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알파고는 적? 이세돌의 고독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너의길을가라 2016. 3. 1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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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순하고 가벼운 이벤트 쯤으로 치부했다. 지난 글에서 중립적인 어조로 쓰긴 했지만, 내심 이세돌 9단의 5:0 압승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만큼 기존의 인공지능이 점령해왔던 영역(가령 체스나 장기)과 달리 '바둑'은 무한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탓에 아직까지 인공지능이 넘보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여전히 바둑에서는 인간의 압도적인 우위를 재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 낙관했다.



하지만 여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난 9일 열린 제1국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서 186수 만에 흑불계패를 선언했다. 박빙의 승부도 아니었다. 끝내기도 필요치 않았다. 이 9단은 무기력하게 돌을 던지고(거두고) 말았다. 물론 제1국은 알파고의 현재 능력을 '시험'하는 테스트의 성격이 짙었다. 이 9단이 방심했던 탓이라 여겼다. 패배에 따른 충격은 있었지만 떨쳐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국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이 9단은 "일단 정말 너무 놀랐다"면서 첫 감흥을 전하고서 "진다고 생각을 안했었는데 결과가 이렇게 돼 정말 놀랐다. 대국에서는 초반 실패가 끝까지 이어졌다고 본다. 이렇게 완벽하게 알파고가 바둑을 둘 줄 몰랐다"고 복기했다.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린' 이 9단이 제2국에서는 통쾌한 반격을 해줄 것이라 믿었다.



다음 날 펼쳐진 제2국. 알파고는 211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또 한 번의 불계승. 승부는 압도적이었다. 이세돌 9단은 "굉장히 놀란 것은 어제 충분히 놀랐고, 이제는 할 말이 없는 정도가 아닌가 싶"다며 '알사범'의 기량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내용상 정말 완패였다. 조금도 한순간도 앞섰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알파고가 완벽한 대국을 펼쳤다고 말했다.


막다른 길에 몰렸지만 여전히 이세돌이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둘 것이라는 희망이 인간들에게 남아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랄까. '우승'이 걸려있는 제3국, 이 9단은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며 싸움을 유도했지만, 결국 알파고는 승리를 지켜냈다. 176수 만에 백 불계승이었다. 아, 인간의 한계는 여기까지란 말인가. 무력감과 공포감이 '바둑판'을 넘어 '세계'를 뒤덮기 시작했다.




이제 이 이벤트는 '인류 vs 인공지능'이라는 흐름으로 전개됐다. 얄궂은 구도가 아닌가? 호들갑스러운 '인간들'은 자연스레 '이세돌'에 감정이입을 시작했고, 그의 바둑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승패'에만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졸지에 인간의 대표가 된 이세돌은 청춘과 시대의 아픔을 짊어진 고독한 사도(使徒)가 되어 허허벌판에서 홀로 무거운 짐진 자가 되었다. 알파고는 마치 '악'을 상징하는 적이 되었고, 이세돌은 거만한 적을 응징해야 할 존재로 각인됐다.


더불어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도 확산됐다.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받는 인간이라는 영화 속 상상들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상상적 두려움과 이러다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기계에 밀려 인간이 설자리를 완전히 잃는 것 아니냐는 실체적 두려움이 뒤섞인 채 인간들을 흔들어댔다. 그 즈음에 이세돌이 '인류'를 향해 던진 한마디는 그야말로 짙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절절히 느껴졌다. 그것은 광야에 홀로 선 고독한 바둑기사, 한 인간이 최후의 순간까지도 인류에 '희망'을 전달하겠다는 굳은 의지와도 같았다. 감동적이었고, 잊지 못할 한마디였다. 한편,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1국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던 '불공정한 대결'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슈퍼 컴퓨터 1,202대가 연결된 최신 알고리즘 기술로 무장한 알파고와 인간 1명의 대결은 애초부터 불공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알파고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에 가까운 주장이고, 그와 같은 대결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던 인간의 무심함에 책임을 물어야 할 내용이었다. 정보처리능력(초당 10만 가지 수를 계산)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난 것이 인공지능의 본질적 장점인데, 이를 '훈수'라는 이름으로 바꿔 '바둑의 본질'을 흐린다고 표현하는 것은 단지 '어깃장'에 지나지 않다.



오히려 놀라웠던 건 이 9단의 행보였다. 3연패를 당한 상황에서도, 한국기원을 비롯해 '어깃장'을 놓기 시작한 이들이 '정보 비대칭'이라는 변명을 만들어내는 동안에도 그는 "제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라며 겸허히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밤늦은 시각까지 복기를 거듭하면서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알파고도 약점이 있네요. 완벽하지 않아요. 내일 한번 해보죠"라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연속적으로 이어진 3번의 대국에서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 알파고에 질렸던 인간들은 이세돌의 승률을 높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 9단은 알파고의 허점을 찌르는 '신의 한수'로 180수 만에 알파고가 'resign'이란 팝업창을 띄우게 만들었다. 불계승을 거둔 것이다. 이 9단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고, 그의 승리에 전 인류가 환호했다.



그의 승리에 대한 환호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그것은 '안도감'은 아니었을까? 아직 인공지능은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인간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 말이다. 이런 멋드러진 말을 생각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끊임없이 '진화해왔다면, 우리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인간도 '진화'를 해왔고, 지금 이 순간조차도 '진화'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것을 이세돌이 증명해냈다!


물론 이세돌의 고군분투는 감동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각은 지나치게 저차원적이거나 근시안적인 것은 아닐까? 구글이 바둑 세계 랭킹 1위(커제)가 아닌 굳이 이세돌(그는 세계 랭킹 4위다)을 선택한 것은 '음모론'처럼 그의 기보가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분석이 용이하다는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 9단의 '창의성'과 '도전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흔히 '알파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는 "우리가 한국에서 이세돌 9단과 대국을 펼치는 이유는 알파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오늘의 패배는 알파고에 매우 소중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고작(!) 바둑의 '승패'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동안 구글의 눈을 훨씬 더 높은 곳, 훨씬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사비스는 "알파고는 프로토타입 단계(시제품보다 더 원초적인 단계)에 있는 프로그램으로, 아직 베타 단계(본격적인 상용화 서비스 전 단계)도 아니고 심지어 알파 단계(첫 번째 테스트)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파고의 문제점과 단점을 파악하기 위해 이 9단과 경기를 치르는 것"이라면서 "영국으로 돌아가 알파고 시스템 개발에 반영하고 활용할 것이며, 이는 곧 미래 진보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흔히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라 불리지만, AI(artificial intelligence) 분야에서는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불과 2달 전 세계경제포럼은 다보스퍼럼에서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은 AI라고 예견한 바 있다. 과연 대한민국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번에 알파고를 선보인 구글은 말할 것도 없고, AI의 원조라는 IBM과 애플을 내세운 미국과는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고, 후발주자인 중국에도 한참 밀리고 있다.


허사비스는 "모든 강력한 신기술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AI)은 윤리적으로 책임감 있게 사용돼야 합니다. 인간 수준의 AI는 수십년 후의 일이겠지만 지금 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면서 "인공지능은 기계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것으로 범용 목적을 가진 학습 기계를 개발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선포했다. 



이런 착실한 준비, 도전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가? 인공지능에 대한 과도한 공포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 뿐이다. 허사비스의 말처럼 인공지능은 '도구'에 불과하다. 물론 그 바탕에 윤리와 책임감이 지탱되어야 한다. 이미 논의는 시작되고 있다. 알파고의 등장은 그 본격적 서막일 것이다.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진지하게 뛰어들어야 한다.


단지 바둑의 '승패'에 매달릴 일이 아니다. 물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이세돌의 승리는 '숭고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마지막 제5국에 대한 관심과 흥미도 늘어났다. 바둑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모두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만 매몰된다면 우리는 이 '알파고 VS 이세돌'의 대결의 진정한 의미를 하나도 파악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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