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역린>, 작은 일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에 응답하다

너의길을가라 2014. 5. 6.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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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검은 그림자의 무게 앞에 체념한다. 그리고 넋두리를 읊을 뿐이다. 너 하나 가지고 바뀔 세상이었다면 수천 수만 번도 더 바뀌었을 것이라 타박한다. 까불지 말고 고개를 숙이라며 조언을 빌미삼아 비아냥 댄다. 누군가는 그렇게 세상을 다 아는마냥 떠들어댄다. 아니,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그 짓눌린 누군가 혹은 나의 한탄에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그저 고개를 끄덕일 것인가? 정경언관 유착의 고리, 얽히고설킨 그 부패의 고리에 주저앉을 것인가? 온갖 이해관계로 돈독히 형성된 카르텔이 지배하는 그 치밀한 구조 앞에 체념과 한숨으로 살아갈 것인가? 자본의 힘이 지배하는 세상, 온갖 욕망으로 그득한 세상, 그 자본과 욕망이 뒤엉켜 거대한 괴물로 형상화된 세상에 종속될 것인가?



자신을 죽이러 온 정조(현빈 분)에게 살수 공급책인 광백(조재현 분)은 "나 하나 죽인다고 세상이 바뀔까?" 라고 묻는다. 언제나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었던 물음이다. 매번 우리를 절망케 하는 물음이다. 결국 우리를 무릎 꿇리고 마는 물음이다. 이에 정조는, 영화 <역린(逆鱗)>은 이렇게 답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중용 23장 -




영화 <역린>은 다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나무는 좋은데 숲은 별로'인 영화라는 평가가 절묘하다. 현빈, 정재영(갑수 역), 조정석(을수 역), 한지민(정순왕후 역), 조재현, 김성령(혜경궁 홍씨 역), 박성웅(홍국영 역), 정은채(강월혜 역) 등 주연급 배우들을 한꺼번에 캐스팅하면서 큰 기대를 모았지만 그 모두를 세세히 신경쓰다보니 초점이 다소 흐려지는 우를 범했다. '멀티 캐스팅'의 단점이라고 할까? 


이는 아무래도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이 <다모>, <패선70s>, <베토벤 바이러스>, <더킹 투하츠> 등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긴 호흡으로 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묘사할 수 있는 드라마와 다르게 영화는 고작 2시간 안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매체가 아닌가? 섣불리 '친절함'을 선택했다간 집중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영화를 감상하는 모든  관객들이 여유로운 마음으로 등을 의자에 기대고 감독의 친절함을 받아들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이미 '지루하다'는 평가가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차라리 과감하게 10분 정도만 잘라냈다면 어땠을까? (<역린>의 런닝타임은 135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암살'이라고 하는 박진감 넘치는 소재가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때부터 당연하게도 현빈(정조)이 극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로써 다소 산만했던 흐름은 가뿐히 정리되고, 축 늘어졌던 전개도 집중력을 되찾는다. 


지난 4월 30일 개봉한 <역린>은 첫날 관객 28만 명을 동원하며 산뜻한 출발을 했고, 지난 5일에는 개봉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평가가 사뭇 엇갈리는 가운데 <역린>이 개봉 2주차에도 순항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분명 <역린>은 지금 이 시대에 절묘히 어울리는 영화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의 지침서가 될 만한 영화이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결국 우리를 무너뜨렸던 그 잔혹한 '물음'에 하나의 대답을 던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역린>은 충분히 가치있는 영화이다. 



"나 하나 죽인다고 세상이 바뀔까?"

"그거 하나 바꾼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그 지긋지긋했던 물음, 그 비아냥에 이제 더 이상 고개 숙이지 말자. 이렇게 말하자. 이렇게 대답하자. 이렇게 소리치자.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결국 작은 일,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시되고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나 하나쯤', '너 하나쯤'에서 시작된 무기력함은 사회 전반을 집어삼켜버렸다. 결국 우리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지극한 정성이 곧 세상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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