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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속헹 씨의 죽음, 그 후로 무엇이 바뀌었나 본문

다큐멘터리 + 시사교양

이주노동자 속헹 씨의 죽음, 그 후로 무엇이 바뀌었나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21. 4. 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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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느냐. 우리는 죽어야만 관심을 가져는 존재냐."

지난해 12월 20일, 경기도 포천에는 한파 경보가 내렸다. 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뼈가 시릴 정도의 강추위였다. 그날 캄보디아 출신의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집이라 불릴 수 없는)집'에서 말이다. 4년 전 한국에 온 31살 속헹 씨가 살던 곳은 농지 위에 설치된 불법 가건물이었다. 검은 천을 뒤집어 씌운 외부는 비닐하우스처럼 되어 있고, 안쪽은 컨테이너였다.

당연히 채광이 나빴고, 창이 없으니 환기도 되지 않았다. 단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위생은 말할 것도 없었다. 거주 공간으로 삼기에 모든 점에서 문제투성이였다. 화장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잠금장치도 없는 푸세식 간이 화장실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 바로 옆에 설치돼 있었다. '기숙사'라 이름 붙여진 이 열악한 '집'에서 속헹 씨는 쓸쓸히 죽어갔던 것이다.


"동료가 속헹 씨한테 너무 추워서 여기서 못 잔다. 같이 우리 다른 데 가자고 했는데 속헹 씨는 '괜찮아 여기 있을게.' 이렇게.." (정영섭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

그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은 무엇일까. 경찰은 부검을 실시했고, 간경화로 인한 혈관 파열과 합병증이 사인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한파가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숙헹 씨가 사망하기 전 며칠 동안 기숙사의 누전차단기가 내려가 난방이 끊겼던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또, 평소 숙헹 씨는 건강했다는 동료들의 증언도 잇따랐다. 산재로 인한 사망이라는 것이다.

지난 17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여기 대한민국 맞아요?' 편은 속헹 씨의 죽음을 되짚어 보며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가 얼마나 개선됐는지 질문을 던졌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지 벌써 17년이 지났다. 취지는 좋았다. 인권 문제 등 부작용이 있으니 정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동자였던 섹 알 마문 씨는 2004년에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 후 귀화해 다큐멘터리 감동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에 영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를 발표해 이주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섹 알 마문 씨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주 공간이 아닌데도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않았던 고용노동부를 규탄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이주 노동자 주거 환경 실태를 조사했다. 69.6%가 고(故) 속헹 씨처럼 가설 건축물(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25%는 일반 주택, 5.4%는 고시원 등 기타 주거시설에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주는 왜 숙소를 제공하는 걸까. 일터 근처에 숙소를 만들어 놓아야 언제든지 일을 시킬 수 있고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고용법]
제18조의 2 취업활동 기간은 사용자가 요청한다
제18조의 4 재입국 취업은 사용자가 신청한다
제25조 사업장 변경의 허용은 사용자가 신청한다

또,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지역 사정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숙소를 옮기기가 쉽지 않다. 또, 사업주에게 얘기를 한다고 한들 받아들여질 리 없다. 이 갑을관계는 외국인 고용 허가제도의 독소조항이 크게 한몫하고 있다. 외국인 고용법은 사용자에게 거의 모든 권한을 주고 있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취업 활동과 관련한 권리와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고용노동부는 속헹 씨가 숨진 채 발견되자 비닐하우스 내 임시 가건물을 숙소로 제공할 경우 이주노동자 고용을 불허하겠다는 내용의 개선방안을 급히 내놓았다. 이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걸까. 앞ㅇ로 이주노동자들은 안락한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걸까. 한편, 정부의 개선방안이 졸속 행정이라며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농촌 현실에 무지한 탓이라는 것이다.

비록 비닐하우스 내 가건물이기는 해도 쾌적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사업주가 돈과 노력을 기울인 곳도 있었다.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지침을 통해 장려한 측면이 있었기에 사업주 입장에서는 정부의 갑작스러운 조치가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실제로 한 이주노동자는 올해 초 고용노동부의 방침에 따라 숙소를 시내로 옮겼다가 다시 돌아왔다. 시내 방값은 두 배나 비쌌고, 긴 이동 시간도 문제였다.


"주거로 사용할 수 없는 건물을 기숙사로 허용하면서부터 이 문제가 나왔고 이런 혼란이 야기됐어요. 처음부터 명확하게 선을 그었어야 했죠." (최정규 변호사)

이주노동자 100만 명 시대, 그 중 4%가 농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작물 재배농가의 64.2%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대한민국으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집'으로 제공하고, 사람 이하의 대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부끄러운 일이다.

속헹 씨의 죽음은 우리에게 "여기 대한민국 맞아요?"라고 묻고 있다. 그 질문에 우리는 선뜻 대답할 수 없다.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우린 죽어야만 관심을 갖는 존재냐?"고 절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사안을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이다. 불법 가건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동안 뒷짐만 지고 있다가 문제가 터지니 즉흥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킨 것이다.


농촌의 현실을 고려한 세심하고 점진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의 거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폐가를 리모델링하거나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원하는 건 근본적인 개선이다. 고용허가제 폐지를 통해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들을 노동력으로만 여기지 말고, 인권과 인격을 생각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속헹 씨의 죽음으로 이제야 겨우 문제를 인식하게 됐다.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가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 그냥 두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압박은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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