들은 비닐하우스 인근에서 고양이 사체를 발견했다. 줄무늬가 익숙했다. 배에는 뚜렷하게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 죽음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길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은 3년이라고 한다. 무너져 가는 마을에서 고양이들은 고작 3년 남짓한 목숨을 운에 맡겨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채 말이다. 빈 통조림을 뒤지다 굶어죽거나 들개에게 쫓기다 물려 죽을 확률이 높다. 평온한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는 고양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사이에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픈 고양이나 임신한 고양이나 겁에 질린 고양이들은 건물 밑으로 숨은 습성이 있어서 건물과 함께 매몰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완전히 지역이 가로막히기 전에 고립되기 전에 길고양이의 개체 수를 최대한 줄여놔야 하고 새끼 고양이가 없는 상태로 만들어줘야 그다음 단계를 할 수 있어요." (서주연 고양이 보호활동가)

지방자치단체와 동물보호단체에서는 길고양이의 생존을 위한 방안으로 'T.N.R'을 제시하고 있다. Trap(포획), Neuter(중성화), Return(방사)의 약자이다. 풀어 설명하면 길고양이들을 인도적으로 포획하여 중성화 수술을 한 후 다시 제자리에 방사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핵심은 중성화다. 그런데 중성화가 어떤 효과가 있어 길고양이들의 생존에 영향을 준다는 걸까.

중성화하지 않은 수컷 고양이들에게 영역 싸움은 본능이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수컷들을 몰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수컷들이 싸움 끝에 죽음에 이른다. 한편, 1월 초가 되면 암컷들은 임신이 가능한 발정기를 맞는다. 그때 수컷은 발정이 난 암컷의 냄새를 따라다닌다. 교미가 이뤄지면 2달 후 새끼 고양이가 태어나게 되고, 그러면 어미 고양이는 영역을 벗어나려 하지 않게 된다.


경기 고양시 성사동 원당 4구역은 지난해 대규모 'T.N.R'이 진행된 동네이다.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으로 몰려든 141마리의 길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중성화된 고양이들은 익숙한 옆동네로 대거 이동했다. 덕분에 옆동네는 고양이 수가 대폭 늘었지만, 주민들의 민원은 줄었다. 불만의 가장 큰 이유였던 번식철 울음소리가 사라지자 공존이 가능해진 것이다.

중성화는 지금의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인 셈이다. 경기도 동물복지 위원인 조윤주 교수의 관리 하에 이틀 간 21마리가 인도적으로 포획됐다. 인근 동물보호센터에서 검진을 받은 후 곧바로 수술이 진행됐다. 물론 중성화 수술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몸무게가 2kg 이상이어야 한다. 새끼 고양이는 중성화시키지 않는다. 또, 수태나 포유 중인 고양이는 즉시 방사해야 한다.


"예전에는 전부 안락사였죠. 안락사는 다시 살 수 없는 상태로 만든 것이고, 중성화는 살면서 출산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응균 고양시 동물보호센터 수의사)

일부 고양이의 경우에는 입양도 가능하다. 사람 손을 탔던 고양이들은 금세 사람을 겁내지 않고 다가온다. 그런 고양이들은 집으로 들일 수 있다. 하지만 햇볕을 쐬고, 꽃냄새를 맡고, 길을 마음껏 누빈 길고양이들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지금처럼 자유를 만끽하며 살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른다. 어떤 삶이 그들에게 더 행복한지 고민할 일이다. 그렇다면 'T.N.R'이 해법일 수 있다.

현재 우리는 길고양이의 개체 수가 얼마인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물론 길고양이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길고양이는 그동안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지 않을까. <환경스페셜>이 던진 질문 앞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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